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1:18:19

여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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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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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b9d><colcolor=#fff> 감독 김호철
코치 여오현 · 김재훈 · 안준찬 · 크리스티안
스태프 채지수 · 장민영 · 노승환 · 이예슬아 · 김현주 · 임우진 · 하혜라 · 문진희
아웃사이드 히터 1 이소영 · 10 고의정 · 11 육서영 · 15 황민경 '''[[주장|
C
]] · 16 주연희 · 22''' 전수민
아포짓 스파이커 19 빅토리아
미들 블로커 2 이주아 · 7 김희진 · 12 김채연 · 13 최정민
세터 3 최연진 · 4 김윤우 · 5 김하경 · 6 천신통
리베로 8 김수빈 · 14 김채원 · 17 구혜인 · 18 김세율 · 21 남은서
타 V-리그 여자부 구단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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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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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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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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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83~? ?~2002 2002~2010 2010~2012 2012~2014
<rowcolor=#000000> 미상 임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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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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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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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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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23~2024 2024~
문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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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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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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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5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7 2019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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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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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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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의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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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통산 최다 출장 625경기
통산 최다 수비 153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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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수석 코치
Hwaseong IBK Altos
파일:여오현코치_24IBK.png
여오현
呂午鉉 | Yeo Oh-hyun
<colbgcolor=#004b9d> 출생 1978년 9월 2일 ([age(1978-09-02)]세)
인천광역시[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신장 175cm|체중 70kg
직업 배구 선수 (리베로 / 은퇴)
배구 코치
학력 유성초등학교 (졸업)
대전중앙중학교 (졸업)
대전중앙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학사)
가족 관계 아내
장남 여광우(2006년생)
차남 여광민(2010년생)
프로 입단 2000년 삼성화재 배구단
소속 <colbgcolor=#004b9d> 선수 삼성화재-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00~2013)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2013~2024)
코치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2015~2024 / 플레잉 코치)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2024~ / 수석 코치)
병역 예술체육요원[2]
응원가 삼성 시절: 카일리 미노그 - The Loco-Motion[3]
현대 시절: 구단 자작곡[4],
박기영, 호란 - 달라송[5][6]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입단 이후
3. 지도자 경력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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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photo-media.daum-img.net/20091107220806369.jpg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51225153625591ustv.jpg
이제는 볼 수 없는 삼성화재 시절 브라운오현

대한민국배구 선수 출신 코치. 現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수석 코치.

현역 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베로였으며 별명은 슈퍼 땅콩[7]. 이호를 잇는 국가대표 리베로로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소속이었다가 2013년 FA로 이적하여 2024년까지는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소속이었다. 불혹의 나이인 45세까지 대한민국 리베로의 정상에 자리매김했던 레전드다.

V-리그 출범 이후 개최한 열아홉 번의 챔피언 결정전[8] 동안 열다섯 번을 출전했다. 그리고 그 중 아홉 번을 우승했다. 이 기록만 보아도 단순히 리베로 포지션에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배구 역사에서 위대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대전에서 초-중-고 계속 배구 선수 활동을 했지만 작은 신장 때문에 기껏해야 보조 공격수로 활약하는 게 전부였고 대학교도 강팀이라고 할 수는 없는 위너 홍익대학교 97학번으로 진학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선수층이 얇았던 홍대 배구부는 1996-97 시즌부터 리베로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오현보다 15cm나 큰 다른 선수에게 리베로를 보게 하고, 한동안 여오현에게 레프트를 맡겼다.

2학년 말부터 리베로를 맡게 되지만, 여전히 홍대 배구부는 영 좋지 않았고, 2001년 실업 배구 드래프트에서 1, 2라운드에서 전부 무시를 당하면서 3라운드 1순위로 삼성화재의 지명을 받는다.[9]. 삼성화재는 이 지명으로 그나마 약점이었던 리베로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며, 독주 체제를 굳힌다.

2.2. 프로 입단 이후

2001년에부터 '월드 리베로' 이호의 노쇠화로 이호 대신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그 후에 FIVB 월드 리그 등의 국제 대회를 통해 브라질의 베르나르두 헤젠지 감독을 비롯한 강국의 감독들이 유럽 빅리그에 바로 뛰어도 될 선수로 지목받을 만큼 세계적인 리베로다. 국제 대회 가면 정말 불쌍하리만치 혼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그래서 간혹 월드리그 디그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또 현대 배구에서 리베로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인 2단 연결 능력뿐만 아니라 랠리 중 오픈 세팅 능력도 웬만한 세터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 준다.[10] 삼성화재 전성기의 몰빵배구를 가능하게 한 두 번째로 중요한 선수였다.(첫번째는 당연히 외국인 주공격수). 남자 배구 대표팀의 실질적인 주장이기도 하다.[11]

2012년 6월에 월드리그가 끝난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자유계약 신분이 되어 원소속 팀인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제시받았지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거절하였다.[12] 2차 협상 마감일인 2013년 5월 20일 현대캐피탈에 먼저 전화를 걸어 불과 50분만에 연봉 2억 9천만원에 3년 계약을 맺으며 현대캐피탈로 이적하였다. 이에 따라 현대캐피탈의 센터 이선규가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삼성화재로 옮겨갔다.

그리고 왜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리베로라는 평가를 받는지 2013년 KOVO컵에서 여실히 보여 주었다. 현대캐피탈이 이전과는 달라진 수비력을 선보이게 되었고, 안정된 서브 리시브와 디그로 첫 경기를 졌지만 나머지 세 경기를 내리 이기며 KOVO컵을 우승하였을 때 그의 기여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대한배구협회가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예선전을 앞두고 그를 불렀는데 이에 당시 박기원 대표팀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나온 후에는 무단 이탈이라는 보도까지 들었다.[13]

그러나 얼마 못 가 스포츠조선에서 보도한 여오현의 심경 고백에 관한 기사가 나갔다. 당시 여오현의 말,
내가 자유 계약(FA) 신분일 때 박 감독님께서 안부 전화를 하셨다. 감독님께서 '소속팀도 없는데 대표팀에 들어와서 훈련하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런데 그 자리에서 딱 잘라 '아휴, 못하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주시면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선배님의 배려에 대한 예의성 인사였다. 감독님도 내가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내 말이 인사치레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감독님과 사적으로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요청이 와서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안부 인사 차원에서 말씀드린 건데…. 마치 내가 공식적으로 얘기한 것처럼 비춰지면 나중에 누구와 대화를 할 수 있겠냐. 답답하다. 숨겨진 비밀은 없다. 그런데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사적인 통화 내용을 가지고 공적으로 비약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어떤 조직 사회에서 어느 누가 선배에게 못 하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저 사적인 대화였을 뿐인데 이를 부르면 언제든 대표팀에 오겠다로 확대해석한 것일 뿐이다. 당연히 여론은 대한배구협회를 비난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연경 때문에 배구협회가 욕을 한바가지로 먹은 마당에 일을 이렇게 저질렀으니 말이다.

2015년 4월 10일 최태웅호 현대캐피탈의 플레잉 코치로 선임되었다. 스피드 배구 시대를 맞아 제2의 세터로서도 능력 있음을 보여줘, 리베로가 지녀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5-16 시즌 올스타전에서 브라운 복장을 하고 여자부 경기에 난입을 했다. 이러고도 백어택 성공을 했다. 문제는 인형 발 땜시 라인침범으로 득점 무산

2016-17 시즌 올스타전에서는 밀어내기 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정민수가 공격을 몇 차례 시도한 끝에 공격 성공하면서도 호흡 곤란[14]이 와서 교체를 요청하자, 본인이 직접 코트에 들어갔다.

2018-19 시즌 OK저축은행을 상대로, 4세트 0:0 랠리에서 세트된 공을 언더핸드로 넘겨 팀의 득점에 기여했다.

2020-21 시즌에 연차로는 20년 후배인 박경민에게 주전을 내주고 코치 업무에 조금 더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박경민이 경험이 많이 부족해 여오현이 은퇴하면 박경민과 이준승 혹은 제대하는 라광균으로는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최소한 다음 시즌까지는 뛸 것으로 보인다.[15]

2021-22 시즌에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원 포지션인 리베로가 아닌, 레프트로 출장했다. 기사. 물론 진짜 공격과 서브, 블로킹 등을 담당하려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수비 보강을 위해 투입한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16] 45세 프로젝트 또한 끝나는 시점으로 은퇴를 고려 중인지 협상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1년 재계약을 하며 한 시즌을 더 뛸 것으로 보인다.

2022-23 시즌은 45세 프로젝트 마지막 해인 데다 시즌 전 인터뷰에서 '마지막 시즌'이라고 계속 언급해왔기 때문에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리베로인 만큼 영구 결번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다.[17]

40대 중반임에도 건재한 서브 리시브 능력을 보여 주며 전반기 주전 리베로로 경기에 나섰다. 결국 2023년 2월 21일 V-리그 최초로 정규 리그 600경기 출장 대기록을 세웠다.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는 많은 선수가 장수하여 이 기록을 깨는 후배가 나오기를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2023-24 시즌을 앞둔 선수 등록에서 여전히 선수로 나오면서 현역으로 뛰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순 없어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예전같이 주전 리베로로 뛰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백업 리베로로는 괜찮은 기량은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특히, 시즌이 지나며 박경민이 특정 자리에서 목적타성 플로터 서브를 받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데 이런 목적타성 서브를 받는 데에는 노련한 여오현이기에 이를 커버하기 위해 목적타 플로터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의 서브 때에는 박경민 대신 리시브를 받으러 들어가기도 하고 있다.

2024-25 시즌을 앞두고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며 선수 은퇴와 동시에 현대캐피탈을 떠났다. 진작에 45세 프로젝트에서 설정한 나이는 한참 지났기에 현대캐피탈은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최태웅 감독 경질 후, 외국인 감독을 중심으로 코치진을 개편하던 차였기에 팀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리베로 난을 겪고 있는 구단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하였으나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김호철 감독과의 동행을 선택하였다.

여오현은 2024년 10월 27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시즌 1라운드 현대캐피탈-대한항공 경기[18]에 앞서 은퇴식을 갖고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현대캐피탈은 팬들과 여오현의 은퇴 기념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영원할 핸드프린팅을 남기는 등의 행사를 통해 레전드의 발자취를 배웅했다.

3. 지도자 경력

3.1.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수석 코치

현대에서 9년간 플레잉 코치를 맡다가 단번에 수석 코치직에 올랐다. 동시에 김호철 감독과는 지도자로서 재회했다.

4. 여담

  • 삼성화재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던 2012-13시즌에 팀이 1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LIG손해보험에게 패한 이후로 연패 위기로 위태로워지자, 결국 고희진과 함께 삭발을 했다. 이후 경기에서도 삭발 투혼을 보여준 끝에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시키는 데 공헌을 했고 결국 팀은 챔프전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결국 통합 우승을 했다. 2013년 새해 첫 경기에서도 고희진과 함께 삭발 투혼을 보여 주었는데 당시 해설을 맡았던 김세진 해설 위원의 말에 의하면 여오현의 머리를 레오가 직접 깎아줬다고 한다. 아무튼 삭발을 하고 난 이후로 팀은 각성이 되었는지 이 날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진행한 2012-13 시즌 올스타전에서 문성민, 최태웅과 함께 모습을 비추자 중계진이 빡빡이 트리오라고 비유를 했는데 사실 최태웅은 당시 암에 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투병 차원에서 머리를 잘랐고 여오현은 서술했다시피 당시 소속팀이었던 삼성화재가 LIG손해보험에게 패한 이후 연패 위기를 벗어나고자 고희진과 함께 삭발 투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문성민은 2011-12 시즌부터 새로운 마음을 가지자는 의미로 삭발을 했다. 이후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2013-14시즌 후반기에 들어서 여오현을 비롯한 팀원들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전원 삭발을 했다.
  • 2017년 1월 5일 장남 여광우가 얼마 전 배구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포지션은 아빠와는 다르게 세터이며 롤 모델을 노재욱으로 손꼽았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 남양초등학교에 다닌다. 그 뒤 8월 25일에 현대캐피탈 배구단이 이 학교 배구부를 캐슬에서 열리는 배구 교실에 초대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송산중을 거쳐 2022년에는 송산고 1학년에 재학 중이며, 신장 175cm에 서브가 강하다고 한다. 이후 2023년 3월 3일자 기사 하나에서 키 때문에 리베로로 전향했다고 한다.기사 링크 그러나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를 닮아 타고 난 수비 실력 때문에 고교 리베로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U-19에도 승선하였다. U-19에서는 선배 리베로 강승일이 탄탄하게 받히고 있었기에 중학교 시절부터 장점이었던 서브를 살려 원포인트 서버로 투입됨과 동시에 후위 수비 강화의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 연속 서브 상황을 종종 만들어 내고, 좋은 수비 감각으로 디그나 아웃되는 볼 판단 능력을 보이며 남녀 배구 모두 국제 성적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루는 데 기여하며 희망을 남겼다.
  • 차남 여광민도 배구를 하는데 형과 같은 세터 포지션이라고 한다.
  • 2020년 11월 21일 KB손해보험전에서 서브 득점을 비교할 때 현대캐피탈의 대표로 등장했다. 비교 상대는 케이타였지만 여오현은 리베로이기에 서브를 넣을 수 없는데 3세트 내내 현대캐피탈의 서브 득점이 0점인 것을 비꼬는 것 같다.
  • 2022년 1월 6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 현대에서의 전직 감독 최태웅과 두 살밖에 차이가 안났다.
  • V-리그 남자부 최후의 원년 멤버 3인 중 한 명이었다. 실업배구 시절부터 뛰었던 박철우, V-리그 출범 시즌 드래프티인 하현용과 함께 23-24시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는데, 시즌 종료 후 세 사람이 나란히 은퇴를 결정하며 이들 세 선수와 V-리그 원년 시즌은 역사로 남게 되었다.[19]

5. 관련 문서



[1] 유년기에 대전광역시로 이주했다.[2]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3] 최강삼성 슈퍼땅콩 여오현~ 삼! 성! 여!오!현! x 2[4] 코트를 누빈다 천안의 여오현 언제나 한 발 앞선다 (현대 여오현) x 2[5] 현대 현대 현대 여오현! 내가 천안현대 수비하는 월드리베로~ x 2 / 예전에는 이 응원가를 썼지만 지금은 쓰지 않고 대신 구단 자작곡을 사용한다. 흔히 알고 있는 i30 광고 음악 맞다.[6]NC 다이노스 선수인 조영훈의 응원가이기도 했다.[7] 2016-17 시즌 올스타전에 해당 별명을 달고 출전해 페인트 공격으로 득점했다.[8] 2024년 시즌 종료 기준[9] 당시 삼성화재는 원래 구단간 합의로 1999년부터 드래프트를 도입하겠다는 합의를 새 삼성화재 단장이 깨버리고 95학번 싹쓸이(장병철, 석진욱, 최태웅)를 해 버린 사건으로 2년간 드래프트 1, 2순위 참여가 배제되었다.[10] 여오현의 후위 오버토스는 웬만한 세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정확도 높고 구질도 좋다. 심지어 최근에는 전위 언더토스 속공전개도 보여 줬다.[11] 참고로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리베로 포지션은 팀의 주장 마크(번호 밑에 그은 줄 표시)를 달 수 없었고, 대부분은 팀의 넘버2가 '형식적인' 주장을 맡곤 한다. 2011년 월드 리그 로스터를 기준으로 보면 실질적인 주장은 여오현이지만 로스터상 '형식적인' 주장은 권영민이다.[12] 외부에는 그렇게 알려졌지만, 자신에게 아픈 채찍을 가하기 위해서라고 이적 후에 고백하였다. 하지만 많은 배구팬들은 같은 팀의 박철우가 수비나 공격이나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여오현보다 더 많은 3억 3천만원을 받는데다 이강주우리카드 배구단에서 FA 자격을 얻으며 삼성화재로 돌아오면서 입지가 좁아지자 떠났다고 여기기도 한다.[13] 선수촌 무단 이탈 보도 기사는 스포츠서울 고진현 기자천하의 개쌍놈에 의해 처음 보도되었으며 고진현 기자는 이 기사에서 여오현이 대표팀을 은퇴한 것이 아니었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후에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여오현이 답답한 심경을 고백한 내용의 기사가 나가자 여론은 스포츠서울 고진현 기자를 비난하게 된다.[14] 다행히 정민수는 최태웅 감독의 응급 처치로 간신히 숨을 가다듬었다.[15] 적어도 서브 리시브에 있어서 여오현은 여전히 리그 최상급 기량을 유지했다.[16] 5번째 FA 자격으로 역대 최다이다.[17] 원래 달 수 있는 등번호의 숫자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있던 영구 결번은 모두 비공식이었으나 해당 시즌을 기점으로 번호 제한이 사라지면서 공식적으로 가능해졌다.[18] 시즌 홈 개막전이며 필립 블랑 감독이 홈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인 경기이다.[19] 참고로 여자부는 황연주임명옥이 24-25 시즌 현역 연장을 선언하며 유이한 원년 멤버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