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2 01:01:56

종(악기)

1. 개요2. 동양의 종3. 서양의 종
3.1. 가톨릭과 정교회3.2. 개신교

1. 개요

bell / 鐘

금속을 이용해 만들며 아주 오래전부터 쓰인 타악기.

한국에서 유명한 종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종은 러시아 크렘린에 전시된 중량 201톤차르 종이 차지했다. 여담이지만,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빅 벤은 본래 시계탑 내부에 붙은 커다란 종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2. 동양의 종

한중일 3국 기준으로 종 바깥쪽에서 커다란 나무 기둥을 부딪혀서 울리는 방식인데, 한국과 중국에서는 종이 나지막하게 위치해있고 손으로 나무기둥을 직접 움직이지만, 일본은 종이 높이 떠있고 나무기둥에 밧줄이 달려있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일본 범종은 대개 가사문이라 하여 역십자 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구 조계사종도 왜색 및 국보 해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동양의 종은 한국종, 일본종, 중국종, 동남아종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한국 종이라 카더라. 소리의 울림 때문이라는데, 동서양 종 거의 대부분이 종의 울림은 일정하게 내려가서 끝나는 반면, 한국 종은 가장 길고 오랫동안 높고 낮은 울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특유의 맥놀이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명동(鳴洞)이라는 오목한 홈이 타종시 종소리의 공명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1] 한국 종에서만 볼수 있는 특징이다.출처

3. 서양의 종

서양에서는 대체로 종 안쪽에 클래퍼라 불리우는 작은 방울이 달려있고 안쪽에서 치는 방식을 띄고 있다.

손으로 울리는 방식이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옛날 학교종처럼)클래퍼 자체에 줄을 달아서 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종 자체를 프레임에다 고정시키고 흔들어서 울리는 방식이다.

3.1.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동방정교회에서는 미사/성찬예배나 기도 시간을 알리는데 쓰기도 하지만 신학적으로도 '마귀를 쫓는 소리'로서의 기능 또한 한다. 때문에 가톨릭 교회법에는 성당마다 종탑을 갖출 것을 규정하고 있고, 성당 종탑과 종들도 따로 축성을 받아서 사용한다. 미사성체성사를 시작할 때 종을 치는 것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하고 주의를 환기하려는 목적이다. 역사적으로는 본래 그리스에서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종을 쳐서 사람들을 모으던 풍습이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가 6-7세기경에 아일랜드를 거쳐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신학적 의미와 종교적 목적 외에도 집집마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마을마다 있는 본당에서 매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주민들이 시간을 알고 일과를 조절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한편 가톨릭과 정교회 성당의 종 치는 법은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가톨릭 성당에서의 종은 큰 종 한두 개를 치지만[2] 정교회, 특히 러시아 등 슬라브권에서는 자잘한 종 여러 개를 치면서 일종의 멜로디를 만든다.[3] 대한민국의 경우 믿지 않는 사람들(외교인)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종을 설치한 성당이 많지 않지만 명동성당에서는 삼종기도 시간인 오전 6시, 오후 12시, 오후 6시 세번 나눠서 종을 치며, 한국 정교회 성당인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스, 불가리아등 발칸 지방의 정교회에서는 종 소리 대신 시만드론(Σήμαντρον), 현대 그리스어로는 시만드로(Σήμαντρο)라고 불리는것을 치기도 한다. 기다란 나무판을 줄에 매달거나 (수도원의 경우) 수사가 어깨에 매고서 망치로 딱딱딱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도구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종대신 이 시만드론을 기본적으로 쳤었다가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에도 정교회 수도원에서는 시만드론을 평상시에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판 자체가 상당히 크고 잘 울리기 때문에 의외로 멀리서도 잘 들린다.[4][5]


쾰른 대성당의 종소리. 3분 2초부터 화면속의 종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그리스도 부활성당)의 종소리.

3.2. 개신교



대한민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는 시골이나 혹은 도시라도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 한정으로 종탑이 있는 개신교 교회들을 볼 수 있었다. 동화작가였던 권정생도 생전에 시골 교회 종지기로 평생을 살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소음·진동규제법이 제정된 이후로는 종을 치는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관련 증언) 애당초 아파트 등으로 건폐율과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의 도시 환경 특성상 종을 설치하는 건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 개신교 교회들은 강대상에 자그마한 종을 놓는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성공회루터회등 전례적 교회의 양상이 남아있는 교회에서는 종을 치는 관습이 남아있는 편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도 주중 정오와 18시에 18번 타종하며, 주일 감사성찬례 시작 전에는 33번 타종한다. 그러나 대도시가 아닌 타 지방의 교회들은 일반적인 동네 교회들처럼 종이 없다.

유럽의 경우 아직도 개신교 교회가 종을 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그쪽 동네는 어차피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라, 한국처럼 민원 들어올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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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외에 여러가지 요인이 겹친 것도 있다. 사실 겉의 무늬는 단순히 미적인 요소 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무늬 자체에도 역할이 있다고 한다. 종의 내부 두께도 비대칭적으로 되어 있으며 사실 가격 부위도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종은 현대 기술로도 대단히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2] 파리의 노트르담의 주인공 콰지모도가 하는 일이 바로 이 종을 치는 종지기 일이다.[3] 그리스 정교회 종은 가톨릭처럼 하나만 쓰거나, 많아봐야 서너개정도를 쓰는 정도이다.[4]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정교도들이 자기들만 사는 마을이나, 도시 내 구역에서는 자유롭게 종을 칠 수 있었지만 다른 신자들 (특히 무슬림)과 함께 거주하는 지역이나, 다른 신자들이 사는 도시구역 내에서는 법적으로 종을 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오스만 제국 시기 정교도들에게 배정된 구역인 이스탄불 북서부와 페라 일대에서는 정교도들이 종을 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무슬림 거주지역인 중부, 동부, 그리고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는 남부, 성벽바깥의 페라 북서쪽, 서유럽 대사관들이 밀집해 가톨릭 교회가 많았던 오늘날의 이스티클랄 거리 일대에서는 정교도들이 종을 칠 수 없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종만 규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만드론을 치는데는 문제가 없었고, 본디 시만드론은 사순시기에만 종 대신 쓰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정교회에서도 시만드론의 사용을 권장했다. 자신들이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와 동참한다는 무언의 저항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5] 시만드론 소리는 다음과 같다. 수도원 종탑에 걸린것, 사람이 들고다니면서 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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