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08:45:57

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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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Moshe+Baumel+Rabbi+Ordination+Leipzig+Synagogue+g7O0lX85Nr4l.jpg
랍비들의 모습. 검은 양복중절모, 길게 기른 수염이 특징적이다.[1]

1. 개요2. 지위3. 역사4. 최고 랍비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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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랍비(히브리어: רַב, 영어: Rabbi)는 유대교에서 율법학자 또는 존경받는 선생을 일컫는 호칭이다. 히브리어 단어인 רב‎(raḇ)와 소유격 접미사'־י‎(-ī)가 더해진 표현으로 '내 스승님', '내 주인님'[2]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현대 히브리어에선 '랍비'보다는 '라브'(/ˈˈʁäv/)로 발음한다. 한국어 가톨릭 성경에서는 라삐라고 표기한다. 유대교에서 보통 종교학자, 혹은 율법학자를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되는데, 용어 자체는 1세기 때부터 보편화되었다. 즉, 영어의 마스터/티처 또는 한국어의 '선생님'과 비슷한 단어이다. 그래서 랍비를 선생님이라고 번역하는 사례도 여럿 있다.

랍비를 가리키는 네 단어가 있었는데 '교사, 선생님'이라는 뜻의 가장 단순한 형태인 '라브'가 첫째이고, '라브'보다 더 애정과 존경이 담긴 표현인, '나의 선생님, 나의 큰 자'라는 의미의 '랍비'가 둘째, 셋째는 '큰 선생님'이라는 뜻을 가진 랍비보다 훨씬 높은 극존칭인 '라보니'이며, 넷째가 '라브'의 강조형인 극존칭 '랍반'

2. 지위

흔히들 랍비가 유대교성직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로마 제국이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이래 유대교의 성직자(사두가이파) 계층은 붕괴하여 현존하지 않는다. 단지 성직자 계층의 후보집단이 존재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역사 문단 참고.

랍비라는 개념은 성직자와는 크게 다르다. 쉽게 말하면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서 가르치는 율법의 생활양식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선생과 조언자 노릇을 한다. 아울러 유대인들은 코셔 푸드만 먹을 수 있으므로 이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역할도 맡는다. 즉 유대인들의 생활규범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상담하는, 생활담당 지도교사 겸 상담자라고 보면 되겠다. 성직자보다는 오히려 이슬람 수니파이맘과 비슷하다. 그래서 다른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랍비 일은 일종의 자원봉사 형태로 겸업함이 역사적으로 보통이었고, 요즘도 그런 사례가 많다.

랍비란 유대교의 현명한 어르신이라 이해하면 된다. 유대교는 자손을 남기는 것을 중시하므로, 랍비는 결혼을 해야만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유대인들의 탈무드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들도 이들이라서인지 지혜로운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아버지와 동급 혹은 이상으로 취급받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도 라삐라 불린 기록이 있지만, 이 경우는 그냥 별 생각 없이 통용되던 관용적 존칭으로 사용된 사례였다.[3]
마르코 복음서에는 라삐라는 호칭이 '선생님' 혹은 '스승님'이라는 호칭 대신 모두 네 번 사용된다(마르 9,5; 10,51; 11,21; 14,45).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이 호칭이 예수의 가르침과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다. ... 전체적으로 보이 예수를 '선생님'(스승님) 혹은 '라삐'라 부른 것을 근거로 그분께서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신 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당시 '별생각 없이 통용되던 관용어'[4]였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Rudolf Schnackenburg),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55쪽.
당시에는 아직 랍비라는 호칭이 서품된 율사에 대한 존칭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한정된 사용은 1세기 말경에 비로소 관행이 되었고, 따라서 랍비라는 호칭에서 예수가 한때 어느 랍비 문하에 입학한 일이 있었다는 결론마저 끌어내어서는 안된다.[5]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223쪽

3. 역사

유대교의 사제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 나중에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직계후손 남자만이 될 수 있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제사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산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야만 유효하다. 그런데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이 유대왕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티투스 장군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신적 구심점인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라[6]고 군대에 명령했다. 그 결과 성전의 서쪽 축대였던 통곡의 벽 한 장만 남기고 모조리 부서졌다.[7] 제사를 올바로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동물 희생제사 같은 제사들도 거행할 수가 없게 되었고, 따라서 유대교의 모든 제사 관련 규례와 관행들도 사문화되었다. 현재 극소수로 남은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전통과는 별개의 전통을 따르기에 동물희생제사의 전통을 다르게 이어올 뿐이다. 성전이 파괴되자 기존의 성전 중심 유대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먼저 성전이 파괴되면서 레위 지파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성직자단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에 저절로 해체되었고, 자연스레 사두가이파와 로마에 대항한 젤로트당 등 세력도 몰락했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었고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 토라(율법)[8] 공부가 제사를 대신한다고 명망 있는 랍비가 해설한 이래, 랍비와 토라 공부장소(예쉬바), 토라 낭독,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수립되었고, 현대까지 발전해 이어졌다. 당연히 일개 학자들이던 랍비들이 성직자들의 권위를 흡수하고 유대인들의 종교적, 사회적 지도자의 위치로 부상해 엄청나게 신장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유대교를 이전의 성전 제례 중심의 정통(orthodox) 유대교와 구분하여 '랍비 유대교'라고 부른다. 즉, 랍비 유대교는 나라를 빼앗기며 유대교의 중심점이 되었던 종교 의식들을 하기 어렵게 되자 발달하게 된 대체재인 셈.

토라 공부와 시나고그 중심의 랍비 유대교가 확립된 후에도 하레디와 하시딤 등의 극정통파, 개혁파, 진보파, 보수파, 신정통파, 카라이트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카라이트는 토라의 권위를 인정하는 소수종파로, 서기 70년 이전 사두가이파와 달리 사후세계를 인정한다는 점과 다른 유대교파와 달리 육류와 유제품을 같이 먹어도 되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유대교 교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9]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아론의 후손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이 복구되리라 믿고 과거 유대교의 사제들이 행하던 종교의례를 복원하려 한다. 예루살렘성전산에 지어진 이슬람바위의 돔 건물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 고대 유대교의 전통 성직자단과 제례를 복구해야 한다는, 시오니즘적 민족주의와 결부된 주장을 하는 이들도 많다. 몇몇 유대인들은 실제로 폭탄을 몰래 설치하여 모스크를 부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은 이슬람에서도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안내를 받아 부라끄(buraq)라는 신수(神獸)를 타고 메카에서 성전산까지 날아왔다는 곳이며, 바위의 돔이 있는 자리에서 하늘로 올라가 알라를 뵙고 메카로 돌아왔다고 믿는 곳이다. 성전산 남쪽 밑둥에 있는 알 아크사 모스크는 무함마드의 승천을 기념해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아브드 알 말리크가 지은 것이다. 성전산 중에서도 정상에 있는 바위의 돔 자리가 중요하다. 유대교에서는 성전에서도 성궤(계약의 궤)를 모시던 지성소가 있던 터라고,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간 그 자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둘 다 건물이 아니라 터 자체를 중시하기에 타협이 불가능하다. 만약 정말로 바위의 돔을 파괴한다면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전 세계 무슬림들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아무리 친미 국가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돔 파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대신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통제한다.

4. 최고 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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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최고 랍비(Chief Rabbi, רב ראשי‎)도 있다. 랍비장이라고도 번역하기도 한다. 각국의 최고 랍비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랍비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최고 랍비이다. 이스라엘의 최고 랍비는 결혼, 장례, 개종에 대한 감독, 코셔 푸드 인증, 성지 감독권, 종교재판소를 관할할 권한 등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많은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5. 기타

  • 홀로코스트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지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계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여러 수감자들의 도움을 통해 안식일을 표시한 달력을 자체 제작하였고[10] 군인들 몰래 유대교 의식을 치루는 역할을 맡았다. 사울의 아들에서 잘 묘사되어있다. 다만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믿은 것은 아니었기에[11] 수용소별로 혹은 막사별로 편차는 있었고, 유대인 정치범들이 수감된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유대교 신자들보다도 폴란드인 정치범이나 소련군 포로와 더 뜻이 잘 맞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messianicjudaism.me/30961.jpg
개혁파 유대교에서는 양성평등의 여성 랍비가 있다. 유명한 사람으론 미국 코미디언 새러 실버만의 여동생인 수전 실버만이 있다. 이 사진의 랍비는 독일의 랍비인 알리나 트라이거로, 유대인 대학살이 있었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독일에서 성임된 여성 랍비이다.
파일:gery.jpg
동아시아인 랍비도 있다. 위의 인물은 일본유대교단(日本ユダヤ教団) 소속의 일본인 랍비인 핫토리 모세(服部モーシェ)다.
탈무드에서는 랍비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 행동 양식이 몇 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이야기마다 그 역할은 대동소이한데, 대부분이 뭔가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권력자나 일반인의 뒤통수를 지혜나 블랙 유머로 시원하게 후려치는 형식이다.
  • 늙고 못생겼지만 지혜로운 랍비가 어느날 왕실의 초대를 받아 여왕이 기거하는 궁전에 찾아갔는데, 여왕은 그의 외모를 보고 그를 저평가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랍비는 여왕에게 "포도주가 맛이 좋은데 어디에 담아서 보관합니까?"라고 물을 뿐이었다. 여왕은 "토기에 담아서 토굴의 암실에 저장한다"고 대답했는데, 이에 랍비는 "왕실의 권위를 살리려면 포도주를 금동이에 담아 양지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휘황찬란한 왕실에 토기와 토굴 암실이라니, 격이 떨어집니다그려."라고 따졌다. 여왕은 이것이 일리있는 말이라 여겨서 그대로 시행했지만, 양지에 내놓은 포도주는 식초만도 못하게 변질되고 말았다. 여기에 숨구멍이 막힌 금동이까지 겹쳐져서 그대로 썩어가기까지 했다. 여왕은 랍비를 잡아와 화를 냈지만, 랍비는 순순히 끌려와서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서, 양지에 내놓은 금동이 포도주는 맛이 좋았습니까? 폐하께서 날 비웃은 것도 내가 금동이에 담긴 것이 아니라 토기에 담겼기에 그러신 것입니다." 여왕은 이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잘못을 반성했다.[12]
  • 한 청년이 두 친구에게 각각 150달란트, 200달란트를 꿨는데, 두 친구가 다 200달란트를 꾸었다고 주장. 청년은 랍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각각 방법이 제시되는데...
    1. 두 친구에게 각각 150달란트를 갚고 200달란트를 꾼 친구가 누군지 후에 찾으면 그때 50달란트를 마저 갚는다.

    2. 누군지 찾을 때까지 아예 두 사람한테 무기한으로 대출을 연장한다.

    1은 그렇게 하면 150달란트를 꿔 준 거짓말쟁이는 손해 볼 것이 없고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친구만 손해를 보게 되는 방법이고, 2는 둘 다 손해를 보고 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랍비들은 의논 끝에 방법을 제시한다. 청년은 두 친구에게 찾아가 "누가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사람인지 찾을 때까지 돈을 갚지 않기로 했고, 만약 찾지 못하면 그 대출금은 모두 랍비님들이 갖기로 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전한다.
    그 후 한 친구가 청년에게 찾아와 자신이 150달란트를 꿔 줬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랍비들의 노림수였다. '50달란트 이득보려다가 150달란트를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원금이라도 찾자'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자수하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
  • 어떤 마을에 허풍과 과장을 굉장히 밥먹듯이 하여 거짓 소문 등으로 마을을 시끄럽게 만드는 여자가 있었다.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이 랍비에게 몰려가 하소연을 하자 랍비는 그 여자를 직접 찾아가 "왜 이웃에 대해 없는 일과 거짓말을 하여 소동을 일으키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난 그저 사람들 말에 조금 더 보태서 얘기한 것 뿐이다."라며 태연자약했다. 그러자 랍비는 자루를 하나 내주고는 "시장에 나가서 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놓고, 1시간 후에 그것을 다시 자루에 담아 가져오시오"라고 지시한다. 여자는 자루를 들고 시장으로 나가 자루를 풀었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은 바로 새 깃털이었다. 1시간이 지나자 깃털들은 당연히 바람에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간데없고, 남은 것은 한 가닥뿐이었다. 여자는 하는 수 없이 빈 자루와 깃털 한 가닥을 들고 돌아와서 "다 멀리 날아가버려서 주워올 수가 없었다." 하고 랍비에게 투덜댄다. 그러자 랍비는 "그 깃털이 바로 당신의 말(言)입니다. 말이란 아주 가벼워서, 한번 밖으로 나오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날아가버려 다시 주워담을 수 없게 됩니다. 진실한 말이든, 당신이 생각 없이 더 보탠 근거 없는 말이든 똑같이.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말은 결국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만든답니다."라고 여자를 훈계했고, 그 여자는 이후로 말을 굉장히 신중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 어느 늙은 랍비[13]가 기차를 타고 먼 곳을 가는데, 자기가 탄 기차칸에서 우연히 거금이 든 옷가방을 발견했다. 그러자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여자가 이를 보고 욕심이 나서 랍비에게 "그 돈의 절반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이 나를 겁간하려고 했다고 떠들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뭐라고 했소? 나는 늙어서 귀가 어두우니 글로 적어서 좀 보여주시구려."라고 능청스레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냉큼 쪽지에 자기가 한 말을 적어다가 그대로 전달했고, 늙은 랍비는 이를 받아들고 웃으며 가라사대, "어디 그대로 해 보시구려."[해석]
  • 지혜롭다는 특징 때문인지, ⟪9마일은 너무 멀다⟫로 유명한 추리 작가 헤리 캐멀먼의 간판 명탐정은 랍비다. [15] 대표적으로 ⟪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가 있다.

[1] 단 반드시 저런 외모를 유지할 의무는 없으므로, 면도하거나 모자를 벗고 다니는 랍비들도 없진 않다.[2] 아랍어에서도 '랍비(rabbi)'라는 단어는 이 뜻이며. 신의 이칭으로 사용된다.[3] 전술한 내용대로 '선생님'이란 뜻이 있었다 보니 이쪽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4] (책 속 주석)F. HAHN, Christologische Hoheitstitel: Ihre Geschichte im Frühen Christentum, FRLANT 83 (Göttingen 1963/4{/}^{4}1974) 77.[5] (책 속 주석)한 랍비계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여호수아 벤 페라햐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이미 年代상 이유로도 지탱될 수 없다. 예수를 얀나이 왕 때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이 전승에 관한 비판은 이미 Klausner, Jesus 25-9에도 나온다. 요한 7,15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예수가 공부한 적이 없다는 비난을 한다.[6] 여기에는 실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견고한 석조건물이었던 성전이 요새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7] 반대로 말하자면 이때까지는 레위 지파 출신을 판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성전 파괴로부터 불과 4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예수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레위 사람'을 언급했다.[8] '토라'라는 단어는 본래 모세오경을 가리켰으나, 후기 유대교에서는 오경을 주해한 랍비들의 해석까지도 토라로 불렀다. 그래서 단어의 의미가 넓어져 그저 '가르침'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율법'이라 번역한다.[9] 사실 유대교의 율법에는 깨끗한 고기를 먹어야 하는 금기도 있기 때문에 유대교의 성직자들 중에서도 도축업자를 겸직하는 랍비도 있다고 한다. 유대교는 신자들 사이에서 도축업자는 반드시 유대교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들만 했으며, 이맘과 마찬가지로 유대교 성직자격인 랍비가 도축업자를 겸직한 경우도 있었을 만큼 사회적인 대우도 매우 좋았다.[10] 들키면 달력은 불태워졌고 랍비들은 심한 처벌을 받았지만 어찌저찌 잘 숨겨서 전쟁 후반기의 혼란 속에서도 달력이 2개나 살아남았다고 한다.[11] 당연하지만 유대인 공산주의자나 유대인 무신론자도 있었다. 사실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사회주의의 민족해방 이념에 따랐기 때문에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별개로 종교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부터 무신론자였다.[12] 판본에 따라 여왕이 아니라 공주로 나오고, 또한 왕이 양지에 내놓은 금동이에 든 포도주를 마시고 공주를 꾸짖는 내용도 있다.[13] 판본에 따라서는 그 이름이 S.바바, 나이는 140세라고 밝히는 버전도 있다.[해석] 여자가 스스로 '당신이 돈의 절반을 나에게 내놓지 않으면 당신이 나를 겁간하려고 했다고' 썼기에 여자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랍비는 여자가 쓴 것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당연히 여자는 무고죄에 협박죄까지 까발려지니 랍비도 "어디 한번 해 봐라"(=니 스스로 무고죄에 협박죄 써보고 싶으면 그래보라) 라고 한거다.[15] 다만 9마일은 너무 멀다에 등장하는 명탐정은 미국 대학의 교수다. 다른 시리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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