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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과 칠레의 관계에 대한 문서. 양국은 19세기에 외교관계를 맺은 후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하다. 칠레에는 독일계 후손들이 우대를 받는 분위기가 있는데 과거 주대한민국 칠레 대사를 역임한 페드로 슈미트(Pedro Schmit) 대사가 독일계 칠레인이며 미셀 바첼레트 전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경력이 있는 안토니오 카스트도 각각 독일계 칠레인들이다. 독일-칠레 간 관계는 상당히 돈독한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측은 남아메리카로의 확장성에 있어서 칠레를 꼭 있어야 할 중요한 파트너로 본다.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칠레는 19세기 초에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프로이센 왕국과 수교했다. 독일인들이 중남미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독일인들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넘어 칠레에도 정착했다. 19세기에 마푸체족과 쿤코족, 카웨스카르족 등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을 진압/토벌하고 영토를 개척2.2. 20세기
독일 제국과 칠레는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제1차 세계 대전이후에 독일 제국이 몰락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한 뒤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했는데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면서 돈독했던 양국관계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 부역했던 잔당들이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칠레로도 도주했다.[1]2.3. 21세기
양국은 역사적인 이유 등이 있어 현재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칠레내의 스페인어는 독일어에도 영향을 받았고 독일어는 칠레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칠레인들 중에는 전술했다시피 독일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경우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인물들로 미첼 바첼레트와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있다.3. 대사관
산티아고에는 주칠레 독일대사관, 베를린에는 주독일 칠레 대사관이 존재한다.4. 여담
칠레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삘이 나는 정복과 군장을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국가라 그 영향이 극심하게 남아있다. 심지어 제식도 그 유명한 거위걸음을 하는데 소련 영향권에 속했던 공산권 국가들의 그것이 아니라 빠르고 절도가 있는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 나치 독일이 했던 스타일 그대로 똑같이 한다.
거기다 칠레군은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로 군 수뇌부는 물론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는데 슈탈헬름과 피켈하우베를 쓰고 독일식 정복을 차려입은 1개 군단 수준의 인원이 프로이센식 구스 스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싶을 정도다.
이를 칠레에 19세기에 이주한 독일인 이민자들의 덕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 남미 대륙의 각 국가들은 탈스페인화-서유럽화 개혁 정책에 맞춰서 독일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영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독일계 이민자가 적었던 파라과이나 우루과이 같은 나라에서도 프로이센의 징병제를 모방해서 실시했는데 19세기 초반에 독립한 남미 대륙의 각 신생국가들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독일 제국이 승리한 것을 보고 적어도 국방, 군사분야에서만큼은 독일을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작 다른 남미 국가의 군대들은 독일색이 안 보이기 때문에 칠레군만 계속 유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