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8:10:57

한유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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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SG 랜더스 소속 외야수 한유섬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경남고 시절에 1년 선배인 이상화, 이재곤 및 동기인 장성우, 하준호, 신본기와 함께 경남고의 전성시대를 이끌면서 경남고청룡기 2연패(2006~07)에 기여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 경성대 1학년 때부터 당시 4학년이던 김회성과 함께 팀의 주전 타자로 활약했고 4학년 때는 2011년 야구 월드컵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는 등 대학 무대에서 괜찮은 타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3루수와 우익수를 오가면서 다소 어정쩡한 포지션 문제와 수비력이 발목을 잡아서 결국 9라운드로 지명을 받아 계약금 3천만 원을 받고 간신히 프로 무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1][2]

고교+대학 시절 성적은 122경기 409타수 117안타 타율.286 8홈런 82타점 7도루 59볼넷 70삼진. 고교+대학 통산 100안타를 치는 선수는 거의 없는 걸 감안하면[3] 꾸준히 좋은 활약을 했다는 것이다.

3.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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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2 시즌

마지막 라운드 지명자[4]가 SK 1라운드 지명자보다 거의 2달이나 앞서서 데뷔했다. 5월 2일 1군 엔트리 등록, 5월 3일 KIA전 12회 초 첫 타석에 나왔는데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났다. 그리고서 경기 출장 없이 5월 7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관련기사

이후 7월 8일 1군으로 돌아와서 7월 11일엔 선발 출장했으나 2타수 무안타 1삼진 후 교체되었다. 그 이후 7월 27일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중 인대손상으로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3.2. 2013 시즌

3월 3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3번타자이자 1루수로 출장하여 2타석 연속 삼진 후 세 번째 타석에서 1타점 2루타를 치는 등, 3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으로 제몫을 해내며 이날 출전한 신인급 선수들인 이명기, 조성우와 함께 좋은 인상을 남겼다.

5월 5일 대전 한화전 원정경기에서 안승민을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2할대 중반의 타율과 3홈런 16타점의 성적을 기록하여, 이명기만큼은 아니지만 클러치 상황에선 그럭저럭 타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5월 8일 문학 두산전 홈경기에서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두산 마무리 오현택을 상대로 시즌 4호 동점 솔로포를 때려내며 팀의 끝내기 승리에 일조하였다. 5월 10일 넥센전에서는 2회 실책으로 크리스 세든의 실점을 늘렸으나 4타석 3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5월 18일 박재홍 은퇴식날에 시즌 5호 홈런을 쳤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SK는 강우 콜드 게임으로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주로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는데 수비도 괜찮은 편이라 박재상을 밀어낼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는 상황. 이명기는 타격은 괜찮지만 아직 고질적인 수비 불안 때문에 김강민의 수비력으로 눈이 높아진 팬들의 기대에는 살짝 모자란 것과 비교하면 한동민의 좌익수 포지션 탈취는 생각보다 용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좌익수로 출장한 경기는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없고, 보통 우익수 혹은 1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사실상 최정핵우산용으로 4번 타자에 낙점되었으나 의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활약을 더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김상현이 트레이드로 SK에 오면서 5번 타자로 내려갔으나 김상현이 기대한 것보다 그렇게 좋은 성적을 못 내는 상황이라 4번으로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동민 자신은 또 5번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치는 모습이기에 미묘한 상황.

성적과는 별개로 팬들의 소소한 불만이라면 영구결번되지 않은 박재홍의 등번호인 62를 달고 있다는 것 정도. 한동민의 말에 따르면 스프링 캠프 전에 유니폼 사이즈를 측정할 때 박재홍의 자유계약 방출로 62번이 비게 되자 경쟁자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신청했다고 할 정도로 별 생각없이 단 것이다. 근데 박재홍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박재홍도 별 의미없이 62번을 선택했었다. 박재홍이 해설하는 경기에서 한동민이 좋은 활약을 보이자 박재홍은 저 등번호가 참 좋은 등번호라고 드립을 날렸다. 별명도 '동미니칸이라서 전 주인 별명인 '리틀 쿠바'와 함께 카리브해 야구강국을 별명으로 삼은 기묘한 우연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의 은퇴식 때 함께 나와 화환까지 걸고 포옹하는 등의 이벤트 덕에 빼도박도 못하게 후계자 확정, 자의든 타의든 정말 열심히 뛰어야 할 선수가 되었다.

5월 25일 LG와의 경기에서 수비 중에 중견수 김강민과 충돌하며 무릎 부상을 입었고,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페이스가 좋았던 시점에서 일어난 부상이라 팬들이 안타까워 했다. 당시 4월 타율 0.232 2홈런 11타점, 5월 타율 0.338 4홈런 16타점.

이후 재활을 거쳐 퓨처스리그에서 타격감을 조율한 후 7월 2일 1군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타격감을 영 찾지 못하고 7월 15일까지 28타수 4안타로 타율 0.143,12삼진/1볼넷이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팀 공격의 맥을 끊는 선수 중 하나가 돼버렸다. 시즌 타율도 0.260으로 부상 전의 0.284에 비하면 많이 낮아졌다. 포지션도 주 포지션인 우익수가 아니라 1루수로 출장 중.

7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경기를 뒤집는 쓰리런 홈런을 기록했다.
파일:57009692.4.jpg
8월 11일 롯데전에서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모습

8월 11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동점으로 맞선 9회말에 대타로 나와 경기를 끝내는 커리어 첫 끝내기 홈런을 작렬하였다.

그리고 9월 8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날리며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이명기, 박정배, 전유수와 함께 이만수 감독의 신임을 받아 9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3 홈런 14개 52타점을 기록했다. 두각을 드러내며 입단 2년차의 신진급 외야수임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신인급 타자들의 공통된 문제점인 변화구 대처능력을 보완한다면 내년이 더 기대되는 타자이다.

3.3. 2014 시즌

6월 7일 부상으로 말소되었다가 27일 다시 등록되었다. 어깨 부상으로 1루수로 주로 나섰다.

8월 2일 경기에서 이재학을 상대로 마수걸이 쓰리런 홈런을 때렸지만 우천으로 노게임이 선언되면서 기록이 날아가 버렸다.

9월 2일 경기에선 4회말 이태양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렸다. 이때 상황이 재밌는데, 62구를 던지고 있던 이태양에게서 그랜드슬램을 때려내 점수가 6:2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자면 62는 한동민의 등번호.

최종 성적은 0.252 3홈런 24타점.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지원했으며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3.4. 상무 피닉스 야구단

파일:한동민상무.jpg
2015 타이어뱅크 KBO 시상식에서 퓨처스 홈런왕을 수상한 한동민
군복무 첫 해인 2015년 시즌에는 지난 2년 간의 1군 짬밥을 헛먹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8월 초까지 3할 2푼대의 타율과 19개의 홈런으로 퓨처스리그 홈런 부분 전체 1위를 기록하였으며, 결국 21홈런으로 2015시즌 퓨처스리그 홈런왕이 되었다. 고질적인 선구안 문제도 개선되었는지 괜찮은 볼삼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SK 와이번스 선배들이 부진할 때마다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2015년 9월 토미 존 수술과 팔꿈치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토미 존 수술을 하면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해 복무할 수 있지만 복무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실전감각때문에 그대로 상무에서 복무한 듯 하다.

그리고 2016년 5월 14일 KIA 2군과의 경기에서 복귀. 오자마자 퓨처스리그를 초토화시키며 SK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중.

그리고 2016시즌도 22홈런으로 2군 홈런왕이 되어 2년 연속 홈런왕이라는 화려한 군 복무기간을 보내며, 속된 말로 2군을 씹어먹고 제대하여 팀에 복귀한 기대주 타자가 되었다.

3.5. 2016 시즌

9월 21일 전역하여 드디어 친정 SK 와이번스로 복귀했다. 최정의 홈런만으로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는 SK의 타선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월 25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한 홈 경기에서 복귀 후 첫 안타를 신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기대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팀도 가을야구에 광탈하며 짧았던 시즌을 끝내고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3.6.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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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커리어하이 시즌.[5] 최형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좌타거포로 최정과 함께 SK 홈런 군단을 이끌어가는 주역이었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아쉽게 시즌을 마감하였다.

3.7.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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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타순에 배치되어 강한 2번타자의 표본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작년보다는 생산성이 다소 떨어져 몰아치기의 모습이 나오기도 했지만 2018년 플레이오프의 마지막 홈런, 2018년 한국시리즈의 첫 홈런과 마지막 홈런 등 결정적인 순간 홈런으로 비룡군단의 V4를 이끌었다. 또한 데뷔 첫 40홈런과 한국시리즈 MVP 등 개인적으로도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다.

3.8.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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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된 드림팀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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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홈런 41개를 쳤지만 새 공인구에 적응을 하지 못하며 12개의 홈런밖에 기록하지 못한 커리어 로우 시즌.

3.9.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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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이 물려준 등번호 62번한동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약한 마지막 시즌. 전체적으로는 아쉬운 시즌이었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시즌의 절반도 못 뛰었음에도 15개의 홈런을 때려낸 것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3.10.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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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의 부진을 씻어내며 완벽하게 부활한 시즌. 나성범, 오재일 등을 제치고 리그 최고의 좌타 거포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새로운 이름과 함께 3년 만에 시즌 30홈런 고지를 밟았는데, 시즌 최종 성적은 135경기 442타수 123안타 31홈런 95타점과 타율 .278 출루율 .373 장타율 .534 OPS .907 WAR 3.90을 기록해 2018 시즌 다음으로 꼽히는 커리어 하이를 만들어냈다. 또한 그동안의 낙인이였던 공인구 덕이라는 프레임도 벗어났다.

3.10.1. 비FA 다년계약

2021년 12월 14일, 구단으로부터 비FA 선수 조기 연장 계약 제안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25일, 5년 60억 원[6]에 계약을 마쳤다.

프로 9년차인 한유섬은 2021 시즌을 마친 시점까지 통산 1군 등록일수 7시즌 96일을 채웠다.# 1군 등록 145일을 1시즌으로 계산하며, 한유섬은 대졸 선수이기 때문에 8시즌을 등록하면 FA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2022시즌에 49일만 등록해도 8시즌이 충족되어 2022시즌이 종료되면 무난하게 FA자격이 충족되는데, 이를 포기하고 소속팀 SSG 랜더스에 5년 장기계약으로 남게 된 셈이다.

이로써 SSG 랜더스는 앞서 KBO리그 최초로 비FA 선수 조기 연장 계약을 맺은 문승원, 박종훈과 함께 한유섬까지 투타의 핵심인 선수들을 장기계약으로 팀에 잔류시키게 되었다.

3.11.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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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수가 줄고 전체적인 비율 스탯도 하락했으나 시즌 초반, 특히 4월에 엄청난 활약으로 팀 개막 10연승의 주역이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기틀을 마련해줬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100타점을 달성하고 팀의 주장으로서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의 통합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향후 수비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3.12.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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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퓨처스리그에서 잃어버린 제 감각을 되찾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팀이 2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KBO리그에서든 퓨처스리그에서든 제 배트를 내려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노력은 당장이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는 보답받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칼럼 “곤경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개막부터 8월까지는 끔찍한 부진으로 온갖 비난과 멸시를 받았으나, 9월 이후엔 완벽히 부활해 극심한 기복에 시달린 팀을 3위에 안착하게 하는 난세영웅으로 등극했다.[7] 다만, 본인의 장점인 장타력과 타점 생산력은 떨어졌다.

3.13.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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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엄청난 홈런 생산력과 장타력을 과시하며 반등을 알렸으나, 5월 좌측 장내전근 미세 손상으로 이탈했고 복귀 이후엔 다시 지난 시즌 한창 안 좋았을 때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과 똑같이 9월 이후엔 반등하며 2년 만에 2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팀이 마지막까지 가을야구 경쟁을 할 수 있게 기여했으나 최종적으로 낮은 타율과 많은 삼진, 음수대 WAR, 거기다가 수비력도 급감하며 에이징 커브 우려를 사게 됐다.

4.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한유섬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2 SK-SSG 7 7 2 0 0 0 1 0 0 0 2 .286 .286 .286 .572 56.9 0.01
2013 99 327 75 15 2 14 36 52 2 20 82 .263 .343 .477 .820 106.6 0.51
2014 67 163 36 10 3 3 17 24 0 11 53 .252 .323 .427 .750 83.7 0.02
2015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6 6 20 5 0 0 0 3 0 1 1 5 .278 .350 .278 .628 67.8 0.06
2017 103 414 103 21 2 29 64 73 2 46 79 .294 .396 .614 1.010 148.7 3.32
2018 136 562 138 31 0 41
(5위)
97 115 4 52 124 .284 .367 .601
(4위)
.968 129.4 3.58
2019 125 502 113 20 0 12 52 52 0 55 100 .265 .375 .396 .771 119.1 1.84
2020 62 231 48 5 0 15 35 31 2 30 49 .249 .364 .508 .872 118.9 0.61
2021 135 519 123 18 1 31
(4위)
71 95 1 60 96 .278 .373 .534
(3위)
.907 142.0 3.73
2022 135 545 121 33 1 21 62 100
(5위)
1 66
(5위)
137 [8]
(1위)
.264 .373 .478 .855 138.7 4.39
2023 109 388 91 15 2 7 29 55 2 34 81 .273 .355 .393 .748 109.8 0.82
2024 132 523 109 29 0 24 64 87 0 46 142
(5위)
.235 .314 .453 .767 89.3 -0.23
KBO 통산
(12시즌)
1116 4201 964 197 11 197 531 684 15 421 950 .267 .360 .492 .852 117.7 18.66


[1] 이때 지명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야구를 접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학야구의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진 2018년 현재는 한동민처럼 타격은 좋은데 수비가 좋지 않은 선수들이 아예 프로에 가지 못하는 등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2017년 단국대 문지환, 고려대 김규남, 2018년 원광대 김운, 인하대 김시윤, 동아대 김준연 등. 특히 김시윤은 나지완 이후 10년 만에 나온 대학리그 1시즌 10홈런 타자인데도 미지명.)[2] 당시 SK 외 타 구단의 스카우트들의 한동민의 플레이에 대한 판단은 작은 오각형이었다고 한다. 즉 대학야구에서나 잘 하지 프로에서는 무툴이라고 봤던 것. 장타툴 역시 SK를 제외한 타 팀에서는 프로에서는 똑딱질만 할 것으로 평가했다고 하여 육성선수로도 프로에 가기 어렵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래서 9라운더로 SK에 지명받게 되자 타 팀 스카우들은 이걸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고 한다.[3] 애초에 대학리그로 가는 타자는 어지간하면 고교 무대에서는 백업수준인 경우가 대다수라 그렇다. 대학에서도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어야 하고 팀의 전력이 강해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가능한 수치다. 고교+대학 공식경기 통산 100안타를 넘긴 또다른 케이스로는 모창민, 이재율, 조수행, 홍창기가 있다.[4] SK가 10라운드에 김호은을 지명하기는 했지만 대학 진학을 택하면서 한동민은 SK 마지막 라운드의 지명자가 되었다.[5] 40홈런-100타점 임팩트를 남긴 18시즌에 밀리는 감이 있지만, 17년 기여도 역시 충분히 커리어하이에 들어가는 수준이며, 아예 sWAR 기준 3.53을 찍은 18시즌보다 3.73을 찍은 17시즌이 더 훌륭했다는 시각도 있다. kWAR로는 4.05의 18시즌에 비해 3.92로 좀 낮지만 여전히 부상으로 후반기를 대부분 날려먹은 것을 생각해보면, 비율 스탯이나 생산력 자체는 17년이 더 나았다고 할 수 있다. 야만없이지만 부상이 없었을 경우 첫 30홈런은 물론이고 100타점도 1년 앞서 달성했을 수 있었다.[6] 보장액 56억 +옵션 4억[7] 다만, 이 부분은 모순이 있는 게 만약에 본인이 초반부터 이런 활약을 했었다면 팀은 우승경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팬들은 한유섬 때문에 1-2위 대신 3위를, 5위 대신 3위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8] KIA 타이거즈 나성범과 함께 공동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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