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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ead Man Walking사형 집행을 직감한 사형수가, 형장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의 걸음걸이와 시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직역하면 죽은 자의 걸음. 확정적으로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이미 죽은 자라고 은유하는 것이다.
사형수가 사형으로 죽기 직전 자신을 고찰하며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형을 주제로 하는 가상 매체에는 이 장면이 한 번 정도는 포함되기 마련이다.
다른 의미로 직장의 해고 예정자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정치에선 선거에서 크게 패배해 위기를 맞은 정치 지도자의 운명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한다. 어느 의미로든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한국어에는 직접적으로 같은 표현은 없지만 '도살장 끌려가는 소(같다)'라는 속담이 유사한 정서를 담고 있다.
2. 국가별 사례
2.1. 대한민국, 일본
대한민국과 일본[1]의 사형 제도는 죄수들에게 정확한 일정을 예고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수감자들은 집행 당일까지 그 여부를 알 수 없다. 당연히 '이제 집행한다.'고 선고하며 데려가는 것도 아니라 사형수들은 항상 공포에 떨며 교도관들의 분위기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보통 희망자가 아닌 이상 면회가 온 것처럼 위장하고 데려가기 때문에 바로 직시하지는 못하지만 당연히 면회장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은 다르며, 이것을 사형수가 직감한 순간이 바로 데드 맨 워킹의 시작인데 이 과정에서 "이쪽은 접견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라며 날뛰는 것은 하나의 클리셰다. 무풍지대에서 임화수도 끌려가며 이 드립을 쳤다. 하모니에서 김문옥이 접견 통보를 받았을 때도 이런 묘사가 나온다. # 이런 식이니 발걸음을 옮기는 사형수가 도중에 저항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그 몸부림을 제지하는 교도관들이 상당히 힘들어 한다고 한다.[2]
2.2. 중국
중국에는 처형 전에 사형수들이 원하는 복장(대개는 체포 직전에 입은)을 입게 해 주는 전통이 있다고 하며 1990년대의 조리돌림 사진에도 여자 사형수들이 청바지에 빨간 하이힐 같은 걸 신은 모습을 볼 수 있다.2.3. 영어권
영어권에서는 집행 기일을 사형수에게 고지하며 최후의 만찬이라는 관행이 있는데 사형수가 사형집행일 직전 먹고싶은 음식을 배급해 주는 것이다.[3] 혹시나 사형수가 자살 혹은 자해할 것을 대비해 두 명 정도의 교도관들이 집행 전까지 감시를 한다. 그런데 Teufelskoche라는 책자(한국어 번역 제목 <날 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 나오길, 미국에서도 보통 이렇게 알려졌는데 전혀 아니라고 한다.실제로 미국에서 사형수들의 음식을 죽기 전에 만들어 준 주방 담당이 이 책의 한 에피소드에 나와 사진도 찍고 증언했는데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부정했다. 고작해야 그 형무소에 있는 음식에서 최대한 먹고 싶은 거나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것이지 먹고 싶은 것이라고 아무거나 다 만들어주는 게 절대 아니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죽기 전에 뭘 먹고 싶냐는 한 사형수는 똥을 요구했는데 형무소 측은 요구르트를 몇 개 줬다든지 고기를 실컷 먹고 싶다는 사형수에게는 형무소에는 햄버거 패티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실컷 먹을래? 햄버거와 패티를 여럿 끼워둔 걸 줬다든지 이런 일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책에 이디 아민의 전속 주방장으로 일한 오톤데 오데라도 나와 사진 찍고 과거를 이야기하며 이디 아민의 식인 여부에 대해 부정했다.
사실 미국도 주마다 사정과 역사가 모두 다른데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했듯 사형수가 부탁을 해도 그냥 교도소에 있는 비슷한 재료로 때우는 교도소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바깥 음식을 먹게 해주기도 하는데 이 경우 보통 $40 이내로 금액에 제한을 둔다. 예시로 오클라호마는 $25까지만 허가하고, 플로리다는 $40 이내에 그 지역에서 구할수 있는 음식을 요청할수 있으며, 루이지애나에서는 전통에 따라 교도소장이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다.[4] 미국의 몇몇 지역들은 원래는 최후의 만찬을 줬으나 2011년부로 후술할 사건 때문에 폐지했다. 술과 담배도 기각당한다.
참고로 미국에선 사형이 집행된 뒤 그 주의 대변인이 언론에게 사형 집행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설명하는데, 이때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뭘 먹었는지도 알려준다.
3. 유명한 최후의 만찬
여기 나오는 설명은 이 영상을 참고하면 이해가 된다.- 테드 번디(Ted Bundy)[5]
전통적으로 사형수들에게 주는 식단인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해쉬브라운, 달걀 프라이, 토스트, 버터와 잼, 우유, 오렌지주스를 받았지만 한입도 먹지 않았다.
- 리키 레이 렉터(Ricky Ray Rector)[6]
스테이크, 닭튀김, 체리맛 쿨에이드, 피칸파이를 요청했다. 특이하게도 다른 음식은 전부 먹어치웠지만, 피칸파이만은 나중에 먹겠다며 남겨두었다. 이는 체포 과정에서 자살 기도를 하여 뇌손상이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아일린 워노스(Aileen Wuronos)[9]
$20달러 이하의 어떤 음식이든 요청할 수 있었지만, 요청한 것은 설탕과 크림을 넣지 않은 커피 한잔 뿐이었다.
- 로렌스 러셀 브루어(Lawerence Russell Brewer)[10]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요청했다. 그레이비 소스와 양파를 곁들인 치킨 스테이크 2개, 트리플 베이컨 치즈버거 1개, 다진 고기, 토마토, 양파, 피망, 할라피뇨를 넣은 치즈 오믈렛 1개, 튀긴 오크라 한접시, 흰빵과 바베큐 1파운드, 파히타 3개, 미트러버 피자 1판, 바닐라 아이스크림 1파인트, 땅콩을 얹은 땅콩버터 퍼지 한 조각. 문제는 이 많은 음식을 가져다 줬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며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당연히 모든 음식은 폐기됐고, 그걸 들은 텍사스 주 의회 의원들은 교도소장에게 요청해 87년간 유지한 최후의 만찬 제도를 폐지했다. 현재는 마지막 식사로 그냥 교도소에서 그날 주는 식단을 준다.
- 로니 리 가드너(Ronnie Lee Gardner)[11]
스테이크, 랍스터, 애플파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세븐업을 요청했다. 그리고 추가로 이 모든걸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보며 먹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 빅터 페규어(Victor Feguer)[12]
씨가 있는 올리브 한 알. 간수에게 평화의 의미로 자신의 무덤에서 올리브 나무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작 그가 사형당한 뒤 올리브는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 로버트 데일 콩클린(Robert Dale Conklin)[14]
베이컨에 싼 필레 미뇽 스테이크, 레몬과 갈릭 버터에 요리한 새우, 사워크림, 차이브, 버터, 베이컨을 넣은 구운 감자, 홀랜다이즈 소스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바게트와 버터, 염소 치즈, 칸탈루프 멜론, 애플파이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아이스티. 비슷하게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한 브루어와 달리 음식을 전부 먹었다.
- 앨런 리 데이비스(Allen Lee Davis)[15]
랍스터 꼬리 하나, 감자튀김, 새우튀김 반 파운드, 조개튀김 170g, 마늘빵 반개, 루트비어 950ml를 요청했다. 참고로 159kg의 거구여서 사형을 집행할때 어려움을 겪었고, 플로리다에서 마지막으로 전기 의자형을 받은 사람이다.
- 윌리엄 보닌(William Bonnin)[16]
라지 피자 두 판, 아이스크림 3파인트, 그리고 코카콜라 18캔을 요청했다. 거기다 이 모든걸 미국 TV쇼 Jeopardy!를 보면서 먹었다.
- 게리 칼 시몬스 2세(Gary Carl Simmons Jr)[17]
피자헛 슈프림 딥 디쉬 피자 2판, 파마산 치즈 2kg, 랜치 드레싱 10컵, 할라피뇨 나쵸 치즈 230g, 할라피뇨 100g, 체리 콜라 1.2L, 라지 딸기 셰이크 2개, 딸기 아이스크림 1L, 특대 도리토스 1봉지. 거의 3만 칼로리가 다 되는 이 음식들을 전부 먹어치우고 사형 당했다.
- 토마스 조세프 그라소(Thomas Joseph Grasso)[18]
찐 홍합 24개, 찐 조개 24개, 버거킹 더블치즈버거, 바비큐 립 6개, 딸기 셰이크 2개, 딸기와 크림을 얹은 펌킨파이, 미지근한 미트볼과 스파게티오 한캔.[19]. 스파게티오를 제외하곤 모든 음식을 받았고, 스파게티오 마저 다른 통조림 스파게티로 대체되어 받았지만 불만이 컸는지 "난 스파게티오를 못 받고 스파게티를 받았다. 언론이 이를 알았으면 좋겠다.(I did not get my SpaghettiOs, I got spaghetti. I want the press to know this.)"라는 발언을 했다.
-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James Edward Smith)[20]
흙 한 컵. 스미스는 부두교에 심취했었으며, 흙을 먹으면 자신이 부활할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기각됐으며 교도소에 있는 메뉴로 주겠다 했다. 하지만 사형 당일 아침에 그의 어머니의 변호인들이 그의 정신상태를 문제 삼아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항소하며 사형 집행 유예를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국 2년 뒤 대법원에서 그의 원심을 확정하며 항소심을 기각하며 사형을 선고 받았다. 사형 당하기 전 또 다시 흙을 요구했으나 또 기각당하자 결국 플레인 요거트 한 컵을 먹었다.
- 조지 W. 베렛(George W. Barett)[21]
"마을에서 가장 큰 스테이크"(biggest steak in town)을 요구했다. 정작 그 스테이크는 그의 사형 집행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손도 안 댄채로 교도소 주방에 있던걸 발견하곤 먹어치웠다. 참고로 인디애나 주는 그때까지 전기의자로 형을 집행했는데, 베렛은 법에 따라 교수형으로 집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교도소측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이때 취미로 교수형에 대해 연구하던 필 하나(Phil Hanna)라는 농부가 고문으로 불려와 사형을 집행 해주었다.
- 스티븐 마이클 우즈 2세(Steven Michael Woods Jr.)[22]
베이컨 1kg, 닭가슴살 튀김 4개, 치킨 스테이크 5개, 라지 피자 한판, 베이컨을 넣은 햄버거 2개, 감자튀김, 마리나라 소스를 곁들인 마늘빵 스틱 12개, 마운틴 듀, 펩시, 루트비어, 스윗 티 각각 2병씩, 아이스크림 2파인트를 요구했다. 참고로 운 좋게도 위에 서술한 로렌스 러셀 브루어가 사형 당하기 8일 전에 사형되어 마지막 식사를 받을 수 있었다.
- 리처드 쿠이(Richard Cooey)[23]
티본 스테이크, 양파튀김, 감자튀김, 계란 후라이 4개, 버터 바른 토스트, 해쉬 브라운, 로키 로드 아이스크림 한 통, 베어 클로, 마운틴 듀를 요구했다. 참고로 그의 변호인은 그가 사형당하기엔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막으려 했으나 기각당했다.[24]
- 해리 찰스 무어스(Harry Charles Moores)[25]
사과 2개, 청사과 2개, 신선한 과일 한 접시, 콜라 2병. 삶에 미련이 없었는지 항소를 막고, 자신의 사형 집행을 방해하는 사람은 고소하겠다며 위협했다. 1997년에 사형 당했으며, 현재 기준으로 오리건 주에서 사형당한 마지막 사람이다.
-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Stanley Tookie Williams)[26]
음식을 요구 하지 않고 사형 몇시간 전에 우유 한잔을 부탁했다. 이에 교도소는 그에게 우유 한잔과 전통에 따라 오트밀 한접시를 주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했는지 조폭 생활을 비판하는 책을 썼으며, 책으로 번 수입은 전부 청소년 폭력 예방연구소에 기증했다. 이 덕분에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노벨상 후보로 추대하기 까지 했으며, 그의 사면운동까지 펼쳤다. 하지만 당시 켈리포니아의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를 사면해 달라는 요청을 기각하곤 사형을 집행 하였다.
- 조세프 미첼 파슨스(Joseph Mitchell Parsons)[27]
버거킹 와퍼 3개, 감자튀김 2개, 초코 칩 아이스크림, 초코 밀크셰이크, 루트비어, 포도맛 후바부바 풍선껌 한통을 요구했다. 파슨스는 마지막으로 별빛 아래에서 걷고, 농구 한판을 하고, SF영화를 보게 해달라 요청했다. 교도소장은 교도소내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몇번 던지게 해주고, 사형장으로 이동하는 날 밤 그에게 밖에서 걷게 해주었다. 사형 당일날 그는 미이라를 시청했으며, 그를 방문한 그의 형제와 사촌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우노 게임을 한판 하곤 1999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점수에 대해 묻고, 어머니와 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 조 애리디(Joe Arridy)[28]
아이스크림. 그는 교도소에서 교도소장이 준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으며, 다른 수감자들과 교도관들의 호감을 샀다. 교도소장은 그를 "가장 행복한 사형수(the happiest prisoner on death row)" 칭했으며, 그는 자신이 사형 당할거란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참고로 이 교도소장은 아리디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를 지지했던 사람중 한명이였다. 1969년, 사형 당하기 전 교도소장의 배려로 그의 가족이 깜짝 방문을 했다. 아리디는 끝까지 자신이 사형 당한다는 사실을 인정 하지 않았으며, "아니, 아니. 조는 죽지 않아.(No, no, Joe won't die.)"라고 말했다. 마지막 식사로 아이스크림을 요구했으며, 다 먹지 못하자 나중에 먹기 위해 냉장 보관을 해달라 요청했다. 아리디는 사형장에 장난감 기차를 가져갈수 없다하자 슬퍼하며 다른 수감자에게 그걸 주었다. 그는 웃으면서 사형장에 들어갔는데, 그에게 눈가리개를 씨우자 놀라며 미소가 멎었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그의 손을 잡아주며 진정 시키자 바로 진정을 하였다. 교도소장은 사형 당시 눈물을 흘렸으며, 콜로라도 주지사에게 사형을 멈춰달라 호소 했으나 기각되며 23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형되었다. 당시에는 물론, 현대까지도 그의 무죄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있었으며, 2011년에 콜로라도의 주지사가 그를 사면했다. 이는 콜로라도 역사 최초로 사형이 집행 된 뒤 사면이 된 사건이었다.
- 존 앨런 무하메드(John Allen Muhammad)[29]
레드 소스를 곁들인 치킨, 딸기 케이크를 요청했다.
- 프랜시스 "투 건" 크롤리(Francis "Two Gun" Crowley)[30]
스테이크와 양파, 감자튀김, 애플파이, 아이스크림, 녹은 아이스크림을 요구했다.
[1] 일본에서는 처음에는 알려줘서 마지막을 준비하게 해 주었는데 소식을 듣고 형 집행 전에 자살해 버리는 사형수들 때문에 사전 고지하는 것을 없애 버렸다고 교도관 나오키에 나온다. 조갑제의 1970년대 르포 '사형수 오휘웅'에도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2] 이게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게, 암만 법적 절차에 의해 사형을 구형하며 선고 및 집행하는 것이라도 현직 교도관들의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보자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거행하는 행위이고, 만약 사형수가 발버둥치면 어떻게든 죽이고자 억지로 끌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도관 나오키라는 만화에서는 사형수 전담 교도관들의 정신적 고통을 다룬다.[3] 미국에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라고 나오는 메뉴 품목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집행 이후 주 법무부 대변인이 사형 집행이 끝난 후 언론사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집행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모두 말해준다.[4] 한번은 교도소장이 수감자가 요청한 랍스타 값을 지불하기도 했다.[5] 연쇄살인[6] 연쇄살인. 경찰을 살해한 뒤, 도주하다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을 불러내곤 그 경찰관도 살해했다. 당시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사형을 승인하였고 직접 그의 사형 집행을 보러 왔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 이 당시 클린턴은 대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으며, 일각에선 이 결정 덕분에 대중에게 그가 마냥 유순한 이미지만 있는게 아니라 강단있는 모습도 보여주어 당선에 도움을 주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린턴의 정적들은 리키가 지적장애인이 되었는데도 사형집행을 승인하였다며 클린턴이 강약약강 정치인이며, 사형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이용했다며 비판하였다.[7] 연쇄살인 및 강간. 어린이 병원과 자선 행사에서 광대일을 했었는데, 소년 피해자들에게 마술을 보여주겠다는 핑계로 집으로 데려와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8] 한때 KFC 지점의 매니저로 일한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9] 연쇄살인.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몬스터로 유명하다.[10] 살인 및 증오 범죄. 백인우월주의자로 두명의 친구와 함께 흑인 남성을 살해했다. 사실 이건 퍽 점잖고 무미건조한 표현인데, 자세하게는 그 흑인을 트럭 뒤에 매단 채 5km를 질주해서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 증오 범죄가 인정되어 재판을 받고 최초로 흑인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은 백인이 되었다. 공범 중 한명은 2019년에 사형되었고, 다른 한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인 제임스 버드 주니어의 이름은 2009년 매튜 셰퍼드와 제임스 버드 주니어 혐오방지법의 이름으로 쓰였다.[11] 강도살인, 탈옥, 변호사 살해. 아이오아 주에서 총살형을 당한 마지막 사람이다.[12] 납치 및 살인[13]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범인이다.[14] 살인,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석방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15] 강도 살인.[16] 최소 21명의 소년과 청소년들을 강간 살인했으며, 그의 피해자들의 시신이 켈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로 고속도로 살인마(Freeway Killer)라는 이명으로 불렸다.[17] 살인과 강간. 자신이 빚을 지고 있던 상대와 그의 여자친구를 찾아가 남자는 총으로 쏴 죽이고, 여자는 강간한뒤 감금했다. 충격적이게도 자신이 죽인 남자의 시신을 토막낸뒤 악어 밥으로 던져줬다. 그 사이에 감금돼있던 여자는 탈출에 성공해서 경찰을 불렀고, 시몬스는 체포되었다.[18] 연쇄살인.[19] 미국에서 파는 통조림 스파게티의 일종으로, 파스타 모양이 동그라미여서 스파게티오라고 불린다.[20] 강도살인. 이 외에도 자신이 의식때 재물을 바치기 위해 6명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증거가 없어서 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21] 살인. 1930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누이에게 부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그의 형제들이 $500(2020년대 물가로 약$9100)의 현상금을 걸었고, 8개월의 도주 끝에 자수하였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인건 정당방위였다 주장하였으며, 이때문에 배심원단은 결정을 못해 재심 판결이 나왔다. 한편 베렛은 차량 도난과 장물 판매로 FBI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를 체포하려던 FBI 요원 두명에게 총을 쏴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죽어가던 요원이 그의 다리에 총을 쐈고, 베렛은 바로 체포되었다. 베렛은 당시 새로 제정된 법에 따라 최초로 FBI 요원을 죽인 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22] 살인. 친구 한명과 함께 살인을 저질렀다. 공범은 자신이 직접 총을 쏴서 피해자들을 죽였다 자백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텍사스의 법에 따르면 직접 피해자를 죽이진 않았어도 살인의 공범일시 살인죄가 인정되기에 우즈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23] 살임 및 강간. 두명의 공범과 함께 벽돌을 차에 던져 고장낸 뒤, 차 주인인 여대생 두명에게 도와주려는 척 접근하곤 납치한뒤 강간하고 살해했다. 쿠이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고,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한명은 단순 가담으로 인정되어 15년형을 선고 받은 뒤 1년후 가석방되었고, 다른 한명은 미성년자였기에 사형을 선고 받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4] 쿠이의 몸무게는 125kg이었으며, 변호인은 이때문에 약물주사가 잘 통하지 않을테니 비인간적인 처사라 주장했다.[25] 살인. 총 3번을 결혼했었는데, 그중 2번째와 3번째 결혼은 그의 조카와 한거였다. 피해자는 그의 이복 누이와 그녀의 전남편이었는데, 동시에 무어스의 장인 장모이기도 했다. 그들을 죽인 이유가 그들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방해하고, 자신의 별거중인 아내와 딸을 라스베가스로 데려가 매춘과 마약에 노출시킬 거라 믿어서였다.[26] 연쇄살인. 미국 최대 흑인 갱단 크립스의 창시자이며, 먼저 편의점 직원을 죽이곤 모텔에서 돈을 빼앗기 위해 3명의 일가족을 죽였다.[27] 살인. 강도짓을 하다 잡혀 13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5년 뒤 가석방 됐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훔쳐 지정 주거 지역을 벗어났다. 1987년, 그가 도주중인 범죄자란걸 모르던 리처드 어니스트(Richard Ernest)는 히치하이킹을 하던 그를 태워주고, 파슨스는 어니스트가 휴게소에서 잠을 잘때 살해 한뒤 차를 훔쳐 도망쳤다. 그는 재판에서 어니스트가 동성애자이며 자신을 성추행 하려 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오히려 검찰은 감옥에서 그를 본 증인을 찾아 동성애적 성향을 보인 전적이 있는건 파슨스란걸 입증했다.[28] 1936년, 프랭크 아구일러(Frank Augilar)가 한 가정집에 처들어가 딸 한명을 죽였다. 아구일러는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경찰은 IQ 46에 6세의 지능을 가지고 있던 조 아리디를 심문을 위해 불렀다. 그들은 아리디를 속이고 협박하여 거짓 자백을 하게 했다. 아리디가 범행을 했다는 물증이 없었고, 피해자의 가족 역시 아리디가 현장에 없었다 증언 했으나 결국 아리디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29] 2002년 미국 무차별 연쇄저격 살인사건의 범인이다.[30] 살인. 크롤리는 어렸을때 그의 형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당한 뒤부터 경찰에게 강한 증오심을 느꼈다. 살인 미수와 강도죄로 쫓기던 와중 1931년 경찰 두명이 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자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부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이때 맨하탄에 있던 5층 건물로 피신했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의 수는 300명이었으며, 이들은 소총, 기관총, 최루가스로 무장한 상태였다. 총격전은 두 시간동안 일어났으며, 1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다. 700발이 넘는 총알이 오간 끝에 크롤리는 총알 4발을 맞고 체포되었다.[31] 홀로코스트를 실무적으로 주도한 전쟁범죄자. 그가 죽인 사람은 무려 500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32] 이라크의 악명 높은 독재자. 그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60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