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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54년 12월 11일 ([age(1954-12-11)]세) | ||
| 네팔 왕국 포카라 | |||
| 국적 | | ||
| 재임기간 | 제33대 총리 | ||
| 2008년 8월 15일 ~ 2009년 5월 25일 | |||
| 제33대 총리2기 | |||
| 2016년 8월 4일 ~ 2017년 6월 7일 | |||
| 제33대 총리3기 | |||
| 2022년 12월 16일 ~ 2024년 7월 1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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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프라찬다 | ||
| 신체 | 173cm, 80kg | ||
| 소속 정당 | |||
| 약력 | 네팔 제헌의회 의원 네팔 하원의원 네팔 공산당 주석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 주석 | ||
| 종교 | 힌두교 → 무종교(무신론)[1] | }}}}}}}}} | |
1. 개요
네팔의 현직 총리이자 마오주의 정치인으로, 반군 지도자 시절에는 본명보다 프라찬다(Prachanda)[2]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고, 지금도 그의 사상을 프라찬다 노선이라 한다.2. 생애
2.1. 초창기
다할은 1954년 네팔 포카라에서 태어났는데, 계급투쟁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힌두교 카스트의 최상층인 브라흐민 집안 태생이다.다만 그의 집안은 브라흐민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해서 소작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기에, 서류상으로만 귀족이지 실질적으로는 하층민이었다.
그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자식 교육에 힘쓴 부모 덕분에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는데,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공산주의를 접해서 네팔 공산당(제4차 대회)에 입당했고, 그때부터 여러 공산주의 계열 정당 소속으로 왕정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했다.
1990년 비렌드라 국왕이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1991년부터 네팔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되자,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롯한 여러 공산주의 계열 정당들이 합법 노선으로 전환하여 총선에 참여했는데, 이는 그가 당시 소속되어 있던 네팔 공산당(연합 센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끝까지 폭력 혁명을 추구하던 다할은 이러한 지도부의 노선 변화를 수정주의라 부르며 반발했고, 1994년에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과 함께 탈당한 후 동명의 정당을 만들어 기존 소속 정당과 대립했다.
2.2. 마오이스트 반군 지도자
1996년 다할이 이끄는 당은 당명을 네팔 공산당(마오주의)로 변경하고, 인민전쟁을 선포하며 반정부 무장투쟁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그는 프라찬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다할의 당군인 네팔 인민해방군은 농촌에서 조잡한 무기를 들고 싸우느라 정부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3]를 비롯한 합법 공산당들은 오히려 그를 극좌모험주의라 비판하며 정부군을 지지했고, 마오이즘의 발상지인 중국[4]마저 그를 외면했다.
그러나 2001년 네팔 왕실 학살 이후 즉위한 갸넨드라가 선왕과는 달리 실정을 거듭하며 민심을 잃고, 급기야 2005년에는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를 해산한 후, 헌법까지 정지시키고 전제군주제로 회귀하는 폭거를 저지르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국왕의 폭정에 분노한 국민들이 네팔 인민해방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일부 정부군 장병들마저 탈영하여 합류하면서 장비 및 숙련도라는 측면에서도 정부군과 대등하게 겨룰 정도가 되었다.
2006년에 이르러서는 네팔 회의,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기존의 합법 정당들마저 공화정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네팔 인민해방군은 그 기세를 타고 수도 카트만두 외곽까지 진격하여 정부군과 교전을 벌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때 다할은 수도를 점령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을 수립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왕정 존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와 다당제 의회 참여를 전제로 정부와 협상한다는, 그 전까지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힘든 노선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갸넨드라 왕이 그 조건을 수용하여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발표하면서, 네팔 공산당(마오주의)는 합법화되어 무장을 해제하고 총선을 준비하게 되었다.
2.3. 합법 노선 전환과 1차 집권
2008년 국민투표에서 왕정 폐지가 가결되며 네팔은 공화정으로 전환되었고, 동시에 실시된 총선에서 다할이 이끄는 네팔 공산당(마오주의)는 기존에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원내정당들[5]을 꺾고 원내1당으로 약진했다.이로써 원내1당 대표로서 연정 협상에서 주도권을 쥔 그는 네팔 연방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될 수 있었다.
2.4. 퇴임 이후부터 재집권까지
2.5. 2차 집권
2.6. 2차 실각 이후
2.7. 3차 집권
2.8. 3차 실각 이후
3. 사상: 프라찬다 노선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를 변형시킨 마르크스-레닌-마오-프라찬다 노선(Marxism-Leninism-Maoism-Prachanda Path), 줄여서 프라찬다 노선(Prachanda Path)이라 불리는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4. 비판 및 논란
다할이 이끄는 마오이스트 반군은 네팔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정으로 전환되는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도 많았다.대표적인 예가 한국에서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감금됐다가 풀려나서 귀국한 인물에게 마오이스트 반군이 보상금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린 사건이다.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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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날 때 힌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술할 내용에서 청소년기 때부터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자가 되었다.[2] 독종 또는 독한 놈이라는 뜻이다.[3] 단순히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199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를 배출하며, 공산당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입헌군주국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기록을 세운 정당이다.[4]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정통성 때문에 명목상으로만 마오쩌둥 사상을 추구할 뿐, 실질적으로는 마오쩌둥 사상을 추구하지 않는 정당이 되었기에, 직접적인 도움도 안 되는 해외 마오이스트들을 지원할 이유가 없었다.[5] 네팔 회의,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국민민주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