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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南陽州 奉先寺 銅鍾. 조선의 8대 왕 예종이 재위 원년(1469)에 선왕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범종. 세조가 묻힌 광릉의 능침사찰인 봉선사에 소장되었고 현재 보물 제397호이다.2. 내용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에 창건된 절이지만 조선 세종이 숭유억불 정책에 일환으로 당시 조선의 불교 7대 종파를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해버릴 때 혁파되어 폐사지가 되었다. 이후 폐허로 남아있다가 예종 1년(1469)에 세조의 아내 정희왕후가 남편을 추모하며 89칸 규모로 다시 중창하였다.이후 같은 해 7월에 예종이 절을 직접 방문해 아버지인 세조를 추모하며 현판을 직접 써 걸어주고 왕실 발원으로 종을 만들게 하였다. 불교가 박해받던 조선 시대에 왕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종이자 가장 완성도 높은 종으로 평가받는다.
높이 236cm, 무게 2만 5000근에 달하는 대형 범종으로 화려한 당초문 장식이 조각되었고 4구의 유곽과 보살상이 유려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려와 조선의 양식이 혼합되었다. 종에 빼곡히 새긴 명문들은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썼다.
조선 초 세조 일가가 지녔던 높은 숭불의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 기술과 제조양식 등을 통해 조선 전기의 범종 제작 기술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고 알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남양주봉선사동종 항목이나 네이버 지식 백과를 참조.
3. 보물 제397호
봉선사 소장. 남양주 봉선사 동종(南陽州 奉先寺 銅鍾)은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것 중 몇개 남지 않은 조선 전기의 동종으로 예종 원년(1469)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들었다.
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로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모습이다. 종의 어깨에는 이중의 가로줄을 돌려 몸통 부분과 구분짓고 있으며, 종 가운데는 굵고 가는 3중의 가로줄을 그어 몸통 부분을 상·하로 나누고 있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보살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서, 대대적인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종의 입구 위쪽으로 넓은 띠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파도치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나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조각수법 등은 조선시대 나타난 새로운 양상으로, 그 특징들이 잘 나타난 중요한 큰 종이다.
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로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모습이다. 종의 어깨에는 이중의 가로줄을 돌려 몸통 부분과 구분짓고 있으며, 종 가운데는 굵고 가는 3중의 가로줄을 그어 몸통 부분을 상·하로 나누고 있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보살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서, 대대적인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종의 입구 위쪽으로 넓은 띠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파도치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나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조각수법 등은 조선시대 나타난 새로운 양상으로, 그 특징들이 잘 나타난 중요한 큰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