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17 09:30:45

김대경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영화 터널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김대경(터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스쿼드
구단주 박남춘 · 대표이사 전달수 · 감독 욘 안데르센 · 전력강화부장 이천수
수석코치 임중용 · 코치 박용호 · 코치 겸 전력분석관 정영환 · GK 코치 김이섭 · 피지컬 코치 자스민
트레이너 이승재 · 트레이너 양승민 · 트레이너 김현진 · 팀 매니저 노상래 · 전력분석관 고병현 · 통역 기지용
1 정산 · 2 황정욱 · 4 김근환 · 6 김태호 · 7 남준재 (C) · 8 이정빈 · 9 무고사 · 10 하마드 · 11 문창진 · 13 김진야
14 양준아 · 15 이재성 · 16 이윤표 · 17 박세직 · 18 김승용 · 19 허용준 · 20 부노자 (VC) · 21 이태희 · 22 김강국 · 23 콩푸엉
24 이우혁 · 25 이제호 · 26 곽해성 · 27 지언학 · 28 정훈성 · 29 김보섭 · 31 김동헌 · 32 정동윤 · 33 이준석 · 34 김한빈
35 주종대 · 36 김대경 · 37 김종진 · 38 김채운 · 39 임은수 · 40 최범경 · 41 손무빈 · 44 김정호 · 47 김동민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세요.
파일:2019김대경.png
인천 유나이티드 No. 36
김대경
(金大景 / Kim Dae-Kyung)
생년월일 1991년 9월 2일 (만 [age(1991-09-02)]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포지션 윙어, 풀백
신체조건 179cm, 69kg
학력 거여초 - 원삼중 - 강릉문성고 - 숭실대
프로입단 201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4)
인천 유나이티드 (2015~ )

1. 소개2. 경력
2.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2.2. 인천 유나이티드
2.2.1. 2015년 : 새로운 출발2.2.2. 2016년 : 풀백으로의 변신2.2.3. 2017년 : 뜻밖의 부상2.2.4. 2018년 : 계속되는 부상과 이어지는 불운2.2.5. 2019년
3. 플레이 스타일

1. 소개

한국의 축구선수.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포지션은 윙어풀백.

2. 경력

2.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12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번외 지명으로 수원에 입단하는데 성공했다. 숭실대 시절에는 오른쪽 윙어로 출전하여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을 장기로 삼는 전형적인 한국형 윙어 중 하나였다. 롤 모델은 현재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뛰고 있는 이청용. ACL과 K리그 클래식에서 활발하게 조커로 투입되며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고 오랜만에 수원에서 괜찮은 신인이 나왔다는 평가 또한 받았지만... 22경기 (교체투입 12) 출전, 1골 1도움의 초라한 성적으로 2013 시즌을 마무리.

2014 시즌에는 한동안 존재감이 없다가 2014년 월드컵 휴식기간 중에 열린 PSV 아인트호벤과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다. 그리고 무개념 해축빠들로부터 대선배님 은퇴하시는 길에 접대 안 하고 깽판쳤다고 까였다 (...)

2.2. 인천 유나이티드

2.2.1. 2015년 : 새로운 출발

결국 2015년 1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처음에는 상당한 기대를 받았지만, 생각보다 부진한 점도 있고 다른 자원들도 많아[1] 이적 초반에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본래 자리인 윙어보다는 주로 센터백이 결장했을 때 김대중이 아닌 오른쪽 풀백 권완규가 센터백을 보고 김대경이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물론 우측 윙어로 기용되는 경기도 있었다. 시즌 중반 들어서 김대경은 폼이 급상승하였고, 뛰어난 몸놀림과 더불어 팀의 측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2.2. 2016년 : 풀백으로의 변신

2016년에는 주력 우측 풀백이었던 권완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윙어가 아닌 풀백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2015년의 등번호였던 17번이 권완규에게 가고 자신은 수원에서 쓰던 36번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수 본인의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풀백으로서의 활약도 제법 준수한 편. 수원 FC 전에서 이태희와 함께 위클리 BEST 11에 드는 등 오히려 윙어로 나올 때보다 더 활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똥 먹고 부활한 잉글랜드의 멀티플레이어가 생각난다

이기형 대행 부임 후에는 다시 윙어로 나오고 있지만 주전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로테이션으로 가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활약 자체는 평이한 수준. 그러다가 2016년 10월 29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 인천에서의 데뷔 골을 기록했고 팀 승리에 기여하는 데 성공했다. 상대 수비와 골키퍼의 실책성 플레이가 있긴 했지만 활발한 움직임이 낳은 성과이기에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즌 막판의 활약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팀과 재계약을 맺었다. #

2.2.3. 2017년 : 뜻밖의 부상

2017 시즌을 앞두고는 이전보다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고, 2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2:0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멋있는 프리킥으로 만회 골을 넣었고 이어서 페널티킥까지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활약을 펼쳤다. 이는 김대경의 프로 첫 멀티골 기록이기도 했다. 때문에 김대경이 앞으로 주전을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이 나왔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지만... 불행하게도 전반을 마치기도 전에 발을 헛디디며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이 부상이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결국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가 부상당한 이후 주전으로 올라선 문선민이 센세이셔널한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같이 호흡을 맞추는 다른 윙어들이 계속 부진하는 상황이라 김대경의 공백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문선민이 패턴이 읽히면서 심각한 부진에 처한 이후로 김대경의 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다.

참고로 이 때 당한 부상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아킬레스건 부상. 권창훈이 당한 그 부상이다. 회복이 아무리 빨라도 6개월에서 1년인데다가 후유증도 굉장히 커서 선수 생활 자체가 불투명해질 염려가 큰 부상이라 김대경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이 굉장히 많다.

2.2.4. 2018년 : 계속되는 부상과 이어지는 불운

부상의 여파가 큰지 2018년에도 한동안 명단에서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R리그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기형 경질 후 첫 경기에서 서브에 이름을 올려 드디어 복귀를 알렸지만, 송시우 투입을 선택하면서 복귀전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이후 R리그를 통해 복귀전을 치르기는 했지만, 아직도 고통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전해진다. 거기에 잔부상이 겹치면서 복귀는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다. 9월에 와서야 다시 R리그에서 풀백으로 출장 기회를 받았는데, 워낙 공백이 길어서 1군에 뛸만한 폼을 2018년 내에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와중에 10월 들어서는 R리그에서 센터백으로까지 출전하면서 멀티 플레이어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김대경이 센터백으로 R리그에서 뛸 정도면 강지용이윤표는 도대체...

2.2.5. 2019년

시즌 종료 후 FA 대상자가 되었고, 지난 2년간의 공백으로 인해 재계약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력 외 선수들에게 전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리는 상황에서 최종환, 한석종과 함께 확실한 행보가 결정되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 정산, 김동민에 이어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1년간 인천과 더 동행하게 되었다. 사실상 인천에서의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

3. 플레이 스타일

스피드를 활용한 직선적인 플레이 및 위협적인 움직임을 통한 공간 창출이 최대의 장기. 또 활동량이 많고 헌신적인 플레이 역시 보여줄 수 있는 자원이다. 킥력도 나쁘지 않아서 크로스 시도를 자주 하고, 2017년 인천에서는 프리킥으로 득점을 하기도 했다. 다른 강점으로는 측면의 어디에 둬도 1인분을 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기질. 풀백, 윙백, 윙어 등 어디에 둬도 제법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직선적인 플레이어의 한계도 그대로 노출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애매한 기술 때문에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잘 안 풀리는 날에는 좀처럼 존재감이 없기도.


[1] 당시의 인천은 측면 미드필더 자원에 이천수, 김인성, 박세직, 진성욱등 실력자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