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21:02:24

김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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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5623079D-B559-1F9A-4CB4-FFD9084AC59B.jpg
<colbgcolor=#eee><colcolor=#000> 이름 김근환
金根煥 / Kim Kun-Hoan
출생 1986년 8월 12일 ([age(1986-08-12)]세)
충청남도 천안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1] 191.7cm / 90.7kg
직업 축구 선수 (유틸리티 플레이어[2] / 은퇴)
학력 천안초등학교 (졸업)
천안중학교 (졸업)
천안제일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중퇴)
소속 <colbgcolor=#eee><colcolor=#000> 선수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8~2012)
몬테디오 야마가타 (2010 / 임대)
사간 도스 (2012 / 임대)
알비렉스 니가타 (2013)
울산 현대 (2014~2015)
수원 FC (2016)
FC 서울 (2017)
경남 FC (2017~2018)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9)
강릉시청 축구단 (2020)
국가대표 7경기 1골 (대한민국 U-23 / 2007~2009)
가족 아내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수로도 기용된다.

2. 클럽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천안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와 축구 선수를 겸했으며 전국 체전에서 단거리 육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축구선수가 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아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창단 맴버로 천안 봉서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몇년후 봉서 초등학교 축구부는 더이상 운영되지 않았고 이후 전학을 갔다. 천안중-천안제일고에서는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경희대로 진학한 이후에는 센터백으로 전향했다. 경희대 시절 주목할 만한 유망주로 인정받아 2008 베이징 올림픽 3차 예선 때부터 태극 마크를 달았다. 박성화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유사시 장신을 살린 공격 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김근환을 로테이션으로 선발했다.

2.2. J리그

파일:external/footballk.net/%EA%B9%80%EA%B7%BC%ED%99%98.jpg

베이징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J리그 관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아 2008년 J리그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입단했다. 이후 2009년 6월, 허정무호 국가대표팀 명단에 선발되어 오만전에 출전했으나 정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요코하마에서 센터백과 공격수를 떠도는 바람에 김근환의 포지션은 다소 애매해졌으며, 결국 몬테디오 야마가타로 2010년에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임대 복귀 이후에는 요코하마에서 꽤 많은 경기를 치렀으나 여전히 공격수 투입이 잦았으며 대부분이 교체 출장이라 본인이 원하는 기회를 얻기는 힘들었으며, 2012년에는 다시 사간 도스로 임대되었다. 2013 시즌에는 알비렉스 니가타로 이적했고, 많은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다. J리그 119경기를 뛰었는데 야마가타에서는 후보였고 도스에서는 윤정환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이 J1리그로 승격한 첫 해부터 5위에 오르는 데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2013년 막판에 왼쪽 전방 십자인대를 다쳐 전치 8개월의 진단을 받으면서 J리그를 떠나 국내 복귀를 타진했다.

2.3. 울산 현대

국내 복귀를 타진하던 김근환에게 울산 현대의 신임 감독 조민국은 부상이 있지만 재활을 마치면 좋은 자원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접근했고, 결국 울산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재활을 마치고 7월 6일 성남 FC의 원정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면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17경기(교체 5경기)에 출전해 그런대로 기회를 받았으나 부상으로 떨어진 폼을 회복하지 못해 크게 부진했으며, 울산 역시도 낮은 순위를 맴도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사간 도스 시절 은사였던 윤정환 감독의 지도를 다시 받게 되어 기회로 여겨졌고 실제로 초반에 주전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여름부터 유준수에게 밀려나 최종적으로는 주전 도약에 실패해 18경기(교체 3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특히 수비수로 뛰면서 자책골을 포함한 잦은 실수가 나와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2.4. 수원 FC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0025812_001_20170627113649599.jpg

결국 2015 시즌 종료 후 다시 수원 FC로 이적하였다. 수원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시즌 초반에는 부동의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팀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점점 입지가 좁아져 7월 기점으로 로테이션 멤버로 밀렸다. 그래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는 K리그에서 뛰던 시기 중 가장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주어 드디어 김근환 활용법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나름의 가치를 증명하기는 했다. 팀의 성적이 부진하면서 한계에 부딪힌 것이 문제였고, 종국에는 공중볼을 노린 공격수로 활용되었으나 이 또한 임시 방편에 불과했던지라 큰 활약은 없었다.[3] 30경기(교체 11경기) 출전 1도움으로 K리그 진출 이후 처음으로 30경기 출전을 기록했지만, 포지션 정착이 실패했다는 면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2.5. FC 서울

파일:external/images.fcseoul.com:8888/14872224003903.png

결국 시즌 종료 후 수원 FC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한 뒤,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으나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서울 팬들의 반응은 영 좋지 않은 편인데, 안 그래도 팀의 대표 수비수로 맹활약했던 김주영을 놓치고 데려오는 선수가 겨우 이런 선수냐며 분노하였다. 게다가 이미 곽태휘, 오스마르, 정인환, 심우연, 김동우 등의 장신에 발 느린 수비수가 즐비한데다가 FA로 풀린 심우연까지 굳이 잡아 놓은 상황에서 왜 돈들여 영입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 김근환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 팬들의 우려를 긍정적으로 바꾸겠다고 인터뷰했으나, 시즌이 개막한 후에는 곽태휘정인환에게 밀리면서 그냥 망했다. 리그 첫 경기에 출전했지만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공격진에게 공략을 당하며 황선홍 감독의 신뢰를 잃었고, 전력 외로 취급을 당했다.

2.6. 경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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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FC에 함께 입단했던 후배 윤종규와 함께 찍은 사진.[4] 오른쪽이 김근환이다.

결국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계약을 해지한 뒤에 경남 FC로 이적했다. # 김종부 감독의 말에 따르면 경남에서는 공격수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말컹과 함께 장신 투톱으로 뛸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공수에서 조커로서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데뷔전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는 등 경남에서의 첫 시즌에는 조커로 쏠쏠한 역할을 해주었고, 팀의 리그 우승 및 승격에도 공헌했다. 2018 시즌에 경남은 순항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으로 기회를 놓쳤고, 시즌 후반기에 공격 자원으로 투입되기 시작했지만 팬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특이하게도 키는 큰데 제공권은 그만큼 나오지 않고 오히려 침투하는 움직임이 호평을 받았고, 이 점이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이외에 큰 활약은 없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FA 대상자가 된 김근환은 경남과의 재계약이 불발되어 새 팀을 찾아야 했다.

2.7. 인천 유나이티드

2019년 1월 12일 오전에 김근환은 인천과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인천에서는 기본적으로 고슬기를 대체하는 미드필더로 활용하되, 공격수와 수비수 뎁스가 모두 아쉬운 인천이기에 상황에 따라 스테판 무고샤의 백업이나 고르단 부노자의 백업 역할까지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2016 시즌 종료 이후에도 인천은 김근환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에는 서울이 김근환 영입에 성공했었다.

시즌 시작 후 4라운드부터 꾸준히 서브에 앉았고 5라운드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이 대구 FC한테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라 김근환 개인도 별 활약은 없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장점덕분에 서브에는 계속 앉고 있으나 아직 기회가 많이 안 주어졌고 본인의 포지션도 애매하다. 당장은 무고사가 부상중이니 스트라이커로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진이 모두 상황이 최악이라 그 자리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서브에서 사라졌고, 아예 얼굴을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인천 팬들 사이에서도 잊혀졌고, 센터백 뎁스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모습을 보기 어려운 실정. 유상철 감독 부임 후에도 상황은 달라진 점이 없었고, 홍성 전지훈련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때문에 팬들에게는 김태호와 함께 잉여로 비난을 듣고 있다. 이재성만큼 큰 기대를 받은 건 아니라 이재성보다는 덜 언급되지만, 김근환도 부상을 자주 겪은 선수였고 시즌 시작 후 실제로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7월 6일 펼쳐진 19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오랜만에 서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유상철 감독은 김근환을 투입하지 않았고, 오랜만의 경기 출전 역시 무산되었다. 1군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는 시작했지만, 이 날 경기에서 선발로 내세운 선수들이 젊은 신인급을 비롯해 2군이 많은 걸 감안하면 김근환의 입지가 해당 선수들보다도 좁은 상황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후반기 들어서 종종 서브에 들고 있는데, 센터백 후보군으로 유상철 감독이 염두에 두고 있는 듯. 이렇게 얼굴을 비추는 상황조차 여성해가 영입되면서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부노자도 돌아왔으니 얼굴 보기는 더더욱 힘들 듯. 결국 이재성, 부노자, 여성해, 김정호를 중심으로 수비진이 채워지면서 후반기에 기회를 받지 못했고, 시즌을 1경기 출전으로 마쳤다. 김태호, 김승용과 함께 삼김으로 묶여서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는데, 이 중 김승용은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실상의 플레잉 코치로 어느 정도 제몫을 했지만 나머지 두 선수는 기여도를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발표된 FA 명단에도 포함됐는데, 1경기 출장에 그쳤을 정도로 활약도가 미미했던 것을 고려하면 재계약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예상대로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팀을 떠나는 것이 확정.

2.8. 강릉시청 축구단

이후 김근환은 2020년,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K리그 출신 선수들을 끌어모으던 강릉시청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새로운 리그에서의 첫 시즌 기록은 리그 15경기 1골, FA컵 2경기 출전, K3리그 챔피언십 1경기 출전. 팀은 2021시즌부터 강릉시민축구단으로 재창단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났다.

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11월에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했으며,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내 유일한 대학생으로 참가했었다. 2009년에는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어 오만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으나 해당 경기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A매치 출전 기록이 없다.

4. 플레이 스타일

193cm의 장신을 활용한 강력한 제공권을 앞세운 힘 있는 수비와, 공격수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위협적인 세트피스 공격 가담이 주특기인 수비수이다. 그러면서도 거친 플레이가 적어서 커리어 내내 경고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이 한 시즌 2장이었는데, 수비수로는 굉장한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큰 키에 비해 힘이 부족해서[5] 생각하는 만큼 압도적인 공중볼 경합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거기에 스피드가 느려 뒷공간을 노출하기도 했다. 수비 시의 위치 선정은 괜찮은 편이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백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을 때는 꽤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본래 공격수 출신인지라 기술도 나쁘지는 않아서 미드필더 포지션에 잘 적응했다. 느린 발로 인한 약점은 활동량이 많은 파트너와 뒤에 버티는 포백이 있을 때 다소 메워지는데다가 중원에서는 독보적인 피지컬을 지니고 있기에 이를 활용한 공중볼 장악도 돋보인다. 공격수로 뛰는 김근환은 상기했듯이 제공권은 기대에 비해 아쉽지만 그래도 키가 폼은 아니어서 종종 괜찮은 헤딩을 선보이고, 의외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좋아 주변에 공간을 창출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력은 부족하고, 느린 스피드는 어느 포지션에서도 김근환에게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제일 호평을 받은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어디에 고정되지 못하고 떠도는 점이 안타까운 선수.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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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현대 시절 2015년에 팀에서 자체적으로 얼굴에 복면을 씌우고 복근만을 보여주어 누가 최고의 몸을 지니고 있는지를 가리는 복면근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복면근왕의 우승자가 김근환이었다.
  • 경남, 인천에서 팀 동료로 만나게 된 여성해와는 2012년 당시 사간 도스에서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뛴 인연이 있다. 그 때는 여성해가 팀에 있던 중 김근환이 임대로 들어왔는데, 인천에서는 반대가 되었다.
  • 슈팅스타에서 밝힌 바로는 은퇴 후에도 거의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서 현역 때와 비슷한 몸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1] 슈팅스타 기준[2]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3] 심우연도 그렇지만 장신 수비수를 공격수로 올려 쓰겠다는 발상은 한 시즌 두어 경기 성공하면 많이 한거다. 애초에 이런 전술을 쓰는거 자체가 팀내 공격진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4] 윤종규는 임대가 만료된 뒤, 원 소속팀인 FC 서울로 복귀했다.[5] 김근환은 굉장히 성실하게 운동을 진행하는 선수이며 때문에 몸도 정말 좋다. 근력도 굉장한 수준인데, 선천적인 운동 신경의 한계로 버티는 힘이 약하다. 단순한 완력과 선수들 사이에서 경합하고 버티는 능력은 전혀 다르다. 이쪽은 유연성과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마이클 조던이 활약하던 시절 불스의 약체 센터로 유명했던 룩 롱리는 힘으로는 근육질 흑인 빅맨들 가볍게 내리눌렀지만 게임 들어가면 쭉쭉밀려나기 일쑤였는데 김근환도 같은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