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5 16:24:30

권영민(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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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볼 수 없는 현대캐피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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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시 볼 수 없는 KB손해보험 시절.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수석코치
권영민(權寧珉)
생년월일 1980년 7월 5일
본관 안동 권씨[1]
출신지 인천광역시
출신학교 인하부중 - 인하부고 - 인하대
포지션 세터
신체사이즈 신장 190cm, 체중 80kg
소속팀 현대자동차/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2003~2015)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4, 임대)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KB손해보험 스타즈 (2015~2017)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7~2018)
지도자 경력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세터 전담 코치 (2018~2019)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수석코치 (2019~)
응원가 현대캐피탈 시절 : T-ara - Roly-Poly
현재 : Boys like girls - The great escape[2]
2005 KOVO V-리그 남자부 세터상
리그 출범 권영민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최태웅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 소개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포지션은 세터. 스파이크 높이 315cm, 블로킹 높이 309cm.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여 인하부중, 인하부고를 거쳐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인천 성골 라인. 입학후에는 대학 최고의 철벽 수비를 보여주던 레프트 장광균과 리베로 김주완, 라이트 정재경의 수비 라인과 해결사 구상윤, 김현석 등을 앞세운 특유의 짠물 배구로[3] 인하대학교를 대학배구 최정상에 올려 놓았다. 대학 시절에는 최고의 세터라는 칭호까지 얻었고,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인하대학교의 재단을 갖고 있는 대한항공현대캐피탈이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권영민은 현대캐피탈에 입단하게 된다. 과거 한장석, 최천식, 박희상인하대학교의 에이스급 선수들은 대부분 대한항공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하였다. 특히 인하부고 출신들의 경우는 대부분 인하대학교로 가지만 최태웅 & 석진욱 & 장병철, 일명 환상의 95학번인 인하부고 3인방이 인하대학교 진학을 거부하고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흐름이 깨졌고 프로화 이후로 드래프트제가 정착하면서 인하대학교-대한항공 라인은 거의 의미를 잃었다.[4]

2.2. 현대자동차/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이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병역 특례까지 받아 놓았던 권영민은 이경수 파동으로 잠실 드래프트를 중단하고 자유계약제로 전환한 시기에 세터 최대어로 평가받았고, 계약금 5억 원을 제시한 현대캐피탈로 가게 된다.[5][6]

2003년 가을에 방신봉의 항명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선수들이 집단으로 숙소를 이탈한 사건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송만덕 감독이 사퇴하였고, 이후 김호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김호철 감독은 권영민을 주전 세터로 낙점했지만 애초 플레이 스타일이 190cm 신영철 타입인 권영민은 김호철 감독의 눈앞에서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고, 거기다 현역 시절 성깔이 하나도 안 죽은 김호철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따라오기 힘들 유리멘탈의 소유자다 보니 잘 나가던 때도 매일 까이는 게 일상사였다. 작전 타임 때만 되면 김호철 감독은 세터를 갈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권영민은 호된 질책을 받았고, 심지어는 김호철 감독에게 맞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V-리그 2회 우승팀의 주전 세터였다는 건 사실이다. 특히 숀 루니가 활약했던 때 숀 루니와의 콤비 플레이인 C속공은 천하의 삼성화재도 막아 내지 못했다. 190cm의 큰 키에 백 토스와 빠른 토스에 능했던 권영민은 특히 깊은 각도에서 크로스를 코트 안으로 우겨넣을줄 알던 숀 루니전가의 보도 C퀵으로 삼성화재 철벽수비를 농락했고, 이 덕에 삼성화재를 꺾는데 큰 수훈을 세웠었다.

문제는 숀 루니대한민국을 떠난 후였다. 이후에 들어온 외인 공격수들에 맞는 토스를 제대로 주지 못해서 영 결과가 좋지 못하다.

직계 선배이자 이제는 팀 선배가 된 최태웅이나 감독이었던 김호철, 그외 수많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전 세터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새가슴이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 멘탈이 약한 편. 그뿐인가? 아무리 선수 경력이 늘어나도 토스 퀄리티는 제자리 걸음. 그 때문에 박철우삼성화재에 보내고 보상 선수로 들여온 최태웅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차라리 송병일 대신 이 선수를 우리캐피탈트레이드했으면 나았을 텐데.[7] 최태웅이 부상 중이면 으레 국대 주전 세터를 하지만... 경기를 보면 한숨만 늘 뿐.

이 선수 덕에 말아먹은 경기가 한 두 경기가 아니다. 특히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토스가 나쁘니 공격은 범실로 이어지거나 블로킹에 막히기 십상이다. 작전 타임 때만 되면 김호철 감독의 질책은 모두 이 선수의 몫이 된다.

박철우현대캐피탈로 입단하도록 권유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박철우는 경북사대부고 졸업을 앞두고 "제2의 장윤창" 혹은 "제2의 김세진"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많은 대학교들의 스카웃 제안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박철우는 대학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실업 팀으로 입단하기로 마음먹고 삼성화재에 가려고 했으나, 권영민이 박철우를 갈궜다"현대캐피탈로 와서 삼성화재를 이겨 보자"라고 제안하여 박철우현대캐피탈로 방향을 바꾸었다.

프로리그 경기에서는 최태웅에게 밀려 제2 세터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국가대표로는 한선수, 최태웅이 주춤하면 바로 투입해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세터로 간간히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적어도 국가대표 경기에서 세팅 플레이는 그리 나쁘지는 않은 편.

2007년에 결혼하여 딸도 있다.

2014년 12월 29일 같은 팀의 레프트 박주형과 함께 한국전력의 레프트 서재덕을 상대로 임대 트레이드되어 한국전력으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큰 논란이 일어난 끝에 12월 31일 트레이드가 최종 무산되며 현대캐피탈로 돌아갔다.

2.3.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KB손해보험 스타즈

결국 시즌을 마치고 최태웅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내정된 후, 2015년 4월 9일에 레프트 정영호와 세터 노재욱을 상대로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에 트레이드됐다.

2016년 1월 14일 친정 팀과 맞붙었던 원정 경기에서 통산 12,000세트를 달성하였다. 이는 역대 최초 기록이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KB손해보험은 현대캐피탈에게 패했다는 것.....

2.4.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7년 8월 18일 전진용과 맞트레이드되어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이적했다. 2017-18 시즌은 사실상 주전으로 뛰게 될 전망인데, 주전 세터 강민웅이 8월 31일 연습경기 도중 대퇴부가 파열되는 매우 큰 부상을 입고 시즌 아웃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꾸준히 출장한 결과 2018년 1월 31일부로 남녀 통틀어 최초로 13,000세트를 뛰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3. 은퇴

2017-18 시즌이 끝난 후 선수단이 휴가를 보내던 시기에 김철수 감독에게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이젠 후배들을 위해 내려놓을 생각이라고.

그 뒤로 한국전력 세터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가 장병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1] 34세손 '영(寧)'항렬.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상당히 높다. 동갑내기 야구선수 권오준이 항렬상으로 조카뻘이 되고, 4살 연상인 권용관의 고조할아버지뻘이다.[2] 스타즈의 최강세터~ 권영민! 스타즈의 최강세터~ 권영민! KB 스타즈 최강의 세터 영민~어딜봐서 최강이라는거냐[3] 권영민의 단점은 여기서 나온다. 구상윤, 장광균, 김현석, 정재경, 박종훈 등 당시 전원 195cm 이하의 단신 공격수이 주전으로 나와서 스피드와 조직력, 대학 무대에선 삼성화재 수준이었던 철벽수비 덕에 자신이 실수해도 수비로 다시 건져올려서 셋업하면 되는 인하대학교 시절과 달리 프로의 현대캐피탈인하대학교 시절과 정반대인 높이를 앞세운 공격에 수비는 오정록 한 명으로 버티던 팀이다보니 공격에서 두세번이 허용되지 않았다. 자기 토스 스타일도 높이보다 횡스피드와 테크닉에 의존하다 보니 그의 낮고 빠른 C퀵을 변태 크로스로 정확하게 성공시키던 숀 루니 시절을 제외하면 거포 외국인 중심으로 바뀐 대한민국 프로배구 환경에 맞지 않아 전환에 실패한 케이스. 무엇보다, 앞서 언급된 인하대 팀 동료들이 전부 대한항공으로 갔는데, 권영민 혼자만 현대캐피탈로 갔다.[4] 반대로 드래프트제 이후로는 신영수, 강동진, 이영택, 한선수, 진상헌한양대학교 출신이 많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한양대 라인이 되었다.[5] 정식 입단 발표는 12월 말이나 되서야 이뤄졌는데, 인하대학교가 권영민한테 취업지원서를 교부하지 않은 채 미적미적댔기 때문이었다. 인하대 라인에서 간만에 터진 대형 세터인 권영민을 노리던 대한항공이 암암리에 현대캐피탈행을 반대했던 탓이다.[6] 다만 항공이 신진식 때처럼 막지 않은 것은 당시 이경수 파동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여론을 상당히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영민의 입단을 반대했다간 본인들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7] 송병일은 그나마 강서브를 구사하기라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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