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8:50:07

폴 디랙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디랙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펜타스톰 for Kakao의 영웅에 대한 내용은 디랙(펜타스톰 for Kakao)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12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cecec,#888><tablebgcolor=#ececec,#888> 파일:디랙 흑백.svg폴 디랙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000><colcolor=#fff> 연구 분야 및 업적 <colcolor=#000,#fff>양자역학(디랙 표기법 · 페르미-디랙 분포 · 디랙 델타 함수)
양자장론(디랙 방정식 · 디랙 감마 행렬 · 적분 연속체)
전자기학(자기 홀극)
소속 케임브리지 대학교(세인트 존스 컬리지)
플로리다 대학교
관련 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닐스 보어 · 막스 보른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리처드 파인만
기타 양자전기역학
}}}}}}}}} ||
폴 디랙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The Nobel Prize.png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cd9f5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555555,#aaaaaa
<rowcolor=#cd9f51> 1901 1902 1903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빌헬름 뢴트겐 헨드릭 A. 로런츠 피터르 제이만 앙투안 베크렐
<rowcolor=#cd9f51> 1903 1904 1905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 존 라일리 필립 레나르트
<rowcolor=#cd9f51> 1906 1907 1908 1909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조지프 톰슨 앨버트 마이클슨 가브리엘 리프만 굴리엘모 마르코니
<rowcolor=#cd9f51> 1909 1910 1911 1912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카를 브라운 요하네스 판 데르 발스 빌헬름 빈 닐스 달렌
<rowcolor=#cd9f51> 1913 1914 1915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헤이커 오너스 막스 폰 라우에 헨리 브래그 윌리엄 브래그
<rowcolor=#cd9f51> 1917 1918 1919 1920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찰스 바클라 막스 플랑크 요하네스 슈타르크 샤를 기욤
<rowcolor=#cd9f51> 1921 1922 1923 1924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로버트 밀리컨 만네 시그반
<rowcolor=#cd9f51> 1925 1926 1927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임스 프랑크 구스타프 헤르츠 장 페랭 아서 콤프턴
<rowcolor=#cd9f51> 1927 1928 1929 1930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
찰스 윌슨 오언 리처드슨 루이 드 브로이 찬드라세카라 라만
<rowcolor=#cd9f51> 1932 1933 1935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에르빈 슈뢰딩거 제임스 채드윅
<rowcolor=#cd9f51> 1936 1937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영국 국기.svg
빅터 헤스 칼 앤더슨 클린턴 데이비슨 조지 톰슨
<rowcolor=#cd9f51> 1938 1939 1943 1944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엔리코 페르미 어니스트 로런스 오토 슈테른 이지도어 라비
<rowcolor=#cd9f51> 1945 1946 1947 1948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볼프강 파울리 퍼시 브리지먼 에드워드 애플턴 패트릭 블래킷
<rowcolor=#cd9f51> 1949 1950 1951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유카와 히데키 세실 파월 존 콕크로프트 어니스트 월턴
<rowcolor=#cd9f51> 1952 1953 1954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펠릭스 블로흐 에드워드 퍼셀 프리츠 제르니케 막스 보른
<rowcolor=#cd9f51> 1954 1955 1956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발터 보테 윌리스 램 폴리카프 쿠시 윌리엄 쇼클리
<rowcolor=#cd9f51> 1956 1957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리정다오 양전닝
<rowcolor=#cd9f51> 1958 1959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파벨 A. 체렌코프 일리야 프란크 이고르 예브게니예비치 탐 오언 체임벌린
<rowcolor=#cd9f51> 1959 1960 1961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에밀리오 지노 세그레 도널드 글레이저 로버트 호프스태터 루돌프 뫼스바우어
<rowcolor=#cd9f51> 1962 1963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헝가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레프 란다우 유진 위그너 마리아 메이어 한스 옌젠
<rowcolor=#cd9f51> 1964 1965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타운스 니콜라이 바소프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리처드 파인만
<rowcolor=#cd9f51> 1965 1966 196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 알프레드 카스틀레르 한스 베테
<rowcolor=#cd9f51> 1968 1969 1970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루이스 앨버레즈 머리 겔만 한네스 알벤 루이 네엘
<rowcolor=#cd9f51> 1971 1972
파일:헝가리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데니스 가보르 존 바딘 리언 쿠퍼 존 슈리퍼
<rowcolor=#cd9f51> 1973 1974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에사키 레오나 이바르 예베르 브라이언 조지프슨 마틴 라일
<rowcolor=#cd9f51> 1974 1975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앤서니 휴이시 오게 보어 벤 모텔손 제임스 레인워터
<rowcolor=#cd9f51> 1976 197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버턴 릭터 새뮤얼 팅 필립 워런 앤더슨 존 밴블랙
<rowcolor=#cd9f51> 1977 1978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네빌 모트 표트르 카피차 아노 펜지어스 로버트 윌슨
<rowcolor=#cd9f51> 1979 1980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스티븐 와인버그 무함마드 살람 셸든 글래쇼 제임스 크로닌
<rowcolor=#cd9f51> 1980 198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벨 피치 니콜라스 블룸베르헌 아서 숄로 카이 시그반
<rowcolor=#cd9f51> 1982 1983 1984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인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케네스 윌슨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윌리엄 A. 파울러 카를로 루비아
<rowcolor=#cd9f51> 1984 1985 1986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시몬 판 데르 메이르 클라우스 폰 클리칭 에른스트 루스카 게르트 비니히
<rowcolor=#cd9f51> 1986 1987 1988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하인리히 로러 요하네스 베드노르츠 카를 뮐러 리언 레더먼
<rowcolor=#cd9f51> 1988 1989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멜빈 슈워츠 잭 스타인버거 한스 데멜트 볼프강 파울
<rowcolor=#cd9f51> 1990 199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제롬 프리드먼 헨리 켄들 리처드 테일러 피에르질 드 젠
<rowcolor=#cd9f51> 1992 1993 1994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조르주 샤르파크 러셀 헐스 조지프 테일러 버트럼 브록하우스
<rowcolor=#cd9f51> 1994 1995 1996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클리퍼드 슐 프레더릭 라이네스 마틴 펄 데이비드 모리스 리
<rowcolor=#cd9f51> 1996 199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더글러스 오셔로프 로버트 리처드슨 윌리엄 필립스 스티븐 추
<rowcolor=#cd9f51> 1997 1998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클로드 코엔타누지 대니얼 추이 로버트 러플린 호르스트 슈퇴르머
<rowcolor=#cd9f51> 1999 2000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마르티뉘스 펠트만 조레스 알표로프 허버트 크뢰머
<rowcolor=#cd9f51> 2000 200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잭 킬비 칼 위먼 에릭 코넬 볼프강 케털리
<rowcolor=#cd9f51> 2002 2003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레이먼드 데이비스 고시바 마사토시 리카르도 자코니 비탈리 긴즈부르크
<rowcolor=#cd9f51> 2003 2004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알렉세이 아브리코소프 앤서니 레깃 데이비드 그로스 데이비드 폴리처
<rowcolor=#cd9f51> 2004 2005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프랭크 윌첵 로이 글라우버 존 홀 테오도어 헨슈
<rowcolor=#cd9f51> 2006 2007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알베르 페르 페터 그륀베르크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rowcolor=#cd9f51> 2008 2009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난부 요이치로 찰스 가오 윌러드 보일 조지 스미스
<rowcolor=#cd9f51> 2010 2011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안드레 가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솔 펄머터 애덤 리스
<rowcolor=#cd9f51> 2011 2012 2013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브라이언 슈미트 세르주 아로슈 데이비드 와인랜드 피터 힉스
<rowcolor=#cd9f51> 2013 2014
파일:벨기에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프랑수아 앙글레르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
<rowcolor=#cd9f51> 2015 2016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가지타 다카아키 아서 맥도널드 데이비드 사울레스 덩컨 홀데인
<rowcolor=#cd9f51> 2016 2017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클 코스털리츠 킵 손 배리 배리쉬 라이너 바이스
<rowcolor=#cd9f51> 2018 2019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아서 애슈킨 제라르 무루 도나 스트리클런드 제임스 피블스
<rowcolor=#cd9f51> 2019 2020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미셸 마요르 디디에 쿠엘로 로저 펜로즈 라인하르트 겐첼
<rowcolor=#cd9f51> 2020 202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안드레아 게즈 마나베 슈쿠로 클라우스 하셀만 조르조 파리시
<rowcolor=#cd9f51> 2022 2023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 피에르 아고스티니
<rowcolor=#cd9f51> 2023
파일:헝가리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크러우스 페렌츠 안 륄리에
수상자의 국적은 수상 시점 기준이다 }}}}}}}}}}}}}}}

파일:The Nobel Prize.png 영국의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5px -1px"
{{{#cd9f51 {{{#!folding [ 수상자 목록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cd9f51> 이름 <colcolor=#cd9f51> 연도 사유 비고
<colcolor=gray> 존 라일리 1904 <colcolor=gray> 아르곤의 발견 <colcolor=gray> 최초수상
조지프 톰슨 1906 기체 전기전도성 연구
헨리 브래그 1915 X선 회절을 이용한 결정 구조 분석 부자수상
윌리엄 브래그 부자수상
최연소
찰스 바클라 1917 뢴트겐 복사 발견
찰스 윌슨 1927 하전된 입자 경로의 가시화
오언 리처드슨 1928 리처드슨 법칙 고안
폴 디랙 1933 양자역학에 파동방정식 도입
제임스 채드윅 1935 중성자의 발견
조지 톰슨 1937 전자로 굴절된 결정 내 상호간섭현상의 실험적 증명
에드워드 애플턴 1947 전리층에서의 애플턴 층 발견
패트릭 블래킷 1948 핵물리학 및 우주선의 재발견
세실 파월 1950 중간자(메손)의 발견
존 콕크로프트 1951 가속입자에 의한 원자핵의 변환 연구
데니스 가보르 1971 홀로그래피 발명 헝가리 국적
브라이언 조지프슨 1973 반도체와 초전도체의 터널 효과
마틴 라일 1974 전파천문학 분야의 연구
앤서니 휴이시
네빌 모트 1977 비결정성 고체에서 나타나는 자기에 따른 전자의 반응에 대한 연구
앤서니 레깃 2003 초전도 및 초유체 이론의 공헌 미국 국적
찰스 가오 2009 광통신용 광섬유의 빛 전송에 관한 획기적인 업적 미국 국적
홍콩 국적
안드레 가임 2010 그래핀 합성 네덜란드
러시아 국적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피터 힉스 2013 힉스 입자의 예측
데이비드 사울레스 2016 위상 상전이와 위상부도체의 이론적 고안
덩컨 홀데인 슬로베니아 국적
마이클 코스털리츠 미국 국적
로저 펜로즈 2020 블랙홀 형성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확실한 예측이라는 것을 발견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69d93, #91B9A4, #669d93);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아이작 배로 아이작 뉴턴 윌리엄 휘스턴 니컬러스 손더슨
<rowcolor=#fff> 5대 6대 7대 8대
존 콜슨 에드워드 웨어링 아이작 밀너 로버트 우드하우스
<rowcolor=#fff> 9대 10대 11대 12대
토마스 터턴 조지 에어리 찰스 배비지 조슈아 킹
<rowcolor=#fff> 13대 14대 15대 16대
조지 스토크스 조지프 라모어 폴 디랙 제임스 라이트힐
<rowcolor=#fff> 17대 18대 19대
스티븐 호킹 마이클 그린 마이클 케이츠 }}}}}}}}}
<colbgcolor=#000><colcolor=#fff> OM FRS
폴 디랙
Paul Dirac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irac_4.jpg
본명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
Paul Adrien Maurice Dirac
출생 1902년 8월 8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브리스톨
사망 1984년 10월 20일 (향년 82세)
미국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물리학자
학력 파일:브리스톨 대학교 원형 아이콘.png 브리스톨 대학교
(전기공학 / B.Sc.) (1921년)

파일:케임브리지 대학교 원형 아이콘.png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 존스 컬리지
(물리학 / Ph.D.) (1926년)[1]
지도 교수 랄프 H. 파울러
Sir Ralph Howard Fowler
수상 노벨 물리학상 (1933)
로열 메달 (1939)
코플리 메달 (1952)
막스 플랑크 메달 (1952)
가족 배우자 (1933년 결혼)
자녀 2명

1. 개요2. 업적
2.1. 페르미-디랙 통계2.2. 기타
3. 말년의 물리에 대한 평4. 이야깃거리
4.1. 수학과 과학에 대해 남긴 말들
5. 기타

[clearfix]

1. 개요

영국[2]의 이론 물리학자. 양자역학, 양자 전기역학의 탄생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으며 디랙 방정식을 유도함으로써 반물질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안했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나중엔 미국에 와서 탤러해시에 있는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다가 죽었고, 플로리다에 묻혔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때문에 이름이라도 들어본 에르빈 슈뢰딩거라거나, 고등학교 화학책에 나오는 닐스 보어와는 달리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디랙이 현대물리학에 남긴 업적은 눈부시다. 한 논문은 '디랙의 업적은 보어와 대등한 수준이고, 디랙을 능가하는 것은 오직 아인슈타인뿐이다.'라고 평했다. 20세기는 물리학의 시대였던지라 본인이 원했다면 어느 정도의 명성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매우 과묵하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 때문에 별로 유명해지지 못했다. 일례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자가 따라왔다. 그러자 하이젠베르크가 디랙이 바로 옆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디랙은 지금 인터뷰할 수 없다"라고 대신 거절해 줬다. 원래 성격이 그랬겠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강요해서 프랑스어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아서 노벨상 수상할 때도 어머니만 초대하고 아버지는 초대하지 않았다.

2. 업적

2.1. 페르미-디랙 통계

고전역학맥스웰-볼츠만 분포가 있다면 양자역학에는 페르미-디랙 통계와 보스-아인슈타인 통계가 있다. 이 두 통계가 양자역학의 두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페르미-디랙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페르미온,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보손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만 보아도, 이 통계가 입자들의 성질에 얼마나 많이 관련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디랙 본인은 페르미 통계와 아인슈타인 통계라고 지칭했는데, 전자는 겸손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뺀 거고 후자는 대칭성을 위해서 보즈의 이름은 뺀 것이라고 했다.

2.2. 기타

1925–6년 하이젠베르크, 보른, 요르단과 같은 시기에 행렬 역학을 만들어낸다. 푸아송 괄호를 통해 행렬 역학을 정립하여 정준 양자화 개념을 만들었다.

1928년 상대론적 파동 방정식인 디랙 방정식을 발표했다. 이 방정식을 기존 물리학에 도입하면 모든 전자들이 에너지를 다 잃어 음에너지 영역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디랙의 바다'라는 개념을 이론에 도입했다. 디랙의 이론에 의하면 반물질은 디랙의 바다에 존재하는 거품들로 이루어져 있다.[3] 다른 물리학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양전자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을 때 거센 공격을 받았다. 학회에 출두할 때마다 "그래서 양의 전자는 찾았소?" 같은 비아냥을 들었다.

1930년 디랙은 최초의 양자역학 교재를 저술했다. 여기서 행렬 역학과 파동 역학이 동등함을 밝혀내었다.

1931년 자기 홀극이 존재한다고 가정, 전자기장에 나타나는 효과를 계산하였는데 전자기장에 특이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근데 양자역학에 의해 해당 전자기장 파동 함수의 고유 상태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경계 조건을 넣어주면 우주에 자하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면 전하가 양자화되어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4]

1939년 브라-켓 표기법을 고안해 양자역학에서의 계산이나 서술을 한결 더 간단하게 만들었다.

그 이외에도 양자장론이나 QED(양자 전자기학)에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다. 양자장론과 양자 전자기학도 창시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

3. 말년의 물리에 대한 평

재규격화(renormalization)에 큰 반감을 표했다. 재규격화란 간단히 말하면 물리량이 포함된 방정식을 풀었을 때 나오는 무한대로 발산하는 영역을 무시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5] 디랙은 "제대로 된 수학이라면 조그만 숫자를 0으로 근사해야지, 무한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0이라고 해버리면 되나"라면서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는 라마누잔합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4. 이야깃거리

디랙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로도 매우 유명하다. 극단적으로 논리를 중시하는 태도와 소극적인 성격이 재밌는 일화를 많이 낳았기 때문. 이와 함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성향도 있었는데 이 때문에 헨리 캐번디시와 비슷하게 디랙이 자폐증 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였다는 설도 있다.

* 디랙의 과묵함 때문에 디랙의 동료들은 한 시간에 한마디 하는 것을 1디랙이라 정의했다.
* 디랙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였다.
* 저녁을 먹다가 다른 사람이 "바람이 많이 부네요"라고 하자 일어나서 문을 열더니, "정말이네요."라고 확인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 부모님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는 부모란 원래 자식을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형이 죽었을 때)부모님이 슬퍼하셔서 놀랐다'라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 디랙이 (城)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손님이 이 성에는 자정에 귀신이 나온다고 말을 하자 디랙이 되묻길, "자정이라는 게 그리니치 표준 시간 기준인가요, 서머타임 기준인가요?"
* 많은 과학자들처럼, 디랙도 다른 과학자들이 발표를 할 때 졸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코펜하겐에서 오스카르 클레인과 니시나 요시오[6]가 클레인-니시나 공식의 유도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칠판에 적힌 것과 논문에 적혀 있는 것이 다르다는 지적을 했다 (부호 하나가 틀렸었다). 그러자 니시나가 확인을 하더니, "논문에 있는 게 맞습니다. 제가 유도하면서 부호 실수를 하나 했나 보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디랙이 한쪽 눈을 뜨더니, "홀수 번 실수했겠지!"라고 했다.
* 디랙의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닐스 보어가 논문을 쓸 때 계속 문장을 고치고 고민하면서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네."라고 했더니 디랙이 말하길, "나는 끝마칠 줄 모르는 문장은 시작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배웠는데요."
* 토론토 대학교에서 디랙이 강연한 후 질문을 받았는데, 누가 "디랙 교수님, 칠판 왼쪽 위에 있는 방정식을 어떻게 유도하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디랙은 "그건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잖아? 다음 질문?"이라 말했다. 즉 문장이 의문문이 아니라서 질문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
* 코펜하겐의 한 파티에서, 디랙이 여자의 얼굴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최적의 거리가 있다는 이론을 폈다. 거리가 무한대라면 여자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거리가 너무 가깝다면 눈의 주름이나 피부 결함이 잘 보이기 때문에 흉해 보인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가 "이봐, 폴. 자네는 여자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게 얼마나 가까이였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디랙이, "아." 하더니 팔을 60cm 정도 떨어뜨린 후, "이 정도?"라고 답했다.
* 러시아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가 디랙한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읽어보라고 빌려줬다. 디랙이 책을 돌려줄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괜찮은 책이네. 하지만 한 장(章)에서 작가가 실수를 했어. 한 날에 해가 뜨는 장면이 두 번 나오더군."
* 표트르 카피차와 디랙이 카피차의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피차의 아내 안냐 카피차는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후에 디랙이 안냐한테 매우 흥분된 상태로 말을 걸었다. "안냐, 내가 네가 스웨터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서 생각을 좀 했는데 말이야, 내가 뜨개질의 위상 기하학적인 측면에 관심이 생겨서 생각을 해 봤어. 뜨개질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냈지. 하나가 네가 쓰고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그 다른 방법을 손가락으로 보여주며, "이거야." 그러자 안냐가 네가 발견한 "새로운 방법"은 여자들은 잘 알고 있으며, 안뜨기라고 불린다고 대답했다.
* 디랙의 아내는 마르짓 위그너(Margit Wigner, 1904~2002)[7]라는 헝가리인 여성이었다. 1934년부터 만나기 시작해 3년 만에 결혼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었으나 결혼까지 갔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디랙이 "생애 첫 번째 연애편지"를 썼는데, 그 이전에는 여자 친구의 질문에 대해 표 형식(tabular form)으로 답했다고 한다.
* 아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더. 디랙이 결혼했다는 걸 몰랐던 옛 친구가 디랙의 집에 왔는데 매력적인 여성이 차를 나르더니 소파에 앉는 것을 보고 놀라자, 디랙이 "이분은... 이분은 위그너 동생이야."(This is... this is Wigner's sister)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약간 와전된 것으로, 조지 가모프가 이 일화에 대해 디랙의 부인에게 묻자, 디랙이 실제로 말한 건 "위그너의 여동생을 소개하겠네. 지금은 내 부인이야."(Allow me to present Wigner's sister, who is now my wife.)라고 확인해주었다.
*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문학에 재능이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괴팅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느 날 디랙이 와서 말하길, "오펜하이머, 자네가 시를 쓴다는 소리를 들었네. 나는 어떻게 물리학 발전에 기여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이 병행될 수 있는지 모르겠네. 둘은 완전히 반대거든. 과학에서는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고, 시는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을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들로 표현하는 것 아닌가."
* 1929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이 일본에 있는 회의에 가려고 배를 같이 탔다. 둘 다 20대였지만 하는 짓은 판이했는데, 하이젠베르크는 여자들한테 계속 작업을 걸고 춤을 췄고, 디랙은 누가 말을 걸어오거나 하는 사회적 대화를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디랙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왜 춤을 춰?"라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가, "괜찮은 여자들이 곁에 있을 땐 즐겁거든."이라고 답했다. 디랙이 잠시 생각하더니, "하지만 베르너, 여자들이 괜찮은지 어떻게 미리 알지?"라고 되물었다.
*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물리학자들끼리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디랙은 신은 인간이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 상상해 낸 산물일 뿐이며,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인류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악하다는 논지로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말을 듣더니 볼프강 파울리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동료들이 의견을 묻자, "뭐, 우리 친구 디랙도 종교가 있어. 그 종교의 첫 번째 교리는 '신은 없고 디랙이 그의 예언자다'[8]지." 이 말을 듣자 디랙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웃었다고 전해진다.
* 근데 세월이 흐르면서 위의 종교관과는 달리 생각이 많이 바뀐 듯하다. 불가지론자가 된 건지 진짜 종교인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점점 호의적이고 유의미하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후반부

4.1. 수학과 과학에 대해 남긴 말들

이쪽은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신념이 담긴 간지 인용문. 위의 일화와 인용문을 모두 읽어보면 디랙이라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디랙은 물리학자 중에서도 수학적인 면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
A good deal of my research in physics has consisted in not setting out to solve some particular problem, but simply examining mathematical equations of a kind that physicists use and trying to fit them together in an interesting way, regardless of any application that the work may have. It is simply a search for pretty mathematics. It may turn out later to have an application. Then one has good luck.
내가 한 물리 연구의 상당수는 특정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수식이 가질 응용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물리학자들이 쓰는 수식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려 한 것뿐이었다. 그저 보기 좋은 수식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운이 좋은 것이고.
God used beautiful mathematics in creating the world.
[9]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수학으로 창조했다.
I consider that I understand an equation when I can predict the properties of its solutions, without actually solving it.
나는 방정식을 실제로 풀지 않고도 그 해의 성질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을 때에야 방정식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I learnt to distrust all physical concepts as the basis for a theory. Instead one should put one's trust in a mathematical scheme, even if the scheme does not appear at first sight to be connected with physics. One should concentrate on getting interesting mathematics.
나는 이론의 기초를 세울 때는 모든 물리적 개념을 믿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기보다는 수학적 체계를 믿어야 한다. 설사 그 체계가 처음에는 물리와 연관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수학을 얻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I think it is the general rule that the originator of a new idea is not the most suitable person to develop it, because his fears of something going wrong are really too strong...
일반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구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It is more important to have beauty in one's equations than to have them fit experiment... It seems that if one is working from the point of view of getting beauty in one's equations, and if one has really a sound insight, one is on a sure line of progress. If there is not complete agreement between the results of one's work and experiment, one should not allow oneself to be too discouraged, because the discrepancy may well be due to minor features that are not properly taken into account and that will get cleared up with further developments of the theory.
방정식은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운 방정식을 만들려고 하고, 정확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면, 실패한다는 것은 어렵다. 만약 실험과 이론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기죽을 것 없다. 왜냐하면 그 차이는 이론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별 중요치 않은 요인에 의한 것이고 이론을 발전시킨다면 금방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Mathematics is the tool specially suited for dealing with abstract concepts of any kind and there is no limit to its power in this field.
수학은 모든 종류의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기에 적합한 매우 유용한 도구이며 이 계열에서 수학의 능력은 무한하다.
Pick a flower on Earth and you move the farthest star.
지구에서 한 송이를 꺾으면 우주 끝에 있는 별들도 움직인다.

중력을 표현하는 글이다.
The fundamental laws necessary for the mathematical treatment of a large part of physics and the whole of chemistry are thus completely known, and the difficulty lies only in the fact that application of these laws leads to equations that are too complex to be solved.
물리학의 대부분과 화학의 전 분야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법칙들은 모두 알려졌으므로, 우리가 이런 분야들의 현상을 모두 정확히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은 이들 법칙들을 적용한 방정식들이 풀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The mathematician plays a game in which he himself invents the rules while the physicist plays a game in which the rules are provided by nature, but as time goes on it becomes increasingly evident that the rules which the mathematician finds interesting are the same as those which nature has chosen.
수학자는 자기가 만든 법칙으로 게임을 하고, 물리학자는 자연이 고른 법칙들로 게임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학자가 흥미를 느끼는 법칙들은 자연이 고른 법칙들이라는 것이 매우 선명해진다.
The only object of theoretical physics is to calculate results that can be compared with experiment... it is quite unnecessary that any satisfactory description of the whole course of the phenomena should be given.
이론 물리학의 유일한 목표는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값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현상의 총체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Theoretical physicists accept the need for mathematical beauty as an act of faith... For example, the main reason why the theory of relativity is so universally accepted is its mathematical beauty.
이론 물리학자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이 이렇게 인정받는 것은 그 수학적 아름다움 때문이다.
There are, at present, fundamental problems in theoretical physics … the solution of which … will presumably require a more drastic revision of our fundmental concepts than any that have gone before. Quite likely, these changes will be so great that it will be beyond the power of human intelligence to get the necessary new ideas by direct attempts to formulate the experimental data in mathematical terms. The theoretical worker in the future will, therefore, have to proceed in a more direct way. The most powerful method of advance that can be suggested at present is to employ all the resources of pure mathematics in attempts to perfect and generalize the mathematical formalism that forms the existing basis of theoretical physics, and after each success in this direction, to try to interpret the new mathematical features in terms of physical entities.
현재, 이론 물리학에는 그 답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들을 지금까지 변해온 것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변화시킬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다. 높은 확률로 이 변화들은 인간 지능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며 따라서 이 새로운 개념들은 실험으로 수행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가는 더 직접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순수 수학의 모든 도구를 사용해 현존하는 이론 물리학의 기초를 수학적으로 일반화하고, 그 후에는 그 새로운 수식을 물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Age is, of course, a fever chill
that every physicist must fear.
He’s better dead than living still
when once he’s past his thirtieth year.
나이는 모든 물리학자들이 두려워하는
열병과 오한이라네.
서른이 넘은 물리학자는
죽는 편이 행복하지.
물리학자는 정신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젊은 나이에 성과를 이뤄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담은 시. 그러나 그가 썼다고 알려진 이 시의 저자가 그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디랙의 전기를 쓴 Helge Kragh나 Graham Farmelo는 이 시를 디랙이 썼다는 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편이다. 그리고 이 시 자체는 괴테파우스트 중 한 구절을 살짝 바꿔 쓴 것이라고 Helge Kragh가 지적했는데, 파우스트 중의 원래 구절은 다음과 같으며
Gewiß! das Alter ist ein kaltes Fieber
Im Frost von grillenhafter Not.
Hat einer dreißig Jahr vorüber,
So ist er schon so gut wie tot.
32년에 보어 연구소에서 보어의 제자들이 공연했던 파우스트 패러디 연극의 대본을 보면, 디랙 역의 대사 중에 바로 이 시가 있다 (독일어).
Gewiß! Das Alter ist ein kaltes Fieber,
Das jeden Physiker bedroht!
Hat einer dreiß Jahr vorüber,
So ist er schon so gut wie tot!

5. 기타

  • 디랙의 이름이 대중 매체(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산 서브컬처)에서 언급될 때도 있지만, 과학 개념을 일본산 서브컬처에서 차용할 때 흔히 그러듯 이름만 따올 뿐 그 외의 특성들은 모조리 무시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사도중 하나인 레리엘이 내부에 디랙의 바다를 갖고 있다는 언급이 작중에서 나온다. 에바 초호기이카리 신지는 레리엘과 교전 중 이 디랙의 바다에 집어삼켜져 갇히게 된다. 완전히 음에너지로 꽉 찬 곳에 들어간 시점에서 에바를 구성하는 입자가 쌍소멸하며 폭발해야 마땅하겠지만 나중에 멀쩡히 기어 나온다.
  • 원래 꿈은 전기 공학자였다고 한다.[10]


[1] 박사 학위 논문: On the Theory of Quantum Mechanics = 양자역학의 이론에 관하여(1926).[2] 아버지는 스위스 출신[3] 미치오 카쿠 저, <불가능은 없다> p.296-297[4] Sakurai 양자역학 참고. 학부 전자기학 수준에선 Griffith 전자기학 연습 문제에 Thomson dipole 이란 이름으로 전하 양자화의 증명이 소개되어있다. 하지만 이 연습 문제는 디랙의 원래 증명과 거리가 있다.[5] 순수 수학적으로 접근할 경우 라마누잔합을 사용하면, 모든 자연수의 합을 구하면 -1/12가 나오고 모든 소수의 곱이 4π^2이라는 결과가 나온다.[6] 일본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니고연구의 총책임자였다.[7]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유진 위그너의 여동생이다. 위그너의 친구라는 개념으로 유명하다.[8] 잘 알려진 이슬람의 신앙 고백 "알라 이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다."의 패러디.[9]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에 근거한 인격적 신의 개념보다는,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증거와 논거를 기반으로한 자연적 신이나 우주의 규칙을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10] 김용규, '설득의 논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07,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