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121230; margin:-6px -1px -11px" | 구단 기본 문서 | 모기업 | HDC |
연고지 | 부산광역시 | ||
구단 | 부산 아이파크 | ||
유소년 | 개성고등학교 | 낙동중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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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역대 감독 | 프랜차이즈 선수 | 영구 결번 | 역대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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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홈구장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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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시기별 | 새한자동차와 대우 로얄즈 시절 | 구단 역사 | AFC 챔피언스 리그 기록 | |
시즌별 | 시즌별 일람 | 역대 유니폼 | ||
K리그1 | 1984 | 1987 | 1991 | 1997 | ||
FA컵 | 2004 | ||
AFC 챔피언스 리그 | 1985-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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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우 로얄즈 | |
Pusan Daewoo Royals | |
<colbgcolor=#33348e><colcolor=#fff> 정식 명칭 | 부산대우로얄즈축구단 |
영문 명칭 | Pusan Daewoo Royals Football Team[1] |
창단 | 1979년 11월 22일([age(1979-11-22)]주년) |
매각 | 2000년 2월 10일([age(2000-02-10)]주년) |
구단 형태 | 기업 구단 |
운영 법인 | ㈜대우[2] |
모기업 | 대우그룹 |
소속 리그 | K리그 |
연고지 | 부산광역시 |
연고지 변천 | 부산광역시/경상남도 (1983~1989)[3] 부산광역시 (1990~2000) |
홈구장 | 구덕운동장 (12,349석) |
구단명 변천 | 새한자동차 축구단 (1979) 대우 축구단 (1980~1982) 대우 로얄즈 (1983~1995) 부산 대우 로얄즈 (1996~2000) |
웹사이트 | 접속불가 [출처] |
마지막 시즌 당시 주요 인물 | |
구단주 | 김우중 |
단장 | 안종복 |
감독 | 장외룡 |
우승 기록 | |
K리그 (4회) | 1984, 1987, 1991, 1997 |
리그컵 (3회) | 1997, 1997, 1998 |
AFC 챔피언스 리그 (1회) | 1985-86 |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 1986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회) | 1989, 1990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1회) | 1981전 |
[clearfix]
1. 개요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11월 22일 창단한 실업축구단인 새한자동차 축구단을 모태로 하여 대우 로얄즈로 1983년 슈퍼리그 원년에 참가하였다. 원년 시즌이 끝난 후 1983년 12월 실업축구단에서 프로축구단으로 전환했고, 소속법인도 (주)대우로 넘어갔다. 초창기부터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를 주 연고로 했으며 1990년부터는 부산광역시만을 주 연고로 했다.1996년부터 부산 대우 로얄즈를 거쳐 2000년 2월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면서 대우 시절이 막을 내린다. 해당 문서에서는 부산 아이파크 이전인 새한자동차와 대우 시절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
2. 시기별
2.1. 새한자동차 축구단
새한자동차 축구단 |
1980 시즌 |
부산 아이파크의 뿌리는 새한자동차 축구단에서 찾을 수 있다. 새한자동차는 대우자동차[5]로 1979년 11월 22일 해체된 산업은행 축구단 선수단을 주축으로 인천의 부평공장에서 창단식을 거행했다.[6] 특이하게 당시 단장은 새한자동차의 신임 부사장이었던 리처드 존슨이 맡았고 아래 사진에 나온 외국인이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는 산업은행 축구단의 감독이던 이종환과 이성철, 유기흥 코치가 그대로 인계했다. 1980 시즌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실업 축구 대회에 참가했으며 그 해 다시 구단 명칭을 대우 축구단으로 개칭한다.
2.1.1. 당시 주요 선수
2.2. 대우 축구단
대우 축구단 | |||||||||
1980 시즌 | 1981 시즌 | 1982 시즌 |
1980년 10월 실업 축구 시즌 도중 대우 축구단으로 구단 명칭을 변경했으며 1982년까지 대우 축구단으로 활동한다.
1981시즌부터 장운수 감독이 팀을 맡았다.#
1981 전기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2.1. 당시 주요 선수
2.3.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 축구단 | ||||||||||||
1983 시즌 | 1984 시즌 | 1985 시즌 | 1986 시즌 | 1987 시즌 | 1988 시즌 | 1989 시즌 | 1990 시즌 | 1991 시즌 | 1992 시즌 | 1993 시즌 | 1994 시즌 | 1995 시즌 |
1983년 한국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가 창설되었고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스코트는 왕관으로 정하였고 구단 명칭을 대우 로얄즈로 확정하였다. 1983년 당시 다른 구단들은 돌핀스, 코끼리, 독수리, 황소, 호랑이 등을 마스코트로 정하며 동물의 왕국을 재현할 때 혼자 생소한 엠블럼에 로얄즈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축구단을 Football Club이 아닌 Football Team으로 넣은 것이 특이한 경우.
참고로 부산 아이파크는 왜 브랜드명이냐며 대우 로얄즈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우 로얄즈라는 명칭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한 브랜드인 대우 로얄에서 따온 것이다. 말 그대로 팀명 = 자사 자동차 브랜드였던 셈. 엠블럼에 있는 왕관 모양은 로얄과 르망 차량에 들어간 로고에서도 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의 부산 공장이 있고 대한민국의 제2위의 대도시인 부산을 주연고지로 하는 부산/경남을 연고지로 정하였고 부산 구덕운동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
1983년 12월 3일, 프로 팀으로 전환했고, 장운수 감독은 총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고 감독에 조윤옥 전국가대표감독을 임명했으며, 코치에는 프랑스인 곤잘레스가 선임됐다. # 그리고 프로화 1년 만에 축구대제전 1984 우승을 차지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8 시즌에 4월 30일관련기사 , 6월 5일 관련기사 이렇게 2 경기를 사직 야구장에서 개최한적이 있었다.
2.3.1. 당시 주요 선수
2.4.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 |||
1996 시즌 | 1997 시즌 | 1998 시즌 | 1999 시즌 |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은 1997시즌 프로 축구 최초 3관왕 (K리그 우승, 리그컵 2개 대회 우승), 1998시즌 리그컵 우승, 1999시즌 K리그 준우승 그리고 1997년 평균관중 2위 (11,717명), 1998년 평균관중 1위 (26,995명), 1999년 평균관중 2위 (19,798명) 이렇게 성적과 인기 모두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다.[8] 이 시기의 부산 대우 로얄즈는 축구 게임 FIFA 2000에 클래식팀으로 K리그는 물론 아시아 클럽 최초로 수록되기도 했다. 세기말인 99년에 챔피언결정전 사태로 인하여 K리그 최초로 비우승팀에서 MVP를 배출해 냈다.
1999 시즌 스쿼드
부산 대우 로얄즈 서포터스 로얄 패밀리.
1999년 12월, 아주대 김태수 감독이 대우와 3년 계약을 맺었으나 끝내 대우는 파산하며 프로 축구단을 넘겼고 김태수 감독은 부임 2개월 여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이때 안종복 단장도 함께 떠났다.
2.4.1. 당시 주요 선수
- 안정환 - 이런 계기로 인해 한때 대우 라노스 광고 모델로 발탁된 적이 있다.
- 마니치
- 정재권
- 박노봉
- 박현용
- 신범철
- 이민성
- 노경환
- 심봉섭
- 우성용
- 뚜레
- 이정효
- 우르모브 LB
- 이장관 RB
- 박민서 LB
- 윤희준 CB
- 김현수 CB
- 류웅렬 CB
- 김재영 CM
- 이용하 CM
- 전우근 AM
- 이기부 FW
- 우성문 RB
- 권해창 CM
- 류병훈 CB
- 김주성 CB
3. 여담
- 대우그룹이 축구단을 운영하던 시절 구단 운영 측면에서 다른 팀들과 차별화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도 남미 선수들보다 동유럽권 선수를 뽑았고,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등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그 시절에는 상당히 앞선 선진 수준의 구단 운영 사례를 보여줬다.
이는 당시 대우그룹의 회장이던 김우중이 열렬한 축빠였기에 가능했다. 김우중은 포항제철 아톰즈 시절 유명 선수를 직접 스카웃하고 포항 스틸야드 건축 당시 자신이 직접 그라운드의 잡초를 다 뽑았던 박태준 회장과 더불어 축구 사랑이 유별났던 인물 중 하나다. 동유럽권 선수를 뽑은 이유는 당시 대우그룹의 해외 사업 영역 확장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하는데, 서쪽으로 계속 가면서 동유럽까지 이르는 사업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레기아 바르샤바도 잠깐 소유했었다.
- 훈련장 및 숙소는 창단 초만 해도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대우그룹 연수원[9]에 있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구서 선경아파트로 숙소를 옮긴 뒤 인근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훈련했다고 한다.[10]
- 2011년 10월 2일, 부산 아이파크는 구덕운동장에서 경남 FC와의 경기를 개최하며 옛날 대우 로얄즈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으며, 2015년 7월 12일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컨셉의 마케팅을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사실 소득이 제로인 게 당연지사인 게 안정환 같은 스타 선수들이 떠나고 은퇴난지 오래 된 건 둘째 치더라도 현대산업개발로 팀이 넘어간 후에 기업 홍보와 인지도 상승을 위해 팀 유니폼 색깔이며 엠블럼이며 모든 것들을 한번에 싹 다 바꿔버렸으니까... 거기다 대우 시절에 비하면 성적도 나빠져서 인기도 없어졌고, 접근성이 좋은 구덕 대신에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홈으로 쓰면서 팬들도 대거 이탈했다. 2011년에 와서 뒷북을 쳤지만 방치되다시피 버려졌던 로얄즈 시절 올드 팬들은 호응해 줄 만큼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구단 차원에서도 레트로 컨셉 이벤트를 진행 하거나 관련 유니폼이나 굿즈를 출시하면 아이콘스 시절을 기념하지 로얄즈 시절을 기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4년부터 로얄즈 컨셉의 스페셜 유니폼을 출시하려는 등 대우 시절도 기념하려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
3.1.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관계
대우 로얄즈가 무너지고, 현대산업개발(현 HDC그룹)이 인수하면서 현재 로얄즈의 적통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아이콘스-아이파크다. 하지만 로얄즈가 무너지면서, 로얄즈의 주축인물이었던 안종복, 김석현 등이 나와서 축구팀을 만들고, 여기에 로얄의 멤버들이었던 마니치, 임중용, 김학철, 신범철, 김현수 등이 합류한다. 코칭스태프로 합류한 장외룡도 대우 로얄즈 출신이었다.그리고 이 팀이 바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이다. 나중에는 우성용, 이장관이 합류했고, 로얄즈 시절부터 활동했던 에이전트 샤키도 인천 유나이티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초기 인천 유나이티드는 프런트부터 선수단까지 로얄즈의 냄새가 아주 짙어지게 된다.인천의 창단 스폰서 또한 GM대우였다. 대우 로얄즈의 모기업이 인천광역시에 본사를 둔 대우자동차였고, 대우차의 후신이 GM대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구단 초창기에는 대우건설을 비롯한 여러 구 대우그룹 계열사 출신 회사들이 인천의 스폰서를 맡기도 했다. 상징색인 파랑색도 대우의 그것과 같다. 한 때는 이를 다룬 기사도 나올 정도. 심지어 GM대우 전직원들이 인천 유나이티드 시민주 공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GM대우의 후신인 GM 한국사업장은 2023시즌 기준까지도 인천을 후원하고 있다.
이를 보면 로얄즈는 현재 K리그에서 두 개의 팀에 영향을 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역사와 정통을 가져간 부산 아이파크는 직계자손, 그리고 대우의 유산으로 새롭게 태어난 인천 유나이티드는 방계자손/정신적 후신이라고 볼 수 있다.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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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시 기준 실업 구단 [1] 現 부산 아이파크의 전신 [2] 現 제주 유나이티드의 舊 명칭 [3] 現 포항 스틸러스의 舊 명칭 |
[1] Soccer Club이라 표현 하기도 했다.#[2] 아직 K리그에서 구단의 독립 법인화가 의무가 아니던 시절이라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구단을 '부서형 구단'으로 분류한다.[3] 1983년부터 1986년까지는 순회 경기 시절로 명목상으로만 연고가 있던 때다.[출처] 기사[5] 1983년도에 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변경했다.[6] 새한자동차는 1978년경 산업은행이 지분을 지녔다가 이를 대우그룹에게 넘겼다. 축구단도 그래서인지 대우로 넘어갔다.[7] 오범석의 아버지로, 한국 내셔널리그 이사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 부위원장까지 한 인물이다.[8] 이와 별개로 팀 내부는 어수선했는데, 시즌을 앞두고 선임된 이차만 감독이 6월에 경질됐고 이후 스카우터였던 신윤기가 감독 대행에 올랐지만 좋지 않은 성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9월 중순에 백혈병과 그로 인한 뇌출혈로 숨을 거뒀다. 남은 시즌은 장외룡이 감독 대행으로 마무리했다.[9] 현 KG 써닝리더십센터[10] 부산 구서동 출신인 사이먼 도미닉의 증언에 따르면 월요일 저녁마다 안정환을 구서 선경아파트 근처 오락실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