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의 분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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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국방군이 운용했던 42cm 감마 박격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42cm 곡사포 |
성이나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제조된 화포.
2. 역사
2.1. 찬란한 등장
냉병기가 전장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성이나 요새는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공격군의 입장에서는 성벽이나 흉벽 자체가 난관인데, 무너뜨릴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인해전술을 써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다가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게다가 어지간한 성과 요새는 해자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공략의 난이도가 더 높았다.물론, 당시에도 투석기나 발리스타 같은 공성 병기가 있어서 요새 구조물을 공격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발사할 수 있는 투사체의 중량과 사정거리, 연사속도의 제한이 컸기 때문에 보통은 성벽 내부에 불덩이 같은 것을 던져서 화재를 일으키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던져서 전염병을 퍼트리거나, 성벽 위를 공격해서 방어군이 대응사격을 못하게 하거나 하는 등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성벽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무리였다. 돈과 시간을 크게 투자해서 다수의 투석기를 제작해서 장시간 사격하면 성벽에 피해를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성벽이 빨리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서 땅굴을 성벽 밑까지 판 후, 땅굴 받침대에 불을 질러서 성벽 아래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방법이 오히려 더 빠를 수도 있으며, 사정거리가 짧으니 적의 역습이나 응사에 쉽게 당하므로 상당수의 공성전은 주변을 완전 포위한 다음, 성 내부의 식량과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적의 구원군의 공격이나 성에서의 출성공격에 대응하는 지루하고도 골아픈 작업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성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대포라는 물건이 조악하게나마 등장하자마자 성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오스만 술탄국의 거대 대포[1]가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붕괴시킴으로써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불러왔기 때문에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물론 대포의 공격으로만 공성전이 진행된 것도 아니고, 거대 대포는 발사시 파열이 잘 일어났고 발사속도도 느려서 의외로 비실용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3중 성벽이 누더기가 되는 바람에 방어군의 사기를 크게 꺾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성포는 전장에 화려하게 데뷔를 하게 된다.
2.2. 거대화의 연속
하지만, 당연히 공격당하는 성이나 요새도 손가락 빨면서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우선 공격군에 대응할 목적으로 똑같이 요새를 보호할 대포인 요새포를 도입했으며, 프랑스의 축성가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은 여러 개의 요새화된 시설을 건설하면서, 방어지역에 요새포와 포병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적의 접근 경로를 아군의 방어 방향쪽으로 강제하면서 축차적으로 적을 소모시킬 수 있는 별 모양의 요새를 설계한다. 요새 벽면도 약 60도 정도의 경사를 주어 포탄의 직격을 경사로 튕겨내면서 보병이 간단히 뛰어오를 수 없도록 건설함으로써 당시 요새의 최정점을 만들어냈다.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이런 요새를 부숴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지닌 공성포도 거포화의 길을 걷게 된다. 단단한 장갑으로 보호받는 요새포를 압도해야 공성이 가능한데, 그러려면 사정거리가 더 길던지, 구경이 커서 화력이 더 높든지, 양자를 겸하든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정거리의 증대를 우선시한 평사포 방식의 공성포와, 구경의 확대를 중시한 구포 방식의 공성포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런 발전과정으로 인해 공성포는 배치부터가 힘들고 어려우며, 전담 병력이 다수 붙는 거대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초기에는 견인포의 탄생으로 인해 그나마 과거보다는 대포를 방열하기가 쉬웠지만, 곧 견인포의 방식으로도 중량과 부피를 감당할 수 없기에 나중에 가면 공병부대가 미리 공성포를 방열할 곳을 선정한 곳에 가서 토목공사급의 공사를 진행해서 포대를 만들고 지반을 다져놓으면, 공성포만 운반하는 전담부대가 공성포를 분해해서 현지까지 운송한 다음, 포가를 설치하고 포신을 올려놓는 등 현지에서 공성포를 조립해야 하는 피곤한 과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설치했다고 끝이 아니라, 공성의 진행속도와 전황의 변화에 따라 포대를 이동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한다.
2.3. 특수병기화
덕분에 제1차 세계 대전 근방이 되면 공성포는 본질적으로는 거대요새포나 거대해안포에 가까운 물건이 되고 말았으며, 실제로 러일전쟁처럼 자국의 요새포를 분해해서 전장으로 운송한 다음, 현지에서 조립해서 공성포로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리고 작은 공성포의 경우라도 일반 포병이 운용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구경, 부피, 중량이 엄청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야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그래도 제1차 세계 대전이 참호전으로 진행되면서, 공성포는 원거리에서 적의 중요시설을 타격하거나, 근거리까지 이동해서 적의 참호를 말 그대로 날려버리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고질적인 문제인 이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차포의 형식을 사용해서 적어도 철도 운송은 편하게 하도록 하는 공성포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공성포의 운용은 여전히 불편했으며, 사실상 이 때부터 특수병기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고 수리, 보급에 많은 비용와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숫자도 점점 줄어들게 되며, 요새포나 함포, 해안포의 개수형이 공성포로 활약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까지는 철근 콘크리트로 강화된 요새도 많았고, 원거리까지 강력한 포탄을 날릴 필요성도 있었기에 종전될 때까지 공성포는 줄기차게 포격을 날렸다.
2.4. 쓸쓸한 퇴장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던 공성포가 급격하게 사라진 것은 세계 대전이 종전하면서부터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라이벌의 쇠퇴
핵무기와 공군의 발전으로 인해 요새와 요새포, 함포, 해안포등이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공성포가 상대할 라이벌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말해 주요 존재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 대체재의 등장
공군은 이미 세계대전 기간에도 지진폭탄과 융단폭격등으로 요새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그나마 명중률이 좀 떨어졌지만 그것도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에는 급격하게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서 핵무기는 좀 빗맞더라도 요새를 포함한 근처까지 싹 날려주는 위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굳이 불편한 공성포를 사용할 일이 없다.
- 보완재의 확충
단단한 목표중에는 핵무기나 공군을 사용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반적인 야포는 견디는 물건도 많다. 그러나 전후 곡사포의 발전으로 인해 그런 표적은 일반적인 포병도 상대가 가능하면서 굳이 불편한 공성포까지 쓸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유도가 되는 미사일까지 더해지면...
- 운용의 불편
공성포는 생산, 이동, 설치, 포격, 정비, 보급등 모든 면에서 인력과 비용이 다수 필요하며, 제대로 사용할 때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 모든 것을 똥파워 하나로 감내하고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21세기 시점에서 공성포는 완전히 도태되었다.
3. 평가
특수병기가 되었기에 전장의 변화를 못 이기고 사라진 무기이다.일단, 공성포가 사용되던 시절에도 실용적인 면에서는 의문부호가 항상 나타날 정도로 공성포의 운용은 힘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크기와 강력한 위력, 그리고 속된 말로 뽀대가 난다는 점에서 의외로 오래 생존한 무기다.
물론, 이것이 공성포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목표인 성이나 요새의 무력화에는 확실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목적만 노리고 만들기에는 전장의 변화가 너무 컸다는 것이 시대의 비극이었다.
[1] 대포의 제조자 '우르반'은 헝가리인이었다. 원래 동로마 제국을 구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 만들었지만, 정작 동로마 제국은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 결국 우르반은 여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대포를 오스만에 팔아버렸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대포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헝가리인이 동로마 왕궁에 가서 콘스탄티노플 성벽도 무너뜨릴 수 있는 대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비웃음만 받고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하여, 앙심을 품고 오스만 술탄의 지원 하에 대포를 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