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의 장수인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내용은 이순신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충무(忠武)는 충성 충(忠) 자와 호반[1] 무(武) 자로 이루어진 시호이다. 주로 무인으로서 공을 세운 이들이 받았다. 추존된 작위에 따라 충무공(忠武公), 충무후(忠武侯) 등으로 부른다.'신하의 도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아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법도를 바로 세운' 것으로 평가되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시호이므로 무인이 받을 수 있는 시호로서는 최고의 선시(善諡). 문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급의 시호는 충문, 문충과 문성공 정도가 있다.
2. 상세
忠 | 武 | ||
危身奉上(위신봉상) | <colbgcolor=#ffffff,#1f2023>일신이 위태로운 와중에 임금을 받듦. | 克定禍亂(극정화란) | <colbgcolor=#ffffff,#1f2023>화란을 능히 평정함. |
慮國忘家(여국망가) | 나랏일을 근심하여 집을 잊음. | ||
危身利國(위신리국) | 일신이 위태로운 와중에 나라를 이롭게 함. | ||
廉方公正(염방공정) | 청렴하고 바르고 공정하며 올바름. | ||
事君盡節(사군진절) | 군주를 섬김에 충절을 다함. | ||
臨亂不忘國(임난불망국) | 난리(亂離), 난세에 임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 | ||
推賢盡忠(추현진충) | 어진 이를 받들고 성심을 다함. | ||
殺身報國(살신보국) | 목숨을 희생하여 나라에 보답함. | ||
死衛社稷(사위사직) | 죽음으로 사직을 지킴. | ||
以孝事君(이효사군) | 효로 임금을 섬김. | ||
推能盡忠(추능진충) | 능력 있는 사람을 받들고 충성을 다함. | ||
敎人以善(교인이선) | 남을 선으로써 가르침. | ||
臨患不忘國(임환불망국) | 환란에 임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 | ||
廉方公平(염방공평) | 청렴하며 바르고 공정하고 공평함. |
3. 사례
3.1. 한국
과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인 충무(忠武)를 받은 사람들을 높여 이르는 말. 조선에는 이 시호를 받아 충무공으로 불리는 사람이 총 9명이다. 인지도 순으로 따지면 이순신-김시민-정충신-남이-그 외 기타다.- 조선
- 조영무
- 이준
- 남이
- 이순신: 한국 사회에서 '충무공'이라 하면 대부분 이순신 장군을 가리킨다. 그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과거 그의 시호를 딴 '충무시'가 분리되었다가 1995년, 통영군과 도로 통합하였다. 충무김밥이 이때의 흔적이다.
- 김시민: 경상남도 진주시에 경남진주혁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동(洞)이름을 '충무공동'이라 붙였는데, 김시민이 진주 대첩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진주시에서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때문에, 충무공이 이순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진주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편이다.
- 이수일: 임진왜란에 종군, 이괄의 난 평정의 공신. 이완의 부친.
- 정충신: 임진왜란에 종군, 이괄의 난 평정의 공신. 정묘호란에서 부원수로 종군. 명청 사이에서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다. 본래 노비로 글도 모르는 천출이었지만 권율 휘하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이항복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익히고 무과에 급제해 양반이 된, 더 나아가 당상관 위치에까지 올라간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유례가 거의 없을 정도의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이름처럼 평생을 충신으로 살다 간 인물이기도 하다.
- 구인후[2]: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에 종군
- 김응하: 임진왜란에 종군, 사르후 전투에서 전사
김운회와 더불어 사이비 저술가로 악명이 높은 백지원이 쓴 조일전쟁이라는 책에서는 이순신 말고 김시민 역시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장수인데 왜 이순신 한 명만 충무공으로 여기고 김시민은 칭송을 안 해주냐고 썼다. 거기까지였으면 괜찮은데, 문제는 "충무공은 이순신과 김시민 두 명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충무공이 여러 명이므로 시호 뒤에는 이름을 붙여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의 관습상 '충무공'이라 하면 가장 유명한 이순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3.2. 중국
시호 자체가 중국에서 유래한 만큼 중국에서도 상시로 쓰였는데 유명한 사람으로는 촉한의 충무후 제갈량과 남송의 명장 악비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작위 제도를 유지했기에 받은 작위에 따라 공(公)과 후(侯) 등으로 따로 칭했다. 제갈량을 제갈무후, 혹은 그냥 무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시호에서 비롯한 호칭이다.- 제갈량 - 촉한의 승상
- 온교 - 동진의 장군이자 정치가
- 소담(蕭憺) - 양나라의 종실. 소연(蕭衍)의 막내동생으로 작위를 따서 시흥충무왕(始興忠武王)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전에 소연을 따라 이름을 알렸으며 그가 죽자 조정에서 그의 영덕(令德)을 말하는 충(忠), 지과(止戈)를 말하는 무(武)를 따서 시호를 내렸다.
- 난릉왕 - 북제의 황족.
- 울지경덕 - 당나라의 개국공신
- 곽자의 - 당나라의 명장, 왕
- 악비[5] - 남송의 명장, 추존 왕
- 한세충 - 남송의 명장
- 상우춘 - 명나라의 개국공신
- 마옥곤 - 청나라의 군인
3.3. 몽골
3.4. 베트남
[1] 무인(武人), 무반(武班). 어째서 호반이라고 부르는지는 피휘 문서 고려 문단 참조.[2] (족보)[3] 앞에 언급된 각 자를 조합하면 충무-충장-장목-무목이 나온다. 충무는 이 문서에 언급되었고, 충장은 권율이 받았으며, 장목은 관우에게 내려졌던 시호이고, 무목은 악비가 받았던 시호다. 하나같이 격이 높은 상시다.[4] 물론 9명이라는 것은 조선 건국~조선 멸망까지 전부 계산했을 때의 이야기고 임진왜란 시기에 한정짓는다면 맞는 얘기이긴 하다.[5] 무목에서 충무로 개정.[6] 몽골제국과 그 뒤를 잇는 원나라의 시초가 된 칭기즈 칸이 제일 신임하던 장수중 하나였다. 금나라의 영토 대부분을 공략하여 무신으로써 충절을 다보여준 장수다. 또 한편으로는 그 뒤를 잇는 명장 수부타이의 선배격이다.[7] 충무라는 시호가 참 난감한 게 이 양반은 리 왕조를 찬탈해서 멸망시키고 그 황족들을 몰살했다.(…) 얼마나 심하게 말살했으면 화산 이씨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을 정도. 물론 쩐 왕조의 충신이라고 하면 맞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