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6:19

할프단


1. 전설적인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
1.1. 생애1.2. 대중매체에서
2. 《빈란드 사가》의 등장인물

1. 전설적인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

1.1. 생애

전승에 의하면 할프단 라그나르손(Halfdan Ragnarsson)은 위대한 바이킹 군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로, 형제들과 함께 브리튼 섬의 앵글로색슨 7왕국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 준 인물이었다.(이교도 대군세)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그대로 잉글랜드에 눌러앉았는데, 요르비크[1]와 아일랜드 섬의 더블린 지역을 지배했다고 전해진다. 형인 약골 이바르가 사라진 후에도 앵글로색슨족의 왕국들을 강력한 군세로 압박했으며, 871년 웨식스 왕국의 명군 알프레드 대왕과 제대로 맞붙은 애쉬다운 평원 전투에서 패배하여 잠시 주춤했으나 서로 간에 협정을 맺고, 874년 머시아를 정복했다. 그라고 할프단은 사망할 때까지 웨식스와 머시아 나눠먹기에 골몰했다.

사가에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휫세르크(Hvitserkr)와 동일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할프단과 휫세르크가 한 문헌에 동시에 기록된 적이 없고, 휫세르크가 인명보다는 "하얀 셔츠"라는 칭호나 별명에 더 가깝기에, 안그래도 흔한 이름인 할프단보다는 칭호를 주로 부르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게 그 이유이다. 이 '하얀 셔츠'라는 별명의 유래는 그가 유독 청결함을 유지했다는 설과 아예 흰 옷만 입고 다녀서 그렇다는 설, 혹은 그와 함께 정복활동을 이어나가다가 애쉬다운 평원 전투에서 전사한 바이킹 지도자(Bagsecg)와 합쳐져 하나의 인물로 인식되면서 별명으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역사상 할프단은 아일랜드의 스트랭퍼드 호수에서 전사했고, 전설속의 휫세르크는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복수를 마치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돌아와 약탈을 하다가 동쪽의 가르다리키로 나아갔다고 한다. 휫세르크는 그곳에서 루스인들과 싸우다가 붙잡혀서 처형당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소원으로 장작 대신 자신이 죽인 루스인들의 잘린 머리에 불을 붙여서 화형당하길 원했고 그렇게 죽었다고 한다.
게임인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는 키예프(키이우)를 처음 건설한 공동 지도자들인 아스콜드와 뒤레(Askold and Dyre) 중 뒤레를 할프단의 사생아로 설정했다.[2] 다만 뒤레가 할프단의 사생아라는 전승이나 기록은 없으며 오스킬드라는 가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오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의 학자인 Leontii Voitovych는 휫세르크가 아스콜드와 동일인물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고 한다.

1.2. 대중매체에서

1.2.1. 미드 <바이킹스>에서

2.빈란드 사가》의 등장인물

Halfdan

만화 《빈란드 사가》의 등장인물. 성우는 시모야마 요시미츠. 1번의 할프단과는 이름만 같다. 사실 할프단(Halfdan) 이라는 이름이 노르드 이름으로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닌데다 유키무라 마코토 자신이 작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으로 역사에 전해지는 유명한 노르드 인명을 많이 가져다 썼기 때문에 그냥 말 그대로 동명이인인 셈이다.

토르핀의 고향 마을 인근에서 가장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 쇠사슬 할프단이라고 불리는 강한 전사이기도 하다. 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약속한 시일내로 갚지 못하면 채무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채무자 본인은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등의 행동으로 다른 이들에게서 피도 눈물도 없다는 평가를 자주 듣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가난한 어부의 딸이었다는 과거를 감안해 보면, 의외로 젊을 때는 사랑에 불타는 성격이었을 수도...

본인의 말에 의하면 남자들의 긍지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워서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다른 이의 실패를 보며 즐거워한다는 발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다르게, 그 아들 시구르드와 빚을 못갚아 소작농이 된 사람, 노예들[3]의 반응을 보면 일단 1권에서 처음 등장할 때의 인상과는 다르게 사람 자체는 악당은 아니다. 외양 자체도 무척 중후해졌고. 아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주변 지역에서는 악명높은 재산 강탈 수법에 당한 당사자들이 하프단 밑에서 일하면서는 만족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확인할 점은 할프단은 보통 창작물에 등장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처럼 필요 없다는 돈을 억지로 빌려주거나, 거래 조건을 속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출을 해주기 전에 원금과 이자를 확실하게 정하고, 3자를 통한 공정한 계약을 맺는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거래 조건대로 땅을 거둬들이고 상대를 예속민으로 삼는다. 그리고 자기 밑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제법 후한 대우를 해 준다.

이런 캐릭터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덮어놓고 착하다 어떻다 하기는 곤란하다. 산업과 경제 구조가 복잡해진 현대를 살고있는 현대인의 기준에서야 남에게 고용되어 일한다는 게 부끄러워 할 일도, 흉거리도 아니지만 당시 바이킹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자유인'이란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씨족(클랜)에 속해서 스스로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가족이나 클랜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은 일종의 예속민(자유민과 노예의 중간 정도)로 여겨졌던 것. 하다못해 초빙을 받아 손님으로 가거나 자기 발로 일하러 간 것도 아니고 빚 때문에 잡혀서 일하는 처지라면 예속민 중에서도 더욱 노예에 가까운 처지였던 것이다. 즉 할프단의 채무자들이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의 긍지'란 무슨 현대의 바보들마냥 헛바람이 들어서 '싸나이가 남 밑에 들어가서 일하게 생겼냐!'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제가 엄존하던 사회에서 자유인으로써의 신분을 뜻하는 것이라 보어야 한다.

물론 할프단의 경우 어디까지나 양자의 동의 하에 이뤄진 계약의 이행을 요구한 것이니 당대의 기준으로도 잘못으로 받아들질만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고, 할프단과 거래한 상대들 역시 (보르처럼) 남자의 긍지(자유인의 긍지/신분)을 스스로 지키는 대신 그것을 걸고 거래를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니 당대의 기준으로도 그 긍지/신분을 잃은 것이 자업자득으로 받아들여질 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자기 책임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예속민으로 전락하다니 안됐다" 정도의 동정은 받을 만 한 처지였던 것이고, 따라서 빚을 갚지 못한 자들을 가차없이 예속민으로 만들어버린 할프단의 행동 역시 "잘못된 행동은 아니지만 가차없고 냉정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나올만한 것이지, 이걸 무슨 '헛바람 든 바보들을 살려주려고 하는 착한 츤데레짓'으로 해석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자기에게 속한 예속민이나 노예들을 대하는 할프단의 태도를 보면 의미없이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일만 하면 살만한 대접도 해 주는 것으로 볼 때 불합리하거나 악독한 인물이 아닌 것은 맞지만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가차없음을 보여주는 인물인것도 맞는 것.[4]

다만 이런 성격 설정은 초반에는 없었다가 재등장 이후에 정립되었거나, 나이를 먹은 후에 유해진 결과물일 수도 있다. 한참 젊을 때인 1권에서의 모습을 보면, 노예가 붙잡혀 죽을 각오를 하고 도망칠 정도로 대우가 혹독하며 붙잡은 노예는 도망치다 붙잡히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로 다른 노예들 앞에서 고문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멋대로 구는 부하를 쇠사슬로 구타하여 중상을 입히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대놓고 돈 주고 사온 노예와 빚을 져서 땅을 빼앗겼을 뿐인 예속민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고, 법과 질서를 모독하는 행동을 눈 감아 주지 않는 성격 탓이라고 하면 설명은 되지만...

구드리드와 시구르드의 정략결혼을 통해 빈란드 진출의 교두보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토르핀처럼 나라를 세워 정착할 생각은 없고, 빈란드의 목재를 가져다 아이슬란드에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려는 생각. 실제로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은 빈란드에서 목재를 구해다가 사용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냉철하고 가차 없는 외양 뒤에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아들 시구르드가 독립하겠다고 하자 겉으로는 악귀처럼 분노하면서 쇠사슬을 휘둘러까지 막으려고 하지만, 결국 못 이기는 척 보내주면서 강인한 사나이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남몰래 대견해한다. 뒤돌아선 채 슬며시 짓는 미소는 이전의 할프단에게선 생각조차 어려운 모습.

빚진 자영농의 토지를 가차없이 빼앗으면서도 그들을 나름대로 후하게 대우하는지도 아들과의 싸움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가문 아래 아이슬란드 전토를 통합해 그 힘으로 대륙을 약탈하여 황량한 아이슬란드의 가난을 끊어내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대륙의 보복을 초래할 뿐이라고 반론하는 시구르드에게 분노에 차 "아이들의 절반이 죽는다! 그걸 그냥 받아들이란 말이냐!"라고 내지르는 할프단의 외침은 그가 (무척 바이킹적인 방식이지만) 나름대로 아이슬란드라는 공동체의 공익을 생각하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토르핀 일행의 귀향에 이르러서는 아예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신부 납치(혹은 탈주) 사건으로 체면에 가장 큰 손상을 입은 것이 할프단 본인임에도 토르핀이 그의 몫으로 가져온 일각고래 뿔 판매대금으로 토르핀과 구드리드의 혼례 잔치를 열어준다. 토르핀이 돌아오면 그를 도와달라는 아들의 청을 따른 것. 잔치가 끝날 즈음 구드리드에게서 시구르드가 자신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풀어주길 택한 것이라는 사건 전말과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멀리 노을 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당연하지. 누구 아들인데."라고 독백한다. 이 스토리아크에서 할프단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아버지.

173화에선 막스 베버 스타일의 "정당한 폭력의 독점"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론을 토르핀에게 설명해준다. 토르핀은 이를 듣고 애덤 스미스 류의 경제적 상호의존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평화론을 구상한다. 둘 다 시대를 한 1000년 정도 뛰어넘은 국가와 폭력에 대한 논의.

174화에선 2년여만에 귀향한 아들 시구르드가 손자를 보여주자, 특유의 엄격근엄진지한 얼굴로 백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라고 선언하는 팔불출스런 모습을 보인다.(...)[5]

[1] Jórvík, 현재의 잉글랜드 북부 요크[2] 키이우 건설은 뒤레 오스킬드 1인이지만 아스콜드라는 다른 인물이 있었다라는 전승도 있다.[3] 성우는 하세가와 요시아키.[4] 현대인으로 치면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채무지의 집이나 차, 자식들 학교 보낼 학자금등까지 봐주지 않고 채권을 집행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이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 가족들 살 집이나 아이 학자금 정도는 약간 유예를 줄 수 있지 않나?'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설령 '봐 줄 의무는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가차없는 행동을 특별히 착하다는 근거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악당은 아니지만 냉정하고 가차없는 인물인 셈.[5] 이땐 토르핀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는데 시구르드가 귀향하면서 손자를 보고 10초만에 후계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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