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2 13:37:01

에디트 피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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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2가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을 발표한 명단이다.
1위2위3위4위5위
샤를 드골 루이 파스퇴르 아베 피에르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콜루슈
6위7위8위9위10위
빅토르 위고 부르빌 몰리에르 자쿠 쿠스토 에디트 피아프
11위부터는 영문 위키 참조.
같이 보기: 위대한 영국인, 위대한 러시아인, 위대한 독일인, 위대한 미국인
위대한 인도인, 위대한 핀란드인, 위대한 네덜란드인, 위대한 그리스인, 위대한 이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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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rsrs.co.kr/32960.jpg
이름 에디트 피아프 (Édith Piaf)
본명 에디트 지오바나 가송 (Édith Giovanna Gassion)
출생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 벨빌
사망 1963년 10월 10일 (향년 만 47세), 프랑스 알프마리팀 주 그라스
국적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png
신체 142cm
직업 가수
활동 1935년 ~ 1963년

1. 소개2. 생애
2.1. 나치 스파이 의혹
3. 노래4. 창법5. 창작물에서

1. 소개

에디트 피아프(프랑스어: Édith Piaf, 발음: [eˈdit pjaf], 1915년 12월 19일 ~ 1963년 10월 10일, 향년 만 47세)

제2차 세계대전 후 최고의 가수로 불리기도 한다. 본명은 에디트 지오바나 가시옹(프랑스어: Édith Giovanna Gassion)이다.

샹송의 왕이자 프랑스의 국민가수이며 프랑스의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에디트 지오바나 가시옹(Édith Giovanna Gassion)은 가난한 서커스 단원 아버지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서커스단 단원으로 한 몸 건사하기조차 벅차했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포주였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에디트를 맡겼다. 어린 나이에 백내장에 걸려 실명 위기를 겪다가 7살 무렵에야 간신히 회복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키는 142cm에 불과했고, 이것이 피아프(piaf), 참새라는 뜻의 그의 별명의 유래가 되었다.

14살 때부터 어린 에디트 피아프는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를 유랑하면서 노래하며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훈련도, 타고난 미성도 얻지 못했던 그였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는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한다. 하지만 유랑생활이 다 그렇듯이 벌이는 안정적이지 못했고, 간혹 돈이 다 떨어질 때면 그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시절로 회귀해 성노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또한 열일곱에 첫 아이를 얻어 출산했지만 아이는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에디트 피아프의 소문을 들은 클럽 르 제르니의 대표 루이 루플레라는 인물이 그에게 주급이 보장되는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가 얼마 뒤 살해당하면서 관계자였던 피아프는 졸지에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진범이 잡혔고, 풀려나온 그는 어느 새 퍼진 명성을 바탕으로 노래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노래 하나로 성공한 에디트 피아프였지만, 불행은 끊임없이 뒤를 따라다녔다. 성공한 뒤에도 교통사고를 네 번이나 겪었고, 평생 동안 가장 사랑했던 남자[1]는 비행기 사고로 떠나보냈으며[2], 어떤 애인은 연예계 경쟁자로 변모하고, 어떤 애인과는 폭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었다. 결국 반려자로서 어울리는 남자가 마침내 피아프의 곁으로 왔을 때, 이미 그는 병세가 완연해 있었고 함께 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2.1. 나치 스파이 의혹

프랑스 국영 채널 다큐멘터리 《의혹의 그림자》(L'Ombre d'un Doute)에서 에디트 피아프가 나치의 스파이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선 코코 샤넬, 모리스 슈발리에 등 유명인사들의 나치 의혹을 다뤘다.

3. 노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반영이었고, 특기인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는 애끓는 목소리로 가창되었다. 주요곡으로는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 1946),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3], "Milord"(신사, 1959),[4]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1960) 등이 있다. 에디트의 히트곡을 듣기 위해선 이 링크로 가면 된다.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 (1946年)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年)
Non, Je ne Regrette Rien(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1960年)

제목이나 가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와 비슷한 성격이며, 일명 '프랑스의 마이 웨이'로도 불린다. 하지만 발표된 시기는 이 노래가 '마이 웨이'보다 수년 앞섰다. 90년대 중반에 영화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Nobody Loves Me, 1994)》에서 인상적으로 쓰여서 국내영화영화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은 곡. 사실상 인셉션 나오기 전까지 이 노래 하면 이 영화였다. 이후 파리의 빈민가에 대해 다룬 영화 《증오(La Haine, 1995)》에서 미국의 힙합 그룹 N.W.A의 곡 Fuck Tha Police매쉬업한 버전이 삽입되기도 했고,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La Mome, The Passionate Life of Edith Piaf, 2007)》와 《인셉션 (Inception, 2010)》에도 삽입되었다 그리고 2017년 기아 스팅어 차량 광고음악으로도 쓰였다.

4. 창법

창법은 프랑스 고전 “샹송”의 전형으로서 격정적이고 때로는 극적이며, 폭넓고 빠른 떨림의 비브라토로 가사의 마지막 하나까지도 심금을 울리게 한다. 링크[5]

5. 창작물에서

올리비에 다앙이 감독을 맡은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라 몸》(La Môme)이 2007년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피아프 역을 맡은 마리옹 코티야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문, 국내 개봉명은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이다.

루미너스 위치즈엘레오노르 지오바나 가시옹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 권투 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으로, 1949년 10월 28일 포르투갈 인근의 아조레스 제도에서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였다. 후술하는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는 바로 이 사고를 계기로 발표한 노래이다.[2] 당시 이 비행기에는 천재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도 피아노 반주자인 오빠 쟝(Jean Neveu)과 미국으로의 연주 여행을 위해 탑승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출국 직전에 이들 - 마르셀 세르당, 지네트 & 쟝 느뵈 - 이 담소를 나누며 찍은 마지막 모습(!) 이 남아 있다.[3] 에디트 피아프 50주기를 맞아 파트리샤 카스가 리메이크 해 부른 버전도 있다.[4] 이탈리아의 유로 팝가수 in-grid가 이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덧붙여서 앨범 이름부터가 La vie en rose.[5] 죽고난 몇 년 후에 미레유 마티외가 비슷한 창법으로 명성을 얻어 제2의 피아프라는 별명을 갖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