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00:44:38

에릭 요키시/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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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시카고 컵스4. 키움 히어로즈 입단 이전5. 키움 히어로즈

1. 개요

키움 히어로즈 소속 좌완 투수 에릭 요키시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미국 북중부 지역은 4월에도 가끔씩 영하로 떨어져 눈이 오는 등 춥기도 추운 데다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사시사철 화창한 다른 지역보다 나쁘기 때문에[1] 북중부 출신 선수들은 고교야구 시절에 대개 저평가를 받곤 했으며 이 지역 출신 선수들은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명 순위가 낮기 때문에 계약을 하지 않고 대학을 거쳐 데뷔하는 경우가 많다. 요키시도 마찬가지여서 2007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39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았으나 드래프트 순위에서 보일 정도로 낮은 평가를 받았기에[2] 지명을 거부하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1851년에 설립되어 1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U.S. 뉴스 & 월드 리포트 선정 Top 15 안에 매년 들어가는 미국 중부의 명문대[3]지만, 야구 팀은 빅리거 야구선수들을 그다지 많이 배출하지는 못했고 대학야구 성적도 저조한 만년 하위권이였고, 요키시는 그만큼 기회를 더 받을 수 있었기에, 팀의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1학년 때에 비해 2, 3학년 때 보여준 성적은 저조했는데, 등 부상이 있었다고 한다. 3학년 때의 성적은 92이닝 ERA 4.39, KK/9가 6.04, BB/9는 3.61이었다.

이렇게 전미대학야구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던 4학년 때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은 고향팀 시카고 컵스였다.

3. 시카고 컵스

어찌 되었든, 좋은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고향팀 시카고 컵스가 2010년 드래프트에서 11라운드에 지명을 하며, $125,000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

2010년 A-에서 ERA 7점대로 부진했지만 뭔가 보인 게 있었는지 2011년은 A에서 시작했고, 2012년 A+, 2013년부터는 AA에 뛰면서, 160⅔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한 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게 되자, 2014년에는 처음으로 시범경기에 출장하게 되었다. 후에 시즌을 AAA에서 시작했지만 PCL에서 두번째로 많은 삼진과 네번째로 낮은 WHIP가 주효한 듯.

콜업 되어 9월 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 홈 경기에 등판해 첫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 날의 경기 컵스의 선발투수는 좌완인 트래비스 우드였다. 그런데 이 날 우드는 투수인 게릿 콜에게 홈런을 맞는 등 1⅔이닝 9피안타 3피홈런 7실점으로 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이닝을 잡기 위해 요키시가 나오게 된 것이다.[4]

선발투수인 우드가 털리고 나서 2회 2사 1,2루를 만들고 내려가자 롱 릴리프 역할을 소화하러 나온 셈인데, 이 경기에서 요키시는 4⅓이닝 1실점 1자책 4K를 기록하고 6회까지 마치며 롱맨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팀은 10:4로 대패했고, 9월 14일에 연패를 끊기 전까지 기나긴 연패를 했다. 참고로 9월 14일에 선발승을 거둔 선수가 다름 아닌 펠릭스 듀브론트.

9월 1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 원정 경기에 등판하여, 2⅔이닝 2K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날 또한 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제이콥 터너닐 워커에게 홈런을 맞는 등 7실점을 하면서 강판 당했던 경기에 롱맨으로 등판한 것. 아무튼 7회말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고 내려갔다. 하지만 팀은 에딘슨 볼케즈를 상대로 3점 내는 데에 그쳐서 3:7로 패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9월 20일 홈 경기에서 롱맨으로 등판하여 3⅓이닝 3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참고로 이 날 시카고 컵스의 선발투수인 에드윈 잭슨⅔이닝 5실점으로 탈탈 털리며 나가 떨어졌고, 이 날 클레이튼 커쇼는 시즌 21승을 달성했다. 팀은 5:14로 대패.

이러한 점을 인정 받아, 9월 27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 경기에 데뷔 첫 선발투수로 등판했지만, 진 세구라에게 솔로홈런을 맞는 등 4이닝 2실점 4볼넷 1자책을 하고 내려갔다. 다만 밀워키 선발인 지미 넬슨이 4⅓이닝 5실점을 하며 일찍이 털린 지라 패전은 면했으며, 팀도 6:4로 승리했다. 경기 내용[5][6] 보면 알겠지만, 스트라이크보다 볼이 더 많다. 여기다가 유격수 하비에르 바에즈와 3루수 루이스 발부에나의 실책까지 겹쳤다. 그래도 1루 주자 리키 웍스를 견제사로 잡아내긴 했다. 다만 경기 내용은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두 번이나 내보내고 이후 합쳐 4개의 볼넷을 기록하는 등 메이저리그 선발로서는 썩 좋지 못했다. 이 경기 이후, 한 달 뒤에 AAA로 내려갔다.[7]

사실 2014년의 컵스는 암울했다. 같은 내셔널 리그 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뒤에서 승률로 공동 2위를 하고 내셔널 리그 중부지구에서는 단독 꼴찌를 하는 등 시카고 컵스의 선발진이 꽤 부진했기 때문에 기회를 받을 수가 있었으나, 요키시는 낮은 구속도 낮은 구속이지만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매번 볼질을 해대며 고작 4이닝 밖에 소화를 하지 못 했던 것이 약점이었던 듯.

2015년 시범경기에서는 부진하면서 AAA에서 시작했는데, 복부 통증으로 인해 두 달 동안 뛰지 못 했고, 루키 리그에서 재활 등판을 하고 나서 후반기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결국 이로 인해 콜업되진 못 했고, 2016년 시범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 했다. 이후에 AAA에서도 4⅓이닝 8자책을 하자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는지 컵스는 결국 요키시를 4월 9일에 지명할당하고 말았다.

4. 키움 히어로즈 입단 이전

컵스가 지명할당하자 마이애미 말린스가 클레임을 걸었고 4월 16일에 이적에 성공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 했다. 결국 요키시는 7월 18일부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거기서도 AAA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갔지만 역시나 콜업되지는 못 했다. 2016 시즌이 끝나고 요키시는 마이너리그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었다.

2017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느린 구속과 압도적이지는 못 한 구위 때문에 메이저리그 등판 기회는 받지 못 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또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었다. 2018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선발투수로 뛰며 8승 8패 4.06을 기록했다.

어쩐지 밴헤켄과 비슷한 면이 있다. 투구폼은 좋으나, 느린 구속과 압도적이지는 못한 구위 등이 발목을 잡은 것이 대표적.[8]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4경기(선발 등판 1경기 포함) 14.1이닝 18피안타 3피홈런 4볼넷 10K 3자책 ERA 1.88
마이너리그 통산 기록은 222경기(선발 등판 167경기 포함) 1081⅓이닝 64승 61패 1084피안타 92피홈런 336볼넷 851K 517자책 ERA 3.71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록

5. 키움 히어로즈

한인식당에서 한식을 먹고 있는 요키시. 계약을 식당에서 하는 히어로즈답게 영상도 거기서 찍었다.[9]

2018년 11월, 넥센 히어로즈와 총액 50만 달러[10]에 계약을 맺고 한국에서 뛰게 되었다. 아무래도 타고투저 리그인 PCL에서 뛴 게 강점으로 보인 듯. 게다가 그의 싱커볼과 체인지업이 히어로즈의 투수코치인 브랜든 나이트를 거쳐서 더 좋게 발전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에 히어로즈가 빠르게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몇몇 구단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나 메이저리그에서 준수한 롱맨과 선발을 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린 구속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회를 못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밴헤켄과 라이언 피어밴드라는 좌완 외국인 원투펀치가 있었던 2015년을 빼면 주로 우완 투수를 영입하곤 했으나 결국엔 좌완 투수 문제가 발목을 잡아 시즌 내내 괴롭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좌완을 영입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었다는 판단 하에 영입을 결정한 듯 싶다.

좌완 외국인 투수가 워낙에 없기도 하고 요키시는 일반적으로 KBO 리그를 선택하는 AAA~메이저에서 불펜과 롱맨을 오가면서 출장이 불규칙한 투수들과 달리 지난 3년동안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하게 선발 투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이닝 이팅에 대한 기대치가 있고 어차피 돈 싸움으로는 그 이상 좋은 투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11] 요키시를 50만 달러에 영입하면서 꽤 빠르게 외국인 투수 영입 작업을 일찍이 끝냈다.

으레 그러하듯이 요키시가 한국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요키시 본인의 가족 생활 때문. 나이가 많은 선수도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이어갈수는 없으니 많아야 10만 달러 내외를 주는 AAA 보다 돈을 더 주는 KBO 리그에 오는 것이 요키시 본인 입장에서는 더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5.1.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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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릭 요키시(2019).jpg
2019년 6월 9일(일) 잠실 두산전 투수 앞 땅볼을 잡아 1루로 토스하는 모습.
(9이닝 3피안타 6K 무실점 [[KBO 리그|KBO]] 개인 첫 [[완봉승|완봉승]] 기록)

요키시의 데뷔 시즌. 이 해 sWAR은 4.21으로 전체 투수 가운데 WAR 7위, 외인 한정 시 5위의 기록이다. 저가 연봉으로 데려온 투수치고는 엄청난 혜자를 일으키며 팀의 두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5.2.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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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최고급의 외국인 투수 반열에 오르며 1선발로서 팀의 상위권 경쟁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5.3.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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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에서의 3년차 시즌을 맞이했다. 올해도 팀의 1선발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시즌 16승으로 삼성의 데이비드 뷰캐넌과 다승 공동 1등으로 다승왕에 올랐다.

5.4.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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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에서 맞는 4년차 시즌이다. 이제는 제 2의 밴헤켄을 넘어 제 1의 요키시를 향해 가는 중이다. 하지만 작년 다승왕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승운이 따르지 않은 경기가 많았다. 또한 한국시리즈에서도 호투하였지만 실책과 불펜진의 방화로 PS의 첫 승에도 실패했고, 팀도 아쉽게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쳤다.

5.5.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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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에서의 5년차 시즌. 밴 헤켄, 브리검도 달성하지 못한 5년 연속 계약을 이루어[12] 장수 용병 반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허벅지 파열로 인한 장기 부상 후 2023년 6월 16일에 웨이버 공시되며 시즌을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1] 고지대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추우면 근육 이완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마찬가지로 거기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성적이 좋을 리 없다. 프로구단 중에서는 콜로라도 로키스가 그 예.[2] 이 정도 라운드는 한국으로 치면 신고선수 정도로 보면 된다. 쉽게 말해 어정쩡한 라운드인 셈. 대개 하위라운드에서 지명 받은 선수들 대부분은 기대치가 낮다. 이는 곧 유망주랭킹도 낮다는 걸 의미하고, 방출될 위험도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 메이저리그에 서보지도 못 하고, 다른 리그로 눈을 돌린다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은퇴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고교선수로서 미국에 진출해 대박을 친 투수는 박찬호만 유명하지, 3년 동안 하위 싱글 A에 그친 윤정현이라던가, 김선기처럼 5년 버텼지만 AA에서 그쳤다거나, 이대은처럼 8년 동안 AAA에서 그친 선수들도 많다. 물론 한국에도 10라운더였던 오재원, 연습생 신분의 한용덕이나, 신고선수였던 김응용, 손시헌, 서건창처럼 신화를 쓴 선수도 있긴 했지만, 다른 신고선수들이나 하위라운더들은 마찬가지로 잊혀졌다. 물론 미국에도 언드래프티가 있으니 진짜 신고선수는 그쪽이지만.[3] 평균 합격률이 8.4% 밖에 안 된다. 데이비드 슈위머, 퍼렐 윌리엄스가 이 학교 졸업생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는 조 지라디가 있다.[4] 어느 나라 리그나 그렇지만 유망주 랭킹이 낮은 신인들은 패전처리부터 시작해 기회를 받는다. 한 때 미국 국대로도 활약한 브랜든 나이트도 연장경기가 계속될 때 등판했었다.[5] 에릭 조키슈라고 써있는데, 요키시가 맞다. 왜냐면 이 때는 트레버 로젠탈을 로즌솔 따위로 쓰던 때였다.[6] 요키시 뒤에 올라온 선수가 댄 스트레일리다![7] 원래 요키시처럼 신인투수들은 연장전에나 나오는데, 이후 컵스는 연장전 경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 참고로 스트레일리는 8월 16일 이후, 약 41일 만에 콜업되었으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음날 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시즌 후 덱스터 파울러를 상대로 루이스 발부에나와 함께 트레이드되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팀을 옮겼다.[8] 우연히도 2022년 현재, 요키시는 밴 헤켄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9] 참고로 한식을 파는 한인식당이 요키시 고향인 일리노이 주에는 유독 없다.[10] 닉 애디튼과 똑같은 금액이다.[11] 펠릭스 듀브론트도 그랬고, 알렉시 오간도도 그랬고, 에릭 서캠프도 그랬고, 루크 스캇도 그랬듯이 거물급을 집어와봤자 여기서 잘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외인은 결국 적응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듯.[12] 이후 밴 헤켄과 브리검은 모두 시즌 도중 재영입되어 각각 6년, 5년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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