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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자치단체 | 중구 | ||
| 행정표준코드 | 30100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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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위 행정구역 | 20통 109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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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11,902명[1] | ||
| 인구밀도 | 24,795.83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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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본래는 서대문구였다가 중구에 편입됐다.[3]2. 지명 유래
중림동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을 구성하고 있던 약전계 중동과 한림동을 따와서 지은 것으로, 1914년 총독부 고시에 의해 확정되었다. 해방 후 지명을 현대화하며 중림정에서 중림동이 되었고, 1975년 중구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해당 지역은 조선 시대에 약현이라고 불렸으며, 사대문 안을 나가면 가장 가까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서소문 밖 첫 동네, 가운뎃말[4]로도 불렸다.
약전계 중동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있던 작은 언덕(약현)에서 약재를 많이 길렀다 하여 붙어진 이름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이었던 약현과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한림동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살았던 가문에서 선조 시대에 한림 벼슬을 지낸 이들이 많이 나왔다 하여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중림동이라는 명칭 하에 중림동, 만리동 1~2가, 의주로 2가를 관할하고 있으며, 해당 지역 주민 사이에서 이 동네를 부르는 이름은 유동적인데 대체로 만리재, 만리고개, 충정로[5], 혹은 약현 등으로 불린다. 만리재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최만리가 붙었다 하여 그렇게 붙었다.
3. 상세
총 인구는 11,902명(2025년)으로, 중구 전체 인구의 10%가 거주하고 있으며[6] 서울역 서부역사 일대를 관할한다.같은 중구이지만 서울역 서부에 있는 동네인만큼 다른 중구 지역[7]과 생활권에 있어 차이가 있으며, 용산구 청파동, 서대문구 충정로, 중구 시청, 숭례문 일대와 생활권역을 같이 한다.[8] 서울로 7017이 위치해있어 서울역과도 도보로 갈 수 있으며, 넘어서 명동이나 회현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지역의 주요한 시설로는 한국 최초의 서양 건축양식 성당인 약현성당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들 수 있으며, 모두 조선의 천주교 박해와 연관된 곳이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양 출신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으며, 해당 처형장은 서소문 밖에 있어 순교지 뿐 아니라 처형 집행 장소로도 상당히 유명하였다. 처형을 집행하고 칼을 씻은 우물이 현재도 전해져오고 있으며, 서소문 공원 안에 위치하여있다. 해당 우물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상당히 유력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해당 장소에는 한국 최초의 수산시장이었던 중림 수산시장[9]이 있었다가 1970년대 노량진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공립 주차장이 있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순교지로 재조명받아 천주교의 노력 하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역사박물관이 세워졌고 건축학적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상도 여럿 받았다.
약현성당은 한국에서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본당 성당으로, 현재는 빌딩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과거에는 도성 안에서도 잘 보이는 언덕 위의 성당이었다 한다. 해당 위치에 지은 것은 순교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상당히 의도적인 것이었는데, 건축허가 자체는 명동성당이 먼저 떨어졌지만 여러 이유로 인하여 약현성당이 명동성당보다도 몇년이나 앞서 완공되었다. 현재도 해당 지역은 한국 가톨릭계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는 성지로 인식된다.
약현 성당 뒷편에는 성요셉아파트가 위치해있으며, 인근에 위치한 서소문아파트[10]와 더불어 한국 건축 역사에 있어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는 아파트이다. 성요셉아파트는 약현성당이 성당 직원을 위해 지은 관사 겸 아파트로, 지은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일반 분양이 되었으며 초기에는 약현성당과의 연결 통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해당 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11]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당 부지는 약현성당의 존재로 인하여 문화재 보호 구역 안에 들어가서 재개발 논의 없이 보존되어있기도 한데, 재개발 무산 이후로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과거 버려진 창고였던 아파트 앞길을 동네 서점 및 커뮤니티 센터로 개조한 "중림창고"가 들어서있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사진 스팟으로 유명하다.
한국경제신문 본사가 위치한 곳 앞에 있는 중림시장은 새벽에만 여는, 서울에서 이젠 드문 새벽 야시장이며, 해당 시장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 일제 시대 때부터 1970년대까지 이곳에는 한국 최초의 수산시장이었던 중림 수산물시장이 있었는데, 서울 도심 개발과 함께 1970년대 재정비되어 상인들이 모두 노량진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소수의 상인만이 남아 시장을 지키고 있다.
그 외에는 손기정이 다녔던 양정보통고등학교가 이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양정고등학교는 현재 강남 지역으로 이전했으나, 해당 지역의 부지는 체육공원으로 재개발되어 시민에게 개방되어있다.
4. 주요 시설
4.1. 기업
4.2. 언론
4.3. 주거
4.3.1. 아파트
- 삼성물산 중림동 삼성사이버빌리지 - 2001년 7월 입주.
- 대우건설 서울역디오빌(72세대) - 2005년 4월 입주.
- 이수건설 브라운스톤 서울(110세대) - 2006년 3월 입주.
- CJ건설 리하우스 - 2011년 12월 입주.
- CJ건설 더플레이스 충정로 - 2012년 5월 입주.
- LIG건설 LIG 서울역 리가 - 2012년 10월 입주.
- GS건설 서울역센트럴자이 - 2017년 8월 입주.
- (주)한라 서울역한라비발디센트럴 - 2018년 9월 입주.
- 약현성당 성요셉아파트 - 1971년 6월 입주
4.3.2. 오피스텔
- KCC건설 KCC파크타운 - 2004년 12월 입주.
- 대우건설 서울역디오빌(170세대) - 2005년 4월 입주.
- 이수건설 브라운스톤 서울(335세대) - 2006년 3월 입주.
- 쌍용건설 쌍용 더 플래티넘 서울역 - 2023년 9월 입주.
4.4. 종교
- 천주교 서울대교구 중림동 성당(약현성당) - 한국 가톨릭 최초의 성당으로, 1892년 완공되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근린공원 겸 박물관이지만 동시에 내부에 경당을 갖춘 엄연한 종교 시설이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만리현교회
5. 교통
6. 철도
- 서울 지하철 2호선, 수도권 전철 5호선 : 충정로역[12]
- 수도권 전철 신안산선의 서울역 연장 시 만리재역을 중림동[13]에 설치할 계획이 있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업성 부족의 이슈로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6.1. 버스
6.1.1. 광역
- 인천 버스 1000
- 인천 버스 1100
- 인천 버스 1101
- 인천 버스 1200
- 인천 버스 1300
- 인천 버스 1301
- 인천 버스 1302
- 인천 버스 1400
- 인천 버스 1500
- 인천 버스 1601
- 광역급행버스 M6117
- 김포 버스 이음1
6.1.2. 간선
6.1.3. 지선
6.1.4. 마을
6.1.5. 심야
7. 출신 인물
그 외에 최만리, 김정호, 허균이 이 지역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8. 기타
1927년 최초의 수산시장으로 경성수산이 중림동에 생기고 해방 후에도 서울수산시장주식회사로 이름만 바꾸어 운영되다 1971년 노량진동으로 이설되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노량진수산시장이다.중구, 종로구의 동네 중 조선시대의 길 형태가 현재까지 비교적 완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으로도 꼽힌다. 조선 후기 편찬된 지도#를 보면 중림동 일대가 현재의 골목과 거의 차이가 없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가장 먼저 다루어진 곳이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 중림동 재개발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향토 사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사실 무근이다.
2026년 5월 26일 오후 미근동과의 경계 지역에서 서소문고가도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1] 2025년 11월 주민등록인구[2] 만리동2가 273[3] 대통령령 제7816호[4] 중림동에서 중(中)의 어원으로 추정되기도 한다[5] 인근에 위치한 충정로역에서 따옴[6] 연도별 통계에 따라 구체적 수치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중구 인구 통계를 보면 서울역 서부에 10%, 서울역~을지로 연선에 10%, 동대문 일대에 80%가 거주한다.[7] 황학동, 신당동, 약수동, 청구동 등[8] 모두 도보 10분 이내이다.[9] 현재의 노량진 수산시장[10] 성요셉 아파트와 비슷한 시기 지어졌으며, 청계천을 복개한 하천 위에 올라가있다. 철거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가 겹치면서 2024년 철거가 무산되었다.[11]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알려져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는 1967년 완공된 세운상가와 1969년 완공된 낙원상가로 간주되며, 해당 아파트는 3번째이다. 다만 민간 투자를 통해 지어진 최초의 주거 용도 주상복합이라는 점에서 이쪽을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12] 2호선 충정로역이 동에 일부 걸쳐 있다.[13] 만리재로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