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8:52:33

이태원 압사 사고/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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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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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사건 전개 <colbgcolor=#fff,#1f2023>원인 (경찰의 군중 통제에 관한 법적 근거 미비) · 경과 및 대응 · 반응 (해외)
논란 논란 (경찰 부실대응 논란 · 박희영 용산구청장 관련 논란 · 시민 언론 희생자 명단 무단 공개 사건 · 조민 이태원 압사 사망자 관련 사진 게시 논란 · 김남국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중 가상화폐 거래논란)
후속 조치 국정조사 · 이상민 해임건의안 가결 · 이상민 탄핵소추 및 심판 (탄핵심판)
관련 단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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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원 과밀
2.1. 의사소통 및 구조 난항2.2. 군중 유체화2.3. 비정상적으로 좁아지는 길2.4. 인원 과밀집에 대한 불감증 및 인식미비
3. 경찰 대응
3.1. 클럽 불법 마약 단속 및 범죄 예방에 집중3.2. 사고 전 112신고 부실대응
3.2.1. 신고 대응 인력 부족설
3.3. 과거 대비 통제 미흡
3.3.1. 과거 사례에 대한 당국의 입장
3.4. 경찰 병력 부족설3.5. 경찰의 군중 통제에 관한 법적 근거 미비3.6. 정보 경찰관 미배치
4. 행정당국 안전 관리 및 통제 부족
4.1. 사전 대비 부족4.2. 과거 축제 통제 비교
5. 외신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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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태원 압사 사고의 원인에 관한 문서다.

2. 인원 과밀

<colbgcolor=#000>
파일:이태원 압사 사고현장.jpg
파일:이태원참사_구조도.png
파일:이태원 압사 사고현장2.jpg
이태원 압사 사고현장#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의 브리핑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할로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며 방문 시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는 길이 325m, 폭 5~7m[1][2]에 불과한 좁은 길이며, 10월 29일 밤에는 이태원 일대에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추산되었고, 이 좁은 길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보다 약 7배(밀집도 12명/m²)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몰렸다.[3]

인원 과밀 상황에서 여러 요인들이 설상가상으로 겹쳐 이 참사의 피해가 커졌다. 운집한 수만 명의 인파가 공권력의 통제 없이 각 개인 간 안전거리도 지켜지지 않는 상태로 몰린 상태에서 그저 앞으로만 향하는 밀집 행렬이 되었다. 이때 사상자가 집중 발생한 병목 지역인 좁은 골목에 밀집 행렬의 일단이 비좁은 내리막길을 접한 상황에서, 전방의 지형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후방의 과밀 인파가 전진하려는 힘을 가함으로써 행렬이 순식간에 무너지듯 쓰러진 것이다. 만일 통제와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였다면 간격이 확보되었을 것이므로 병목 현상으로 인해 속도는 느려지더라도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를 받지 못한 과밀한 군중이 질서를 잃고 병목에서 파열이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이태원로 173 인근 골목[4]은 폭 4m, 길이 40m에 불과한 양쪽 끝에 턱이 있는 좁은 내리막길이다. 이 골목길은 번화가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시작해 대로변인 이태원역 1번 출입구로 내려가는 통로였던 데다[5] 이태원역 북부의 동선상 해밀톤호텔과 그 옆 골목, 이태원역 1번 출입구와 2번 출입구 등지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이 대거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해밀톤호텔 옆 골목 길 한쪽으로는 편의점, 술집, 옷가게, 힙합클럽 등 가게들이 있었으나 일부 영업이 끝나 문이 닫혀 있었으며[6], 다른 한 쪽 벽은 해밀톤호텔의 외벽이었기에 피해가 더 커졌다. ## 또 해당 골목 바닥 자재가 맨들맨들한 석재여서 원래부터 미끄러운데다가 전단지나 술 등의 액체류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더욱 미끄러웠다고 한다. # 더불어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들이 인파에 밀려 더욱 중심을 잡지 못했을 거라는 목격자의 증언도 나왔다. 이태원은 남산 자락에 있는 지형적 특성상 구배가 있는 경사로가 많았으며 심지어 그 길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중간에 해밀톤 호텔의 외벽이 나타나며 좁아지는 형태였다.

특히 사고 지점이 내리막이라 피해가 더 커졌다. 10월 30일 MBC 뉴스특보에 나온 박준영 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경사로 때문에 미끄러지다가 경사가 끝나는 평지에 사람들이 쌓이면서 피해가 누적되었다고 분석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 또한 YTN과의 인터뷰에서 "하필 여기가 비탈길 내리막길이었다"라며 "밑에 있는 분 같은 경우는 정말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현장보고에 따르면, 피해자 300여 명의 대다수가 골목 중 바닥의 파이어라인으로부터 길이 5.7m, 폭 3.2m 공간에 몰려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겨우 넓이 18.24m², 5.5평 정도의 공간(밀집도 16.4명/m²)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

2.1. 의사소통 및 구조 난항


사고 이전부터 주변의 노랫소리, 군중들의 소란스러운 말소리들이 겹쳐 전방과 후방의 대화가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전방의 상황을 알지 못한 골목길 위쪽에 위치한 인원들이 지속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려고 시도했다.[7]

그러다 어느 순간 밀집도와 정체가 극심해져 통행이 불가능해지고 혼란이 가중됐다. 생존자 인터뷰에 따르면 사고 발생 1시간~1시간 30분 전부터는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 인파에 휩쓸려 다녔고, 3~40분 전부터는 인파 흐름이 완전히 정체되어 아예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또한 전후좌우로 한 사람만 건너뛰어도 소통이 안 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길 한가운데에 30분 이상 갇혀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위해 바깥으로 점점 더 큰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8] 그 결과 비탈길 아래쪽으로 큰 힘이 쏠리며 군중이 무너지며 붕괴했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계속 주변에서 울려 퍼진 큰 노래 소리와 군중들의 비명, 대화 소리가 섞이며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점, 할로윈 분장 및 코스튬 특성 상 사망자 및 부상자를 분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사고의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찰 제복을 할로윈 코스튬으로 오인했기 때문에[9] 구출에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

통제를 시도하는 경찰(6분 14초), 인파를 피해 이동을 시도하는 소방관(7분 29초), 중간에 밀겠다는 행인의 소리와 밀지 말라는 행인의 소리도 녹음된다. (시청주의)

한편, 군중 속에서 특정 인물 몇명이 힘을 가해 인파를 넘어뜨렸다는 증언이 공통적으로 나와 이에 관해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압사 사고/논란 문서를 참고.

2.2. 군중 유체화

질서 있게 행동했다면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착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과밀로 인해 군중이 유체되었기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10] 유체화된 군중은 사회적 질서가 아니라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되며 대량 압사 사고에 대단히 취약해진다.

에드윈 갈레아(Edwin Galea) 영국 그리니치대 공학 및 과학과 교수는 2015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군중 밀집도가 1m²당 4명 미만일 때까지고, 밀집도가 그 이상이 되면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유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며[11], 군중이 유체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온다면 이미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독일의 공립과학연구기관 '막스플랑크 인간발달 연구소'의 군중행동 연구가 메흐디 무사이드는 이태원 사고 당시 1m²당 8~10명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심각한 유체화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 통제가 없었던 가운데 사고지점에서 유체화된 군중은 질서 형성이 불가능했으며[12], 양쪽에서 사람이 몰리며 밀집도가 계속 높아진 결과[13] 군중 일부가 무너져 사람이 사람에 깔리는 일이 발생했다. 영국 서포크대 군중안전 연구가 키이스 스틸 방문교수는 CNN 보도에서 “몸이 부딪칠 때 큰 에너지와 밀도가 밀림 현상과 군중 붕괴를 유발한다”[14]라고 설명했다. 군중 붕괴는 밀집한 군중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넘어져 빈 공간이 생기면 근처 사람들이 압력에 밀려 우르르 같이 넘어지며 무너지는 것이다.[15] 깔린 사람들에게 외상성 질식다발성 장기 부전이 유발되며, 질식의 경우 골든타임인 4분 내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사망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이 참사의 주 원인이었다. 참고

이 참사는 골목 위아래에서 유체화된 군중이 밀려드는 가운데 비탈길 중간에서 사람이 쓰러지며 생긴 대규모 군중 붕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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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붕괴(군중 눈사태) 예시

'군중 붕괴'를 일본에선 '군중 눈사태'(群衆雪崩)라고 부른다. 사람이 밀집된 상황에서 1명이 쓰러지면 그 주변 사람들이 눈사태처럼 휩쓸려 쓰러진다는 의미다. 닛테레 방송에 출연한 칸사이 대학 카와구치 토시히로(川口寿裕) 교수는 2001년에 일어난 11명이 사망하고 183명이 부상을 입은 일본 아카시시 보도교 압사사고(明石花火大会歩道橋事故)처럼 이태원에서도 군중 눈사태가 발생하여 압사사고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

일본 방재시스템 연구소 야마무라 타케히코 소장은 보통 1m²당 10명 이상이 되면 군중 눈사태가 발생하기 쉽다고 분석했는데, 1m²당 8~10명이 몰린 이태원 사고 지점에선 군중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2.3. 비정상적으로 좁아지는 길

건축법의 ‘도로’는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인 4m여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거리의 폭은 4m가 안 된다. 2016년에는 임시 벽이 있던 공간에 건축물이 있었지만, 구청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철거되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임시 벽은 지붕이 없어 건축물이 아닌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 해밀톤 호텔 옆면에 17m²에 무단 증축된 구조물 또한 사람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었다. #[16]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압사 사고/논란 문서
1.3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이태원-맛집-이태원-분위기-좋은-바-와이키키-네이버-블로그.png
또한 사고가 난 골목은 'W' 주점[17]과 'P' 주점, 'A' 주점 등 세 군데의 유명 주점이 밀집한 지역인데, 그중 "W" 주점의 경우 길목을 대기 손님의 줄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좁은 골목이 줄을 서 있는 대기 손님 줄 때문에 안 그래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목이 더더욱 막히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주점을 포함 'P' 주점은 외부에 안쪽을 전부 오픈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할로윈 분장을 한 손님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행인들로 정체가 가속화되었다. 이 'W' 주점은 아예 그것을 강점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기에 평소부터 우려가 많았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A' 주점의 입구와 'P' 주점의 출구와도 맞닿는 구조이기 때문에 인원 과밀은 더 심해졌다. 'W' 주점이 없던 코로나 이전에도 20만명이 올 정도로 인파가 몰리던 길목이었는데 2021년 9월 'W' 주점 오픈 이후 그 길목에 병목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 지역 상권의 중론이다. 즉, 주점의 과도한 장사 욕심과 난개발된 지형이 만나 사건이 일어나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18]

더불어 사고가 난 골목에서 페이스페인팅을 하는 사람들과 책걸상으로 인해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이 더 좁아졌다. #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고가 난 골목의 보행로를 더 넓혀야 한다는 분석 결과와 구체적인 시행 기법을 담은 보고서가 이미 2017년 1월에 국토교통부에 제출되어 있었다. #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제안된 기법은 사고가 발생한 2022년 10월 말까지도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2.4. 인원 과밀집에 대한 불감증 및 인식미비

군중 밀집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지옥철 등 인원 과밀 상황을 자주 겪다 보니 압사의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20]

실제로 사고 당시 한 외국인이 군중 속에 있다가 벽을 타고 탈출하자 인근 사람들의 첫 반응은 관심을 끄는 행위에 대한 환호였고, 사고 이후에야 그것이 생존을 위한 탈출이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압사라는 것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매우 미비했다.[21] 보통 압사는 산업 현장에서 장비나 무거운 자재에 깔려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었고 군중 압사 사고는 흥분한 군중들이 좁은 실내에 모여 있는 상황, 이를테면 콘서트장이나 경기장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나 나오는 일이라거나, 그 이전에 군중에 의한 압사라는 건 넘어진 한 두 명의 사람이 다수의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생기는 일이라는 인식이 절대 다수였다.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 전까진 그냥 사람이 가득 찼을 뿐 제 갈 길 가는 길거리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심지어 서있는 채로 질식사 할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인원 과밀에 대해 "인파가 많이 몰린다고 무조건 위험하지는 않다"면서도 "(인원 과밀이) 일상이 되다보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인원 과밀 행사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만큼 과밀 현상과 이번 참사 사이에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평소에 잘 작동하던 안전 시스템이 왜 이번에 붕괴했는지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

3. 경찰 대응

서울용산경찰서는 할로윈을 앞두고 종합치안 대책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 이에 따르면, 이태원 일대의 인파가 10만 명 이상 몰릴 것으로 예상해 경찰 200여 명을 배치할 것을 계획했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있었던) 군중을 통제하여 압사를 막는 대책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22] "이번 할로윈에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가 제출되었음에도 경비운용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23]

게다가 사고 당일 이태원에는 당초 계획 인원인 200명이 아닌 137명이 배치되었고, # 정부의 기조에 따라 마약 단속을 위한 사복 경찰이 대거 투입되었다. 이러한 군중 통제에서 사복경찰은 제복 경찰과 달리 민간인과 구분이 가지 않아 통제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한편 실제 투입 규모가 당초의 200명에서 137명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자 경찰청 본청에서는 200명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은 금시초문이라며 일선서(용산경찰서)와 말이 맞지 않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

10월 30일 서울경찰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할로윈 데이 행사와 관련해 배치된 경찰 인력은 2017년 90명(지역경찰 30명, 의무경찰 60명), 2018년 37명(지역경찰), 2019년 39명(지역경찰), 2020년 38명(지역경찰 등 20명, 형사 5명, 교통 4명), 2021년 85명(지역경찰 31명, 형사 10명, 교통 17명), 2022년에는 137명(지역경찰 32명, 수사 50명, 교통 26명)이었고, 다만 2020년, 2021년에는 기동대 인력이 방역 목적으로 추가 배치되었다. # #

2022년은 순수 경찰력이 가장 많이 투입되기는 했으나, 그 중 제복을 입은 경찰은 58명, 그 중에서 교통경찰이 26명, 지역경찰관은 32명이었다. 즉, 최근 6년간 2022년에 가장 많은 경찰 직원 인원이 순수 치안 업무를 위해 동원된 것은 사실이지만, 2022년에는 2020년과 2021년에 QR 체크인 및 22시 이후 귀가조치 등 방역 업무를 지원하던 기동대 병력(약 90명 정도)이 빠지면서 작년에 비해 실제 동원된 전체 경찰 인력이 감소했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특히 기동대 인력[24]이 방역 업무를 맡고 있다 하더라도 유사 시 인력 공백을 충원할 수 있었으므로 거대 인파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인근 상인들도 통제 부족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상인은 "가장 아쉬운 게 경찰 두 사람만 거기 앞에 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상인 역시 "통제를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 실제로 사고 2시간 전에는 경찰도 아니고 일반인 여성이 인파를 통솔해 골목에 갇혀 있던 시민들이 귀가에 성공하기도 했었다. # 영상 소수의 경찰만이라도 배치되어 교통통제가 이루어졌더라면 사고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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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과와 상황실이 서로 인파 통제 책임을 미루는 모습 #

3.1. 클럽 불법 마약 단속 및 범죄 예방에 집중

이와 같은 사실로 보아 경찰은 2022년에 이태원에 더 많은 인원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 서울용산경찰서[25]에서 동원 가능한 상당한 인력을 배치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2021년의 경우 코로나 예방이 지상과제였기에 경찰도 이에 맞춰 인원 간 간격을 유지시키는 등 군중 통제에 중점을 두었지만, 2022년의 경우 코로나 거리두기를 해제했고, 펜타닐과 태국 대마 합법화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마약 범죄 자체가 심각하게 늘어나는 등 대통령과 법무부를 중심으로 한 당정이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기에 경찰도 마약 단속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 # # 동아일보는 최근 마약 관련 사건이 많아서 마약 사범 단속을 위해 경찰을 증원했다고 분석했고 # 데일리안도 마약 단속만 겨냥했던 경찰의 증원이 아쉽다고 보도했다. #

결국 3년만의 포스트 코로나 상황 속에서 노마스크 할로윈 축제에 대규모 인원이 올 것을 예상하고 실제로 모인 군중의 수도 대략 맞춘 점에서 시작은 좋았지만, 그 군중에 대비한 현안을 군중 통제가 아니라 마약 등 범죄 예방으로 중점을 두어 거리 통제에 실패한 것이 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라는 의견이 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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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태원_마약1.jpg
2022년 용산경찰서 '할로윈 축제 마약 단속 계획' 개요
최초 수립한 계획은 10월 12일 마약단속수사관 '15명'이었으나 참사 전날인 10월 28일 하달된 계획은 '5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경찰은 안전과 질서 유지보다 마약 단속에 집중한 것으로 확인되며 이는 정부와 여당(국민의힘)의 기조가 반영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

실제 사고 직전 열흘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달라"고 당부했고#, 10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틀만인 10월 26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법무부와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참여하는 당정협의최를 개최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검찰은 전국 4대 권역에 관계부처 합동 특별수사팀을 운영하고, 경찰은 형사 및 관련 수사 역량 약 1만4000명을 총동원한다." 등 강력한 지침을 내린 바 있다. #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후 11월 7일 "대통령까지 나서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니 다른 업무를 제치고 마약 범죄에만 집중한 것 아니냐"는 의원의 질의에 당일 마약에 상당한 비중을 둔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

3.2. 사고 전 112신고 부실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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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1. 신고 대응 인력 부족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압사 사고/논란/경찰 부실대응 논란 문서
2.6.1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3. 과거 대비 통제 미흡

(YTN) 2017년부터 핼러윈 인파 경찰 대책 수립...올해는 빠졌다.
(중앙일보) 참사 골목 경찰 5명 고정근무…작년엔 있었고 올핸 없었다.
(MBC) 올해만 빠진 '인파 대비'‥5년간 '핼러윈 대책' 보니.

2021년 할로윈은 2020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시기에 맞이했기에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을 앞두고 코로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27] 전기간이 아니지만 할로윈 기간 일부, 경찰이 방역을 목적으로 사고 난 골목의 통행을 제한했던 정황이 확인되었다. 조선일보는 2021년 10월 30일 사고난 골목으로 추정되는 사진에서 오후 10시가 지나자 "경찰들이 행인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
BBC가 보도한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밤 10시 이후, 경찰들이 진입을 제한하는 모습[28]
2021년 당시 경찰의 통제는 방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질서 유지를 위해 이태원역 주변으로 10곳을 지정해 경찰 5명 또는 10명, 구청 직원 1명을 배치했고, 이번에 압사사고가 발생한 골목길 위쪽에는 지난해 경찰 5명과 구청 직원 1명이 배치되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군중 분산 조치였다. #

실제 영상으로도 당시 사고가 난 그 골목 인근에서 한 경찰관이 경광봉을 머리 위에 두고 우측통행을 유도하고, 출구로 유도하는 부분이 있으며# 경찰이 거리에 나와 군중을 통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 MBC 영상에 2021년에 경찰관이 "이동하세요. 이동하세요. 내려가세요. 골목에 계신 분들 안전하게."#라고 통제하는 부분과 "길막히니까 이동하세요. 길막히나까 이동하세요.(호루라기)"#라고 통제하는 부분도 나와 있다. 종합해 보면 방역을 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었으나, 경찰이 보행자의 '안전'을 목적으로 '군중 분산 조치'를 취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

이후 11월 4일 중앙일보 기사에서 5년간 문건을 확인한 결과 2020년과 2021년에 있던 "압사 사고 관련 대책"이 2022년에는 삭제된 것이 확인되었다. # 특히 2020년 대책에는 '압사'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으며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를 상정하여 폴리스라인 설치 및 현장 질서 유지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이 같은 조치가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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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용산경찰서의 할로윈 데이 종합치안대책 문건
이러한 인파 분산 대책은 최소 2017년부터 확인되었다. "이태원 일대에 사람이 몰려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며 방범순찰대 경력과 차단에 필요한 물품 수십 개를 요청하겠다고 서술한 자료가 2017~2019년에 일관되게 존재하기 때문. # 즉,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2020~2021년에만 특별히 인파 분산 대책을 세웠던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조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이 되자 서울용산경찰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29] 앞서와 달리 서울경찰청에 관련 물품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2022년의 경찰은 3년 만의 노마스크 축제임에도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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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당시 폴리스라인
2015년에는 물을 채운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여 질서가 많이 잡힌 것 같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 2017년에는 유동인구 20만여 명이 모였는데 폴리스 라인을 낮부터 설치하여 통제하고 순찰을 돌기도 했다. #아카이브

3.3.1. 과거 사례에 대한 당국의 입장

경찰은 2017년에 폴리스라인을 쳤던 것은 사람들이 차도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뿐, 골목 통행량을 분산하려는 목적은 없었으며 통행 방향을 유도한 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 2022년 10월 31일 경찰청의 홍기현 경비국장(치안감) 역시 브리핑에서 2017년의 당시의 폴리스라인은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골목길 통제는 없었다고 재확인했다. #

2020년, 2021년은 코로나 방역 조치가 실시되던 시기로 야외 마스크, 출입명부, 5인 집합금지, 22시 영업제한과 같은 방역 통제를 위한 경찰력이 거리에 존재했다. 경찰은 2021년 할로윈 때 코로나 방역수칙 위반을 단속하기 위해 85명을 배치했으며, 별도 배치한 기동대는 방역예방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 # 또한, 위에 링크된 사고 지점에서 2021년 당시 경찰이 통제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 또한 사실은 방역 지침에 따른 10시 이후 귀가 사람들의 귀가를 독려하는 상황이었다. 즉, 교통량 통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일보에서 경찰을 인터뷰한 기사에서도 "보행자가 한 방향으로만 다니는 모습이나, 경찰이 그렇게 통제하는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

그럼에도 2021년의 방역을 위한 통제조치(축제 참석 자제 부탁, 시민들의 이른 귀가 유도, 사회적 거리두기 강조 등)들 역시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시민들의 밀집을 줄였기 때문에 압사 및 통행 차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압사 문제나 코로나 집단 감염문제나 시민들의 과잉 밀집에 의해 발생하게 되므로 이유는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즉, 정부와 지자체가 방역을 위해 취한 조치들 덕분에 덤으로 시민들의 물리적 안전까지 확보된 셈이다.

따라서 경찰의 해명에 의하면 당국은 이전부터 아예 군중통제를 하지 않았으나, 여러 통제기제가 군중통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에 대한 사유나 논란 등에 대해서는 아래 항목 참고.

SBS는 경찰 당국이 발표한 "그간 다중이 운집하는 상황에 대해서 경찰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 그리고 불법 단속을 중심으로 경찰력을 배치해서 대비를 해 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에서 당일 예상되는 여러 불법행위에 대해서 단속하고 또 예방하기 위한 경찰력을 배치해서 대비했던 것" 내용에 대해 국민 누구나 군중밀집이 이뤄지는 곳에서 수없이 마주쳐 왔던 정복을 입거나 방호장비까지 착용하고 상황을 살피던 경찰관들은 그럼 다 현장 통제가 아닌 불법 단속만 하고 있던 건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

3.4. 경찰 병력 부족설

경찰의 대응에 대해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당일 서울 시내 대규모 집회 통제로 인해 서울특별시경찰청 병력이 분산되었으며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이 아니기에[30] 이태원에 예년 수준의 병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31] # #

이러한 주장은 위 문단에 서술된 요인들이 아니어도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하필 이 때 전광훈#민주노총#이 시위를 했고 경찰병력을 거기에 투입하느라 부족했다고 한다. 각 경찰서마다 할당된 병력이 있으며 그 병력 범위 안에서만 사용 가능한데 여기저기 파견을 보내는 바람에 정작 이 곳을 지킬 병력의 부재를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이태원에 3개 기동대 중대가 배치되었으나 2022년에는 단 하나의 기동대도 이태원에 배치되지 않았다. 기동대 1개 중대가 약 60명 규모이니, 2021년에는 '경관 85명 + 기동대 3개 중대 = 약 265명'의 인원이 이태원을 통제했으나, 2022년에는 기동대가 배치되지 않아 137명의 일반 경관들이 현장을 관리했고, 이 중 사복 경찰이 절반 이상. 정복 경찰 인력은 2021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

그런데 서울경찰청의 경찰만으로 부족하면 서울경찰청이 다른 지방경찰청에 병력을 지원요청하거나 경찰청 본청이 타시도 경찰청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다음의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제16조(타시ㆍ도경찰청 지원) ① 경찰청장은 특정 치안상황에 대하여 소관 경찰력으로 감당하기 곤란한 시ㆍ도경찰청이 있는 경우 다른시ㆍ도경찰청장으로 하여금 소속 경찰관기동대를 위 시ㆍ도경찰청에 지원하게 할 수 있다.
경찰관기동대 운영규칙 #
이에 대해 SBS가 입수한 서울경찰청 경비과 작성 '22. 10. 29 경력운용계획'을 보면, 당일 서울에서 운용 가능한 경찰 인력은 총 81개 부대였다. 이중 서울경찰청 부대가 68개, 타시도 경찰청의 부대는 13개서울경찰청이 타시도 경찰청의 병력을 지원 받은 점은 확인된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주요상황'에 70개 부대를 집중 배치했다. 당일 있었던 양대 노총과 진보, 보수단체의 집회 등 서울 시내에서 있었던 총 21개의 집회가 주요상황의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20명 안팎이 모일 걸로 예상되어 중요도가 떨어진 집회도 4개나 됐다. 또 미 대사관과 대사관저 등 주요시설에는 13개 부대가 배치됐다. 그러나 용산경찰서가 10만 명 넘게 모일 걸로 일찍이 내다본 이태원 핼러윈 상황과 관련해선 단어 하나 적히지 않았다. 1개 기동대만 용산구에 평상시처럼 배치됐으며 이마저도 이태원 현장에 배치된 게 아니었다.

참사 당일 서울 시내에서 기동대를 이끌었던 경찰관은 "근무 시 무전 등에서 일절 이태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그날 이태원엔 경비경찰은 동원되지 않고 마약과 성범죄를 단속하는 경찰관만 배치됐던 것"이라고 증언[32]했다. #

따라서 언론에 보도된 운용 계획과 일선 경찰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서울 경찰청은 부족한 병력을 지원받고도 이태원에 보내지 않았으므로 병력 운용을 잘못한 것이거나, 당초 타시도 경찰청에서 지원받은 13개 부대도 이태원을 고려하지 않은 부족한 숫자였다는 말이 된다.

한편 경찰청 본청도 전술된 것처럼 사고 당일부터 사고 후까지 예하 기관인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가 어떤 대책을 세워놓고 있는지도 몰라서 200명 배치는 처음 듣는다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고 # 이태원에 몰린 인파가 10만 명이 넘는데도 서울경찰청에게 타시도 경찰청에서 지원받은 인력을 이태원에 파견하도록 지도감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3.5. 경찰의 군중 통제에 관한 법적 근거 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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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정보 경찰관 미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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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현장의 위험 정보를 파악해서 보고할 정보 경찰관이 없었던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참사 당일 현장에 정보관이 한 명도 없다 보니 시민들의 신고 말고는 실시간 위험성을 알려줄 만한 정보 보고가 전무했다.‘이태원 근무 0명’…용산 정보관 인력 2배 늘리고도 왜?

일선 경찰들은 당시 이태원에 정보관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간부는 "현장에서 정보는 머리, 경비는 팔·다리라고 생각하면 쉽다"라며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경력을 보내야 한다'고 무전(보고)을 하면, 상황실이나 지휘부에서는 기동대를 보내서 정보 쪽에서 올라온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정보관은 "경비과장이나 정보과장, 아니면 정보관 수십 명 중 하나라도 그날 집회가 끝난 뒤 퇴근길에 이태원 현장에 가봤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4. 행정당국 안전 관리 및 통제 부족

4.1. 사전 대비 부족

용산구청은 당초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해 방역추진반, 행정지원반, 민원대응반 등 11개 부서를 동원해 27일부터 긴급대책을 진행했다. 용산구는 1년 전 할로윈 축제 때도 인원 관리를 방역에 중점을 두었고, 과도한 인파에는 해산명령을 고려하기도 했다. # 그런데 2020년과 2021년에 용산구청장이 대책회의를 주재했던 것과는 달리, 2022년에는 부구청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또, 경찰·소방 관계자 등과 함께 민관 합동 회의를 열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구청 내 11개 부서장만 회의에 참석했다. 경찰소방 측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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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현직 시·도 경찰청장은 “혼잡이 우려되는 대규모 행사에 지자체와 정부기관이 함께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보통 수차례 대책회의를 갖고, 안전요원과 경찰력을 충분히 배치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경찰 고위직 간부도 “타종 행사 때도 서울경찰에서 자체적으로 구역별 인력을 배치하고, 통로도 만든다. 구청과 협의가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

이후 용산구청이태원동에 닷새 동안 총 150여 명(하루 30명꼴)의 직원을 투입했다. 이중 방역추진반은 이태원 일대 방역·소독을 실시했고 행정지원반은 ‘할로윈 데이’ 대비 종합상황실을 운영했으며 민원대응반은 방역관리, 소음 특별점검, 가로정비, 불법 주·정차단속, 청소대책을 추진했다. # 그러나 압사 사고에 대한 대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용산구 부구청장이 주재한 간담회 등에서 시민 밀집에 대한 안전 대책은 논의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사전 간담회에서 용산구청에 시민 질서 유지와 통제를 철저히 하기 위해 지구촌 축제 때처럼 질서요원을 배치하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관계자 역시 “용산경찰서장까지 나온 자리에서 경찰과 지자체에 사전 통제 요청을 했다”고 강조했다. #

그런데 이와는 딴판으로, 사고 전 있었던 간담회에서 상인들이 경찰에 작년(2021년)에 통제가 너무 엄격해 손해가 컸으니 올해(2022년)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의 주장도 나왔다. # 이후 해당 간담회 문건을 매일경제와 MBN에서 확보해 공개했는데, 전년도 할로윈과 며칠 전 있었던 지구촌축제에서 경찰 배치와 과도한 조치로 손해가 있었으니 올해 할로윈에는 과도한 경찰력 배치를 자제해 달라, 배치를 할 거면 경찰조끼를 벗어 달라는 요청을 상인들이 경찰에 했다는 내용이 확인되었다. ## 이에 상인들은 과도한 단속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을 뿐 배치되는 경찰을 줄여 달라 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진실공방이 벌어졌으나 어쨌든 실제 조치는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 사망자가 속출한 골목길 바로 옆에 24시간 작동하는 CCTV가 있었지만, 사고 당일 무섭게 늘어나는 인파를 눈여겨본 구청 직원은 없었다. #

이태원에는 사고 전날 밤에도 수만 명이 운집했었고,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왔었다. 28일에 일부 이태원 방문자들이 수많은 군중에 떠밀려 사람이 넘어졌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이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 목소리를 변조한 용산구청 관계자는 JTBC 뉴스룸 팀과의 통화에서 대규모 인원이 예측은 되었지만 대비책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사고 2주 전인 15~16일 이태원 일대에서 이틀간 30만 명이 다녀간 비슷한 규모로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가 있었고, # # 이 당시에도 하루 평균 15만 명이 다녀간 규모에 주야간으로 인파가 분산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고는 없었다. # 당시 축제는 (사)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하고 서울시와 용산구가 후원한 행사였는데, 이태원역 메인 도로를 통제한 뒤 사람들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게 통제하는 등 교통통제와 안전요원도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와는 달리 이 사고에서는 인파 관련 조치가 미비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할로윈에 대비해 따로 특별대책을 마련하거나 상황실을 운영하지는 않았다"며 "자치구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권우정 서울시 안전지원팀장 역시 “2개 구 이상이 걸쳐 있는 축제는 서울시가 관여하지만 할로윈 데이는 그렇지 않다”며 “용산구로부터 지하철 무정차 등 협조 요청도 없었다”고 말했다. # 하지만 정작 서울시청이 대책을 위임한 용산구청은 위에서 봤다시피 현장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
[단독] 골목길 시뮬레이션 해보니…"차량통제·무정차로 참사 막았다"
한편 인파 분산을 위해 이태원역에 정차하는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켰어야 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 이에 용산경찰서는 처음에는 "112상황실을 통해 29일 밤 11시 11분[33]에 서울교통공사 이태원역에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킬 수 없는지 문의했다"고 밝혔다가 이후 "밤 9시 38분 전화상으로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으나, 서울교통공사 관계자가 승하차 인원이 예년과 차이가 없다며 정상운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는 "밤 9시 38분 통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찰은 ‘역사 내부 상황’을 문의했을 뿐 무정차 통과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며 경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 이에 대해 경찰 측은 용산서 112상황실장의 휴대폰 통화내역까지 공개하며 9시 38분 통화 후 즉시 역발신하여 1분 17초간 통화하며 무정차 요청을 했다고 재반박했다. #

여기서도 진실공방이 벌어졌으나 어쨌든 사고 당일 이태원역 이용객 수는 전날의 2배가 넘는 13만 131명이었음에도 이날 내내 무정차 통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제진주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안전학과)는 "초저녁부터 무정차 통과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도쿄에서 같은 날 치른 할로윈 행사에서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수백 명의 경찰과 압사 사고를 막기 위한 DJ폴리스[34]가 특징적이다. 영상 일본은 2001년 아카시 불꽃축제 압사 사고 이후 ‘효고현 혼잡경비 매뉴얼’을 만들어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효고현 매뉴얼을 참조해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음에도 이태원에서 ‘축제 주체’가 없다는 이유로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 해당 매뉴얼은 주최측이 있을 때를 가정해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일본은 행사 주체가 없더라도 '이벤트 경비'로 대응하는 것이 다르다.

4.2. 과거 축제 통제 비교

용산구청은 과거에도 할로윈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애초에 주최자라는 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이를 구청에서 따로 관리를 한 적이 애초에 없었다고 확인했다. 용산구청에서 주력한 것은 환경미화, 범죄 예방, 시설물 및 공사장의 안전 점검 등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방역 조치, 거리두기 강조였다. 통행 불편 및 안전사고 방지에 관한 것도 포장마차 등의 불법 거리 영업 시설 단속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고 또 사람들이 당연히 할 거라 생각하는) 의도적으로 군중을 직접 통제·유도한다는 개념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용산구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는 2021년 할로윈 방역대책 게시물#을 보면, 방역체계 뿐 아니라 밀집 지역 순찰 및 경비 안전 활동, 통행 불편 및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특별 단속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용산구청에서 12년간 구청장을 지내고 올해 6월 퇴임한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은 "사전 준비만 잘하면 경찰 10명이 100명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경찰 수가 적어도 구 직원과 상인연합회 임원들이 조를 짜서 요소요소에서 도로에 못 들어가도록 폴리스라인을 설치하는 일들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 이전에는 미리 안전사고 대책을 세웠기 때문에 인력과 관계없이 통제가 잘 이루어졌으나, 올해에는 그런 사전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언론 취재 결과, 많이 언급된 2017년과 그 이후의 경우 '다중운파 운집을 대비'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특히 이번 참사가 발생한 지역을 우려지역으로 지정한 것이 확인되었다.

5. 외신 지적

일본 도쿄도립대학의 카요 타쿠마 교수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규제 완화로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안전 확보 등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팬데믹 기간 없었던 대규모 행사에 대한 안전대책을 다시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

CNN의 재난관리 전문가로 연방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역임한 국가안보분석가 줄리엣 카이엠(Juliette Kayyem)[35]은 “당국은 토요일 밤 이전에 많은 숫자를 예상했을 것”, “정부는 군중의 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사람들을 대피시킬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고 했다.[36] #

뉴욕 타임스는 "최근의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보다 경찰이 많은 것처럼 보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군중 통제가 비참하게 실패했다", "이제 목격자들은 과학적으로 군중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도시가 젊은 참석자들이 모이는 1년 중 가장 바쁜 밤에 그렇게 비참하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존 제이 범죄학 칼리지 강사 브라이언 히긴스는 “충분한 현장 인력과 계획이 없었던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교의 마틴 에이머스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형 행사는 인파를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계획과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군중 밀집을 예측하고 방지하는 프로세스가 없으면 이런 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WP의 다른 기사는 용산구청이 코로나 예방, 식당안전 점검, 마약 단속 등에만 초점을 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전문가들은 공공장소에서 대규모 모임을 규제하는 국가 정책의 한계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도 정부의 현장 통제 등 사전 예방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참사가 예견된 인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BBC도 '안전기준과 군중 통제 조치가 취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AFP는 경찰 병력 배치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면서 "이번 참사가 대비 부족으로 인해 촉발된 ‘인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관료들이 공공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했던 일에 대한 공적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24시간 전, 그곳(이태원)에는 이미 할로윈 축제로 인해 모인 사람들의 수가 위험 수준이라는 경고 신호가 있었다. 희생자와 유족들은 군중 통제의 명백한 실책이 있었다는 점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 #


[1] 지하철 승차 한계로 계산하면 15,000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넓이다.[2] 로드뷰를 보면 준중형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너비다. #[3] 영국의 힐스버러 참사가 1600명 정원인 입석공간에 3천명, 즉 약 2배를 들여보냈다가 터졌다. 결과는 96명 사망(압사 또는 질식사)에 766명 부상. 2배로도 이 정도였는데 7배였으면...[4] 도로명 주소는 그냥 이태원로이고 특별한 이름은 없다. 골목에 마주한 이마트24 편의점의 도로명 주소도 이태원로 173이고 그 옆의 상가는 순서대로 이태원로 173-5, 173-7이다. 이태원로23길이라는 오보도 있으나 이는 옆에 있는 길이다.[5] 매년 할로윈마다 상습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인파가 몰리는 장소다. (2021년, 2014년)[6] 가게에서 못 들어오게 했다는 증언도 있다. #[7] 사고 얼마 전까지는 아찔한 상황에서나마 조금씩은 통행이 가능했다. 사고 2시간 전 즈음 사고지점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내려가! 내려가!"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며 질서를 형성하려 했고, 이때까지는 통행이 조금씩이나마 가능해 탈출한 사람도 있었다.[8] 백승주 한국 열린사이버대학 특임 교수는 이것이 군중 과밀 시 보이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YTN 인터뷰에서 군중 밀집도가 1㎡당 10명을 초과하면 정상 군중이 이상군중으로 변하며, 이상 군중은 '의사소통 불가', 야유 등 비도덕적인 '모순된 행동', 옆 사람을 밀치는 등의 '경쟁 행동'을 보이는데, 이태원에서 이 세 가지가 다 보였다며 이는 개개인의 의도가 아니라 (이상) 군중의 행동이라고 했다.[9] 이처럼 코스튬과 실제 경찰을 오인하는 일이 많아 법률에서는 경찰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경찰제복이나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이는 군복도 마찬가지다.[10]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과밀이 발생하기 전부터 질서를 지켰다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태원 사고는 원래는 재난이 아니었고 단순한 할로윈 이벤트였다는 점도 고려를 해야 한다. 게다가 처음부터 사람이 이만큼 많이 몰릴 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상황에선 이미 개선하기 어려워진다.[11] 시뮬레이터 영상을 보면, 사람이 적을 때에 상황을 보면 개인의 의지대로 원활하게 움직이지만, 영상 후반 부분에서 사람이 많을 때의 상황을 본다면 개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밀려나면서 움직이게 된다.[12] 사고 발생 2시간 전에도 길이 막혔는데, 한 시민이 "먼저 내려가고 올라오라"며 군중을 통제하고 군중이 통제에 따르면서 질서가 형성되고 조금씩 통행이 가능해졌다. 관련 보도[13] 이렇게 군중이 또 다른 군중이나 좁은 길 등을 만나 앞쪽 사람들이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을 '군중 충돌'(crowd crush)이라고 하며, 사고 당시에도 군중 충돌 현상으로 선 채 기절하는 경우 있었다며 트라우마를 보이는 목격자도 있었다.[14] When bodies are touching, that high energy and density can give rise to these surges and crowd collapses[15] 설명 영상[16] 해당 부근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했고 외관상 보기 좋지 않아서 가벽을 세워 가려놓은 것이다. 원래 실외기는 건물 옥상에 설치하는 것이 맞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편법으로 골목길 여유공간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비단 이 곳뿐만 아니라 번화가 인근 골목길에서도 골목길 여유공간에 가벽을 설치하여 실외기를 설치해 놓은 몰상식한 건물들이 여럿 존재한다.[17] 해당 주점은 참사 당시 매장 내로 대피하려는 시민들을 가로막고 쫓아내려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와 논란이 되었다.[18] 세 주점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로 사고 당시 시민들이 시끄러워서 사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건을 더 크게 키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19] 다르게 말하면 크든 작든 일상생활 속에서 압사 사고의 위험을 항상 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특히 환승역들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신도림역은 자동환승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사람이 정말 많은 것으로 유명하고, 출퇴근시 서울 지하철 9호선도 혼잡도가 너무 심각하여 열차 안에서 사람이 낑겨 타는 일이 잦다.[20] 신도림역은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안전 관련인원이 상당히 확충되었다.[21] 이 사고가 나기 전의 압사 문서를 보자. 대부분 사물에 의한 압사에 대한 설명이지, 군중에 의한 압사에 대해 언급한 문구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에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을 수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한 줄의 주의문만 있을 뿐이었다.[22] 아래 과거 대비 통제 미흡 문단 참고[23] "인파 상황을 살피고 보고할 정보 경찰관을 현장 배치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추정되나, 윗선에서 "당일 저녁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집회 상황에 집중하라"며 묵살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24] 아래 2021년 거리 통제 영상을 보면 경찰 직원과 기동대원의 복장 차이가 구분되고 있다. 경찰 병력 85명과 경찰 기동대 3개 중대(180명)으로 265명 정도가 배치되었다.[25] 2021년 총원 719명#[26] 10월 31일 MBC 뉴스특보에서 사고가 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18시경 영상과 20시경 영상을 분석했는데, 사고가 나기 전부터 골목 주변에 경찰의 존재가 없이 인원이 꽉 차 있었다.[27] 이태원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방역게이트를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좌측우측에 설치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골목은 방역게이트가 설치된 사진이나 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28] 조선일보 사진과 일치한다. 조선일보는 "오후 10시가 지나자 경찰들이 '식당과 주점이 몰려 있는 도로 진입로'에서 행인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라고 보도했으나 BBC'같은 장소'라고 명시하여 보도했다. #[29] 용산경찰서 관계자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30] 그러면서도 경찰 사전 배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 이 역시 논란이 되었다.[31] 하지만 인파의 규모와 노마스크로 인한 상황이 예년과 다르기에 관련 발언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태원 압사 사고 발언 논란 문서 참조.[32] 이태원 파출소 직원 등 지역 경찰관이 소수나마 배치되었기 때문에 이 증언은 기동대 경찰관이 이태원 파출소 경찰관의 상황을 몰라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태원에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으므로 기동대 간 무전에서 이태원이 나올리가 없고, 따라서 기동대 입장에서는 이태원에 경비경찰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33] 이 시간은 이미 소방당국에 ‘사람이 깔렸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됐던 밤 10시 15분에서 약 1시간이 지난 시점이다.[34] 경찰 지휘차에 올라 콘서트장의 DJ처럼 인파상황을 내려보며 보행자들의 길을 안내하고 군중사고를 막는 역할이다.[35] 하버드 대학교 JD 학위를 보유한 재난관리 전문가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로 재임 중이다. 테러 대응 업무를 시작으로, 매사추세츠주 국토안보부 차관, 연방 국토안보부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CV[36] 테러 등에 대한 위기관리 법제 및 경찰 당국의 재량이 광범위하게 확보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테러, 재난 상황 또는 집회, 시위, 행사가 아닌 상황에서 경찰 당국에 대피, 해산 명령을 발동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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