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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어: українсько-чилійський
스페인어: ucraniano-chileno
1. 개요
우크라이나계 칠레인은 칠레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에 기원을 둔 칠레인이다.2. 이민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칠레는 자국을 백인 국가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유럽인 이민을 적극 권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칠레는 국가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고, 유럽에서 칠레로 가는 배보다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배가 더 많았다. 칠레 정부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로 이주한 유럽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칠레로 재이민하도록 장려하였고, 이 가운데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칠레로 흘러드는 것도 자연스러웠다.한 편 중국 하얼빈시와 상하이시에 체류하던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난민 상당수는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상하이를 떠나 태평양 각지로 이동하였는데, 이들 중 일부는 칠레에 도착하기도 했다.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의 최종적인 이주 목적지는 캐나다나 호주, 미국이었으나 칠레에서 나름 좋은 직장을 찾거나 아니면 이동할 돈이 바닥나거나 등등 이유로 칠레에 눌러사는 경우도 있었다.
칠레 출신의 유명 영화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은 백인이라 여타 칠레인들과 어울리기 거리감이 있었고, 한 편 칠레의 부유한 미국인과 영국인, 스위스인[1]들은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태생이었던 그를 따돌렸다고 한다. 20대 중반의 조도로프스키는 프랑스로 귀화하는데,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칠레 사회에서 다소 어정쩡한 위치였던 그의 유년 시절 관련 기억이 없지 않아 작용했다 하겠다.
칠레 내 우크라이나인 칠레 정착을 결정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 역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시대에 기회가 닿는대로 다른 국가로 재이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