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0 17:33:12

조 새트리아니


<colbgcolor=#111><colcolor=#fff> Joe Satriani
조 새트리아니
파일:Joe_Satriani_Profile.jpg
본명 조셉 새트리아니
Joseph Satriani
별명 새치
Satch
출생 1956년 7월 15일 ([age(1956-07-15)]세)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웨스트베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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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타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음악 교육가
활동 1978년 ~ 현재
장르 인스트루멘탈 록, 하드 록, 블루스 록
학력 칼 플레이스 고등학교(졸업)
파이브 타운스 칼리지(중퇴)[1]
소속 딥 퍼플, 치킨풋, 앨리스 쿠퍼, G3 등등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커리어3. 음악적 특징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4.2. 그외 장비
5. 기타

1. 개요

미국기타리스트. 1956년 7월 15일 뉴욕 롱 아일랜드 웨스트베리에서 출생했다.

기성 뮤지션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명 기타리스트로, 인스트루멘탈 록 기타 시대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연주자들에게 있어서는 Guru(사부, 장로)로 통한다. 국내에서는 흔히 그 실력에 경탄한 사람들에 의해 외계인(...)이라 불리기도 하나, 이러한 존경과 선망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2. 생애 및 커리어

미국 뉴욕 주 롱 아일랜드 웨스트베리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00년대 초에 이탈리아에서 건너왔으며, 아버지는 맨해튼에서, 어머니는 브롱크스에서 성장하였는데, 새트리아니는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막내였다.

원래는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학창 생활을 보냈었고, 풋볼을 매우 좋아하였으나, 14세 때 지미 헨드릭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담당 코치에게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연습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며, 그 이후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실력 성장이 제법 빨랐는지, 칼 플레이스 고등학교 재학 당시에는 교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무대에 서서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조그만 남자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는데, 이쪽도 조 새트리아니와 마찬가지로 레전드 록 기타리스트로 성장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도 그는 자신의 성장 또한 놓치 않았는데, 1974년에는 재즈 기타리스트 빌리 바우어, 재즈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타노 등에게 음악을 배우기도 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파이브 타운즈 칼리지에 진학하여 비록 한 학기 뿐이기는 하나 재즈를 공부하기도 했다.

1978년, 그는 정식으로 음악 경력을 쌓기 위해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부 뉴욕 주를 떠나 서부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로 이주한다. 이곳에서도 그는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대표적으로 이후 메탈리카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발탁되는 커크 해밋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주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활동을 전개해오던 새트리아니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1986년, 솔로 데뷔앨범 Not Of This Earth를 발표해 정식으로 록계에 등장했다. 이 앨범에서 조는 재즈적 색채가 강한 기타를 들려주어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1987년, 첫 앨범보다 록적으로 기운 두 번째 앨범 Surfing With The Alien을 공개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히트곡이라 불러줄 수 있는 곡을 가진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또한 1988년 6월 11일에는 샌디애고의 캘리포니아 극장에서 공연을 가지며, 명실공히 스튜디오와 라이브 모두에서 최고의 기타 솜씨를 들려주었다[2]89년에 조는 100% 인스트루멘탈 이었던 그간의 앨범들과는 달리 그 자신이 직접 보컬까지 맡았던 앨범 Flying In A Blue Dream을 발표하였다.

1992년, 그는 Surfing With The Alien의 뒤를 이은 그의 두 번째 히트 앨범인 The Extremist를 공개하였다. 이 앨범에 수록된 Summer Song은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5위를 기록하였으며, 앨범 자체도 빌보드 200에서 22위에 오르는 등, 인스트루멘탈 록 앨범 기준에서는 쾌거라 할 정도의 성적을 달성한다. 바로 이듬해인 1993년 하반기 <The Battle Rages On> 투어 도중에는 리치 블랙모어가 갑작스럽게 부재하면서 기타리스트 자리가 공석이 된 딥 퍼플에 임시 멤버로 합류하여 공연을 펼쳤고, 투어가 끝난 뒤, 정식으로 딥 퍼플에 합류해줄 것까지 요청받았으나, 매니지먼트 문제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결국 이 요청을 거절하였다.[3][4]

1996년에는 스티브 바이, 에릭 존슨 등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G3를 결성하고 동반 투어를 진행하였다. 이 때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인 1996 G3 : Live in Concert가 플래티넘 디스크를 수상하면서 그의 인지도는 훨씬 높아졌다.

2017년 2월 9일 목요일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다.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저녁 7:30에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

3. 음악적 특징

Always With Me, Always With You
(2006년 연주)
Surfing With The Alien
(2010년 연주)
Satch Boogie
(2006년 연주)
방송에서 선보인 블루스 즉흥 연주
(2001년 연주)
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에 특히 유행하였던 형태의 하드 록이나 블루스 록 등에 기초하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동시에, 일렉트릭 기타를 메인 독주악기로 내세운 형태의 인스트루멘탈 록 음악이다. 한때 재즈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전적이 있기에 이론적으로 매우 탄탄한 기본기가 잡혀있으며, 테크닉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미래적인 시도들을 선보이면서 인스트루멘탈 록을 포함한 일렉트릭 기타 주법 및 표현의 방법적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왔다. 세밀하게 배치한 코드 보이싱,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 뛰어난 테마 전개, 능수능란한 경과음 배치, 현란한 핑거링을 사용한 부드러운 질감의 레가토, 태핑 속주, 트레몰로 암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생생한 음높이 표현, 그리고 게인량과 서스테인의 길이를 수시로 바꾸어가며 만들어내는 양질의 뛰어난 사운드 변조 등 매우 캐릭터가 강한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음악성 없이 진부한 속주만 선보이는 양산형 록 기타리스트라며 폄하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지금 2020년대 기준으로 진부해보일 수 있는 일렉트릭 기타를 독주 악기로 내새운 화려한 속주 및 뉘앙스 표현법과 관련된 주법들이 전부 이 사람을 한 번씩은 거치며 발전해왔음을 고려해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음해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 진부한 일렉기타 운용법의 많은 부분이 이 사람에 의해 탄생하거나 한 단계 발전했다고도 불 수 있는 수준이다. 그의 음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위에서 볼 수 있는 블루스 즉흥 연주인데, 평소 그가 보여주는 음악보다는 좀 더 정통 블루스에서 가까운 연주이나, 여기서도 매우 절륜한 연주를 보여주며, 이는 이론적 기반과 해당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없이는 힘들 정도의 완성도이다.

왼손으로 트레몰로 암을 잡고 개방현 상태로 피킹 하모닉스 주법을 사용하여 마치 사이렌과 같은 날카로운 사운드를 내는 특유의 주법[5]을 즐겨 사용하는데, 조 새트리아니만의 전매 특허에 가까운 주법이다.[6]

주로 사용하는 톤은 모던한 , 메탈에서 주로 사용되는 쭉쭉 뻗어나가는 디스토션 이펙터를 사용한 리드 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꺼끌꺼끌하고 보풀이 묻어나오는 빈티지한 리드 톤에 가까운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1970년대 후반에 시작한데다 그의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 록과 클래식한 하드 록 음악들에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일부러 이런 질감의 톤을 고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연주자로서의 기량 뿐만 아니라, 송라이터로서의 기량 또한 매우 훌륭하다 평가받는다. 실험적인 작법의 The Snake, 핑거링 주체의 유창한 솔로가 담긴 Back To Shalla-Bal, The Bells Of Lal Part 2, 하드 록부기우기 리듬을 접목한 특유의 그루비한 기타 리프로 곡을 이끌어가는 Satch Boogie, 아랍 전통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음계를 적용시킨 Hordes of Locust, 리디안 선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Flying In A Blue Dream 등이 대표적으로, 이러한 독자적인 시도들은 그가 기존에 블루스 록 계통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음악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 캐릭터성을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데 일조하였다.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파일:Ibanez_JS1_IR.png
Ibanez JS1
(1990년)
커리어 초창기부터 일본의 기타 메이커인 아이바네즈일렉트릭 기타를 애용해왔다. 대략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아이바네즈와 계약을 맺고 자신이 원하는 사양의 악기를 제공받아 사용해왔으며, 1990년에는 아예 아이바네즈에서 기존 540R 모델을 변형한 JS 시리즈라는 독자적인 시그니처 모델 라인업을 출범하여 현재에 이른다. 조 새트리아니는 스티브 바이와 함께 초창기 아이바네즈의 인지도 견인을 담당하였던 소위 슈퍼급 엔도스먼트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으며[7], 현재까지도 아이바네즈와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모던한 톤을 좋아하지만 연주감은 빈티지 필을 좋아한다는 새트리아니 본인의 말에 걸맞게 지판의 곡률도 모던한 외관을 지닌 기타 치곤 제법 둥근 편이다. 실제로 최초의 JS 모델이었던 JS1의 스펙상 지판 곡률은 250mm였는데, 이는 모던한 펜더 스타일 일렉트릭 기타들의 241mm(9.5인치)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곡률이며, 현재 대부분의 아이바네즈 슈퍼스트랫들이 400mm가 넘는 훨씬 평평한 곡률을 주로 사용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매우 둥근 편인 셈이다. 따라서 다른 아이바네즈 일렉기타들 특유의 연주감을 생각하고 구매하였다가는 약간 당혹스러울 수 있다.

브릿지는 아이바네즈에서 독자적으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를 개량하여 출시한 엣지 시리즈 트레몰로를 채용하였다. 트레몰로 암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과격한 아밍 주법을 주로 운용하는 조 새트리아니의 연주 스타일에 매우 걸맞는 선택이라는 평.

과거 JS 시리즈는 테크니컬한 플레이로 유명한 기타리스트의 시그니처 모델 시리즈임에도 특이하게 24프렛 사양 악기가 나오지 않던 것으로도 제법 악명이 높았다. 24프렛 지판이 채용된 악기는 지판의 길이가 바디 쪽으로 연장되면서 공간 부족으로 넥 픽업의 위치가 브릿지 방향으로 더 밀려나서 비교적 소리가 좋지 못하게 바뀌는데[8], 빈티지한 연주감과 사운드를 지향하는 새트리아니의 성향상 이쪽으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그나마 최근 24프렛을 채용한 JS2400을 시작으로 JS 시리즈에도 24프렛이 채용된 모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픽업디마지오 제품을 주로 사용하나 간혹 시모어 던컨에서 생산된 픽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주로 넥 픽업으로 디마지오 Fred를, 브릿지 픽업은 마찬가지로 디마지오 PAF-JOE를 사용하는데, 둘 다 시그니처 픽업이다. 거의 언제나 넥 픽업과 브릿지 픽업 두 개만 사용하는데 장르가 장르다보니 미들 픽업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그의 시그니처 모델은 거의 태반이 SH 아니면 HH 픽업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8년에는 조 새트리아니와 아이바네즈 간의 계약 30주년을 기념하는 시그니처 모델인 JS1CR30 모델이 출시되었다. 최초의 JS 시리즈 모델이었던 JS1의 복각 모델[9]인 동시에 고급스러운 크롬 바디 피니쉬와 조 새트리아니의 친필싸인까지 들어가있는 화려한 구성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하는 탓에 가격은 무려 600만 원을 호가한다. (관련 영상)

거의 모든 라이브 무대에서 아이바네즈의 기타를 사용하나, 몇몇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브랜드의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06년에 개최된 기타리스트 레스 폴의 헌정 무대에서는 깁슨레스폴 스페셜 모델을 들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트레몰로 암이 없는 고정형 브릿지가 장착된 기타를 연주하는 조 새트리아니를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영상이기도 하다. (영상)

4.2. 그외 장비

앰프는 마샬, 부기, 솔다노 등 여러 가지를 써왔으나 피베이와의 인도스먼트 계약후 자신의 시그니처 앰프 JSX를 사용해왔다. 현재는 피베이와의 엔도서 계약이 끝나고 마샬 앰프에서 시그니처 모델이 나오고 있다. 모델명은 JVM410HJS.

5. 기타

  • 특유의 대머리 + 선글라스 조합 패션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에는 해당 뮤직비디오에서도 볼 수 있듯, 풍성한 장발을 자랑하였으나, 탈모 탓인지 현재는 머리를 전부 밀어버리고 몇십 년째 대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도무지 늙지를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실제로 칠순 가까이 된 고령임에도 얼굴에 주름이 살짝 생긴걸 감안해도 거의 40대, 50대 정도로 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 현재 그래미상 후보에 15번이나 올랐지만 한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브라이언 맥나잇의 16회 다음으로 높다.진정한 콩라인 2016년 현재 Snoop Dogg의 17회가 추가되어 세번째로 밀려났다.
  • 새트리아니의 고향인 뉴욕 롱아일랜드[10]를 연고로 하는 뉴욕 아일런더스가 홈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새트리아니의 Crowd Chant를 틀어준다. 미네소타 와일드도 같은 곡을 몇 년 동안 써왔지만, 2016년 시즌부터 프린스의 Let's Go Crazy를 사용하고 있다. 노래가 바뀐 것이 미네소타 와일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2016년 오프시즌의 큰 화젯거리였다 카더라 다만 홈경기 승리시에는 Crowd Chant를 틀어주기도 한다.

[1] 인터뷰에 따르면 음악 공부를 위해 파이브 타운스 칼리지를 한 학기 다니긴 했으나, 졸업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2] 이 때의 실황은 이후 Dreaming #11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3]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리치 블랙모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딱 잘라 거절했으나 이후 생각을 바꿔 전화를 준 매니저에게 연락을 다시 했는데, "저기, 거절했다고 이미 전달했나요?"라고 묻자 매니저가 "아뇨, 마음을 바꾸실 줄 알았습니다."라며 수락이 됐다고 한다.[4] 이렇게 새트리아니까지 거절하여 공석이 된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 자리는 후일 스티브 모스가 이어받는다.[5] 첨부된 위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Surfing With The Alien 영상 기준 56초, 1분 42초, 2분 22초에서, Satch Boogie 영상 기준 33초, 3분 3초에서 해당 주법을 사용한다.[6] 캐논 락으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funtwo 또한 이 주법을 매우 애용한다. 이쪽 또한 연주 스타일 측면에서 조 새트리아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7] 이미 기존부터 조지 벤슨, 조 패스같은 재즈 기타리스트들과 엔도스먼트 계약을 맺긴 했었으나, 아이바네즈의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아진 계기는 저 둘과의 엔도스먼트 계약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8] 이는 넥 픽업이 장착되는 곳이 2옥타브 하모닉스에 해당되는 전체 스케일의 3/4에 해당되는 위치인데, 하필이면 여기가 길이상 24프렛이 있어야만 하는 위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렛의 위치를 옮겨버릴 수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픽업의 위치를 바꾸어 위치가 겹친다는 문제점을 해결한 것. 자세한 내용은 배음 문서 참조.[9] 다만 지판이 24프렛까지 연장돼있으며, 픽업 모델도 다르기에 과거 JS1 모델과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진 않다.[10] 롱아일랜드 내쏘 카운티의 웨스트베리{원어 발음은 웨스트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