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20:32:27

태종 이방원(드라마)/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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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인물은 태종 이방원(드라마)/등장인물 참고 }}}}}}}}}}}}

1. 개요2. 주요 인물3. 고려4. 조선
4.1. 전주 이씨 가문4.2. 여흥 민씨 가문
4.2.1. 민제4.2.2. 삼한국대부인 송씨4.2.3. 민무구4.2.4. 민무질4.2.5. 민무휼4.2.6. 민무회
4.3. 관료
4.3.1. 이성계 계열
4.3.1.1. 정도전4.3.1.2. 남은4.3.1.3. 윤소종4.3.1.4. 심효생4.3.1.5. 조사의
4.3.2. 이방원 계열4.3.3. 기타 관료
4.3.3.1. 박위4.3.3.2. 박포4.3.3.3. 전가식4.3.3.4. 구종수4.3.3.5. 심온4.3.3.6. 김한로4.3.3.7. 강상인
4.4. 궁궐 사람들
4.4.1. 어의4.4.2. 내관, 상궁
4.4.2.1. 김 내관4.4.2.2. 이 내관4.4.2.3. 상궁4.4.2.4. 박 내관4.4.2.5. 정 상궁4.4.2.6. 송 내관4.4.2.7. 윤 내관
5. 명나라
5.1. 홍무제
6. 그 외 인물

1. 개요

KBS 대하드라마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에 대한 문서.

2. 주요 인물

주요 인물
파일:태종 이방원_이방원.jpg
파일:태종 이방원_이성계.jpg
이방원 이성계
파일:태종 이방원_민씨.jpg
파일:태종 이방원_강씨.jpg
원경왕후 민씨 신덕왕후 강씨

3.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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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

4.1. 전주 이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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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여흥 민씨 가문

어째 가장 민제와 삼남 민무휼을 제외하면 다들 상당한 눈새들이다. 특히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왕실 후계자 문제를 사사로이 논할 정도로 간이 큰 모습을 보여줬으며, 막내인 민무회는 세자인 양녕 면전 앞에서 "삼촌들 죽이고 세자자리 유지해놓고 뻔뻔하게 말도 잘하십니다!" 식의 뉘앙스로 망언스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1] 이로 인해 이방원의 눈밖에 나며 민제 사후 본격적으로 집안이 박살나기 시작한다.

4.2.1. 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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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구
여흥부원군 민제
驪興府院君 閔霽
[[민제(태종 이방원)|
파일:태종 이방원_민제.jpg
]]
배우
김규철

4.2.2. 삼한국대부인 송씨

삼한국대부인 송씨
三韓國大夫人
파일:삼한국대부인(태종 이방원).jpg
배우
이응경
원경왕후와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의 어머니이자 태종의 장모.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 등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아예 등장이나 언급조차 되지 않는 등 존재감이 매우 적었지만[2] 이 작품에서는 존재감이 제법 크고 1화부터 등장하여 최종회까지도 등장한 몇안되는 인물들 중 하나다. 딸 못지 않게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종합적인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은 딸과 남편보다 떨어지고, 집안의 단편적인 이익에 치중하는데, 이것이 민씨 가문을 파멸로 몰아 넣는다.

여흥 민씨 가문이 나서서 이방원을 돕는 이유는 단지 사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을 왕비로 만들고, 손자를 세자로 세우기 위함이란 야심을 드러내는 등, 이쪽도 평범한 여성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성미가 급해서 스스로 화를 불러 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위험한 말을 경솔하게 하는데, 이는 네 아들들이 말을 함부로 했다가 꼬투리 잡혀 숙청당한 사례들을 연상시킨다.[3] 아무래도 자식들의 행보를 모티브로 송씨의 캐릭터를 잡은 듯하다.

17화에서 외손자에게 손수 유과를 먹이다가, 외삼촌들이 어딜 갔냐는 질문에 너를 귀한 자리에 올리는 일을 하느라 외삼촌들이 오늘은 바쁘고, 외삼촌들이 놀아주던 일이나 자신과 이렇게 맛있는 걸 먹던 걸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4]

그러나 민씨가 자신의 야심을 태종에게 밝힌 것에 남편인 민제와 더불어 딸을 걱정했는데, 결국 그 일을 계기로 태종이 딸이 아닌 다른 여인들과 정을 통하게 되자, 민씨의 그런 상황에 딸 앞에서 눈물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23회에서는 민제가 사헌부에 압송된 후 민씨 문중을 모아 대책을 논하지만, "지금은 물러나는 수 밖에 없다.", "중전마마만 버티시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란 말만 듣고 마땅한 대책은 찾지 못한다. 결국 민제가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풀려나게 되지만 25회에서 태종의 승은을 입은 가문의 여종이 만삭의 몸이 된 것을 보고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방해 속에서도 여종은 무사히 아기를 낳고 항간에 왕의 씨가 버려졌다는 소문이 퍼져, 황희를 통해 이 소문이 이방원의 귀에도 들어가서 여종은 궁으로 들어간다.[5] 후에 이 여종은 태종의 후궁 효순궁주 김씨가 된다.

극중에서 효빈 김씨 일은 확실히 불필요한 무리수였는데, 설령 경녕군이 태어난다고 해도, 정통성에 있어서 원경왕후 소생인 이방원의 세 적자들을 절대 넘지 못한다. 애초에 이방원부터가 이복동생 이방석에게 밀려 세자가 되지 못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인물인데, 적자가 서자에게 서열이 밀리는 분란을 자신의 대에서 대물림할 리가 없다.[6] 만약이라도 서자가 후계 구도에 들게 된다면 그건 적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인데, 원자 아래로 동복 형제가 둘이나 더 있으니 웬만해선 그럴 일도 없다. 그렇기에 원경왕후와 원자에게 전혀 위협이 될만한 자식이 아닌데도 어리석게 행동한 것이다. 그저 원경왕후의 질투심을 생각한답시고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단초를 일으킨 것이다.[7] 이후 26회에서 두 아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이 태종의 양위 파동 함정에 걸려들어 유배를 당하자 민제와 함께 오열을 하며 아들들을 떠나 보낸다. 이어서 27회에서는 남편인 민제마저 세상을 떠났다.

28화에서 사망한 무구와 무질의 장례를 치르는데 오열하는 남은 아들들 옆에서 눈물마저 말라버리고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29회에서 나머지 아들들까지 숙청되고 그 이유를 알자 모두 자신이 벌인 일 때문이니 자신을 대신 죽이라며 딸인 민씨 앞에서 오열한다.

31회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궁을 나온 딸 원경왕후를 통해 언급된다.

32화에서 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을 단속하지 못해 이리된 것이라며 슬퍼한다. 딸이 눈물을 닦아주며 상왕 전하는 원래 그런 분이시라며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해준다.[8]

4.2.3. 민무구

민무구
閔無咎
파일:민무구(태종 이방원).jpg
배우
김태한[9]
원경왕후 민씨의 첫째 동생. 작호는 여강군(驪江君). 넌씨눈 1호
6회 이후 동생과 함께 누나의 부탁으로 궁궐 내 정보를 수집해 매형과 누나에게 알려준다. 18회에서 반란 주동자들과의 축하연에서 민씨 집안의 공을 과시한다.

20회에서 동생 민무질과 함께 사병혁파에 반대하면서 이방원의 외척 견제의 발단을 열게 된다.[10] 이후 사병혁파에 찬동하라는 아버지 민제의 말에 반발하지만 누나인 세자빈 민씨의 결정이라는 말에 결국 따른다.

이후 태종의 즉위식에서의 선언이 자신들 여흥 민씨 가문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라는 것을 아버지 민제로부터 듣고 처음엔 그럴 리가 없다면서 부정하지만 민제가 거듭 진의를 확인시켜주자, 자신들은 태종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헌신한 것 밖에 없는 데 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다 민제가 전가식 사건으로 사헌부로 가게 되자, 민씨를 만나기 위해 중궁전에 왔다가 텅빈 중궁전의 모습과 누나의 처지를 보고 화를 내면서 민씨에게 민제에 대한 소식을 알려준다.

24화에서 조사의의 난이 발발한 이후 원경왕후와 전황에 관한 논의를 나누는데 "병력을 많이 데려가지 않은 주상이 전장에서 변고를 당하면 남도에서 올라온 대군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원자가 보위에 올라 민씨 가문이 정국을 주도하면 된다"라는 대놓고 역모의 소재가 다분한 앙녕대군의 보위를 운운했다가 원경왕후로부터 한소리 듣는 장면[11]으로 숙청 당할 빌미를 누적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5회에서도 이방원을 도우러 떠났다가 돌아온 동생 민무질에게서 태종의 충고를 듣고 분노하나, 송씨가 태종의 아이를 임신한 김씨와 그 아이를 처리하려하는 것에 대해선 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민씨에게 이에 대해 말을 듣고, 쫓겨난 김씨를 다시 데려와서 잘 보살피란 명을 받는다.

26화에서 태종의 양위 파동에 휩쓸려 동생 민무질과 함께 탄핵되어 유배형을 당한다. 나름 침착하게 민씨의 충고를 받고 엎드려 있는듯 했으나 이숙번의 바람잡이에 넘어간 민무질의 말을 듣고 자신도 양위가 진심이라고 믿게 되어 양위를 거둔 뒤에 표정 관리가 안 돼서 다른 관리들은 다 기뻐하면서 천세를 하는데 반해 둘만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천세도 외치지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이숙번, 하륜에게 꼬투리가 잡히고 만다.[12] 이어서 조영무에 의해 동생과 함께 사헌부로 끌려가고 사헌부의 탄핵 결과 보고에서 충녕의 어짊을 보고 세자 외에 영특한 왕자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까지 까발려져서 결국 동생 민무질과 함께 유배형을 당한다.

27회에서 자신들이 직접 키우다시피 했던 조카 양녕대군이 충격적이게도 원경왕후의 부탁을 등지고, 이방원에게 자신들의 극형을 주장하면서 최악의 배신을 당한다. 28회에서는 유배지에서 동생 민무질과 나란히 사약을 대면한다. 모든 걸 체념했는지[13] 동생에게 어서 마시자고 하지만 민무질이 자신이 이걸 왜 마셔야 하냐며 왜 죽어야 하냐고 악에 받혀 소리치자, 우리가 이 사약을 마셔야지 남은 가족들이라도 무사할 수 있다며 설득한다.[14] 이에 민무질이 눈물을 글썽이며 형님이라고 소리치자, 사약을 직접 들고 "너 먼저 보내고 나도 따라갈테니 어서 마셔라."라고 한다.

결국 사약을 마시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동생을 품에 안고 슬퍼한다. 이내 마지막까지 자신의 누나를 걱정하며[15] "중전마마, 부디 강녕하시옵소서."라는 유언을 남기고 곧바로 자신도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해당 배역을 연기한 배우 김태한은 주석에 서술된 것처럼 본작에서 하륜으로 출연하는 남성진 배우의 처남인데, 작중에서 민씨 가문을 공격하는 것이 민무구에겐 매형인 방원의 사주를 받은 하륜이라는 점에서 참 묘한 그림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4.2.4. 민무질

민무질
閔無疾
파일:민무질(태종 이방원).jpg
배우
노상보
원경왕후 민씨의 둘째 동생. 작호는 여성군(驪城君).
첫 화에서부터 회군을 한 이성계의 가족들을 잡아오라는 우왕의 명을 받은 군관과 병사들이 집으로 오자, "여기가 누구 집인 줄 아느냐, 예의판서 댁이다"라고 가문의 위세를 내세우며 관병들을 윽박지른다. 이후 형과 더불어 매형과 누나를 돕는 모습을 보여준다.

13화에서 형 무구와 함께 어린 조카와 목검으로 장난스럽게 칼싸움 놀이하다가 찔려 죽는 시늉을 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자가 된 이방원이 사병 혁파를 안건으로 내밀자 형 민무구와 함께 반대하면서, 사병의 위험성에 대해 이방원이 설명하자 그럼 다른 공신들의 사병은 뺏더라도 민씨 가문의 사병은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날을 세운다.

이후 태종의 즉위식에서의 선언이 자신들 여흥 민씨 가문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라는 것을 아버지 민제로부터 듣자, 매형이 누구 덕에 왕이 되었는데 그런 말을 하냐며 반발하다가, 아버지 민제로부터 더 이상 그를 매형이라고 칭하지 말고 자중하라는 경고를 듣는다. 그러나 이후에 원경왕후가 책봉되고 나서 태종에게 모멸을 당하자 집에서 이야기할 때 이미 즉위한 이방원을 또 매형이라고 부르면서 민제의 경고대로 전혀 자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24화에서는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태종이 친정을 감행하자, 중전 민씨에게 적은 군사만 거느리고 간 태종이 변고를 당하면 남도에서 곧 도착할 군사가 반란군보다 수가 많으니 이를 활용해 반란군을 진압하고 원자를 보위에 올리면 된다고 선을 넘은 소리를 하다가 민씨로부터 정신이 나간 소리를 한다면서 꾸지람을 듣는다.

25화에서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고 태상왕을 태종과 함께 호종하고 돌아오면서, 중전 민씨가 태종의 안위를 밤낮으로 걱정했다며 어필을 하는데, 태종이 대뜸 그럼 여성군은 무슨 생각을 했냐며 의표를 찌르고, 민무질은 당황한다. 태종이 "처남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니 마음가짐을 고치는 게 좋을 것"이라면서 자신에게 불만이 많겠지만 국왕으로서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해해달라는 말을 듣고 돌아온다. 이에 대해 자신은 전하를 구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왔는 데 돌아오는 건 차가운 경고 뿐이라며 사가에서 불만을 표출한다.[16]

태종이 양위 파동을 벌이기 전 이숙번이 찾아와 섭섭한 것 용서해달라면서 아부를 하고, 양위 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태종의 본심을 알아챈 민씨와 민제로부터 자중하고 끝까지 엎드려 있으라는 충고를 들었으나, 첫날 밤을 새는 와중 이숙번이 다시 찾아와 바람잡이를 하자 태종의 양위가 진심인 줄 알고 김칫국을 들어마시다가, 결국 태종이 양위를 거둬버리자 유독 형과 함께 안색이 굳어지고 천세를 외치지 않은 것을 본 하륜과 이숙번에게 지적을 받고, 곧 조영무에 의해 사헌부로 압송되어 갖가지 죄상으로 탄핵되어 형 민무구와 함께 유배형을 당한다.

28화에서 사약을 먹고 형 민무구와 저 세상으로 간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냐며 마지막까지 반발하는데, 우리가 희생해야 가문이 살 수 있다는 형 민무구의 설득에 먼저 사약을 마시고 형의 품에 누워 사망했고, 잠시 후 형 역시 누나에게 유언을 남긴 뒤 곧바로 사약을 마시고 동생의 뒤를 따랐다.[17]

그래도 숙고하는 장면이 좀 있는 형과 달리 시종 성급하고 감정적인 모습을 표출하는데, 형과 동생이 반대로 뒤집히긴 했지만 용의 눈물에서도 이미 쓰였던 작법이다.[18] 동생이라서 그런지 민씨 형제에게 포커스가 주어지면 민무구보다 민무질을 감정적인 캐릭터로 묘사하는 편이다.

4.2.5. 민무휼

민무휼
閔無恤
파일:태종 이방원 민무휼.jpg
배우
이규영 扮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동생.4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눈새가 아니다

27화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전하가 우리 가문에 칼끝을 겨누고 있으니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28화에선 위의 두 형이 사사당한 후 관직을 받게 되며 사망 플래그가 찍힌다. 본인도 이게 함정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라서 3년상을 이유로 고사하였다고 하였으나, 계속 어명이 내려지는 바람에 더 거부하다간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를 받을 판이라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고 말한다. 입궁한 이후에도 세자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민무회를 뜯어말리는 등 민씨 4형제 중에선 그나마 눈치가 있고 제일 덜 나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국 효순궁주가 태종에게 경녕군과 자신이 민씨 일가에게 당한 일을 고변하면서 그 배후로 지목되어 잡혀들어가고, 동생과 함께 압슬형을 당한다.[19] 그리고 동생이 양녕대군을 탓했던 것을 양녕대군이 그대로 고해바치는 바람에 둘 다 유배를 갔고,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유배지에서 자결했음이 암시되었는데, 태종이 자결로써 죄를 씻을 수 있는 선택을 허용해주라며 사실상 종용하듯 명을 내렸기 때문.[20]

사실 이 드라마만 놓고 보자면 이 두 형제는 정말 억울한 것이, 효순궁주가 당한 일은 민무휼, 민무회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집안의 가장인 민제도 알지 못했을 정도인데다 민무구 마저도 우려했을 정도로 어머니인 송씨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기 때문. 민무휼로서는 "어머니가 혼자서 한 일"이라고 사실대로 고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자식이 부모를 고발한 셈이 되어 빼도 박도 못할 패륜이 되어버리므로 역시 극형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동생은 하다못해 세자를 비난한 죄라도 있지 민무휼은 그마저도 뜯어말렸는데 한 세트로 묶여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다. 민무휼의 잘못이라면 그저 민씨가문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을 정도. 태종이 2차 민씨 숙청을 감행하면서 자신에게 비는 원경왕후에게 저들은 중전의 아우가 아닌 이름 없는 외척, 내가 만들려는 국가엔 없어야 하는 불행한 생명이라고 규정하는데, 그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이다.

4.2.6. 민무회

민무회
閔無悔
파일:태종 이방원 민무회.jpg
배우
강태우 扮

원경왕후 민씨의 넷째 동생. 넌씨눈 3호

27화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전하가 우리 가문에 칼끝을 겨누고 있으니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28화에선 위의 두 형이 사사당한 후 관직을 받게 되며 민무휼과 마찬가지로 사망 플래그가 찍힌다. 게다가 세자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며[21] 플래그를 더욱 단단히 다지는 등 민무휼에 비해 처세술이 훨씬 부족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결국 효순궁주가 태종에게 경녕군과 자신이 민씨 일가에게 당한 일을 고변하면서 그 배후로 지목되어 잡혀들어가서 형과 함께 압슬형을 당한다. 그리고 자신의 실언을 양녕대군이 태종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그대로 형과 함께 유배를 갔으며,[22] 유배지에서 형과 함께 자결한 듯.

비록 세자에게 한마디 한것이 실수였긴 했지만 민무휼과 마찬가지로 불쌍하기 짝이없다. 민무휼 항목에도 나오듯이 효순궁주의 일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고[23] 두 형이 유배를 간 후에는 정말 쥐죽은 듯이 살려고 했기 때문.

바로 윗형과 더불의 태종의 표현대로 그저 불행한 생명들이었던 것이다.

4.3. 관료

4.3.1. 이성계 계열

4.3.1.1. 정도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정도전(태종 이방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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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
三峰 鄭道傳
[[정도전(태종 이방원)|
파일:태종 이방원_정도전.jpg
]]
배우
이광기
4.3.1.2. 남은
남은
南誾
파일:태종이방원 남은.png
배우
이기열[24]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최종 작호는 의성군(宜城君).

2회에서 조준이 조민수를 탄핵할 때 얼굴을 비추며 등장했고, 동지인 정도전, 조준, 윤소종 등과 함께 혁명에 동참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5회에서 윤이와 이초 사건을 빌미로 공양왕에게 이색, 권근 등 혁명 반대파들을 국문할 것을 요청한다.

7회에서 이성계의 낙마 사고로 인해서 정몽주 측 대간들의 탄핵 상소로 인해 조준, 윤소종과 함께 궐에서 쫓겨나 곤장을 맞는다.

조선 건국 후, 이방원을 경계한 중전 강씨의 모략 때문에 정도전과 함께 강씨의 호출을 받아 중궁에 무장을 한채로 대기하다가, 문이 열리고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놀란다. 민씨는 이후 이방원에게 정도전만 언급했지만, 이 때 남은 또한 목격했을 터이니 이후 제거의 빌미가 될 듯하다.

이후엔 정도전과 함께 얼굴을 비추면서, 중전 강씨의 승하 후, 세자를 지키기 위해선 왕자와 종친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정도전에게 조언한다.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하늘에 맡기자며 관망하게 되는데, 결국 16화에서 이방원이 무인정사를 일으키자, 정도전, 심효생 및 다른 대신들과 더불어 자신의 첩실에 모여있다가 신속히 정도전과 함께 대피하여, 일단 거사일 밤에는 무사히 도주하여 살아남는다. 이방원은 남은의 도주 소식을 듣고도, 지금 당장 그를 찾을 필요는 없다면서 신경 끈다.

결국 17회에서 자신이 전주 이씨를 위해 세운 공을 인정해달라, 즉 살려달라며 자진출두한다.[25] 하지만 이방원은 공은 공이요 죄는 죄라며, 죄는 목숨으로 씻고 역사에 공만 남기라며 대꾸하고 남은을 주저없이 베어버렸다. 그래도 죽고 난 뒤 산에 버려진 신세가 된 정도전에 비하면 형인 남재가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는 치르게 되었으니 그나마 나을지도.[26]

위의 이방번이 실록에 가깝게 묘사된 것처럼[27] 남은 역시 그간 여말선초 드라마에서 정도전과 함께 죽거나 반대파와 싸우다 죽었는데, 도망갔다가 자신은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해 돌아와서 죽임을 당하는 여말선초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실록에 가깝게 연출되었다.[28]
4.3.1.3. 윤소종
윤소종
尹紹宗
파일:태종 이방원_윤소종.jpg
배우
박유승[29]
여말선초의 정치가.

2회에서 조준이 조민수를 탄핵할 때 얼굴을 비추었다.

3회에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와의 회동에도 참여한다.

4회에서는 공양왕과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공양왕이 조정의 수장으로 등용한 이색과 변안열에 대한 탄핵을 하지만, 공양왕이 이방원의 압박에 더 나아가서 우왕 부자를 죽일 것이라 말하며 이미 사람을 보냈다고 하자, 기뻐하는 다른 당여들과는 달리 죽여도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뒤에 죽여야 되었다고 말하며 조준과 더불어 우려를 표한다.

5회에서서는 권근을 위험한 인물로 보며 이색과 더불어 그를 심문할 것을 주장한다.

6회에서는 정도전의 탄핵 상소가 올라오자 반박 의견을 냈지만 공양왕에게 묵살당하고 결국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후 이지란에게 "이성계 대감은 왜 안 보이시냐?"면서 "이래서야 이성계 대감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표한다.

7회에 이성계의 낙마 사고로 인해서 정몽주 측 대간들의 탄핵 상소로 인해 조준, 남은과 함께 궐에서 쫓겨나 채찍질을 받는다. 이후 복귀해서 다른 대신들과 함께 한다.

9회에서는 세자 책봉을 위해 대신들의 의견을 물은 태조에게 적장자인 이방우가 마땅하다는 말을 하지만, 이성계는 이를 묵살한다.

10회에서는 왕비와 세자가 된 강씨와 이방석을 맞이하는 것을 마친 뒤 조준, 민제와 강씨의 무서움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민제에게 강씨가 왕위에 가장 가까이 갔던 정안군을 예의주시할테니 몸을 낮추라는 조언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1회에서는 병조전서로서 명나라에서 보낸 칙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후 사신으로 떠나는 정안군 이방원과 남재를 다른 대신들과 배웅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극에서 퇴장한다.[30]
4.3.1.4. 심효생
심효생
沈孝生
파일:태종 이방원 심효생.jpg
배우
이경영[31][32]

정도전 계파의 신료중 한 명이자 현빈 심씨[33]의 아버지로, 세자 이방석의 장인.

16회에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남은의 첩 집에서 정도전 일파와 함께 술을 마신다. 이 때 이숙번의 군사들이 쳐들어오자 정도전, 남은 등은 황급히 도망쳤지만, 심효생은 너무 취했던 탓에 도망치지 않고 자기가 세자의 장인이라며 술주정을 부리다가 이숙번의 칼에 맞아 죽는다.[34]
4.3.1.5. 조사의
조사의
趙思義
파일:조사의(태종 이방원).jpg
배우
정의갑[35]
21회에서 첫 등장. 안변부사로서 이성계의 명령에 따라 병장기와 식량을 모으고, 동북면서북면의 군사들을 소집하라는 명을 받는다.

23화에서는 서북면의 군관들을 포섭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서북면 장수들에게 태상왕의 수결 문서를 보여주면서 설득하고, 태상왕 전하를 다시 용상에 앉히게 되면 자신들도 변방에서 썩지 않고 조정의 대신들로 영전하는 것이라고 기대감을 부풀린다.

24화에서 조사의의 난이 벌어지는데 이성계보다는 조사의가 전면에 나서서 난을 주동하며 이천우를 패퇴시키고 승승장구하여 이방원이 직접 출정해야될 정도로 이방원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25화에서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붙잡힌뒤 이방원이 일부러 잡은 포로들을 풀어줘서 이 포로들로 하여금 태상왕이 잡혀있다는 사실이 남은 반란군들에게 퍼지게 하는 심리전으로 인해 세력이 급속도로 와해되어 이숙번과 박은에게 포위당하며 붙잡혀 처형당한다.

4.3.2. 이방원 계열

4.3.2.1. 조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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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공신
한산부원군 조영무
漢山府院君 趙英茂
[[조영무(태종 이방원)|
파일:태종이방원 조영무.png
]]
배우
김법래
4.3.2.2. 조영규
조영규
趙英珪
파일:태종 이방원_조영규.jpg
배우
김건 扮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이방원을 도와 선죽교 사건을 벌인 인물.

이성계의 휘하에서 전공을 쌓은 것을 시작으로 고려 말에는 판위위시사에 이어 판전객시사를 지냈으며, 조선 건국 직후에는 예조전서에 이른다. 정몽주 암살 건 때문에 대하드라마에서 항상 이방원의 심복이자 암살자 쯤으로만 나왔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이성계 휘하의 무장으로 묘사된다. 다만 상술했듯 조영규가 당시 판위위시사라는 대신급의 관직을 지내기도 했고 조선 건국 후에는 예조의 전서[36]까지 맡았던 인물이었던 만큼 적어도 무장을 한 장수로 나왔어야 하는데, 이전 작품들의 그처럼 평복 차림의 무사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 역사에 기록된 자신보다 두 품이나 아래 직급인 이방원을 서방님이라 부르는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다소 아쉬운 묘사라고 할 수 있겠다.

1회에서는 개경 공성전에서 조영무와 함께 선봉에 서서 성벽을 올라가고 성문을 여는 공을 세운다.

2회에서는 군영을 찾아온 이방원에게 인사하다가, 그의 지시에 따라 휘하의 가별초 50명을 데리고 이성계의 자택으로 가서 이미 싸우고 있던 조영무와 더불어 우왕의 환관 부대와 싸워 이기고 이 사실을 다음 날 회군파 장수들에게 전한다.

7회에서는 이성계를 따라 가별초 병력과 나섰다가 낙마 사고가 발생하자 이방원의 부인 민씨에게 소식을 전달한다. 이후 개경으로 복귀한 후에 다른 가별초 병력과 함께 평상시보다 더 삼엄하게 경계한다.

8회에서는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몽주 살해 사건에 동참한다. 이후 조영무와 함께 이성계에게 사죄한다. 이성계는 이들이 이방원의 명을 그대로 따른 것을 알았기에 용서한다. 그 뒤 조영무와 더불어 이방원 형제의 출입을 막다가 이성계가 즉위한 후에는 조영무가 그를 호위하는 이로서 같이 움직이는지라 저택 경비를 홀로 맡게 되는데, 이방원이 이방석의 세자책봉 소식에 격분해서 자신이 경고차 검까지 들이댔음에도 저택을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12회에서는 태조의 명을 받고 조영무와 함께 섬에 유배된 왕씨 학살을 주도했다. 그나마 숨어있던 어린아이까지는 차마 죽일 수 없었는지 모른체 했고, 그 어린 왕씨는 도망쳤지만 곧바로 조영무가 화살로 죽여버리면서 허탈해한다. 계속되는 학살에 쌓이는 왕씨들의 시체를 보면서 차라리 왜구와 싸우게 해줬음 좋겠다며, 이런 짓은 정말 싫다고 진저리를 친다. 이에 옆에 있던 조영무는 어명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하지만, 꿈에서 철퇴를 맞고 쓰러진 정몽주가 언제부턴가 나타나면서 아무래도 정몽주가 데려갈 거 같다고 하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제는 칼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며 조영무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물러나며 극에서 퇴장한다.[37]
4.3.2.3. 조준
조준
趙浚
파일:태종이방원 조준.png
배우
노영국[38]
조선의 개국공신, 정사공신으로 최종 작호는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2회에서 첫 등장해 4회에서는 공양왕이 우왕과 창왕을 처형하라고 하자 다른 당여인 남은과 무장 출신인 이화와 이지란이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성계가 그 왕명을 막으려고 했던 모습에 의문을 가지자, 사람들은 우리가 죽인 걸로 보고 욕할 거라며 말하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윤소종과 더불어 앞날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5회에서 이방원이 듣고 온 소식에 낙담하면서 청주로 가려는 정도전을 말린다.

7회에서 이성계의 낙마 사고로 인해서 정몽주 측 대간들의 탄핵 상소로 인해 남은, 윤소종과 함께 궐에서 쫓겨나 단근질을 받는다.

9회에서 이성계의 즉위 후 이방원에 대해 그 덕분에 살았다고 하며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세자 책봉 회의에서도 "평화로운 시기에는 장자를, 지금 같은 격동기에는 공이 많은 왕자를 (세자로) 세워야 한다"라는 논리로 이방원을 지지하지만 문 밖에 있던 신덕왕후가 나서 이방석이 세자가 안 될 이유가 뭐냐고 따지자 어쩔 수 없이 물러선다. 이후 강씨와 이방석이 왕비와 세자로서 궁에 오자 이성계와 더불어 다른 대신들과 함께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 뒤 민제, 윤소종만이 있는 자리에서 현재 왕과 차기 왕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며 강씨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3회에서, 중전 강씨가 승하한 후, 이성계의 극한으로 치솟은 경계심 때문에 사리고 있는 이방원에게 찾아가 대학연의 등 제왕의 도리를 가르치는 서책들을 전달하며, 제왕학 때문만으로 대학연의를 읽는 것은 아니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고언함과 동시에, 목숨을 구해준 대가에 보답드리고 싶다는 성의를 표한다.[39]

17회에서 도당과 삼군부를 장악한 이방원이, 명망이 있는 조준같은 인사가 필요했기에 그를 도당에 데려오게 한다. 이후 하륜과 이숙번, 민제의 은근한 겁박으로 권근과 함께 이방석을 폐세자시키고 이방번과 함께 유배를 보내자는 상소를 올린다. 이후 태종 즉위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극에서 퇴장한다.[40]
4.3.2.4. 권근
권근
權近
파일:태종이방원 권근.jpg
배우
김영기[41]

조선의 좌명공신. 작호는 길창군(吉昌君).

5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윤이·이초 사건으로 인해 스승인 이색과 함께 정도전 일파에게 국문을 당하고 청주옥에 갇혔다가 많은 비가 내려 관아가 물에 잠겼지만, 스승과 다른 이들과 함께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생존할 수 있었다.

12회에서 민제가 설득한 고려 유신 중 한 명으로 재등장하여 하륜과 함께 조선 조정에 출사한다. 정도전이 민제에게 겨우 이런 인사들을 데려오려고 이 고생을 했냐며 자신들을 디스하자, "대감의 신하 노릇 하려 온 건 아니자 전하를 보필하려고 온것이 신경 끄라"며 응수한다.

13회에서 명이 표전문을 문제 삼아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요구를 해오자, 이를 왕과 대신이 논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가서 명 황제에게 해명을 하겠다면서 자원한다. 이후 명에 갔다왔는지 14회에 돌아와서 아무리 해명을 해도 명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억류되어 있던 조선 사신을 모두 죽였다고 이성계에게 통곡하며 보고했다. 무인정사가 일어난 직후에는 조준과 더불어 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 도성을 떠나게 할 것을 이성계에게 주청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21회에서는 민제의 지시로 역사대로 사병혁파를 주장하는 상소를 작성하고 이를 방원과 대신들 앞에서 읽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태종 즉위 후인 22회에서는 민씨의 중전 책봉 문제를 처음으로 꺼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민씨의 중전 책봉 교서를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가례색을 설치하려는 이방원에게 그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며 그의 결정을 재차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7회에 오랜만에 등장해 태종의 생일 연회에 참석했고, 뒤이어 태조가 죽자 궐에서 다른 신료들과 통곡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극에서 퇴장한다.[42]
4.3.2.5. 남재
남재
南在
파일:태종 이방원 남재.jpg
배우
박칠용[43]

남은의 형이자 조선의 개국공신. 작호는 의령부원군(宜寧府院君).

9회에서 이성계의 즉위식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11회에서 밀직제학으로서 이방원과 같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된다.

12회에서 풀어야 할 외교 현안에 대해 이방원에게 설명해주고, 이방원이 황제와의 1차 대면을 마친 이방원에게 잘하셨다고 격려한다. 귀국 후에도 이성계의 앞에서 외교 문제 해결의 공로를 이방원에게 돌린다. 이후 남재가 친이방원파가 되어 무인정사 때에도 생존하는만큼 이 때 호감을 표하는 식으로 인연을 쌓는 묘사가 되고 있다.

13회에서 표전문을 빌미로 명에서 정도전을 보내라고 압박하자 "정안군은 왕자 신분임에도 명에 직접 사신으로 가서 외교현안을 해결하고 왔는데 신하인 정도전은 어째서 자신이 초래한 문제임에도 뒤에 숨으려 드느냐"라고 일갈하며,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관계를 위해서라도 정도전이 직접 명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를 위기로 몰아넣으면서 정안군 라인에 섰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17회에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동생 남은이 정도전 일파였던지라 빌미를 잡혀, 하륜과 이숙번에게 조정의 여론을 이방원쪽으로 유리하게 조성하라고 반 협박을 받는다. 이에 자신은 아우와 오래 전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고 변명한다. 결국 자진출두한 아우 남은이 참살되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고 소리조차 못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이방원이 자신에게 남은의 시신을 수습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루라고 하자 연신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우의 장례를 허락받으면서 남은의 시신을 부여잡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마지막으로 극에서 퇴장한다. 자신과 가는 길이 달랐다며 변명하긴 했지만 나름의 형제애는 있었던 듯.

역사대로라면 세종 1년에 죽기에 극후반까지 나올법도 했지만[44][45] 1차 왕자의 난이 끝난 이후로 별다른 비중도 언급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30회에서 이숙번이 대신에게 상소문에 연명을 요구하는 장면에 역사대로 성석린과 함께 남재의 이름이 쓰여 있다.
4.3.2.6. 하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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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공신
진산부원군 하륜
晉山府院君 河崙
[[하륜(태종 이방원)|
파일:1638498544521_351595.jpg
]]
배우
남성진
4.3.2.7. 이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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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공신
안성부원군 이숙번
安城府院君 李叔蕃
[[이숙번(태종 이방원)|
파일:태종 이방원_이숙번.jpg
]]
배우
정태우
4.3.2.8. 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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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朴訔
파일:박은.jpg
배우
이현균
4.3.2.9. 황희
황희
黃喜
파일:황희(태종 이방원).jpg
배우
강지섭
25회에서 좌부대언 직책으로 첫 등장. 태종에게 지금 사가에서 왕의 씨가 길바닥에 버려져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보고를 하였고,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아 민제의 사가를 수색하여 여종 김씨와 아이를 궁으로 데려온다.

26회에서는 지신사[46]로 영전했다. 양위 선언을 한 태종의 지시에 따라 옥새를 동궁전으로 가져간다. 세자가 옥새 받기를 거부하고 달아나자 동궁전에 놓아두고 나와 태종에게 진심을 묻는다. 자신의 속내를 들으면 비밀로 지킬 자신이 있냐는 태종의 물음에 지신사로서 군왕의 속까지 알아야 올바른 대응이 가능하며 반드시 비밀을 지킬 것이라 다짐하고 속내를 듣게 된다.[47] 태종의 본뜻을 들은 뒤에는 민씨 형제를 쳐내는 양위쇼에 착실한 조연으로 활약했다.

28회에선 다른 신하들이 퇴궐하는 중 중전을 마주치자 말없이 인사만 하고 물러날 때, 홀로 '민씨 형제에게 자진하라는 명이 내려졌다'는 걸 원경왕후에게 알려준다. 이후 사헌부 대사헌이 되어 민씨 일가의 측근들을 쳐내는 역할을 유정현과 맡고 이 과정에서 하륜의 비리를 포착한다.[48]

30회에선 궁 밖으로 쫓겨난 세자를 변호하며 태종에게 세자를 다시 불러들일 것을 간언하는데, 이때 태종이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냐고 묻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한다.[49] 그 후 충녕의 부름을 받고 충직하고 올곧은 청백리들을 지지하고자 한다는 모임에 초대되었으나 세자가 아닌 충녕이 정사에 관심을 두는 것과 심지어 유정현이 충녕에게 정사에 더 관심을 두라고 권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술을 마신다.[50] 30회 말미에는 기어이 어리를 다시 궁에 들여보내고 주색잡기를 하다 원경왕후에 들켜 꾸지람을 듣는 세자를 보고 크게 실망한 태종이 정2품 이상의 문무관을 부르라고 명하고 세자 교체를 논할 것이라는 명을 받고 유정현과 함께 크게 당황한다. [51]

31회에서 적장자 계승의 원칙을 내세워 양녕대군을 지지한다. 같은 날 밤에도 태종에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그로 인해 벌을 받아야한다면 마땅히 그리하겠다고 한다. 이 일로 태종에게 세자를 감싼 죄로 유배형에 처해지면서 극에서 퇴장한다. 32회 한 회에 심온, 원경왕후, 태종의 죽음이 빡빡하게 나오면서 황희의 복귀는 나오지 않았다.

담당 배우 강지섭이 웬만한 배우들에게는 오버핏인 관복의 실루엣을 뚫고 어깨선이 오늘날 정장 마냥 정핏으로 떨어질 정도로 다부진 체격을 보여주며 저 정도는 돼야 80살 넘어서까지 일하겠다며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황희의 초상화를 분장을 통해 잘 살렸다는 평도 있다.
4.3.2.10. 유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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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현
柳廷顯
파일:태종이방원E25-37.jpg
배우
임호
4.3.2.11. 이거이
이거이
李居易
파일:이거이(태종 이방원)1.jpg
배우
차기환[52]
조선의 정사공신, 좌명공신으로 아들 중 한 명이자 자신과 같은 공신인 이저는 태조의 딸인 경신공주와, 또 다른 아들인 이백강은 태종의 딸인 정순공주와 혼인하여 조선 왕실과는 겹사돈을 맺은 인물이다.

정사에서는 1차 왕자의 난의 주요 가담자 중 한 명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해당 사건에서 등장하지 않고 이방원이 세자가 된 후 사병 혁파가 거론되던 21회에서야 사병 혁파에 반발하는 절제사 중 하나로 나왔다. 같은 자리에서 반대를 하던 민무구, 민무질도 결국 민씨의 결정에 따라 사병을 반납하기로 한 마당에 혼자 끝까지 반항하면서 이숙번과 입씨름을 하다가, 결국 이방원이 민씨의 협조로 사병 혁파를 달성한 뒤, 절제사 직을 뺏기고 계림부윤으로 좌천당한다.

24회에서 영의정부사로서 조정으로 복귀,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한다. 함께 조정에서 쫓겨나 유배를 갔던 조영무에게 "사병을 혁파하지 않았다면 군사들을 더 빨리 더 많이 모을 수 있었다"며 "군사를 너무 모르는 분이 임금이 되셨다"고 "군사를 잘 아시는 상왕이셨다면 사병을 없애지 않으셨을 것"[53]이라는 불충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조영무도 사병혁파에 반대하다 유배 다녀온 만큼 자기처럼 불만이 많을 것이라 여겨 말한 것이었지만, 조영무는 그 때 격분해 일시적으로 반발했을 뿐 이방원의 충복이었기 때문에 25회에서 동북면에서 돌아온 이후 자신이 들은 이거이의 발언을 태종에게 이실직고했고, 결국 공신들과의 축배 자리에서 이방원에게 이를 추궁 당하고, 이거이는 조영무가 자신의 한 말을 일러바쳤다는 것을 알고는 무기력하게 용서를 빌며 처분을 기다리는 태종의 말과 함께 쫓겨난다. 이후 이방원은 하륜에게 이거이와 그 아들들을 폐서인하라고 지시한다.[54]

4.3.3. 기타 관료

4.3.3.1. 박위
박위
朴葳
파일:태종 이방원 박위.jpg
배우
이우석[55]] 扮

제 1차 대마도 정벌의 영웅이자 이성계와 더불어 공양왕을 옹립한 흥국사 9공신 중 한명.

역사대로 친군위 도진무로 등장하며, 조영무가 이방원 측에 투항해 가별초 주력이 넘어간 상태에서도 투항을 거부하며 궁문을 걸어잠그려 하지만, 이방원의 명령으로 움직인 병사들에 의해 궁문을 닫지 못하게 되고 궁으로 들어온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적은 병력으로 나름대로 분전했으나 이숙번과의 일기토에서 패하고 목이 베여 죽는다.[56]
4.3.3.2. 박포
박포
朴苞
파일:박포(태종 이방원).jpg
배우
안홍진[57]
개국공신으로서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을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지만, 이방간을 꼬드겨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9회에서 첫 등장하여 다른 개국공신들과 함께 이성계가 대관식을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중하려다가 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차갑게 외면당한 이방원을 목격한다. 이후 13화에서 민제의 주선을 통해 이방원과의 회합에서 만나 자신을 소개한다. 정안군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달라는 이숙번의 질문에 동조하며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후 하륜의 계획을 따라 황주 군사들을 이끌고 무인정사에 합류하고, 도당과 삼군부를 장악한 뒤, 궁궐 공방전에서 활약한다. 17회에서 이방원의 지시를 받고 흥안군 이제를 참살한다.

19회에서 2등 공신에 머문 것에 대해 불만을 품으며 행패를 부리다가 붙잡혀 관직과 직첩을 몰수당한다.[58] 이후 회안공 방간을 만나 그의 계획을 듣게 되고 처음엔 정안공의 군대에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며 거부하지만 계속된 설득에 결국 포섭된다.[59]

20회에서 난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모든 책임들을 다 혼자 뒤집어 썼다. 자신은 난이 일어났을 때 집에 있었다면서 억울하다고 외쳤지만 묵살당하고 사형당했다.실제로 박포는 2차 왕자의 난이 터졌을때 집에서 자고있었다....
4.3.3.3. 전가식
전가식
田可植
파일:태종 이방원 전가식.jpg
배우
임재근 扮

좌정언. 민제의 제자로 민제의 지시로 여러 유생들과 함께 태종에게 여색을 탐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박은에게 심문을 받고 민제가 지시했음을 실토한다.
4.3.3.4. 구종수
구종수
具宗秀
파일:구종수(태종 이방원).jpg
배우
장태훈[60]
용의 눈물, 대왕 세종에서도 등장했던 인물로, 세자에게 아첨을 일삼다가 대간들에 의해 탄핵된 바가 있으며, 이후 어리 사건과도 연루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태종의 양위 파동 때 민무구와 민무질이 퇴청하지 않고 밤을 새도록 자리를 빌려준다.

27회와 28회에선 궁에서 몰래 나온 세자와 술동무가 되어주며 온갖 아첨을 떤다.[61] 그리고 곽선의 첩인 어리를 세자에게 소개시키고, 곽선의 아들이 어리를 넘겨주길 거부하자 윽박지른다. 이후에는 양녕의 폐위까지 등장이 없다. 실제 역사에서 양녕 폐위 이전에 참수당하는 인물이니 이대로 퇴장한 것으로 보인다.
4.3.3.5. 심온
심온
沈溫
파일:심온(태종 이방원).jpg
배우
김승욱[62]
29회에 첫 등장해 딸인 경숙옹주가 충녕이 왕좌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며 그러다 화를 입을까 걱정하자, "주상은 적장자 계승 원칙이 확고하고 충녕은 온순한 성격이라 크게 무리하지 않을 테니 큰 걱정을 말아라."라고 달랜다.[63] 그리고 민무휼,[64] 민무회도 숙청을 당한 것에 대해 그런 명문가가 하루 아침에 멸문되었다며 안타까워 한다.[65]

30회에서도 등장하는데, 충녕이 삼군부를 둘러보러 갔다는 말을 듣고 왕위에 대한 야심이 갈수록 더 짙어져 가는 행보를 보이자 딸과 함께 더욱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31회에서는 결국 사위 충녕이 용상에 오른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뜻에 의해 영의정으로 제수되어 세종의 즉위를 알리기 위한 명 사행길에 오르게 된다. 딸에게 자중하며 이목을 끌지 말아달라고 단단히 귀띔을 받기도 했고, 본인 역시 상왕의 처가 여흥 민씨가 숙청을 피하지 못하고 개박살이 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정말 쥐죽은듯 지내려고 한다.

허나 하늘도 무심하게 자중하며 살겠다고 딸에게 다짐하고 귀가하니 집안에는 축하한다면서 자신에게 연줄 좀 대보려고 온 손님이 가득차 있고, 기껏 다 쫓아냈더니 다시 사행길에 나서는 날에도 사람들이 몰려나와 환송하니 본의아니게 가문의 위세를 곳곳에 광고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를 보고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이를 모두 주시하던 박은을 발견을 했다.

결국 어찌저찌 사행길에 올랐으나 심씨 가문의 드높은 위세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66] 태종은 병조의 장계를 자신이 아닌 세종에게 올린 참판 강상인을 걸고 넘어져 심온을 사건에 휘말리게 만든다.

32화에서는 사행길에서 돌아오다가 세종이 긴급히 보낸 내관에게 의금부 관원들이 자신을 추포하기 위해 국경에서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도망친다면 죄를 인정하는 꼴이요, 자신의 딸을 죄인으로 만드는 짓이라며 순순히 의금부로 압송돼 국문장으로 끌려가 압슬형을 받는다.[67]

자신은 결백하다며 모진 고문을 버텨내지만, 사위숙청은 절대로 막아줄 수 없으니, 죄를 인정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며칠 후 사사당한다. 사후에 부인과 자녀들은 노비로 끌려갔지만, 중전 자리에 있던 딸은 폐위되지 않았다.[68]

개국공신인 심덕부의 아들이자 태종과는 겹사돈[69]이다.
4.3.3.6. 김한로
김한로
金漢老
파일:김한로(태종 이방원).jpg
배우
이명호

30회에서 등장하였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궁에서 쫓겨났냐며 양녕에게 묻는다.

양녕대군의 장인. 고려 말 우왕 시절, 이방원이 급제를 했던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수석)를 했던 인물이다.[70] 고려의 좌주문생 제도하에서 시험관과 급제자는 평생에 걸친 사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실상 한 스승아래 수학한 동문이었다. 이 인연으로 태종의 우대를 받았고, 훗날 사돈이 되고 병조판서, 예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71]
4.3.3.7. 강상인
강상인
姜尙仁
파일:강상인(태종 이방원).jpg
배우
이병훈[72][73]

31화에서 병조참판으로 등장한다. 상왕 태종에게 보내야할 병조의 장계를 세종에게 보내는 실수를 저지른다. 유정현에게 "병조에 대한 일은 상왕 전하의 소관인데, 어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듣자, 자신의 실수이니 병조참판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74]

실록에서의 기록과는 달리 극 중에선 정말로 단순한 실수였으나, 태종은 이것을 이용해 심씨 가문을 숙청할 빌미로 삼는다. 결국 의금부로 압송되어 대낮부터 한밤중까지 주리틀기, 압슬같은 모진 고문을 받는다.

결국에는 "너무나도 괴롭다. 내가 누구의 이름을 말해야 그만두겠냐"며 모진 고문 앞에 굴복하고, 태종의 계획대로 소헌왕후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이름을 말한다.

32화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참형이 내려진다. 크게 당황하며 억울하다 소리치지만 곧바로 참형이 집행되어 사망한다.[75][76]

본래 강상인은 이방원의 가신 출신으로 죽기 전까지 30년 간 태종을 보필하며 서제(상급 서리)부터 시작해서 순금사 대호군, 상의원 제조 등을 거쳐 병조참판에 이른 인물이었지만 이 이력은 생략되었다.[77]

4.4. 궁궐 사람들

4.4.1. 어의

어의
파일:태종 이방원 어의.jpg
배우
이석구[78]
12회에 첫 등장해 신덕왕후에게 반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병명을 전하며 인생을 화만 내서 살아서 그렇다는 말을 해 신덕왕후의 분노를 산다. 이후 한양 천도 과정에서 병증이 악화되자 하늘에 맡겨야한다는 말을 전한다.

4.4.2. 내관, 상궁

4.4.2.1. 김 내관
김 내관
파일:김 내관(태종 이방원).jpg
배우
이춘식[79]
9회부터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내관으로 임명되어 충성을 서약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명에 따라서 이방과, 이방원을 비롯한 한씨 소생 왕자들이 즉위식에 참석하는 것을 근위병들과 막는다. 이후 10회에서 세자 책봉과 강씨의 왕비 책봉, 한씨 소생 왕자들의 군호(君號)를 발표할 때, 11회에서 이방과를 대전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14회 말미에는 사병을 혁파한다는 교지를 직접 이방원의 사가에 가서 하달한다. 15회에서 정도전의 명으로 이방원을 궁으로 유인한다. 이 때 정도전이 무슨 권한으로 왕자와 종친들을 오라가라 하느냐는 이방원의 호통에 세자의 생각도 같았으니 따르라 하고, 의관을 갖출 시간을 달라는 민씨의 말을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고압적인 태도로 무시한다. 무인정사 이후에도 이성계의 내관으로서, 도당에 세자 방과에게 즉시 양위한다는 교서를 도당에 내릴 때 증인으로 궁인들을 잔뜩 끌고와 정사공신들이 교서를 조작하거나 낚아챌 우려를 차단해버린다. 20회에 동북면으로 가는 이성계와 동행한다. 이후 태상왕 이성계를 잘 모시다가 25회에서 조사의의 난이 진압된 이후 책임을 물어 조사의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80] 태조에 대한 충심은 각별해 처형 직전까지 태상왕의 안부를 기원하다 죽었다.
정도전에서 나이답지 않게 꽤나 귀요미한 감초 캐릭터 득보아범을 연기한 것과 달리 여기서는 장성한 왕자들과 도당 대신들의 면전에서도 꼬장꼬장한 고위 내관의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노배우의 열연을 보여준다. 이 때문이었는지 등장한 이후, 정도전에게 임금체불을 당해서 궁궐에 취직했냐는 드립도 생겼다. 모델이 된 인물은 공민왕 대부터 궁궐에서 봉직했고 경복궁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던 원로 내관 김사행으로 1차 왕자의 난 때 세자의 도당으로 몰려 효수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1차 왕자의 난 이후에도 상왕으로 물려난 이성계의 내관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실존 인물 김사행의 모티브를 딴 가상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조사의의 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실제로 당시 이성계의 수행 내관이었던 환관 함승복의 죽음을 바탕으로 구현한 듯하다.
4.4.2.2. 이 내관
이 내관
파일:태종 이방원 이내관.jpg
배우
서동진 扮
현빈 류씨와 간통을 저지른 내관으로, 결국 발각되어 분노한 신덕왕후의 죽을 각오는 되어있느냐는 질문에 울먹이며 그렇다고 대답한 뒤 끌려갔으며, 이후 장면이 잘렸지만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의 모티브는 현빈 류씨가 친정으로 쫓겨날 때 처형된 내관 이만이다.
4.4.2.3. 상궁
상궁
파일:태종 이방원 상궁.jpg
배우
조양자 扮
9회부터 태조에게 곤룡포를 입히면서 첫 등장한다. 10회에서 신덕왕후에게 행패땡깡를 부리는 이방원을 보면서 놀라고, 신덕왕후가 숙위병을 데려오라 하자, 밖으로 나간다. 12회에서 신덕왕후에게 현빈 류씨와 내관이 간통한 소식을 전한다. 13회에서 죽은 신덕왕후를 보면서 우는 모습이 보여졌다.
4.4.2.4. 박 내관
박 내관
파일:태종 이방원 박내관.jpg
배우
강신조[81]
18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원래 정종을 모셨으나 21회 이후로 태종을 모신다. 태종 즉위 후 중궁전 상궁인 정 상궁에게 중전이 책봉된 날인데도 태종이 중전이 아닌 궁녀와 합방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도 계속 침소에 궁녀를 들일 예정이니 중전에게 다른 말로 둘러대지 말고 사실대로 고하라고 전한다. 이후 태종을 계속 보필하다가, 최종회에서 태종 서거 후 궁궐 처마 위에서 상위복(上位復)[82]을 외친다.
4.4.2.5. 정 상궁
정 상궁
파일:태종 이방원 정상궁.jpg
배우
김미라
원경왕후를 모시는 상궁으로 22화부터 등장했다. 아직 세자빈 신분이었던 민씨의 사가에 들러 입궁 절차를 밝히며 인사를 나눴고, 이후 민씨가 왕비로 책봉되면서 그녀를 보좌한다. 책봉 당일에 태종과 합방이 있을 것으로 예고를 했는데 박 내관으로부터 태종이 다른 궁녀와 합방한다는 소식에 법도에 어긋난다며 당황한다. 이후 민씨가 사가에서부터 데려온 여종마저 태종과 합방한 뒤, 승은을 입은 궁녀를 꾸짖으면서 승은을 입었으니 일은 시키지 않겠다만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을 치고 떠나면서 비를 맞고 실신하게 만들어 태종의 분노를 산다. 이후 태종의 명으로 민씨 곁을 떠났다가 얼마 뒤 태종의 명으로 복귀하여 민씨를 다시 보필하게 된다.
4.4.2.6. 송 내관
송 내관
파일:송내관(태종 이방원).jpg
배우
김광영[83]
양녕대군을 모시는 극한직업 내관. 원자가 주강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새덫이나 보고 있자, 이방원으로부터 원자를 안 말리고 무엇을 했냐는 꾸중을 듣고, 원자를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해명한다. 이후 주강 시간에 또 밖으로 나가려는 세자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태종에게 태형 30대를 당한다. 이방원이 양위를 한다며 국새를 보내자, 세자에게 고개를 저어서 받으면 안 된다고 눈치 준다. 27회에서 글공부를 게을리한 양녕에 대한 벌로 또 다시 태형 20대를 맞고 궁에서 쫓겨나지만, 양녕이 식음을 전폐하고 반항하자 다시 궁으로 돌아온다. 고생이 많다.[84] 31회에서 폐세자되어 궁을 떠나는 양녕 일가를 배웅한다.
4.4.2.7. 윤 내관
윤 내관
파일:태종 이방원 윤내관.jpg
배우
정영도 扮
세종을 모시는 내관. 심온에게 당분간 명나라에 있으라 하지만 심온이 한양으로 오자마자 의금부에 압송되었다는 말을 세종에게 전한다.

5. 명나라

5.1. 홍무제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 주원장
洪武帝
파일:태종 이방원_홍무제.png
배우
김성강[85]
12회에 등장하며, 화면에는 이름인 '주원장'으로 표기된다. 이방원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을 때 수도였던 남경 궁궐에서 만나는데, 이방원에게 "왜 자꾸 여진족들을 회유하면서 조선으로 끌여들이고, 요동의 해안선을 염탐하냐며 장차 우리를 침공하려는 게 아니냐?"고 추궁한다. 이방원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증거를 대보라고 말하지만 이방원은 "증거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서 "신뢰를 가지고서 바라봐야 만 가지의 의심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주원장을 설득한다. 이 후 바로 반년 후로 시간대가 변경되어 출연은 없지만 명나라와의 조공 관계가 재개된 것으로 보아 이방원의 설득이 성공한 듯하다.[86]

실제대로 중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조선어로 이야기하는 이방원과 말이 통한다. 실제로는 중간에 통역이 있어야 하지만, 드라마 연출 상 통역을 생략했는데, 이는 동시대를 다룬 정도전의 경우와 비슷하다. 아무래도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14회에서 권근에 의해 다시 언급되었는데 표문 문제로 조선에서 왔다가 억류되었던 사신들을 전부 죽여버렸다고 한다. 사신들이 자신이 준 옷 대신 상복을 입은 것을 트집 잡았다고 한다.

15회에서 이방원이 정도전과의 대화에서 당시 주원장의 아들 중 하나인 연왕 주체와의 만남을 언급한다. 이방원은 요동정벌을 준비하려는 정도전에게 연왕을 가리켜 호전적인 야심가에 치밀한 전략가라고 말하며, 자신의 앞마당과 같은 요동 땅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6. 그 외 인물

  • 기생 (최시인 扮)
  • 대신 (김진서 扮)[87]
    태종의 즉위식을 진행하고 즉위식 직후 정전에서 사면령을 포함한 태종의 즉위교서를 읽는 역할로 나온다. 31회에서 강상인이 실수했다는 정보를 태종에게 고하는 장면이 나왔다.
  • 대신 (김관기 扮)[88]
    주요 인물들을 제외하고 대전에 모이는 대신 중 한 명으로, 등장은 하지만 대사가 없다가 26회에서 태종이 양위를 선언하자 다른 대소신료들과 함께 대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반대하다가 황희가 대소신료들에게 퇴궐하라는 태종의 명을 전하면서 태종을 상왕이라 칭하자, 이를 지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0회에서 충녕대군이 신하들을 모아 주연을 여는 자리에 등장하여 충녕대군과 친분을 가졌고, 이후에도 조회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 대신 (최동엽 扮)[89]
    김관기가 연기하는 다른 대신과 더불어 대전에 모이는 대신 중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대사가 없었다가 26회에서 다른 대소신료들과 대전 앞에서 태종의 양위를 무릎꿇고 반대하던 중 태종이 대소신료들에게 퇴궐하라는 명을 황희를 통해 내리자 다른 신료들에게 모두 일어나서 퇴궐할 것을 권하는 역할을 한다. 30회에서 이숙번한테 상소문에 이름을 쓰라고 협박을 받지만[90], 다음날 궁궐에 들어가서 태종에게 이숙번의 무례를 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회 때마다 간간히 모습을 보였다.
  • 동북면 촌로 (양형호 扮)[91]
    24화에서 조사의의 난이 터지자 태조를 지지하면서 반군에 힘을 보태자고 한다. 이후 조영무에게 진압되는데 이때 본인이 젊은 시절 가별초였음을 밝히고 마찬가지로 한때 가별초 후배였던 조영무에게 키워준 태상왕 전하께 배은망덕하다고 꾸짖지만 태종의 관대함에 배운 바 있는 조영무에 의해 이번은 넘어가겠다며 풀려난다. 하지만 기어이 조사의의 군대를 위한 군량을 모으다 다시 잡혀오고, 조영무에게 동북면은 태상왕 전하의 땅이다고 외치다가 단 칼에 베여 죽는다.
  • 곽선의 아들(이승) (최진욱 扮)
    어리의 남편인 중추원 부사 곽선(郭璇)의 아들. 아버지의 첩 어리를 거의 납치하다시피 데려가려는 양녕에게 맞서지만, 그가 자신에게 권위를 앞세우며 협박하자 그 자리에서는 결국 굴복한다. 하지만 그 후 태종에게 양녕의 만행을 고발한다.[92]
  • 대신 (정병호 扮)
  • 대신 (염정구 扮)
  • 청송심씨 종친 (맹봉학, 윤복성 扮)
    31회에서 외척이 된 심온과 술자리를 같이 하다가 쫓겨난것으로 첫 등장. 이후 영의정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심온을 목격하고 배웅을 해주지만 이 일을 박은한테 들키게 되고, 심온을 숙청당하게 하는 원인제공을 해준다. 그 이후에 등장은 없지만 숙청 당하거나, 잠적하거나 아니면 태종에게 용서를 구하고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 (김주아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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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적을 보면 집안 내에서 민무구, 민무질, 민무회 세 사람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사람이 바로 민제의 아내 삼한국대부인 송씨이다. 민제는 제자가 본인 대신 고신을 받은 일로 인해 이후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송씨는 효순궁주 김씨와 경녕군을 학대해 아들들과 같이 밉보일 멍청한 짓을 행하였다.[2] 장장 159부의 장편 대작인 용의 눈물에서도 전혀 언급도 안 되는 인물이다.[3] 드라마 한정이지만 원경왕후도 똑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4] 민씨 집안의 야심을 드러내는 장면이지만, 또한 아들들의 비참한 최후로 이어질 동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민씨 집안은 몰락하고, 이제는 폐세자될 미래를 생각하면 굉장히 허망한 대사.[5] 원래 처가를 방문해 그동안 자기가 서운하게 만든 것에 대해 위로하려던 이방원은 이 일로 그 뜻을 접었을 뿐 아니라 민씨 가문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까지 하는데, 송씨의 괜한 욕심이 이방원과 민씨 가문이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망치고 집안 전체를 파멸로 이끌게 된 셈이다.[6] 더욱이 이방석은 이복/동복형제들 가운데서도 제일 막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정실부인 소생의 적자였기에, 명백한 시첩 소생(그것도 미천한 노비 출신)의 서자인 경녕군과는 그 정통성에서 차원이 다르다.[7] <용의 눈물>에서는 송씨가 아니라 원경왕후가 직접 주도한 일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민무휼과 민무회를 숙청할 때 이 사건을 끄집어내어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삼는다.[8] 적어도 이 드라마 내에서는 민씨가문의 몰락에서 송씨의 실책이 결정적이었다. 송씨가 경녕군을 임신한 효순궁주를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이방원은 민씨 가문과 화해를 할 예정이었다.[9] 하륜 역을 맡은 배우 남성진의 처남이다. 즉 남성진의 부인인 배우 김지영의 남동생이다.[10] 용의 눈물에서는 군말없이 찬성하던 것과 대비된다. 사실 용의 눈물에서도 속내는 내놓고 싶진 않았는데, 여기선 민씨가 처음부터 사병혁파를 지지해서 누나에게만 살짝 본심을 말할 뿐 이방원에게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11] 이는 막말로 그냥 왕이 죽길 바라는 망언이다. 직접 전장으로 떠난 왕이 변고가 생긴다는 것은 보통 전사, 포로로 잡히는 것일텐데 아무리 대군이라 한들 이런 대참사 속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일개 외척과 어린 왕이 통제할 수 있을까? 원경왕후 말처럼 독이 오른 이성계의 정예병들이 한양을 점령해 보복할 게 뻔한데, 이들이 얼마나 정치적 안목이 짧은지 보여주는 대사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사이가 약간 소원해졌다 해도 또 금슬 좋을 땐 좋았던 이방원 부부인데 자신의 누나에게 대놓고 '매형 죽었으면' 이라고 말하는 것을 원경왕후가 과연 곱게 참고 들어줄까?[12] 이전에 양위 명령에 옥새를 받으려는 순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린 세자와 보좌하던 내관이 (받으시면 안된다며) 조용히 고개를 저은 것과 대비된다. 비록 내관은 세간의 이미지와 다르게 나름 고위직이었던 것을 감안해도 명색이 공신인 이들이 철없는 어린 세자나 일개 내관보다도 못한 처참한 안목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13] 이미 아버지인 민제부터가 체념하며 죽을 정도로 민씨 가문을 처단하려는 이방원의 의지가 너무 확고했기에 이들 형제가 목숨을 부지할 길은 전무했다.[14]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두 아우들도 태종에 의해 자결한다.[15] 아버지인 민제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원경왕후를 걱정하며 부디 강건하게 버티시라는 유언을 남긴 것과 비슷하다.[16] 단 임금이 살아있는데 임금의 후일을 생각하며 세자를 보위에 올린다고 했으니 그 발언 자체는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는 발언이다. 민무질이 얼마나 생각없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17] 배우가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사약으로 등장한 소품이 아메리카노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김빠진 콜라를 주로 썼는데 트랜드가 바뀐 모양이다.[18] 용의 눈물에서는 둘 다 감정적이긴 하지만, 민무구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저 불만을 늘어놓는 반면 민무질은 같이 불평을 하면서도 머리를 나름 굴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매형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불평만 하는 민무구와 달리 민무질은 태종의 인사조치로 자신이 군권을 잃고 의정부로 보내졌을 때부터 견제가 시작되었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몸을 사리는 모습도 보여주며, 양위 파동 때 원경왕후에게 와서 대책을 논의하면서도 너무 오래 앉아 있었으니 얼른 양위 말리러 가야 한다는 말은 민무구가 아닌 민무질이 한다.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민제의 꿈을 꾸고 불안해하는 것도 민무질이다.[19] 역대 사극 중에서도 압슬형의 묘사가 매우 잔인하게 나왔다.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고 돌덩이에 허벅지가 눌려(한술 더 떠서 집행관들이 돌을 발로 짓밟기까지 한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것이 그대로 묘사되었을 정도. 이와는 별개로 용의 눈물에서도 민무휼, 민무회의 고문이 작중 가장 심한 고문 1, 2위를 다툰다. 거기서는 여기서 당한 압슬형 이전에 주리형, 인두형도 당했다.[20] 원경왕후가 양녕을 찾아가 그의 잘못을 비난할 때 네가 두 외숙부를 죽였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이 시점에서는 동생과 함께 자결했을 것으로 보인다.[21] 세자가 "돌아가신 외숙부들 대신해서 조정에 헌신해달라"는 말에 두 형이 죽은 것을 두고 세자를 원망하면서 "그런 말씀을 어찌 그리 태평하게 하시냐"고 힐난한다. 실제로 실록에도 기록된 내용이며, 이후 세자가 이를 태종에게 직접 꼰질러서 두 외숙부를 죽이는 데 한 몫 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22] 이때 자신들의 최후를 알고, 형의 손을 잡고 오열한다.[23] 최소한 이 드라마에서는 민제도 몰랐을 정도 송씨의 단독 행동으로 그려진다.[24]징비록〉에서는 심유경 역을 맡았다.[25] 실록에서도 남은은 자신은 적을 만들 행동은 한 적 없으니 무사할 것이라고 여겨 다음 날 궁에 출두했다가 죽임을 당한다.[26] 물론 본인은 죽었지만 태종이 상왕이 된 후에 태조의 배향공신에 추가된다. 신하들이 반대했음에도 공이 많다는 이유로 추가되었다.[27] 그간 여말선초 드라마에서는 이방번은 매번 그저 이방석과 함께 세트로 죽는 역할을 맡았으며 일부에서는 방석과 친하게 그려지기도 했다.[28] 용의 눈물에서는 송헌방에서 죽었으며, 정도전에서는 도망치다가 이방원의 군사들과 싸우다가 죽고,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정도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신적의 손에 의해 타살을 빙자한 자살을 했다.[29]정도전〉에서는 심효생 역을 맡았다.[30] 여담으로 홈페이지에는 '조선 건국 전 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다.'라고 적혔지만, 실제로는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생존하다가 1년이 지난 1393년에 사망한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이방원이 명나라로 떠난 1394년까지 생존하는 오류를 범했다.[31]대왕 세종〉에서는 민무질 역을 맡았다. 네이버 카페[32] 공교롭게도 용의 눈물에서는 이성계의 사위이자 이방석의 매형인 흥안군 이제 역이었는데 거기서도 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게 죽는다.[33] 현빈 류씨가 간통 사건으로 폐출된 후 새로이 간택된 세자빈으로, 본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34] 이숙번을 연기한 배우는 정태우인데 정태우는 용의 눈물에서 이방번으로 나와 이제를 연기한 이경영과 세트로 죽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방번이 이제를 죽인다는 배우 개그가 생겼다.[35] 배우의 등장 자체는 민준현 배우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혀졌으나, 배역이 조사의라는 사실은 안홍진 배우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혀졌다.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민의 차남이자 희대의 양아치 이지영, 〈불멸의 이순신〉에서 충무공 김시민 역을 맡았다. <용의 눈물>에서는 목인해 역을 맡았는데 이 인물도 태종 연간에 정치적 분란을 일으킨 인물이지만 제2차 왕자의 난 때 퇴장한 관계로 이방원의 충실한 심복의 면모만 나왔다.[36] 판서의 전신[37] 실제 역사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은 1395년에 사망한다.[38] 이번 작품이 사극으로서의 유작으로, 이전에 KBS 대하드라마의 작품들 중 <제국의 아침>에서는 혜종 역, 〈대왕 세종〉에서는 정종 이방과 역을 맡았다. 참고로 정도전 역을 맡은 이광기보다 무려 20살 위지만 워낙 동안이라 위화감이 없다. 실제 역사에서 조준은 정도전보다 4살 연하다.[39] 전작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대학연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릴 뻔한 사건이 있었다. 왕이 아닌 자가 제왕의 교과서를 지녔으니 역심을 품은게 분명하다는 논리. 이는 오마쥬일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조준이 반역을 도모하라고 이방원에게 우회적인 제스쳐를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40] 태종 즉위 후 태종의 신임과 총애는 하륜과 권근에게 몰렸고 조준은 사실상 조정의 원로로 대접만 받았을 뿐 전처럼 국정을 주도하지는 못했으며, 머지않아 1405년에 사망하기에 미리 비중을 줄인 듯 하다.[41] 박유승의 페이스북에서 캐스팅이 확인되었다. 〈대왕 세종〉에서는 변계량을,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서는 권근의 6대손 권율을 연기했다. 여담으로 조선 건국 당시의 권근은 40대의 비교적 젊은 관료여서 김영기 배우와는 매치가 잘 되진 않지만, 극 후반부까지 등장하는 배역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42] 27회에서 태조가 승하한 게 1408년(태종 8) 음력 5월 24일이며, 뒤이어 민제가 사망한 게 태조가 죽은 같은 해 음력 9월 15일이었다. 그리고 28회 초반에 민제의 두 아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이 자진한 것이 1410년(태종 10) 음력 3월이었다. 권근은 1409년(태종 9) 음력 2월 14일에 사망한다.[43]풍운〉에서는 고종 역을 맡았다.[44] 1차 왕자의 난 이후 별다른 일화도 없는 조준과 달리 남재는 정종 재위 시절에 정안공(=이방원)을 세자로 올려야 된다고 대궐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충녕대군이 베푸는 연회 자리에서 그에게 차기 보위를 노릴 만 하다고 하는 등의 일화가 있기 때문에, 충녕이 왕위에 야심을 보이는 이 드라마에서는 더욱 더 나올 만 했다.[45] 용의 눈물에서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남은이 살아 생전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다가 1차 왕자의 난 이후에 어떻게든 정안공에게 붙어서 목숨을 구해 보려는 모습으로 첫등장했다.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정안공을 세자로 올려야 한다고 외쳐대며 어그로를 꾸준히 적립하는 것이 이 작품에서 남재의 주된 역할로, 그야말로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다 보니 다름아닌 정안공에게 그 입 닥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결국 정안공이 세자가 되자 조정 회의에서 "내가 전부터 그렇게 주장하던 것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던데..." 하는 식으로 발언하는 장면은 압권.[46] 오늘날의 대통령비서실장에 해당된다.[47] 실제로 태종은 황희를 매우 신뢰했으며 황희의 졸기에는 어떤 일을 두고 태종과 황희만이 알고 있으니 누설된다면 둘중 하나의 짓이라는 말로 신뢰를 표현했다.[48] 아이러니하게 황희 본인 역시 세종 시기에 비리가 많아서 여러번 공격받다가 세종의 비호로 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하륜 코스를 타게 되는 인물이다.[49] 실제로 황희는 양녕대군을 끝까지 감쌌다는 죄목으로 유배를 갔다.[50] 웃기는 건 정작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황희도 사실 뇌물수수죄를 지은 깨끗하지 못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며 충녕의 세자 등극을 끝까지 반대하다 태종에 의해 귀양을 갈 정도로 과거 충녕과 대립하는 정적이었다는 점이다.[51] 다만 황희의 경우 태종이 가장 믿을만한 신하이자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의외로 충녕이 아닌 양녕을 계속 두둔하여 실망하여 잠시 귀양을 보낸 것이다. 한 번 기회를 다시 주는 태종 답게 세종에게도 필요한 인재임을 모를리 없던 태종은 승하 직전 황희를 다시 불러 세종의 보필을 돕게 한다.[52]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립, 대조영에서 김찬, 정도전에서는 조반 역을 맡았다.[53] 다른 발언은 단순히 이방원에 대한 불만일 수 있으나, '상왕'과 비교한 것은 이전 임금이 더 낫지 않냐는 이야기이고 이는 심각한 불충의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문제의 차원이 달라지는 발언이다.[54] 이때 하륜이 아들들도 귀양 보낼지를 다시 묻는데. 이거이의 첫째 며느리가 이방원의 동복여동생이고 둘째 며느리가 이방원의 장녀였기 때문이다. 물론 태종은 다른 공신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며 가차없이 내쫓으라고 재차 말한다.[55]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임경번 역을, <대왕 세종>에서는 민무회 역을 맡았고, 〈징비록〉에서는 김수 역을 맡았다. [[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14092584/articles/124327?fromList=true|네이버 카페]. 조금 더 올라가면 <용의 눈물>에도 출연했는데 이때는 이직으로 출연했다.][56] 여담으로 이숙번을 맡은 정태우와는 과거 무인시대에서 신종희종으로 부자호흡을 맞춘 사이였다. 패륜[57]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완 역을,〈대조영〉에서는 연남건 역을, 〈징비록〉에서는 도도 다카토라 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용의 눈물>에서 조박, <태조 왕건>에서 범교 스님, <대왕 세종>에서 맹사성 역을 맡았던 원로배우 안대용의 아들이다.네이버 카페.[58] 원래는 유배를 갔다가 풀려나 방간에게 접근하는 것이 정사이지만 드라마 전개의 속도상 간략화한 것으로 보인다.[59] 이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항상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므로 박포도 은인자중 하며 지냈다면 조정에 복귀할 여지가 있었으나 잘못된 선택으로 그럴 기회마저 잃었다.[60] 이제 역의 장태훈과는 동명이인이다.인스타그램.[61] 이때 세자에게 자기가 보위에 오르면 한 자리 주겠다는 식의 약속을 받는데, 정작 세자는 폐위되고 이분은 1년전에 참수당한다.[62] KBS 대왕 세종에서 고려 부흥 세력의 2인자 전판석,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신적의 아버지인 허조를 연기했으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동생이자 같이 숙청되었던 심정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에 더불어 정도전에서는 박상충 역을 맡았는데, 박상충의 아들인 박은이 심온의 국문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배우개그로 보면 본인의 아들이 본인을 때려잡는 것이 된것. 게다가 심온의 국문을 주도한 또다른 인물인 유정현 역은 임호가 맡았는데, 임호가 맡았던 전작에서 배역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아끼던 사제에게 국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정말 기구한 일이 벌어지기 되는 것. 실제 심온은 박은, 이숙번, 황희, 이방원보다 연하인 1375년생으로 쉰살이 되기도 전에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정작 배우인 김승욱은 앞에 언급한 배우들의 삼촌뻘 연상이다.[63] 심온의 말을 따져 보면 다 틀렸다. 주상은 적장자 계승 원칙을 포기할 의향이 있고, 충녕은 포기하긴 커녕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심온은 충녕이 온순하다고 평했는데, 양녕에게 대들거나 아버지가 기회를 줄 때 보인 반응을 보면 전혀 온순하지 않다. 참고로 심온의 숙청 원인 중 하나가 심온이 본인의 형제들이 행패를 부림에도 방관만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충녕대군의 행보를 방관만 하는 것 역시 묘한 부분이다.[64] 민무휼의 딸이 심온의 아들과 혼인해서 사돈 관계이다.[65] 청송 심씨 역시 여흥 민씨와 함께 여말선초에 큰 영향력을 가진 명문가이며, 그런 가문이 외척까지 되면서 몰락하는 것 역시 판박이다. 31회에서도 원경왕후가 소헌왕후에게 "양녕의 처가 김씨는 평범한 가문이라 괜찮았지만, 우리 민씨 만큼이나 너희 심씨도 큰 가문이니 주상(이방원)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 점이 언급된다.[66] 실록에서 심온의 졸기에 사위인 세종이 세자가 되자 숙청의 위험성을 느꼈는지, 세자인 사위에게 손님을 끊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살겠다라고 했으며, 태종도 이를 알고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태종이 심온을 숙청한 것은 심온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의 가문인 청송 심씨가 너무 영향력이 큰 명문가인데 그런 가문이 외척까지 되어버리면 통제가 안 되므로 제거한 것이다. 세종의 즉위 시점에서 심온이 처신 잘한다고 피할 수 있는 숙청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행길 환송 인파는 외척까지 된 명문가의 위세는 본인이 가만 있어도 알아서 사람을 모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라 태종으로서는 숙청 확정일 수 밖에 없다.[67] 이를 들은 세종이 "장형 3회를 가하고나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압슬형을 가하는 것인데, 어찌 압슬형부터 집행하느냐"고 한탄한다.[68] 세종 입장에서는 중전의 집안이 숙청되는 것을 막지 못한 죄책감, 태종 입장에서는 또 한번의 숙청으로 아들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참극이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폐비를 하면 새로 중전을 간택해야 하는데, 집안은 여흥 민씨나 청송 심씨에 못 미치는 평범한 양반 가문을 선택한다 쳐도, 새 중전이 아들을 낳으면 손자들이 태종과 형제들이 겪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 가례색을 설치하다 폐할 때도 자신들이 겪은 걸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냐는 상왕 정종의 설득이 주효했던 태종이니, 손자들에게도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겪을 여지를 남기고 싶을 리 없다. 세종은 중전의 폐서인에 대해 "자신을 설득할만한 논거를 가져오지 못하면, 간관으로서 직무유기의 죄를 물어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다.[69] 심덕부의 6남(심온의 바로 동생)인 심종은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둘째인 경선공주의 남편이며, 심온의 딸은 태종의 3남인 충녕대군과 혼인했다.[70] 당시 이방원은 병과 7등으로 전체 10등이었으며, 기록상 고려 역대 최연소(17세) 급제자였다.[71] 참고로 효령대군의 장인인 정역 역시 이방원과 과거급제 동기로 이, 호, 형, 병조판서를 모두 역임했다. 자신과 친밀한 인사들을 사돈으로 두어 왕권에 대한 위협 요소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던 이방원의 노력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72] 장영실(드라마)에서 이순지로 출연[73]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태종의 손에 죽는 이성계의 내관 김사행 역으로 출연했다.[74] 극 중 묘사와는 달리 실록에 의하면 강상인이 군권의 상징인 오마패와 상아패를 세종을 속여 새로 만드는 것으로 군권을 가진 태종을 배신했다. 그 결과 유배를 가고, 관노가 되었다.[75] 실제 기록에서는 사지를 찢어버리는 거열형이 집행되어 죽는다.[76] 실제 역사에서도 자신이 억울하게 죽는다고 말했다고 한다.[77] 대부분의 태종~세종 시기 사극에서 강상인은 심온 숙청 때만 나오고, 회차 많은 용의 눈물도 예외가 아니라서(다만 이 경우 처음부터 태종의 승하까지를 다룰 예정이 아니라 조사의의 난으로 막을 내릴 계획이었었는데, 애초 계획대로 할 경우 강상인이 굳이 나올 이유가 없다) 적은 회차의 이 드라마에 강상인의 행적이 생략된 건 특이한 건 아니다. 그나마 강상인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 건 대왕 세종 정도인데, 원래 이력과는 달리 병조참판이 되기 전까지 내금위장으로서 태종을 보필한 것으로 묘사되는데다 처형이 된 과정도 뜬금없이 왜관 이야기가 나오는 등 얼토당토 않은 창작이 듬뿍 들어갔다.[78] 드라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단역 전문 배우지만 90년대 에로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유명했다.[79]정도전〉에서 득보아범 역을, <징비록>에서는 선조를 보위하는 대전 내관 역을 연기했다. 네이버 카페와 〈다큐멘터리 3일〉 방송분에서 출연하는 모습이 나왔을 때는 노희봉 역으로 추정되었으나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배역명이 '김 내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촬영하던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과 인터뷰를 할 때, 이제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들은 이미 세상을 떴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이제 대본을 외우지 못하는 등으로 인해 사극할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고 한다.[80] 단순히 이성계를 보필하기만 한 게 아니라 반란군과의 연락을 맡았기에, 변명의 여지 없는 명백한 반란의 가담자였다. 사실 무인정사 때 죽지 않은 것도 이방원의 자비일 정도로,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에게 적대적으로 굴었다.[81] 이 배우는 〈정도전〉에서도 내관으로 등장했다. <징비록>에서는 왜군 장수인 이시다 미츠나리로 분했다. 용의 눈물에서는 공양왕의 사위 우성범, 또한 1차 왕자의 난 살생부 신에서 정도전 파와 비 정도전 파 조정신료들의 이름을 문앞에서 외치는 장수 역으로 등장했다. 여말선초를 다룬 KBS 대하드라마에 선동혁과 함께 모두 등장한 유일한 배우이다.[82] 돌아가신 임금님의 혼이 다시 돌아 오기를 바라는 기원[83] 용의 눈물에서 민무구, 민무질의 동생인 민무휼을 맡았고, 태조 왕건에서는 왕건의 사촌 동생인 왕신을 맡았다.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은 여러 차례 KBS Drama Classic을 통해 무료 스트리밍을 해온만큼 사극팬들이라면 익숙할 배우다.[84] 위에 서술된 대로 용의 눈물에서 맡은 민무휼도 사실상 세자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데, 후속작인 이 드라마에서는 세자 때문에 여러모로 매맞고 고생하고 있다.[85] 조선족 출신으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명 사신 오양 역으로 나온 배우이다.[86] 실록에도 당시 이방원이 명나라로부터 매우 환대를 받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87]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가상인물인 정일수 역을, 징비록에서는 이봉수 역을 연기했다.[88] 태조 왕건에서 박수경 역을, 불멸의 이순신에서 안위 역을, 대조영에서 마파 역을 연기했다.[89] 대왕의 꿈에서 의직 역을 맡은 것을 더불어 여러 사극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이다.[90] 의외로 이때 상소문에 적혀진 이름은 중도 하차한 남재와 극에서 아예 나오지도 않았던 성석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91] 야인시대에서 종로경찰서 고등계 미와의 부하인 문달영 형사로 나왔다.[92] 직접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고, 유정현의 대사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