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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1. 개요
견고하고 경제적인 승용차 - Fiat 124
- 대한민국 시장 지면광고. #
- 대한민국 시장 지면광고. #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 피아트에서 제작한 4인승 후륜구동 소형 패밀리 세단이다.
2. 상세 및 역사
오스카 몬타본의 124 프로토타입. 심카 1300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사용한것이 특징이다.
이 차의 깔끔한 외관 디자인은 이 프로젝트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오스카 몬타본(Oscar Montabone)이 담당했고, 엔진은 페라리 출신의 엔지니어 아우렐리오 람프레디(Aurelio Lampredi)가 설계한 "피아트 124 시리즈 혹은 피아트 OHV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초반에는 1197cc 59마력 엔진[1]이 얹혔다. 또한 기술적인 면을 더 설명하자면 피아트 1300/1500에서 사용하던 싱크로메시 구성의 수동 4단변속기가 적용되었으며, 넓은 실내와 진보적인 구성의 코일 뒷바퀴 서스펜션, 경량 차체 구조, 모든 바퀴에 적용되는 디스크 브레이크 등이 엿보였다.
1966년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홍보를 위해 항공기로 차량을 낙하시키는 스턴트#[2]를 보이기도 했는데 124가 1967년 "유럽 올해의 차(European Car of the Year)"로 시상되는 등, 공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피아트는 승승장구했고, 파밀리아레(Familiare)[3]왜건과 스포츠 스파이더, 스포츠 쿠페, 스페셜(SPECIAL)을 비롯한 여러 파생형들도 만들었다. 이후에는 1968년에 추가된 기존 엔진의 확장판인 1438cc OHV 69마력 엔진[4]은 물론, 124 스페셜은 DOHC가 장착된 "피아트 트윈 캠 엔진"이라고, 당시 가장 현대적인 엔진으로 찬사를 받던 람프레디 설계의 엔진이 1968년에 데뷔한 1438cc 79마력 버전을 시작으로 1973년에는 1592cc 94마력 엔진이 추가되었다. 피아트 차량의 전문 튜닝업체인 아바스(Abarth)가 1972~1973년 사이에 만든 랠리 버전도 1756cc 트윈캠 126마력 엔진을 사용했다.
사진은 1970~1972년형으로 추정되는 피아트 124 세단
1970년 말에는 설계 위주의 변경이 이루어져 브레이크, 서스펜션, 카뷰레터 등이 개선되었고 1.2리터 버전은 기존의 다이나모 대신 알터네이터를 장착했다. 외양상으로는 뒷부분을 새로 설계해 이전보다 큰 후미등을 장착했다. 1.4리터 버전은 사각형 헤드램프와 다른 디자인의 범퍼가 장착되었다. 단종 직전에 이루어진 마지막 디자인 변경은 1.2리터 버전에 검은색 플라스틱 그릴과 스페셜 버전의 문짝, 휠을 장착했고 개선된 인테리어와 1.2리터 엔진에 적용된 새 설계의 슬라이드 밸브 기어 샤프트가 장착되어 출력이 5마력 더 상승했다.
유럽에서는 1974년에 피아트 131이 후속으로 나오면서 단종되었지만, 여러 국가에서 면허 생산된 버전이 이후에도 계속 생산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이 차종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첸토벤티콰트로(백이십사)라고 불러야 한다. 우노두에콰트로(일이사)라 하면 못 알아듣는다.
3. 동사의 파생형들
3.1. 파밀리아레
스테이션 왜건 버전으로, 1967년에 데뷔한 이 라인업도 인기가 좋았다. 라다 리바 스테이션 왜건 시리즈의 모태이다.
3.2. 스포츠 스파이더, 스포츠 쿠페
3.2.1. 1세대 스파이더(1966~1985)
1세대 모델인 피아트 124 스포트 스파이더(Sport Spider)는 동시대의 뒷바퀴굴림 패밀리카인 피아트 124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피닌파리나의 톰 차르다(Tom Tjaarda)[5]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생산과 판매 역시 피닌파리나 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엔진은 당시 가장 현대적인 엔진으로 찬사를 받던, 페라리 출신의 엔지니어 아우렐리오 람프레디(Aurelio Lampredi)가 설계한 "피아트 트윈 캠 엔진"이 적용되었으며, 말 그대로 DOHC가 장착된 것은 물론 피아트 124 세단의 것과 같은 구조의 횡류식 실린더-헤드(crossflow cylinder head)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장착했다.[6] 서스펜션은 앞바퀴에는 코일 스프링과 비대칭 크기의 위시본이 적용되었고, 뒷바퀴에는 코일 스프링과 파나르 로드 방식의 가로방향 링크(transverse link), 제동과 가속에 대한 응답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연장한 버팀대 (radius rod) 두 쌍이 적용되었다.
처음 출시되었던 1966년에는 1438cc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1970년에는 배기량을 1608cc로 확장했다가 1973년에 다시 1592cc로 배기량을 줄였다. 1974년에는 배기량을 또다시 확장해 1756cc로 늘렸으며, 1979년에는 무려 1995cc까지 배기량을 꾸준히 확장했다. 처음에는 웨버(Weber)제 카뷰레터가 장착되었는데 1980년부터는 보쉬에서 제공되는 연료분사 시스템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볼루멕스(Volumex)"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슈퍼차저 장착 버전이 생산 말기에 유럽시장 전용으로 추가되기도 했는데 이는 일반 연료분사 버전에 비해 35% 더 가격이 비싸게 책정되었다. 1972년에는 128마력 엔진을 얹는 등 랠리카 버전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든 스파이더의 스포츠 버전이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3년간 1,000대에 못 미치는 스포츠 버전이 개인 고객에게 판매되었으며, 피닌파리나 창립 50주년 판정판과 함께 자동차 수집가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1979년식 피아트 124 스파이더 2000. 미국 수출시장을 고려해 대형 범퍼를 장착하고, 3cm 정도 차고를 올려 판매되었다.[7]
한편, 1968년부터는 피아트 124 스파이더와 쿠페의 미국 수출이 시작되었고, 1969년에 생산된 북미 사양의 스파이더는 4륜 디스크브레이크와 DOHC, 스티어링 칼럼에 설치된 헤드램프 조절 레버, 래디얼 플라이 타이어와 5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했다. 또한 스파이더의 스포츠 버전이 "124 CSA(C-Spider-Abarth)"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도 했고, 1979년부터 1985년까지는 GM에서 받아온 3단 자동변속기가 북미 및 일본 사양에서 선택사양이 되었다. 1979년에 엔진 배기량이 약 2리터로 확장되자, 미국 사양의 명칭이 "피아트 2000 스파이더"로 변경되었다. 980년식 모델은 캘리포니아 주의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에 대비하고자 촉매 컨버터와 보쉬 L-제트로닉(Bosch L-Jetronic) 연료분사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1981년식 모델은 102마력 엔진이 기본 사양으로 변경되었다. 1981년과 1982년에는 "레전드 인더스트리즈(Legend Industries)"와 손을 잡고 미국시장 한정의 터보 버전 700대를 생산했다.
피아트에서는 1982년부터 124 스파이더와 그 후속인 피아트 X1/9의 생산을 그만두고 이를 디자인해주었던 피닌파리나에 생산 및 판매를 맡겼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이 두 차량의 판매를 말콤 브리크린(Malcolm Bricklin)이 이끌던 수입업체인 "인터내셔널 오토모빌즈 임포터즈(International Automobile Importers, Inc)"에 전적으로 맡겼다. 참고로 피아트가 외주를 주어 디자인한 차량들은 피닌파리나만이 아니라 베르토네가 맡았던 피아트 리트모 카브리오(Ritmo Cabrio) 역시 외주 디자인 업체에 의해 판매 및 홍보가 이후어졌다. 1981년에는 피닌파리나 창립 50주년을 맞아 "피아트 스파이더 2000 피닌파리나 50주년 골든 애니버서리 에디션(Golden Anniversary Edition)"이 만들어졌고, 1985년까지 약 20만대에 가까운 스파이더가 생산되었다.
여담으로 전체 생산량 중 약 75%가 북미 시장에 판매되었으며, 이 차의 소프트탑은 1분 이내로 여닫을 수 있을 정도로 구조가 간단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3.2.1.1. 2세대 스파이더 (2016~2020)
자세한 내용은 피아트 124 스파이더/2세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3.2.2. 1세대 쿠페(1967~1975)
사진은 1969년식 피아트 124 스포츠 쿠페. 총 11만 3869대가 생산된 AC 시리즈 중 하나이다.
피아트 124 쿠페는 마리오 보아노(Mario Boano)[8]가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스파이더와 마찬가지로 피아트 124와 여러 부품들을 공유하되 휠베이스를 14cm 줄였다. 1967년에는 첫 번째 시리즈인 AC가 1438cc 89마력 트윈캠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하고 출시되었으며, 앞뒤 바퀴에 안티롤바를 장착하고 토크 튜브가 장착된 뒷차축이 적용되었다. 또한 "스포츠카다운" 느낌을 주고자 추가 계기판 3개와 120mph(약 193.1km/h) 속도계, 모조 우드그레인이 들어간 스티어링휠과 대시보드가 장착되었다. 브레이크도 앞뒤 바퀴에 9인치 디스크브레이크와 무게 감응형 프로포셔닝 밸브[9]를 장착했고, 비스커스 팬 클러치(viscous fan clutch)와 트윈캠 엔진 전용의 타이밍 벨트[10], 폐쇄식 냉각장치(sealed cooling system) 등이 적용되어 현대적인 구조를 위했다. 1967년 중순에는 5단 수동변속기가 추가되었고, 1968년 중반에는 뒷차축을 파나르 로드(Panhard rod)[11]를 적용한 4링크 구성으로 바꾸었다.
1972년식 피아트 124 쿠페
1969년에 등장한 두 번째 시리즈인 BC는 디자인을 수정해 4점식 헤드램프와 현대적인 앞모습이 적용되었고, 후미등도 AC에서 쓰던 람보르기니 에스파다와 이소 그리포 슈퍼카의 후미등 대신 람보르기니 하라마(Jarama)의 것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1608cc 108마력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인테리어는 거의 그대로였으나 속도계에는 220km/h나 140mph까지 눈금이 세겨져 있었고, 타코미터의 눈금도 9000rpm까지 눈금 수를 늘린 뒤 시계를 추가했다. 스티어링 휠 역시 검은색으로 마감했고, 시트 마감도 직물-비닐 혼합이 적용되어 훨씬 현대적인 분위기로 연출했다. 또한 라디오와 이를 마감하는 패널이 들어간 공간에는 원형 에어벤트가 들어가면서 라디오도 에어벤트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선택 사양으로는 초록색 썬팅 유리창, 크로마도라(Cromadora) 알로이휠과 크롬도금된 허브캡, 라디오, 헤드레스크, 뒷창문에 적용되는 전기 열선, 전자 점화장치, 에어컨 등이 제공되었다. BC 시리즈는 약 9만 8천대가 생산되었다.
1976년식 피아트 124 쿠페
1972년에는 세 번째 시리즈인 CC가 등장했으며, 또다시 디자인을 손봐 새 앞모습과 훨씬 각진 뒷모습, 수평으로 설치된 후미등이 적용되는 것은 물론 후측면 창문도 수정되었고, 트렁크도 턱을 훨씬 낮추었다. 이번에는 1608cc 엔진을 기본 사양으로 했으나 이탈리아의 세금 제도(1600cc 이하에서 세금 덜 나옴)를 감안해 배기량을 1592cc(107마력)로 살짝 줄였고, 역으로 배기량을 늘린 1756cc 116마력 엔진도 라인업에 추가했다. 이 두 엔진은 같은 웨버제 이중 카뷰레터 대신 같은 업체의 34DMS 단일 카뷰레터가 사용되었으며, 단일 카뷰레터로 바꾸면서 오히려 고배기량 버전의 성능이 최고출력 118마력에 최고시속 185km/h로 개선되었다. 대시보드를 새로 디자인하면서 알루미늄 마감이 추가되었고, 시트 마감도 직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스티어링 휠도 비닐 마감과 은색 스포크가 적용되었다. 알로이휠 옵션에서는 크롬 허브캡이 빠지면서 휠 너트가 노출되는 형태로 바뀌었으며, 휠 구멍 수도 6개에서 8개로 늘렸다. CC 시리즈는 1975년까지 약 7만 5천 대가 생산되었다.
3.3. 피아트 124 S(SPECIAL)
1968년에 데뷔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4점식 헤드램프와 이전보다 커진 범퍼, 개선된 인테리어, 124 스포츠 스파이더로부터 가져온 래디얼 휠이 가장 큰 차이점이며, 주로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전자 계통과 같은 내적인 변화가 주로 이루어졌다. 엔진은 기존 OHC 엔진의 1.4리터 버전이 기존의 4단 수동변속기과 맞물려져 최고시속 150km/h를 기록했으며, 이 모델의 후기형부터 피아트 트윈캠 엔진이 124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한편, 기존의 일반 124 세단도 스페셜 버전과 병행생산되었으며, 일반 124 세단에 트윈캠 엔진을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어느 정도 차별화를 이루었다.
사진은 1970년식 피아트 124 스페셜 T 1400
그 중 1600 스페셜은 피아트 사의 기함이였던 피아트 132과 1592cc 95마력 트윈캠 엔진을 같이 사용해 최고시속 170km/h를 기록했고, GM에서 생산한 5단 수동변속기와 아이오드 전조등, 전동 브레이커레스 시동기(electronic breakerless starter), 전동 적산 회전계(revolution counter)가 추가되었다. 다른 그릴이 적용되는 "스페셜 T"라는 라인업이 존재했으며, 1972년에 1.4리터 버전이 단종된 뒤 1.6리터 버전이 1974년 가을에 피아트 124 세단의 모든 라인업이 단종될 때까지 생산되었고, 일반 124와 124 스페셜 모두를 합쳐 2백만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참고로 미국 수출형이 존재하기도 했으며, 아시아자동차 피아트 124의 최후기형에 해당된다.
1973년 피아트 124 광고
4. 다른 국가들의 파생형들
4.1. 라다 지굴리 (1970~2012)
라다 1200 | 라다 리바 에스테이트 |
자세한 내용은 라다 지굴리 문서 참고하십시오.
4.2. 프리미어 118NE (1981~2001)
사진은 1989년식 프리미어 118NE
외양상으로는 원본보단 라다 쥐굴리를 빼닮았다. 인도에서 세아트 버전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1981년에 도입해 생산했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1985년부터 Premier Automobiles Limited, 약칭 P.A.L.[12]에서 피아트 사의 허가 하에 생산하였다. 기본적인 설계는 원본과 똑같으나 닛산의 1171cc 52마력 A12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장착했고, 1996년부터는 이탈리아 업체인 Fratelli Negri Macchine Diesel Sud로부터 도입한 디젤 엔진을 얹은 1.38D 트림을 추가했다. 최후기형인 "프리미어 빅토리(Victory)"는 프랑스 푸조와의 합작으로 개선 작업을 했고, 2001년까지 생산이 이루어졌다.
4.3. 세아트 124 (1968~1975)
사진은 1970년 이후에 생산된 생산분
이쪽은 스페인판 로컬라이징 버전.
1968년부터 1975년까지 4도어 세단과 5도어 왜건을 "세아트 124"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고, 피아트 125의 일부 요소들을 갖추고 나온 124 스페셜의 현지화 버전인 "세아트 1430"도 1969년부터 생산되었다. 스페셜 버전의 엔진으로는 일명 "FUs"라는 별명이 붙은 트윈캠이 장착된 1438cc 엔진, 1970~1972년 사이에 장착된 1.6리터 엔진, 단종 때까지 쓰인 1.8리터 엔진이 적용되었다. 1975년에 피아트에서 124의 생산을 중단한 뒤, 세아트 버전은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페이스리프트를 맡겨 사각형 헤드램프와 차체 디자인과 통합된 후미등을 적용해 "세아트 124D"라는 이름으로 1980년까지 생산했다. 세부 라인업으로는 1.6리터 90마력 엔진이 얹힌 스포츠 버전인 FS-40/45과 114마력 1.8리터 엔진이 얹힌 FL-80/82, 1919cc 114마력 엔진이 얹힌 FL-90이 있었고, 스페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위에서 언급한 프리미어 사의 생산분이 이 차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반영하고 있다.
참고로 스페인에서도 124 스포츠 쿠페가 현지화되어 생산된 적이 있다.
4.4. 토파쉬 세르체 (1971~1994)
본래 토파쉬(Tofaş, Türk Otomobil Fabrikası Anonim Şirketi.)사는 1968년에 Vehbi Koç가 설립해 1971년부터 피아트 124를 "Murat 124"라는 이름 하에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Murat 124의 이름 하에 생산했고, 사진에 나와 있는 Tofaş Serçe(터키어로 "제비")는 124을 자체적으로 페이스리프트해 1984년부터 생산한 것이다. 1994년 단종 때까지 13만 4천 867대의 124/Serce가 생산되었고, 이후에도 토파쉬에서는 피아트의 여러 차량들을 터키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 회사에서는 124의 후속인 피아트 131도 1977년부터 라이센스 생산했으며, 1986년에는 직접 페이스리프트를 해서 2009년까지 생산했다.
4.5. 피아트 124 (한국형)[13] (1969~1973)
위에서 언급한 VAZ/라다와 SEAT, 토파쉬, 그리고 P.A.L.등과 같이 아시아자동차에서 정식으로 딜러 계약을 따서 1969년 4월부터 생산한 차.[14][15] 정말로 잘 팔렸다고 하며 한때는 현대자동차가 면허 생산한 포드 코티나보다도 더 많이 팔린 적도 있었으나, 피아트가 계약 파기를 하면서 불과 4년 만에 단종. 4년 동안 총 6,800여 대가 판매되었다.
위 사진의 최후기형 모델은 원본 모델은 피아트 124 SPECIAL 모델이다. 원본인 스페셜 버전과 같은 금형이나 그릴과 헤드 램프의 마감이 원판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바로는 초기형과 후기형을 합쳐 2대가 남아 있으나, 차 5대 분을 제작할 수 있는 양인 부품들을 준비할 정도로 이 둘에게 정성을 크게 쏟았던 차주가 작고한 이후에는 후손들이 둘 다 중고로 매각했다고 한다.[16]
지금은 금호클래식카 홈페이지에 가면 초록색 초기형을 볼 수 있다. #
1970년 당시 국내 판매 광고.
한국 공장에서 생산된 세단 최초로 4륜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하였다. 하지만 단종 직후 장착한 차는 없어졌다가 1986년도에 그랜저가 출시됨에 따라 부활하였다.
1972년에 롯데제과에서 '롯데껌' 사은행사를 진행했는데, 피아트 124 10대가 경품으로 제공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픽업트럭 파생형도 있었다. 남아있는 정보가 저 신문광고 하나 뿐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잊혀진 모델.
5. 미디어에서
- 터미네이터 -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의 포드 LTD를 추적하기 위해 경찰들이 주차장 건물을 감시하는 장면에서 적자색의 124 스파이더가 주차된 차량으로 등장한다.
- 실미도 - 영화 후반부에서 684부대가 버스를 탈취해 이동하는 사이 지방도로를 달리는 차량으로 청록색의 아시아 피아트 124가 등장한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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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 2000 | 르노 16 | 피아트 124 | 푸조 504 | 피아트 128 | |||
역대 경합 후보 | |||||||
1964년 | 1965년 | 1966년 | 1967년 | 1968년 | 1969년 | 1970년 | |
메르세데스-벤츠 600 | 롤스로이스 실버 섀도우 | BMW 1600 | 피아트 125 | BMW 2500/2800 | |||
힐만 임프 | 포드 머스탱 | 올즈모빌 토로나도 | 젠센 FF | 알파 로메오 1750 | 르노 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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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65마력으로 출력이 개선된다.[2] 아시아자동차 광고에서 이 영상 일부 장면을 인용하기도 했다.[3] 이탈리아어로 '가족'이라는 뜻이다.[4] 이후 출력이 74마력으로 개선된다.[5] 쉐보레 콜벳 론디네(Rondine) 컨셉트카와 페라리 275 GTS가 그의 대표작이다.[6] 나중에 이 엔진은 1990년대까지 꾸준히 생산되었으며, 란치아 베타 몬테카를로와 란치아 델타 인테그랄레, 피아트 131 밀라피오리, 피아트 쿠페와 같은 여러 명차들의 엔진으로 사용되었다.[7] 차고를 올려서 인지 상당히 주행 안정성과 핸들링이 떨어졌다고 한다. 탑기어에서 제레미 클락슨이 이에 대해 혹평을 했었다.[8] 페라리 250GT 보아노의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당시 그는 피아트로 스카우트되어 있었다.[9] 브레이크액의 유압을 조절하여 제동력을 분배시키는 유압 조정 밸브로, 브레이크 패드을 밟아 발생된 유압이 일정치 이상이 되면 밸브가 닫혀 휠 실린더 압력을 균등하게 맞추는 역할을 한다.[10] 당시 자동차업계 최초로 적용되었다![11] 코일 용수철 등을 사용한 서스펜션으로서, 차체의 꼬리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보디와 리어 액슬 하우징 사이에 횡 방향으로 장착되는 봉을 말한다.[12] 여담이지만 이 회사는 뭄바이 택시를 만들던 회사다. 124 외에도 피아트 1100을 "프리미어 파드미니(Padmini)"라는 이름 하에 생산한 경력이 있다.[13] '피아트 원투포'로 읽는다. 국내 판매 광고에서도 '피아트 원투포'로 읽었다.[14] 4월부터 본격 생산 아세아자동차에서(1969년 1월 25일 매일경제신문 2면)[15] 견고하고 경제적인 승용차 Fiat 124(1969년 10월 9일 동아일보 지면 광고)[16] 초기형의 경우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 보관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