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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吳)나라 초대 국군 태백 太伯 | |||
성 | 희(姬) | ||
씨 | 고발(姑發) | ||
휘 | 태백(太伯, 泰伯) | ||
아버지 | 고공단보(古公亶父)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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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공자께서 가라사대, "태백은 그 덕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세 번 천하를 양보하였으나 백성이 그 덕을 칭송할 길이 없다."
논어 제8편 泰伯
공자께서 가라사대, "태백은 그 덕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세 번 천하를 양보하였으나 백성이 그 덕을 칭송할 길이 없다."
논어 제8편 泰伯
1. 개요
상나라 대의 오나라의 제1대 군주.[1] 주나라의 추존 시조격인 고공단보의 아들이기도 하다. 중옹(仲雍)과 계력의 형.2. 생애
고공단보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고공단보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태백, 둘째는 중옹, 셋째는 계력(季歷)이었다. 태백과 중옹은 계력이 자신보다 유능한 것을 알고 태자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중옹과 함께 오 땅으로 가서 그곳에서 오나라의 시조가 되었다.[2] 이후 태백에게 아들이 없어 동생인 중옹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다만 오 항목에도 있듯 실제 오의 역사가 그러했을지는 의문시하는 학자도 있다. 본래 주 왕실과 같은 희성의 제후였던 우(虞)의 시조 태백에 가탁한 것으로 실제 오나라는 중원 지역의 거주민과는 이질적인 민족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런데 절강성에서 발견된 오나라의 유물에는 오나라 왕의 성씨가 희성 고발씨(姬姓姑發氏)라고 적혀 있어서, 일단은 오나라 왕실이 주나라 왕실과 같은 집안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주나라 왕실 입장에서도 웬만큼 확실하지 않고서야 생면부지의 족속을 같은 일족, 그것도 윗대 큰어른의 자손으로 인정할 리가 없다[3] 한 예시로 기원전 482년, 오왕 부차와 진정공이 위나라의 황지에서 회맹하여 패자 자리를 다투었는데 이 때 진정공은 자신이 희성 제후들 중 가장 작위가 높다는 이유로[4], 부차는 자신이 희성 중에서 서열이 높다는 이유[5]로 패자임을 주장했다. 즉 왕실은 중원계인게 백성들은 토착민인 이중구조였다는 것이다.
3. 일본과의 관계?
다소 뜬금없지만 일본 황실, 정확히는 1대 덴노인 진무 천황이 오나라 태백이나 그 형제의 후손이라는 믿거나 말거나식 속설이 있다.때문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일본 유학자들이 청나라는 전통 중국이 아니고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중화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6], 이때 해당 속설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4. 관련 항목
[1] 당연히 상나라에서 직접 임명했을리 없으니 자칭이지만, 오나라 땅이 당시에는 오랑캐 취급을 받은 곳인지라 군주라 쓰든 상관은 없다.[2] 공자의 논어에는 이 일을 들어 태백의 높은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있다.[3] 이처럼 비(非) 한족계가 대다수인 나라를 한족 왕실이 통치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국가인 중산국(中山國)이 있는데, 이민족인 백적(白狄)이 세운 국가이지만, 오나라처럼 군주의 성씨가 희성(姬姓)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사례가 몇번 나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훨씬 후대인 서기 6,7세기 경에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투르판 일대에 존속한 고창국(高昌國)이었다. 고창국은 한족 왕이 통치하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절대다수가 토하라인이었다.[4] 진나라 군주의 작위는 후작이었으며 진문공 시절에는 주나라 천자로부터 구석의 원형이 되는 혜택을 받는 등 같은 제후국들 중에서도 격이 달랐다.[5] 오나라의 시조가 고공단보의 장,차남이라면 진나라의 시조는 주무왕의 아들이자 주성왕의 동생인 당숙 우였으며 주무왕의 할아버지가 고공단보의 3남이다.[6] 대표적인 경우가 야마가 소코와 하야시 라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