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08:16:24

리빙 랩


1. 개요2. 역사
2.1. 디지털 기술혁신 방법론에서2.2. 주민참여적 사회혁신 방법론으로
3. 설명4. 국내의 현황
4.1. 비판4.2. 로컬 랩


Living Lab

1. 개요

리빙 랩은 기술 또는 사회의 혁신을 목표로 고안된 현장 중심적 문제해결 방법론이다. 그 대상이 디지털기술이 될 수도 있고, 지역사회가 될 수도 있고, 공공서비스가 될 수도 있으나, 공통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현장에서 직접 그 혁신의 길을 찾는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가장 폭넓게 정의된 리빙 랩은 일상 속의 문제해결 방법론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단순히 음차가 아니라 한국어로 의미를 전달할 때는 '생활실험실' 이라고 번역되며, 음차할 경우 흔히 띄어쓰기를 생략하여 '리빙랩' 이라고 지칭한다.

현장중심적 연구방법론이라는 점에서 흔히 교육학실행연구(action research)와 비교하기도 하고 실제로도 관련성이 없지 않으나, 알렌 히긴스(A.Higgins)와 스테판 클라인(S.Klein)은 여기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 형태라고 이해한다. 리빙 랩은 그 목적에 따라서 기술혁신을 원할 경우 공학경영학에서 활용하기도 하며, 사회혁신 또는 공공혁신을 원할 경우 행정학, 정책학, 사회학, 사회복지학에서 활용한다. 그러나 리빙 랩은 상아탑에 한정되기보다는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경제와 같은 마을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위에서는 최대한 포괄적인 의미에서 리빙 랩을 잠정적으로 정의하기는 했으나, 사실 리빙 랩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빙랩 운동가 세포 레미넨(S.Leminen)은 심지어 리빙 랩의 정의가 총 70가지에 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희망제작소에서 출간된 한 문헌에서도[1]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아직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 및 체계나 방법론 등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 라고 리빙 랩을 냉정히 평가하고 있다. 이는 리빙 랩이 일정 부분은 사회운동의 슬로건이나 구호로서만 통용되어 왔기 때문일 수 있다.

흔히 리빙 랩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 많은 문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2] 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정의가 기술혁신 목적의 리빙 랩을 누락했다는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이런 식의 설명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리빙 랩은 과학적 방법론의 위반이 아닌가? 훈련 받지 못한 일반인이 진행하는 연구활동을 '실험' 이라고 어떻게 부를 수 있는가? 외부환경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통제집단과 실험집단을 어떻게 무선할당할 것이며, 맹검법은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신뢰도와 타당도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실험결과의 일반화는 어디까지인가?

이는 리빙 랩에 대한 일종의 오해라고 할 수 있는데, 리빙 랩은 비전문가가 제멋대로 수행해 놓고서 실험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활동이 아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는 리빙 랩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기실 일반인이 과학자사회에 지식적인 기여를 하는 활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는 흔히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이라고 불리며, 거친물결구름의 발견이나 저위도 오로라 '스티브' 의 발견 등에 기여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아마추어 폭풍 추격대들이 슈퍼컴퓨터로 모사한 토네이도 모델링의 타당성을 입증해 주기도 한다. #

2. 역사

2.1. 디지털 기술혁신 방법론에서

리빙 랩이라는 아이디어가 제대로 데뷔한 것은 2006년의 일이지만, 그 모태는 2004년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MIT 소속의 연구자 윌리엄 미첼(W.J.Mitchell)은, 인텔 등과 손잡고서 가정 내에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신기술들을 개발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기술을 개발했어도, 소비자들이 그 제품에 대해 얼마나 실용적이고 도움이 된다고 느낄지, 즉 얼마나 많은 수요를 보일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고심 끝에 연구팀은 아예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빌려서, 오만가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로 발라놓은 거주환경을 만들고, 피험자들을 모집해서 평범한 주거환경에 비해 삶이 얼마나 바뀌게 될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리하여 리빙 랩의 전신인 플레이스랩(PlaceLab)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미첼은 이를 가리켜서 "Live-in Laboratory" 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리빙 랩의 기원이 되었다.

요컨대 2004년의 플레이스랩 프로젝트 자체는 분명히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공학자들은 아파트 인근에 거주하면서 피험자들의 동선을 체크하고 생활편의를 확인했으며 각각의 활동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그들은 새로 개발된 기술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삶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객관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연구가 없었다면 그들의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조용히 외면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이때의 리빙 랩은 산업현장에서 신제품 출시 전에 소비자들의 수요와 괴리되지 않도록 한다는 출시 전 간극(pre-commercial gap) 감소의 목적으로 수행하는 기술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기술혁신 분야에서의 리빙 랩은 아직도 이때의 유산들을 많이 갖고 있다. 현대 산업현장에서의 리빙 랩은 그 기술의 최종적 사용자인 소비자들이 기술혁신의 동기를 직접 제공하고 혁신 과정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소비자의 일상생활이 곧 실험실이 된다는 플레이스랩의 아이디어는 오늘날 더는 낯설지 않다. 단지, 소비자가 기술혁신의 수혜자에 지나지 않으며 리빙 랩은 그 기술의 사용자가 거주하는 공간일 뿐이라는 인식만을 폐기했을 뿐이다. 사실 아래에 설명할 사회혁신 분야의 리빙 랩에서도 이때의 영향을 받아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디지털 및 스마트 신기술의 도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2.2. 주민참여적 사회혁신 방법론으로

이렇게 미국에서 수요대응형 신기술 혁신의 방법론으로만 여겨지던 리빙 랩은, 유럽으로 전래된 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되었다.[3]

유럽, 특히 북유럽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지역사회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고, 강력한 시민사회의 힘으로 뒷받침되는 주민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동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잘 정착되어 있었다. 이들에게 미국에서의 리빙 랩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들은 리빙 랩을 일종의 우리집 실험실(home lab)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존에 자기들이 해 오던 것처럼,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활동을 리빙 랩과 결합시킨 것. 즉 미국에서 사용자는 혁신의 결과물을 평가하기 위한 관찰대상에 불과했지만, 유럽에서는 사용자가 그 혁신의 주체로 대번에 도약한 것이다.

2006년에 유럽위원회는 헬싱키 매니페스토(Helsinki Manifesto)를 주창하면서 리빙 랩을 그 전략으로 채택하고 2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 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가 결성되어 유럽 전역의 리빙 랩 사업들을 총괄하고 가이드하는 역할을 맡았다. ENoLL은 창설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인 2016년에는 무려 395개의 인증된 리빙 랩 소집단을 관리할 정도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또한 매해 투표를 통해서 리빙 랩 프로젝트 어워드(Living Lab Project Award)라는 시상도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리빙 랩의 특징은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즉 혁신의 대상이 특정 기술이나 산업분야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공공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리빙 랩은 구체적인 어떤 지역에 한정되기 시작하며, 공적이고 정책적인 성격을 갖기 시작한다. 마을의 문제를 주민들이 알아서 해결하는 북유럽 특유의 문화는 리빙 랩을 주민참여적 사회적 문제해결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2016년독일 함부르크에서 진행한 장소 찾기(Finding Places) 프로젝트는 가장 성공적인 사회혁신형 리빙 랩 모델로 평가된다. #

'장소 찾기'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시티사이언스랩(CityScienceLab)이라고도 불리며,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기술이 적용된 사례이기도 하다. 유럽 난민 사태로 몰려들어온 난민들이 거주할 곳을 만들어 주기 위해 함부르크 지역주민들은 34번씩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만날 때마다 이들은 증강현실로 제작된 특수한 지도 위에서 이주자 거주시설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어 가며 수백 번씩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마침내 주민들은 750명의 난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6개소의 장소들을 최종적으로 선정해서 시 당국에 건의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인 만큼 님비현상도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이 사례에서처럼 신기술을 접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공공의 문제를 리빙 랩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서 신기술이 꼭 필수인 것은 아니다.

3. 설명

리빙 랩의 주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흔히 4P라고 불리는 거버넌스 개념이 거론되곤 한다. 이는 공공-민간-주민 파트너십(Public-Private-People Partnership)의 약어로서 P 4개를 따 왔기 때문이다. 모든 리빙 랩에는 공적 영역, 사적 영역, 시민사회 영역이 골고루 참여한다. 다시 말해 제1섹터에서 제3섹터에 이르는 모든 사회적 주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리빙 랩이다. 예컨대 공공기관에서 리빙 랩의 진행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기업체에서 비용을 투자하거나 전문적 자문을 맡아 주며, 주민들이 혁신이 필요한 이슈를 발굴하는 등의 역할분담이 가능하다.

리빙 랩은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을 혁신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법론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 여기서 누가 총대를 메느냐에 따라서 리빙 랩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위에서 소개했던 기술혁신 리빙 랩의 경우 기업체가 자신들의 신상품 또는 서비스를 론칭하기 전에 실시하는 테스트베드(test-bed) 형태로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연구소에서 기술개발(R&D)을 통해 완성된 혁신적 기술을 실증해 보는 리빙 랩도 있다. 반면 사회혁신 리빙 랩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하는 경우도 있고 지역사회 주민들이 주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말할 것도 없이 주민주도적 리빙 랩이야말로 가장 만족도도 높고 지속성도 크지만, 이게 아무데서나 다 가능한 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회혁신은 지자체가 공모사업의 형태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기술혁신 분야에서도 주민이나 지자체가 적극 관여하기도 하고, 사회혁신에서도 기업체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므로,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리빙 랩이건 간에 일반인과 정부가 혁신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은 같다. 전체 혁신 과정을 얼마나 주도해 나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서 기술혁신 리빙 랩의 고유한 측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성지은 등(2017)[4]의 연구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주로 사회혁신 분야의 리빙 랩에 초점을 맞추어 방법론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위에서 소개했었던 가장 권위 있는 리빙 랩 단체인 ENoLL은, 리빙 랩이 리빙 랩이기 위한 고유한 필수요소로서 5가지를 제안했다. 세세한 내용은 계속 수정되면서 바뀌어 왔지만, 큰 틀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다.
  • 능동적 사용자 참여(active user involvement) : 리빙 랩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의 결과물을 누리는 사용자들이 혁신 과정에 참여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혁신의 전체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
  • 실생활 배경(real-life setting) : 리빙 랩은 반드시 삶의 현장 속에서 진행된다. 혁신은 연구실이나 상아탑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그 가치가 입증되어야 한다.
  • 다수 이해관계자 참여(multi-stakeholder participation) : 리빙 랩의 진행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혁신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일반인들을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도울 수 있고, 신기술을 활용한다면 그 기술의 공급자나 테크니션이 참여하게 된다.
  • 다방법적 접근(multi-method approach) : 리빙 랩은 특정한 하나의 방법론에 국한되지 않으며, 문제의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혁신을 이루는 과정에서 필요한 방법론이라면 무엇이든 다 가져다 쓸 수 있다. 쉽게 말해,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전부 끌어다 써먹는다는 극도의 응용적 성격을 갖는다.
  • 공동창조 과정(co-creation process) : 전체 사이클이 종료되거나 다시 반복될 때마다 혁신의 생산자와 혁신의 사용자가 똑같이 혁신에 기여함을 의미한다.

행정안전부는 지역사회의 혁신을 도모하는 리빙 랩에 대해 주민참여 리빙 랩으로 다시 명시하였으며,[5] 공공성 및 공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소셜 리빙 랩(social living lab)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리빙 랩에는 다시 새로운 성격들이 추가되는데, 행안부 자료에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지역성 : 사회혁신 분야의 리빙 랩은 전국을 무대로 삼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대개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작게는 행정동 수준일 수도 있고, 지자체가 주도할 경우 크게는 광역시 규모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든, 리빙 랩의 적용은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 개방성 :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리빙 랩들 중에서도 특히 사회혁신 분야에서는 개방성이 더욱 강조된다.
  • 주도성 및 책임성 : 주민들이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의 주체가 되어서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러한 민관협치적 성격은 점차 지방자치의 이념이 확대 적용됨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 실험성 : 행안부는 주민참여 리빙 랩에서 실험성을 상당히 강조하였다.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경제, 벽화그리기 같은 기존의 다른 주민참여 사업들과 달리, 유독 리빙 랩만은 실험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실험성이라는 것은 실험설계 같은 의미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플레이스랩의 리빙 랩 패러다임이 사회혁신 분야로 넘어오면서 실험이라는 개념은 상당한 재해석을 거치게 되었다. 행안부의 부연설명을 요약하자면 여기서의 실험성이란 곧 시행착오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행안부는 리빙 랩은 계획이나 결과에 있어서 변경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를 다시 풀어 말하자면 리빙 랩은 초기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실생활에서 시험하고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계획의 변경이 가능하고, 바라는 결과가 정확히 도출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개선이 있었다면 성공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시험적 시도를 용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험성이 있다고 불러주자는 것이다.

리빙 랩의 구체적인 절차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지만, 4D라고 불리는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의 반복으로 구성된다. 이 역시 문제의 '발견'(Discovery), 문제의 '정의'(Definition), 해결법의 '발전'(Development), 해결법의 '전달'(Delivery)의 4개 단어에서 D 단어를 모은 것. 발견 단계와 발전 단계에서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발산적 사고가 필요한 반면, 정의 단계와 전달 단계에서는 문제에 엄밀하게 포커스를 맞추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수렴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 과정을 더블 다이아몬드(Double Diamond)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업체 실무자들은 문제해결 방법론의 철학으로서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과도 유사함을 눈치챌 수도 있을 것이다.

4. 국내의 현황

국내에는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해 기술혁신 또는 산업혁신의 개념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디지털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리빙 랩의 도입은 주로 스마트 도시 등에 관련된 기술의 실증사업으로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2018년 들어 행정안전부희망제작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국민해결 2018" 사업은 본격적으로 사회혁신 목적의 리빙 랩을 데뷔시켰다고 할 수 있으며, 이때 이후로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들에서 리빙 랩 관련사업이 크게 유행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는 리빙 랩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리빙랩과 관련된 조직으로는 한국리빙랩네트워크, 대학리빙랩네트워크가 있으며, 다양한 포럼 및 학술행사를 통해 지역및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리빙랩 활동들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확산하고 있다. 유튜브 등을 검색해 보면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는 http://livinglabs.kr/knoll/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각종 자료를 모아 놓고 있다.

지역별로도 네트워크 조직이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부산리빙랩네트워크, 대구리빙랩네트워크, 광주리빙랩네트워크, 전북리빙랩네트워크, 대전리빙랩네트워크,하남리빙랩(하남e스스로) 등이 활동중이다,

하남e스스로는 하남시의 리빙랩 서비스로 온라인 상에서 지역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안건을 수립하여 해결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설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마을 의제와 같은 주민들이 참여 발제한 의제들로 참여율을 증진시키려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해결 2018" 사업은 리빙 랩의 공공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기술혁신 목적의 리빙 랩과 차별화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위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소셜 리빙 랩' 이라는 새로운 네이밍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을공동체의 회복지역사회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를 목표로 하여 리빙 랩을 진행한 것. 이는 기존의 도시재생 등의 사회혁신의 논리가 지나치게 관 주도적이고 주민들의 참여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행안부 자료에서 "(리빙 랩은 주민들의 참여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수단" 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리빙 랩조차도 관에서 주민들을 동원(mobilize)한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하튼 우리나라의 리빙 랩은 공모사업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각 지자체에서도 자체적으로 마을 리빙 랩 활동에 대해 최소 100~200만원 정도씩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일례로 경상남도의 경우 2019년 한 해 동안 리빙 랩 관련사업에만 무려 1억 8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에 지방정부가 일일이 다 대응하기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해결의 일정 부분은 주민들에게 위임하려는 것도 있고, 겸사겸사 주민자치 역량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리빙 랩에 참여해 본다면,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 한다는 것이 흔한 네이버 뉴스 덧글란의 생각만큼 쉬운 것이 절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될 수 있다.

4.1. 비판

리빙 랩은 위에서 소개했듯 공모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리빙 랩의 잠재력과 가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데 있어서 공모방식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혹은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최수미(2019)의 문헌을 참고하여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과도한 행정서류 : 공모방식은 기본적으로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공모에 일정한 서류를 갖추어 신청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런데 이것은 평범한 주민들이 적당히 서식 몇 개 출력해서 빈칸 채워서 들고 올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런 일을 자주 해 본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지원을 따낼 수 있지만, 어르신이나 청소년 등 정말로 마을자치 참여가 요구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 오히려 서류접수 과정에서 중도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평소에 이런 걸 하던 사람들만 계속 하게 된다.
  • 일회성 지원 : 대부분의 공모방식은 1년 단위로 진행되며, 여름쯤에는 무엇을 하고 가을쯤에는 무엇을 할지 플로우차트가 암묵적으로 확정되어 있다. 상기했듯이 공모로 진행되는 리빙 랩은 실험의 기간도 촉박하거니와, 2년 이상이 소요되는 (특히 중장기적인) 사업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장기적으로 복잡한 해결을 요하는 문제보다는 단발성이고 당장 가시적으로 성과가 드러나는 문제들 위주로 공모가 진행된다. 이 경우 아무리 주민들이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더라도 리빙 랩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남겨지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세먼지 이슈가 있다. 이런 건 주민들 선에서 1년 정도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제한된 예산활용 : 어쨌거나 국민의 피땀으로 낸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리빙 랩에 지원되는 금액은 엄격하게 그 쓰임이 제한된다. 지원을 받더라도 직접적인 사업비에만 투입이 가능할 뿐, 인건비나 운영비에 보탤 수는 없다. 또한 예상보다 지출이 커지는 경우에도 유연한 대응이 힘들다.
  • 리빙 랩의 특성 불인정 : 리빙 랩 자체가 공모방식과는 맞지 않는 지역현안 해결 방법론에 속한다. 당장 위에서 소개했던 독일의 '장소 찾기' 프로젝트는 국내의 흔한 공모사업의 여건 속에서는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게다가 리빙 랩은 실험성이 있기 때문에 다소간 시행착오적인 면이 있을 수 있는데, 공모사업의 경우 사업기간과 사업목표, 성과지표를 통한 평가가 엄격하게 수행된다. 즉, 리빙 랩으로서는 충분히 성공했지만, 공모사업으로서는 세금낭비를 해 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촉박한 사업기간 : 리빙 랩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려면 전문가들을 포함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그 마을의 연구문제를 엄밀하게 정의하고 장기간의 토의를 거쳐야 하는데, 공모방식의 절차에 맞추어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공모기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기간은 6개월, 실험기간은 그 중에서도 100일 이하로 짧아지게 마련이다. 이는 시행착오는커녕 하나의 방법을 제대로 적용하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결과적으로 문제를 엄밀하게 정의하거나 피드백을 수용하는 등의 숙고의 절차가 누락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 차별성 부족 : 마을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는 주민소모임 활동의 레퍼토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빙 랩은 천편일률적인 마을공동체 사업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리빙 랩으로도 색다른 무언가가 나오지는 못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므로 마을현안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동네에서나 아파트단지 속에서는 늘 층간소음이 이슈가 되고, 다세대주택 단지에서는 쓰레기 배출이 이슈로 떠오르기 때문. 하지만 문제는 리빙 랩을 거쳐서 도출된 해결법조차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마을 이슈들이 반찬나눔(…)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빙 랩을 했는데도 또 반찬만 나누고 있다는 것.

4.2. 로컬 랩

로컬 랩이라는 개념은 서울특별시에서 제시한 것으로, 기존의 리빙 랩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문제는 기존의 리빙 랩 개념조차도 엄밀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 차별화를 하겠다고 '유사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개념을 하나 더 내세워서 뒤섞어 놓았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로컬 랩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2020년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이며, 굳이 정리하자면 사회혁신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보완한 리빙 랩 최신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 가이드북[6] 및 발표자료집[7] 등을 최대한 참고할 경우, 로컬 랩은 행정동 단위에서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주민과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혁신 방법이다.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폴리시 랩(policy lab)이라는 정책적 방법을 리빙 랩에 결합함으로써 지역행정에 특화시켰다고 세일즈되고 있다. 폴리시 랩 역시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은 없으나, 공공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통계적 방법과 질적 연구방법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하기에,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접근법에 더 가깝다.

실제로 많은 마을활동가들이 리빙 랩과의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2019)는 리빙 랩과 로컬 랩을 다음과 같이 대조하기도 했다.
  • 리빙 랩은 신기술 개발 및 개발된 서비스의 실생활 적용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 ...로컬 랩은 여기에 폴리시 랩을 덧붙임으로써 공익적 목적에만 집중하게 했다.
  • 리빙 랩의 참여자들은 '4P', 즉 공적 영역, 민간 영역, 일반인으로 구성되는 파트너십이지만...
    • ...로컬 랩은 민간 영역이 빠지고, 그 대신 전문가 집단이 포함되는 정부-시민-전문가 파트너십을 구성한다.
  • 리빙 랩에서는 혁신 과정에서 '사용자' 들의 참여를 강조하지만...
    • ...로컬 랩에서는 지역현안을 해결하는 주체로서 '시민', 또는 '주민' 이라는 단어가 대신 등장한다.
  • 리빙 랩은 혁신의 기술적 방법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공학적 성격이 있지만...
    • ...로컬 랩은 혁신을 위해 먼저 인간을 관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회과학적 성격이 더 강하다.

로컬 랩 역시 다자간에 모여서 장기간의 공론과 협의를 거쳐 문제를 정의하고 대처방안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리빙 랩의 진행과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리빙 랩과는 달리 기술적인 측면에는 관심이 없기에, 결과적으로 '무엇을 짓자', '무엇을 도입하자' 같은 하드웨어적인 대안보다는 '무엇을 서비스하자', '무엇을 활용하자'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대안이 더 쉽게 도출된다. 특히 리빙 랩이 민간 영역의 참여로 인해 이런저런 기업체들의 신제품 세일즈(…) 기회가 된다는 것과 다르게, 여기서는 이해관계에 무관한 전문가 집단이 구성되어 주민들을 직접 지원한다.

인간 생활을 관찰함으로써만 문제를 정의하기 때문에, 로컬 랩은 필수적으로 마을 현장에서 직접 뛰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직접 살피는 과정이 들어간다. 그 방법론으로서는 보통 참여관찰법이라고 불리는 에스노그라피가 많이 쓰이지만, 마케팅 분야나 인류학에서 자주 활용하는 여러 관찰법들이 추가될 수 있다. 예컨대 가상의 인물의 하루를 시간순으로 묘사하는 페르소나법, 사전 협의된 실제 인물의 뒤를 밟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셰도잉법, 가상의 여러 인물들의 일상을 모사하는 롤플레이법 등이 거론된다.

서울시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로컬 랩 시범사업 성공사례로서는 2018년금천구 독산동강북구 삼양동의 두 지역이 있다. 독산동의 경우 로컬 랩을 거쳐서 마을돌봄(community care) 체계를 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홍보되는데, 이 동네는 그 이전부터 '크리킨디 사업' 이라고 해서 업사이클링 같은 자원순환 분야에서도 이미 유명한 동네이긴 했다. 한편 삼양동의 경우 주거인프라가 부실하고 험한 비탈길도 많은 곳이라 박원순 시장이 한때 한달살이 체험을 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은 로컬 랩을 통해서 골목정비 및 집수리 사업을 담당하는 마을관리소가 설치되었다.

두 사례 모두 상당한 주민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성과이지만, 사실 리빙 랩의 한계와 마찬가지로 아주 '독창적이고 참신한' 해결방법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였음을 보여준다. 마을돌봄 같은 것도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미래 키워드이기는 하나, 사실 이 무렵부터 이미 전국 각지의 지자체들에서는 마을돌봄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복지서비스를 개편하고자 준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신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애써서 거기까지 도달했고 만족스러운 사업을 진행했다는 데서 의의를 찾는 분위기.
[1] 최수미 (2019). '리빙랩' 공모사업 들여다보기. 희망이슈, 48, 1-24.[2] 윤찬영 (2018). 리빙랩(Living Lab)이란 무엇인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3] 송위진 (2012). Living Lab: 사용자 주도의 개방형 혁신모델. Issue & Policy, 59, 1-14.[4] 성지은, 송위진, 정병걸 등 (2017). 국내 리빙랩 현황 분석과 발전 방안 연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5] 행정안전부 (2019). 사례에서 배우는 지역문제해결 리빙랩 가이드북.[6]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2019). 새로운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로컬랩 가이드북.[7] 유창복, 전민주, 김혜신 등 (2019). 동(洞)이 만드는 서울.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발표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