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0:32:18

용(성씨)

홍천 용씨에서 넘어옴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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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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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한국의 용씨
2.1. 시조2.2. 인구 분포2.3. 집성촌
3. 중국의 용씨4. 실존 인물
4.1. 역사적 인물4.2. 근현대 인물
4.2.1. 북한에서의 용씨
4.3. 중국계
5. 가상 인물

1. 소개

용씨(龍氏)는 한국 및 중국의 성씨이다.

2. 한국의 용씨

본관은 홍천(洪川), 가평(加平), 용인(龍仁) 등 20여 본이 존재 하지만 모두 홍천 용씨의 분파세거지에 지나지 않는다. 시조는 고려 후기 시어사를 거쳐 문하시중을 지낸 용득의(龍得義)이다. 그는 고려 후기 팔만대장경의 제작을 총 지휘 및 감독 하였으며, 말년이 되어서 홍천군에 용수사(龍遂寺)를 창건하고 학서루(鶴棲樓)를 건립 하였다. 이후에 자손들이 그곳에 세거하게 되면서 홍천이 본관으로 되었다.

그 밖에 조선 명종(조선) 시기 야사집인 삼한습유기(三韓拾遺紀)에는 용씨와 신천 강씨가 본래 고구려 비류수(현재 중국 만주 혼강) 상류에 위치한 비류국 출신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비류국은 동명성왕의 정복 후에 오부 중 왕가를 배출한 계루부 다음으로 강대한 세력을 가졌던 연노부(비류나부)가 된다.

2.1. 시조

홍천 용씨(洪川龍氏)의 시조(始祖) 용득의(龍得義)는 고려(高麗) 때 시어사(侍御史)를 거쳐 1241년(고종 28)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만드는 불사(佛事)를 총 지휘 하였으며, 강원도(江原道) 홍천군(洪川郡) 북방면(北方面)에 용수사(龍遂寺)를 창건하여 불전(佛典) 전수와 불교(佛敎) 전파에 여생을 바쳤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홍천(洪川)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홍천(洪川)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헌(文獻)에 나타난 용씨(龍氏)의 본관(本貫)은 홍천(洪川), 경주(慶州), 양근(楊根), 용인(龍仁) 등을 비롯하여 20여 본(本)이 있으나, 이는 모두가 홍천 용씨(洪川龍氏)에서 분파(分派)된 세거지(世居地)에 불과한 것이며, 현재는 홍천(洪川) 단일본(單一本)으로 전한다.

2.2. 인구 분포

홍천 용씨는 2015년 기준 14,483명이며 용씨 전체로 따지면 총 15,276명이다.

특히 강원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 본향인 홍천군에 특히 많다. 길씨남궁씨와 비슷하게 홍천과 가까운 춘천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며, 인접한 경기도 최동단 지역이자 영서 중북부 지역인 가평군에도 용씨가 제법 사는 편이다. 경기 북부와 전남 지방에도 집성촌이 존재한다.

그 외 북한 지역에도 집성촌이 존재하는데, 미수복 강원도 지역인 철원군 철원읍에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2.3. 집성촌

3. 중국의 용씨

중국에도 용(龍)씨가 존재한다. 발음은 Lóng(룽)이다.

4. 실존 인물

4.1. 역사적 인물

  • 용연(龍 延)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제주 부사(濟州府使)를 지냈다.
  • 용검(龍 劍) -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 용허(龍 許) - 고려(高麗) 충혜왕(忠惠王) 때 태학 박사(太學博士)를 지내고 한성후(漢城候)에 봉해졌다.
  • 용해(龍 海) - 고려 충정왕 때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
  • 용세(龍 世) -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 용서(龍 緖) - 1367년(공민왕 16) 봉익대부(奉翊大夫)로 공주 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후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졌다.
  • 용희수(龍希壽) - 자(字)는 충일(忠一), 호(號)는 잠재(潛齋), 시호(諡號)는 문효(文孝). 이태조(李太祖) 잠저시(潛邸時)에 오랫동안 시종(侍從)한 공(功)으로 개국공신이 되었고, 자헌대부(資憲大夫)․검교(檢 校)․공조 판서(工曹判書)․예조 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죽으니 이태조(李太祖)가 제문(祭文)을 내리고, 1923년 8월 서울 옥수동에 대형 도통비(道統碑)가 세워졌다.
  • 용천기(龍天奇) - 자(字)는 흥운(興雲), 호(號)는 만헌(晩軒), 시호(諡號)는 충의(忠毅). 1399년(정종 1)에 승정원(承政院) 부승지(副承旨)를 거쳐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냈으며, 개국공신에 책록(策錄)되었다.
  • 용천검(龍泉劍) - 공조(工曹) 판서(判書) 천기(天奇)의 아들. 1404년(태종 14)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 용치우(龍致雨) - 자(字)는 시윤(施潤), 호(號)는 신잠재(愼箴齋). 1400년(정종 2) 제주 판관(濟州判官)을 거쳐 정순대부(正順大夫)로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랐다.
  • 용지우(龍之雨) -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 용남우(龍南雨) - 조선 세종(世宗)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사옹원 판사(司饔院判事)를 역임하였다.
  • 용복우(龍福雨) - 조선(朝鮮) 때 통례대부(通禮大夫)에 올랐다.
  • 용희우(龍禧雨) - 초명(初名)은 득우(得雨).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 용득한(龍得漢) - 조선 세종(世宗)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 용득강(龍得江) - 조선 세종(世宗)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 용득실(龍得實) - 자(字)는 덕능(德能), 호(號)는 오진(五眞), 공조 참판(工曹參判) 치우(致雨)의 아들. 1420년(세종 2)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역임하였다.
  • 용원발(龍元發) - 조선(朝鮮) 성종(成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 용흥부(龍興富) - 조선 때 판사(判事)를 지냈다.
  • 용운(龍 雲) - 조선(朝鮮) 때 계공랑(啓功郞)에 올랐다.
  • 용무(龍 霧) - 조선 때 회덕 현감(懷德縣監)을 지냈다.
  • 용보우(龍輔虞) - 조선에서 충좌위 부사과(忠佐衛副司果)를 지냈다.
  • 용서연(龍瑞衍) - 자(字)는 선방(善邦), 호(號)는 겸은(謙隱). 1466년(세조11) 진충호종공신(盡忠扈從功臣)에 책록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올랐다.
  • 용귀생(龍貴生) - 조선(朝鮮) 때 사직(司直)을 지냈다.
  • 용수연(龍守淵) - 조선에서 별정 동정(別正同正)을 역임하였다.
  • 용영호(龍永湖) -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 용회종(龍誨宗) -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 용철주(龍鐵柱) - 자(字)는 대견(大見), 호(號)는 벽담(碧潭), 판서(判書), 서연(瑞衍)의 아들. 조선 성종(成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갑산 부사(甲山府使)를 역임하였다.
  • 용만(龍 萬) - 조선 때 직장(直長)을 역임하였다.
  • 용연택(龍延澤) - 조선(朝鮮) 때 품계(品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용귀진(龍貴珍) - 조선 때 부위(副尉)를 지냈다.
  • 용진국(龍震國) - 조선조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 용영구(龍泳九) - 초명(初名)은 영해(永海).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 용상문(龍祥文) -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용언상(龍彦祥) -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용자상(龍自祥) - 자(字)는 홍구(洪九), 호(號)는 담산(담汕), 부사(府使) 철주(鐵柱)의 아들. 조선 성종(成宗) 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기자전(箕子殿) 참봉(參奉)에 추증(追贈)되었다.
  • 용계상(龍繼祥) - 자(字)는 홍원(洪元), 호(號)는 송파(松坡). 조선 때 품계(品階)가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호군(護軍)을 지내고, 절충장군(折衷將軍)으로 영흥 부사(永興府使)를 지냈다.
  • 용구천(龍九天) -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 용일손(龍日孫) - 조선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 용수장(龍粹長) - 초명(初名)은 수장(壽長), 자(字)는 순일(純壹), 호(號)는 정와(靖窩). 조선 성종(成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 용맹손(龍孟孫) - 자(字)는 한서(漢瑞), 호(號)는 도일(道逸). 조선(朝鮮)때 좌수사(左水使)를 지냈다.
  • 용영손(龍永孫) - 자(字)는 현유(賢維), 호(號)는 금서(錦西), 시호(諡號)는 충장(忠莊).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 용윤택(龍潤澤) - 자(字)는 이원(利原). 조선 성종(成宗)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용지(龍 智) - 자(字)는 인관(仁寬), 호(號)는 양우(良宇).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 장악원(掌樂院) 정(正)을 지냈다.
  • 용천(龍 千) - 조선조(朝鮮朝)에 사과(司果)를 지냈다.
  • 용치운(龍致雲) - 자(字)는 시종(施從), 호(號)는 담소(淡素). 조선에서 순릉 참봉(純陵參奉)을 역임하였다.
  • 용덕운(龍德雲) -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 용두운(龍斗雲) -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예조 참판(禮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 용응남(龍應南) - 조선에서 품계(品階)가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 용의강(龍擬江) - 자(字)는 원유(元有). 조선조(朝鮮朝)에 장례원 정사(掌隷院正事)를 지냈다.
  • 용윤택(龍允澤) - 조선 때 품계(品階)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 용연우(龍淵友) - 자(字)는 치효(致孝), 호(號)는 석천(石泉).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으며,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 용수택(龍水澤) - 조선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 용승천(龍勝天) - 조선 때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 용하성(龍夏聖) - 조선조(朝鮮朝)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이르렀다.
  • 용성하(龍聲河) - 자(字)는 기성(起聲).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4.2. 근현대 인물

4.2.1. 북한에서의 용씨

북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기에 씨가 아닌 씨라고 불린다.
  • 룡군철 - 강원도 수도여객운수국 당책임비서
  • 룡주[6] -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부회장

4.3. 중국계

5. 가상 인물


[1] 미수복 북한 지역이다.[2] 마찬가지로 미수복 북한 지역이다.[3] 용평리조트가 있는 그 곳 맞다.[4] 법명:범정, 예명:꽃스님국방일보 인터뷰[5] 용씨 유명인으로써는 사실상 인지도를 지키는 인물이라 봐도 무방하다. 또한 유일한 용씨 연예인이기도 하다.[6] 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