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2:32:08

조용호(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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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빙그레 이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약했던 야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조용호(1965)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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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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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t wiz 우승 엠블럼 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21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2016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퓨처스리그 우수선수상(SK)

보유 기록
데뷔 후 최다 타석 무홈런[1] 1631타석[2][3]

SK 와이번스 등번호 68번
이재인
(2014)
<colbgcolor=#ff6600><colcolor=#fff> 조용호
(2015~2016)
박규민
(2017~2018)
SK 와이번스 등번호 13번
김승회
(2016)
조용호
(2017~2018)
하재훈
(2019~)
kt wiz 등번호 23번
강승훈
(2016~2018)
조용호
(2019~2024)
결번
}}} ||
파일:조용호 다음스포츠.jpg
조용호
趙容浩 | Cho Yong-Ho
출생 1989년 9월 9일 ([age(1989-09-0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성동초 - 잠신중 - 야탑고[4] - 단국대
신체 170cm | 75kg | O형 | 265mm
포지션 외야수[5]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14년 신고선수 (SK)
소속팀 고양 원더스 (2012)
SK 와이번스 (2014~2018)
kt wiz (2019~2024)
지도자 브라더 스포츠 아카데미 (2025~)
병역 사회복무요원 (2012~2014)
등장곡 울랄라세션, 아이유 - 《애타는 마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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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colcolor=#373a3c,#ddd>동생 조용준[8], 배우자, 자녀[9]
소속사 MVP스포츠
본관 한양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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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3.2. 수비3.3. 주루
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SK 와이번스, kt wiz 소속 외야수.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조용호(1989)/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아마추어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컨택, 주력 및 선구안이 두루두루 좋은 전형적인 리드오프 유형의 선수. 어떤 투수든 싫어하는 유형의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3.1. 타격

타격에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타석 당 5구 이상 던지게 할 수 있는 커트와 컨택 능력이다. 꾸준히 타석 당 투구수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투수들이 승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똑딱이 유형의 타자임에도 통산 타출갭이 0.9에 달할 정도로 선구안과 출루 능력도 뛰어나다.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 역시 뛰어난데, 좌우를 가리지 않는 스프레이 히터이기에 어느 방향으로 안타를 날릴지 예측이 불가능한 선수다. 다만 장타력은 기대할 게 못 되는데, 1300타석을 넘게 소화한 시점까지도 홈런이 없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의 적은 타점 개수. WPA와 득점권타율이 높은 편임에도 타점이 지나치게 적은데 이는 타구의 비거리가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배팅 수치를 보면, 조용호가 안타를 칠 때 주자들이 추가 진루를 하기 굉장히 힘든 것을 알 수 있다.[10]

야구인생 첫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는 2020 시즌 초에는 각종 기록 상위권에 들던 것이 소위 말하는 바빕빨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반환점을 훌쩍 넘긴 8월 말 여전히 출루율 4할과 타석당 투구 수 1위를 유지하며 가치를 증명하는 중이다. 결국 시즌을 타율 0.296에 출루율 0.392라는 정상급 리드오프의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좋은 성적을 올렸던 20시즌까지는 하체를 넓게 벌리고 땅에 고정시키는 묘한 타법을 구사했었다. 상체를 고정시키다시피한 채 뒷다리를 축으로 몸통과 팔힘을 동원해 쳐내는 스윙을 하는데, 이러한 타격폼 덕분에 상기한 눈야구와 컨택에 매우 강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체가 고정되니 공을 보기에 유리하고 뒷다리를 축으로 삼다보니 다소 뒤에서 맞아도 타구가 앞으로 뻗는다. 딱 봐도 고관절이 아플 것 같은 자세인데 결국 20시즌 7월에 고관절 부상을 입었다.

21시즌 들어 공격적인 스윙으로 타석 당 투구수가 줄어들고 삼진과 뜬공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극단적으로 전진되어 있는 수비 시프트를 뚫어보고자 하는 듯. 고관절 부상 당시 잠시 수정되었던 타격폼은 원래의 기마자세 타격폼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존 타격폼은 몸쪽 공 대처에 약점이 있어 김강 타격 코치와 상의 끝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스퀘어 스탠스에서 오픈스탠스 (왼발을 홈플레이트 가까이 붙이고 앞발을 1루쪽으로 빼는 자세)를 취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타격폼을 만들었다. 22 시즌 초반 부진이 이어지면서 이 시도를 중단하였으나 김 코치의 설득으로 타격폼을 다시 수정하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22시즌부터는 레그킥을 더하면서 장타력도 좋아진 모습.

이런 타격폼 특징인지 현역 최다타석 무홈런 기록을 보유 중이었다. 2021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1447타석 1229타수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가 2022년 6월 2일 SSG와의 경기 1회 선두타자로서 141km짜리 직구를 쳐서 홈런을 만들어냈는데[11], 강한울의 기록을 넘어선 역대 최다 연타석 무홈런 기록이다. 장장 1631 타석만의 홈런.

커리어 하이인 22시즌은 상술한대로 타격 폼을 바꿔서 타구 퀄리티와 비거리가 크게 향상되며 장타를 자주 만들어내고 홈런도 종종 친다. 기존 장점이던 공을 보는 능력과 안타 생산력은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장타력이 더해져 암울한[12] KT의 공격을 전담하고 있으며 타율도 3할을 찍은 건 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가 없으면 KT는 박병호의 홈런이나 배정대의 뜬금포 한 방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수준으로 공격이 지리멸렬하다.[13]

3.2. 수비

SK 시절~트레이드 직후까지 조용호의 수비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렸다. 내야수 출신이기에 외야 수비 적응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kt에서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안정감 있는 코너 외야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타구 판단도 안정적이고 큰 실수 없이 무난한 수준이며 간혹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 캐치도 가능하다. 좌익수 뿐만 아니라 우익수[14], 배정대가 선발에서 빠질 땐 중견수도 커버가 가능해 이강철 감독의 신뢰를 듬뿍 받는 선수 중 하나. 이러한 수비능력이 김민혁과의 주전 경쟁에서 앞서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체구가 작고 내야수 출신이다 보니 어깨가 약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2020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허경민을 두 번이나 잡아내는 환상적인 보살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숨겨진 강견을 보여줬다. 시즌 중에는 아무래도 부상 염려가 커서 무리한 송구는 자제한 듯. 2021년에도 종종 보살을 잡아내는 등 좋은 송구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3.3. 주루

주력은 굉장히 뛰어났고 풀타임으로 뛸 시 20도루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주루 플레이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나머지 뛰지 말아야 할때 무리하게 뛰다 아웃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2020 시즌 플레이오프 4차전의 대환장 주루플레이로 알 수 있듯이 주루센스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고관절 부상을 겪은 뒤로는 도루 시도 횟수가 줄었으며 주력 자체도 리드오프 치고는 평범한 수준으로 느려졌다.

4.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조용호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출장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4 SK 1군 기록 없음
2015
2016
2017 69 225 52 7 1 0 34 10 11 25 39 .272 .365 .319 .684 81.1 0.19
2018 16 14 1 0 0 0 4 0 0 0 5 .077 .077 .077 .154 -88.3 -0.31
<rowcolor=#fff> 연도 출장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9 kt 87 211 55 6 3 0 15 19 3 21 28 .293 .364 .356 .720 106.1 0.35
2020 132 482 121 15 0 0 73 32 12 64 83 .296 .392 .333 .725 102.1 1.89
2021 138 515 101 14 1 0 71 48 12 74 85 .236 .349 .273 .622 76.6 -0.43
2022 131 531 146 18 4 3 52 44 5 49 74 .308 .374 .382 .756 111.5 3.08
2023 63 184 40 2 0 0 20 7 4 23 25 .248 .342 .261 .603 73.5 -0.12
2024 60 165 37 5 0 0 17 13 5 13 25 .248 .309 .282 .591 51.9 -0.52
KBO 통산
(8시즌)
695 2327 553 67 9 3 286 173 52 269 364 .275 .365 .321 .686 90.9 4.12

5. 여담

  • 팬 서비스가 매우 좋다. 한 시간이 넘는 사인 공세를 보여 줘 팬들 사이에서 "조용호는 집이 없냐"는 우스갯소리가 오르내릴 정도였다.
  •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졸 선수 출신으로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시고 고양 원더스와 사회복무요원을 거쳐 SK 와이번스의 육성선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야구를 하는 내내 고관절 부상이 잦아 발목이나 무릎쪽의 수술을 6번이나 받았을 정도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시기에는 겸직 허가까지 받아 우유 배달, 신문 배달, 피자 배달, 중국집 주방 등 여러 아르바이트했다.
  • 2020 시즌 활약에 힘입어 부쩍 인기가 많아진 선수 중 한 명이다.
  • 프로 데뷔 이후 홈런이 없었으나 2022년 6월 2일 첫 번째 타석에서 통산 첫 홈런을 기록한 데 이어[16] 담장을 높인 사직, 대형 구장인 잠실까지 넘기며 무려 3홈런을 기록했다.
  • 솩갤에서 언급이 많이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주로 조용호를 무상 트레이드로 보내버린 염경엽 감독을 성토하거나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중용한 트레이 힐만 감독을 회상할 때 언급된다.
  •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이미 같은 이름의 동명이인 야구 선수가 활동한 적이 있다. 1965년생으로 본 문서의 조용호처럼 외야수에 좌타자(이쪽은 좌투)였고 역시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특기로 했다. 이 원조 조용호는 북일고 시절 청소년 대표를 지냈고 한양대를 거쳐 1987년 창단 초기의 빙그레 이글스에서 지명되었다. 이정훈의 활약에 가려 주전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어 창단 시절 주전 외야수로 출장했다. 1991년에는 규정타수를 채우고 109안타로 3할1푼8리를 기록하며 타율 4위(이정훈, 장효조, 장종훈에 이어 타율 4위였고 이만수와 노찬엽이 5위와 6위였다.)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끝내 1군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1993 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말았다.

6. 관련 문서



[1] 데뷔 후라는 조건을 뺀 최다 연속 타석 무홈런 기록자는 이용규. 2006년 9월 12일 광주에서의 홈런 이후 2010년 사직에서 홈런을 칠 때까지 1640타석 1431타수간 홈런이 없었다.[2] 종전 기록은 현재 삼성에 있는 강한울로, 1544타석 무홈런 이후 2020년 9월 25일 잠실 두산전에서 처음으로 홈런을 치며 끊겼다. 이후 조용호가 이 기록을 깼고 2022년 6월 2일 SSG전에서 홈런을 치며 무홈런 행진을 마감했다. 역대 최다 타석 무홈런하고 단 9타석 차이. 타수로는 1396타수로 강한울보다는 살짝 적다(1415타수).[3] MLB 최장 기록은 벤 르비어로 데뷔 후 1,466타석 동안 무홈런을 기록했다. NPB 최장 기록은 오카다 요시후미로, 데뷔 이래 2501타석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고 끝내 은퇴했다. 참고로 이 선수는 고등학교 3년 통산 1홈런, 대학-사회인야구 통산 1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2군에서조차도 홈런이 없다.[4] 고2 시기에 경기고에서 전학.[5] 외야 전포지션이 가능하지만 2020 시즌 배정대가 붙박이 중견수로 자리잡은 이후로는 중견수로는 거의 출장하지 않았고, 좌익수우익수로만 출장하였다.[6] 지금은 은퇴한 야구선수 송광민이 한화 시절 2019년까지 쓴 응원가였으며, 바로 옆 수원실내체육관 연고팀인 현대건설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효진의 응원가이기도 하다.[7] 승리 위해 나타났다 kt 조용호~ 승리 위해 달려간다 kt 조용호~ 나나난나나 나난나 난나나나나~ 나나 난나나 나나나 조!용!호! ×2[8] 2002년생,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2024년 화성 FC에 입단한 축구 선수.[9] 2019년 3월생[10] 물론 그 주자가 박경수, 장성우 등 리그에서 손꼽히는 똥차라서 그렇기도 하다.[11] 비거리도 110m대[12] 3할 초반대인 조용호의 타율이 가장 높다...[13] 팀 타율 7위, 다만 이 시즌이 투고타저 시즌임과 동시에 팀타율 5위인 NC와 불과 3리 차이밖에 나지 않았음을 감안해야 한다.[14] 이전에도 우익수로는 종종 출전했었다. 멜 로하스 주니어가 우익수로 완전히 수비포지션을 잡은 뒤로는 고정 좌익수로 나오다가 다음 해에 영입된 조일로 알몬테가 좌익수 수비만 뛰면서 우익수 출장 비율이 늘어났다. 알몬테가 제라드 호잉으로 대체된 이후로는 다시 좌익수로 나오고 있다. 다음 해, 호잉을 보내고 헨리 라모스가 오면서 좌익수를 계속 봤지만 라모스가 앤서니 알포드로 대체되면서 다시 우익수로 출장중이다.[15] 참고로 프로게이머 조용호 역시 kt 롤스터 소속이었다. 다만 프로게이머 조용호의 경우 부산 출신이라서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조용호가 프로게이머 선수일 당시에는 KT 산하의 야구단이 없었다.[16] 공교롭게도 이 홈런은 친정의 후신인 SSG의 홈에서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