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78787><colcolor=#fff> 구준엽 具俊曄 | Koo Jun Yeob | |
출생 | 1969년 9월 11일 ([age(1969-09-11)]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現 서울특별시 서초구)[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8cm, 68kg, A형 |
가족 | 부모님, 누나 |
배우자 서희원(2022년 2월 8일 결혼 ~ 현재)[2] | |
의붓딸 왕시웨(汪希玥, 왕희월, 2014년 4월 24일생) 의붓아들 왕시린(汪希箖, 왕희림, 2016년 5월 14일생)[3] | |
학력 | 서울신중초등학교 (졸업) 서초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84회)[4] 경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 / 학사)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5] |
소속사 |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
소속 그룹 | 클론 |
데뷔 | 1990년 '현진영과 와와' |
별명 | 광토우, 국민형부, DJ Koo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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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DJ.2. 생애
1969년 9월 11일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1990년 현진영의 백댄서 '와와'로 활동했고, 1993년에는 현진영의 히트곡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작곡한 이탁과 함께 '탁2준2'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1996년부터는 프로듀서 김창환 사단에 들어가 강원래와 함께 클론이라는 댄스그룹을 결성해 대한민국과 대만에서 히트를 쳤다.
전성기에 대만에서의 인기는 엄청났으며, 거의 국빈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가 1992년 8월 한중수교와 동시에, 대한민국과 대만이 국교를 단절한 지 아직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나이가 꽤 든 뒤에도 상당한 몸을 유지하고 있으며, 춤이나 음악적 능력은 물론, 그림도 잘 그리고(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6] 기계 등도 잘 다루는 얼리 어답터. 그리고 아이언맨 마스크 및 슈트[7] 제작 등등...여러모로 덕이 많다. 이렇듯 못하는 게 없어서 연예계에서도 '초인', '천재' 등으로 통하는 것 같다.
한국 연예계의 대표적인 스킨헤드 연예인 중의 한 명으로 민머리조차도 매력으로 소화시킬 만큼의[8] 였으나 결국 탈모가 왔는지 탈모가 진행된 부분에 문신으로 머리카락을 새겨넣었다. 다만 그래도 멋있다는 게 준수한 외모와 근육질 몸매, 나이가 무색한 동안[9]이다.
학창 시절엔 굉장한 말썽꾸러기였다고 하며, 같은 클론 멤버 강원래와 마찬가지로 학교 성적은 저조했다.[10]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럽을 드나들었을 정도였다고 하니...참고로 강용석과도 경기고등학교 동창이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엔 서로 몰랐다고 한다. 정치부회의의 부장인 이상복과도 동창이라고 한다.
학창시절의 여담으로 구준엽은 모 지방 사립대의 산업디자인학과로 진학했는데, 나중에 클론이 뜨고 나서 이 대학 학생회는 축제 때 구준엽의 후광을 십분 활용해 당시 최고로 잘 나가던 그룹인 클론을 부르는 치트키(?)를 썼다. 당시 이 대학교의 대동제는 수만 명이 집결하는 진풍경을 낳았고[11] 김해공항에서 학교까지 헬기로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연예인 보기가 쉽지 않은데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사람이 동문이라고 나왔으니 얼굴 보러 온 지역주민들로 인해 이 일대 교통이 마비된 것이다.
2002년 SBS 드라마 순수의 시대, 2004년 KBS 드라마 4월의 키스에 조연으로 출연해서 잠시 연기자로 활약한 이력도 있는데, 정작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데다 해당 드라마 자체도 워낙에 인기가 없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송에서 마지막 연애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고 언급했는데, 클론이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그가 대만 배우 서희원과 연애했던 시절과 겹친다. 2020년 tvN 예능프로그램 '온앤오프'에 함께 출연한 구준엽의 어머니는 연애도 결혼도 안 하는 아들에게 핀잔을 주는 등 상당히 오랫동안 솔로로 지냈다. 그러다가 2022년 서희원과 결혼 소식이 공개되었다. 서희원에 대한 감정을 20여 년 동안 간직한 것을 볼 때 상당한 순정남인 듯.
처제의 인터뷰에 의하면 잠깐의 만남이 한번 있었다고 한다.
3. DJ KOO
I'm club DJ. I'm gonna make you move. I'm DJ KOO. I'm gonna make you dance.
DJ KOO의 1집, <왜>에 나오는 인트로 사운드이자 현재의 시그니처 사운드.
한창 클론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2000년, 멤버인 강원래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되면서 가수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구준엽은 2002년 발매된 클론의 베스트 앨범 <CLON & BEST> 발매를 끝으로 클론으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다.[12]DJ KOO의 1집, <왜>에 나오는 인트로 사운드이자 현재의 시그니처 사운드.
2003년 솔로 1집 <오빠생각>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13] 1집의 반응은 그닥 크지 않았다. 2년 뒤인 2005년 강원래의 상태가 많이 회복되면서 클론의 정규 5집 <내 사랑 송이> 를 발매할 수 있게 되었고, 휠체어를 이용한 안무인 일명 '휠체어 댄스'를 선보여 많은 화제가 되었다.[14] 하지만 화제성과 달리 이전 클론의 앨범들에 비해 대중적인 히트는 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이 잊혀져갈 즈음, 그는 일렉트로 하우스에 홀연히 빠져들어 클럽에서 DJ 활동을 시작하다가 2008년에 'DJ Koo'(디제이 쿠)[15]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참고로 DJ KOO의 1집 수록곡은 원우가 참여한 <왜>("아임클럽디제이 암고나매큐뭅 아임디제이쿠 암고나매큐댄스"(I'm club DJ. I'm gonna make you move. I'm DJ koo. I'm gonna make you dance)), 하나가 참여한 <Let Me>(don't stop the move,don't stop the dance), 둘의 리믹스 버전과 반주 버전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결론적으로 총6곡 수록이나 실질적으로는 2곡을 수록한 셈이라 앨범이 아니라 싱글이라고 해야 맞을 듯. 그나마도 작곡과 프로듀싱은 구준엽 본인이 한 게 아니다.
현재도 강남 일대의 여러 클럽에서 디제잉과 파티기획 등을 전개하거나 클럽 가이드북의 공저자로 나서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청담동 모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클럽인 Koo Bar를 운영 중.
또한 미국 마이애미에서 매년 열리는 초대형 야외 댄스 페스티벌인 UMF에 출전했다.
UMF에 등장했을 때 반응이 반은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후 단 10분 간 그보다도 더 짧게 등장했던 장근석이 팬을 제외한 일반 관중들에게 어그로를 끈 덕분에 차라리 디제이쿠는 기본 정도는 해줬다면서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2017년 7월 30일 열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행사인 GG투게더에서 이벤트 경기가 다 끝난 후 마무리로 나와 스타크래프트 ost를 리믹스한 걸 들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행사가 5시간 가까이 진행되어 약 새벽 1시에 끝났고, 관객들도 빠르게 빠져나갔기 때문에 결국 눈물의 쇼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오프닝 때 할 예정이었으나, 주최측에서 시간을 바꿨다고 한다. 이로 인해 늦은 시간의 엔딩에 EDM이라는 최악의 배치로 인해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2017년 9월1일 아리따움 9주년을 맞이하여 구주년 X 구준엽 광고를 촬영하였다. 오랜만에 그의 디제잉 랩을 들을 수 있다.
2018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 강원래와 함께 클론으로 출연해 <쿵따리 샤바라>를 부르며 공연했다. 구준엽은 이후의 DJ 파트에도 출연했다.
4. 마약 관련 오해
2009년 5월, 연예인 마약사건이 터지고, 적발된 인물들이 클럽에서 구준엽을 자주 봤다고 진술하여 마약소지 및 복용혐의를 받았다. 구준엽은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났다.구준엽이 디제이로 유명해진 상황이고 오래전부터 클러빙을 즐겨하는 모습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보니, 클럽 자체가 일단 마약 문제가 자주 일어날 만한 음성적인 장소인 만큼, 경찰에서는 마약과 관련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구준엽을 조사 대상 1순위로 삼았던 것이다. 또 클론 데뷔 이전에 활동했던 탁2준2 시절 같이 활동했던 이탁이 마약혐의로 입건된 적이 있는지라 이를 근거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레짐작하는 부분도 있는 듯. 머리카락이 없어서 경찰이 마약 검사를 위해 체모를 요구할 때마다 꽤 민망한 상황에 몰린 적도 있다고. 거기다 마약 검사 피하려고 삭발한다는 루머까지 돌아서 구준엽 본인에겐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16]
이에 구준엽 측은 자신의 인권을 존중해달라며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에 항의했다. 참고로 구준엽이 저때까지 마약흡입 혐의를 받은 것은 3번째로, 모두 무죄가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후 조사에서도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이에 관련하여 SBS의 연예기사 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에서 구준엽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하는 측의 태도와 편집, 코멘트가 마치 구준엽이 마약범인 것을 전제로 한 것처럼 비난적인 태도로 일관되어 대차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구준엽의 결백이 입증되자 사과했다.
5. 얼리 어답터
연예계 데뷔 이전부터, 각종 전자기기와 유행하는 패션, 새로운 음악과 춤 등 신문물을 남들보다 앞서 접하고 즐기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iPhone과 블랙베리의 개조기(아이언맨 컨셉으로 붉은색+황금색 아이폰, 블랙베리를 만들었다.)를 올리며 기기덕후들을 열광시켰다. 아이패드가 나오자 바로 구입해 분해기를 올려 구입인증을 했다.#
다만 이것 때문에 한 누리꾼이 "구준엽이 세관의 제대로 된 통관 없이 불법적으로 아이패드를 구입했다"라는 이유로 구준엽을 어떤 분과 함께 신고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어떤 분 덕에 아이패드 통관에 대한 기준이 변경되면서 별 일 없이 끝났다.
블로거답게 블로거들이 모인다는 SNS에도 가입하여 "암고나매큐뭅!!!"을 남기는 센스도 보였다.
2010년대 초부터 젊은층이 탄다는 픽시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차종은 도디치 스페셜. 당시 프레임셋 가격만 130만 원 가량 하던 고가의 제품이었다.
랜드로버사의 레인지 로버 3세대 후기형 모델을 몬다.
6. 결혼
2022년 3월 8일 《유성화원(流星花園)》(꽃보다 남자의 대만판 실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7살 연하의 대만 유명 배우 서희원(徐熙媛, 쉬시위안, 1976년생)과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하였다.저 결혼합니다.
20년 전 사랑했던 여인과 매듭 못지은 사랑을 이어가려합니다.
그녀의 이혼소식을 듣고 20년 전 그 번호를 찾아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 번호 그대로여서 우린 다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많이 지나간 시간 더이상 허비할 수 없어 제가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도 받아들여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의 늦은결혼이니 만큼 여러분 들의 응원과 축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 준엽 올림-
구준엽 인스타그램
20년 전 사랑했던 여인과 매듭 못지은 사랑을 이어가려합니다.
그녀의 이혼소식을 듣고 20년 전 그 번호를 찾아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 번호 그대로여서 우린 다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많이 지나간 시간 더이상 허비할 수 없어 제가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도 받아들여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의 늦은결혼이니 만큼 여러분 들의 응원과 축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 준엽 올림-
구준엽 인스타그램
구준엽과 서희원은 과거 1998년 클론의 대만 진출 시기에 첫 만남을 가졌다. 당초 구준엽은 대만의 여가수인 쑤후이룬의 콘서트장에서 서희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회고하였으나, 서희원은 자신은 이 자리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정정하였다. 서희원은 동생 서희제[17]와 함께 진행하던 《娛樂百分百》[18] 예능에서 모니터를 통해 구준엽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서희원이 이때 구준엽에게 관심을 보이자, 《娛樂百分百》 제작진들이 클론을 출연시켜 만날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금세 호감을 갖고 교제를 시작하여 1년 정도 연인 관계를 이어갔다. 당시 한국의 스포츠신문에 두 사람의 열애설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구준엽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에는 연예인의 연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매우 보수적이었고, 특히 클론 소속사(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반대가 심했다. 구준엽은 고민 끝에 서희원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했고, 서희원도 마지 못해 이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2011년 서희원은 중국인 사업가 왕샤오페이(汪小菲, 1981년생)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2019년부터 중국 인터넷상으로 불화설이 돌았고, 마침내 2021년 11월 21일 이혼을 발표했다. 두 아이의 양육은 서희원이 맡았다.
그 후 위의 결혼 발표대로 구준엽이 이혼 소식을 듣고, 20년 전 서희원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서희원이 여전히 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20년만에 전화로 재회하고,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과 대만이 모두 엄격한 봉쇄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통화로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당시 대만의 방역정책상 대만인의 가족만이 입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회를 위해서라도 결혼을 하자고 구준엽이 프로포즈를 했고, 서희원이 이를 받아들여, 우선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두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결혼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발표 다음 날인 2022년 3월 9일, 구준엽은 대만으로 전격 출국하였다. 코로나19로 외국과의 인적 교류가 거의 끊기다시피 한 상황에서, 왕년의 원조 한류 스타가 자국(대만)의 톱스타와 결혼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뉴스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때부터 대만 언론에서는 구준엽의 일거수 일투족을 집중 취재하였다. 의무적인 10일간의 자가격리 기간 중 PCR 검사를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오는 모습부터, 자가격리가 해제된 뒤에 서희원의 집으로 이동하는 과정까지 수많은 언론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동원해 밀착 취재하는 등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초에는 서희원을 만나서 대만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약 2달 간 거주하다가 서희원과 함께 한국으로 올 계획이라는 뉴스가 있었으나, 서희원의 동생 서희제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이들의 양육 문제 때문에 앞으로 대부분 대만에 거주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구준엽도 나중에 서희원과 두 아이들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하여, 본인이 대만에 거주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극적인 과정을 두고, 한국, 대만, 중국의 네티즌들은 영화를 능가하는 스토리라며 축하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특히 대만 현지에서는 구준엽을 '국민 형부(國民姐夫)', '오빠(歐巴)'[19]라고 부르고 있으며, 크게 응원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에서는 구준엽이 20년 동안 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 서희원이 유명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것, 마찬가지로 서희원이 유명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을 받은 것이 매우 신기하고 영화같은 스토리라는 반응이 많았다.
2022년 3월 28일, 대만에서도 혼인신고를 마쳤다.대만기사
4월 29일, 대만에서 문신을 받았는데, 여러번 다 실패하자 오른쪽 팔에는 아내 이름 '서희원'을 한글로 새겼고, 목에는 Remember together forever을 약자로 새겼으며,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의 위도와 경도를 숫자로 새겼다.
6월 22일, 유퀴즈에 구준엽이 출연하여 서희원과의 연애와 결혼 스토리에 대해 직접 이야기했다. 영상 두사람의 결혼반지는 손가락의 링 문신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대만에서 혼인신고를 하던 날에, 간소하게 웨딩 드레스 분위기의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과 유재석에게 보내는 처제 쉬시디의 영상편지도 공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구준엽이 서희원과의 결혼을 이유로 다른 매체나 방송에 출연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VOGUE 대만판에서 2022년 10월호 커버스토리로 서희원과 구준엽 커플의 화보와 특집기사를 실었다.# 화보도 화보지만, 그 내용이 화제가 되어 국내 커뮤니티와 연예뉴스 지면에도 보도되었다. 서희원은 "오빠가 전화로 결혼하자, 가족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며 "나는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말하냐. 20년 전에 나에게 이걸 물었어야 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울러 구준엽은 타이페이의 위도와 경도를 새긴 타투를 하며, "서희원이 있는 곳이 내가 닻을 내릴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7. 여담
- 서희원과의 결혼 이후, 대만에서의 활동을 본격화하려는 듯하다. 지난 2022년 4월 15일 밤(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 클럽에서 디제잉을 선보였다.#
오십대 중반의 위엄영상(TVBS)
- 제33회 금곡장(金曲獎頒獎典禮, Golden Melody Award for Best Band;GMA)에 서희제, 도정영과 함께 연도가곡상(年度歌曲獎) 시상자로 출연했다. 영상 대만에서는 흉부를 발음할때 胸部(xiōngbù)로 발음하는데 한국어로 읽는 '형부'와 발음이 비슷해서 처제인 서희제가 언어유희로 '우리 형부'라고 말하며 구준엽의 흉부를 가리키고, 한국에서는 자형[姐夫]을 '형부'라고 발음한다고 부연 설명을 붙였다. 구준엽은 중국어로, "大家好我是光頭。這是我的小姨子,這是我的偶像,你們是我的朋友。我很高興來金曲獎。謝謝。(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대머리입니다. 이쪽은 제 처제(서희제)고, 이쪽은 제 우상(도정영)입니다. 당신들은 제 친구입니다. 금곡장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고 말하며 대만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서희제의 손 장난에 그가 (장난으로) 손사래를 치자 서희제는 "왜?"라고 한국어로 대답했고 구준엽은 한국어로 "안돼 안돼"라고 서희제의 장난을 받아주며 금곡장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갔다. 사실 제33회 금곡장 뿐만이 아니라 2001년 5월에 있었던 제12회 금곡장에도 시상자로 참석해 수상자인 오월천에게 베스트 밴드상(最佳樂團, Golden Melody Award for Best Band)을 수여한 적이 있다.
-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20~30대에게 인정받는 간지남이다. 특히 패션센스가 뛰어나다.#
- 2023년, 그의 아내 서희원이 구준엽을 둘러싼 루머에 대해 분노하며 해명했다. 그녀는 구준엽의 범죄경력조회 회신서를 게재하며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사람들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
- 여담으로 아내 서희원은 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금잔디 역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남주인공 한국식 이름이 구준엽과 이름이 비슷한 구준표다. 그리고 한국판 꽃보다 남자를 모티브로 한 무한도전 쪽대본 드라마 특집에서 F4를 모르는 박명수가 구준표를 구준엽으로 잘못 발음해(...) 본의아니게 또 없없무 사례를 추가해냈다.#
[1] 이 지역은 영등포구에서 시작해 성동구를 거쳐 1975년부터 강남구 관할이 되었다.[2] 7살 연하이며 대만의 톱배우이다. 한국에서는 대만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연으로 알려졌다.[3] 1남 1녀 모두 아내 서희원과 전 남편의 사이에서 태어났다.[4] 같은 클론 멤버인 강원래는 물론이고 주영훈, 강용석, 강현민, 이상복과도 동창이다.[5] 1991년 1월 10일, 강원래와 함께 동반입대하여 제3야전군사령부 본부대 군악2소대(선봉예술단)에서 군복무를 마쳤다.#[6] 그래선지 무대 디자인도 직접 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 그 스케치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미적 감각이 꽤나 수준급이다.[7] 슈트의 경우는 전신슈트는 아니고 갑빠 부분까지만. 그리고 전부 직접 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반절 정도는 절친에게 도색 및 조형을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가수다 7월 24일 방영분에서 입고 나왔다.[8] 국내 연예인들이 스킨헤드 스타일을 하는 주된 이유는 탈모 때문인데 구준엽의 경우는 아버지가 대머리여서 탈모 오기 전에 미리 밀었다고 한다. 현재는 조금 길러보면 탈모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만 조금 길러보니 불안해서 겁이 나서 못 기르고 있다는 듯. 출처는 2013년 라디오 스타.[9] 현재 [age(1969-09-11)]세다. 물론 50줄 넘어가면서 주름이 생기고 노화가 오긴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동안인 편이다[10]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가장 성적이 낮았을 때가 반 60명 중에 57등을 했을 때. 참고로 강원래가 58등이었고 맨 꼴지 둘은 운동부 소속이었다고 한다.[11] 이 중 2/3은 학교 재학생들이 아니라 구준엽을 보러 온 클론의 팬들이었다. 나머지 1/3중 절반 정도는 이소라(가수) 팬덤이었다고.[12] 이 앨범에서 히트를 친 곡이 바로 2002년 월드컵 응원가로 쓰였던 <발로 차> 와 엄정화가 피쳐링한 <랄랄라>다. 이 시기에는 강원래의 재활 치료가 끝나지 않아 활동이 불가능했기에 구준엽 혼자 클론으로 활동하였으며 월드컵의 열기에 맞춰 큰 히트를 기록했다. MBC 게릴라 콘서트에도 출연했는데 13000명 이상을 동원하며 역대 게릴라 콘서트 관객동원수 4위에 랭크되어있다.[13] 컴백 스페셜 때 강원래, 바다와 함께했다.[14] 구준엽은 휠체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앨범을 준비하는 1년동안 집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다고 한다.[15]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DJ 타카세 코이치와는 무관. 그쪽은 독음도 'DJ 코오'로 다르다.[16] 다른 얘기지만 무한도전 죄와 길에서 구준엽과 똑같은 스킨헤드인 길이 국과수에서 DNA를 채취할 때 방송이라 그런지 국과수 직원이 길의 콧수염과 턱수염 등 다른 부위에서 체모를 가져갔다.[17] 서희원과 동생 서희제는 《S.O.S (Sisters of Shu)》라는 이름의 듀오 그룹으로 데뷔하여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언니 서희원은 大S, 동생 서희제는 小S라는 예명으로 종종 불린다.[18] 百分百은 '100%'라는 뜻이다.[19] 한국 드라마, 가수가 중화권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哥哥' 대신에 '오빠'와 발음이 비슷한 '歐巴(ōubā)'라고 부르는 게 보편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