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01:46:15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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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Regnar Lodbrog
영어 Ragnar Lodbrok[2]
한국어 '털반바지' 라그나르

1. 개요2. 전설3. 라그나르의 아내들4. 최후5. 후손들
5.1. 라게르사 계열5.2. 토라 계열5.3. 아슬라우그 계열5.4. 모친을 알 수 없는 자손들
6. 대중문화에서
6.1. 드라마 <바이킹스>

1. 개요

(A.D. ? ~ 864?)

9세기 초중반에 스웨덴덴마크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바이킹 군주이다. 문서 기록을 남긴 것이 없었던 북유럽의 초기 역사가 그러하듯이, 그 역사의 자료가 부족해 전설의 영역에 남아있다. 오늘날 바이킹 이미지의 원조격인 인물이다.

그의 자식들은 상당수가 행적이 불분명하더라도 실존 인물로 여겨지는 것에 비하면 차이가 있는데, 그의 유명한 자식들은 속칭 이교도 대군세(Great Heathen Army)를 통해 브리튼 섬의 앵글로색슨족 왕국들을 갈아버렸던 탓에 교차 검증할 색슨족측의 사료가 꽤 남아있지만, 사가(Saga)에 의하면 라그나르 본인은 브리튼 섬의 노섬브리아 왕국을 털다가 제압당해 별 다른 사료가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문서는 실제 역사라기보단 이러이러한 전설사가에 있다는 정도로 파악해야 한다.

영국의 학자 앤드류 완(Andrew Wawn)의 저서 "바이킹들과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The Vikings and the Victorians, 2000)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들이나 계보학자들은 종종 빅토리아 여왕 혹은 하노버 왕조 자체를 오딘이나 라그나르의 혈통과 연관지으려 했다고 한다.[3] 여기에 매우 심취했던 작가 찰스 킹즐리는, 자신의 소설 "헤레워드 더 웨이크"(Hereward the Wake, 1866)의 등장인물인 기다 백작부인[4]하랄 블로탄[5]의 증손녀, 즉 덴마크 왕족이라는 걸 설명할 목적으로 소설 중간에 가계도를 첨부했는데, 작품의 배경인 11세기의 인물들 뿐만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의 며느리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까지 넣어서 글뤽스부르크 왕조도 하노버 왕조와 마찬가지로 라그나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의 이름 철차는 알파벳이든 한글이든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즉 라그나로크를 연상시키지만 단순히 발음이 겹칠뿐 아무 관계없다.

2. 전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서사시 등을 통해 전승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이 문서는 《라그나르의 자식들의 사가》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사가》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사가에 의하면 라그나르는 문쇠(Munsö) 가문[11] 출신의 시구르드 링(Sigurðr Hringr)[12]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사가에 따라 언급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는데, 아버지 시구르드 링을 다루는 여러 사가들 중 하나인 《스쿌둥 일족의 사가》(Skjöldunga saga)와 《어느 고대 왕들에 대한 사가의 파편》(Sögubrot af nokkrum fornkonungum)에 따르면 현 스웨덴 예테보리 북쪽 지역인 보후슬렌(Bohuslän)[13] 부근의 왕국인 알브헤임[14]공주 알브힐드(Alfhildr)였다고 한다. 또한 《헤르보르와 헤이드렉의 사가》(Hervarar saga ok Heiðreks)에 따르면 마검 티르빙의 소유자로 유명한 방패 여전사 헤르보르(Hervǫr)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당 사가의 가계도를 따르자면 이름값만 겨우 남을 정도로 멀어지긴 했지만 일단은 오딘의 후예이기도 하다.

《고대 왕들의 사가》에서는 라그나르의 외모를 두고 당대 사람들이 만나본 남자들 중 가장 키가 크고 누구보다 잘생겼다고 묘사하며, 그 미모는 요정을 조상으로 둔 모계로부터 물려받았고, 강건한 풍채는 전사 혈통인 부계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전했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서도 잘생기고 키가 큰 것에 더해, 머리가 좋고, 부하들에게는 관대했던 반면 적에게는 무자비했다고 묘사한다.

시구르드 링이 죽자 그는 아버지로부터 덴마크스웨덴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3. 라그나르의 아내들

3.1. 라게르사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라게르사(Lagertha)[15]는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에만 등장하는 '쉴드메이든'(Shieldmaiden)이자 여군주다. 라그나르가 스웨덴 왕에게 죽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르웨이로 갔다가 만난 여전사다.

3.2. 토라 보르가효르트

라그나르가 15살에 맞은 첫 번째 아내(사가) 혹은 라게르사와 이혼한 뒤 새로 맞은 두 번째 아내가(《게스타 다노룸》) 토라 보르가효르트(Þóra Borgarhjǫrtr. Thora Town-hart)였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인해 라그나르는 로드브로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3.3. 아슬라우그

그의 세 번째 아내 혹은 두 번째 아내는 아슬라우그(Áslaug)였는데, 그녀는 본래 영웅인 시구르드발키리 브륀힐드의 숨겨진 딸이었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개별문서를 참고하자.

둘 사이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이바르는 뼈가 무른 기형아로 태어났다. 사가에서는 이를 결혼 이후 3일 동안 관계를 갖지 않고 경건하게 지내야 한다는 아슬라우그의 예언을 라그나르가 무시해서 신벌을 받은 것으로 묘사한다. 한국 한정으로 이 부분을 '라그나르가 아직 미성년자였던 아슬라우그를 강제로 취했고, 그녀의 자궁이 덜 자랐기 때문에 이바르는 기형아로 태어났다.' 고 MSG를 과하게 쳐서 부풀린 버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16] 라그나르에게 자식들과 죽은 아내가 있었으니 둘의 나이 차이는 많이 나겠지만, 그와 별개로 둘이 처음 만났을 당시의 아슬라우그는 아이가 아니라 아가씨나 숙녀로 불리고 있었으니 이미 다 큰 처녀다. 사실 라그나르의 사가 자체가 아슬라우그의 비중이 큰 만큼, 이 에피소드는 《볼숭 사가》를 비롯해 신화 전반에 자주 나오는 "신통력을 가진 자의 예언(혹은 충고)과 이를 무시한 결과 벌어지는 비극" 클리셰이자, 그녀를 띄워주려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바르와 막내인 뱀눈 시구르드가 신체적 특이사항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부모가 둘 다 오딘의 자손이라 일종의 근친교배로 인한 기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둘 다 몇 대는 걸쳐내려온 후손이고, 특히 《헤르보르와 헤이드렉의 사가》에서 유추할 수 있는 라그나르의 오딘 혈통은 오딘→시그를라미→스바플라미[17]→에이푸라→앙간튀르→헤르보르→헤이드렉→앙간튀르→할프단→이바르→알프힐드[18]→란드베르→시구르드 링라그나르로 오딘의 피가 희석되고도 남을 정도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무튼 후계를 굳힌 라그나르는 본격적으로 외정을 나섰다. 사가에 의하면 5,000명의 전사와 120여 척의 서프랑크 왕국파리를 대대적으로 약탈했다. 당시 왕은 샤를마뉴의 손자였던 대머리왕 샤를 2세였는데,[19] 사람들을 포로로 붙잡고 몸값을 요구해 7,000 파운드의 은을 받아냈을 정도였다고 한다.[20]

4. 최후

이후 라그나르는 계속 약탈질을 하며 연전연승했지만, 브리튼 섬을 털다가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앵글로색슨 7왕국 중 하나인 노섬브리아의 해안에 좌초했다. 여기서 라그나르는 노섬브리아의 왕인 앨라 2세(Ælla II)와 생애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라그나르는 생애 처음으로 패배하면서 결국 붙잡혔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 따르면 라그나르는 토라를 구할 때 사용했던 거대한 창과, 아슬라우그가 만들어준 어떤 무기도 꿰뚫을 수 없는 옷을 갖추고 참전했지만 결국 머릿수가 딸리는 바람에 앨라 2세의 노섬브리아 군대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홀로 살아남아 생포당한 라그나르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았고, 이에 앨라 2세는 심문을 위해 그를 뱀굴에 쳐넣었다. 뱀굴에 빠진 라그나르는 무적의 옷 덕분에 처음엔 무사했으나, 옷의 마법을 간파한 앨라 2세가 그걸 벗겨냈고,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던 뱀들은 그 즉시 라그나르에게 달려들어 그를 휘감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21] 라그나르는 죽음을 예감하고 유언을 남겼는데…
"새끼 멧돼지들이 늙은 아비의 죽음을 안다면 어떻게 꿀꿀거릴까?"
헌데 앨라 2세는 라그나르를 죽이기는커녕 생포할 계획이었지만[22] 정작 그 바이킹들 중에서 라그나르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자신들이 생포한 유일한 바이킹이 라그나르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결국 심문 도중에 죽여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뱀굴에 쳐넣은 죄수가 자신이 라그나르임을 밝히기만 하면 바로 꺼내주려 했지만, 라그나르가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23] 죽을 때까지 그곳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24]

라그나르가 남긴 유언을 듣고 그제서야 자신이 처형한 포로가 라그나르임을 깨달은 앨라 2세는 아들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그들에게 전령을 보냈다. 이를 통해 라그나르의 죽음을 안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일으키니 이것이 역사상 이교도 대군세(Great Heathen Army)라고 불리는 바이킹 대침략의 시작이었다.[25]

5. 후손들

5.1. 라게르사 계열

  • 프리드레이프(Fridleif)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딸.
    라틴어식 표기는 프리들레보(Fridlevo). 프리드레이프는 라틴어로 쓰여진 덴마크 역사서 《데인인의 사적》에 레그네루스와 라게르사 사이의 아들이라는 언급에서 나오고, 이후에 오크니 제도를 다스리게 된다. 다만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데인인의 사적》을 제외하면 역사상은 물론이고, 사가에서도 비중을 찾아보기 힘들다.

5.2. 토라 계열

  • 에이리크(Eirikr 혹은 에이렉 Eirek)와 아그나르(Agnar)
    역사상으로는 별 비중이 없지만 전승상으로 이 둘의 역할은 꽤나 비중이 있다. 라그나르와 에위스테인 사이의 우애가 끊어진 틈을 타서[26] 이 두 형제가 스웨덴으로 쳐들어갔다가 살해당해 북유럽에 거대한 내전이 터졌고, 결국 이 분쟁의 결과로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북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둘 다 명망이 높은 바이킹 전사였으며, 아슬라우그의 아들들도 형들이 매년 여름마다 원정을 떠나서 명성을 드높이는 모습을 보고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바이킹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 올뢰브 혹은 알로브(Ólöf, Alof)
    란드나우마보크에만 기록된 토라와의 딸. 잉글랜드의 야를 훈다 스테이나르(Hunda-Steinarr Englajarl)와 결혼해서 비요른과 에이리크라는 아들들을 낳았다. 비요른은 훗날 올라프 2세의 선조가 되며, 에이리크는 올라프 1세(노르웨이)의 선조라고 한다.

5.3. 아슬라우그 계열

  • 뼈 없는 자 이바르(Ivar the boneless/Ívarr hinn Beinlausi)
  • 굳센 비요른(Björn Ironside/Bjǫrn Járnsíða) 혹은 뵤른 요른시다.
    뱀눈 시구르드가 덴마크의 시조라면 이쪽은 중세 스웨덴의 시조였다. 라틴어로 기록된 문서에서는 베르노(Berno)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라그나르의 아들들 중 이바르와 함께 가장 유명하지만, 노르드계 사가와 교차 검증할 앵글로색슨이나 아일랜드쪽 기록에는 이바르, 우베, 할프단과는 달리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라그나르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일단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Ragnars Saga Loðbrókar)와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이야기》(Ragnarssona þáttr)에서는 아슬라우그의 차남으로 나온다. 여하튼 라그나르의 본거지인 스웨덴 지역의 대부분을 상속받았다는 점에서 볼 때 아들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가까운 혈족이거나 아들이 맞다면 살아남은 자식들 중 최고 연장자였을 듯하다.

    다른 형제들이 잉글랜드를 불바다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면, 해스테인과 함께 이탈리아스페인, 그리고 북아프리카를 털어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62척의 배를 이끌고 약탈을 나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인 코르도바의 모스크를 불태웠고, 그대로 이탈리아 반도로 향하여 피사와 루나[27]를 약탈한 후 귀환하다가 코르도바에서 독이 잔뜩 올라있었던 우마이야 왕조의 해군에게 제대로 걸려 대다수의 배를 잃고, 스웨덴으로 간신히 귀환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보물을 약탈했던지 간신히 살아남은 20척 분량의 보물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명성과 부를 얻었다고 한다.

    《헤르보르와 헤이드렉의 사가》에 따르면 굳센 비요른에게는 에이리크(Eiríkr)와 레필(Refill)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그중 에이리크가 비요른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로 이주해서 호프다 해안(Hófðaströnd)에 자리잡고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토르드(Þórðr)라는 후손이 있었다고 한다. 이 토르드는 란드나우마보크에서도 비요른의 증손[28]이자 토르핀 카를세프니의 증조부로 기록되어 있다.

    정체가 굉장히 모호한 면이 있기에 역사학자들은 비요른도 전설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현손[29]'승리왕' 에이리크(재위기간: 970~995)를 스웨덴 왕국과 문쇠 왕조의 시조로 본다. 덧붙여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로 인해 류리크의 장인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류리크의 전승에서 그의 아내로 등장하는 노르웨이의 Efanda[30]가 라그나르의 가문이라거나 비요른의 딸이라는 언급이 없기에 장인-사위 관계는 패러독스 측에서 게임상 편의를 위해 임의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 흰 옷 할프단(Halfdan "Hvitserk" Ragnarsson)
  • 로근발드(Rognvaldr)
    위의 세 형들과 함께 모험을 떠났지만 전투에 참여하기엔 너무 어렸기에 부하들과 함께 배에 남겨졌다. 그러나 형들끼리만 영광을 독차지하도록 둘 순 없다면서 명령을 어기고, 전투에 뛰어들었는데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슬라우그는 로근발드가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기에 발할라에 갔을거라 여기며 크게 비통해하지 않았다.[31]
  • 뱀눈 시구르드(Sigurd "snake-in-the-eyes"/Sigurðr ormr í auga)
    덴마크의 첫 번째 왕조인 크누트 왕조의 시조이자 아슬라우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낳은 아들로, 시구르드가 뱃속에 있을 당시엔 에위스테인의 정치적 공세가 최고조에 달해있었을 때였다고 한다. 에위스테인은 라그나르가 미천한 크라카[32]를 내치고 자신의 딸과 결혼하길 원했기에 수작을 부렸고, 이 모습을 보고 자기들이 모시는 왕이 공주가 아니라 농부의 딸과 결혼한 것을 아쉬워한 부하들의 권유로 인해 라그나르가 흔들리자 크라카는 그제서야 자신이 영웅 시구르드와 발키리 브륀힐드의 딸인 아슬라우그임을 밝혔다. 그녀는 아버지 시구르드의 업적[33]을 상기시키며, 뱃속의 아이에게 그 증거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 말대로 태어난 아이의 두 눈동자 속엔 물결치는 뱀 형상의 모양이 선명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 중엔 PAX6 유전자의 돌연변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는데, 과연 아슬라우그가 그런 걸 알고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혹은 이 '눈속의 뱀'은 안구에 뱀의 형상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시선 자체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즉 볼숭 일족에게 내려오는 일종의 마안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볼숭 사가》에 따르면 시구르드는 맹렬하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를 암살하려던 구토름도 시구르드의 눈을 보고 쫄아서 몇 번이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아슬라우그의 이복여동생인 스완힐드도 아버지로부터 이 마안을 물려받은 덕분에 그녀와 눈을 마주보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간통죄를 저질러 말에 짓밟히는 방법으로 사형당할 때 스완힐드가 눈을 크게 부릅뜨자 말들이 두려워하며 짓밟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 씌워서 시선을 차단시킨 뒤에야 겨우 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혹은 뱀의 눈과 같은 강렬한 세로동공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태어난 직후에 라그나르에게 선물로 금반지를 받지만 정작 시구르드는 금반지를 보더니 거부하듯 고개를 돌려버렸고, 이는 시구르드가 탐욕스러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기에 라그나르는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라그나르가 노섬브리아의 왕 앨라 2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하자 잉글랜드 침공에 합류하여, 앨라 2세를 잔혹하게 처단하는 데 앞장섰는데, 특이하게도 《라그나르 아들들의 이야기》(Ragnarssona þáttr)에 따르면 그 앨라 2세의 딸 블레야(Blæja)[34]를 아내로 맞이했다. 어찌되었든 이때문인지 빠르게 잉글랜드에서 물러난 '뱀눈' 시구르드는 아버지 라그나르로부터 물려받은 스웨덴 남서부와 덴마크 북동부에서 군림했다.
그리고, 그의 손자였던 고름(Gorm)이 장인인 주트족 왕의 지위를 상속받은 후,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던 덴마크도 집어삼켜 '역사속의 덴마크'가 시작되었다.
* 라근힐드(Ragnhildr)란드나우마보크에만 기록된 아슬라우그와의 딸. 그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5.4. 모친을 알 수 없는 자손들

  • 해스테인(Hásteinn)
    라그나르의 모친이 알려지지 않은 아들들 중 한 명으로, 오늘날 바이킹의 이미지를 만든 1등 공신들 중 한 명이다.

    형제인 굳센 비요른과 함께 스페인을 포함한 서지중해를 약탈했고, 심지어는 동지중해의 강국인 동로마 제국을 약탈하기까지 했다. 이때 어마어마한 보물을 약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굳센 비요른이 스웨덴에서 영향력을 다져가는 중에도 해스테인은 방랑벽을 참지 못했다. 866년에는 서프랑크 서부 브르타뉴의 왕 살로몬과 함께 대머리왕 샤를 2세를 공격하여 서프랑크의 북부 앙주 지방을 일시 점령한 적도 있었고, 나중에 이복형제들이 있는 잉글랜드로 넘어가기 전까지인 896년까지는 약탈과 정복을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예 라그나르의 아들이 아니며, 오히려 굳센 비요른의 대부 혹은 절친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 우바 라그나르손(Ubba Ragnarsson/Ubbi Ragnarsson), 일명 우베, 우비, 후바.
    이교도 대군세에 참여해서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을 정복하고 에드먼드 왕을 죽였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를 비롯한 영국쪽 기록에서는 확실히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북유럽쪽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고, 따라서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데인인의 사적》에 우바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는 우보(Ubbo)로 불리고, 레그네루스(Regnerus, 라그나르)가 헤르베누스라는 귀족의 이름 없는 딸과 혼외관계를 맺어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레그네루스는 헤르베누스의 딸과 비밀리에 교제하기 위해 여장까지 불사했는데, 우보는 그런 저열한 짓을 하면서까지 어머니를 탐한 아버지를 경멸했다. 출생의 비밀 탓에 안그래도 부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우보는, 이후 외조부인 헤르베누스의 꼬드김에 넘어가 물리적으로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레그네루스에게 반기를 들지만 패배했다. 헤르베누스는 전투 중에 레그네루스에게 참수당하고, 우보는 구금되지만 결국 레그네루스의 부성애 덕분에 용서받는다. 하지만 《데인인의 사적》에서도 우보의 등장은 이걸로 끝이며, 삭소는 이교도 대군세때 이바루스(Ivarus, 이바르), 비오르누스(Biornus, 비요른), 시와르두스(Siwardus, 시구르드)만 참가했다고 적었기 때문에 이쪽도 역사적 기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 라그나르의 세 딸
    앵글로색슨 측 기록에만 언급되는 라그나르의 세 딸들. 이바르와 우바의 자매들로 셋이서 함께 하루의 정오가 지나기도 전에 큰까마귀가 수놓아진 전쟁깃발(Hrafnsmerki)을 짰는데, 이 깃발에는 전투의 승패를 예언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어서 까마귀 문양이 신나게 날개를 퍼덕이는건 승리할 징조였고, 반대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건 패배의 징조였다고 한다.

6. 대중문화에서

6.1. 드라마 <바이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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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에 위치한 카테가트(Kattegat)[40] 출신의 노르드인으로서 출중한 전투력을 지닌 전사였으며, 평소에는 자작농으로서 자신의 땅을 일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녹색으로 빛나는 눈빛[41]이 강렬하고, 가끔씩 광기가 돋보이는 미소를 드러내곤 한다. 때때로 광적으로 행동하기에 종잡을 수 없지만 어느 누구보다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편이다. 또한 다른 바이킹들과는 달리 격정적이지 않으며, 철저히 상황 판단에 우선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원래는 노예로 데려왔던 애설스텐을 존중하며,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나 종교에 강한 흥미를 드러내고 앵글로색슨족의 언어 또한 적극적으로 배운다. 시즌 3 중반 파리 침공을 계획하는 연회에서 했던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탐험하는 것도 좋지만, 지식을 갖고 탐험하는 것은 더 좋다."
라는 발언은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라그나르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작중 인물들 중 왕의 지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며, 라그나르의 성품들은 훗날 그 아들들이 강하게 물려받게 된다.
라그나르는 어느 날 우연히 한 여행자로부터 서쪽에 있다는 미지의 나라 잉글랜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곳으로 향하는 항해법을 전수받게 된다. 그래서 카테가트의 회의에 참여하여 가난한 동쪽 대신 서쪽으로 원정을 떠나자고 주장하지만 자기 권력의 안위를 중요시하던 영주 하랄드손 백작에 의해 의견이 묵살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라그나르는 백작 몰래 동료들을 모아 항해를 떠나고 이를 성공시킨다. 비록 하랄드손 백작에게 원정대의 전리품을 대부분 몰수당했지만 그보다 값진 명예를 누리게 된다. 또한 첫 번째 원정에서 노예로 데려온 애설스탠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원정에서 얻은 명예 때문에 하랄드손 백작의 시기를 받게 되며, 이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제2차 원정에서 백작의 의형제였던 크누트[42]가 라그나르의 아내인 라게르사를 욕보이려다가 역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이를 빌미로 원정에서 돌아온 라그나르는 반역자로 몰리게 되어 영지가 파괴당하고, 자신 또한 중태에 빠져 플로키에게 몸을 의탁해야만 했다. 하지만 목숨은 계속 위협받았기에 라그나르는 덜 회복된 몸으로 하랄드손 백작에게 결투를 신청[43], 치열한 접전 끝에 백작을 무찌르는 데 성공하며 원치않았던 백작 자리를 얻게 된다.

카테가트의 백작이 되면서 라그나르는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편할 날은 없었다. 백작이 된 후 덴마크 왕인 호릭[44]이 찾아와 자신과 적대하는 예탈란드의 백작 보르그를 토벌할 것을 의뢰했다. 아무래도 호릭 왕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승낙하나, 하필이면 라그나르의 동생 롤로가 보르그의 회유에 넘어가 그를 배반했고, 결국 라그나르-호릭 연합군과 보르그-롤로 연합군 간의 무력 충돌이 한 차례 벌어지고 나서야 보르그와 협상을 맺고 롤로를 다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45]

이후 호릭 왕과 연합하여 웨식스 왕국을 침공하고[46], 그곳에서 에그버트 왕과 평화조약[47]을 맺지만, 이는 호릭 왕과의 상의없이 이루어진 것이어서 왕의 불신을 사고 말았다.[48] 곧 호릭 왕의 제멋대로인 행동 때문에 재협상이 결렬되었고, 결국 웨식스와 노섬브리아 연합군의 총공격과 더불어 라그나르와 호릭의 전술 견해 차이 때문에 대패하고 만다. 또 한편으로 본토에서는 보르그 백작이 질투심으로 카테가트를 침공하여 점령한 탓에 라그나르는 재빨리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카테가트로 돌아온 라그나르는 라게르사가 끌고 온 군대와 연합하여 보르그를 격퇴한다. 그리고 보르그를 회유하는 척하며 함정으로 끌어들여 생포한다. 이후 호릭 왕이 생포된 보르그와 접촉하여 눈엣가시나 다름없던 라그나르를 공격할 것을 모의하나, 이미 첩자로 심어둔 플로키 덕분에 그 계획은 들통나고 만다. 보르그는 얼마 안 가 피의 독수리 형벌로 처형되었고, 호릭 왕도 얼마 안 가 라그나르의 기습으로 처절한 사투 끝에 살해되고 만다.

시즌 3가 되어 바이킹 세력을 다시 규합한 라그나르는 잉글랜드로 재차 원정을 떠나 그곳에서 이전에 맺은 조약을 관철시키기 위해 크웬트리스 공주를 도와 머시아를 공격해 성공으로 이끌고, 원래 조약대로 웨식스의 영토 일부를 바이킹들이 경작할 땅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에그버트 왕은 라그나르와 바이킹들이 떠나자마자 그곳을 불태우고 바이킹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이 대학살에서 겨우 생존자 한 명이 살아 돌아와 라그나르에게 알렸지만 라그나르는 이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생존자를 살해했고, 대규모 파리 원정에 나선다. 시즌 3 마지막에서는 제1차 파리 공성전때 입은 부상으로 힘들어하기도 했으나 계락을 써서 파리를 약탈하는 데 성공하고[49] 현지 책임자로 롤로를 남겨두며 고향으로 돌아간다.[50]
시즌 4에서는 발할라로 가는 문을 앞두고 환희에 차서 나아가나 코앞에서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는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승세만을 달리던 그의 인생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 이를 반증하듯, 시작부터 비요른과의 결별, 롤로의 배신, 아슬라우그의 권력욕 표출과 같은 악재가 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두가 준 약에 중독되어 반쯤 폐인이 된 상태이다. 제2차 파리 공략전에서는 제1차 전투때, 센 강 하구의 요새와 철쇄, 그리고 롤로의 지휘로 인해 대패했고[51], 제2차 전투때는 산 너머로 배를 운반해 요새와 철쇄를 넘어 강의 상류로 침입하는 대작전을 실행했지만 이조차도 롤로가 이끄는 프랑크 수군에 의해 저지된다. 라그나르는 이 제2차 파리 원정의 실패로 몇 년간 방황하며 카테가트를 떠난다.[52]
이후 11화부터는 방황 끝에 돌아온 카테가트에서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모욕을 받고 있다.[53]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에게 다시금 잉글랜드로 원정을 떠나자고 해보지만, 장남인 비욘은 아버지인 라그나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자신이 함대를 이끌어 지중해로 떠날 계획을 세웠으며, 빗세르크와 플로키는 이미 롤로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상태였고, 우바와 시구르드는 어머니인 아슐라그와 카테가트를 지켜야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라게르사에게 찾아가 요청해보지만 그녀 또한 거절을 하게 되고,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암시하는 말을 하고 떠나간다. 그렇게 카테가트로 돌아가는 도중 나무에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하자[54]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바르, 그리고 남은 늙은 전사들을 데리고 웨식스로 다시 한 번 레이드를 떠난다.[55] 폭풍으로 인원의 대부분이 죽고, 일부만 표류해 웨식스에 도달하지만 남은 인원마저 전부 죽이고, 아들 이바르와 함께 웨식스에 당도해 스스로 체포당한 뒤 에그버트 왕을 마주한다. 이후 에그버트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북쪽의 노섬브리아로 보내달라고 말한다.[56] 결국 에그버트와 라그나르의 약속에 따라 이바르는 카테가트로 돌아가게 되고, 라그나르는 전투에서 패배해 잡힌 실제 역사와는 달리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희생양으로 자신을 내주게 된다. 애초부터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어서 원정에 도움은 커녕 짐이 될 이바르를 데려간 것 또한 오히려 그는 불구이기에 위협이 되지 않아 보일 것이고, 그래서 살아 남을테지만 불구일지라도 아들들 중 가장 잔혹하고 똑똑한 이바르에게 자신의 최후를 보여주고 복수를 당부하기 위해 데려간 듯 하다.
결국 전승대로 노섬브리아의 왕 앨라 2세에 의해 죽는다.[57] 앨라 2세에게 가기 전 이바르에게 자비 따윈 없다며 앨라 2세는 물론이고 에그버트까지 모조리 갈아버리라고 마지막 명령을 남긴다. 이후 죄를 고백하라는 앨라 2세의 마지막 말에
"발할라에 가는 영웅들은 결코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라는 간지폭풍의 연설을 남기고 발할라로 간다.[58]
라그나르의 사후 그의 아들들이 대군을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략하니, 이것이 역사에 남은 이교도 대군세(Great Heathen Army)였다.


[1] 아슬라우그와의 만남(좌), 용을 물리치고 토라를 구한 일화(우), 마지막으로 하단에는 뱀에 휘감겨서 죽어가는 멧돼지와 그를 향해 달려오는 새끼 멧돼지들이 그려져 있다.[2] 또는 Lothbrok라고도 한다. 드라마 <바이킹스>에서는 이쪽을 채용했다. 발음은 로드브로크가 아닌 로스브로크에 가깝다.[3] 사가에 기반한 가계도인데다, 너도나도 오딘이나 라그나르의 후손이길 자칭한지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대충 살펴보자면 라그나르와 토라의 딸 올로브(Ólöf)에게는 아우둔(Auðunn skökull Bjarnarson)이라는 손자가 있었으며 그의 현손이 바로 올라프 2세인데, 이 올라프 2세의 딸 울브힐드가 작센의 공작 오르둘프와 결혼해서 빌룽 가문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손녀 울프힐트가 벨프 가문의 하인리히 9세와 맺어졌고 둘의 후손들을 통해 하노버 왕가로 이어졌다고 한다.[4] 귀타 토르켈스도티르(Gytha Thorkelsdóttir)라는 실존 인물이며 해럴드 2세의 어머니다.[5] 마찬가지로 전설상으로는 라그나르와 그의 또다른 아내인 아슬라우그 사이에서 태어난 뱀눈 시구르드의 후손이다.[6] 'þáttr'라는 것은 본래 '줄의 가닥'을 뜻하는 말로, 아이슬란드에서 13~14세기에 쓰여진 짧은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이다. 사가(Saga)에 포함되는 장르이기에 사가라고 번역했다.[7] 12~13세기 덴마크의 역사가이자 신학자이며, 작가였던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에 의해 저술된 역사서로, 10세기 이전 북유럽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8] 스칼드(Skald)라 불리는 북유럽의 음유시인들이 불렀던 시로, 라그나르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북유럽의 영웅들을 칭송하는 시이다. 라그나르를 비롯해서 여러 왕을 섬긴 궁중 스칼드 보디의 아들 브라기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며, 스노리가《신 에다》를 작성하면서 이 시들 중 일부를 수록해두었다.[9] 그러나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신 에다》의 한국어 번역본은 브라기가 지은 시들을 대부분 번역하지 않았다. 게르만 신화와는 큰 관련이 없고, 한국인들에겐 너무 낯선 소재인지라 생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스칼드 브라기가 이런 시를 지었다~' 라고 운을 띄워놓고 무슨 시를 썼는지는 보여주지 않은 채 넘어가버리며, 덩달아 라그나르를 언급하는 부분도 모조리 생략했다.[10] 제목은 《까마귀의 담시(譚詩)》라는 뜻이다. 노섬브리아의 뱀굴에서 죽어가는 라그나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독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12세기 노르웨이 지배하의 스코틀랜드나 오크니 제도에서 작곡된 걸로 추정된다고 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라그나르의 모험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크라카(Kráka)는 라그나르의 둘째 혹은 셋째 아내이며 이 시에도 언급되는 아슬라우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해서 그녀가 라그나르의 사후에 지은 추모시를 컨셉으로 한게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반대로 까마귀는 그 자체로 죽음과 전쟁의 상징이고, 시의 배경이 라그나르의 모험과 죽음을 그리고 있어서 저런 제목이 붙은 것이지, 딱히 아슬라우그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시의 라그나르는 자신을 나(ek) 보단 우리(vér)로 칭하는데 이건 신분이 높은 자가 스스로를 자칭하는 방법(=장엄복수형)이었다고 한다. 작중에서 라그나르의 51번의 승리를 언급하는데 이걸 바탕으로 라그나르의 모험들 중에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유실된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11] 이 시기 즈음 스웨덴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가문이다. 스웨덴의 첫 번째 왕가이기도 하다.[12] 국내의 바이킹 시대 관련 전설을 다룬 게임(<페이트>, <크루세이더 킹즈> 등) 커뮤니티 등지에 시구르드 링의 '링'(Ring)이 안드바리의 반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해놓은 글들이 종종 돌아다니지만 이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다. 아무래도 동명이인인 영웅 시구르드와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안드바리의 반지 때문에 혼선이 일어난 듯 하다. 그런 글들 때문에 그 시구르드와 이 시구르드가 동일인물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다시피 가문도 다르고 사가에서의 행적도 겹치지 않는다. 시구르드 링이 주인공이었던 사가들이 많이 유실되는 바람에 이 '링'이라는 별명이 어디서 유래된 별명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원본이 되는 인물로 추정되는 덴마크 왕 시그프레드와 아눌로(Anulo, 라틴어에서 '고리 혹은 반지'를 뜻하는 annulus와 유사함)의 이름을 합친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이 존재한다. 혹은 '사슬갑옷의 고리'를 의미하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13]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베스트라예텔란드 주(Véstra Götalands lén)의 해안가 지역이다.[14] 고대에 실존했던 지명이며, 북유럽 신화 속 빛의 요정들이 사는 알브헤임과는 다른 곳이다. 다만 《토르스테인의 사가》(Þorsteins saga Víkingssonar)에서는 이곳의 왕이었던 '노왕' 알브(King Álf the Old)의 후손들이 모두 요정을 조상으로 두었다고 묘사했으며, 다른 문헌에서도 알브의 후손들은 (아마도 요정 유전자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외모가 잘 빠졌다는 식의 언급이 나오긴 했다. 참고로 이 노왕 알브는 후술할 알브힐드의 증조부라고 한다.[15] 노르드식 이름이 아니라 '흘라드게르드'(Hlaðgerðr)라는 이름의 라틴어식 표기다.[16] 최초의 출처는 불명이나 라그나르에게 인내를 요구했으나 무시당했고 그 결과 기형아가 태어난 일을 나름대로 현실적으로 해석해보려는 시도였던듯 하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따지자면 정반대인게 기형아는 오히려 노산으로 인해 태어날 확률이 높다.[17] 판본에 따라 시그를라미와 스바플라미 부자를 한 인물로 보기도 한다.[18] 다른 사가에서는 깊은 마음의 아우드[19] 물론 이 시기 북쪽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바이킹의 약탈이 있긴 했지만, 파리가 털린 일은 없었다.[20] 이것이 바이킹의 약탈을 막기 위해 서유럽 국가들이 바이킹에게 바쳤던 공물인 데인겔드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바이킹의 약탈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물을 바쳤지만, 이는 바이킹의 약탈이 더 기승을 부리게 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21] 전체적인 흐름이 《에다》나 《볼숭 사가》에서 아틀리가 군나르를 심문하다가 뱀굴에 빠트려 죽이는 스토리와 매우 흡사하다. 이 전승이 《라그나르의 사가》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다.[22] 라그나르가 죽으면 그의 아들들이 복수하러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23] 포로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해서 발할라에 가길 원했던 것 같다. 애초에 잉글랜드에 온 이유도 아들들이 범접하지 못할 명예를 얻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다.[24] 사진이나 통신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앨라 2세가 라그나르를 못 알아본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신원 파악을 못했어도 거대한 창과 마법의 옷이라는 비범한 무구들을 가지고 있었고,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전사였는데, 만일을 위해 평범한 감옥에 가두거나 다른 용도로 써먹는 등의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고 고문을 강행하다 죽여버린건 명백한 실수다. 앨라 2세가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복수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그 점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25] 사가에서는 앨라 2세가 바이킹의 침략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도 했고, 이바르도 "아버지가 고집을 부린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니 난 앨라 왕에게 악감정이 없다." 라고 핑계를 대며 참전하지 않았기에 초반엔 노섬브리아 측이 우세했다. 자세한 것은 이바르 문서를 참고. 그러나 끝내 그 이바르에게 뒤통수를 맞고 라그나르의 아들들에게 붙잡힌 앨라 2세는 피의 독수리형이라는 처형법으로 끔살당했다.[26]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이야기》에서는 둘 사이의 불화는 없었지만(오히려 라그나르가 아들들을 제어하기 위해 에위스테인에게 스웨덴의 통치권을 넘겨줬다.) 호시탐탐 스웨덴을 노리던 에이리크와 아그나르가 라그나르가 발트 해쪽으로 원정을 나간 틈을 타서 침공했다.[27] 제노바 지역의 해안 도시로, 이곳이 로마인 줄 알았다고 한다.[28]붉은 머리 에이리크의 사가》(Eiríks saga rauða)에서는 가계도에 Áslákssonar라는 비요른의 아들이 추가되어서 현손이다.[29] 손자의 손자[30] =잉그리드 혹은 에드위나(Edvina)[31] 혹은 형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전장으로 돌격했다가, 그 우려대로 죽어버린 성급한 성격 때문에 더 살아봤자 사고만 쳤을테니 차라리 그렇게 전사라도 한게 다행인거 아니냐는 식의 해석을 하기도 한다.[32] 그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농부의 자식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다.[33] 파프닐을 살해한 것.[34] 헬레나나 헬루나(Heluna)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블레야가 노르드식 이름인지라 본명은 헬레나였는데 시구르드와 결혼한 뒤 노르드식으로 개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있다.[35] 올드 갓 시나리오에서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자신은 이미 죽은 상태이고, 그의 아들들이 이미 잉글랜드에 상륙한 867년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올드 갓의 100년 전인 샤를마뉴가 나온 후에는 그의 아버지인 시구르드 링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라그나르는 두 살이라서 그로 플레이하려면 한참 걸리며 운이 나쁘면 승계받기 전에 죽기도 한다.[36] 라그나르 사후의 시점이고, 이바르, 할프단, 시구르드, 비요른, 헤스테인이 각각 군주로 등장하며 우바는 하프단의 부하로 등장한다.[37] 원래는 아슬라우그만 있었으나 이후 패치로 추가된 듯 하다. 본인의 자식인 프리드레이프와 두 딸은 구현되지 않았다. 공정한, 끈기있는, 용감한을 고정 트레잇으로 가지고 있으며 유전 트레잇으로 건강함을 가지고 있다.[38] 이바르, 우바, 하프단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시구르드는 이름만 잠깐 언급된다.[39] 버서커의 원래 의미를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클래스. 다만 보구를 해방하지 않은 상태의 광화랭크는 E에 불과하다.[40] 카테가트는 해협의 이름이고, 정확한 지역명은 명시되지 않았다. 굳이 따져보자면 당시 스카니아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서부 해안가는 데인족의 땅이었고, 스웨덴족(기트족+스베아족)이 주도권을 쥔 지역은 비켄 지역이었다. 시즌 1 2화에서도 항로를 정서 방향으로 잡고 도착한 곳이 노섬브리아였으니 대충 위도상으로도 이 지역이 맞다. 비켄 지역은 사가 상으로는 라그나르의 외조부가 왕으로 군림하던 지역이었다.[41] 시즌 2 마지막에 호릭 왕을 죽인 뒤, 스스로 왕이 되어 절벽에 왕의 상징인 보검을 쥐고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선명한 푸른 색으로 CG 처리된 눈빛 때문에 국내 커뮤니티에선 리치왕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많았다.[42] 다만 '친부의 사생아'란 말은 라그나르의 죄를 가중시키기 위한 거짓말에 가깝다.[43] 거기에 하랄드손이 친형제인 롤로를 고문하며 라그라르의 위치를 알아내려하고 있었다.[44] 실제 역사상으로도 뛰어난 전사였지만 매우 잔혹한 성정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버지 -혹은 친척-인 데인족의 왕 고드프레드가 카롤루스 대제와의 회담을 위해 가던 중 아헨 근처에서 암살당했을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은 전력이 있다. 그후 사촌과 동생들을 전부 잡아죽이고 데인족의 왕이 되었으며, 노섬브리아 왕 앨라 2세에 의해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사망하자마자 그 추종자들을 숙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과정에서 숙청을 피해 서프랑크로 망명한 라그나르의 추종자들이 그리스도교(가톨릭)로 개종하여 동족들의 약탈을 막는 최선봉에 섰고, 이렇게 인정받은 그들은 나중에 귀순한 노르망디 공 롤로처럼 노르만족이 서프랑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롤로와 함께 귀순했다는 기록이 없는 오트빌 가문, 드렝겟 가문 등 노르만족 명문가들의 시조로 추정된다. 참고로 호릭 왕 역시 자기가 열심히 저지른 친족 살해의 죄값을 친족의 칼로 치렀다. 그러나 《앵글로색슨 연대기》, 《바이킹 사가》 등에서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앨라 2세에 의해 처형당한 이후 그의 아들들이 이교도 대군세 불리는 바이킹 군단을 이끌고 노섬브리아 왕국을 비롯한 잉글랜드 전역을 휩쓸어 데인로를 건설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의 아들들이 복수전을 감행할 정도의 세력이라면 라그나르의 반대파들이 애초에 그 아들들을 비롯한 추종자들을 숙청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자세한 내용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문서 참조. 굳이 따지자면 당시 덴마크와 스웨덴은 별개의 나라였고, 덴마크 내의 라그나르의 추종자들은 호릭 왕 입장에서 보면 예비 반란군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라그나르의 영향력이 막강했기에 참았다가 바로 터뜨렸다고 보면 될 것이고, 당시 덴마크는 카롤루스 대제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 프랑크 왕국과 협상할 정도의 국력을 갖춘 만만치 않은 나라였다. 잉글랜드를 치러 가면서 또 다른 강적을 두는 건 아무리 라그나르의 아들들이라 해도 굉장히 부담이었다. 라그나르 관련 기록은 전부 사가(saga) 출처이고, 덴마크도 사가와 프랑크 왕국 측 기록이 섞인 것이 내려오는데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많다. 또한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 호릭은 전설 속 라그나르의 모델이 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추측되기도 한다.[45] 이 과정에서 라그나르의 충신이었던 아르네가 롤로의 창에 꿰뚫려 죽는다.[46] 본래 처음 갔었던 노섬브리아로 다시 가려 했으나 도중에 만난 풍랑으로 길이 벗어나 도착한 곳이 웨식스였다[47] 조약 내용은 바이킹 백성들이 농지를 일굴 수 있는 영토를 떼어주는 것이었고, 크웬트리스 공주와 함께 머시아 공격에 참여할 전사들은 대가를 받고 용병으로 남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바이킹스럽지 않은 라그나르의 원대한 꿈이 드러나는데 춥고 가난한 백성들이 기름진 잉글랜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게하는 것이 애초 브리튼 섬 원정의 목적이었다.[48] 만일을 위해 라그나르는 호릭 왕 곁에 첩자로 플로키를 보내두게 된다.[49] 부상이 심하긴 했지만 이를 역이용해 죽어가는 척을 했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척까지 하며 서프랑크군은 물론 측근들까지 완벽하게 속인다. 자신이 죽으면 파리에서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서프랑크측에 부탁했고, 서프랑크가 이를 받아들이자 관 속에 들어가 파리 성당 내부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뒤 장례 미사 중 관에서 나와 기슬라 공주를 인질로 끌고 가서 성문을 연 뒤 바이킹군이 성내로 침입하게 한다.[50] 하지만 이때 입은 부상과 겹쳐 친구인 애설스턴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파리 침공의 실패로 인한 좌절로 심신이 급격하게 망가지기 시작한다.[51] 강 하구에 요새를 새로 짓고 철쇄로 배의 침입을 막는 전략을 건의한 것 또한 누구보다 바이킹의 공격 패턴을 잘아는 롤로였다.[52] 이두가 준 환각성 약물에 대한 금단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방랑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53] 이에 대한 이유는 제2차 파리 원정에 대한 실패보다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웨식스 이주가 완전히 실패했고, 게다가 웨식스군이 그곳에 이주한 바이킹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백성들이 알 경우 이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숨긴 것이 탄로가 나버렸기 때문이다.[54] 이때 까마귀들이 줄을 끊어내는데, 까마귀들은 오딘의 전령이다. 즉 주신 오딘이 그를 살린 것이다. 오딘은 라그나로크를 대비해 군대를 모으는데, 이 방법은 전쟁을 일으켜 전사의 혼을 모으는 것이다. 즉 오딘이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죽자 오딘이 직접 그의 아들들에게 나타나 라그나르의 죽음을 알렸다. 라그나르가 돌아오자 예언자가 혼란과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즉 라그나르는 오딘의 뜻에 따라서 잉글랜드로 갔다는 뜻이다.[55] 나라의 젊고 용맹한 전사 대부분은 롤로와 함께 지중해 원정을 떠났다. 이것부터가 이미 라그나르의 잉글랜드 원정은 자살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라고 보여진다.[56] 이때 에그버트는 이전까지 항상 남들을 속이고 이용해 온 냉혈한의 모습이 아니라 라그나르를 애증의 라이벌, 그리고 친구로서 자신은 죽이지 못하겠다고 한다. 노섬브리아로 가게 되면 그에게 원한이 있는 앨라 2세에게 비참하게 죽을게 뻔하니 차라리 풀어주겠다는 말까지 한다. 본인이 인정한, 그리고 본인과 비슷하고, 또 에설스턴과의 우정을 공유한 라그나르를 적을 넘어 친구로까지 느끼게한 듯 하다. 그리고 라그나르의 마지막 요청인 아들 이바르의 안전한 귀환도 약속한다. 절름발이라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지도 않아보이기도 하고 라그나르의 마지막 요청인지라 받아들이면서도 역시나 그답게 답례는? 하고 물어보는데 라그나르는 이바르에게 에그버트는 자신을 살리려했고, 모든 복수는 앨라 2세에게 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의 통수를 치고 이바르와 헤어지기 전에 라그나르는 에그버트와 앨라 2세 모두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라고 당부하며 떠나보낸다.[57] 기록된 대로 독사 구덩이에 떨어져 죽었다.[58] 이때 애설스탠의 사제복을 입고 찾아 온 에그버트가 그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고, 죽은 후에도 뱀구덩이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다. 라그나르는 에그버트 자신과 닮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같은 존재이자 애설스탠과의 강력한 유대를 가진 존재였다. 그러한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 자신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그를 사형장까지 이끈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 시즌4 18화에서 애설울프와의 대화에서 라그나르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길 그의 죽음에서 성령을 보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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