최근 수정 시각 : 2020-01-08 18:58:05

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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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팬덤

1. 개요2. 특징3. 상세4. 비판5. 기타

1. 개요

삼국지위나라는 사람. 진빠와는 다르다. 오래 전부터 촉한을 좋아하는 이들과는 불구대천으로서 끝없이 갈등하고 있다. 나름 3대세력의 일원인 오빠는 3인자라서 아웃 오브 안중 밀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바리에이션으로 원빠(원소, 원상빠)도 있다.

위빠의 대부분이 조조이기도 하다. 당연히 조조빠일수록 진빠와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

중국의 대표적인 위빠로는 조조를 숭앙한 마오쩌둥이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21세기 들어서 일본에서 만든 삼국지 관련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위빠 성향이 상당히 묻어나 있다.[1]

2. 특징

그 근본이 조위정통론인 사람들이다.

위빠는 기본적으로 삼국지연의를 배척하는 경향과 연의는 무조건 조위를 까내린다는 피해의식이 있으며, 조조에 대해 거의 신격화를 한, 삼국지 관련 창작물 삼국지 조조전이나 만화 창천항로를 아는 위빠는 대체로 이 작품을 좋아한다. 창천항로보다는 인지도가 낮지만 모바일 게임언데드 슬레이어도 위빠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문인과 학자들로는 국내의 이문열[2], 중국 현지에서는 이중톈 교수가 대표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는 마오쩌둥이 유명하다. 참고로 셋 다 자기 분야에 있어선 나름 능력자이나 삼국지 관련 식견으로는 엉망진창인 걸로 유명한 사람들이다.[3]

과거에는 명분론이 중시되어 조조망탁조의, 즉 왕망이나 동탁과 동급의 악당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명분보다는 실질이 중요하다는 생각, 좀 더 근본적으로는 도덕적 가치가 쇠퇴함에 따라, 현세에서의 패권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진 탓이라고 보여진다. 삼국지연의로 대표되는 고전문학 전통의 권선징악적 필체자체를 고루하고 식상한 것으로 보고 싫어하여, 그러한 방식의 안티테제가 되는 조조에게 호응하는 것에 가깝다.

3. 상세

위빠의 대부분은 명분, 인의, 의리같은 명분론에 입각한 태도를 지양하고 실리를 지향하지는 태도를 지닌다.[4] 그러므로 삼국시대 타 국가들에 비해 실질적으로 크고 강한 국력를 기른 위나라를 찬양하자는 논리를 취한다. 허나 모든 위빠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위나라가 좋다기 보다는 단순히 명분론만을 싫어하여 위빠를 자처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명분론을 내세우고 촉한을 찬양하는 기존 삼국지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고 반감을 가져서, 그 안티테제로서 위나라를 좋아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똑같이 실리를 지향한 오나라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걸 보면 역시 근본적인 이유는 결과론적인 성공과 패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워낙 옛날부터 촉한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지라, 문학 등에서 당연히 촉의 인물들이 부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위의 명장들이 촉의 명장들보다 훨씬 과소평과 되는 경우도 많고 인지도도 낮으며 조조를 희대의 역적으로 삼는 단어인 망탁조의란 사자성어도 있다. 심지어 삼국지 연극 때 조조 역의 배우가 관객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이는 조선시대 때도 마찬가지인지라 적벽가에서도 조조군이 불탈 때 화공은 주유가 했는데 조조를 원망하며 타죽었다는 대목도 있고, 간사한 사람을 조조 간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조조를 욕으로 사용하는 기록도 많다. 위를 높이는 풍조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로, 유교적인 이념이 약해지고 사회전반에 도덕보다는 이해타산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에, 모택동 등의 중국 내 권력자들의 조조 띄어주기로 인해 부쩍 증가하게 된것이다. 이런 점은 비단 삼국지연의 뿐 아니라, 고전문학 전반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평가의 전반적인 흐름이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후술하겠지만 당시 민중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골자로 해서, 나관중을 필두로 여러 문인들의 손을 거치며 거쳐 탄생한 문학이며, 당시 삼국시절을 기억하는 문인과 서민들의 보편적인 사관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를 높이려는 소위 위빠의 행각은 되려 "불의한 권력자에 대항한다"는 삼국지연의의 근본적인 사상에 대한 반발을 정당화려는 방편으로 초기기록인 진수의 삼국지 정사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역사의 고증을 문제 삼지만, 실질적으로 삼국지연의를 "이상적 민본주의"의 지향에서 "현실권력 획득"의 주제로 끌어들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5] 위빠라 불리는 이들이 정사를 집착하면서 실재로는 삼국지연의에 대해 거의 무리에 가까운 재해석과 재구성을 가하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보수 계열인 경우가 많다. 이는 서주대학살을 비롯하여 조조의 몇몇 악행의 경우 진보주의의 경우 용납할 수 없는 것인 반면, 보수 계열의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일일 뿐더러, 자기가 빠는 정치인과 대입하여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6][7]

4. 비판

일반적으로 위빠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대부분의 영웅찬양론자들이 그렇듯이 명백한 악행임에도 '잘못은 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라는 식의 옹졸한 실드질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조조는 완전무결한 영웅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그의 명백한 실책이나 악행조차 영웅화, 신격화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예가 지겹게 거론되는 창천항로.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조앙이 준 말을 탄 일을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영웅적인 결단'이라고 추켜세우는 어이없는 내용이 존재한다. 애초에 취향이 보통사람이었으면 장수가 반항할 일이 없었다 동시에 이런 부류들 중 많은 수가 영웅적 업적의 판단 기준이 될 만한 군사적, 정치적 지식에는 무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조조의 군재를 치켜세우며 소수로 다수를 격파하는 것이야말로 병법의 정점이라는 어이없는 내용이 존재한다. .
  • 지나친 위나라 미화 및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었다는 과장
대표적인 헛소리 중 하나가 '삼국은 사실상 위나라가 통일했고 촉과 오는 지방정권에 불과하다' 는 것이다. 물론 위나라가 삼국 중 가장 막강한 국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화 인구의 40% 이상이, 국토 면적으로 치자면 60% 이상이 수십년간 조직적인 적대 행위를 지속하는 상태를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다.[8] 이 논리에 따르면, 현재의 대한민국과 북한도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9]

어차피 수십년 후 위나라가 통일하니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보는 것도 역시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을 위나라에 적용하면 위나라는 그냥 서진의 밑밥을 깔아주기 위한 막간 왕조에 불과하며, 서진 또한 어차피 오호십육국이라는 대난세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명제도 성립한다. 그런데 이게 맞다는 것이 함정 계승 논리도 마찬가지인데, 진나라가 위나라를 계승했듯, 위나라 또한 후한을 계승한 나라다. (=조위정통론) 진나라의 통일이 위나라의 통일과 같다면, 마찬가지로 위나라의 통일은 후한의 재통일과 같다는 명제도 성립할 수 있다. 실제로 위나라의 생산력과 인재풀은 후한말의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게다가 후한의 주 통치지역도 하북지역이었기에 후한의 기반은 위나라가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

간혹 중국역사를 들먹이면서 '역사를 살펴보면 하북을 제패한 세력이 천하를 제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사실상 통일로 봐야한다'는 건데 이건 미래의 역사까지 갖다붙여서 위나라가 통일왕조라고 어떻게든 우기는 거다. 이 논리대로라면 오호십육국 시대에 하북을 제패한 다른 국가들도 사실상의 통일왕조라고 봐줘야 하나 그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경우는 없다. 위빠들이 팬심에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다. 게다가 화북을 제패한 세력이 천하를 제패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나 명나라국민당처럼 양쯔강 이남을 기반으로 두고 천하를 제패한 세력이나 원나라처럼 기반이 아얘 하북보다도 더 위에 있었다가 집어삼킨 사례도 존재한다.[10]
위빠들의 또 하나의 약점은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다인데 바로 이점 때문에 위를 멸망시킨 서진을 까면 자가당착에 빠진다. 실제로 사마씨가 한 일이 결국엔 위가 한나라를 찬탈한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한왕조는 400년이상 존속되면서 허수아비라고 해도 권위가 있었는데, 위의 찬탈은 결국 그 명분론을 약화시킴으로서 신하가 군주를 몰아내도 된다는 선례를 남겨 사마씨에게 찬탈의 명분을 제공했다.[11] 이런 명분의 약화는 결과적으로 황제권의 약화를 초래해 위의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가 통일을 이루어 새로 권위를 확립할 기회가 있었다면 모르지만 겨우 5대만에 자기들이 찬탈한 방식 그대로 당하면서...[12]

이것을 모두 조비의 탓으로 돌리는 의견도 있는데, 방향성도 문제가 있고 조비에게 다소 억울한 일이다. 조앙이 살았으면 후계자의 권위 문제가 크게 불거질 일이 없었는데 그가 누구의 실책 떄문에 죽었는가? 신하가 황족을 막 대하고 찬탈해도 된다는 명분은 누가 제공했는가? 위나라를 뒤집은 권신들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등용했는가? 그리고 조비의 인성 교육을 책임져야 할 조비네 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인가?전쟁과 학살 그리고 여색과 예술을 즐기던 분이었지
  • 조조 미화
또 하나의 대표적인 헛소리가 조조는 중국사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역시 중국사와 역사 자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조조는 여러 악행과 압제를 행한 인물이며, 딱히 시대를 초월한 업적을 남긴 적은 없다.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대에 자웅을 겨뤘던 군웅들인 원소, 유비, 손권가 조조에게 딱히 뒤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소, 유비, 손권 이들 모두는 명목상 환관의 손자라 명예에 있어서는 좀 흠집이 있을망정 실질적으론 당대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인 조등의 손자, 즉 '다이아 수저'인 조조[13]보다 훨씬 더 뒤떨어진 출발선에서 시작해 그에 근접하는 위상을 얻은 당대의 군웅들이다. 원소는 권력을 잡는 방식에 있어선 평가가 갈리지만 어쨌든 명문가의 천출이라는 굴레를 뛰어넘어 생전에는 단 한 번도 조조보다 세력이 약했던 적이 없던 군웅할거 시대 최고의 실력자였으며, 유비는 말만 황족이지 실질적으론 평민이나 다름없는 위치에서 평생 자신이 내세운 한실부흥이라는 대의명분을 끝까지 밀고 나가 협천자 이념을 선택한 조조가 생전엔 결코 노릴 수 없었던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손권은 군사적 재능은 출중할 망정 정치력에 있어선 바닥이었던 지방의 한미한 호족 출신인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물려준 덩치만 컸지 내실은 난장판이었던 손오 세력을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으로 수습하고 발전시키고 끝까지 보존해 구오지존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렇듯 조조의 능력이 당대 최고였다고 확실하게 단언하기도 힘든 마당에 중국사 전체로 보면 조조는 당연히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사 전체로 보면 조조 이상의 업적을 남긴 영웅들은 얼마든지 있다. 광무제, 수문제, 당태종, 송태조, 영락제 등은 모두 조조 못지않거나 압도하는 군사적 실적을 보였으며, 중국사에 길이 남을 업적과 훌륭한 내치를 수행한 인물들이다. 군주로써의 업적만 따지면 진시황, 한무제, 한고제, 한문제, 송태종, 홍무제, 강희제, 옹정제 등 대상은 더욱 늘어난다. 당장 진시황하고의 비교만 해도 그가 확립한 군현제는 이후 중국 왕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도량형 통일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조조의 업적이라고 해봐야 수십년도 못가 폐단이 심해 폐지되는 둔전제 정도다.[14] 같은 압제자라고 해도 업적의 차이는 넘사벽 수준이다.

조조를 평소엔 위엄쩌는 개혁가, 천재라면서 빨아주지만 애초에 정책들의 자세한 내막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둔전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고들자면, 이것이 유효한 제도임은 맞고, 이를 시행한 조조의 정치적 능력 또한 출중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둔전제 자체가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이것을 시대를 초월한 업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15] 일부 위빠들은 이것이 후대의 제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수/당 시대의 기본 토지제도인 균전제는 이와 직접적인 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16] 또한 도겸은 조조보다 일찍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추정되며 큰 성과를 거뒀고, 유우는 이런 제도 없이도 척박한 유주를 단기간에 안정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즉, 조조의 정치적 능력과 둔전제가 동 시대의 다른 정책이나 정치가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차라리 하북을 제패한 것을 두고 다른 군웅보다 낫다고 말하는게 나을 지경

구현령 (유재시거) 또한 조조의 실력주의, 실용주의의 대표 아이콘으로 여기지만[17],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기본적으로 천거제에서 크게 벗어난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이 또한 유력자들의 자리 나눠먹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실력이라는 것도 측정할 장치가 없는 이상, 부패한 호족세력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제약(인품)만 해제해 준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관직을 차지한 인물들은 위나라를 뒤엎고 부패한 문벌귀족층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난세에 효나 청렴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의견이 있는데, 조앙이 효자가 아니었으면 조조는 장수한테 죽었다.[18] 결론적으로 조조의 구현령은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실력에 의한 관리 등용 제도가 등장하는 것은 수/당 시대에 이르러야 정립된다. 더하여 구현령도 조조 맘대로라서 공융의 경우 불효죄로 처형해 후대에 "불인불효라며 불효죄로 처형한건 뭔 심보냐?" 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종종 게임으로 삼국지를 접한 사람들이 중원 한가운데서 시작해서 사방에서 두들겨맞는 위치에서 승리했다면서 추켜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본 것에 가깝다. 위치만 보면 조조가 주위에 적이 많이 생기기 쉬운 위치였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 세력이 항상 조조에게 적대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들과 한번에 싸운 것은 더욱 아니었다. 조조의 시작은 친원소 군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소의 부하 수준이었으며 위기 때마다 원소의 도움을 받은적이 많다. 원술, 여포, 장수 등 중원의 여러 세력과 돌아가며 싸웠으며 원소와는 주위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싸울 수 있었다. 정리하면 중원에서 여러 적대적인 세력을 상대로 버티면서 세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조조는 본인의 처세술에 더해 운도 따라주면서 중원에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적만 만들고 이들을 처리해가며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조조를 고평가하려면 이러한 판을 짠 조조의 처세술과 판단력, 위기 관리 능력을 높게 쳐주는 게 맞다. 오히려, 비록 당해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해당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러 세력에 두들겨맞은 것은 유비가 훨씬 더 강한 편이다. 다만, 유비는 기반도 조조보다 약했고 훨씬 늦게 갖춰져서 여러 세력과 맞서기에 불리한 입지였으며 위치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처세와 주변 상황이 맞물려 주위에 적이 깔려버린 것에 가깝다.

* 조조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축소 시도
좀 더 악질적인 부류는 그의 만행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서주 대학살, 관도대전에서 보여준 원소군 포로 8만명 생매장, 순욱, 모개, 최염 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부분 등을 인정하지 않고, 미화시키거나 포장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시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고 있을 당시의 사람들이나 식자들도 분명 조조군의 이런 만행을 인간말종으로 평가하고 있었다.[19] '실리적인 관점'에서 봐도 학살을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아무 이득도 되지 않았다. 도겸 세력의 황폐화, 백성들의 불신, 치안 악화를 유도하기에 학살이 유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군웅은 백성들이 꺼리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을 학살한 군웅은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적으로 조조는 후대 백성들에게까지 미움을 사게 되고, 조조를 피해 남하한 인재와 백성들이 촉나라(촉한)와 오나라의 밑거름 중 하나가 된다.

관도의 포로학살에 대해서도 포로 관리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 식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옹호하는데 이런 위빠들은 이중잣대로 관우가 우금의 군대를 포로로 잡고 식량이 부족해서 오나라의 식량창고를 턴건 '관털' 운운하면서 열심히 까댄다. 포로 학살이 식량 도둑질보다 낫다는 건가?[20] 또한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 대부분이 자기들 아쉬울 땐 시대기준으로 따지자면서 그 시대 기준으로 최악의 천인공노할 죄악인 조조의 '역적질'과 역사상 최악의 범죄 유형인 집단학살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는 것도 특이사항이다. 위빠들은 전형적인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집단이다. 조조는 충신은 커녕 역적 중의 대역적이었다. 역적질의 강도로 오죽하면 동탁이나 왕망과 함께 엮였을까.

조조가 천하통일을 눈앞에 뒀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저항에 부딪혔던 것을 이런 악명때문에 생긴 부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조의 형주 침공 당시 10만 피난민이 유비를 따라간 사건이 조조에 대한 공포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부 위빠들은 유비가 방패로 쓰려고 피난민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가당찮은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당시 소수의 유비군에게는 가능하지도 않고 이익도 없는 행동이다.

'위'빠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조조 개인에 대한 빠질에 가깝다. 조비, 조예만 해도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조예 이후로는 사실상 아웃 오브 안중. 이런 경우 서진과 사마의를 배신자라며, 혹은 조조가 다 해놓은 것에 숟가락만 얹었다며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자가당착? 빠들에게 내로남불은 기본 장착 속성이여서 딱히 곤란하지 않다. 그 정도 객관적인 시점을 견지할 수 있으면 '빠'가 아니고 위빠가 욕을 먹을 일도 없다 물론 사마의를 능력자라고 좋아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일률적인 판단은 불가능하지만 전자의 경우에 비해 이쪽이 소수다.

위나라를 좋아하는 사람중에서는 순욱에 대해서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그럼에도 순욱의 죽음을 가지고 조조를 까는 행동이 적다. 심지어 순욱을 삼국지 최고의 모사라 추앙하고 조조보다도 더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정도. 까더라도 약한 비판정도다.

조조의 변덕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이유로 조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조조가 일부러 팀킬하는 보스가 아니고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유야 있는데 자기에게 거슬리거나 패권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공융, 양수야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21] 모개나 최염은 그야말로 억울하게 죽었다. 일설에는 큰 병을 앓고난 후 궁예와 칼리굴라처럼 거슬리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데, 그 전에도 조조는 사람 여럿 죽인 인물이다.[22] 정확히는 의학자인 화타가 머리를 갈라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이후부터였다.[23] 이 이유로 화타를 위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치료하려 했던 화타가 무슨 죄인가?

조조는 여색을 많이 탐했고, 이로 인해 일을 그르친 적도 있다. 그 중에 압권이 추씨를 불러다가 놀다가 전위조앙, 조안민를 잃고 정씨가 떠나기까지 한 일. 그리고 이 일은 나비효과로 위나라의 후계자 다툼을 불러왔다. 이 특성은 아들인 조비에게 이어진다.[24]
  • 유비 폄하
심한 경우, "조조는 칭제하지 않았으니 사실 한나라의 충신이다.", "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칭제에 급급한 유비가 진짜 역적이다" 는 주장까지 들고 나오면서 명분과 실리 둘 다 챙기려는 움직임까지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충신이란 타이틀은 칭제만 하지 않았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황제를 조조가 쓴 조서에 도장만 찍는 기계로 만들고 황제의 부탁도 무시하며 동귀비와 그 일가를 살해하며, 복황후와 그 일가를 멸족시킨 사람이 역적이 아닐리가. 그냥 후궁을 죽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동귀비는 그 당시 헌제의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였고 조조의 힘이 크지 않았으면 반대파로부터 "황제폐하의 씨를 죽인 역적"이라며 반격받을 소지가 많았다. 심지어 동귀비는 황제인 헌제가 직접 살려주라고 했으나 조조가 그걸 씹고 죽여버렸다.[25] 결정적으로 폐비도 안된 황후를 죽인 막장은 정말 드물다. 그리고 위왕의 자리에 오른 것도 엄밀히 말해서 역적 행각이나 다름없는 게, 한고조 유방은 이미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을 칭하면 천하가 모두 공격해야 한다'고 제도적으로 못박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조 이후로 찬탈 전단계로 왕에 책봉되는 것을 감안하면...[26]

또한 유비의 칭제를 한나라에 대한 역적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나라의 충신'을 자처하면서 조비의 찬탈을 인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비에게 남은 선택은 헌제를 조비의 손아귀에서 탈출시키거나 황족인 자신이 직접 칭제를 통해 적통을 잇는 방법뿐이다. 헌제를 조비에게서 구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했기에 결국 유비에게는 칭제를 하는 방법 외에는 유씨 한나라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27][28] 그 당시 사람들은 관직 등이 낮은 사람(이 경우 한중'왕')을 관직 등이 높은 사람(이 경우 위'황제')보다 아래로 보았다. 즉 유비에게는 아무리 그래도 헌제가 있으니 내가 제위에 오르기는 좀 그렇다며 사실상 조비를 천자로 인정해 한나라가 그냥 완전히 망하게 하는거나 헌제를 모셔와 옹립한다는 성공하면 대박일지는 모르나 성공률이 매우 낮은 방식을 택하는 것보다는[29]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안전하면서도 또 망한 한나라의 대를 자기 대에서 다시 잇는다는 어찌보면 명분과 실리 둘 다 얻는 방식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 외에 이릉대전을 유비의 무능함에 대한 증명이며 국력을 말아먹은 개삽질이라며 유비를 욕하면서도, 조조적벽대전의 참패에 대해선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조조가 이끌고 있던 병력을 감안하면 말아먹은 병력에 있어선 당연히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입은 피해보다 훨씬 더 했을 적벽대전의 참배로 조조는 사실상 중원 평정의 기회를 놓쳤다. 적벽 대전 패배 이후, 융중대는 본격 실현이 되었고, 형주와 강동을 모두 독립된 세력으로 가져가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적벽대전에서 패배했어도 조조의 기둥이 뽑히진 않았다고 애써 쉴드를 치는데, 형주에서 유종의 항복을 받아서 기세등등하고 강대하던 그 조조의 세력이 다시 북쪽으로 쫓겨날 정도였고, 이후 조인은 형주에서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유비/주유 연합군에게 두들겨맞아야 했다. 위빠들은 이릉대전은 기둥이 통째로 뽑힐 정도의 참사였다고 과장하지만 이릉대전 이후에도 제갈량, 조운, 등지, 위연 등의 나라를 유지할만한 인재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제갈량이 이릉대전 이후 불과 4년만에 유선의 후계구도를 안정화 시키고, 이릉대전에서 패배한 병력을 집결하며, 북벌을 시도하는 일을 해낸데는 제갈량 본인의 대단함도 있지만 그전에 유비가 촉 지역을 안정시키고 정치체계를 갖춰놓은 것 또한 크게 작용했다. 위빠들 주장대로 이릉대전의 참패로 촉나라의 기둥이 뽑혔다면 그 후로도 40년 넘게 나라가 유지된 것은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다. 심지어 촉나라는 그 40여년동안 여러번 북벌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위나라는 앞서 보았듯 3국중 가장 탄탄한 기반을 갖고도 조비 시절에는 명목상 자국 아래였던[30] 오왕 손권이 장악한 강남에 집적거렸다가 쓴맛만 봤고 조예 시절에는 오왕 손권이 스스로 제위에 올라 그나며 명목상 자국 영토라 할 수 있던 오나라가 떨어져나가고 제갈량의 북벌을 막는데만 전념해야 했으며 조방 시절에는 낙곡대전에서는 참패를 당했고 조환 시절, 그것도 멸망 직전이 되어서야 촉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로 실적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나마도 서진의 태조가 된 사마소가 촉한 정벌의 공으로 진공과 진왕이 되어 사실상 서진을 세웠기 때문에 서진 스스로도 진나라는 촉한을 정벌하면서 세워진 왕조라는 소리를 했고, 이게 후일의 촉한정통론과도 연결된다. 즉, 실제로 위나라가 촉한을 제대로 멸망시킨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한나라의 정통인 촉한을 사마씨의 서진이 멸망시켰기 때문에 진나라가 세워진거니 조위는 정통이 아니다라는 논리로서 발전한 것이다.
  • 어설픈 정사 드립
또한 위빠들 중 일부는 무분별하게 정사드립을 남발하려는 경향도 있는데 , 이들의 경우 정사에 대해 어설프게 주워듣거나 그냥 그 존재만 알 뿐, 실제 정사 삼국지를 읽은적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순히 연의에 맞춰서 촉한정통론을 따르며 유비, 제갈량을 극찬하기보다는 정사 운운하면서 조조를 찬양하고 유비, 제갈량 등을 까는게 더 있어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확인도 거치지 않은채 "그건 연의에서 촉한 띄워주려고/위를 폄하하려고 창작된 거다"를 입에 달고 다닌다. 특히 이들의 자주 보이는 주장은 "정사에서 유비는 무능하고 음흉한 위선자였다"아무리 유비가 위선자라도 학살을 몇 차례나 반복했던 조조보다 나쁠까?,[31] "반대로 조조는 정정당당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연의가 부풀려서 그렇지 정사에서 제갈량은 그냥 정치 잘하는 문관일 뿐이다." 등이다. 하지만 유비의 위선적이고 무능한 이미지는 정사가 아닌 연의 때문에 생긴 것이며[32] 권모술수에서 조조가 한 수 위라는 점은 정사에서의 평가다. 제갈량의 경우, 연의에서 군사적 능력을 요괴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긴 했지만[33] 그러나 정사에서 제갈량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은 어불성설로 오히려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주석을 붙인 배송지 모두 제갈량의 능력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내렸다. 당장 나무위키만 봐도 촉한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만 편향적일 정도의 표현으로 까내린 위빠들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문열 삼국지 등이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삼국전투기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 취사 선택하고 거기에 자기 창작과 뇌피셜을 끼워넣는 식으로 악질적인 왜곡을 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이런식의 위빠들이 늘어나다보니 이에 대한 안티테제격 촉빠들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나 재상의 활약이 돋보이는게 촉나라의 특징인데 이 재상에 있던 제갈량이 정치만 잘 하는 인간이었다면 제갈량 생전의 그 여러번의 북벌들은 뭐란 말인가? "그건 나라를 짜내서 한 수준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도 촉나라는 몇번이고 북벌을 해도 자국의 역량이 바닥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위나라의 침공인 낙곡대전에서 승리하기까지 했다. 이게 제갈량 사후 10여년 뒤의 일이긴 하나 그 사이에도 촉나라는 꾸준히 북벌을 시도했음을 생각해보면 제갈량은 촉나라의 현실에 어느정도 맞게 북벌을 했고 그 북벌의 규모나 수준이 그정도라는 것을 보면 촉나라의 역량도 그래도 제법 되었고 그 역량을 끌어낸 제갈량의 능력은 부정할 수가 없다.
  • 권력 찬탈 행각에 대한 무리한 쉴드
    조위의 최대 약점인 찬탈 행각에 대하여 어떻게든 쉴드치려고 하는데... 문제는 논리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나라는 이미 썩었으니 망할 때도 됐다'면서 조위의 찬탈을 정당화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조가 어쨌든 헌제를 지켜줬다면서 충신이라고 치켜올리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위의 천하는 조조 스스로의 힘으로 정벌해서 얻은 것인데 왜 한나라에게 돌려줘야 하냐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조위는 정당한 역성혁명을 했으니 조조는 한나라의 충신이다'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로 정리된다.
물론 당시 한나라는 썩을대로 썩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는 한 황실의 부흥을 기치로 내건 유비 세력도 한나라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인정해서 촉과를 시행하는 등 기존의 한나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위가 잘 했다면 여말선초의 고려가 조선으로 교체된 것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34] 문제는 조위에는 권력 찬탈하면 어떻냐 나라만 잘 이끌면 그만이지도 안 통한다.조조-조비만 해도 인격이 문제가 있었고 여러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게 보통 잘못이 아니라 조조의 잘못은 위나라의 천하통일을 가로막은 수준이며 조비의 잘못은 위나라가 허무하게 사마씨에게 무너진 단초를 제공한 수준이다. 그나마 조예는 잘 하나 싶더니 제갈량 사후 긴장이 풀어져 암군화되고 조방은 뭘 해보기도 전에 폐위되고 조모는 뭘 해보려다가 암살당하고 그 다음대인 조환떄는 완전히 나라가 망한다.
이 과정에서 조위가 특별히 잘한 것은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후한 시절의 부정부패를 바로잡는 노력과 결과가 부족했다. 조위가 그나마 성공을 거둔건 후한처럼 외척과 환관이 날뛰지 못하게 했고 종친들이 나대지 못하게 한 건데 이게 수준이 심해서 외척, 환관, 종친이 안 날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공백을 죄다 귀족들이 채워버려 귀족들이 강성해져 왕조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조위의 방패막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한 말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나라가 어지러워졌고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외척과 환관을 억제한건 좋았으나 결과는 나빴다는 것이 흠

그 외에는 둔전제, 구현령 등을 보듯 거의 임시방편이었다.구현령은 후에 천거제와 결합해 구품관인법으로 되지만 구품관인법도 향거리선제처럼 문제가 아주 없는 제도가 아니었고 그 외의 대책들도 임시방편에 더 심한 것은 조조는 생전에 이것들을 제도화할 생각은 앖고 오로지 자신의 재량에 따라 운영했다. 하지만 조조야 능력이 있었으니 자신의 재량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후대의 인물들을 보면 조조보다 나았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조위가 남긴 유산은 별로 없다. 후대에 등장하는 북위의 균전제가 북위에서 갈라진 북주, 그리고 북주와 수를 지나 등장한 당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신라, 일본 등에서도 당나라와 비슷하게 시행된 것과 비교하면 조위 말에는 사실상 폐지되다시피한 둔전제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 대표적인 위빠 미디어들
    • 이문열 평역 삼국지: 위에 나온 사례 외에도 조조에게 인간미를 부여하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악행과 실패를 영웅적인 결단으로 추켜세우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유비는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애쓴다. 이문열이란 인물 자체가 패권주의와 마키아벨리즘으로 점철된 현대 보수주의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는 인물로, 대군사 사마의 방영 때에도 인터뷰에 응하여 사마의를 높이고 제갈량을 낮추어 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조조를 미화하기 위해 학살등을 숨기는 것은 덤이다.
    • 삼국전투기: 조조의 적대자인 동승, 도겸을 단지 조조가 잘나가니까 질투해서 공격하는 찌질이로 묘사한다. 또한 관우의 안량 참살 공적을 장료한테도 나눠주는 식의 창작을 집어넣는 등 전반적으로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다.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초기 시리즈부터 조조의 매력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책정된다. 조조가 당대부터 욕을 먹는 인물임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수준. 후기 시리즈로 갈수록 조조의 능력치와 활용도는 상향되며, 유리한 전용 이벤트도 풍부해진다. 청주병, 호표기를 오버밸런스 병과로 만드는 등 끝없는 버프를 준다.그리고 특히 정치 능력치는 조조를 과대평가한다. 독재자들에게는 낮은 정치력을 주는데,거의 유일한 예외 인물이 조조이다.[35] 다만, 군주 조조가 워낙 뛰어나서인지 S~A급 무장들은 촉에 비하면 약간 밀리는 편이고 조조 외에도 능력치가 이해할수 없게 책정된 인물은 많다. 굳이 위빠라기보다는 조조빠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창천항로: 이 분야의 끝판왕. 곽가 정욱 순욱 순유 가후 등의 휘하군사들의 의견대립이 극에 달할 때 마다 조조의 말 몇마디에 모두가 깨달음과 그 분쟁의 해결책을 얻는듯이 묘사하는 연출이 많다. 다른 작품들처럼 서주대학살을 은폐하거나 미화하지는 않았지만 적벽대전에 폭풍전야에서 조조의 생각이 참으로 난해하다. 게다가 조조는 여포의 일격도 두어번 막아내는등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도 보인다. 그리고 순욱의 죽음또한 조조의 로드메이트였던 순욱과의 관계파탄이였고 명백한 조조의 잘못이지만 창천항로에서는 다르게 해석함으로서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위왕즉위에서도 조조는 받기 싫지만 헌제가 하사함으로서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는것을 추천하지만 만화가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조조의 내용뿐이였던 창천항로는 유비와의 대립과 손권과의 묘한 군신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유비가 주인공이 된듯한분량이 나온다.기껏해야 장판파부터 한중공방전,군신포위망이지만그리고 후반부에는 조조의 신적인 면모도 많이 없어진다. 한중공방전에서 조운의 황충구원에 조운이 단신으로 조조에게 덤벼들어 조조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술을 펼치며 조조의 치를 떨리게 하는 것과 계륵을 생각하며 한중에서 물러나는것, 그 후 즉시 유비의 한중왕 선포에 분해 하는것이 그 예 라고 볼 수 있다. 삼국지기반 만화로서 촉빠든 위까든 볼만한 작품이니 이글을 보는 삼국지 팬은 자신의 빠까를 떠나 한번씩 보길 권해본다.
    • 진삼국무쌍 시리즈: 시리즈 전반적으로 위빠촉까 기질이 다분하고, 특히 8편에서의 조조를 위한 용비어천가스러운 전개로 역사왜곡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5. 기타

일부 지식이 얕은 위빠는 촉장들이 연의에서 모두 과장되었다고 까다가 정사 삼국지에서 하후돈의 군공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 당황하여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이미 각종 삼국지 커뮤니티에서의 하후돈은 그저... 요즘은 전투 외에 다른 측면에서 재평가되어 행보관취급을 받기에 요즘은 이런 일이 없다. 다행인가? 허나 정확히는 연의에서 하후돈을 맹장 이미지로 왜곡한 것이 원흉이다. 또한 정사에서는 하후돈의 군공보다 인품과 학식에 더 후한 평가를 주느라 한중에서 싸운 것과 같은 군사적 활약을 기록하지 않은 점도 있다. 여포에게 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머리도 좋은 것 같지는 않다만. 그냥 성격이 착해요. 그러나 결정적으로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당대의 사서로 인정받고 있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다. 그러므로 정사에 하후돈의 군공이 없는 것을 문제삼을 일이 아니라 하후돈의 군공이 연의에서 과장되게 부풀려진 점을 문제삼아야 할 일이다. 아마 나관중이 촉나라와 라이벌임을 의식할 수 있게 하후돈을 맹장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연의와 정사의 차이에 대해 더 자세한 사항은 이곳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의 삼국지덕후들 중에서 상당히 많이 보이는 편인데, 일본의 삼국지 창작물에서는 주로 위빠 성향 작품이 많이 보인다. 창천항로, 삼국지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 등.[36] 또한 일본인이 쓴 삼국지 관련 서적들을 봐도 대부분 조조나 위나라에 우호적 평가를 내리는 서적이 많다. 그 외 조조를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에 대입해서 묘사하는 해석도 종종 나타나는 편. 보통 일본에서 노부나가는 '새 시대를 연 혁명아, 마왕, 초인' 이미지로 많이 묘사되는데, 조조에 이런 이미지를 대입해서 묘사하는 경우가 꽤 보인다.[37]

소위 정사 기반임을 내세우는 작품인 창천항로조차도 "맹장 하후돈"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의 묘사는 삼국지연의에 안티테제를 자처하는 일이 많은 위빠들조차도 결국 삼국지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코에이삼국지 시리즈 팬들에게는 아무리 위빠라도 위나라로 플레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삼국지의 여러 이벤트들이 위나라에게 너무 유리하게 돌아가는 데다가 뛰어난 능력치의 문, 무관들이 너무 많은터라 난이도가 급격하게 하락해서 차라리 다른 약소국가나 적당한 촉이나 오를 선택하는 것이 그 이유. 결국 어떤 시리즈에서든 190년 시나리오를 제외하면[38] 사실상의 최종보스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상으로 틀린 것은 없고 실제로 인재도 풍부했고 국력도 강했다.

그래서 위나라 플레이어는 초짜 아니면 게임을 날로 먹는 사도세력 이라고...실제 위빠들도 조조세력으로 게임을 진행했다가 너무 쉬워서 촉빠로 전향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물론 촉도 엄백호(...) 등에 비하면 매우 쉬운 편이지만[39] 일부 시리즈를 제외하면 노가다를 얼마나 해야 하느냐에 따라 세력의 난이도가 결정되는지라 그래도 가장 무난한 촉이 선호된다. 역시 조조까야 제맛!

원균옹호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재발굴이니 뭐니 하면서 학살을 외면하고 은폐한다.


[1] 실제로 황석영이 2000년대 중반에 삼국지를 번역할 때 서문에서도 조조와 위나라를 높이는 경향은 일본에서 두드러진다고 언급하며, 이는 현세에서의 패권을 중시하는 풍조가 조장한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2] 그가 쓴 이문열 평역 삼국지로 100만부를 판매해 국내 위빠들을 많이 양성시켰다.[3] 이들의 삼국지 관련 해석이 개판인 건 이들의 지적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단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성향이나 소속된 집단이 내세우는 이념의 프레임으로 삼국지를 읽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무엇보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고대의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의 여지가 크다. 특히 마오쩌둥&중국 공산당 류 해석이 가장 황당한데, 중국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냥 당대에 위세 좀 떨쳤던 능력자에 불과한 조조를 무슨 봉건 잔재를 혁파하는 민중주의자니 구시대를 종언하고 새시대를 연 혁명가니 하는 식으로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을 동원해 그런 개념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고대 중국 사람인 조조를 분칠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이러한 왜곡된 맑시즘의 틀로 조조를 혁명가로 재구성한 중국 공산당식 해석이 중국 공산당의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극우파가 자기 멋대로 만들어낸 조조의 캐릭터성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마오쩌둥의 그림자 아래에 있는 중국 공산당이 조조를 혁명가로 추켜세우듯, 일본 극우파들 역시 조조를 구시대를 타파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찬양한다.[4] 하다못해 명분을 중요시하더라도 실리보다는 덜 중요시하는 정도이다.[5] 이는 21세기 이후, 특히 9.11 테러 이후로 세계질서가 요동치면서 힘이 정의보다 우선한다는 우파적 정서가 강해지는 일로를 보이는 전 세계적인 사회문화적 현상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6] 그러나 조조&조위에 대한 덕질이 보수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지금이야 그 인기가 많이 식었지만 한국에서 한때 조조와 조위의 인기가 상종가를 칠 때(대략 00년대)를 돌이켜 보면 진보 성향의 팬덤도 상당했다. 이는 조조라는 인물이 당대 기준으로 구체제의 모순을 '어느 정도' 청산한 개혁 성향(물론 이는 당연히 과장된 평가고, 무엇보다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근대 서구식 개념을 고대 사람인 조조에게 뒤집어 씌우는 격이니 어폐가 있다)의 군웅이기에, 보는 관점에 따라선 '구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캐치프라이즈를 갖고 있는 진보 이데올로기에 친화력 있는 코드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도덕이나 인권 같은 요소는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가치이지 사회체제의 변동을 중요시 하는 (구좌파 성향의 전통) 진보파에게 있어서는 부차적인 요소다. 당장 명목상 진보파인 마오쩌둥&중국 공산당이 조조를 새시대를 개창한 혁명가니 반봉건 민중주의자니 하는 식으로 추켜세워주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다. 이렇게 조조가 부각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진보파의 재조명과 선호를 받았던 역사적 인물들로 역성혁명론을 주창했던 맹자나 법가의 대부 한비자, 조선의 정도전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진보파가 생각하는 근대 의회 민주주의, 민중주의, 개혁, 혁명, 자유, 평등 같은 진보적인 요소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7] 이렇게 일부 진보파가 조조를 진보주의자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유비촉한 세력 같은 경우는 구왕조인 후한을 계승한다는 기치를 들었다는 이유로 구체제를 옹호하는 수구 꼴통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물론 서구&맑시즘식 발전사관의 하위 개념인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을 통해 고대 중국의 인물들을 논하는 건 애초에 코미디에 가깝기에 이런 평가는 부당함에 틀림없다. 그래도 굳이 사회체제의 발전을 추동하는 동인으로 생산력을 강조하는 맑시즘식 발전사관에 의거해 조조와 조위를 평가하자면 조조는 서주대학살 등 수없이 인권을 유린하는 악행을 저질러 당대 생산력(고대 농경 사회에선 인구가 곧 생산력이다. 따라서 당대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던 조조는 도덕적 평가를 떠나서 생산력을 바닥으로 추락시켜 민중을 도탄에 빠트린 원흉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당대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던 인물은 동탁, 이각, 곽사, 공손찬 등등이 있지만 주 단위로 학살을 저질렀던 인물은 조조가 유일하다.)을 급전직하시켰고, 둔전제 등 임시방편으로 그걸 어느 정도 상쇄시키긴 했지만 당연히 그 업보를 만회할 정도는 아니며, 그래서 그가 개창한 새왕조인 조위는 전 왕조인 후한보다 생산력이 훨씬 아래였고 중앙의 통치력 또한 한참 못 미쳤기에, 조조는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체제의 낡은 질서를 혁파하고 더 나은 생산력을 보여주는 새로운 체제로 사회를 견인한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구체제보다 더 낮은 생산력을 가진 체제로 사회를 퇴보시킨 반동주의자에 가깝다.[8] 위나라는 건국이래 끊임없이 촉나라의 침공에 시달렸고 심지어 제갈량 사후에는 촉나라를 만만히 보고 낙곡대전을 일으켰다가 대차게 패배하기도 했다. 또한 오나라와는 합비 공방전을 여러번 벌였는데 물론 위나라는 매번 이겼지만 그렇다고 위나라에서 오나라를 정복하려고 일으킨 전쟁에서까지 승리하지는 못했다. 결국 삼국 모두가 서로 방어전에서만 승리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촉과 오는 지방정권이네 뭐네는 어울리지 않는 말 진짜 지방정권이면 작정하고 토벌하려고 하면 토벌되어야 한다. 아무리 지방정권이 날고 기어도 중앙에서 작정하고 토벌하려고 들면 토벌되어야(혹은 토벌될 수준이어야) 지방정권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결국 위나라는 촉나라를 정복했지만 멸망하기 고작 2년 전이라 별 의미는 없다. 그때쯤이면 촉나라는 간신 황호 때문에 아니올시다였고 위나라도 거의 사마씨에게 넘어간 상황이었기 때문[9] 면적상으로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넓고 인구상으로는 남한이 북한보다 많다.[10] 고작 세 개의 사례를 갖고 내미냐 싶겠지만 역대 중국의 통일세력이던 진, 한, 서진, 수, 당, 송, 명, 청, 국민당, 공산당 등을 보면 10개 중 3개인 만큼 아주 적다고 볼 수만도 없다. 심지어 청나라도 실은 만주에서 성장한 세력이라 중국 안이긴 하나 그렇다고 하북에 들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1/3은 강남에서 시작한 셈 게다가 천하통일은 실패했지만 천하를 뒤엎은 항우의 경우 초나라 출신이다. 강남출신이 천하를 뒤엎는건 아주 불가능한건 아니었던 셈 단 항우, 한나라, 명나라, 국민당의 경우 하북을 포함해 천하가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하북이 온전히 통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육조시대라는 강남이 단일왕조시대였음에도(오나라 제외) 수백년에 걸쳐 결국 북조가 남조를 멸한 것과는 차이점[11] 특히 위나라의 계승 과정에서의 문제점 중 하나는 명분을 무시해도 너무 지나치게 무시했다. 황제가 총애하는 동귀비, 황제의 황후 복황후, 황제의 자식들 등등을 다 죽였는데 이런데도 새 왕조의 왕가의 권위가 높기를 바란다면 터무니없는 욕심이다. 그리고 실제로 조위에서는 아얘 황제인 조모가 백주대낮에 살해됨으로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12] 이전에는 3대라고 되어있지만 위나라의 황제는 조비, 조예, 조방, 조모, 조환 5명이다. 그런데 이들 중 조방, 조모, 조환은 허수아비, 조비는 재위가 너무 짧았음을 생각해보면 조예 뺴고는 제대로 제위한 황제가 없다고 해야할듯[13] 한때는 한국의 삼국지 팬덤 사이에서 이문열 식 해석인 '미천한 환관의 손자라는 페널티를 극복한 입지전적 인물인 조조'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조등의 손자라는 배경의 이처럼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어드벤티지였다. 조조가 유언이나 유요 같은 황족계 군벌이나 당대 최고의 명문가의 적자인 원술 같은 인물들보다는 더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는 평가는 어느 정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원소, 유비, 손권보다 불리한 입지였다고 말하는 건 어페가 있다.[14] 그나마 둔전제도 종전에 존재하던 것을 좀 개량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따지자면 진시황의 군현제도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라 말할 수가 있으나 진시황의 군현제는 종전의 진나라에서만 적용되던 것을 전국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고 군현제 뺴고도 천하통일, 도량형 통일 등등 다른 것들도 많다.[15] 실제로 둔전제는 조조 사후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둔전제의 개인 소유를 금지했음에도 호족들이 소유하기도 하고 둔전에서의 세율이 원최 빡세기도 했다. 이러니 버틸 수가 있나[16] 기본적으로 둔전제와 균전제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균전제의 근본은 차라리 주나라의 정전제에서 찾는게 더 나을 지경이다.[17] 재밌게도 실용주의적, 실력주의적 용인술을 활용한 다른 군주가 유비다. 유비는 아예 허정을 두고 실력은 없는데 허명만 높다며 기용하지 않으려 했으며, 자신을 혐오하던 유파도 그 실력을 꿰뚫어보고 끝까지 쫓아가 기용했다. 물론 조조도 인재등용에 있어서 실력주의, 실용주의를 말로만 한건 아니다. 적대세력이라 해도 자신에게 항복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기용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 측근들은 이래저래 연줄이 많이 있었고 조씨 하후씨 등이 많았으며 특히 하후돈같이 인망은 있는데 실력이 영 허접인 이들도 있었다. 뭐 그렇게 따지자만 유비 세력에서도 미방, 마속 같은 실책도 있었지만 적어도 미방과 마속은 완전히 무능한 것만은 아니었다.[18] 무엇보다 이후 청렴이 결여된 문벌귀족들은 밑도 끝도 없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19] 다른건 다 제쳐두더라도 서주대학살만은 정사 삼국지를 지은 진수도 실드치지 않았다. 서진의 관리인 그조차 이를 실드치지 못했을 정도면 서주대학살이 얼마나 개망나니 짓인지 짐작케 한다.('서진은 위나라를 뒤엎었으니 명분에서 좋은 거 아니야?' 싶겠지만 서진의 시조인 사마의는 적어도 죽을 때까지 조위를 섬기던 인물이었고 조조에게 등용되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즉 조조를 까면 깔수록 그 밑에서 일했던 사마의도 덩달아 까이는 거다.)[20] 물론 조조는 적군인 원소군을 죽였고 관우는 동맹관계인 오나라를 털었다는 데서는 좀 맥락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규모 자체는 차라리 도둑질이 학살보다 훨씬 낫다.[21] 그나마도 공융의 경우에는 이 일을 두고 후대에서 조조를 깔 정도로 평이 좋지가 않다.[22] 당장에 여백사를 죽인 일도 아~주 젊은 시절의 일이다.[23] 다만 머리 갈라 수술은 연의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고 실제로는 조조의 병이 불치병이라서, 혹은 조조가 그의 사상과 맞지 않아 치료를 거부하다 투옥되어 죽은 것으로 나온다[24] 이 추씨 일 때문에 정씨가 떠나간건 조조 그 자신조차도 두고두고 후회해 어떻게든 정씨를 다시 불러올려다가 퇴짜맞기도 했고너 같음 오겠냐 끝내 포기했음에도 결국 죽을때가 다가오자 서주대학살이나 포로 생매장 등에 대해서는 반성하나 없던 그 조조가 이것만은 "사람에게 영혼이란게 있다면 내 아들이 '제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 해야 할 지..." 라고 말할 정도로 한으로 맺혔다.[25] 이는 엄밀히 말하면 황명을 어기고 멋대로 죽인 것으로 보통 상황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역적인증이다. 헌제에게 조조를 숙청할만한 힘이 있었다면 조조는 그런 짓을 하지 않거나 해도 그 대가로 삼족이 멸해졌을 것이다.[26] 보통 선양으로 건국된 통일왕조들의 국명들은 왕으로 책봉되었을 때 당시의 명칭을 이어서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서진의 진은 사마소가 진왕으로 책봉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27] 헌제를 복위시키지도 않고 유비가 한중왕에 머무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조위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위나라 황제를 섬기겠다'는 의미니까)[28] 헌제를 명목상 황제로 칭하고 위나라를 정벌한 후 헌제를 실질적인 황제로 돌려놓는 것도 방법을지 모르나 헌제의 신변이 확보된 것도 아닐뿐더러 헌제는 위나라에서 내린 산양공 자리를 그대로 받았기에 별 실효없는 짓이다.[29] 헌제를 모셔온 다음 선양을 무효화하면 조비는 선양받아 즉위한 군주가 아닌 단지 찬탈, 심지어는 황제를 자칭하는 수준밖에 더 안된다. 하지만 헌제에게 그런걸 할 의사가 있고없고를 떠나 헌제를 모셔온다는 것부터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30] 삼국지연의의 '좌자' 라는 인물이 나온 파트의 시작에 손권이 조조에게 공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나온다.[31] 실제로 조조와는 달리 유비는 정사든 연의든 학살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32] "유비의 후덕함을 나타내려 했으나 오히려 위선자처럼 되어버렸다." 고 루쉰은 평가한다.[33] 역시 노신의 평가. 하지만 노신은 알려졌다시피 정치사상에 있어 유가를 몹시 싫어했던 사람이라서, 이것을 마냥 정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34] 말하자면 정통성 없으면 어떠냐 나라만 살리면 그만이지 수준의 평가를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실제로 여말선초 시기의 조선도 건국과정에서 문제가 없던건 아니었지만 워낙에 고려가 푹 썩었고 조선 전반기에는 고려 후반기보다는 제대로 굴러간 편이기에 조선의 건국과정과 건국 후 일들에 대한 비판은 있어도 조선 건국 자체에 대한 비판은 전무하다고 봐도 좋다.[35] 보통 독재자라면 정치가 낮게나오고 많이 나와봤자 70대이다. 그런데 조조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정치가 90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만약 다른 위인들과 조건을 똑같게 했다면 약 70대였을것이고 조조가 정책들을 썼다 하더라도 독재자는 독재자인걸 감안하면 약 80대였을것이다.[36] 일본에서 비교적 초기에 만들어진 삼국지 관련 미디어믹스와 오늘날에 나오는 미디어믹스를 비교하면 확실하게 손바닥을 뒤집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제의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창천항로를 비교해보자.[37] 물론 '개혁자 조조' 이미지는 한국의 고우영 삼국지에서도 묘사된 바 있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일본의 위빠 창작물처럼 조조를 무슨 완벽한 '초인'이나 '새 시대를 연 초월자' 수준으로 묘사하지 않는다.[38] 아직 본격적으로 인재가 모인 것도 아니고 옆동네가 넘사벽으로 강한 점도 있다. 반동탁 연합은 무시하자 자동으로 진행하면 조조가 옆동네한테 먹히는 경우가 다반사. 다만 유저가 잡을 경우 초반만 잘 버텨내면 마찬가지로 답이 없다.[39] 특히 영웅집결 같은 시나리오는 위촉오 셋이 가장 깡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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