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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티칸과 북한의 관계. 바티칸과 북한은 수교를 맺지 않았다.바티칸-북한 관계는 바티칸-중국 관계하곤 비교도 안될 정도로 나쁘다. 북한 정부가 수립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인 천주교 성직자들을 체포하여 사형하고 외국인 성직자는 체포하여 몇 년간 수용소에 가두었다가 풀어주는 등 북한은 초창기에 천주교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성직자와 수도자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성직자와 수도자 중에서도 순교자가 나왔다.
탈북자 중에서도 몇몇[1]은 북한에 살던 시절에 장충성당을 구경갔던 적이 있다고 한다. 장충성당 관련 소식을 조선중앙TV 등 관제 언론매체를 통해 알고 이를 신기해하여 평양 여행을 갔을 때[2] 구경간 것이다. 이를 보아 봉수교회나 장충성당 등 공인 종교단체 소속 종교시설에 일반인이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8년에야 13차 세계 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장충성당이 건립되어 임수경과 문규현 바오로 신부의 방북이 있었으나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진 않았다. 애초에 종교에 관련된 활동은 외국기자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표방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6.25 전쟁 후로 1987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티칸과 북한은 공식적·비공식적 접촉이 없었다.북한은 6.25 전쟁 이후 상당 기간 동안 공인 종교단체의 공개적 활동조차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로는 대내외적 필요[3]에 따른 유화조치를 취하여 전쟁 전부터 종교를 믿어온 사람과 그 자녀에 한해서 공인 종교단체를 통한 종교활동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공인 종교단체를 통하지 않은 종교활동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 게다가 개신교는 김일서의 친척 강량욱을 비롯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같은 어용단체가 남아있는것과 달리 교황청 승인을 받은 성직자가 살해당하거나 추방당한 이후, 외국인이나 한국인 성직자 상주를 지금까지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재미동포 박창득 신부 (2015년 사망) 등 몇몇 재외교포 성직자의 매년 정기방문을 허용하는 정도이다.[4]
북한은 1987년 비동맹회의 때 접촉을 시작으로 비공식적 접촉을 갖고 있다. 바티칸의 북한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 대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에 남아있을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바티칸 측에서는 1987년 북한 공인 개신교 단체 조선그리스도교련맹에 북한에 남아있을 천주교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조사로 찾아낸 천주교인은 5명이었고 바티칸 측이 파견한 인사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본부 사무실에서 이 5명과 면담을 가졌다. 이들 중 두명 박덕수 말구, 홍도숙 데레사 부부가 그 해 바티칸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받고 미사에 참례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했다. 특히 홍 데레사는 당시 55세로 37년간 숨어가며 신앙을 지켜내었다고 한다. 북한의 ‘진짜 신자’ 홍 데레사의 신앙
바티칸이 북한에 남아있는 천주교인을 처음으로 접촉한 1987년에 공인 천주교 신자단체인 조선천주교인협회[5]가 결성되었고 이듬해에는 장충성당이 완공되었다. 바티칸 측에서는 1988년에 성직자를 파견해 장충성당을 축성하고 미사를 집전했다. 이렇게 1980년대 말 이후 북한에서 로마로 종교관련 교육생을 파견하려는 유화 조치를 취했으나 바티칸에서는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이 종교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고 있었고, 교육생들의 정체가 통일전선부에서 파견한 유물론에 기반한 무신론자이며 로동당원 당증을 품고 종교관련 외화벌이나 종교인 색출과 탄압에 종사하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2.2. 21세기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바티칸 방문 때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 요청을 했고 교황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교황의 방북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2021년 G20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과 다시 만나면서 방북 요청을 했고,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이는 과거의 답변과 별 다르지 않은데 일단 청와대에서도 조차 실현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는다.# 외부에서도 교황방문이 가능하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종교인을 석방하고, 종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되는데 진짜 신자들은 수용소에서 죽어가는데 가짜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러 교황 방문이 이뤄지긴 어렵다고 본다.# 성신여대 정외과 김영호 교수도 북한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에게 요청한 것으로 보며 교황청에서는 (북한에서 요청이 없기에) 요청이 있으면 가겠다고 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교황의 방문은 북한의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데 김정은이 이를 감수하고 초청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다른 요인으로 코로나19 사태를 들 수 있는데 현재 북한에선 현재 자국 외교관의 귀국은 물론 타국 외교관들까지 코로나를 이유로 신규 부임을 거부하고, 국경 진입은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발포하는데, 교황을 비롯한 대규모의 초청단을 받는 것 자체가 주민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3. 관련 문서
[1] 유태준 등[2] 북한은 국내여행도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각의 주장과 달리, 평양에 살지 않는 일반인이 관광을 위해 평양에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즉, 허락은 받아야 하지만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허락을 받을 수 있다.[3] 대외적 선전의 필요성과 대내적 유화조치의 필요성[4] 허용이 되려면 최소 4~5만달러를 요구하는걸로 알려졌다. 1980년대 재외교포의 고향 친척 방문이 허용된 이래 개인자격 친지 방문이 최소 금액이 1만달러다.[5] 현 조선가톨릭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