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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박 2일 시즌 1이 어떤 프로그램이었나 가장 잘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배추고도 편의 엔딩[1] |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남녀노소 나이불문 모든 세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 방송사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무한도전과 함께 대한민국 예능 역사상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언급되는 시즌이다. 최전성기 시절에 초중고교에 다녔던 현재 대부분의 청년층 사람들에게 '1박 2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기를 이야기할 때 1순위로 거론되는 시즌이 바로 이 시즌이기도 하다.[4] 특히나 최전성기였던 2000년대 후반[5]에는 광고 수익과 추가 분배 수익도 어마무시했고, 멤버 개개인의 인기와 성장세도 엄청난 상승세를 이루는 등[6] 1박 2일과 제작진, 출연진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평가할 만한, 종영 후반부 들어서 생긴 여러 논란에도 재미와 인기를 놓치지 않으며 마지막 회에서도 여러 기대와 여운을 남기며 종영하면서, 1박 2일 역대 시즌을 통틀어 '박수 칠 때 가장 잘 떠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김종민 복귀와 2009년 말~2010년 초, 혹한기 대비/실전 캠프의 성공 이후 어느정도 7인 체제가 굳혀지려하던 2010년 6월에 김C의 번아웃 호소[7]로 인한 하차를 시작으로 그해 9월 MC몽 병역비리 사건과 이듬해 9월 메인 MC인 강호동의 탈세 의혹 및 은퇴 발언, 결정적으로 나영석 PD의 여러 피로 호소 등으로 인하여 전성기가 끝나갈 2010년 상반기부터 시즌1이 종영한 2012년 2월까지는 멤버가 계속 바뀌는 등 막판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8][9]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능국이나 제작진의 역량과 대우도 굳건했으며, 2009년에 전 멤버가 홈플러스 광고 촬영도 섭외되는 등[10] 인기와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았던 시즌이었고, 특히나 타 시즌이 소재 우려먹기, 타 예능 프로 베끼기, 출연진이나 제작진의 역량 부족[11]으로 인하여 매너리즘에 접어들 시점부터 역대급의 혹평과 악평 끝에 전성기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멤버들의 사건사고로 인한 잦은 멤버 변동 등으로 인하여 혼잡했을 시기에도 편법 없이 인기를 구사하며 막을 내린 1박 2일의 최고의 전성기이자 1박 2일을 상징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시즌 1이 국민예능으로서 한창 전성기를 유지한 2000년대 후반[12]에는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13] 2000년대의 시대상이 주로 반영되어 있으며 이 때의 일부 미션을 수행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된 지금 와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간간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내 길찾기 미션 같은 것이 나오면 멤버들이 지도를 들고 헤매는 장면을 간혹 볼 수 있고, 검색하기 위해 PC방에서 검색하는 장면 등, 현재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밖에 충주대학교[14]에서 진행한 사상 첫번째 이원 생중계 과정이나 전국노래자랑 출연 때 젊은 시민 관객들의 휴대폰 기종, 영상 50분 40초부터 멤버들의 휴대폰 통화 장면을 보면 그 당시 주로 쓰인 휴대폰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세월을 체감할 수 있는 옛날 프로그램인 것을 알 수 있다.[15] 다만, 무한도전처럼 대로변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주 컨셉이 아닌 단순 정해진 범위내에서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여행하는게 주 컨셉이다 보니까 딱히 시대상을 느낄 요소가 많지는 않다. 또한 지도의 경우에는 스마트폰과 상관없이 제작진 측에서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걸 금지해서 그런 것이고 가령 귀네미 에피소드에선 MC몽이 피쳐폰으로 몰래 길찾기[16]를 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본래 나영석 PD는 어느정도 연출 후 잠시 '쉬어가는' 기간을 만드는 '시즌제'를 도입할 것을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종영을 결정했었다. 물론 윗선 입장에선 '고작 이틀 쉬는건데 뭐가 힘든가'라고 볼 수 있으나, 1박 2일은 출연진만해도 밥 굶기기, 새벽촬영, 새벽집합은 예사였고, 서울에서 먼 지방에 가는 일이 있으면 아예 전날부터 오프닝 지역에 도착하느라 진을 다 빼는 경우도 있었다.[17] 거기다 출연진은 그나마 집합시간'만' 맞추면 되지만, 스태프는 카메라 세팅 때문에 더 빨리 도착해야 했다. 대체로 1~2시간 먼저 도착해야한다고 하니, 만약 멤버들이 새벽 6시 집합이면 스태프는 새벽 4~5시 집합이란 소리다.
심지어 전국의 여행지를 찾아가는 방송 컨셉상 여러 군데로 장소이동을 하고 또 촬영세팅을 하고 촬영을 하며 복불복 등을 진행해야 하는 순서로 인해 일반적인 사람의 루틴에 맞지 않을 정도의 시간대로 밀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실제로 저녁 복불복은 대체로 8~9시쯤에야 진행되었거나 밤 10시가 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잠자리 복불복은 자정을 넘겨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게다가 잠자리 복불복이 끝났다고 그날 촬영이 종료되는것도 아닌데 방송 분량을 뽑아내야하는 멤버들은 취침시간대임에도 일부러 잠을 자지않고 분량을 뽑는일도 많아 당연히 이를 촬영해야하는 스태프들 역시 잠을 자기 힘든 상황이었고 실제 취침에 드는시각이 새벽 3시가 넘거나 심지어는 새벽 5시에 잠에들어 8시나 9시에 기상하는 하드코어급 진행이었다. 결국 출연진이건 제작진이건 말이 이틀이지 사실상 철야 수준의 강행군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강행군과 더불어 뛰는게 기본이라고 볼 정도였다. 즉,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데 식사도 온전치 못하고, 와중에 몸은 엄청 구르는 셈이다. 문자 그대로 골병나는걸 걱정해야할 수준의 스케줄이 1박 2일 스케줄이며, 실제로 숙련된 스태프가 아닌 스태프들이 일하다 뻗는 경우도 방송으로 나왔다.[18] 한마디로 예사 강행군이 아니며, 이마저도 촬영'만' 그렇고, 만약 오지에 촬영을 가는 경우 스태프들이 짐을 옮기느라 고생하는건 덤이다. 이게 극단적으로 나온게 바로 거문도 등대 편.
이렇듯 1박 2일은 스케줄 자체가 매우 강행군이라 시즌제를 고심해야할 필요가 높았으나, 결국 시즌제가 불발되며[19] 전성기로 회차되던 1박 2일 시즌 1은 약 5년 6개월의 강행군을 마치고 종영했다.
시즌 4와 더불어 역대 출연 멤버가 8명이 아닌 시즌이다.[20] 또한 시즌 3와 더불어 연예계에서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는 멤버가 두 명이 있다.[21]
또한 이후 시즌에서는 이 시기만큼의 높은 텐션이 나오지 않는다. 제 2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즌 3 유호진 체재 때도. 강호동처럼 중심을 강하게 잡아주는 멤버가 이 이후로 전혀 없었고, 시즌 1의 멤버들만큼 판을 키우고 상황을 잘 깔아서 이어나가는 역량을 지닌 멤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2. 준비됐어요 (2007.05.06 ~ 2007.07.29)
자세한 내용은 준비됐어요 문서 참고하십시오.1박 2일의 전신이자 프리퀄 준비됐어요는, 시즌 1의 마지막에서 시작점으로 언급되었다. 시즌 1 원년 멤버들도 준비됐어요 포즈를 몇 번 했고, 짧지만 복불복이라는 1박 2일의 기초 아이디어를 얻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시즌 1에서 당시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나올 때의 언급은 그들이 아직 사람답던 시절이었다.
3. 이명한, 나영석 PD 체제[22]
3.1. 초창기 (2007.08.05 ~ 2007.12.30)
1박 2일 원년 멤버 라인업[23] |
극초창기의 멤버 구성은 강호동을 중심으로 3강 1중 1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강호동과의 합이 가장 좋아 에이스로 꼽히던 멤버는 김종민이었으며, 노홍철과 지상렬은 강호동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분량을 뽑아내는 핵심 멤버들이었다. 은지원은 밥값은 했지만 아직 캐릭터가 확실히 잡히지 않았던 상태라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었으며, 이수근은 적응에 힘겨워 존재감이 지나가는 마을주민만도 못할정도로 겉도는 상황이었다.[25]
첫 회에는 10%대 초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26] 이후 10%대 중후반 ~ 20%대 초반의 시청률을 달렸다가 이승기의 투입 부터 시청률이 20% 이상으로 고정 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무한도전의 아류작이란 소리를 듣거나 하는 등, 혹평이 매우 많았고 3개월 기간 동안 절반가량의 멤버들이 하차 및 교체 되는 등, 프로그램이 자리를 못잡아 우여곡절도 많았으며 이후 지상렬이 전주 편을 끝으로 스케줄 문제로 인해 하차하고[27] 그 자리에 임시 게스트로 정선 편에선 김영철, 독도 편에선 신지가 출연하였고 그 다음에 밀양 편부터 김C가 정식 멤버로 합류하였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목요일 녹화와 금-토 1박 2일 녹화라는 강행군을 매주 해오던 노홍철이 밀양 편을 끝으로 결국 하차하고[28] 제 1회 혹한기 대비캠프를 기점으로 그 자리를 이승기가 이어받았으며, 김종민이 부산 해운대 편을 끝으로 공익근무로 인하여 하차하고[29] 직후 가거도 편부터는 MC몽이 김종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3.2. 최전성기 (2008.01.06 ~ 2010.06.06)
한국 예능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6인 라인업[30] |
전성기 1박2일의 위엄[31] |
2008년 시즌부터 1박 2일은 본격적으로 국민 예능이라는 칭호를 달게 되었는데 이 시기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못해 환상적이었다. 준비됐어요 후속으로 방영한 2007년 하반기에는 멤버의 변동이 잦아 다소 혼란스럽던 시기였지만 2008년부터 김C, 이승기, MC몽으로 재구성된 6인 고정멤버 체제가 확립되면서 본격적인 상승가도를 타기 시작했는데 중심축이었던 강호동은 물론이고, 거의 전 멤버가 에이스마냥 분량을 폭발적으로 뽑아냈으며 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으로 꼽히는 김C도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음과 동시에 군데군데 촌철살인급 멘트를 던져가며 제 역할을 수행하였고 100회 특집인 강원 홍천편을 기점으로 확립된 강호동, 김C, 이수근의 OB팀과 은지원, MC몽, 이승기의 YB팀의 대결구도 또한 환상적인 밸런스구도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6인 체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전성기가 시작된 2008년엔 평균 시청률 20~30%대를 왔다 갔다 하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2008년부터 시즌 1이 종영할 때까지 시청률이 20% 밑으로 떨어진 회차는 닐슨 기준 3회, TNMS 기준 4회[32]뿐이다. 2009~2011년 초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밥 먹듯이 30%를 찍었고 한여름에도 30%를 찍을 때도 많았으며, 반년 정도의 기간 동안 시청률이 3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일요일 아침 9시 30분에 KBS2 TV에서 방영되는 재방송조차도 시청률 20%를 상회했을 정도.[33]
그야말로 KBS를 넘어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절이다. 전성기 시절인 2008년~2009년 사이에는 일요일에 1박 2일을 안보면 다음날 월요일에 학교에서 대화에 낄수조차 없던 시절이었고, 그외에 당시 유치원생, 어르신, 대학생 등 사이에서도 1박 2일의 인기는 대단하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여담으로 현재까지 김종민이 없던 유일한 체제이기 때문에 이 당시의 멤버들은 시즌 3로 넘어가면서 전부 하차했다. 김C와 MC몽, 강호동은 시즌1 도중 하차하고, 은지원, 이승기도 시즌1 종료후 하차하여 이수근만 시즌2로 넘어갔고, 그 이수근마저 시즌2 종료와 함께 불법도박 논란이 터져 하차하였다. 즉, 현재로썬 유일하게 전 멤버가 현재 하차한 체제다.[34][35]
2009년 12월 김종민 재합류 후 7인 라인업 (왼쪽부터 김C, 은지원, 강호동, MC몽, 이수근, 이승기, 김종민)
2009년 12월 27일 방영분부터 소집해제한 김종민이 다시 합류하여 2010년부터 7인 체제로 개편되었다.[36] 2010년 1월 3일 방영분인 혹한기 실전캠프 두 번째 이야기 편에서는 박찬호 선수가 등장하던 순간 분당 시청률 49.9%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또한, 이 방송은 평균 시청률 40.5%라는 꿈의 시청률을 기록, 21세기 최초 예능 시청률 40% 돌파 기록을 세우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10일 방송분의 박찬호 입수 때는 분당 시청률 51.3%을 기록[37]했으며, 10분간 50%대 시청률을 유지했다.[38] 그리고 2010년 1월 24일 방영된 흑산도 편은 시청률 41.9%를 기록하며 2주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약 한달 뒤인 2010년 3월 7일에 방영된 강화군 교동 편에서 43.3% 라는 경이로운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역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심지어 첫 재방송 시청률이 다른 프로그램 본방 시청률보다 높게 나오기도 했다.[39] 시청률 면에서는 당시 비교 대상이었던 무한도전[40]과 다른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압도했다.
그와 더불어 광고 수익도 엄청나 당시 회당 광고수익 수억 원, 1년 광고수익은 약 500억 원이었다.[41] 당시 광고 수익만으로 KBS 예능국 전체의 제작비가 충당되었을 정도. 아무튼 효자 프로그램 노릇을 한 덕분에 KBS에서도 1박 2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작진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은 물론이고,[42] 1박 2일 촬영에 항공 촬영을 위한 KBS 소속 헬기 지원과[43] 이동수단 복불복 차량으로 예능국장의 자가용[44]까지 내줬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지자체에 1박 2일 제작진을 사칭해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신고되기도 했으며, 제작진 측에서는 사기꾼들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전국 9개 도청, 6개 광역시에 보내기도 했다.#
즉 이 시절엔 국민들의 대부분이 일요일 저녁을 가족끼리 밥 먹으면서 1박 2일을 보는 게 보통이었다. 그만큼 전 연령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45] 멤버들과 제작진의 밸런스가 가장 잘 맞았다는 평이 많다.[46][47] 비록 시청자 입장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도의 자잘한 문제는 있었지만 그런 쪽으로 더욱 재미를 주곤 했다.
이 전성기 시절이 끝난지 어언 14년이 지났지만, 이 당시의 1박 2일을 한 편이라도 봤던 시청자들 사이에선 이때의 프로그램 구성, 이때의 멤버들, 이때의 스태프들이 정말로 그립다는 반응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 VOD 중 아무 회차를 무작위로 골라서 보아도 빵빵 터지는 장면이 많았으며 특유의 다큐스러운 분위기도 묘하게 섞이면서 중독성 있는 매력이 있다는 평이 자주 보인다. 해외 팬들 반응 일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게스트 섭외가 매우 드물었으며, 가끔 나오는 게스트들도 연예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48] 이 기간 중 연예인 게스트의 출연은 정말 손에 꼽을 수준으로, 밤낚시 투어에서 낚시 조언을 위해 출연했던 전 멤버 지상렬, 시청자 특집 때 나온 백지영, 김태우, 한민관, 김재욱, 이상민, 이상호로 구성된 개콘 팀, KBS 사옥 안에서 우연히 만나 게임을 같이 한 전현무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여기서 지상렬만 1박 2일 동안 함께 촬영을 진행했고, 나머지 연예인들은 시청자 투어 특별 공연이라든지 게임 진행을 위한 협조 등, 단발성 출연에 그쳤다. 영화로 치자면 조연이 아닌 카메오라고 부를 정도의 출연만 했던 것. 연예인이 아닌 유명인 게스트도 운동선수인 박찬호, 이만기, 양준혁, 여서도편에 잠깐 나레이션으로 나온 김소형, 강희선정도밖에 없었다.
메인 MC인 강호동은 44년 만에 예능인 최초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수상과 KBS 연예대상 2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어마무시한 업적을 쌓았다.[49]
십여 년이 지나서도 유튜브의 깔깔티비나 KBS JOY를 통해 1박2일 시즌 1 1화부터 시즌 1 종영까지의 풀 버전 회차들과[50] 레전드로 평가받는 회차들[51]이 다시 업로드되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KBS의 효자 노릇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KBS WORLD 채널에 거창 편부터 영어 자막이 달린 영상으로 업로드된 것도 있다. 과거에는 시청 제한이 없어서 한국 사람들이 보고 댓글을 달 수 있었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에 한국어 댓글이 달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지역 제한이 걸려서 한국 IP로는 볼 수 없다.
3.3. 과도기 및 침체기 (2010.06.13 ~ 2012.02.26)
김C, MC몽 하차 후 5인 라인업 (시계방향으로 강호동, 이승기, 김종민, 이수근, 은지원)
2010년 6월, 경주 수학여행 편을 끝으로 김C가 먼저 하차했으며, MC몽은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0년 9월 12일 촬영분 이후로 하차했다.[52] 2010년부터 메인 멤버인 김종민이 한창 적응 부족을 겪고 있었던 상황에서 출연자가 두 명이나 빠지면서 한창 1박 2일 1기의 위기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53] 하지만 출연진 하차 등으로 인한 매너리즘과 별개로 2010년 가을에 시즌 1의 5인 체제가 시작된 서울 당일치기 특집에서는 전 주 영주 편보다 1%나 시청률이 상승했고, 5인 체제 시작 직후에 방영된 즉흥여행 명사 특집 이만기 편, 6대 광역시 특집과 2010년 마지막 방영분인 우리끼리 산골 여행 편이 큰 호평을 받으며 침체기가 시작되었지만 2010년까지는 시청률 상으로는 동시간대 1위는 굳건히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1박 2일과 같은 프로그램상 지나치게 적은 출연진 인원수일수록 멤버들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강하지만, 오히려 메인 멤버 5명의 장점을 제작진과 메인 멤버들이 더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1박 2일만의 특색을 잃지 않고 잘 조율했다는 평이 많다.
한편 위기의 2010년이 지나 2011년 3월, 새로운 멤버로 엄태웅이 투입되면서 2010년 9월 MC몽 하차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6인 체제에 돌입했다.
엄태웅 영입 후 6인 라인업 (왼쪽부터 이승기, 엄태웅,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김종민)
2011년에 들어와서는 시청률도 다소 떨어져 30%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줄어버렸다. 7월 3일 나는 가수다 최종 경연 때 나는 가수다만 방송하는 특집 편성 때는 AGB닐슨의 조사에 의하면 23.3%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전 주의 29%에서 하락한 것이다. 그래도 이때도 무난한 내용으로 동시간대는 물론 예능 전체 시청률 순위 1위를 기록했고, 7월 10일자 방영분을 기점으로 200회를 돌파하는 등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일밤은 탈락자가 나오는 최종 경연을 방송하는 주에, 나는 가수다만 편성하고, 순위 발표는 1박 2일이 먼저 끝날 때까지 미루는 편집을 하는 등 전력 승부를 했으나 16.9%로 2위를 차지했고, 시청률 격차는 오히려 남자의 자격의 13.9%와 더 좁혀졌었다.
비록 시청률 1위 자리를 고수하긴 했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나는 가수다의 영향을 완전히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영석이 방시팝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를 애써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의 길을 고수하려 했으나 버틸 수가 없자 바로 여배우 특집을 기획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동 시간대에 배치되었으나 나는 가수다는 집드림을 제외한 단독 시청률 기준으로도 하락한 반면 1박 2일의 시청률은 상승했었다.
그러다가 강호동이 2011년 8월 10일, 갑자기 8월 방영분 촬영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는 의사를 표명해 혼란을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종편행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는 가운데, 제작진은 강호동을 붙잡기 위한 설득 끝에 6개월 뒤인 2012년 2월에 종영하고 그때까지 강호동이 계속 출연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곧바로 강호동의 과소납부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결국 2011년 9월 25일 방영분인 제3회 시청자 투어를 끝으로 강호동은 1박 2일 출연을 중단했다. 이런저런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제작진에서는 2012년 2월 종영 방침을 유지하고, 그전까지는 약 5개월동안 5인 체제로 프로그램을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강호동 하차 후 1기 마지막 5인 라인업 (왼쪽부터 엄태웅,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김종민)
메인 MC의 부재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듯했던 1박 2일이었지만, 시청률은 이내 회복세로 돌아섰고 2011년 10월 30일 방송분에서는 일요일 예능 1위 자리를 탈환, 다음 방송분인 11월 6일 방송분에서는 엄태웅 주연의 미스테리 극장을 보여주며 26.4%로 강호동 출연 중단 이후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기도 했다. 메인 MC가 사라지자 강호동식 스타일의 자극적이고 다소 오버스럽기까지 한 강렬한 진행이 사라지고, 그저 다섯 명 남자들이 여행 다니는 풋풋함이 느껴진다는 시청자 의견이 많다.
물론 메인 MC가 빠진 빈자리야 당연히 느껴지고, 부족한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5명 멤버가 모두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여 특유의 친화력과 재치로 여전히 깨알 같은 재미를 보여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특히 엄태웅, 김종민의 경우는 이전까지는 병풍에 가까운 캐릭터였으나 메인 MC 부재 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캐릭터가 더 살아나기도 했었다.[54] 때문에 5인 체제의 1박 2일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굳이 종영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의견도 꽤 많이 올라왔다.
그래도 2011년 KBS 연예대상 최초로 프로그램 대상을 수상했다.
은지원은 하차 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딩이라는 캐릭터에 한계를 느껴서 1박 2일은 아끼고 사랑하지만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55]
그 뒤 2012년 2월 26일에 화려한 전성기를 열었던 1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 2008년 9월 21일 방영분[2] 2009년 7월 12일 방송된 1박 2일 100회 특집에서 MC몽이 처음 언급했다.[3] 초창기의 이름은 '강호동의 1박 2일'이었다.[4] 시즌 2는 최재형 PD 시절까지는 시즌 1의 직속 후계라는 중압감에도 그럭저럭 선전했으나, 이세희 PD 체제 때 심각하게 무너져 혹평을 받고 막을 내렸다. 시즌 3는 김주혁과 시즌1의 신입PD 유호진 PD의 대활약과 노력 끝에 기로에 서있던 1박 2일에 있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할 정도의 역대급의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김주혁과 유호진 PD의 하차와 후임인 윤시윤의 부진과 유일용 PD의 삽질로 혹평을 받으며 서서히 하락세를 타다 김성 PD가 어느 정도 수습하려던 순간 정준영이 저지른 추악한 사건이 밝혀지면서 사실상 일부 팬덤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시즌'으로 거론되는 등 아예 흑역사로 평가받는 오명을 들으며 제대로 마무리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제작중단 상태로 있다가 간신히 시작한 시즌4는 그 이전의 명성에 이어 10~1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는 있으나, 화제성이나 재미는 예전만 못한 편.[5] 2008~2009년[6] 단, MC몽은 매너리즘의 시기인 2010년에 병역비리 의혹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계에서 퇴출되었고, 김C 역시 최고의 인기를 받을 때 하차했지만, 그 이후에는 방송에서 얼굴을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이 둘의 경우에는 애매하다. 공익근무로 인해 빠졌던 김종민은 군 복무 이후엔 부진했고 시즌 3에서야 포텐셜을 터뜨리며 성장세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시즌 1 한정으론 사실상 예외이다.[7] 하차는 2010년 6월에 했지만 사실 최전성기 시기였던 2009년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하차를 고민했고 나영석 PD와 여러차례 의논했다고 한다.[8] 이러한 사항 때문에 1박 2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시즌이자 1박 2일을 상징하는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개근 멤버는 은지원과 이수근 두 명으로 역대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개근 멤버가 적다. 참고로 시즌 2는 총 5명(이수근, 김종민, 차태현, 엄태웅, 성시경), 시즌 3는 총 4명(김종민, 차태현, 김준호, 데프콘)이 개근했다. 타 멤버가 개근 멤버가 되지 못한 이유는 김C, 이승기, MC몽, 엄태웅은 원년 멤버가 아니었으며, 지상렬과 노홍철은 원년 멤버지만 프로그램이 자리잡기전에 하차했고, 김종민은 2007년 말부터 2009년 말까지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하였고 강호동은 2011년 탈세 논란으로 인해 잠정 은퇴했기 때문이다.[9] 이 부분은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1박 2일 시즌 1의 원년 멤버가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처럼 하차나 멤버 변동 없이 오랫동안 출연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이다. 물론 저쪽 역시도 원년 멤버가 출연을 중단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노홍철, 엄태웅 등 하차 이후 사건사고를 일으킨 멤버들도 있고 또한 김C, 은지원, 이승기같이 번아웃을 호소한 멤버들도 존재하기 때문.[10] 하지만 이수근에 의하면 2009년 당시에는 김종민이 공익으로 잠시 빠진 상황이라 전 멤버가 광고를 찍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어쨌든 당시 없던 김종민을 제외하면 1박 2일에서 유일하게 방송에 나오는 모든 멤버가 광고 계약 및 촬영을 한 사례이다.[11] 물론 시즌 1에도 아예 역량부족이 없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초창기엔 이수근의 캐릭터를 갈피를 잡지 못해 개그 지분이 바닥이었고, 김종민 역시 복귀 이후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한동한 '노잼'의 아이콘이 되었다. 엄태웅 역시 시즌 1 당시엔 예능 새내기라 제대로 적응을 못해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수근은 시간이 지나자 '앞잡이'를 비롯한 캐릭터 확보로 안정감을 찾았고, 김종민은 다시금 '바보' 기믹 등을 찾으며 시즌 1은 몰라도 2 이후부턴 얼추 자리잡기에 성공했다.[12] 2008년에서 2009년[13] 2010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이 출시되어 보급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공교롭게 이 시기부터 1박 2일은 전성기가 서서히 끝나기 시작했다.[14] 현 한국교통대학교[15] 대부분 슬라이드폰과 폴더폰(일부 한정 가로본능)을 사용했지만 2010년 들어서면서 멤버 대부분이 아이폰과 갤럭시의 스마트폰으로 교체했다.[16] 2007년 이후 기종들은 물론 유료 서비스긴 하지만 티맵 등의 내비게이션 기능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곤 했다.[17] 사실 본래는 시작을 무조건 KBS 본관이나 동서울 톨게이트처럼 서울 근교에서 했으나, 이렇게 되니 서울에서 먼 지방으로 가면 도착할 때 이미 해가 져서 풍경 소개 등을 못한다고 오프닝 지점을 지방으로 옮긴 경우가 많았다.[18] 해당 회차는 비교적 초창기 스토리였는데, 당시 1박2일을 찍던 카메라팀이 상상플러스 촬영 때문에 스태프가 빠져, 뮤직뱅크에서 일부 차출이 됐던 상황이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날 뮤뱅 소속 스태프가 카메라도 내려놓고 뻗었었다.[19] 사실 경영진 입장에서 1박 2일을 시즌제로 돌리면, 1박 2일이 방송되지 않는 동안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송을 편성해야 하고, 반대로 1박 2일이 방송을 타면 해당 방송을 쉬게 해야 하는데, 요즘에야 시즌제가 워낙 보편적이라 그렇지, 시즌제 방송이 적었던 당시의 시선으로 보자면 경영진 입장에선 섣불리 시즌제를 허가하기 힘들었을 확률이 높다.[20] 시즌 1은 첫방송 6명+합류 4명으로 총 10명이 출연하였으며, 시즌2는 첫방송 7명+합류 1명으로 총 8명, 시즌 3는 첫방송 6명+합류 2명으로 총 8명, 현 시즌인 시즌 4는 첫방송 6명+합류 4명으로 총 10명이다.[21] 엄태웅(성매매), MC몽(공무집행방해).[22] 2010년 8월 22일부터 나영석 단독 연출 체제.[23] 왼쪽부터 김종민, 노홍철, 이수근, 강호동, 지상렬, 상근이, 은지원[24] 이후 나영석 PD의 언급에 따르면 초기에는 멤버들도 싹 다 갈아엎으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캐스팅이 전부 불발되면서 준비됐어요의 코너명을 1박 2일로 바꾸는 선에서 시작한 것이었다.[25] 그래도 직업이 개그맨이었던지라 아예 못 웃기지는 않았다.[26] 중간에 8%로 떨어졌다. 6회에서 나온 시청률로, 시즌2 321회, 시즌3 346회와 같이 역대 최저 시청률이다.[27] 드라마 <이산> 출연과 겹쳐서 빠졌다. 강호동과 나영석은 프로그램 내 지상렬의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마지막까지 하차를 만류했다고 한다.[28] 노홍철이 1박2일과 무한도전 스케줄이 조정되었다면 1박2일에 좀 더 남을수도 있었다.[29] 완전 하차는 아니었다. 나중에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며, 진짜로 소집해제가 되던 날 근무지에서 나온 직후 1박 2일 팀에게 납치돼서 다시 합류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공익근무로 하차한 뒤 소집해제후 복귀했다.[30] 왼쪽부터 은지원, 이승기, 강호동, MC몽, 이수근, 김C[31] 해당 시청률이 나온 방송은 2008년 6월 8일 백령도 편 1주 차 방송이며, 위의 영상이 나온 방송은 2008년 6월 22일 백령도 편 3주 차 방송이 끝나고 백두산 편을 하기 직전, 사전 미팅을 할 때 방영됐다.[32] 2012.1.22 방영분.[33] 당시 기사. 1박 2일 본방송 다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예능은 1박 2일 재방송이었다.[34] 만약 김종민이 1박2일을 하차하고 시즌 1~3 멤버가 복귀하지 않는 이상 시즌1 모든 체제는 물론, 시즌2, 시즌3의 모든 체제의 멤버들은 100% 하차하게 된다.[35] 다만 시즌3로 넘어가면서 1박2일은 또 다른 여섯 멤버들(김주혁, 김준호, 차태현, 데프콘, 김종민, 정준영)로 2년간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시즌1 전성기 당시 신입pd였던 유호진pd는 시즌3 출범때 메인 pd가 되어 1박2일 제1전성기와 제2전성기를 모두 경험하였다.[36] 나영석이 밝히길 김종민이 입대를 할 때 소집해제하면 바로 1박 2일에 재합류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37]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이 시간에 TV 보던 모든 사람들의 절반이 1박 2일을 보고있었다는 것이다.[38] 2010년 당시 기사,시즌 1 종영 당시 기사[39] 2008년 기사, 2009년 기사, 2010년 기사.[40] 무한도전 역시 당시 최고 인기의 프로그램이었으며, 1박 2일과 비견될 만한 프로그램이 무한도전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청률에서는 요일의 차이를 감안해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41] 링크1, 링크2, 링크3[42] 공영방송 특성상 많이 받진 못했다. 나영석 PD의 저서에 따르면 한 번은 천만원이 나왔는데 세금을 공제하고 스태프와 전부 N분의 1로 나눠가져보니 본인에게 남은 몫은 39만원에 불과했다고[43] 2024년 현시점에서는 드론을 사용했을 것이다. 당시엔 드론이 주류로 자리 잡기 전이라 헬기를 타고 촬영했다.[44] 복불복 차량으로 나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멤버들이 사용하지는 못했다. 차종은 그랜저 XG로 이런 차량이 사용할 수 있는 차량으로 제시된 것만으로도 이미 대우가 남다른 셈이었다.[45] 이 부분이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차이점이었는데, 무한도전은 참신한 아이템과 트렌디한 연출로 인터넷 상 화제도와 젊은 층에서의 인기는 대단했지만 중년층과 노년층에게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그에 반해 1박 2일은 여행과 복불복이라는 고전적이고 단순한 아이템으로 더 원초적인 웃음을 뽑아냈고 그 때문에 전 세대에서 두루 인기가 높았다.[46] 제작진의 기획과는 상관없이 멤버들이 알아서 방송 분량을 뽑아내고, 더 나아가 제작진들마저 멤버들 못지않은 별명과 캐릭터성이 확립되어 가는 등, 연기자들과 스태프들 모두가 재밌는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을 것이란 평이 많다. 실제로 어땠을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방송 화면에 나온 모습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작진도 스태프 관련 VJ 촬영이나 목소리를 종종 내보내기도 하면서 이들도 1박 2일의 일원임을 나타내었다.[47] 예를 들어 스태프들이 전부 야외 취침하던 영암 편에서, 은지원이 스태프들의 거지꼴을 보고 "잘 만하네"라고 외치자 스태프들이 지원아 이리 와라며 대응하는 장면, 3회 혹한기 대비캠프에서 폭설로 인해 걸어서 산을 내려오게 되었는데, 산을 내려온 후 만난 연기자와 스태프 간의 대화. 특히 VJ들의 "(넘어지고 힘들었지만) 근데 진짜 재밌었어"라는 사적인 대화가 이 프로의 촬영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48] 시청자, 외국인, 일반인 친구, 외국인 근로자 등.[49]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백상예술대상은 예능 쪽에 유독 홀대가 심해서 강호동 이후에도 제49회, 제57회 유재석, 제51회 나영석 PD가 탄 게 정도였고, KBS 연예대상에선 지금까지 2회 연속 대상 수상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KBS는 2회 연속 수상은커녕 특정 연예인의 2회 이상 대상 수상도 다른 방송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2023년 현재 KBS 연예대상 2회 이상 수상자는 임하룡 - 강호동 - 유재석 - 신동엽 - 김종민 - 문세윤 단 6명밖에 없다.[50] 채널 담당자의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업로드가 누락된 회차가 존재하는데 3화가 없다. 다만 깔깔TV에선 하이라이트 버전에 있는데, 풀버전 영상만 빠진 것으로 보면 모종의 이유로 고의로 누락시킨 것일 가능성도 있다.[51] 2008년부터 2010년 초반 사이 방송분(강호동, 김C, 이수근, 은지원, MC몽, 이승기 6인 체제와 김종민 복귀 후 7인 체제)이 가장 인기가 많다.[52] 그 다음 편인 경북 영주 편에서 나오긴 나왔지만, MC몽이 나오는 부분은 거의 통편집당했다. 그런 이유로 1주 분량으로 줄었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53] 김종민의 적응 부진과 더불어 7인 체제였던 방송이 1년도 안 되는 시기에 급속도로 5인 체제로 전환되면서 방송 분위기 문제도 동시에 겹쳤는지, 2010년에는 연례행사처럼 해 오던 연말 혹한기 대비캠프를 아예 진행하지 않았다.[54] 물론 김종민은 2010년 5인 체제 전환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것에 성공했으며 특히 게임이나 레이스 진행 때 종종 벌이는 배신 이미지를 잘 활용하여 비록 밉상 이미지를 받긴 했지만 게임의 흐름을 흥미진진하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적도 많다. 당장 강호동 하차 이후에 조금 살아난 엄태웅과 달리 이전부터 이미 김종민은 캐릭터 구축을 성공하고 있었다.[55] 물론 1박 2일 하차 이후에도 신서유기 등지에서 은초딩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성을 가끔 보여주긴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많이 과묵하고 암묵적으로 머리를 쓰는 캐릭터 형태로 바뀌었다. 사실 1박 2일 시즌1 후반기인 2010년부터 은지원이 게임에 임하는 전략 자체는 초딩이라는 별명답지 않게 굉장히 비상했으며 특히 충남 청양 대장 레이스 편에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가 이미지가 신서유기에 들어와서는 미친 자, 구美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미는 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