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13:21:57

빌럼 1세(오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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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네덜란드 가톨릭방송 KRO가 네덜란드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인 100명'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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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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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DFB2><colcolor=#000000> 네덜란드 공화국의 스터트허우더
빌럼 1세
Willem van Oranje
파일:1280px-William_I,_Prince_of_Orange_by_Adriaen_Thomasz._Key_Rijksmuseum_Amsterdam_SK-A-3148.jpg
이름 빌럼 판 오라녀
(Willem van Orange)
출생 1533년 4월 24일
신성 로마 제국 나사우 딜렌부르크
사망 1584년 7월 10일 (51세)
네덜란드 공화국 홀란트 백국 델프트
재위 오라녀
1544년 7월 15일 ~ 1584년 7월 10일
네덜란드 공화국의 스타트허우더
1581년 7월 26일 ~ 1584년 7월 10일
배우자 에흐몬트의 안나 (1551년 결혼 / 1558년 사망)
작센의 안나 (1561년 결혼 / 1571년 이혼)
부르봉의 샤를로트 (1575년 결혼 / 1582년 사망)
루이즈 드 콜리니 (1583년 결혼)
자녀 필립스 빌럼, 마리아, 안나, 마우리츠, 에밀리아, 루이제 율리아나[1], 엘리자베트, 카타리나 벨히카, 샤를로테 플란드리나, 샤를로테 브라반티나, 에밀리아 안트워피아나, 프레데리크 헨드리크
아버지 나사우지겐 백작 빌헬름 1세
어머니 슈톨베르크의 율리아나
종교 개신교 (칼빈주의)
서명 파일:빌럼 1세(오라녀) 서명.svg
1. 개요2. 일생3. 여담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 공화국 초대 총독(스타트하우더 Stadhouder)으로, 본명은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Wilhelm von Nassau-Dillenburg).

네덜란드 국부로, 빌럼 1세로도 불린다. 후대 네덜란드 국왕이자 방계후손 빌럼 1세[2]와 혼동될 여지가 있어 보통은 종교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 붙여진 별명이 '침묵공(De Zwijger)'이다. 오랑주 공작의 칭호는 프랑스식 기욤 1세이며, 그에 따라 오랑주 공작의 풀네임 또한 기욤 도랑주(Guillaume d'Orange)이다.

2. 일생

1533년 지금의 독일 영토 신성 로마 제국나사우 백국 딜렌부르크 성에서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3] 빌헬름 1세 장자로 태어났다. 1544년 사촌 오랑주(=오라녜) 공, 브레다의 르네가 프랑스와 전쟁 중 전사할 때 빌럼에게 자신의 작위와 영지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며 르네의 영지인 오랑주와 브레다를 물려받았다. 이후 그는 본가의 이름 나사우와 상속받은 영지 오랑주 이름을 합쳐 오라녜나사우 가문을 창시한 뒤 거점을 네덜란드 브레다로 옮겼다. 그 후 브뤼셀에서 카를 5세 여동생이자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총독인 마리아[4]의 후견을 받아 성장했으며, 카를 5세의 총애로 1555년프랑스 전쟁 총사령관이 됐다.

카를 5세가 물러나고 펠리페 2세 밑에서 금양모기사, 국무회의 의원 등을 지내고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의 협상자로 활동해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반도 지배권을 둔 분쟁을 종식시켰으며,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총독에 임명됐다.

1561년 프랑슈콩테 총독에도 임명됐다가 1566년 성상 파괴운동을 강경하게 진압했는데, 빌럼은 안트베르펜에서 이를 진압했지만 성문을 폐쇄하고 스페인 군사들이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영지는 모두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1567년 딜렌부르크로 망명했으며, 1568년 군사를 일으켜 4월 23일 헤일리헤를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톨레도에게 엠스 강둑에서 패하자(예밍헨 전투) 퇴각해 프랑스로 도망쳤으며, 1571년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톨레도가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인 것으로 반발을 사면서 1572년 4월 1일 '고이센'(바다의 거지들)이라 불리는 집단이 함대를 이끌고 브릴레 항구를 점령하면서 홀란트, 제일란트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이들과 합류한다.

협상을 통해 홀란트, 제일란트의 총독이 되고 1573년 칼뱅교로 개종했으며, 1576년 겐트 화약이 성립돼 네덜란드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1579년 스페인 귀순한 남부의 네덜란드 귀족들이 아라스(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북부 7주에서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면서 빌럼은 이 동맹을 이끌고 한때 충성했던 스페인과 싸웠다.

1584년 7월 10일 델프트에서 여동생이랑 부하 선장 로저 윌리엄스와 저녁을 먹고 자택에서 내려오다 가톨릭 교도인 발타자르 제라르의[5] 저격에 맞아 사망했다. 쓰러질 때 여동생의 품에서 사망했는데 유언은 '신이여 내 영혼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여 이 불쌍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소서'였다. 제라르는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다 체포되고 [6] 심한 고문을 받은 뒤 7월 13일 처형됐다.[7] 묘지는 자택이 있던 델프트개신교회에 마련됐다. 이후 독립투쟁은 아들 마우리츠 판나사우가 이어간다.

네덜란드 국부로 그의 작위명 '오라녜(오렌지)'에서 유래된[8] 오렌지색네덜란드 상징색이 됐다.

3. 여담

문명 시리즈에서 네덜란드 문명이 새로 추가된 문명 3에서 문명 5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로 등장한다. 다만 문명 6에서는 그의 아버지를 조상으로 공유하는 빌헬미나 여왕이 지도자로 등장한다.


[1]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어머니.[2] 그의 아우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 요한 6세 후손이다. 요한 6세는 형이 네덜란드에서 오라녜나사우 가문을 창시해 활약한 것과 달리 아버지의 작위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을 이어갔는데, 빌럼 판 오라녜의 직계가 잉글랜드 국왕을 겸했던 빌럼 3세 사후 단절되면서 그와 가장 가까운 항렬인 요한 6세 나사우딜렌부르크 계열이 네덜란드 국가원수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빌럼 1세는 모계로 침묵공의 후손이다[3] 나사우 가문의 차자 계열. 장자 계열이 나사우바일부르크를 통치했고 현 룩셈부르크 대공 가문이다[4] 보헤미아-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러요시 2세의 왕비. 러요시 2세가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고모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뒤를 이어 바쁜 오빠를 대신해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총독을 맡고 있었다.[5] 프랑스인으로 펠리페 1세 지지자였기에 빌럼이 펠리페 1세의 반역자라서 죽여야 하고 그한테 걸린 현상금이 탐나서 암살에 나선 것이다. 특히 제라르는 빌럼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빌럼의 동맹인 룩셈부르크 공작의 군대에 2년간 복무해 프랑스 군인으로 위장해 네덜란드로 입국했다. 하지만 빌럼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자 일부러 훔친 룩셈부르크 공작의 인장을 이용해 프랑스 귀족으로 위장해 빌럼한테 접근했으나 빌럼은 프랑스의 동맹들한테 문서를 전달하려고 프랑스로 돌아가 인장을 백작한테 돌려주라며 내보내 버렸다. 그래서 제라르는 네덜란드 군인한테서 몰래 산 권총으로 죽이기로 결정해 사전에 빌럼의 집 구조를 탐문하여 알아낸 다음 빌럼이 집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이게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권총은 한번에 한발만 쏠수 있기에 제라르는 총을 2개나 사서 한번에 권총 2개를 쏘아 죽였다. 이 총탄 자국은 보존되어 있는 빌럼의 저택에도 헌재까지 그대로 남아있다[6] 도주 때 제라드는 물에 빠져 튜브 용도로 쓸 돼지 방광과 말까지 준비할 정도로 치밀했지만 쓰레기 더미에 걸려 넘어지면서 쫓아오던 병사들한테 잡혔다[7] 제라르가 받은 고문은 굉장히 잔혹했는데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을 한 것 외에 오른손을 와플 굽는 틀에 넣어 구웠고 양쪽 엄지발가락에 150kg의 추를 매달아놓았으며 발보다 작은 개가죽 신발을 신겨 불을 쬐어 발을 조이고 채찍질을 한 상처에 꿀을 발라 염소가 핥게 했다. 그래서 처형 때는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심지어 죽을 때도 제라르는 곱게 죽지 못했는데 머리와 사지가 잘리고 내장과 심장을 꺼내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한 사후 목과 사지가 공개적으로 효수됐다. 사실 이만큼 빌럼의 암살이 네덜란드인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제라르가 증오를 많이 받은 것이다. 다만 펠리페 2세는 제라르가 빌럼을 암살한것에 매우 기뻐하였고 제라르 가족을 불러 위로하며 가족들을 귀족으로 승격시키고 시골 마을 3개를 영지로 줬다.[8] 철자가 같긴 하지만 어원의 유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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