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19:22:33

마리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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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수의 제자3. 복음서에서4. 위경에서
4.1.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4.2. 필립보 복음서(Gospel of Philip)4.3. 토마스 복음서(Gospel of Thomas)
5. 여담6. 대중 매체에서7. 언어별 표기

1. 개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기독교성인. 성경 복음서에 따르면 거의 항상 예수의 옆에 있었던 여성으로,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 일행의 한 사람으로 언급된다. 원래는 과부로, 그녀의 몸에 들린 일곱 마귀를 예수가 퇴치하였다고 한다.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아람어 '마그달라(מגדלא)'에서 유래하며, 현대 히브리어로는 '미그달(מגדל)'이라 한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그녀의 기념일이 축일로 승격되었다. # 아래에도 나오겠지만 '막달라 여자 마리아' '막달라 사람 마리아'라고도 한다.

축일은 7월 22일이며 정교회에선 몰약 운반자들의 일요일에 기념한다. 또한 정원사, 미용사, 향수 제작자, 회개한 죄인, 장갑 제작자들의 수호성인이며, 상징물은 다음과 같다.
  • 향유단지: 예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한 향유, 혹은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발을 닦을 때 썼던 향유를 상징한다.
  • 채찍: 중세 가톨릭의 죄를 보속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채찍으로 몸을 치는 것에서 유래. 즉 회개한 죄인을 상징한다.
  • 해골: 죽음을 상징한다. 역시 회개와 관련이 있다.
  • 버려진 보석: 세속적인 부를 포기했음을 뜻한다.
  • 부활절 달걀: 정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달걀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칠하고 로마 제국 황제에게 달걀을 선물하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Χριστός ανέστη. Αληθώς ανέστη!)"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때부터 부활절 달걀이 시작되었고, 로마 황제에게 말한 부활 선언은 정교회의 부활절 인삿말이 되었다.

2. 예수의 제자

현재의 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제자였으며, 예수에게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연인이나 부인이였다는 상상을 펼치는 경우도 있지만, 학계에선 지지받지 못한다.[1]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간과 예수를 매장할 때,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에 모두 등장하며, 특히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한 첫 증인이란 점을 4 복음서가 공통으로 증언한다.[2]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이를 널리 알린 사람으로 교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4복음서에서는 이 예수의 부활 시점을 제외하고는 그녀에 대한 내용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을 당시엔 현 기독교의 모체인 베드로 중심의 교회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중심으로 하는 몬타누스, 영지주의 교회가 치열하게 세력싸움을 하고 있었고 '예수의 연인설'은 몬타누스주의 교회와 영지주의 교회가 주장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성 마리아 막달레나 중심의 교회종파가 아닌 성 베드로 중심의 교회종파를 선택하여 막달레나 중심의 종파는 박해를 심하게 받았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중요한 위치도 축소, 삭제, 변질되었기 때문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이 중요하게 서술된 마리아 복음서, 필립보 복음서는 사장되다시피하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이 축소된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는 권위있는 성서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역사적으로 틀렸다. 몬타누스파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몬타누스파가 마리아 막달레나 중심 종파였다거나 몬타누스파가 연인설을 내세웠다는 주장은, 한국은 물론이고 영어권 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영지주의에서 연인설을 주장했다는 것도, 마리아 복음서와 필립보 복음서의 내용이 와전된 것이다. 마리아 복음서와 필립보 복음서가 12사도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와 더 친근했다고 서술했다고 하지만 연인이라고 가정할만한 근거는 없고 성서학자들은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는 것을 반대하고 여성도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서술로 본다.[3] 마리아를 중요하게 묘사하는 복음서들은 교회에서 공인된 복음서들보다 형성시기가 늦어서 영향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신약성경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들은 초기 공동체 시절 12사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초대 교부들의 견해뿐 아니라 현대 성서비평학적 관점에서도, 예수의 실제 삶과 행적과 어록, 그 주변의 관계들에 대한 역사성이나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외경은) 경전에 속한 문헌들보다 후대의 것으로 왕왕히 이 문헌들의 모작일 뿐이며, 일반적으로 옛 역사 전통을 하나도 담고 있지 않다.[4]

초대 교부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다가 켈수스의 기독교 비판에 대한 반박에서야 나오는데 켈수스의 마리아에 대한 폄하와 일부 교회에서 그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기록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3~4세기 무렵 교부들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복음서에 나온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인'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루카 복음서에서 죄지은 여인 이야기 2절 뒤에 일곱 마귀 들린 마리아 막달레나를 언급하는 데다 하스킨스에 따르면 당시에 막달라라는 마을이 부정과 방탕으로 악명 높아서 생겨난 오해다. 게다가 베타니아의 마리아와도 혼동됐는데, 로마의 히폴리토가 그 예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언니 마르타와 예수를 찾았고 순종을 통해 하와의 불복종을 보상하는 제2의 하와이며 다른 여인들과 함께 사도들이라고 일렀다. 베타니아의 마리아도 요한 복음서에서 향유를 부었기 때문에 이런 혼란에 부채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박은 있었고 한술 더 떠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2명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동일시에 반박은 하지 않았고, 그저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을 칭찬했다.

59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부터 죄지은 여인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또한 그레고리오 1세는 일명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죄지은 여인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성경에 나오지 않으나 중세에선 성적 타락이라고 보았고, 매춘부간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레고리오 1세는 마리아에게 일곱 마귀가 들렸다는 것을 7대 죄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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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성 조시마와 만났을 때 헝클어진 머리로 알몸을 덮었다.안토니오 비바리니가 묘사한 마리아 막달레나

거기다 창녀였다가 회개한 이집트의 마리아의 사막에서 고행하는 금욕주의자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이리하여 마리아 막달레나는 '참회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매춘부에 죄인이라는 것이 부정적이지만 중세 기독교 관점에서는 회개가 중요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이미지였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전히 크게 공경받는 성인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고 마리아를 칭찬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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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가 부유했다는 설 역시 중세 시대에 나왔고[7] 속세의 부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른 여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녀에 대한 신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12세기 신학자 호노리우스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에서 부유한 귀족 유부녀였고, 간통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였다"고 했다.

정교회에선 복합인물 마리아 막달레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저 예수의 제자로 보았으며, 처녀라고 여겼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마리아, 죄지은 여인이 별개의 인물이라는 반박이 다시 나오지만 정설로 굳어지지는 못한다. 종교개혁으로 공경받는 성인이었던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성인 공경을 못마땅해한 개신교의 비판 대상이었고 그 반동으로 가톨릭에서는 '참회자' 이미지를 더욱 밀어주었다. 대신 그리스도를 도운 여인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는 약해졌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죄지은 여인과 마리아 막달레나, 베타니아의 마리아가 별개의 인물임을 선언하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드디어 마리아 막달레나가 중요한 사도의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으며, 이어 2016년 6월 3일 교황 프란치스코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키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이 조치는 마리아의 지위를 사도와 동급의 위치에 놓는 것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는 뒤늦게 사도급으로 인정받았다.[8] 엄밀히 따지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전통적으로 비공식 사도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여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는 칭호를 준 것이지, 사도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이건 정통성 문제인 사도전승과 관련이 있고, 여성 사제 허용 여부 문제와도 얽혀 있어 한동안은 사도급이 아닌 사도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다만 이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가톨릭 한정이며,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는 아직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 지도자들은 마리아가 복합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현대 개신교에선 다 별개의 인물이라고 본다. 생명말씀사 개역개정판 주석에선 막달라 마리아만의 행적을 강조하며 다른 해석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정황상 마리아 막달레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과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면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 놓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밖을 다닐 수가 없고, 남편이 있다면 남편을 두고 예수를 따라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4복음서나 마리아 복음서 등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남편에 대한 서술이 나오지 않는 것 또한 그녀가 과부였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 마리아가 예수에게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봤을 때 나름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한 과부였을 가능성이 높다.[9]

한편으로 그녀는 나름 교양과 지적 능력을 갖춘 여성이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십자가형을 당한 후 3일 만에 부활했다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주장이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후에 마리아 복음서까지 쓰여진 것을 보면, 예수의 부활과 승천 후에도 그녀는 초창기 교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대인 사회는 여성차별이 극심한 곳이었고 마리아처럼 예수를 따르거나 그를 지원하던 여성들 역시 적지 않았는데, 그녀가 정말 별볼일 없는 여자였다면 결코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전술한 것처럼 과거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베다니의 마리아와 동일인물로 잘못 규정하였으며, 중세 이후에는 오빠인 라자로와 함께 지금의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주해서 선교하며 살았다는 등의 전설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반면 가톨릭과 별개의 전승을 갖고 있는 동방정교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부활 후 성모 마리아,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10]로 가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거기서 생을 마쳤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 전승 역시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다른 가설들과 더불어 일종의 전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복음서에서

전술한 '향유를 부은 여인'이나 '베타니아의 마리아' 등 과거에 마리아 막달레나로 여겨졌던 인물들은 현재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는 주장이 대세이므로 인용하지 않았고, 정확하게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었거나 그녀라는 것이 확실한 부분만 인용한다. 한국어 번역본은 공동번역성서를 인용하였다.

인용된 부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루카 복음서 8장만 제외하고 모두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하는 부분에서만 마리아 막달레나가 언급되고 있다. 4복음서 모두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린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한 복음서에서만 마리아 막달레나 단독으로 목격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공관복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이 함께 부활을 목격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루카 복음서 8장 1절과 후대의 가필로 추정되는 마르코 복음서 16장 9절에 예수가 그녀로부터 일곱 마귀를 쫓아냈다는 내용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3.1. 마태오 복음서

또 거기에는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께 시중들며 따라온 여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있었고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27장 55~56절)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갔다.
(중략)
그 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28장 1, 5~6절)

3.2. 마르코 복음서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15장 40절)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중략)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께서 일찍이 일곱 마귀를 쫓아내어 주셨던 여자였다.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16장 1, 9~10절)[11]

3.3. 루카 복음서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8장 1~3절)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준비해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중략)
무덤에서 발길을 돌려 열한 제자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에게 와서 이 모든 일을 알려주었다.
그 여자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안나와 또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다른 여자들도 그들과 함께 이 모든 일을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24장 1, 9~10절)

3.4. 요한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 20장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그리고 단독으로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길게 인용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19장 25절)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중략)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 줄은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셔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 내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뽀니!" 하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하고 일러주셨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20장 1~2, 11~18절)

4. 위경에서

아래의 위경은 공관복음서 보다 짧게는 몇십 년에서는 길게는 1~2세기 이후에 나온 것이라 학계에선 신뢰있는 서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샌더스는 토마스 복음서 몇몇 구절을 제외하면 별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유독 베드로와 마리아가 경쟁하는 내용이 많은데, 유다 복음서 같은 많은 위경처럼 이단으로 배척된 교회가 정통 교회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으로 본다. 여성신학에서도 여성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않는 영지주의 위경의 마리아 묘사는 비판적으로 본다.영지주의에 대한 여성신학적 비판과 검토

4.1.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

마리아 복음서는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문서로, 기독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위경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마리아 복음서를 보면 마리아에 대한 다른 제자들의 갈등을 볼 수 있는데, 베드로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에게 들은 말씀이 없냐"고 하자 마리아가 숨겨진 얘기를 꺼낸다. 이 때 사도 안드레아가 자신들이 알고 있던 가르침과 다르다고 마리아를 의심하고, 정작 마리아에게 들은 것이 없냐 물었던 베드로는 여자의 말이라고 무작정 디스한다. 마리아는 믿어달라고 하고, 제자들 가운데 레위가 마리아를 지지하면서 베드로의 태도를 나무란다. 이어 레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이외에 어떠한 율법이나 계명으로 꾸미지 말고 복음을 전하자"고 훈훈하게 마무리한다.[12] 이하는 마리아 복음서에 나오는 해당 내용의 전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 위에 어떤 계명도 올려놓지 말고, 율법에 의해 너희가 속박되지 않도록 율법자처럼 율법을 제공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그분은 떠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슬퍼했다. 크게 울며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민에게 가서 사람의 아들의 왕국의 복음을 설교하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들이 우리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자 마리아가 일어서서 그들 모두를 축복하며 형제들에게 말했다. "울지 말고 슬퍼하지도 망설이지도 마십시오. 그분의 은총이 당신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당신들을 보호해 줄 겁니다."
[...]
베드로가 마리아에게 말했다. "자매여, 우리는 구세주께서 그 어떤 여자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했다는 걸 압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들었든 듣지 않았든 당신이 기억하는 구세주의 말씀을 얘기해주시오."

마리아가 대답하며 말했다. "당신들로부터 숨겨왔던 것들을 내가 분명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 말씀들을 설하기 시작했다. 나,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환영 속에서 주님을 보았고 그분에게 말했다. 주여 나는 당신을 오늘 환영 속에서 봤습니다. 그분은 내게 대답하며 말했습니다.
나를 보고 손을 흔들지 않았는가, 너에게 축복이 있으리.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 보물이 있다.
나는 그분에게 말했다. 주여, 어떻게 환영을 보는 사람이 그것을 봅니까, 영혼을 통해서 혹은 정신을 통해서?

구세주께서 대답하며 말했다. 그런 사람은 영혼을 통해서도 정신을 통해서도 보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 있는 우리의 마음이 환영을 보는 것이다.
[...]
세상 속에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았고, 형상속에서 형상으로부터, 일시적인 망각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 시간부터 나는 침묵 속에서 영겁의 순간을 안식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안드레아는 대꾸하며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것에 대해 어떤 생각들인지 말해 보십시오. 나는 구세주께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좀 믿지 못하겠습니다. 확실히 이 가르침들은 생소한 것들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며 같은 점을 염려하며 말했다. 그는 구세주에 대한 말들을 의심했다. "그분이 정말로 우리에겐 얘기하지 않고 여자에게 사적으로 말했을까요? 우리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바뀌어야되나요? 그분은 우리보다 마리아를 더 원했을까요?"

그러자 마리아가 울며 베드로에게 말했다. "나의 형제 베드로여,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나요? 내가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구세주에 대해 거짓말 했다고 생각하나요?"

레위는 대답하며 베드로에게 말했다. "베드로, 당신은 항상 불 같았지. 지금 내가 당신을 보니, 적이라도 되는 듯이 여자와 다투고 있소. 만일 구세주께서 그녀를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셨다면, 그녀를 거부하고 있는 당신은 정말 누구입니까? 확실히 구세주께서는 그녀를 잘 알고 있습니다."

4.2. 필립보 복음서(Gospel of Philip)

필립보 복음서는 2세기 후반 또는 3세기 전반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를 항상 수행하는 3명의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중 한명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항상 예수를 따르는 3명의 여인이 있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 및 예수의 동료(κοινωνός)였던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모친과 여인들은 이름이 모두 '마리아'였다.[13]
또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와 특별하게 친한 사이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구세주의 동료(κοινωνός)는 마리아 막달레나였는데, 예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사랑했으며 종종 그녀와 입맞춤을 하였다. 다른 제자들이 이에 불만을 갖고 항의를 하였다. 그들은 예수에게 "왜 우리 가운데 그녀를 더 사랑하십니까?" 이에 예수가 대답하였다. "왜 내가 그대들을 그녀보다 더 사랑하지 않겠는가?"

4.3. 토마스 복음서(Gospel of Thomas)

토마스 복음서는 집필 시기와 내용에 대해 상당히 논란이 많은 흥미로운 문서로, 따로 항목이 있으니 참조 바란다. 이 문서는 다른 복음서처럼 서사(narrative)가 없이 114개의 짤막한 경구식 구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인용되는 구절은 맨 마지막 114번 구절이다.[14]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구절에는 당시 유대 사회의 남성우월주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구절은 전형적인 영지주의적인 문장으로, 당시 기독교가 여성을 남성보다 낮게 보긴 하여도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했다면, 영지주의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으나 남성성을 얻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성은 생명을 얻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마리아 (막달레나)를 우리로부터 떠나도록 합시다."
이에 예수가 말했다. "아니다. 내가 그녀를 이끌어서 남성이 되게 할 것이며, 그대 남성들처럼 생령(living spirit)이 될 것이다. 스스로 남성이 되는 어떤 여성도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5. 여담

  • 1980년대에 마이클 베이전트 등의 호사가들이 예수와 관련된 음모론을 모아서 쓴 <성혈과 성배(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라는 책이 한때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의 골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척만 했고 실제로는 살아 있었으며, 무덤에서 부활한 것으로 위장한 후 아내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갈리아로 이주하여 84살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예수의 갈리아 이주설 자체는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중세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일종의 도시전설이었다. 전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20세기에도 이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런 허황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소설 다빈치 코드는 <성혈과 성배>보다 훨씬 큰 인기를 얻었고,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까지 했다.
  • 당시 유대풍습에서 독신을 유지하는 것이 굳이 책망받을 일도 아닌데다 복음서에 예수가 "천국을 위해 고자가 된 자도 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15], 굳이 예수가 기혼남이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불가지론자 성향의 신학자 바트 어만은 <다빈치 코드의 진실과 허구(Truth and Fiction in the Davinci Code)>라는 책에서 "예수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16] 마리아를 예수의 아내나 연인으로 보는 음모론이 있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 주변의 여성 중 가장 네임드이며, 마리아는 연령대조차 불명임에도 이성이 함께 활동하면 뭔가 썸씽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 사이비 종교의 교주 중 하나는 자신의 색마행이 문제가 되자, 설교 중에 "예수님께서도 3명의 마리아를 거느리셨는데 전 고작 2명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라는 요지의 설교를 했다고 한다. 미친놈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아일랜드를 비롯한 영미권에는 막달레나 수녀원이라고 하여, 타락한 여성들을 노동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기관들이 세워졌는데, 실상은 노동력 착취와 학대, 성폭력이 만연했고, 특히 1990년대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의 권위가 실추될 정도로 큰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 참조.
  •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나오는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자주 동일시되고 있는데 근거는 없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이 간음한 여인 고사는 후대의 가필이라는 주장이 대세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천한 여자였다는 잘못된 생각이 만들어 낸 해프닝 중 하나.이와 관련된 영상

6. 대중 매체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기독교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 예수와 관련된 여인들 중 성모 마리아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네임드이기 때문인지,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히로인 내지는 가장 비중 있는 여자 캐릭터 포지션을 맡는 경우가 많으며, 위에 서술한 '향유를 부은 여인'이나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그 캐릭터가 합쳐지기도 한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경우 세 캐릭터가 모두 합쳐진 모습을 보인다.[17]
  • 일본라이트 노벨막달라에서 잠들라라는 작품의 이름으로 차용되었다. 다만 내용에서 나오는 막달라는 "주인공의 이상향"을 나타내는 단어로 마리아 막달레나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 막달라에서 잠들라의 스핀오프 작품인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의 영문 제목도 "A girl sleeps in the ocean of magdala(막달라의 바다에서 잠든 소녀)".
  • 꽤 많은 일본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취급된다. 단적인 예로 디그레이맨의 등장인물인 크로스 마리안의 기술인 막달라 커튼(성모의 가호)이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소수의 기독교인이 아니면 가톨릭 신부가 결혼하지 않는다거나 개신교 목사독신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 정도는 애교다. 단 세계관이 가톨릭 세계관인데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모 마리아를 구분 못하고 목사와 신부를 구분 못할 정도의 수준이면, 작가가 공부를 게을리한 것이 맞고, 비판당해도 할 말이 없다(...)
  • 크로노 크루세이드의 등장인물인 막달레나도 성녀로 등장한다.
  • 영화 시스터 액트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다. 작중 나오는 노래 중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노래가 나오기도 하였다.
  • 레이디 가가의 노래 중 하나인 Bloody Mary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7. 언어별 표기

히브리어 מרים המגדלית (Miryam haMigdalit)
아람어 ܡܪܝܡ ܡܓܕܠܝܬܐ (Maryam Magdalayta)
그리스어 Αγία Μαρία Μαγδαληνή
라틴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Maria Magdalena[18]
영어 Mary Magdalene / Mary of Magdala
에스페란토 Maria Magdala / Maria el Magdala
한국어가톨릭: 마리아 막달레나,개신교: 막달라 마리아
일본어マグダラのマリア
중국어抹大拉的馬利亞(말다랍적마리아)
María Magdalen
프랑스어Marie Madeleine
폴란드어Maria Magdalena
러시아어Мари́я Магдали́на

[1] 「예수는 미혼자로 살았다. 자기 가정 이루기를, 아내와 자녀 두기를 포기했다. 당대 유다교계에서는 이런 처신이 한심한 충격적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것이 거의 의무적인 계명으로 여겨졌다. 근거는 창세기 1,28이었다: "자식 낳고 번성하라." 랍비들의 유다교계에서는 독신자란 혈통을 망각하는 자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미혼자를 랍비로 서품하기를 피했다. 쿰란에만 독신으로 사는 수도승들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마태오 19,12에 어느 모로 보나 예수의 독신과 관련되는 로기온이 전승되어 있다. 백성 앞의 혼인교시와 연결지어 예수는 독신의 가능성에 관해 제자들을 가르친다: "사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에 의해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시오." 분류법에 따라 구성된 이 말씀은 ― 고자가 되는 세 가지 경우를 꼽는데 ― 두 가지 점에서는 날카로움을 띤다. 우선 한 가지는 고자라는 멸시적 개념, 혼인할 수 없도록 거세됨을 가리키는 개념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거세는 신명 23,2 이하; 레위 22,24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는 흉측한 짓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이 말씀에 따르는 결론인즉 가치전환이라는 점이다. 처음 두 경우에는 외적인 불운으로 말미암아 신체적인 생산불능이라는 한스런 상태에 이르게 된 그런 일을 말하는데, 셋째 부분에서는 고자가 자의로 받아들인 독신생활을 가리키는 은유다. 그런데 욕설 같은 인상을 주는 고자라는 개념이 그냥 남아 있고 보면, 이 대목이 예수를 향한 공격과 관계가 있다는 추정은 적확하다. 예수는 미혼자로 살기 때문에 적수들한테 고자라는 욕설을 들었으니, 세리와 창녀와 죄인 들하고 어울려 먹는 바람에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방을 덮어쓴 것과 한가지다(마태 11,19//).」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2, 234-235쪽)[2] 다만 '빈 무덤'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첫 증인에 대해서는 묘사가 성경의 각 책마다 다르다. 마태오와 요한에 의하면 마리아 막달레나, 마르코에 의하면 11사도, 루가와 1고린에 의하면 베드로가 첫 증인이다. 신약학자 Gerhard Lohfink에 의하면 이는 예수의 체포 후 11사도들이 갈릴래아로 도주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1. 예루살렘에 남은 마리아 막달래나는 빈 무덤을 최초로 발견했고 2. 갈릴래아로 도주한 베드로는 부활한 예수를 최초로 만난 후 동료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으며 3. 다시 뭉친 전체 제자단이 빈 무덤 증언과 부활 증언을 함께 나누며 극도의 종말론적 기대가 공동체를 압도하는 가운데 4.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을 겪었다는 것이다.[3] 크레이그 에반스의 <만들어진 예수>[4] 가톨릭 <주석 성경>의 '신약성경 입문'[5] 개종자들에게 그들의 죄가 사해질 것이라고 확신시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레고리오 1세는 "사도들이 떠났을 때도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에 남았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찾아 (부활한) 그리스도를 본 유일한 여자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리아에게 사도 대우를 할 것을 선언할 때 그레고리오 1세에게 "자비의 증인(witness of Divine Mercy)"이라고 불렸음을 말했다.링크.[6] 토마스 아퀴나스뿐만 아니라 그 무렵 신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는 칭호를 받은 죄인"이라고 했다.[7] 중세 초기엔 고귀한 성인들 이야기가 유행이었고, 마리아는 부유한 정도가 아니라 귀족으로 묘사됐다.[8]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복권을 시작으로 여성 부제(副祭) 연구위원회를 설립하고 교황청 부대변인에 평신도 여성을 임명하는 등 가톨릭 내부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9]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마녀사냥 당시에는 이런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과부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당연히 과부가 가진 재산을 노린 모함이라고 보는 게 맞다.[10]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 주 셀축.[11] 마르코 복음서 항목에도 있지만 이 문서의 16장 9절 이후의 구절은 원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가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현재는 후대의 가필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12] That is why He loved her more than us. Rather let us be ashamed and put on the perfect Man, and separate as He commanded us and preach the gospel, not laying down any other rule or other law beyond what the Savior said.[13] 동료(companion)라고 애매하게 번역한 κοινωνός(koinonos)는 동료/친구/협력자 등 친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으로 해석되는데, 다만 제자라는 뜻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14] 이외에 21번 구절에서 '마리아가 예수에게 물었다'라는 식으로 그녀의 이름이 나온다.[15]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오 복음서 19:11~12, 공동번역성서)[16] 참고로 이 책의 한글 번역판(성령과 말씀사 간행)은 아예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17] 그녀를 싫어하던 유다(다만 본작의 유다는 악역이 아니라 사실상 진 주인공에 가까운 취급이다)가 그녀를 비난하자 지저스(예수)는 "너희 중에서 죄 없는 자만이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하고, 마리아의 넘버 Everything's alright은 그녀가 지저스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을 두고 유다와 지저스가 갈등을 빚으며 부르는 넘버이다. 현실주의자인 유다는 '그 비싼 향유를 살 돈이면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지저스는 '진정한 구원은 돈에서 오지 않는다'며 꾸짖는 장면.[18] 주의: 에스파냐에서는 같은 이름 가진 역사적 인물이 많다. 그 예으로 막달라 마리아 데 파치(Santa María Magdalena de Pazzi, 1566 ~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