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7 15:10:14

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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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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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m
Неум

1. 개요2. 역사
2.1. 20세기까지2.2.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아드리아해와 접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일한 항구도시이다. 북서쪽에는 크로아티아 본토, 남동쪽에는 크로아티아의 월경지두브로브니크가 있다. 즉 네움은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갈라 놓는 역할을 한다. 이 곳의 주민들 역시 크로아티아 본토나 두브로브니크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인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이 곳만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인데 그 원인은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2. 역사

2.1. 20세기까지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달마티아 지역의 대부분을 얻게 되자 달마티아 쪽 육상 국경을 통해 베네치아랑 접하게 된 라구사 공화국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라구사는 애초에 시작부터 베네치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생긴 소국이었고 전 지배국인 베네치아와는 아드리아해의 무역 주도권을 두고 수 세기 동안 다투던 라이벌이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라구사의 수복을 천명하며 라구사의 안보를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구사는 주변의 강국[1]에 조공을 바치며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아 왔는데 카를로비츠 조약 직전 벌어진 대 튀르크 전쟁 당시 신성 동맹에게 한창 두들겨 맞고 있던 사이 신성 동맹에 가담한 베네치아가 라구사의 영토 일부를 점령해 오스만령 발칸반도와의 내륙 무역로를 차단하는 상황까지 터지면서 자국의 안보가 실제로 위협받는 상황까지 찾아온 것이다.

라구사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은 달마티아를 잃었지만 라구사의 배후지역인 보스니아는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이에 라구사는 베네치아가 육로를 통해 라구사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구사가 가지고 있던 해안 도시 두 곳을 오스만에 양도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네움이었다.[2] 네움을 양도받은 오스만은 네움을 자국 행정구역인 보스니아에 편입시켰고 이것이 현재까지 내려오게 된다. 이후 1878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통치하게 되면서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는 다시 육로로 연결되었으며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건국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네움을 보스니아의 영토로 확정지으면서 최종적으로 네움은 보스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2.2.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절까지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나 유고슬라비아의 한 행정구역일 뿐이었기에 네움이 보스니아 영토라고 하더라도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터지며 유고슬라비아가 완전히 분해되면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서로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자 크로아티아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이나 두브로브니크 일대에서 살던 사람이 두브로브니크를 가거나 타 크로아티아 지역으로 가려면 국경을 두 번 넘어야 하거나 여객선을 타고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 크로아티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네움이 보스니아보다 크로아티아와 더 가깝다[3]며 보스니아에 네움의 반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스니아는 네움의 반환을 거부하는데, 크로아티아에 돌려주면 보스니아도 바다로 통하는 길이 막혀 내륙국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륙국이 얼마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는가를 생각하면[4] 보스니아가 기를 쓰고 네움을 지키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두브로브니크 지역의 연결이 필요했던 크로아티아는 대안으로 1998년에 네움 지역의 자유로운 육로 통과를 보장하는 네움 협정을 맺었다.

그런데 정작 보스니아는 자국 영토인 네움이 아닌 크로아티아의 플로체[5]무역항으로 쓰고 있다. 네움에서 보스니아 쪽으로 붙은 땅은 좁아터졌는데 하필 코앞이 산악 지형이어서 철도와 도로를 정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6] 바다 또한 펠레샤츠 반도에 가로막혀 항구로 쓰기에는 턱없이 좁다. 기껏 사수하고 있는 항구도시라고 있는 게 겨우 동네 해수욕장 수준인 것이다. 오히려 플로체는 자그레브 쪽으로도 없는 철도사라예보 방면으로 친절하게 나 있을 정도이다. 왠지 모르게 뒤틀려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면 착각이 아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6년에 플로체 협정을 맺어 항구 사용권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네움의 산업은 무역업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해안 지방처럼 아드리아해의 절경을 살린 관광업이다.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버스 대부분이 네움의 휴게소에 정차하는데, 이게 네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이다.[7] 한국인 관광객이면 네움 양쪽의 국경에서 여권만 두 번 확인할 뿐 비자를 요구하지 않으며, 심지어 여권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통과하기도 한다. 다만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한 2013년 이후로는 크로아티아 쪽 체크포인트는 EU 체크포인트로서 출입국 도장을 날인한다.[8]

한편 보스니아의 네움 알박기(?)로 인해 국토가 단절되는 불편함을 안게 된 크로아티아는 네움을 서쪽으로 우회하여 펠레샤츠 반도로 바로 연결되는 펠레샤츠 대교를 건설하였다. 다리의 건설은 1990년대 말부터 추진되었으나, 네움의 해로를 가로막는 문제 때문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크로아티아 측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동의를 얻기 위해 다리의 설계를 55미터 높이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높여 2006년 합의에 도달했다. 이후 크로아티아의 재정 문제로 건설이 지연되다가 유럽연합의 지원을 얻어 2018년 착공, 2022년 8월 26일에 개통되었다. 합의 이후에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치권에는 계속 반대의 목소리가 제기되었으나, 크로아티아 측이 55미터 정도라면 네움에 출입할 만한 선박을 수용 가능하다는 논리로 건설이 강행되었다. 한편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독립하여 세르비아와의 통합을 원하고 있는 스릅스카 공화국 측은 보스니아 정치인들이 논란을 만든다며 크로아티아의 대교 건설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실제로 보스니아는 네움을 무역항으로 만드려는 기초 투자를 하고 있어 2023년에는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내륙 도시 스톨라츠(Stolac)에서 네움을 연결하는 왕복 2차선 간선도로(M17.3)가 완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네움은 평지가 그다지 없는 데다, 단 5km에 불과한 해안선을 이미 호텔, 민박 등 관광시설이 차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개발 가능성이 턱없이 낮다. 실제로 2022년 펠레샤츠 대교 완공 후 첫 대형 크루즈선이 입항했을 때에는 지역 정치인과 관광업자들이 환경 파괴를 내세워 크루즈선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9]


[1] 독립 직후에는 헝가리, 오스만의 발칸반도 정복 이후로는 오스만.[2] 참고로 다른 한 곳은 수토리나(Sutorina)로 라구사 남쪽에 위치한 베네치아령 코토르 만과 접해 있다. 수토리나는 여러 가지 일을 거쳐 현재 몬테네그로령이 되었다.[3] 1991년 통계 기준으로 네움 인구의 약 88%가 크로아티아인이었고, 보슈냐크인은 4%였다.[4] 당장 스페인 식민지배 독립 초에 해안을 가지고 있던 볼리비아가 해안선을 칠레와의 전쟁에서 잃고 내륙국이 되면서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지역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오스트리아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멸망으로 유일하게 해안선을 접한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을 잃고 내륙국이 되면서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몰락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발칸반도 내에서만 봐도 슬로베니아가 영해 확보를 위해 피란만을 두고 크로아티아와 영해 분쟁을 빚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5] 네움으로부터 10 ㎞ 정도 북서쪽에 있다.[6] 2023년 후술할 간선도로가 개통하기 전에는 임로 수준의 도로밖에 없었으며, 철도는 아예 놓을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사라예보, 모스타르 등 내륙 도시에서 플로체가 훨씬 가깝다.[7] 보스니아의 소득 수준이 크로아티아보다 낮은 편이라 물가 역시 비교적 싼 편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하여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면서 숙박을 네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8] 최소한 렌터카 등 개인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 클렉과 자톤돌리 중 한 쪽만 찍고 한 쪽은 찍지 않는 경우도 있다.[9] 숙박과 식당이 중심이 되는 휴양지 입장에서 숙박은 배에서 해결하고 낮에 10시간 정도만 구경하는 관광객을 천 명 단위로 쏟아내는 크루즈선은 전혀 득볼 것이 없는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