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23:39:34

에브라힘 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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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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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권한대행
모하마드 모흐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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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공화국 제13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ابراهیم رئیسی | Ebrahim Raisi
파일: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jpg
<colbgcolor=#303A3B><colcolor=#ffffff> 본명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
سید ابراهیم رئیس‌الساداتی
Sayyid Ebrahim Raisolsadati
출생 1960년 12월 14일
이란 제국 라자비호라산주 마슈하드
사망 2024년 5월 19일 (향년 63세)
이란 동아제르바이잔주 우지 마을과 피르 다부드 일대
재임기간 제13대 대통령
2021년 8월 3일 ~ 2024년 5월 19일
서명
파일:에브라힘 라이시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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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03A3B><colcolor=#ffffff> 배우자 <colcolor=#373a3c,#ddd>자밀레 알라몰호다 (1983년 결혼)[1]
자녀 2녀
학력 샤히드 모타하리 대학
콤 신학대학
종교 이슬람 (시아파)
신체 170cm
소속 파벌
[[원칙파|
원칙파
]]
소속 정당 [[전투적 성직자회|
전투적 성직자회
]]
}}}}}}}}}

1. 개요2. 생애
2.1. 법조인 경력2.2. 정치 경력2.3. 대통령 취임 후
3. 논란
3.1. 인권 탄압

[clearfix]

1. 개요

이란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13대 이란 대통령이다. 본명은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지만 흔히 에브라힘 라이시로 알려져 있다.

생전에는 알리 하메네이 사후 차기 라흐바르 후보로 유력했지만 헬기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하였다.#

2. 생애

마슈하드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맘 레자 사원의 이맘이자 마슈하드의 금요기도 이맘인 아흐마드 알라몰호다의 사위이기도 하다.

2.1. 법조인 경력

1980년 카라지에서 검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하마단에서도 검사로 활동했는데 서로 무려 30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용케도 멀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무리 없이 활동했다. 이쯤 되면 체력은 꽤 대단한 듯하다. 1985년 수도 테헤란의 검찰청 차장으로 임명되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간 종합검사실장을 지내다가 대법원 차장으로 임명되어 10년 간 재직했다. 이후에는 2년 간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며 2019년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대법원장직을 맡았는데 2021년 8월 3일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물러났다.

법조계를 잠시 떠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공익신탁 아스탄 쿠드스 라자비의 관리인 및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2. 정치 경력

과거 이슬람공화당 소속이었으나 이 당은 1987년 해산되었고 전투적 성직자회 소속이였다. 2006년 남호라산 주 전문가 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어 재직했는데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물러날 예정이었다.

2017년 대선에 이슬람혁명군인민전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38.3%의 득표율로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 밀려 알리 하메네이가 내심 지지하던 후보였고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이 그를 지지하며 사퇴했는데도 큰 표차로 낙선했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일찌감치 로하니에게 뒤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낙선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021년 대선에 다시 출마했다. 사실상 범여권 및 중도파[2]가 일찌감치 압돌나세르 헴마티 전 중앙은행 총재로 단일화한 반면 보수파들은 여러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라 로하니의 낮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보수파의 분열로 중도파 헴마티가 당선되는 것이 아니냐는 보수파 일각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우려 자체를 할 필요가 없이 그가 약 62%에 가까운 득표율로 초압승했으며 그나마 대항마로 출마한 모흐센 레자이도 그와 마찬가지로 보수파였던 데다 11.79%로 크게 낙선했는데 무려 50%에 가까운 격차로 초압승한 셈이다. 정작 중도파 및 범여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헴마티는 10%도 안 되는 8.38%의 득표율로 광탈했다.[3]

이로서 보수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후보 등록 과정에서 개혁파 후보들은 다 탈락시키는 등 이란 당국의 답정너 행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표 보이콧 운동까지 일어났다. 실제로 2017년 대선보다 투표율 자체가 크게 떨어져 (73.33% → 48.78%)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된 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으며 그나마도 표 중 14%인 417만표가 무효표였다.[4] 반라이시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를 보이콧하거나 무효표를 찍었으니 당연히 그가 초압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란 대통령은 그럴싸한 타이틀과는 달리 별다른 실권이 없으며 실권을 쥐고 있는 자는 바로 라흐바르 알리 하메네이다. 다만 그가가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보아서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2023년 기준으로 하메네이가 80세를 넘긴 고령이라 후계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어지간한 역대 대통령들이 재선까지 한 것으로 보아 그도 이변이 있지 않는 2025년 재선은 확실했으며 이 시점에서 하메네이는 86세가 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그는 사실상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이미 내정되었다고 봐도 무관하지 않았다. 사실 하메네이의 신임을 받았다는 점, 보수파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는 점에서 2019년 전후로 후계자 후보군에 오른 적이 있었다. 호메이니 사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하메네이가 라흐바르를 계승한 점에서 하메네이 사후까지 그가 대통령이었다면 하메네이처럼 라흐바르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하메네이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2.3. 대통령 취임 후

2021년 8월 3일, 하산 로하니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국영기관 세타드(Setad)의 수장 모하마드 모크베르를 신임 부통령에 임명했다.#

2022년 2월 21일에는 카타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과 회담을 갖고 JCPOA(이란 핵합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초까지 이어진 반체제 시위로 인해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2023년 1월 17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속적인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이란과 러시아가 제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협력기구를 설립하고 함께 맞설 군대도 동원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2022년 9월부터 러시아에 샤헤드 드론을 공급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여주었다.

2.3.1.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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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 동아제르바이잔주 주지사와 외무부 장관과 함께 헬리콥터로 이동하던 중 추락해 생사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란 국영TV IRNA통신을 통해 전달되었다. AP통신 속보, # ISNA 기사 (페르시아어)

한국 시간 11시 50분경 헬리콥터 추락 잔해로 추정되는 현장이 발견되었고 그곳에서는 어떠한 생존 신호도 찾을 수 없었다는 보고가 나왔다(No sign of life). 이란 텔레비전 보도 화면을 캡처한 것으로 보이는 현장 사진이 공유되었고 페르시아어 언론인 이란 인터내셔널의 영문 트위터 등 다수의 소식통이 이를 확인하였다.

CNN이 이란의 한 당국의 보고를 인용하여 생존자가 없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국영 통신사 IRINN과 반관영 통신사 Mehr News가 "추락현장에서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결국 한국 시간 13시경 헬기 탑승자 전원의 사망이 확인되었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 임기 중 암살당한 제2대 대통령 모하마드알리 라자이 이후 2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병사가 아닌 외인사로 사망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유고로 인해 모하마드 모흐베르 이란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맡으며 이란 헌법에 따라 50일 내에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가 실시된다.[5] 늦어도 2024년 7월 9일 이전에는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3. 논란

3.1. 인권 탄압

테헤란 검찰청에서 활동하던 1988년 기소위원회 위원 4명 중 하나였는데 이 위원회는 정치범 및 반대파 처형으로 서구권 언론 및 재야로부터 "살인위원회"라는 낙인이 찍힌 바 있다. 이 때 처형된 인사들은 대게 인민전사기구 및 민중당(Tudeh) 등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호메이니, 하메네이 같은 이란 혁명을 일으켜 집권한 이들은 반공주의 성향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과 서방 진영을 반대하기 때문에 친소, 친공산주의 성향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란 신정 정부는 단순 반미, 반서방 성향을 띌 뿐 애초에 공산주의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슬람 시아파를 대놓고 국교로 삼고 있고 그걸 명분으로 집권한 게 현 신정 정부이므로 당연히 공산주의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제사면위원회의 지탄을 받았으며 미국 해외자산통제국의 제재 대상에도 올랐다. 아무리 반미 국가의 수장인 이란 대통령이라지만 대놓고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은 처음이다.


[1] 이슬람 성직자인 아마드 알라몰호다의 딸이다.[2] 이란은 한국처럼 분명한 정당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냥 중도파와 보수파/원칙파로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속한 정파가 실질적인 여당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대선 시점에서는 루하니 대통령이 중도파이므로 중도파 후보가 사실상 여당 후보라고 볼 수 있는 셈이었다.[3] 이를 대한민국에 대입할 경우 10%도 득표하지 못한 후보는 선거비용을 그대로 까먹는다(...).[4] 직전 2017년 대선에서 무효표는 120만표[5] 실질적인 국가의 수장은 라흐바르알리 하메네이이기 때문에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메네이도 이 사고로 국정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며 라이시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면서도 국민들의 동요가 없기를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