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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2. 상세3. 잭슨 파이브 시절
3.1. Destiny World Tour (1979~1980)3.2. Triumph World Tour (1981)3.3. Victory World Tour (1984)
4. 솔로 활동 시절3.3.1. 대표적인 공연 영상
4.1. 월드 투어
5. 여담4.1.1. Bad World Tour (1987~1989)
4.2. 기타 콘서트4.1.1.1. 대표적인 공연 영상
4.1.2. Dangerous World Tour (1992~1993)4.1.2.1. 대표적인 공연 영상
4.1.3. HIStory World Tour (1996~1997)4.1.3.1. 대표적인 공연 영상
4.1.4. This Is It World Tour (2009~2010) (취소됨)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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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월드 투어를 진행한 곳을 표시한 지도 |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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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부터 1989년까지 1년 4개월간 그의 첫 솔로 투어인 Bad 월드 투어가 열렸다. 123회 공연으로 440만 명의 관중들을 불러왔고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7회 연속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50만 4천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Bad 월드 투어는 일본을 시작으로 열렸는데 일본에서 당시 잭슨의 공연 표가 매진되는 건 당연하고 암표가 횡행하여 암표상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Bad 월드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2012년 발매된 영국 웸블리 공연 DVD가 있다. 1억 2천 5백만 달러[2]를 벌어들여 80년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투어 2위 솔로 가수로는 1위를 기록했다. 또, 당시 관객들이 잭슨의 공연을 보고 기절하고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태는 Dangerous 월드 투어도 마찬가지. 뉴스 보도에 의하면 공연을 열 때마다 3천 명씩 실신해서 실려 갔다고 한다.
1992-1993년에는 Dangerous 월드 투어가 열렸다. 마이클 잭슨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부 스케줄이 취소되어 총 69회의 공연으로 350만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전 투어와는 달리 퍼포먼스가 더 과감해졌다.[3] Dangerous 월드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2005년 DVD로 발매됐다.
1996년 7월 16일 HIStory 월드 투어 시작 전에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로열 브루나이 공연을 개최하여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내용적으로 보면 시작은 Dangerous 월드 투어로 하는데 끝은 HIStory 월드 투어로 끝나는 공연이다.
1996-1997년에는 HIStory 월드 투어가 열린다. 35개국 82회 공연 450만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때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공연을 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Dangerous 월드 투어 당시에도 한국에 오려고 한 적이 있는데 김영삼 정부는 근검절약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바 있었고 이번에도 좌절되는가 싶더니 겨우 겨우 공연이 성사됐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중심으로 목사들을 비롯한 외세문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대책위가 꾸려지고 잭슨 내한 공연 반대 운동이 매우 격렬하게 펼쳐졌다.[4] 심지어는 공연 반대 대책 위원회에서 마이클 잭슨측과 계약을 하고 표를 판매하기로 한 태원예능에게 서점들과 은행 등에서 표를 판매할 경우 해당 서점과 은행의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협박했고 태원예능은 협박에 굴복, 표 판매를 철회하고 전 직원들이 동원되어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표를 판매했다고 한다. 더욱이 공연 퍼포먼스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심의위원회에서 19금 이상의 성인용으로 처리되었고 덕분에 표 판매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매진에는 실패했고 관객의 70% 가까이를 채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2회 동안의 총 관중 수는 9만 명이었으며 이는 2017년 콜드플레이 내한공연때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총 2회 공연 중 두 번째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근데 7만 8천명도 당시 잠실 주 경기장의 다른 행사의 입장 인원을 생각해 보면 꽤 많이 들어온 거다. 공연이 끝나고 태원예능의 사장님인 정광택씨가 당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마이클 잭슨이 어쨌다구요?' 라는 책을 쓴 바 있다. 현재는 절판되어 사지는 못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 정광택씨는 책 뒷면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가 허가한 공연의 표도 못 팔게 한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습니까?"
2001년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 잭슨 30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이때 You Rock My World를 공연할 때 어셔와 크리스 터커가 출연하여 함께 공연했다. 또한 휘트니 휴스턴 역시 참가하여 공연했다.
말년에 있던 솔로 투어에서 립싱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HIStory 월드 투어 당시 1-2곡을 제외한 모든 노래를 립싱크 처리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댄스는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로 하여 체력 소모가 심하다. 거기다 마이클은 통증까지 앓고 있어 Dangerous 월드 투어부터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텨왔지만 1993년 재판 이후 급속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거기다 목 상태도 나빠져 HIStory 월드 투어부터는 립싱크 없이는 공연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가장 최근 시기에 있던 HIStory 월드 투어의 동영상만 많이 풀렸지 그 이전인 Dangerous나 Bad 월드 투어는 거의 없어 일부 유출된 소수의 영상과 잭슨 파이브 시절 공연 영상 밖에 없어 Bad 월드 투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하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마이클 의 사망 3년 이후인 2012년 웸블리 투어 영상이 공개되면서 팬들의 숙원이 어느 정도 풀렸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라이브 동영상은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부 극성팬들은 해킹을 해가며 투어 동영상을 야금야금 빼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야 몇 개의 불법적인 공연 동영상이 유출돼 볼 거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음질 리마스터나 화질의 개선없이 단지 빼오기만 했을 뿐이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이클은 빡빡한 월드 투어 일정에 대해서 힘겨워했으며 "투어는 나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다. 한 번 공연을 하고 나면 무대가 땀으로 가득 차고 몸무게가 500g이 빠져 나간다."라고 말했다.[5] Invincible 앨범 발매 당시 월드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것도 더 이상 과중한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넘나들며 시차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다가 공연이 끝나면 흥분 상태에서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다시 무대에 서야 하니 늘 피로한 상태였다고 한다. 거기에다 2시간 동안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의 마이클 잭슨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이렇게 젊은 시절 수없이 춤을 추며 연습하고 몸을 혹사시키다보니 목, 허리, 특히 발목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This is it 콘서트를 준비하던 당시 지인에게 몸이 마음같지 않다며 예전만큼 춤출 수 없을 것 같다는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되어 참가한 Victory 월드 투어, Bad 월드 투어, Dangerous 월드 투어, HIStory 월드 투어의 총 관중수를 합치면 1,440만 명에 달한다. 거기에다가 로열 브루나이 공연[6]의 60,000명을 더하면 1,446만 명이 된다.[7] 말이 1,446만 명이지 이는 엄청나게 많은 수인데 피파 월드컵 중 최다 관중인 3,587,538명을 동원한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관중 수에 4배를 곱해도 마이클 잭슨의 월드 투어 관객수보다 작다. 즉 평균 관중이 68,991명이었던 미국 월드컵 경기를 108번 해도 1,446만 명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 어떤 아티스트의 관중 동원 기록보다도 압도적인 수치이다.[8] 또한 마이클은 투어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끌어모았는데[9] 아무런 계산없이 합쳐도 3번의 투어 평균수익이 1억 3천만 달러이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고려하여 계산하면 3번의 투어 동안 평균수익이 2억 1,500만 달러에 달한다. 투어횟수 자체가 적다는 것과 21세기 들어서 투어를 한 적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10] 총관중 총합과 수익총합 순위에서 밀려났다.[11] 또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미국 본토[12]를 Dangerous 월드 투어 때부터 제외하기 시작했는데 투어의 흥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는 마이클 잭슨의 관중 동원 능력이 매우 강력하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기 때문에 유럽이나 아시아, 남미를 대상으로 투어를 해도 항상 전석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매진을 기록하지 못한 대표적인 공연은 1996년 서울에서 열린 HIStory 월드 투어인데 이때 18만 명 중에 90,000명만 입장했는데도 한국에서는 2017년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당시 99,837명으로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1위였다.
3. 잭슨 파이브 시절
3.1. Destiny World Tour (1979~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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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B0D0C><colcolor=#E0AB81> Destiny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79년 1월 22일 ~ 1980년 1월 13일 |
투어 횟수 | 83회 |
한국 공연 | X |
수익 | $7,500,000 |
〈Dancing Machine〉을 부르는 마이클 잭슨 |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마이클 잭슨이 성인 기준 최초로 선보이는 월드 투어로, 잭슨즈로 이름 변경 후, 1978년 발매된 잭슨즈 정규 3집 Destiny를 홍보하기 위해 펼친 콘서트이다. Destiny가 흑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게 된 이후, 콘서트의 세트 리스트에는 잭슨 파이브 시절 노래들과 잭슨즈의 수록곡들, 그리고 신보 Destiny의 수록곡들이 담겨져있다. 그리고 1979년 중반 즈음, 마이클이 정규 5집 Off the Wall의 성공으로, Off The Wall 수록곡들도 포함되었다.[13] 그리고 마이클의 첫번째 투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Thriller와 함께 1981년 잭슨즈의 4집 앨범 월드 투어를 준비한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퀸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때 프레디 머큐리[14]는 잭슨 파이브 시절 불렀던 I Want You Back을 상당히 좋아했고, 마이클[15]은 퀸의 Bohemian Rhapsody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둘 다 인종, 스타일도 달랐지만 서로 팬이 되었고, 퀸 멤버가 전부 반대한 곡을 마이클이 이 곡을 안내면 정말 미친 짓이야! 라며 신신당부를 하자, 퀸의 최고 히트곡으로 사로잡은 게 그 유명한 Another One Bites the Dust다. 그렇게 프레디와 마이클의 우정은 1980년을 기점으로, 1984년까지 만난 걸로 알려졌다. 그리고 1984년 프레디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과 "Victory"[16]라는 잭슨즈 5집 앨범 동명의 수록곡을 같이 작업했다고 하는데, 언젠간 공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투어가 진행된 년도는 1979년에서 1980년으로, 무려 45년 전이기에,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워낙 옛날인지라, 화질도 굉장히 좋지 않다. 그나마 1979년 런던에서 공연한 라이브 영상이 가장 화질이 깔끔한데 링크가 있으니 한번 보는 걸 추천한다.
1979년 런던 공연
3.2. Triumph World Tour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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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B0D0C><colcolor=#E0AB81> Triumph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81년 1월 8일 ~ 1981년 9월 26일 |
투어 횟수 | 45회 |
한국 공연 | X |
수익 | $5,500,000 |
투어에서 <Rock With You>를 부르는 마이클 잭슨 |
1981년 잭슨즈의 정규 4집 앨범 Triumph를 홍보하기 위해 개최된 콘서트이자 마이클 잭슨의 두 번째 월드 투어이다. 1979년 Destiny 월드 투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1980년 4집을 내면서 마이클과 형제들이 함께 계획한 콘서트이다. 이 투어와 앨범을 전체적으로 보면, Destiny 시절과 Triumph 시절의 잭슨즈의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 걸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멤버들의 평균 연령대가 26살이기 때문에, 확실히 성숙해졌다는 게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세트 리스트는 전반적으로 Desitny - Off the Wall - Triumph 순으로 구성되었다. 사실 이때부터 전반적으로 Off the Wall 월드 투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마이클이 정규 6집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인데, 이때 The Girl Is Mine, Billie Jean, Beat It, Wanna Be Startin' Somethin'[17]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어쨌거나 형들과의 투어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한 건 이 투어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1984년 Victory 월드 투어 때부터는 아예 형제들과 갈등이 생기고 도중에 탈퇴를 했으니 말이다.
70년대의 거장 프레디와, 80년대의 거장 마이클 |
위에서 언급했듯이, Destiny 월드 투어 때부터 퀸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우정이 더 돈독해진다. 퀸은 정규 8집 The Game이 크게 흥행하였고, 이것이 마이클의 힘도 있었기에 마침 퀸이 미국으로 투어를 돌고있었기 때문에 퀸과 마이클 잭슨은 이때 더더욱 친해진 계기가 된 것이었다. 이 인연으로 프레디는 정규 6집 Thriller를 같이 작업하려 했으나, 마이클이 키우는 라마 때문에 결국 공동 작업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정규 11집 The Works도 마이클이 도와주려 했으나, 역시 스케줄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고, 둘 다 각각 1991년, 2009년에 사망한 나머지 퀸의 멤버들이 프레디와 마이클의 미공개곡을 공개하는데, 그게 바로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이다. 그 후 프레디와 마이클은, 3곡을 같이 작업한다.[18]
이 투어가 진행된 년도는 1981년이고, 역시 영상 자료가 굉장히 없는 투어 중 하나인데, 그나마 가장 화질이 좋은 투어 영상도 중간에 끊기거나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찾아봐도 화질이 좋거나 영상 자료가 없어서, 그나마 1981년 미국 U.S.A에서 공연한 영상이 화질이 좋다.
1981년 USA 공연
3.3. Victory World Tour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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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B0D0C><colcolor=#E0AB81> Victory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84년 7월 6일 ~ 1984년 12월 9일 |
투어 횟수 | 55회 |
한국 공연 | X |
수익 | $75,000,000[19] (한화 약 928억 원) |
〈Wanna Be Startin' Somethin'〉을 부르는 마이클 잭슨 |
1984년 7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진행된 잭슨 파이브의 투어이다. 1979년 Destiny 월드 투어와 1981년 Triumph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1983년 11월, 마이클 잭슨은 1984년 투어 계획을 발표했으며 Victory 앨범이 1984년 7월 2일 발매되면서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이 투어에는 마이클 잭슨과 그의 형제들이 참여했고, 약 200만 명의 청중들을 동원하고 55회 공연되었다. 이 투어는 약 7,500만 달러(2020년 달러로 1억 8,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투어는 1984년 7월 1일 미국 버밍햄에서의 최종 리허설을 거쳐 7월 6일, 미국 캔자스 시티에서 투어를 시작하여 동년 12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투어를 마쳤다. 이 투어는 공연마다 평균 4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136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1984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로 기록되었다.
Thriller 시기에는 의외로 마이클은 솔로 투어를 하지 못했다. 대신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의 새로운 앨범 Victory을 홍보하기 위해서 Victory 월드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 이름은 Victory 월드 투어이지만 정작 Victory 앨범의 노래는 세트 리스트에 없었고, 이전 잭슨 파이브 히트 노래들과 Off the Wall, Thriller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20] 마이클은 가족들의 압박으로 투어에 참여한 것이었으며, 중간에 그의 형제들과 다투었기 때문에 투어는 조기 종료되었다. 마이클 잭슨은 투어 이후 본인의 몫을 자선 단체에 전액 기부하였다.
여담으로 1970년대 중반과 마이클 잭슨 30주년 기념 공연을 제외하고 Victory 월드 투어는 잭슨 형제 6명 모두가 작업에 참여한 몇 안되는 투어이고 ,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이 스페셜 게스트로 7월 13일 미국 댈러스 리유니온 스타디움에서 Beat It 솔로 연주를 펼쳤다.
투어가 진행된 년도가 1984년이다보니 40년이 지났고 마이클 잭슨의 규모 있는 첫 투어다 보니 다른 투어들에 비해 영상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캐나다 토론토 공연 영상이나 미국 댈러스 공연 영상도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1984년 토론토 공연
3.3.1. 대표적인 공연 영상
- Billie Jean - 1984년 미국 캔자스시티
- Billie Jean - 1984년 미국 댈러스
- Billie Jean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Billie Jean -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 Beat It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Human Nature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Wanna Be Startin' Somethin'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Human Nature - 1984년 미국 댈러스
- Beat It - 1984년 미국 댈러스
- Off the Wall - 1984년 미국 뉴욕
- This Place Hotel - 1984년 미국 캔자스시티
- Rock With You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She’s out of my life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 Workin’ Day and Night - 1984년 캐나다 토론토
4. 솔로 활동 시절
4.1. 월드 투어
4.1.1. Bad World Tour (1987~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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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1F1E><colcolor=#C42732> Bad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87년 9월 12일 ~ 1989년 1월 27일 |
스폰서 | |
투어 횟수 | 123회 |
한국 공연 | X |
수익 | $125,738,964[21][22] (한화 약 3,240억 원) |
투어에서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는 마이클 잭슨 |
16개월간 진행된 이 투어는 총 15개국 4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123번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한 1980년대 진행된 투어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으며 단독 아티스트로서는 최고 기록이었다.
1987년 6월 29일, 잭슨의 매니저 프랭크 디리오가 그의 첫 번째 단독 월드 콘서트 투어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펩시의 후원 하에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600명이 넘는 기자, 카메라맨, 팬들은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잭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잭슨의 투어 수행원 132명과 함께 22대의 트럭을 실어 나르는 전세 점보 제트기가 사용되었다. 무대 세트는 700개의 조명, 100개의 스피커, 40개의 레이저, 3개의 거울, 2개의 24x18피트 스크린을 사용했다. 공연자들은 70벌의 의상을 입었는데, 그 중 4벌은 광섬유 조명이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첫 14일간의 관객 수는 45만 명으로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잭슨은 1988년 5월 23일 플라미니오 경기장에서 유럽 투어를 시작했다. 경찰과 보안 요원들은 35,000명의 군중 속에 깔려 있는 수백 명의 팬들을 구조했다. 경찰은 6월 2일 비엔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130명의 여성이 실신했다고 보고했다. 6월 17일 잭슨은 코믹 배우 찰리 채플린의 미망인 우나 오닐을 만나기 위해 베베이로 여행을 떠났다. 방문 후 잭슨은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1차 투어 때는 잭슨즈 시절 - Off the wall - Thriller 시기의 곡이 세트 리스트에 주로 들어갔고, 2차 투어때는 Off the wall - Thriller - Bad 시기의 곡의 비중이 높아졌다.[23]
잭슨을 보기 위해 모인 웸블리의 관객들 |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콘서트 중 하나는 1988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다. 이때 티켓 수요가 150만 회를 넘어섰는데, 이는 72,000명의 만석을 20번 채울 수 있는 규모였다. 결국 7번의 콘서트로 504,000명의 관객을 수용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고, 이후 관계자들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했다. 잭슨은 총 3번의 월드 투어를 진행했는데 그중 15번[24]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했으며 11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했다. 잭슨은 웸블리 스타디움 역사상 가장 많은 티켓을 판매한 아티스트이며,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당시 유럽을 포함한 투어 일정에 포함된 여러 나라의 관객과 팬들은 단지 마이클 잭슨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하였으며 수많은 인파와 기자, 파파라치들로 인해 마이클 잭슨은 정상적인 이동이 불가능했다. 9월 11일 리버풀에서 열린 마지막 유럽 콘서트는 아인트리 레이스 코스에서 열렸다. '약 1,550명의 팬들이 125,000명 이상의 관중들 사이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되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콘서트이기도 하다.
1차 투어 영상은 일본 요코하마 공연이 그나마 가장 고화질이며, 2차 투어 영상 중 런던 웸블리 공연은 1988년 DVD로 발매되었고, 공식 유튜브 채널에도 풀영상이 올라와 있다. 런던 공연 이외에는 1988년 로마 공연이 반쯤만 풀린 상태이다. 1989년 로스앤젤레스 공연 마지막 날의 오디오 풀버전도 공개되었지만 영상은 여전히 볼 수 없다. 심지어 The Way You Make Me Feel과 Man in the Mirror 이 두 곡은 런던 공연을 제외하면 고화질 버전이 전무하다.
Bad 월드 투어 오디오, 비디오, 팬캠 재생목록
4.1.1.1. 대표적인 공연 영상
- Billie Jean - 1987년 일본 도쿄
- Billie Jean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Billie Jean - 1987년 일본 오사카
- Billie Jean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Billie Jean - 198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 Wanna Be Startin' Somethin'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Another Part of Me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MV 버전)[25] (DVD 버전)
- Off the Wall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Human Nature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Smooth Criminal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I Just Can't Stop Loving You - 1988년 이탈리아 로마
- She's Out of My Life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잭슨 5 메들리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Rock With You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Dirty Diana - 1988년 이탈리아 로마
- Thriller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Thriller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Workin' Day and Night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Beat It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Beat It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Bad - 1987년 일본 요코하마
- Bad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The Way You Make Me Feel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26]
- Man in the Mirror - 1988년 영국 런던 웸블리
- Man in the Mirror - 198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 Man in the Mirror - Bad 월드 투어 하이라이트 (영화 Moonwalker)
4.1.2. Dangerous World Tour (1992~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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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B0D0C><colcolor=#E0AB81> Dangerous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92년 6월 27일 ~ 1993년 11월 11일 |
스폰서 | |
투어 횟수 | 69회 |
한국 공연 | 진행 예정이었으나 취소됨 |
수익 | 전액 기부[27] |
투어 오프닝 무대인 〈Jam〉을 공연하는 잭슨 |
1989년 1월, 성공적으로 Bad 월드 투어를 마친 잭슨은 더 이상의 투어를 하지 않고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전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991년 11월 그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Dangerous가 발매된 후, 1992년 2월 3일 뉴욕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월드 투어 계획을 발표하기 위한 기자 회견이 열렸다. 200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잭슨의 스폰서 펩시가 기획했다. 잭슨은 또 한 번 투어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린이들과 환경을 돕기 위해 본인의 자산으로 새로이 설립한 '힐 더 월드 재단'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 크리스마스까지 1억 달러 모금을 목표로 삼았다.
69번의 콘서트에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무죄판결이 난) 잭슨의 첫 번째 아동성추행 혐의와 진통제 중독으로 인해 투어를 중단하게 된다. 이번 투어부터 그는 이전에 서구 문화의 영향권에 포함되지 않았던 국가나 지역들도 투어에 포함시키는데, 앞서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마이클 잭슨은 그들에게 있어 최초의 서방 국가 연예인이었다. 그에 따른 충격과 인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Will You Be There〉 퍼포먼스 중 일부 |
1992년 6월 당시 세계 최대 운영기였던 러시아 안토노프 An-124 화물기가 개막 유럽식 다리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으로 설정된 장비와 무대를 운송하기 위해 예약되었다. 그러나 민간 항공기 인증과 관련된 문제로 인해 잭슨은 대신 페덱스 익스프레스[28]의 보잉 747을 사용하게 되었다. 도착 즉시, 그 장비는 65대의 화물차로 유럽을 가로질러 운반되었다. 화물은 조명 1,000개, 전기 케이블 10마일, 비디오 화면 9개, 스피커 168개를 포함하고 있었다. 약 2톤의 의류가 운반되었다. 이 의상은 마이클 부시와 안젤레노스 데니스 톰킨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는데, 그는 잭슨과 함께 그가 원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의 아이디어를 살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두 벌의 의상은 높이가 9피트, 너비가 7피트, 무게가 각각 40파운드였고, 전산화레이저가 제어하는 광섬유등이 달려 있었다. 한 재킷에는 36개의 스트로보 조명을 켜기 위해 3,000볼트를 발생시키는 배터리 벨트가 장착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폭발적인 효과를 감추기 위해 플랩을 숨겼다. 유럽에서 온 천 야드의 옷감은 18캐럿 금을 포함한 잭슨을 위한 검은색과 금색 옷을 포함하여 의상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의상에만 자그마치 200만 달러가 들었으며, 이 투어는 57000명의 평균 관객을 동원하여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29]이고, 이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최고 기록이자 1990년대 가장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다.
1988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처럼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고화질 DVD로 발매되었고, 현재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풀영상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공연이 수 천 명의 사람들을 기절시킨 그 전설의 공연이다. 공연 중간에 앞줄에서 기절한 팬들이 응급 구조대원들의 들것으로 실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30] 사실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에서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실신하고 기절하였지만 좋은 화질로 현재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이 극소수이기에 이 공연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31]
1차 투어 마지막 곡인 〈Man in the Mirror〉를 부르는 마이클 잭슨 |
투어는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남미의 주요 국가들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루마니아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투어에 포함되었다. 1993년 진행된 2차 투어 도중에 아동 성추행 혐의와 관련하여 미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탈수 증세로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고, 투어 막바지에는 진통제 중독으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한 채 멕시코에서 투어를 종료했다. 또한 이때부터 미국을 투어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한 번도 공연하지 않았고 《HIStory》 월드 투어 때, 그마저도 본토가 아닌 하와이에서만 2번 공연을 펼쳤다. 이 투어에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를 포함시켰는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를 비롯한 거대 구장들 덕에 멕시코(5회)와 아르헨티나(3회)에서는 8일간 80만명이라는 관중 동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Jam을 공연할 때 복장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위 사진에 쓰인 복장과 슈퍼볼 공연으로 유명한 검은색 복장이다. 은색 자켓은 1992년 공연에서만 사용되었고 1993년 공연때 잭슨 파이브 메들리에서 입기도 했다. 두 번째 자켓인 검은색 자켓은 1992년 6월 27일 뮌헨 공연과 1992년 12월 일본 도쿄 공연에서 사용되었고 1993년 공연에서는 이 자켓만 입는다. 1996년 로열 브루나이 공연에서 이 자켓을 입었다. 그리고 Dangerous 월드 투어부터 동영상의 화질이 확연히 좋아진다.
1992년 리허설
1992년 오슬로 공연
1993년 리허설
4.1.2.1. 대표적인 공연 영상
- Billie Jean - 1992년 독일 뮌헨
- Billie Jean - 1992년 독일 쾰른
- Billie Jean - 1992년 노르웨이 오슬로
- Billie Jean - 1992년 덴마크 쾨벤하운
- Billie Jean - 1992년 독일 브레멘
- Billie Jean -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Billie Jean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Jam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Wanna Be Startin' Somethin'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2년 독일 뮌헨[32]
- Human Nature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Smooth Criminal - 1993년 멕시코 멕시코시티
- 잭슨 5 메들리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Thriller - 1992년 노르웨이 오슬로
- Beat It - 1992년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 독일 뮌헨[33]
- Will You Be There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The Way You Make Me Feel - 1992년 일본 도쿄
- Bad - 1992년 노르웨이 오슬로
- Dangerous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Black or White - 1992년 영국 런던 웸블리
- Heal the World -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Man in the Mirror - 1992년 노르웨이 오슬로
4.1.3. HIStory World Tour (199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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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01><colcolor=#A92636> HIStory World Tour | |
투어 기간 | 1996년 9월 7일 ~ 1997년 10월 15일 |
투어 횟수 | 83회 |
한국 공연 | 1996년 10월 11일, 10월 13일; 총 2회[34] |
수익 | $165,000,000[35] (한화 약 3,110억 원) |
〈They Don't Care About Us〉을 공연하는 잭슨 |
1996년 5월 29일에 발표된 이 투어는 Dangerous 월드 투어 이후 진행된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투어이다.[36] 총 5개 대륙을 돌며 치른 82번의 공연에서 총 450만 명의 관객과 평균 약 55,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자 Dangerous 월드 투어에 이어 90년대 두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다.
〈Earth Song〉을 부르며 평화 퍼포먼스를 하는 잭슨 |
본 투어에서 잭슨은 라이브를 포기하고 퍼포먼스에만 주력했는데, 때문에 립싱크 논란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Wanna Be Startin' Somethin과 Jackson 5 Medely를 제외한 곡들은 부분 라이브 혹은 전부 립싱크로 진행되었다.[37] 90년대 후반, 잭슨의 목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았다.[38][39] 그러나 투어를 진행해야 했던 그는 퍼포먼스의 비중을 과감히 늘리고 세트 리스트의 거의 모든 곡들을 립싱크 처리하는 모습을 보인다.[40] 아무리 퍼포먼스에 공을 들였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수인 이상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41]
첫 콘서트는 프라하의 레트나 파크에서 공연되었으며, 12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역사상 가장 규모있는 콘서트 중 하나였다. 1996년 10월 7일에는 처음으로 아랍 국가인 튀니지에서 90,000명의 관중과 공연을 진행했으며, 호주 시드니에서 투어를 하는 동안 간호사 데비 로우와 비공개적으로 결혼했다.[42] 1997년 1월 3일부터 4일까지 잭슨은 하와이 호놀룰루의 알로하 경기장에서 35,000명의 관중을 동원하여 유일한 두 번의 미국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 경기장을 매진시킨 역사상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었다.[43]
국기 퍼포먼스와 함께 〈History〉를 공연하는 잭슨 |
1996년 10월 11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내한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으나, 공연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잭슨의 내한은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치러졌으며,[44] 해외에서도 크레인에 난입했던 어느 한 팬 덕분에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잭슨의 내한 공연은 녹화되어 유일한 VHS로 남아있는데, 그의 투어 영상 중 최악의 목상태로 공연한 영상으로 남았다. 2020년 유튜브에 음질이 매우 깨끗한 내한 공연 풀영상이 올라왔다.[45]
〈Blood on the Dance Floor〉를 부르는 마이클 잭슨 |
2차 공연은 1997년 5월 31일 독일 브레멘의 베저슈타디온에서 시작되었다. 세트 리스트에는 신곡 〈Blood on the Dance Floor〉가 추가되었고, 이후 Off the Wall 메들리와 〈The Way You Make Me Feel〉이 제외되었다. 〈Blood on the Dance Floor〉는 1997년 8월 19일 오슬로 콘서트가 끝난 후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잭슨이 39번째 생일을 맞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르켄 스타디움 공연에서는 60,000명의 팬들이 함께 했으며, 〈You Are Not Alone〉 공연 후 크루들이 그를 위해 생일 케이크, 행진 밴드, 불꽃놀이 등 깜짝 선물을 선보였다. 벨기에 오스텐드의 히포드롬 웰링턴 콘서트는 원래 1997년 8월 31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웨일스 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9월 3일로 연기되었다. 잭슨은 1997년 8월 24일과 26일 핀란드 헬싱키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다.
이전 투어들과는 달리 정발된 DVD는 없고, 유일하게 서울에서 녹화된 저화질 VHS가 있다. 하지만 다른 투어들과는 달리 꽤 많은 고화질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상태라서 여러 공연들을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하다. 특히 독일 뮌헨 공연이 HD로 촬영되어 풀린 콘서트가 있으나, 잭슨의 목소리 상태가 나쁘다는 게 흠이다.[46] 목소리 및 컨디션 상태가 가장 좋은 콘서트는 1996년 12월 31일 브루나이 콘서트이고[47], 꽤 좋은 화질과 음질의 영상들이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잭슨 파이브로서 참가한 Victory 월드 투어를 제외한 세 번의 월드 투어 관중 수를 합치면 1,240만 명에 달하며 여기에다가 Victory 월드 투어를 합치면 무려 1,440만 명이 된다.
1997년 뮌헨 공연
4.1.3.1. 대표적인 공연 영상
- Billie Jean - 1996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Billie Jean - 1996년 튀니지 튀니스
- Billie Jean - 1996년 대한민국 서울
- Billie Jean - 199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Billie Jean - 199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Billie Jean - 199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 Billie Jean - 199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 Billie Jean - 1996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 Billie Jean - 1996년 필리핀 마닐라
- Billie Jean - 1996년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 Billie Jean - 1997년 독일 뮌헨
- Billie Jean - 1997년 스위스 바젤
- Billie Jean - 1997년 덴마크 쾨벤하운
- Billie Jean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Billie Jean - 1997년 핀란드 헬싱키
- Billie Jean - 199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 Scream/They Don't Care About Us/In the Closet[48] - 1996년 브루나이
- Wanna Be Startin' Somethin' - 1997년 덴마크 코펜하겐
- Stranger in Moscow - 1997년 덴마크 코펜하겐
- Smooth Criminal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You Are Not Alone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The Way You Make Me Feel - 199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잭슨 5 메들리 - 1996년 브루나이
- Rock With You/Off the Wall/Don't Stop 'Til You Get Enough - 199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 Thriller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Beat It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Come Together/D.S. - 199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 Blood on the Dance Floor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Dangerous - 1997년 핀란드 헬싱키
- Black or White - 1996년 브루나이
- Earth Song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 Heal the World - 1996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 History - 1997년 스웨덴 예테보리
4.1.4. This Is It World Tour (2009~2010) (취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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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01><colcolor=#A92636> This Is It World Tour | |
투어 기간 (예정) | 2009년 7월 ~ 2010년 3월 |
투어 횟수 (예정) | 50회[49] |
한국 공연 (예정) | ? |
수익 (추정) | $? (한화 약 ? 원) |
This Is It은 마이클 잭슨이 할 예정이었던 투어이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이 투어가 마지막 투어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컴백을 선언했다. 이 투어는 영국 런던의 O2 아레나에서 열릴 계획이었다.[50] 이 투어는 2009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 투어는 라이브 기업인 AEG live와 계약했으며, 1997년 HIStory 월드 투어로부터 공식적으로 12년 만에 개최하는 투어였다. 75만 장의 티켓이 5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회사 측은 세계의 디자이너들을 뽑아 콘서트 제작에 참여시켰다.
첫 번째 투어 티켓은 전부 매진되었으나, 2009년 6월 25일에 투어를 며칠 앞두고 마이클 잭슨이 갑자기 사망하여 투어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티켓을 산 사람들은 환불하지 않고 유품으로 간직하거나 심지어 경매에 팔았다.
〈Smooth Criminal〉을 리허설 하는 잭슨[51] |
〈Earth Song〉을 리허설하는 잭슨[52] |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뒤, 그가 한 This Is It 월드 투어의 리허설 영상을 모아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콘서트 영화가 제작되었고 2009년 10월에 개봉했다.
티켓의 경우 환불하지 않은 사람들은 메모리얼 책자와 함께 티켓이 배송되었다.
4.2. 기타 콘서트
4.2.1. Royal Brunei Concert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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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01><colcolor=#A92636> Royal Brunei Concert | |
콘서트 기간 | 1996년 7월 8일, 1996년 7월 19일 |
콘서트 횟수 | 2회 |
장소 | 브루나이 제루동 파크 |
1996년 7월 16일 History 월드 투어를 진행하기 전,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공연을 개최하여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의상과 세트 리스트는 Dangerous 월드 투어와 거의 동일한데, 끝 부분에 You Are Not Alone과 Earth Song 당시 최신곡들이 추가되었다. 마이클이 생전 마지막으로 Billie Jean과 Beat It을 풀 라이브로 부른 공연이다. 특이하게도 Billie Jean을 이전과 달리 빠른 템포가 아닌 원곡과 동일한 템포로 불러서, 마이클이 유일하게 100% 라이브로 부른 원곡 템포의 Billie Jean이다. ##
4.2.2. MJ & Friends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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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gold> Michael Jackson and Friends | |
콘서트 기간 | 1999 6월 25일 ~ 1999년 6월 27일 |
콘서트 횟수 | 2회 |
장소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서울,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뮌헨,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 |
1999년 6월 25일 대한민국 서울과 6월 27일 독일 뮌헨에서 마이클과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MJ & Friends 콘서트 두 개가 진행되었다. 서울 뮌헨 특히 서울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자선공연 수익금은 국민성금, 삼성전자 후원금과 합쳐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한 개발도상국 교육지원 사업에 사용되었다.
참고로 뮌헨 공연 때 마이클이 Earth Song를 부르던 중 올라타 있던 플랫폼이 꺼져서 사고를 당했는데, 당시 사고가 영상에 나온다. 근데 마이클은 척추 부상을 당했는데도 끝까지 다음 노래 You Are Not Alone을 불렀다(이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부상 당한지 모를 정도로 태연하게 진행한다).
4.2.3. 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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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cb0b3><colcolor=#ffffff> 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 |
콘서트 기간 | 2001년 9월 7일 ~ 2001년 9월 10일 |
콘서트 횟수 | 2회 |
장소 | |
완전체로 모인 잭슨즈(잭슨 파이브) |
2001년 9월 7일과 10일에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 잭슨의 솔로 데뷔 30주년[53]을 기념하고 Invincible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열린 헌정 콘서트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 공연은 CBS를 통해 방송되었으며 약 2,900만 명이 시청했다.
팝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30주년 공연이다보니 두 시간만에 전석 매진되어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채웠으며, 가장 좋은 좌석은 천만원 상당을 호가했다. 하지만 천만원도 비싼 가격이 아닌게 마이클 잭슨과의 저녁 식사와 친필 서명이 쓰여진 포스터가 옵션이었기에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다.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잭슨 |
여러 가수들이 초청되어 마이클의 여러 노래들을 커버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듀엣으로 부른 The Way You Make Me Feel 마이클이 혼자서 부른 노래는 Billie Jean, Black or White, Beat It, 그리고 당시 신곡이였던 You Rock My World. 그의 생전 마지막 대형 콘서트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11 테러 하루 전에 진행되었다. 공연 전체
참여 인원이 상당히 화려한데, 사회를 사무엘 L. 잭슨이 보았고, 당시 인기를 끌던 어셔나 데스티니 차일드, *NSYNC, 브리트니 스피어스 외에도 휘트니 휴스턴, 레이 찰스, 라이자 미넬리 등 전설들이 헌정 공연을 펼쳤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맥컬리 컬킨이 참석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잭슨즈(잭슨 파이브)가 마이클과 합동 공연을 펼치며 1984년 Victory 월드 투어 이후 17년만에 완전체인 잭슨 파이브를 볼 수 있었다.
잭슨은 자신을 향한 헌정 무대 하나하나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관람했으며[54], 이후 잭슨즈와 6곡 메들리를, 신곡 〈You Rock My World〉를 포함한 솔로곡 5곡을 완벽하게 공연하며 진정 레전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55]
〈Billie Jean〉 무대에서 트레이드 마크 포즈를 짓는 잭슨 |
특히 두 번째 날 공연에서 선보인 〈Billie Jean〉 무대[56]는 중년의 나이를 실감할 수 없게 만드는 그야말로 최고의 무대였으며, 많은 팬들은 이 날의 퍼포먼스를 가장 완벽한 Billie Jean 무대로 꼽기도 한다.
4.2.4. United We Stand: What More Can I Giv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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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664><colcolor=#ffffff> United We Stand: What More Can I Give | |
콘서트 기간 | 2001년 10월 21일 |
콘서트 횟수 | 1회 |
장소 | |
2001년 9월 9.11 테러가 일어난다.[57]그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10월,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자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선 콘서트를 진행한다. 맥컬리 컬킨, 머라이어 캐리, 백스트리트 보이즈, 제임스 브라운, 빌리 길먼, 어셔, 핑크 등이 참여했다. 마이클 잭슨이 《Man in the Mirror》와 《What More Can I Give》 무대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다만 공식 영상은 《What More Can I Give》 무대만 남아있다. 이날 콘서트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열린 마이클 잭슨 3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해 CBS가 3개월 독점 녹화 중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가 먼저 방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30주년 기념 공연이 방송될 예정이었다. CBS 측은 마이클 잭슨이 출연하는 두 콘서트가 단기간에 연속으로 방송되면 시청률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고, 이날 공연의 《Man in the Mirror》 무대 영상은 편집되었다. man in the mirror 무대영상에대한 권리는 Dick Clark가 갖고 있었지만 그가 2012년에 사망하면서 그 권리가 그의 딸인 Cindy Clark가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4.2.5. Michael Jackson: Live at the Apollo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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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92636><colcolor=#010101> Live At The Apollo | |
콘서트 기간 | 2002년 4월 24일 |
콘서트 횟수 | 1회 |
장소 | |
마이클 잭슨의 생전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는 2002년 4월 24일이었다. 뉴욕 아폴로 극장에서 진행되었으며,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2002년 미국 중간선거의 민주당 지원 선거운동 자금 지원을 위해 개최한 모금 행사였다. 마이클은 Dangerous, Black or White, Heal the World 등 세 곡을 불렀다. Dangerous 일부 영상, 나머지는 오디오
4.2.6. 2014 빌보드 뮤직 어워드
팬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꽤 갈린다. 홀로그램이라도 그를 볼 수 있어 기쁘다는 팬도 있는 반면 죽어서도 계속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팬도 있다. 어쨌든 공통적인 의견은 '마이클 잭슨은 춤을 이렇게 못 추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홀로그램이라도 춤 자체는 댄서가 춘 것일테니.
5. 여담
마이클 잭슨은 투어 중에 전세계의 유명한 스포츠 구단들의 홈구장을 섭렵했다.독일에서는 Bad 월드 투어 당시 서독이었던 함부르크 SV의 홈구장인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당시 이름이 Mungersdorfer Stadium였던 FC 쾰른의 홈구장인 라인에네르기 슈타디온,FC 바이에른 뮌헨과 TSV 1860 뮌헨의 공동홈구장이었던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공연했다. Dangerous 월드 투어 때는 투어의 시작을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했으며 Mungersdorfer Stadium과 Mungersdorfer Stadium에서 재공연했고 SV 베르더 브레멘의 홈구장인 베저슈타디온,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홈구장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홈구장이었던 Südweststadion, 헤르타 BSC의 홈이었던 Friedrich-Ludwig-Jahn-Sportpark에서 새로 공연했다.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헤르타 BSC의 새로운 홈구장이 된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Mungersdorfer Stadium, FC 샬케 04가 홈으로 쓰던 Parkstadion에서 공연했다.
영국에서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15회 공연했으며 Cardiff Arms Park와 라운드리 파크에서도 공연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Bad 월드 투어 때 파리 생제르망의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와 몽펠리에 HSC의 홈구장이었던 Stade Richter, OGC 니스의 홈구장이었던 Stade Charles-Ehrmann에서 공연했다. Dangerous 월드 투어 때는 툴루즈 FC의 홈구장인 스타디움 뮈니시팔에서 공연했다.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올랭피크 리옹의 홈구장인 스타드 드 제를랑과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공연했다.
이탈리아에서는 Bad 월드 투어 때 이탈리아 럭비 대표팀의 홈구장인 Stadio Flaminio와 유벤투스 FC, 토리노 FC의 홈구장이었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공연했다. Dangerous 월드 투어 때는 Stadio Flaminio와 A.S. Giana Erminio의 홈구장인 Stadio Brianteo에서 공연했고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AC 밀란과 인터 밀란의 홈구장인 산 시로에서 공연했다.
스페인에서는 Bad 월드 투어 때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 노우에서 95,000명의 팬과 함께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비센테 칼데론에서도 6만명의 관중과 함께했다. Dangerous 월드 투어 때는 레알 오비에도의 홈구장인 Estadio Carlos Tartiere에서 공연했고 비센테 칼데론을 다시 방문했다.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레알 사라고사의 홈 구장인 라 로마레다와 레알 바야돌리드 CF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누에보 호세 소리야에서 공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홈구장인 당시 명칭이 페예노르트 스타디움이었던 더 카위프에서 Bad 월드 투어때 3회, Dangerous 월드 투어 때 2회 공연했고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AFC 아약스의 홈구장인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5번 공연하여 모두 매진시켰다. 그 밖에도 스위스 FC 바젤의 홈구장이었던 St. Jakob Stadium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일본의 도쿄돔이 생기기 전에 고라쿠엔 스타디움에서 3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Bad 월드 투어를 시작했고 1988년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도쿄돔에서 21번이나 공연했다. Bad 월드 투어 당시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도 3회 공연했고 90년대에 들어서 후쿠오카 돔이 완공되자 후쿠오카 돔에서도 공연을 4회나 소화했다. 그 외에도 일본의 니시노미야 스타디움과 오사카 스타디움에서도 공연을 했다.
[1] 그런데 솔로투어를 보통 10회 전후, 많으면 20회 가까이 가는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다르게 3번밖에 하지 않았다.[2] 현재기준으로 1달러를 1100원으로 환산할시 1375억.[3] 비록 그 때문에 마이클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기에 공연이 중단되었지만.[4]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저서에서 보듯 개신교 단체 중에는 대중문화에 적대적인 이들이 꽤 있다.[5] 대충 따져도 1시간 30분~2시간 내내 쉴새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격한 운동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공연과 음악만큼은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던 마이클 잭슨은 라이브 공연에 앞서 반드시 미리 리허설 작업까지 몇차례 거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리허설 작업까지 포함하면 더 지칠 수밖에 없다.[6] 1996년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공연.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7] 이것도 잭슨즈 시절에 진행된 Triumph 월드 투어 등이 제외된 것이다.[8]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최고 기록이며 그룹인 U2, 롤링 스톤즈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9] Bad 월드 투어, Dangerous 월드 투어, HIStory 월드 투어의 합산 수익금 총합은 3억 9,000만 달러로 1달러를 1,100원으로 칠 경우 4,290억 원이다. 그런데 저 수익금들을 2015년 기준으로 환산하여 계산할 경우 6억 4,600만 달러로 7,106억 원이 된다. 위키피디아의 투어 항목을 참조.[10] Invincible 투어는 마이클이 극구 거부해서 취소되었다. 또한 This Is It 월드 투어도 6월 25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취소되었다.[11] 그런데 투어를 4번밖에 안 했음에도 10회 전후를 진행한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슷하다.[12] 보통 다른 아티스트들이 투어를 진행할 때는 미국에서만 공연의 40%를 진행한다.[13] 예를 들면,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Rock With You가 대표적이다.[14] 당시 23살[15] 당시 17살[16] 스케줄 문제 때문인지, 제목에만 Victory라고 써져있고, 곡은 수록되어있지 않다.[17] 실제로 Off The Wall 수록곡이 될 예정이었다.[18]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State Of Shock, 그리고 Victory이다.[19] 현재 가치로 따지면 $187,000,000.[20] 때문에 거의 Thriller 월드 투어로 보아도 무방하다.[21] 현재 가치로 따지면 $271,821,176.[22] 1980년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 2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1위는 핑크 플로이드의 'A Momentary Lapse of Reason Tour'.[23] 1차 투어는 Bad 앨범 발매 직후에 했었어서 당시 최근 앨범이었던 Bad 앨범의 수록곡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호주 공연 이후에 마이클은 투어를 재정비하고 88년 2차 투어부터 Bad 앨범의 수록곡이 세트 리스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Dangerous 월드 투어부터는 앨범 발매후 시간이 조금 지나서 투어를 하기 시작한다.[24] Bad 7번, Dangerous 5번, HIStory 3번[25] 런던 공연 외에도 여러 유럽 공연들이 포함되어 있다.[26] 1988년 7월 14일 콘서트의 영상과 7월 15일 콘서트의 오디오를 합친 버전이다.[27] 애당초 투어의 목적이 자선 활동을 위한 기금 마련이었기 때문에 투어로 얻은 수익 전부를 자신이 설립한 '힐 더 월드 재단'을 비롯한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28] 당시 사명은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29] 1, 2위는 각각 U2와 롤링 스톤스.[30]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루머이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들 중에서 관중이 사망한 공연은 없다.[31] 풀린 풀영상 목록: 오슬로, 코펜하겐, 브레멘, 부에노스아이레스편[32] 독일 뮌헨 콘서트 당시에는 Dangerous 월드 투어 기간 중에 유일하게 원키로 불렀다. 뮌헨 콘서트 이후에는 Dangerous 월드 투어 마지막 콘서트까지 1키를 낮춰 불렀다.[33] 뮌헨 콘서트 당시에는 Dangerous 월드 투어 기간 중에 유일하게 원키로 불렀다. 다만, 마이클의 컨디션이 안좋았던 건지 1절을 부를 때에는 음정이 불안했다. 원래 초기 리허설에서는 원키에서 1키를 낮춰서 불렀다. 뮌헨 콘서트 이후에 진행된 Dangerous 월드 투어 리허설과 콘서트(로테르담~스톡홀름 첫번째 밤)까지는 원키에서 2키, 이후에는 1키를 더 낮춰서 불렀다.[34]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진행되었으며, 두 번의 공연 모두 전석 매진되었다.[35] 현재 가치로 따지면 $262,789,179.[36] 원래는 2009년 예정되어 있었던 This Is It 월드 투어가 커리어 마지막 투어가 될 뻔 했지만, 잭슨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HIStory가 공식적인 마지막 투어가 되었다.[37] 하지만 HIStory 25주년 기념으로 공개된 1997년 뮌헨 공연 라이브 버전을 통해 립싱크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묵음 처리하고 AR을 같이 틀어놓으면서 라이브를 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38] 아동 성추행 누명으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에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탓에 수면 부족으로 목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39] 1996년 내한 공연에서도 목 상태가 좋지 않다는게 드러났는데, 몇 안되는 라이브 진행이었던 잭슨 파이브 메들리 파트를 부를 때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확연하게 탁해지고 쉰 목소리로 불렀다.[40] 잭슨 파이브 메들리와 평생 단 한 번도 립싱크한 적 없는 Wanna Be Startin' Somethin', '히히' 정도의 추임새는 직접 했다.[41] 사실 마이클 잭슨은 굉장히 어린시절부터 계속해서 투어를 진행했고 원래대로면 Bad 월드 투어를 마지막으로 투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앨범 판매를 위해 억지로 공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해에는 이 투어와는 별개로 로열 브루나이 공연도 진행했으니 몸이 피로할 수밖에 없다.[42] 이후 잭슨은 데비 로우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얻는다.[43] 한편, 이 콘서트를 브루노 마스가 보기도 했다.[44] 비싼 티켓값, 미성년자 입장 불가 규정 등으로 인해 전 좌석 매진은 달성하지 못하고 70% 정도의 객석만 채워졌다.[45] 물론 제일 많이 본 장면은 당연히 그 유명한 난입 사건이다.[46] 원래 이 콘서트도 DVD로 발매할 겸 HD로 촬영되었지만 잭슨이 자신의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해서 취소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심지어 HIStory 월드 투어 전체에서 유일하게 마이클이 문워크 이후 스핀을 하지 않은 콘서트이다.[47] 다른 콘서트과 달리 마이클이 첫 곡 Scream을 라이브로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48] They Don't Care About Us와 In the Closet 사이에 짤막하게 Dangerous 앨범의 She Drives Me Wild의 비트가 나오기는 한다.[49] 원래는 10회였지만 회사 측에서 잭슨의 의사와 상관 없이 일방적으로 50회로 늘렸다[50] '투어'라고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다른 국가나 다른 공연장 얘기는 없었다. O2 아레나에서만 6개월 이상을 공연하는 형식이었기에 위키피디아는 이를 'concert residency'로 분류하고 있다.[51] 그의 생애 마지막 댄스 리허설이다. 50세의 나이를 실감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리허설이자 마치 리허설이 아닌 실제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최고의 리허설이다.[52] 2009년 6월 24일에 한 그의 생애 마지막 리허설이다. 다음 날인 6월 25일에 마이클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53] 싱글 〈Got to Be There〉 발매일인 1971년 9월 7일 기준. 잭슨 파이브로 데뷔한 날짜는 1968년 1월 31일이다.[54] 무대가 끝날 때마다 가수와 눈을 맞추고 따봉을 날리거나 박수를 쳐주며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55] You Rock My World는 이후 자신의 정규 10집 수록곡이 된다.[56] 첫 날의 공연은 잭슨의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중간 문워크 부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57] 마이클 잭슨이 30주년 기념 공연을 한 바로 다음날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