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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커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s | ||
| 퀘이커 별은 전쟁 구호 활동 시 적십자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현재는 여러 퀘이커 조직에서 봉사 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원 미상.[1] | ||
| 유형 | <colbgcolor=#fff,#212121><colcolor=#000,#ddd>기독교 개신교 | |
| 창시 | <colbgcolor=#535353>창시자 | 조지 폭스 |
| 창시 시기 | 17세기 | |
| 지역 | 성도 | {도시이름} |
| 주요 신앙 지역 | 미국, 영국, 아프리카 | |
| 종교 중앙기관 | 명칭 | {중앙기관명} |
| 교주·수장 | {중앙기관장(들)} | |
| 소재지 | {중앙기관의 소재지(들)} | |
| 규모 | 신도 | 대략 377,000명 [2] | ||
| 성소·성직자 | {종교에서 사용되는 성소명 + n개, 종교에서 사용되는 성직자명 + n명 등}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언어별 명칭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한국어 | <colcolor=#000,#ddd>종교친우회, 퀘이커 | ||
| 영어 |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s, Quaker | |||
| 일본어 | クエーカー | |||
| 중국어 | 貴格會 | |||
| 프랑스어 | La Société religieuse des Amis, Quaker | |||
| 독일어 | Quäkertum, Religiösen Gesellschaft der Freunde | |||
| 러시아어 | Квакеры | |||
| 스페인어 | Sociedad Religiosa de los Amigos | |||
| 이탈리아어 | Quaccherismo | |||
| 라틴어 | Religiosa Amicorum Sodalitas | |||
| 아랍어 | جمعية الأصدقاء الدينية | |||
1. 개요
Religious Society of Friends17세기 중반 잉글랜드 내전의 격동기 속에서 조지 폭스(George Fox)가, 성직자나 교회의 중개 및 의식 없이도 모든 사람이 내면에서 직접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창시한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이러한 핵심 신념은 모든 사람이 내면에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시대를 앞서간 평등, 정의,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퀘이커는 초기부터 노예제 폐지와 여성 인권 운동에 앞장섰으며, 모든 형태의 폭력을 거부하고 비폭력주의를 실천했다. 이러한 평화와 인권을 위한 꾸준한 노력은 1947년, 종교 단체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었다.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 '내면의 빛'이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평등, 정의, 평화와 같은 선(善)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들의 정직과 성실이라는 가치는 사회적으로 큰 신뢰를 얻어, 로이드 은행(Lloyds Bank), 바클리스 은행(Barclays) 등 금융 기관과 캐드버리(Cadbury) 같은 세계적인 제과 기업을 설립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퀘이커(Quaker)라는 명칭은 창시자 조지 폭스가 한 재판에서 판사에게 "주님의 말씀 앞에서 떨어야(quake) 할 것"이라고 일갈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는 조롱의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퀘이커 교도들 자신도 이 명칭을 받아들였다.[3]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친우회(宗敎親友會)라고도 불리는데, 영어로 퀘이커의 원래 정식 명칭이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약 2-3천 명의 교도가 있다고도 하며, 현재 서울과 대전에서 정기적인 모임이 이뤄지고 있고, 1980년대까지 있었던 부산 모임은 2020년대 기준 모임 재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2. 의식
퀘이커 교도들의 예배의식.
퀘이커의 예배는 '침묵 예배'(Silent Worship)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정해진 순서나 성직자의 인도 없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신도들은 '교회'라고 불리는 특별한 건물이 아닌, 단순한 형태의 'Meeting House'에 모여 함께 침묵 속에 머무른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내면의 빛, 혹은 성령의 이끄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한다.
예배 시간 동안 성령의 이끄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이야기(vocal ministry)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만 예배가 끝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름의 유래와 달리 퀘이커 교도들의 예배는 매우 조용하다. 교회 (퀘이커 교회는 주로 소박한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명상하듯 고요하게 성찰하며 앉아있다가, 성경을 읽은 뒤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하는 식이기 때문이다.[4]
3. 역사
조지 폭스의 퀘이커 창립 이래, 1650년대 잉글랜드 북서부를 중심으로 퀘이커 운동이 일어났으며, 퀘이커 교도들은 청교도 혁명(Puritanism) 당시 다른 종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1681년 윌리엄 펜(Wiliam Penn, 1644.10.14 ~ 1718.7.30)은 찰스 2세에게 일부 북아메리카 땅을 사서, 펜실베이니아라 명명하였으며, 퀘이커 교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퀘이커교 전도사인 존 울먼(John Woolman, 1720 ~ 1772)은 전도 여행을 하며 퀘이커교의 교리에 따라 남녀평등,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호적인 관계, 노예 제도 반대, 전쟁 반대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퀘이커 정신은 그의 사후 1774년 발표된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교리상 노예 제도에 반대했기 때문에 남북 전쟁 전에 남부의 흑인노예를 캐나다로 탈출시키던 지하조직 지하철도에도 퀘이커 교인들이 다수 가담하였다. 그 외에도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여러 사회개혁 운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다. 퀘이커는 일찍이 1986년에 코네티컷에서 결의를 통해 동성결혼을 받아들였다. 물론 여전히 동성애를 죄라고 보고 있는 퀘이커 단체도 존재하는데 주로 복음주의파 퀘이커들이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퀘이커가 평화와 성실, 정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보니 정치나 마케팅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가령 미국에 존재하는 식품회사 브랜드 Quaker가 한 예.[5]
4. 교리
다음의 내용은 IVP 아가페 신학사전(2001, (주)아가페 출판사)의 퀘이커교 신학 항목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음을 밝힌다.초기 퀘이커교의 신학 사상은 청교도와 재세례파의 요소를 포함했다. 신학자 조지 폭스는 신약 시대부터 가견 교회의 배교를 가르쳤고(딤후 3:1-5) 또 그리스도가 이미 오셔서 참교회를 모으신다고 주장하였다. 외형적인 신학은 구원할 힘이 없는데 그 이유는 우주의 내면의 빛(요 1:9-18)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고 계속해서 성경의 진리를 계시하고 (요 16:13) 비폭력을 요구하고 철저하게 동등할 것을 명하고 모든 인습적인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명령한다는 것이다. 그 빛은 불신자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구원의 활동을 하였다.
외형적인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순결한 내면의 예배에 부적절한 옛 예언의 잔존이라 배척하였다.(요 4:24) 퀘이커 교도들은 신조들이 빛의 조명을 받지 않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지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였고 전가된 의와 전적부패와 같은 교리들을 부정하였다. 참교회는 예배에 모여서 조용히 성령께서 즉흥적인 기도나 설교나 증거를 하도록 감화해 주시길 기다렸다. 성직은 무급으로 임명 없이 남녀 누구나 맡을 수 있었다.
이후 체계적인 신학적 사상이 갖추어진 것은 신학자 로버트 버클리에 의해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의 저서 Apology for the True Christion Divinity에 의해서 나왔다. 그의 저서에서 성경과 교부들의 글들을 인용하여 퀘이커교의 특징의 증거들을 신약의 기독교 핵심 진리라 주장하였고 이 증거들에서 다른 모든 공식적인 교리들의 타당성을 찾았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이 너무 확신되자 나머지 퀘이커 교도들은 재세례파의 교리와 유사한 것을 버리고 다른 지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19세기 초까지 중요한 신학적 발전이 없었다.
오늘날의 전 세계 퀘이커교의 절반 이상이 정통 복음주의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18-19세기 초 신학자 조셉 존 거니의 영향이 컸다. 성경의 무오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은 전통적인 퀘이커교의 교리와 조화를 이뤘지만 계속적인 계시와 교리상의 평화주의 그리고 빛을 통한 속죄는 복음주의 원리와 조화시키지 못했다. 퀘이커교의 이 분파는 목사 청빙은 했으나 임명은 하지 않았고 교회 의식의 증거는 반대하나 프로그램에 의한 예배는 사용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비복음주의적 퀘이커교도 분파는 18세기 정적주의적 퀘이커교에서 일부 파생한 합리주의적 신비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과 결합하였다. 보편적인 빛의 교리가 확장되었고 성육신 교리가 희석되었고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조화가 강조되었다. 인류가 하나라는 생각 아래 이 분파는 다른 퀘이커 교파가 선교에 적극적이듯이 사회적 참여에 관심이 많고 활동하게 되었다.
퀘이커교의 분열은 원 메시지가 변화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의 해석상의 대립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퀘이커와 복음주의 퀘이커는 현대신학적인 신학 사상에서 나오기보단 17-18세기의 신학자들이 정립한 신학 정립이 퀘이커교의 논거로 여기는 양쪽 진형의 운동에 의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니토베 이나조는 퀘이커이면서도 평화주의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신토와 불교적 가치에 긍정적이라 무사도를 집필하기까지 했다. 현대 서구권의 퀘이커 교도들도 유니테리언처럼 종교혼합주의 성향을 띠는 경우를 숱하게 볼 수 있다.
퀘이커 신학의 핵심은 모든 사람 안에 신의 빛, 즉 '내면의 빛(Inner Light)'이 있다는 믿음이다. 이를 통해 모든 신자가 성직자의 중개 없이 직접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믿음은 '모든 신자의 사제직(priesthood of all believers)' 교리의 근간이 된다. 이 때문에 퀘이커는 정해진 신조나 계급적 구조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퀘이커 내에서도 신학적 다양성이 나타났다. 오늘날 전 세계 퀘이커는 크게 세 흐름으로 나뉜다.
- 복음주의 퀘이커 (Evangelical Friends): 전 세계 퀘이커의 다수를 차지하며, 목회자가 인도하는 예배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등 다른 복음주의 개신교 교파와 신학적 공통점이 많다.
- 자유주의 퀘이커 (Liberal Friends): '내면의 빛'과 개인의 양심, 그리고 사회적 실천을 중시한다. 성경을 신앙의 중요한 원천으로 여기지만, 신의 계시는 성경에만 국한되지 않고 계속된다고 믿는다. 주로 침묵 예배를 드린다.
- 보수주의 퀘이커 (Conservative Friends): 초기 퀘이커의 전통과 조지 폭스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따르려는 흐름으로, 성경과 내면의 빛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그나마 복음주의 퀘이커 목사나 신학자들은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신학자와 교회들이 많은 편이다. 복음주의 퀘이커에 호의적인 단체로는 대표적으로 대형 출판사이고 온누리교회에서 설립한 두란노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방송국인 CBS와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기독교서회 등도 퀘이커에 대해 호의적이다.
5. 핵심 가치 (신앙의 증언)
퀘이커는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강조하며, 이를 '신앙의 증언(Testimonies)'이라고 부른다. 이는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신앙을 통해 발현되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들을 의미한다. 모든 퀘이커가 동의하는 공식적인 목록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치들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어권에서는 각 가치의 앞글자를 따 SPICES라는 약어로 기억하기도 한다.- 단순함 (Simplicity):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불필요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본질에 집중하는 삶을 지향한다.
- 평화 (Peace):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전쟁을 거부한다. 갈등 해결에 있어 비폭력적인 방법을 추구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퀘이커의 오랜 전통이다.
- 진실성 (Integrity):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직한 삶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초기 퀘이커는 법정에서의 선서를 거부하기도 했다.
- 공동체 (Community):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며, 함께 신의 뜻을 찾아 나간다.
- 평등 (Equality): 인종, 성별,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내면에 신의 빛을 지니고 있기에 동등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퀘이커가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 청지기 정신 (Stewardship/Sustainability): 자연과 환경을 신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이를 책임감 있게 돌보고 보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6. 매체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으로, 수업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근본주의 퀘이커 교도들과 한 과학교사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나온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 금욕적이고 고지식한 면모를 보이는 리처드 윈터스가 퀘이커 교도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묘사가 나오고 윌리엄 가니어가 리처드 윈터스와 가벼운 갈등이 생겼을 때, 퀘이커 교도라고 비아냥거리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윈터스가 병사들 사이에 자신이 퀘이커 교도라는 소문이 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자신이 퀘이커 교도가 아니라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 세븐 사이코패스: 마틴 맥도나의 2012년 작 영화.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주인공의 친구 한스(크리스토퍼 워컨 분)는 폴란드계 퀘이커 교도다.
- 모비 딕: 허먼 멜빌의 소설. 스타벅은 1등 항해사이며 퀘이커 교도이다. '스타벅스'의 브랜드 이름이 여기서 따온 것.
- 우정있는 설복(Friendly Persuasion)[6]: 1956년작 고전 영화. 남북 전쟁 당시 퀘이커 교도들의 고뇌를 다룬 이야기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제로 하였음에도 3공 시절 국내 개봉됐다. 게리 쿠퍼가 주인공인 제스 역을 맡았다.
- 하이눈: 1952년 작 고전 영화로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이다. 켈리가 퀘이커 교도여서 무법자들과 싸우지 말고 그냥 떠나자고 남편 쿠퍼를 채근한다.
- 비포 선라이즈: 제시가 셀린에게 오스트리아 성당에서 퀘이커교 결혼식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7. 퀘이커 교도
7.1. 정치·외교
- 리처드 닉슨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 허버트 후버 (미국의 제31대 대통령)
- 윌리엄 펜 (William Penn, 영국의 사상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 설립자)
- 니토베 이나조 (일본의 교육자, 국제연맹 사무차장)
7.2. 과학·의학·학문
- 조지프 후턴 테일러 주니어 (Joseph Hooton Taylor Jr.,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199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아서 스탠리 에딩턴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
- 존 돌턴 (영국의 화학자, 현대 원자설의 아버지)
- 조지프 리스터 (영국의 외과의사, 소독법의 창시자)
- 엘리자베스 블랙웰 (미국의 의사, 미국 최초의 여성 의학 학위 취득자)
-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 (미국의 고생물학자)
7.3. 사상·사회운동
- 수전 B. 앤서니 (Susan B. Anthony, 미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
- 베이어드 러스틴 (Bayard Rustin,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핵심 조언자)
- 함석헌 (한국의 사상가, 인권운동가)
- 월트 휘트먼 (미국의 시인, 미국 문학의 거장)[7]
7.4. 문화·예술
- 주디 덴치 (영국의 배우)
- 벤 킹슬리 (Ben Kingsley, 영국의 배우, 영화 《간디》의 주연)
- 데이먼 알반 (영국의 음악가, 록 밴드 블러와 가상 밴드 고릴라즈의 프론트맨)
- 조안 바에즈 (미국의 포크 가수, 인권운동가)
-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 미국의 설치미술가, 한국 뮤지엄 산의 '제임스 터렐관'으로 유명)
- 제임스 딘 (미국의 배우, 20세기 청춘의 아이콘)[8]
7.5. 기업·자선사업
- 존스 홉킨스 (Johns Hopkins, 미국의 사업가 및 자선가, 존스 홉킨스 대학교와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설립자)
- 존 캐드버리 (John Cadbury, 영국의 사업가, 초콜릿 회사 캐드버리(Cadbury)의 창립자)
8. 여담
퀘이커 계열은 아니고 초교파 선교단체인 예수전도단[9]에서는 가끔 'QQ'[10]라는 교제 방식을 취할 때가 있는데, 퀘이커 교도들이 서로의 친교를 위해 묻는 몇 가지 질문이라고 한다.17~18세기 초기 퀘이커 신자들의 이름들을 보면 기독교적 가치를 자식의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아서 Thankful(감사하는), Charity(자선), 등 특이한 이름을 가끔 찾아볼 수 있다. [11]
[1] 빨간색과 검은색 8각별은 1917년 11월 13일 미국 퀘이커 봉사 위원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AFSC)가 공식 상징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 별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영국 퀘이커들이 처음 사용했다. 당시 구호활동가들은 자신들과 구호 물품이 다른 단체와 혼동되지 않도록 식별 표시가 필요했다. 이 별은 런던 데일리 뉴스 펀드가 프랑스 농민 구호를 위한 물품에 붙이면서 사용됐으며, 이전에는 영국 국기와 적십자기를 함께 사용했으나 프러시아 군인들과 프랑스 민간인 사이에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퀘이커와 적십자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별을 사용했다.
별 상징의 원래 디자인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한 전설에 따르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낭시(Nancy)시가 퀘이커의 도움에 감사해 시의 상징의 사용하도록 부탁했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현재 이 별은 AFSC뿐 아니라 여러 퀘이커 단체가 공유하는 봉사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 중이다. 디자인은 단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기원과 봉사의 헌신을 의미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210714190704/https://www.afsc.org/story/red-and-black-star[2] 2017년 기준[3] 루터교나 빅뱅 이론처럼 원래 놀리려고 붙인 별명이 공식 명칭이 되어버린 경우다.[4]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2014-01-07 《퀘이커,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평화주의자》[5] 다만 해당 회사 설립자는 퀘이커 교도가 아니었다. 한편 퀘이커 신자가 설립한 유명한 초콜릿 회사는 많은 편이다. 가령 KitKat이 있다.[6] 1968년 한국 개봉 제목.[7] 어렸을 적엔 퀘이커 교도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엔 기독교적 무신론·범신론자가 되었다.[8] 9살 때 어머니를 잃은 후, 퀘이커 공동체에 사는 고모네 집으로 보내져 퀘이커 교도인 고모와 고모부 밑에서 자랐다.[9] 로렌 커닝햄이 1960년에 설립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년 선교단체. 한국에서 오대원(David E. Ross) 목사가 1973년에 설립한 예수전도단과 통합하였다.[10] Quakers' Question[11] 덕분에 기독교 맥락에서 '하나님의 가호를 받은'을 뜻하는 'Preserved'와 평범한 성씨인 'Fish'가 만나 Preserved Fish(보존된 생선)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당시 영어권 개신교 문화에는 여성이 결혼전 성씨를 첫째 아이의 이름으로 짓는 문화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Leather Peacock나 Coffin Pitts 같은 독특한 이름이 여럿 나오는 모양. 이러한 독특한 이름 중 끝판왕은 퍼블릭 유니버설 프렌드로, 본인이 14세에 열병에 걸려 사망하고 젠더리스 복음주의자로 되살아났다고 주장한 19세기 퀘이커 신도다. 실제로 여성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배제하기 위해 당대 퀘이커 남성의 복장도 혼용하고, 과거 이름이던 Jemima Wilkinson을 완전히 부정하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갔다. 설교를 하러 다닐 때 성경을 따로 챙기지 않았고, 본인이 통째로 암송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고 했으며, 사상적으로는 자유의지, 노예제 반대, 결정론 부정 등등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안타깝게도 시대의 한계로 인해 당대에는 '남장하는 괴짜' 정도의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독특한 행보로 인해 현대에 와선 젠더퀴어나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중.
그러나 이 별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영국 퀘이커들이 처음 사용했다. 당시 구호활동가들은 자신들과 구호 물품이 다른 단체와 혼동되지 않도록 식별 표시가 필요했다. 이 별은 런던 데일리 뉴스 펀드가 프랑스 농민 구호를 위한 물품에 붙이면서 사용됐으며, 이전에는 영국 국기와 적십자기를 함께 사용했으나 프러시아 군인들과 프랑스 민간인 사이에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퀘이커와 적십자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별을 사용했다.
별 상징의 원래 디자인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한 전설에 따르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낭시(Nancy)시가 퀘이커의 도움에 감사해 시의 상징의 사용하도록 부탁했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현재 이 별은 AFSC뿐 아니라 여러 퀘이커 단체가 공유하는 봉사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 중이다. 디자인은 단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기원과 봉사의 헌신을 의미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210714190704/https://www.afsc.org/story/red-and-black-star[2] 2017년 기준[3] 루터교나 빅뱅 이론처럼 원래 놀리려고 붙인 별명이 공식 명칭이 되어버린 경우다.[4]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2014-01-07 《퀘이커,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평화주의자》[5] 다만 해당 회사 설립자는 퀘이커 교도가 아니었다. 한편 퀘이커 신자가 설립한 유명한 초콜릿 회사는 많은 편이다. 가령 KitKat이 있다.[6] 1968년 한국 개봉 제목.[7] 어렸을 적엔 퀘이커 교도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엔 기독교적 무신론·범신론자가 되었다.[8] 9살 때 어머니를 잃은 후, 퀘이커 공동체에 사는 고모네 집으로 보내져 퀘이커 교도인 고모와 고모부 밑에서 자랐다.[9] 로렌 커닝햄이 1960년에 설립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년 선교단체. 한국에서 오대원(David E. Ross) 목사가 1973년에 설립한 예수전도단과 통합하였다.[10] Quakers' Question[11] 덕분에 기독교 맥락에서 '하나님의 가호를 받은'을 뜻하는 'Preserved'와 평범한 성씨인 'Fish'가 만나 Preserved Fish(보존된 생선)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당시 영어권 개신교 문화에는 여성이 결혼전 성씨를 첫째 아이의 이름으로 짓는 문화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Leather Peacock나 Coffin Pitts 같은 독특한 이름이 여럿 나오는 모양. 이러한 독특한 이름 중 끝판왕은 퍼블릭 유니버설 프렌드로, 본인이 14세에 열병에 걸려 사망하고 젠더리스 복음주의자로 되살아났다고 주장한 19세기 퀘이커 신도다. 실제로 여성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배제하기 위해 당대 퀘이커 남성의 복장도 혼용하고, 과거 이름이던 Jemima Wilkinson을 완전히 부정하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갔다. 설교를 하러 다닐 때 성경을 따로 챙기지 않았고, 본인이 통째로 암송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고 했으며, 사상적으로는 자유의지, 노예제 반대, 결정론 부정 등등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안타깝게도 시대의 한계로 인해 당대에는 '남장하는 괴짜' 정도의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독특한 행보로 인해 현대에 와선 젠더퀴어나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