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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19-20세기에 걸쳐 아르메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하즈 유수프 모스크 (예니 자미)
말라티아 (튀르키예) Malatya |
1. 개요
튀르키예어 Malatya아르메니아어 Մալաթիա
고대 시리아어 ܡܠܝܛܝܢܐ
오스만어 مالاتيا
튀르키예 동부의 도시. 시바스에서 동남쪽으로 140km, 아드야만에서 북쪽으로 50km, 엘라즈에서 서남쪽으로 60km, 디야르바크르에서 서북쪽으로 110km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 남쪽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50만으로, 말라티아 도의 주도이다. 고대 히타이트 시기의 도시 멜리드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고장으로, 중세에는 멜리테네라 불렸다. 다만 시내 자체에는 유적이 별로 없고, 19세기 초까지 도심이던 북쪽 5km 지점의 밧탈가지에 로마 시대 성벽과 카라반사라이 등이 남아있다. 동북쪽에는 상고대 유적인 아슬란테페가 있다. 특산물로 살구가 유명한데, 튀르키예 살구 생산량의 무려 80%가 말라티아 산이라 한다. 시내에는 트램이 다니고, 서북쪽 15km 지점에 말라티아 에르하치 공항이 자리한다.
2. 역사
대표적인 히타이트 유적 중 하나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르슬란 테페
2.1. 멜리드
고대에는 히타이트어로 '꿀'이란 의미인 멜리드로 불렸다. 고대 이수와 왕국의 수도이던 멜리드는 기원전 1350년경 히타이트 국왕 수필룰라우마 1세에게 정복되어 미탄니 제국에 대한 전초기지가 되었다. 다만 멜리드는 기원전 1100년경 멜리드는 아시리아에 복속했는데, 기원전 712년 사르곤 2세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당시의 유적은 동북쪽 2km 떨어진 아르슬란테페에 남아있다. 아르슬란 테페는 1930년대 프랑스, 1960년대 이탈리아 발굴팀이 조사하였고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발견된 유물들은 말라티아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2.2. 멜리테네
옛 말라티아인 밧탈가지 (에스키 말라티아)의 동로마 시기 성벽
기원전 6세기 무렵 멜리드는 아케메네스 제국에 복속한 아르메니아 왕국령이 되었고, 헬레니즘 시기에는 콤마게네 왕국과 카파도키아 왕국이 경쟁하다가 후자가 승리하여 지배하였다. 기원전 63년 카파도키아는 로마에 복속하였고, 서기 17년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서기 72년 로마 제국은 기존 멜리드 (아르슬란테페)보다 유프라테스 강에 더 가까운 곳에 제12 풀미나타 군단의 기지를 세워 멜리테네라 명명하였다. 그후 멜리테네는 400여년간 군단기지로 기능하며 로마 제국의 동방 방어선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점차 도시화되며 2세기 트라야누스의 치세에 도시 (무니키피움)가 되었다. 3-5세기에는 제국의 화폐 주조소가 있었고, 4세기에는 제2 아르메니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아나스타시우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대에는 성벽이 세워졌고 후자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멜리테네는 제3 에르메니아 테마의 치소가 되었다. 로마 제국 때에는 대 파르티아 전선의 주요 군단 기지인 멜리테네였다. 638년에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에 의해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아랍식 지명인 말라티야로 개칭된 도시는 이슬람 세력에 있어 소아시아 침공의 전진기지로 쓰였다.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지방 분권화와 함께 총독 우마르 알 아크타가 자립하여 동로마 변경을 지속적으로 침략했으나 863년 랄라카온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934년 멜리테네를 점령하는 동로마 군대
그후 멜리테네의 수복을 시도한 동로마 제국은 수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934년 5월 요안니스 쿠르카우스의 활약으로 3세기만에 점령한다. 다만 1058년 셀주크 제국군이 멜리테네를 함락하고 파괴하였고, 만지케르트 전투와 함께 동로마 패권이 무너지자 아르메니아 인들이 자립하였다. 십자군이 당도할 무렵 현지 지배자는 아르메니아계 가브리엘이었다. 십자군 전쟁기인 1100년, 이곳에서 벌어진 멜리테네 전투에서 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이 다니슈멘드 가지에게 패하고 사로잡혀 3년간 포로 신세가 되기도 한다.
2.3. 말라티아
13세기 초엽 룸 셀주크 하에 세워진 카라반사라이
전투 후 다니슈멘드 왕조, 12세기 말부터 룸 셀주크의 지배를 받으며 튀르크 인의 도시가 된 말라티아는 페르시아 계 학자들의 유입으로 학문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몽골제국 (일 칸국)의 지배 이후 1315년에 맘루크 왕조 령이 되었으며, 15세기에는 다시 튀르크 토후국인 둘카디르의 지배를 받았고 1516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되었다. 중세의 멜리테네 ~ 말라티아는 본래 유프라테스와 멀지 않은 밧탈가지에 있었는데, 1838년 메흐메트 알리와 맞서기 위해 남하하던 오스만 군대가 기존 도심에서 월동하자 주민들이 더 남쪽의 아스파주 마을로 이주하며 현재의 말라티아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밧탈가지는 현재까지도 에스키 말라티아, 즉 옛 말라티아로 불린다. [여담으로]
1900년 전후 말라티아는 역경의 시기를 보냈다. 1893년 대지진이 발생하여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300여명이 사망하였다. 동시에 콜레라가 발병하여 9백여명이 병사하였다. 이후 아르메니아 대학살 (하미디예 학살) 시기에는 일대의 아르메니아인 7천여명이 학살되었다. 1913년 통계에서 말라티아의 주민 구성은 2만 7천의 튀르크인, 3천의 아르메니아인 (그중 8백은 가톨릭교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은 아르메니아인도 1915년 봄, 시리아 방면으로 죽음의 행진에 처해졌다. 1964년 6월, 말라티아에는 재차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여 8명이 사망하였다. 암울한 말라티아의 근현대사에서 1931-37년의 철도 건설과 1937년 국부 무스타파 케말의 방문 정도만이 희망적인 사건이었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당시 피해가 보고된 지역 중 하나이다.
3. 행정구역
말라티아 도는 악차다으(Akçadağ), 아랍기르(Arapgir),아르구반(Arguvan), 밧탈가지(Battalgazi), 다렌데(Darende), 도안셰히르(Doğanşehir), 도안욜(Doğanyol), 하킴한(Hekimhan), 칼레(Kale), 쿨룬작(Kuluncak), 퓌튀르게(Pütürge), 야즈한(Yazıhan), 예실유르트(Yeşilyurt) 총 13개의 군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밧탈가지, 예실유르트 군이 중심 시를 구성한다.4. 여담
말라티아 살구가 유명하다. 시가지 서북쪽의 사실 볼거리도 있고, 자연 풍경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개발이 안돼서 관광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튀르키예인들에게는 살구와 함께 낚시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아드야만과 함께 넴루트 산 무덤을 향하기 위한 경유지로도 활용되는데, 넴루트 산이 아드야만 도에 속하긴 하지만 말라티아와 아드야만 시내에서 그곳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도시 모두 공항이 있지만 말라티아에는 철도역도 있고, 더 큰 도시이며 볼거리도 더 많은 편이다. 따라서 넴루트 산으로 향하는 관광객 중 상당수가 말라티아를 거친다.[여담으로] 말라티아에서 남하한 오스만 군은 이듬해 6월 네지브 전투에서 패배한다.. 보다못한 서구 열강이 1840년에 개입하며 메흐메트 알리는 아나톨리아 진격을 포기하고 협상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