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2:52:36

조조(삼국지톡)

파일:어린시절쬬.jpg파일:20살쬬.jpg파일:기도위조조.jpg파일:쬬쬬.jpg
어린 시절 20살 시절 기도위 시절 반동탁연합 제후 시절
파일:서주 조조.jpg파일:미용사잘했어.jpg파일:돌아온 조맹덕 ㅁㄹ.jpg파일:조조_오소전투.png
서주 대학살 당시 협천자 과정 당시 하비 전투 시점 관도대전 시점[1]
파일:승상 조조.jpg 파일:조조 입촉.jpg 파일:조조 위공.jpg 파일:조조위왕.jpg
승상 즉위 시점 입촉 시점
(시즌 8 18화)
위공 즉위 후
(시즌 9 6화)
위왕 즉위 후
파일명 뭐야
1. 개요2. 캐릭터 묘사
2.1. 외형2.2. 성격2.3. 능력2.4. 추태
3. 작중 행적4. 인물 관계
4.1. 주적4.2. 부하들
4.2.1. 장수진4.2.2. 참모진
4.3. 가족들
5. 비판6. 여담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의 주인공이다.

2. 캐릭터 묘사

2.1. 외형

청회색 머리칼에 하얀 피부와 벽안, 그리고 다크서클이 드리운 사나운 인상의 안경 캐릭터[2]로 등장한다. 고전적으로 중화권에서 묘사되는 살집이 있는 체격에 덥수룩한 수염이 난 조조의 모습(대표적으로 신삼국조조)과는 정반대. 이런 식으로 조조의 외모를 묘사한 다른 작품으로는 고우영 삼국지가 있다.

관우, 주유, 원소 등과 함께 삼국지톡 대표 비주얼 담당.[3] 풍성한 수염을 지녔다고 묘사되는[4] 원작과 달리 수염 하나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손권이 가졌던 특징인 벽안도 조조가 가져갔다.[5] 그러나 동탁 암살에 실패한 이후부터는 조금이지만 턱수염이 생겼다가, 당장 면도하라는 독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는지 다시 밀었다.

그리고 시즌 7, 구체적으로는 승상에 오른 이후 다시 턱수염이 생겼다. 조숭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제법 보이는 편이고 이제 조조의 나이도 중년이니 앞으로는 그대로 수염이 유지될 것이다. 입촉 시점에 이르러서는 인상이 아버지 조숭과 상당히 비슷해졌다.

2.2. 성격

일반적으로 삼국지 관련 창작물에서 뭐든지 다 잘하는 만능 초인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삼국지톡에서는 성장형 캐릭터로 묘사되는 듯 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미숙하고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점을 보인다.[6] 더욱이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흥분하면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보통 냉철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창작물의 조조상과는 정반대지만 여백사 사건이나 서주대학살 등 조조가 격정적인 성격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아 오히려 고증이 잘된 편이다.

물론 여전히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상황 판단은 누구보다 빠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감정조절 문제 때문에 대형사고를 여러 차례 내는 것이 문제.[7] 이런 성정 때문에 순심은 순욱이 조조에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8] 덕분에 제정신이 아니던 서주대학살 때는 유비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고[9], 연주에서 여포와 진궁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런 흉년으로 인해 원소에게 의탁할 마음까지 품었던 당시에는, 금방 회복하긴 했지만 정욱이 조조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며 다그치자 한창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상태라 "난 몰라."라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0] 하비 공방전 당시에도 순유의 수몰 작전과 송헌 & 후성 & 위속의 배신 전까지는 진짜 퇴각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고, 이후 원소가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선포하자 제대로 겁먹어서 자신을 손절할 마음을 품고 있는 유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굳게 믿었다가 그를 놓쳐 버리는 대 실책을 저질렀다. 본격적으로 원소와 싸우게 되는 관도대전에서도 허유가 원소의 보급창고가 있는 오소에 대한 정보를 들고 투항해오는 천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원소의 흙성 작전으로 인해 완전히 독안에 든 쥐 꼴이 되자 정신적으로 몰려서 횡설수설하면서 원소는 죽어도 이길 수 없다고 자괴하기도 했다.

즉, 능력은 확실한데 의외로 약한 멘탈욱하는 성질이 약점. 그리고 연재가 계속될수록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무조건 제거하고 보려는 극단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여기에 생명을 경시하는 성향이 매우 강해서, 때로 무모한 도박이나 위험한 선택도 하지만 그 이유가 '자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인 유비와는 역시 대비된다.

그리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대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판단해 좋다 싶으면 긁어모아 쓴다는 것도 꾸준히 강조되는 특징이다. 일단 협천자에 오르기 전에도 남들이 버렸다 평하는 이들을 여럿 뽑았고, 논영회 때도 비 오는 마당에 삼선 슬리퍼 신고 손수 매실을 따와서는 소주와 와인, 캐비어와 뻥튀기가 섞인 기묘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갈량을 제외한 낭야중 학생들은 뭔 쓰레기통도 아니고 남들이 버린 인재 주워서 쓴다, 그만큼 기반이 약한 내시ㅅ끼라 비웃었고, 장수는 가후가 괜히 항복하라 한 것 아니냐고 속으로 웃으며 과소평가했지만[11], 유비는 "답다, 다워! 지가 좋아하는 거 싹싹 긁어모았구만..."이라며 정확히 꿰뚫어 본다. 혹자는 그런 후줄근한 차림이야말로 조조가 누구도 감히 지적할 수 없는 절대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나이가 40대로 접어들면서 꼰대 기믹이 붙었다. 정욱 등 책사들이 손책을 경계할 것을 간언해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행태가 그렇게 극혐하던 동탁을 조금씩 닮아가는 등. 시즌 3까지 보여준 '과격한 방식으로나마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점차 망탁조의 멤버에 걸맞는 모습으로 흑화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꼰대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들고, 서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의미에서의 꼰대지, 옛것에 고리타분하다는 의미의 꼰대는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역사상의 조조나 삼톡 내에서의 조조나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열려있는 편으로 묘사된다.

적벽대전부터는 50대가 되면서 이전보다 나른한 인상이 되었다. 이는 노쇠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12], 거듭된 승리와 대업의 완수를 코앞에 두고 있어 자만심에 빠진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자만심에 빠진 나머지 이전과 달리 책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적의 계략에 넘어가도 잘못을 인정하기는 켜녕 실수였다며 자기합리화를 하며 아랫사람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풍조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채모를 처형하는 에피소드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주유의 뻔한 계략에 넘어가 수군 총책임자인 채모를 죽이자 이에 경악한 정욱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외침에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대수롭지 않게 어차피 뇌물이나 갑질같은 죄를 지었을 놈이었다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전장에서 픽픽 죽어나가는 게 장수인데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다며[13]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14]

2.3. 능력

내 사람을 의심하며... 어찌 큰일 해내길 바랄까![15]
일단 인재를 뽑으면 믿는 것이 내 원칙이다.[16]

조조의 능력으로 확실히 묘사되는 것은 부하들에게 충성심을 사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불 같이 화를 내는 탓에 진궁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17], 신하와 장수들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허물없이 대하며 포상도 잘 챙겨줘서 부하들이 죽음을 불사르며 충성한다. 자신의 권위를 거스르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지만 자기의 말을 잘 듣고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에게는 정말 아낌없이 칭찬을 하며, 평소에 독불장군처럼 굴다가도 책사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는 '부탁'을 하는 등 공손하게 굴며 상대를 띄워주며, 전장에서도 장수들과 생사를 함께하며 그들을 격려해준다.

이런 부하들의 충성심이 가장 잘 드러난 게 하후돈이 눈을 잃었을 때인데,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조조에게 충성을 불사르는 하후돈과 이전 등을 보며 여포가 ‘나는 힘을 잃으면 부하들에게 배신당하는데 왜 조조는 힘을 잃어도 다들 따르냐.’라고 열폭하는 장면을 통해 조조가 그렇게 패배를 겪고도 결국 승자가 될 수 있던 이유를 보여준다.

순욱이나 진궁 등이 등장할 시점에선 그나마 가장 개혁 의지와 난세 평정의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욱만 해도 50살까지 임관하지 않다가 조조를 보고 희망을 얻어 출사했다.[18]

여러 창작물과 달리 조조를 결함이 있는 인물로 묘사함과 동시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조조에게 매력을 느꼈는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성향이 강한 많은 조조의 재해석과 달리 조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때야 비로소 훌륭한 지략을 펼쳐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데 서투른 면모를 많이 보인다.만년 캐해석 실패[19]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순욱의 인물 감정평에 크게 도움을 받았고, 반대로 유비는 제갈량조차 놓친 인물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낸 일화가 있어서, 양자의 차이를 부각할 겸 유비는 사람 보는 눈이 비상하고 조조는 그렇지 못한 걸로 설정한 것 같다.[20]
그래도 협천자 이후로 원소가 말한 명분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면서 원소의 본심을 꿰뚫는 등, 조금은 나아진 편이다.

2.4. 추태

2020년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연재 초기에 종종 댓글에 거론되었던 조조 인성파탄 3대 사건이 다 나왔다.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 서주 대학살, 완성 전투 흑역사.[21] 이에 독자들의 조조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뚫은 지 오래. 서주대학살 에피소드 때도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조조빠들조차 완성의 패배는 실드치지 못하고, 심지어 탈덕을 선언하는 사람들까지 나올 정도이다.

완성 전투 연재 당시에는 불륜을 저지르고 유부녀를 탐하는 등 성적으로 방종하기 그지없는 지저분한 사생활이 미화 없이 직설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독자들이 매우 질색했다.[22] '인간적으로 너무 추하다', '어떻게 원소가 조조한테 졌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이들도 있고 다 필요없다며 적벽대전한중 공방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도 많다.[23]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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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관계

4.1. 주적

  • 유비
    초반부터 미래에 대립하게 될 존재답게 같은 상황에서 같으면서도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예로 둘다 황건적을 토벌하고 벼슬을 받아 옳은 일을 하고자 했지만 부패한 조정에 의해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분해한다. 이때, 유비는 따라온 동생들에게 위로 받고 같이 가는 반면에 조조는 따라온 부하들에게 괜찮다고 손짓하고 홀로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유비가 동생들에게 서로 다른 날, 다른 장소에 태어났지만 죽을 때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죽자고 말한 반면 조조는 부하들에게 서로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태어났지만 죽을 때엔 다른 날, 다른 장소에 죽자고 말한다. 또 유비가 소패에 입성할 때는 백성들의 환대를 받으며 입성하지만 조조가 연주성에 돌아올 때는 연주인들의 적대를 받는다. 이외에도 작가진이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연출을 많이 넣고 있다.

    처음엔 서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망치듯이 천도하는 동탁군을 홀로 쫓는 등 옳은 일을 하는 모습에 유비가 인정하고, 조조 또한 동생들과 함께 싸워 여포를 쫓아낸 유비를 위해 손수 만든 깃발을 흔들어준다. 하지만 서주성 전투에서 서주대학살을 일으킨 것에 크게 실망한 유비가 면전에서 '괴물'이란 소리까지 내뱉자, 적대관계가 된다.
    그러나 여포가 치고 올라오면서 뒤통수를 맞은 유비가 머리를 숙여오자 '서주를 불태운 괴물이지만 황실 수호자이기도 한 자신이 서주의 영웅 유비를 받아줌으로써 화해를 했다'는 명분을 챙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일단은 받아준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과 달리 유비가 자신과 대중들 앞에서 '황손'이라는 명분을 공표하는 바람에 주객전도가 되면서 빅엿을 먹고 만다. 이후 유비가 입조할 때 은근히 괴롭히고 관료들 앞에서 위세등등한 모습을 보이며 기를 꺾으려 하였지만, 이번에는 헌제가 유비를 '황숙'이라 부르며 환대하는 퍼포먼스를 보이자 또 한 번 물을 먹고 만다.
    하지만 유비도 자기 처지를 아는지라 황제와 가능한 거리를 두고 있고, 여기에 서주성에서 여포에게 또 박살나는 바람에 더욱 처지가 나빠지면서 조조의 우위가 확고해지고 있다. 조조도 그걸 아는 지라 유비에게 "내가 '아랫사람' 하나는 잘 챙기는 거 알잖나?"라며 유비를 환대하면서도 주종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계속 갑질을 하는 행보를 보인다.

    이후 여포군을 궤멸시키고 하비성에 입성하면서 피폐해진 백성들이 자신이 아닌 유비를 보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아직도 용서치 않은 서주 민심과 그들을 포용하는 유비의 힘을 깨닫고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원소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믿을 구석이 그밖에 없어졌기에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 그리고 논영회 사건을 계기로 유비를 완전히 믿어보기로 맘먹지만, 정작 유비는 그 사건을 계기로 조조를 손절하고 완전히 떠났고, 이로 인해 완전히 적으로 돌리게 된다.

    • 관우
      반동탁연합 때 처음 만났는데, 조조가 화웅과 맞서겠다는 관우를 딱하게 여겨 술을 권했었고 관우는 화웅의 수급을 가져오며 조조에게 엄청나게 강렬한 첫인상을 선사했다. 반했쬬 그러나 이후 다시 엮이는 때마다 조조가 서주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관우와 친분 있는 장료를 조롱하고, 황제 앞에서 건방을 떠는 등 계속해서 안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서 관우 쪽에서는 현재 조조를 '옳은 마음이라곤 없고 바른 선택을 조롱하며 즐거워할 뿐'이라며 굉장히 혐오하다시피 한다. 조조의 짝사랑은 진작에 글러먹었다 조조는 당시 관우가 자신에게 남겼던 인상을 잊지는 않은 듯하나, 그가 황제를 위하느라 자신에게 맞선 것은 탐탁찮게 여겼지만 역시 그를 매우 탐냈다.

      이후 유비의 반란이 실패로 끝내고 관우가 항복하면서 자신의 부하로 삼았으나, 유비의 생사를 알면 떠나겠다는 조건부 계약이었기에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등,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백마 전투에서 대활약을 하자, 관우를 다시 보게 되어 그에게 푹 빠지게 된다. 입덕 부정기 끝내고 제대로 반했쬬 하지만 관우는 백마 전투와 연진 전투만 치르고서 조조를 떠났고, 조조는 미리보기로 다 훔쳐보는 안읽씹을 시전하며 못 가게 붙들어두지만 결국엔 보내주며 매우 아쉬워 했다.[24] 그래도 이후 적벽에서 관우가 그 때의 은혜를 기억하고는 결국 조조를 순순히 놔주는것으로 빚을 갚기는 했다.
  • 원소
    조조의 소꿉친구. 조조를 '냉정하고 카리스마와 퇴폐미가 넘치는 난세의 간웅' 이미지로 인식하던 독자들이 그에게 화난 고양이, 쬬메라니안이라는 별명을 선사하게 한 1등공신. [25]
    분명 친구라고는 하는데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관계. 원소는 조조를 은연중에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며 그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하고, 조조는 원소에게 휘둘리는 것을 내심 불만스러워하며 그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원소는 조조가 '감히' 자신과 맞먹으려 든다 싶으면 바로 호칭부터 바꿀 정도로 불쾌한 기색을 비친다. 사서에서는 분명히 나타나지만 현대 창작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원소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조조의 모습이 잘 구현되어 있다.
    한편, 조조는 원소가 십상시에게 죄를 씌우려고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한 일/십상시의 난 당시 죄 없는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학살한 일/어린 황제를 내쫓고 대립황제를 추대하려 한 일 등을 비판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원소보다 더한 악인이 되고 말았다. 독자들도 조조가 점점 원소를 닮아가고 있다고 평한다.

    시즌 6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기어이 협천자에 성공하여 '황제를 구출한 영웅'이라는 명분을 업은 뒤 본격적으로 원소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내에서의 충돌을 계기로 완전히 적으로써 반목하게 되었으며, 조조는 자신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원소에게 크게 고전했지만, 순욱의 격려와 여러가지 천운이 따라준 덕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 원소에게 승리한다. 하지만 그 싸움을 마지막으로 원소가 죽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원가의 잔당들을 소탕하고 기주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원소가 이룩한 모든 업적이 사라져 가는 것에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기주의 백성들의 민심을 사기 위해 원소의 무덤 앞에서 그를 추모할 때, 낙양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십 수년동안 그를 뛰어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건만, 결국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원소 덕분이었음을 깨달으며 복잡한 심경이 북받쳐올라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원소란 태산이 없어진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조조일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즉 원소는 조조를 늘상 아랫것 취급했을지언정, 조조는 그에게 진심으로 애증 가득한 우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 이후 천하를 손에 넣을 이유에 원소의 추모도 끼워넣었다.

    • 원담, 원희, 원상
      아비보다 못한 무능한 자식으로 여겼다. 특히 원담의 경우, 원소가 사망한 직후 내분으로 쫓겨나고서 조조에게 "숙부" 운운하며 빌붙으려 하는 등 한심한 꼴을 보이자, 조조는 속으로 "...원본초, 원본초! 이 머저리들이 정말...네 핏줄이란 말이냐?!"라고 한심함을 넘어 소름끼쳐했다. 심지어 이 모습을 보고 정욱은 (원소의 자식이 저렇게까지 멍청할 리가 없으니) 함정이 아니냐고 의심했고 순유는 "쟤네는 그럴 머리가 없다"고 팩폭을 했다. 실제로 원씨 형제들은 아버지가 보인 군사, 정치, 행정적 능력의 발끝에도 못 따라가는 모습만 보이며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 손가 진영
    • 손책
      협천자 직후 시점에서 손책은 이미 강동에서 '소패왕'으로 이름을 날리는 군웅으로 성장했으며, 정욱 등의 참모진들도 '어린 나이에 출세한 대단한 인물이니 얕보지 말고 견제하시라'고 조언하였다. 하지만 조조는 천하를 제패할 인물에 대해 추측하는 기사를 보고서 감히 하룻강아지 주제에 자신과 동급의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에 불쾌해하며, 손책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상태. 그래도 원소와 본격적인 결전을 앞두고서 동맹인 유표가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해 마침 아버지 손견을 죽게 만든 유표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손책을 오후로 봉하고서 유표를 막는데 썼다.
      하지만 관도대전을 치르던 동안 세력을 크게 성장시킨 손책이 어느새 허도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적으로 돌리게 되지만 손책이 먼저 죽어버려 그와 대결하는 일은 없었다.
    • 손권
      관도대전 이후, 본격적인 형주 침공에 앞서 항복하고 밑으로 들어올 것을 종용했다.[26] 결국 오를 박살내러 직접 쳐들어갔다가 적벽에서 함대를 죄다 태워먹고 도망치는 것으로 댓가를 치룬다.
      그럼에도 유비와의 위태위태한 연합으로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손권을 새끼 고양이 취급하며 우습게 여겼으나, 이후 유수구에서 손권이 함선을 직접 몰고 쳐들어오자, 일단 위엄을 살리고자 배에 화살을 수만발을 박는 것으로 응수하려 했으나 손권이 물러가지 않으면 제 2의 적벽 꼴을 보게 될테니 속히 뒤져달라는 경고를 날리고 여태껏 맞은 화살로 기운 배의 반대쪽에 화살을 맞아 균형을 맞추고서 그대로 화살까지 챙겨 돌아가는 퍼포먼스를 보이자, 적이지만 참 대단하다며[27] 아들을 낳으면 손권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감탄하며 그를 인정했다.
  • 십상시
    조조가 십상시를 싫어하고 죄를 지은 건석의 숙부를 봐주지 않고 처벌해 죽여버린 탓에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조조의 할아버지가 환관계의 전설이고, 십상시의 일부를 키운 탓에 십상시는 조조를 죽이지 않고 감시하고 견제만 하고 조조 역시 본인 집안이 환관 집안에 속하기 때문에 십상시를 직접적으로 치지는 못하는 상태이다. 허나 하진의 사망 이후 작정하고 모두 털었다.
  • 여포
    동탁이 황제를 쥐어잡고 통치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악연. 반동탁 연합군 당시 여포에게 기습당해 호되게 당한 전적이 있으며, 진궁과 손잡은 여포에게 연주를 뺏기기도 했었다.
    그래도 부하들의 도움으로 여포를 연주에서 쫓아내고, 이후 여포에게 배신당한 유비가 찾아오자, 함께 여포를 몰아붙이다 끝내 사로잡고 여포를 죽인다. 여포의 가족에게 사악하기 그지없는 역대급 고인드립을 치지만 의외로 허도에서 카페를 차려 지낼 수 있게 해준다.
  • 원술
    젊은 시절부터 원술은 조조를 '천박한 내시놈'이라며 멸시하고 조조는 그런 원술을 못마땅해 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에도 공손찬과 동맹을 맺은 원술을 조조가 패퇴시키거나 원술이 칭제한 후 여포를 공격하자 조조가 여포를 지원하여 원술을 공격하는 등 둘은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적이 되었다. 결국 수춘성에서 원술을 완전히 패퇴시킴으로써 중원의 패권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 도겸
    아버지 조숭을 죽게 내버려두었다고 생각하는 철천지 원수.[주의] 하지만 그가 유비에게 보호받다가 서주목 지위를 넘기고 사망하는 바람에 제대로 복수를 하지도 못했다.
  • 장수
    완 전투에서 조조가 먼저 장수의 숙모 추교요를 건드리고, 장수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전위와 조앙을 죽이면서 악연이 시작되었다. 완 전투와 양성 전투로 두 번이나 엿을 먹었지만, 원소와의 전면전에서 불리해진 조조가 먼저 아들 삼형제와 사과상자를 보내 사과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 유표
    원소와 같은 동류로 보고 있다.

4.2. 부하들

4.2.1. 장수진

  • 하후돈
    조조의 오른팔이자 친척 동생들 중에서도 가장 친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조조가 거병하기 전부터 함께 했으며 조조에게 절대충성을 바친다. 조조도 이런 하후돈을 신뢰하고있다.
  • 하후연
    친척동생. 고등학생 시절 조조 대신 감옥에 갔다온 일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 때의 일을 서운하게 여기고 있지만, '너희는 이 조조에게 인생 배팅하라'는 약속을 믿고 참고 있었다. 거병 이후로는 여타 조하후가 장수들처럼 충직한 장수로서 조조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랬던 만큼 조조도 막 굴릴 때도 있었어도 그를 아꼈고,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이 전사하자 수급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 조인
    잘 싸우고 충성스럽지만 고지식한 친척 동생. 진규, 진등 부자의 농간으로 여포가 서주성을 버렸을 때, 지원 없이 그냥 서주성을 빈집털이하면 된다는 뜻에서 "맨몸으로 다녀오라."고 명령했는데 조인은 '여포를 죽이고 너도 죽으라'고 받아들여 진짜로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전쟁터에 나서려 해 주위를 경악시켰다. 이 때문에 조조는 "날 위해 이렇게 해 주다니 너는 정말 충신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필요 없다."라고 조인을 달래야 했다.
  • 조홍
    철없는 친척 동생이지만, 그가 가진 재산은 거병 당시부터 조조군의 도움이 되었고 조조가 위험한 순간에 구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신임하고 있다.
  • 전위
    보디가드. 자연인이었던 전위를 자신의 곁에서 키워줬고 전위도 조조에게 항상 충성한다. 그러나 결국.....
  • 장료
    한 때나마 동탁의 수하로서 일한 탓에 장료를 동탁에 의해 생긴 별명(요상스런 토끼대가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장료 또한 여포의 수하로서 일할 때까지 조조를 보고 말하길 성깔 더러운 사내, 앞으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평하고 있었다. 그러나...

4.2.2. 참모진

  • 진궁
    지금의 조조를 있게 한 일등공신 중 한 명. 조조는 진궁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자신이 연주를 얻는 데도 크게 공헌하였으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까지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매우 신임하고 의지했으며, 순욱 등 조조의 다른 수하들도 그 점을 잘 아는 듯 '조조가 진궁을 많이 아낀다, 가족과 같은 사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진궁은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에서 조조의 잔혹한 면모를 본 뒤부터 그를 끊임없이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건 약간의 희망을 버리지는 못하는 양가감정을 품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조조와 진궁의 동상이몽과 알고 보면 위태로운 동맹을 지켜보는 것도 그 나름의 묘미였다.
    이후 조조가 연주 호족 변양을 살해하고 진궁의 "제발 서주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애원도 개무시한 일을 계기로, 진궁은 조조에게 완전히 학을 떼고 그의 적으로 돌아섰다. 이후 진궁은 조조를 죽이는 데 몰두하여 정신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점차 피폐해져 가고 있고[29], 조조는 진궁이 자신을 배신했다니 도무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다시 돌아와 주기를 기대했는지 '배신자를 모조리 죽이되 진궁만은 살려서 데려오라'고 명하기도 했고, 진궁이 복양성에 불을 질러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하비에서 재회하자 '사죄만 하면 다시 받아주겠다'며 회유하기도 했다. 거기서 진궁이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맞히자 비로소 그가 자신을 완전히 버렸음을 확인받고 죽여 버리겠다며 발악을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호칭만은 여전히 '진선생'이다.
    끝내 진궁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조조는 여포군의 패망 이후 다시 한 차례 진궁을 회유했다. 그러나 진궁이 그를 거부하고 기어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조조는 결국 그를 붙잡지 못하고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 순욱
    지금의 조조를 있게 해준 일등 공신 중 한명 처음에 자기 밑에 왔을 때는 장자방을 얻었다고 할 정도로 귀하게 대접했고 이후로도 진궁과 함께 참모진 중에서 특별히 총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주 대학살을 벌이고 돌아온 후로 자신을 원망하는 기색을 느끼고는 불협화음이 시작되며, 진궁의 배신을 겪고는 인간불신이 생겼는지 순욱을 향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불만 있는 자는 나오라고 했을 때 순욱이 손을 들며 나서자 엄청 당황하면서 자리로 물러나라고 소리치는 걸 보면 아직도 별히 신뢰하는 신하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관도대전 편에서 원소의 맹공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면서 퇴각까지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렸을 때, 그의 일침과 조언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적벽대전 시즌부터 조조 본인은 승상에 취임하면서 서서히 권력을 강화하는 반면, 순욱이 한 황실과 가까이 하는 모습에 의심이 더 싹트기 시작하고, 그 동안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해 줬던 곽가도 요절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점차 갈라서게 되었다.
    결국 조조의 위공 즉위를 순욱이 정면으로 반대하면서부터 갈등의 골은 돌이킬 수 없어졌고, 좌천과 회유 등 갖은 방법으로도 순욱이 마음을 돌리지 않자, 끝내 순욱을 토사구팽 해버린다. 순욱이 죽은 후 "미안합니다. 순 선생. 당신을 잃은 건 순전히 내 실수야."라고 사과하며 나름의 착잡함을 드러냈으나 결국 미안한 건 미안한거고, 진궁과 순욱이 충성하던 것은 자신이 아닌 한나라였으니, 그들이 바라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이미 조조의 야망은 돌이킬 수 없음을 보여줬다.
  • 정욱
    조조의 부하들 중 최연장자라 조조도 정욱을 '정선생님'이라고 존대하며, 정욱 또한 조조에게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뜻을 보았기에 그를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 다만 협천자 성공 이후 점차 독선적인 면모를 띄는 조조와 의견이 맞지 않는 모습도 보이는데 조조가 손책을 견제하라는 정욱의 조언을 무시하여 노한 정욱을 다른 참모들이 달래는 일도 있었고, 완성 전투에서 추태를 부리다 전위와 조앙을 잃고 돌아온 조조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조조가 냉정을 잃거나 실책을 하면 꾸짖으며 인도하는 엄한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에 더 가깝게 변했다.
  • 곽가
    팩트 폭행과 직설적인 말로 성질을 긁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알아서 적정선은 잘 지키는데다 듣고보면 다 맞는 말이었다. 여기에 평소에도 '갓르신'이라고 칭하며 치켜세워 주면서 중간에서 애교를 떨며 중재를 잘 해주기에, 마음이 제일 잘 맞아 아끼는 신하였다. 작중 시간이 지날수록 조조의 말투나 도발 스킬이 곽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슷해졌거나 더 심해졌으며, 그의 최후에 마음 속으로 깊은 상처를 느끼게 했다.
  • 순유
    순욱의 조카로써, 하비 공방전 당시 여포를 잡는데 큰 공헌을 한 일등 공신. 물론 순유도 조조의 도 넘은 만행들에 회의를 갖긴 했지만, 그래도 숙부 순욱과 달리 순유는 조조를 선택한 이상 돌이킬 수 없다며 계속 조조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승상에 취임한 조조가 서서히 권력을 강화하는 반면, 순욱이 한 황실과 가까이 하며 점차 갈라서자, 정욱과 함께 이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결국 조조의 위공 즉위를 순욱이 정면으로 반대하면서부터 갈등의 골은 돌이킬 수 없어졌고, 끝내 조조가 좌천과 회유 등 갖은 방법으로도 마음을 돌리지 않은 순욱을 토사구팽 해버리자 순유는 당황해서 숙부는 자신이 설득할테니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며 빌지만, 도리어 조조는 "당신이 하비 공방전때 사람들을 강물에 담가버리는 작전을 수행해 가면서까지 성장시켜 놓은 나 조조를 순욱이 막으려고 하는데 괜찮겠냐"며 강제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때문에 순유는 애써 순욱에게 잘못을 돌리며 건강을 해쳐 가면서까지 조조를 위해 일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과 순욱이 이뤄놓은 모든 것들은 조비를 비롯한 욕심많은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절망해 홧병으로 사망하며 순욱의 뒤를 따랐다.
  • 전만
    전위의 아들로, 원래는 조조가 자기 잘못 때문에 전위를 잃은 것을 마음에 두어 문관으로 채용하고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전만은 자청해서 왕후를 암살하고 '충성을 바치겠으니 제 아비를 기억해 주시라.'고 청한다. 이에 조조도 전만을 기특해하며 귀중히 쓸 것을 맹세한다.

4.3. 가족들

  • 조숭
    조조의 아버지. 등장할 때마다 아들에게 발길질을 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아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목숨이 아홉 개라도 모자랄 짓을 골라 하고 다니는 꼴을 보고 속에 천불이 나서이다. 본인 말로는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조조를 홀로 업어 키웠다는데, 그렇게 귀하게 키운 아들놈이 십상시의 친척을 살해하고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해 달아나는 등 스스로 명줄을 재촉하고 있으니.... 어쨌든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맞는지라, 볼 때마다 때리고 후레자식이니 망둥이 같은 놈이니 하며 구박하긴 하지만 핸드폰 연락처는 내새끼라고 저장해 두었다. 조조도 아버지 심정을 모르지는 않는지, 연주자사가 되어 당당하게 출세하자 얼른 아버지를 연주로 불러서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안달복달하면서[30] 화려한 연회를 열어 아버지를 맞이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한으로 남게 되었다.
  • 정영옥
    前 정실부인. 영옥이 조조에게 '내가 너 개짓거리 하는 거 다 눈감고 참아 줬다, 어차피 정략결혼이고 너랑 난 비즈니스니까'라고 하는 걸 보면, 대외적으로는 서로를 적당히 존중하고 사생활에도 간섭하지 않는 사무적인 관계인 듯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조조가 일방적으로 영옥의 속을 썩일 짓을 많이 한다.바람이라든가 바람이라든가 한편 영옥이 명문가 출신에 조조보다 연상이라는 설정이다 보니 조조는 그녀를 누님이라 부르고, 영옥이 자신을 쓰레기라고 욕하든 멱살을 잡든 화는 내지 않는다. 영옥이 워낙 조조의 막장 행태를 참아주느라 쌓인 것이 많고 조조 입장에서도 가문 좋고 나이도 많은 아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데다가, 스스로도 영옥에게 지은 죄가 많은 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
    끝내 조조가 추잡한 짓을 하다가 자신의 장자이자 영옥의 양아들 조앙의 목숨을 잡아먹기에 이르면서 결혼 생활은 완전히 파탄났다. 이미 영옥은 그전부터 '조앙에게 일이 생기면 조조를 용서치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기에, 조앙의 죽음에 대해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너도 죽었어야 했다고 엄청난 원망과 증오를 토로하고 이혼한다. 그 천하의 조조마저 조앙의 죽음만큼은 자신의 잘못임을 부정하긴 커녕 다른 이에게 책임전가조차 못하고, 뒤늦게나마 영옥에게 사과하려고 여러 차례 찾아가며 재결합을 간청했지만 끝내 용서받지 못하고 이혼당한다.[31]
  • 변영
    現 정실부인. 조조가 정영옥과 비즈니스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 만나서 내연 관계가 되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조비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 이후 조조가 조앙의 죽음을 계기로 정영옥에게 이혼당하면서 공식 후처가 된다.
    부부 사이 자체는 나쁘진 않다. 그러나 엄연히 미천한 출신(전직 댄스 가수[32])의 후처인지라 조조와 내연 관계로 맺어졌다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자신의 존재 때문에 속이 남아나지 않았을 정영옥, 괜히 뒷담화를 들었을 자식들, 심지어 악성 스캔들 기사를 퍼뜨림으로써 조조에게 보복당해 죽을 기레기까지도 걱정했다. 이렇게 가족을 위하던 변영조차 나중에 조조가 황제의 장인이 되기 위해 세 딸들을 헌제의 후궁으로 내주자, 그 비정한 행태에 어떻게 제 욕심 채우자고 귀한 새끼들을 절벽으로 떠미냐며 그를 때릴 정도로 분노한다. 정작 아내에게 얻어맞은 조조는 화를 내긴 커녕 눈 하나 꿈쩍 안하고 내가 이제 황제 장인인데 행동은 삼가라며 주의를 주지만, 변영은 한낱 짐승도 위험하면 제 새끼부터 품에 품어 보호하는데 어찌 아비란 작자가 한 황실과 황제를 조만간 다 박살낼 거면서 왜 황실 가족으로 만들었냐고 화를 삭히지 못한다. 하지만 조조가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자신이 한나라를 집어삼키면 딸은 장차 황제와 한 무덤에 누울 것이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황후만이 황제의 무덤에 같이 묻힐 수 있는데 어떻게 일개 후궁인 딸들이 그러냐며 얼이 빠지지만 조조는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놨던 것이었다.
  • 조앙
    맏아들. 첩실 유부인의 소생이지만 생모가 일찍 죽고 정영옥이 친아들처럼 키웠으므로 사실상 적장자다.
    정작 조조는 적장자의 나이조차 정확히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지만,[33] 조앙은 그래도 아버지라고 조조를 따라 종군하고, 아버지의 불륜과 패행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최대한 아버지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그 대업을 함께 이루려는 모습을 보이는 착실한 아들. 일부 독자들은 '조앙이 아버지의 불륜과 무관심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며, 종군을 결심한 것도 하루빨리 공을 세워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서인 듯하다'고 평했다. 장수군의 역습으로 부자가 위기에 처하자 조앙은 망설임 없이 한 마리 남은 말을 아버지에게 주는데, 이에 조조가 "내가 이걸 타면 너는 어쩌겠다는 거냐?"고 묻자 아버지가 자신을 의식한 것이 기뻤는지 웃으면서[34] "아들이기 이전에 신하로서 주군을 돕는 것이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답한다.

    직후 조조를 위해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조앙이 장수의 창에 맞고 죽으면서, 결국 조조는 제가 살려고 제 자식을 잡아먹은 아비가 되고 말았다. 조조 역시 조앙이 죽은지 한참이 지난 시점인 삼국지 28화에서 후계 선정 문제로 고민하며 "앙아, 너만 살아있었어도 아빠가 이런 고민 하겠느냐..."라고 한탄하면서 능력과 인성 모두 출중했고 바르고 용감했던 장남을 그리워한다. 당연히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너 때문이잖아!
  • 조비
    둘째 아들이자, 내연녀 변영 소생 중에서는 장남. 이복형 조앙의 죽음과 그로 인해 조조가 정영옥에게 이혼당한 후 변영과 재혼하면서, 공식적인 조조의 장남으로 등극했지만 조조의 팔꿈치에 치였다. 첫 등장때는 의외로 소심하고 남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것처럼 묘사되어서 실제 역사에서 보여준 개막장 싸이코 인성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댓글에서는 작중 최대의 고증 오류라는 드립이 흥했으나, 곧 시즌 6 84화에서 "황제는 힘도 없고 나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 주제에 지가 뭐라고 나대는 거냐, 우리가 그런 황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냐"며 황제를 대놓고 무시하는 광기어린 본색을 드러내며[35] 역시 조조 아들 다운 인성을 보여줬다.
    변영의 말에 의하면 최근 사춘기가 왔는지 성격이 점점 모나기 시작했다는데, 조조는 지 아빠가 조조인데 착한 동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며 투덜거렸지만, 일단 지 처지가 끼어들어온 첫째라는 걸 잘 알아서 눈치 하나는 빠른 걸 장점으로 여기고 있다. 확실히 외모 면에서나 성격 면에서나 조조가 대놓고 자신을 닮아 망둥이 같다고 할 정도로 조조의 아들들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이후 조비가 성인이 되자 공식 후계자로 이름을 올리고 여러가지 수업을 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아부만 떨줄 알고 동생들을 비롯해 적까지 질투하는 한심한 행태만 보이자, 조조도 이에 질려서 조식도 후계자 후보에 올리고 조비를 은근히 물맥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장남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다가 세력이 망한 원소, 유표의 선례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하다가 끝내 믿었던 조식이 양수와 짜고 부정 행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김칫국을 마시며 제멋대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키자, 결국 조비를 태자로 택한다.
  • 조창
    형과 동생만큼의 지력은 없지만, 뛰어난 무력을 보여주며 장군감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시체를 벽으로 쌓을 만큼 조조의 잔혹성을 물려 받은데다 선대 군웅들을 힘겹게 이겼던 아버지를 무시할 만큼 자만심이 은근히 깔려 있었으며, 조식이 태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줄을 잘못 탔다가 아버지의 진노를 사고만다.
  • 조식
    공식 후계자로 세워 놓은 조비에게 실망스러운 점들만 보이자, 차기 후계자로 점찍고 자질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에 조식이 마음에 들 만한 행동들을 보여주면서 조조는 조비를 내치고 조식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하지만, 장남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다가 세력이 망한 원소, 유표의 선례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한다. 하지만 사실 조식은 양수를 통해 부정 행위를 저질렀고, 이도 모자라 자신이 태자가 될 거라는 자만심에 김칫국을 마시며 제멋대로 행동함으로써 마지막 순간에 조조를 실망시키고 만다.
  • 조절
    본인 말에 의하면 직접 분유 타 먹이고 걸음마 가르치며 애지중지 키운, 본인을 쏙 빼닮은 딸. 그러나 그 귀한 딸마저 본인의 야망을 위해 황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낸 뒤 황후를 죽여 그 빈 자리에 다시 밀어넣었다. 조절 또한 "내 저주스러운 아비가 이룩한 모든 게 먼지가 되는 꼴을 두 눈에 담아 가겠다"고 맹세할 정도로, 이미 부녀 관계는 완전히 파탄났다.
  • 조예
    사실상 장손. 적벽대전 시점에서 카톡 배경사진을 아기 조예의 사진으로 해 놓을 정도로 귀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의 상태 메시지는 '예뻐서 조예더냐 아이고(...)'[36]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뇌졸중 걸리고 싶지 않으면 술 좀 그만 마시라는 화타를 갈구던 걸 말리며 건강 생각해서 조언해주신 거니 이해 하시라며 할아버지 건강도 걱정해주고, 할아버지의 전쟁 당시 활약 이야기를 제일 좋아해서 매일 들려달라고 청하자, 아주 흐뭇해하며 품에 안고 예뻐한다.

5. 비판

항목이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 여담

  • 본명 '조조'보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진궁은 그를 떠나기 전까지 '조맹덕씨'라 불렀고 원소, 허유, 십상시들, 아내 정영옥은 모두 아명으로 부른다.[37] 조조의 아명이 이렇게 자주, 많이 언급된 삼국지 창작물은 삼톡이 최초일 것이다.[38]
  • 독자들에게는 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확히는 퇴폐미 넘치는 간웅인 '조조'와 작달막하고 하찮고 귀여운 '쬬'로 이미지가 양분되었다.
  • 동인계에서 고양이로 모에화 당하는 일이 흔하다. 통칭 '쬬냥이'(...).
  • 삼국지의 전통적인 인기 캐릭터답게 삼국지톡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 트위터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으며 삼국지톡 등장인물 중에서는 먼저 나온 유관장보다 더 빨리, 최초로 문서가 만들어졌다. 중국어판에서도 조조가 첫 등장한 9화 댓글수가 가장 많다.[39]
  • 키가 작다. 19화에서 유비와 비슷한 키로 묘사되어서 논란이 있었지만[40], 41화에서 키가 165cm 미만이라는 것이 밝혀지고[41]깔창을 신은 듯 노식, 원소 등과 머리 하나 정도 작게 그려져서 논란이 종결되었다.[42] 키가 작은 것이 은근히 컴플렉스인 듯. 이후 협천자 편에서 익명의 제보자로 인해 악진이 조조보다 더 작은 것으로 밝혀졌다.[43] 덤으로 조조가 빨간옷을 즐겨입는 이유도 허도홍보청의 공식 입장은 '한나라가 불의 기운을 받은 나라인 만큼 한 황실을 지키겠다는 깊은 뜻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키를 조금이라도 더 커보이게 하기 위한 조조의 발악이라 카더라.
  • 보기보다 입이 상당히 거칠다. 특히 연재 초반에는 빡쳤다하면 여지없이 쌍욕을 연발하곤 했다. 어릴 때도 똑같았는지, 원소와의 첫 만남에서 원소가 자신을 부하 취급하려고 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쌍욕 연타를 날려 벙찌게 만들었다. X까 개*끼야 머리 만지지마 *발
  • 40대에 들어서는 '흥', '헹', '힝' 등의 어조를 자주 사용했는데 너무 경박해 보인다는 이유로 독자들 사이에서 불호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최근연재분에 들어서는 잘 안쓰게 되었다. 또한 경박한 어휘 사용과는 별개로, 독백을 할 때는 상당히 시적인 표현을 쓰곤 한다.[44]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게 조조는 사실 당대에 손꼽히는 탁월한 문학가이기도 했으니.
  • 조조 최악의 만행이 연출되자[45] 독자들은 쬬가 아닌 '조맹덕 머리박아'를 외치며 조조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조조라는 인물이 삼국지 내의 중심인물이며 인성문제만큼이나 능력이 있는 인물인지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좋아하는 추세. 그러나 깔 건 까자는 까빠들도 많은 듯. 이렇게 조조의 인성문제를 다룬 삼국지는 삼국지톡이 처음이 아닐까...
    작가는 조조가 직접 '서주 백성들은 죽어야 마땅하다, 내가 서주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라고 하는 독백을 넣어 서주대학살이 엄연한 조조의 잘못임을 강조했다. 게다가 학살을 해놓고 조조가 이걸 전쟁이라고 한다거나 자신이 이기고 왔다고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서 학살 전략설을 비판하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46]
  • 2019년 12월 16일 이리 작가의 트위터에 유료분 '조조놈이 죽었다'가 올라오는 동시에 조조의 영정사진이 썸네일이 되었는데 그 덕분에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영정사진이 올라왔다.
  • 서주 대학살을 기점으로 흑화가 본격화되더니[47] 연주 탈환전 때에 이르면서 확실히 최종 보스다운 비주얼로 거듭난다. 오죽하면 관도대전 3화 베댓 중에 "다른 만화에서 보던 조승상 모습을 이제 보네."가 있을 정도. 실제로, 조조의 흑역사인 여백사 살해와 서주 대학살 연출 전까지는 작품이 너무 위빠 아니냐는 배댓까지 있었다. 그러나 시즌 6 관도대전 이후로 위빠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 예술가로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음을 반영했는지 집에는 명화를 걸어놓았다. 그런데 그 명화들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나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조조의 성향과 미래를 암시하는 그림들이다.
  • 계속해서 까일 만한 짓들을 연이어서[48] 터뜨린 탓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요새는 뭘 해도 무조건 미워 보이는지 옳은 말/행동을 해도 그냥 까이고 들어간다.[49] 현재까지 조조가 전성기 때의 인기를 되찾을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다른 군주들의 잘못은 그닥 부각하지 않으면서 조조의 잘못만을 너무 부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확실히 조조의 본능력은 거의 나오지 않고 조조의 수하들만 조명되는 모습에 정당한 불만을 표출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1] 원소군의 보급기지인 오소를 공격할 때.[2] 안경은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다. 초반엔 안경을 매번 쓰고 나왔으나 최근엔 안경을 자신의 '본심'을 숨겨야 할 때 쓰는 것 같다.[3] 삼톡 등장인물들 중 정사에서 미남으로 묘사되는 사람은 관우, 주유, 제갈량, 순욱, 손책, 원소, 공손찬 등. (관우의 경우 용모 자체보다는 근사한 수염이 강조되며 제갈량이 그걸 강조한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는데, 남자가 수염을 기르는 게 당연했던 시대에 멋진 수염을 굳이 부각한 건 간접적으로 용모의 준수함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조조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수염이 풍성했다는 게 끝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외모가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 다만 조조의 손자인 조예는, 절세미녀였던 어머니를 닮기라도 했는지 미남이었다고.[4] 특히 수염에 대한 부분은 연의에서 조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온 묘사다.[5] 다만 조조가 지닌 벽안의 경우는 거의 짙은 청회색에 가깝고 손권은 더 밝고 쨍한 색의 벽안으로 묘사된다.[6] 이로 인해 원소로부터는 '순진한 아만', 노식으로부터는 '(원소의)착한 동생'이라는 평을 받았다.[7] 서주대학살만 해도 냉정하게 판단하는게 아니라 공성전에서 불리해지자 그냥은 못간다고 보복성 학살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8] 원소와 달리 조조는 권력이라는 칼을 잡으면 앞뒤 분간 못하고 그 칼을 마구 휘두를 인간이라고 평가했다.[9] 유비에게 집중하고 있다가 배후에서 관우와 장비가 나타나자 그들이 유비 옆에 없는 것을 알아채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이미 했으면서도 당황하고, 공융과 태사자가 이끄는 원군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하다가 유비의 존재를 아예 깜빡하고, 뒤늦게 유비를 다시 떠올리지만 이미 유비의 계략에 넘어간 뒤였다. 아무리 이성이 증발한 상황이었다곤 해도 유난히 빈틈을 많이 보였다.[10] 이때는 속으로 "난 살면서 실패밖에 못했다..." 라며 자학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베댓에서 지적하듯 "실패가 많았다는 것은 도전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1] 그러다 조조 뒤에서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들고 있는 전위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12] 작중에서도 일단 물러가서 기회를 노리자는 가후의 의견에 "자신은 이미 50을 넘겼고 손주놈까지 봤다. 나한테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는 장면으로 보아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역시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더구나 숙적인 원소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봤으니...[13] 이를 들은 순유와 정욱은 아연실색하고 마는데, 조조 역시 젊은 시절 최전선에서 싸운데다 조앙, 전위처럼 많은 이들이 조조를 위해 진심으로 목숨을 바쳤던 것을 생각하면 조조가 얼마나 오만해졌는지 알 수 있다.[14] 조조의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던 정욱마저 1인자가 걸리는 병에 걸렸다며 한탄하고, 허유는 보다못해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아냐며 조조의 멱살까지 잡으며 항의하고, 옛 친구이자 주군이었던 원소의 오만함과 몰락하는 모습을 오버랩하며 치를 떤다.[15] 관도대전 86화 참고[16] 극중 정사 각주에 나온 내용[17] 서주 대학살 당시 진궁이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며 서주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조조는 투정 취급하며 무시하고, 여백사 사건을 통해 조조에 대해 불안한 감정이 섞여있던 진궁은 결국 이 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린다.[18] 정욱은 조조에게 임관한 뒤 이름을 바꾼 일을 얘기하며 조조를 "자신의 태양"이라고 일컫는다. 그렇기에 조조가 원소 휘하로 들어가려 하자, '이 정욱의 태양이 남의 그림자 아래 숨으려 해?!'라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19] 조조가 '이 사람은 분명 ㅇㅇ할 것이다' 하면 얼마 안 가 상대가 ㅇㅇ와 정반대의 행동을 하곤 한다. Ex) "주먹질은 그 인간 스타일 아냐" → 같은 화에서 원소는 자신과 하진의 밀담을 엿들은 병사들을 직접 죽여 살인멸구를 자행[20] 그런데 예외가 둘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과 평생의 숙적이 될 어느 남자. 유독 이 두 경우에 한해서만 정확한 판단과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유비에 대해서도 잘못 판단한 적이 없는 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을 파악할 때 헛다리를 자주 짚는 것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 캐해석 스탯을 본인과 유비한테 몰빵했나 논영회를 염두에 둔 묘사일지도...?[21] 심지어 이 쪽은 이 사단을 겪고도 유부녀 밝히는 지저분한 버릇을 못 고친 게 제일 큰 문제다.[22] 오죽하면 조앙이 죽기 직전 가후가 조조를 두고 "시체로 강 메우는 색골"이라 평했을 때, 반론은 고사하고 "조맹덕 한줄소개" 라는 반응이 큰 호응을 얻는 지경[23] 서주 대학살 때 떨어져 나간 팬층보다 완성 전투 때 떨어져 나간 팬층이 더 많았는데 이는 연출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서주 대학살 때는 조조나 그의 군사들이 백성을 대놓고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연출하지 않았고(잔뜩 쌓인 시신을 통해 학살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만 했지 실제 살해 장면은 안 나왔다), 가끔 조조가 얼굴을 비칠 때는 '분노에 미친 무자비한 학살마'로 그려져 최종 보스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반면 완성 전투 때는 조조의 추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였고, 그것이 현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치인/재벌의 두 집 살림'이라든지 '갑질 상사의 성추행'과 유사하여 독자들에게 그 추잡스러움이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 짓거리의 결과로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자 평소에는 관심도 안 주던 20살밖에 안 된 아들을 대신 잡아먹고 살아남는 막장 부모의 추태까지 보였으니...[24] 비단옷을 건네는 조조가 굉장히 아련하게 묘사된다.[25] 삼톡 초기 부녀자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조합이다.[26] 이때 조조는 손권에게 아들을 볼모로 보내라고 했는데, 아직 후사가 없었던 손권은 "이 꼰대가 자기 집에 애들 많다고 다른 집도 다 똑같은줄 아나?"면서 디스하고 황개는 "애들만 많을까? 마누라들도 많겠지"라 맞장구를 쳤다.[27] 조조가 오랜만에 진심으로 신나하며 조씨 가족 특유의 애칭인망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또 보자고 배웅한다.[주의] 조조가 그렇게 생각할 뿐 도겸은 조숭의 죽음과 전혀 무관하다. 도겸의 부하가 재물에 눈이 멀어 저 혼자 폭주한 것뿐. 도겸은 조숭이 왜 하필이면 서주 땅에서 살해당했냐며, 차라리 조조에게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빨리 죽고 싶다고 절망했다. 즉 조조가 도겸을 원수로 규정하고 서주를 공격한 건,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분노를 돌릴 곳이 필요했는데 공교롭게도 사건이 발생한 곳이 서주 땅이란 이유만으로 억울한 도겸을 찍은 것.[29] 조조가 죄 없는 서주 백성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사람이, 조조를 죽이기 위해 서주 백성들의 목숨을 갈아넣는 것도 거리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에 서주의 진규, 진등 부자는 진궁을 향해 "조조가 서주를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당신 때문에 쌓인 시체도 장난 아니다", "당신이야말로 초심을 잃었다"고 비난했으며, 진궁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피에 젖은 손으로 바닥을 닦으려다 도리어 온 바닥에 피칠갑을 해 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고 멘붕했다.[30] 뭐 하셔? 빨리 (전화를) 받으셔요, 아버지! 이 망둥이 효도 받으셔야지?[31] 조조가 영옥에게 사과하려고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언급이 나오는 장면에서 한 댓글은 이렇게 평했다. "(조조의 사죄가) 진심이든 아니든 정영옥이 알 바 아니다. 조조는 이제 남편도 애 아빠도 아닌 내 새끼 죽인 놈이니까."[32] 실제 역사에서 가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다.[33] 그래도 이후 다른 아들들(조비, 조창, 조식)과 달리 아들럼이라 부르면서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조조딴에는 나름 큰아들을 아꼈던 것으로 보이긴 한다.[34]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 안 맞게 굉장히 맑으면서도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해당 컷의 한 베댓은 '아버지가 바람이나 피우느라 자기 나이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으니, 그런 아버지에게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 그래서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절대 잊지 않게 된다는 생각으로 기뻤을 것'이라 평한다. 실제로 조조는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동안 조앙의 죽음을 후회하며 자신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큰아들을 잊지 못했다. 서주 대학살조차 후회한 적이 없는 그 조조가 조앙에 대해서는 "걔를 그렇게 잃고 걔 엄마랑 갈라선 건 후회된다. 저승에 갔는데 조앙이 나더러 자기 어머니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언급할 정도였다.[35] 이때 조조가 본색을 숨기기 위해 안경을 썼을 때처럼 본인도 종일 실눈으로 있다가 해당 대사를 하면서 눈을 번뜩인다.[36] 실제로 조조는 조예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무척 아꼈다고 한다.[37] 정확히는 원소는 '아만ㅎ', 십상시들은 '조아만이', 정영옥은 '조아만(씨)'.[38] 고대 중국에서 성인을 본명도 아니고 아명으로 부르는 건 어린애 취급하는 것으로서 대단한 모욕이었으며, 성인을 아명으로 불러도 되는 건 부모 아니면 배우자(초혼 연령이 낮았으므로 어려서 결혼한)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원소가 늘 조조를 아명으로 불러서 둘이 결혼했냐는 드립도 초반에 좀 돌았다. 진지하게 논하면 '어릴 때 만난 친구니까 + 조조를 자기 부하로 보지 동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 가능성이 있으며, 십상시들은 자기들이 조등과 동급이라 생각해서 조조를 만만히 여겨 애 다루듯 대한 것이다. 정영옥은 일찍이 결혼한 본부인인데다 나이도 위라고 하니 애초에 아명으로 불러도 되는 입장이고.[39] 수건을 뒤집어쓴 채로 첫 등장을 했기 때문에 베댓이 '오늘부터 나는 아만의 수건!'이었다.[40] 물론 유비가 다리를 굽힌데다가, 화면 앵글도 기울어진 상태였다.[41] 독자들 사이에서는 23cm(한나라 1척)×7= 161cm 라는 게 기정사실로 통한다.[42] 실제로 위씨춘추에 의하면 조조는 '체구는 작았지만 의기양양했다'고 하므로, 단신인 것이 고증에도 부합한다.[43] 첫 등장한 클로즈업 컷에서는 근육질 거구처럼 보였는데, 이어진 전신 컷을 보니 라면박스 하나에 앉아 있던 조조 옆에서 라면박스 두 개를 받침대로 놓고 서 있었다. 안 그래도 짤막한 몸통과 팔다리가 근육 때문에 굵기까지 해서 더욱 짜리몽땅해 보인다. 제보한 거 브라더니?[44] 예시-귓 속 깊은 곳에서 둥,둥,둥 소리가 울린다. 이는 분노한 내 심장 소리인가 아니면 울려 퍼지기 시작한 전쟁터의 북소리인가![45] 창천항로에서의 묘사처럼 시체가 강물을 막은 참혹한 광경이 그대로 그려졌다. 게다가 본작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것은 유관장 삼형제가 아닌 소년 제갈량이다.[46] 사실 고대를 지나 현대까지도 민간인이 군사를 비롯한 모든 생산활동의 원동력인 건 변하지 않기에, 전략 폭격을 통해 민간시설을 타격하고 전쟁 의지 자체를 꺾는 양상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전략 폭격은 안전한 후방의 민간인을 전쟁에 노출시켜 반전 여론을 형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엄연히 폭격 이전에 민간인에게 경고 방송을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당연히 군사를 보내어 민간인을 직접 학살케 하는 것은 전략적 행동이 아닌, 증오와 광기에 의한 미친 짓으로 치부된다. 반전 여론을 돋구어 전쟁 의지를 꺾긴 커녕, 결사 항쟁 여론만 낳기 때문. 항우신안대학살을 생각해 보자.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색이 짙음에도 "대일본제국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것이며 모든 신민들이 죽창을 들고서라도 싸울것이다!" 라며 발악을 해서 두 차례 원자폭탄 드롭으로 대학살을 했는데 이때는 일본이 그야말로 경악해서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어쨌든 대학살이라 후대의 평가가 갈린다.[47] 이때부터 눈가의 다크서클도 더더욱 짙어졌다.[48] 여백사 일가 살해, 서주 대학살, 과거사 회피, 완성에서 과부에게 집적대다 전투 말아먹고 아들까지 죽게 한 사건 등.[49] 조조가 초중반에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과격하고 살벌한 짓을 수 차례 하기는 했으나, 원소가 십상시를 조지려고 민가에 불을 지르는 작전을 내놓자 강하게 반발했고, 십상시 파벌이든 아니든 환관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노선에도 인간백정 되기가 쉬운 줄 아냐고 화를 내는 등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죽이거나 노린 대상들이 십상시동탁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쓰레기들이었기에 크게 비난받진 않았다. 그러나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을 기점으로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다가 서주대학살 때 굉장한 비판을 받으며 인기가 떡락했으며, 완성 전투의 흑역사로 인해 이미지가 시궁창에 처박히며 심지어는 그 동탁보다 추하다는 평가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