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4:46:25

제프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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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ive Live Yardbirds.jpg
파일:For Your Love.jpg
파일:Having a Rave Up with the Yardbirds.jpg
파일:Roger the Engineer.jpg
Five Live Yardbirds
1964
For Your Love
1965
Having a Rave Up with the Yardbirds
1965
Roger the Engineer
1966
파일:Little Games.jpg
파일:Birdland.jpg
Little Games
1967
Birdland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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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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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제프 벡
JEFF BECK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개인자격)
입성 연도2009년
후보자격 연도1993년
후보선정 연도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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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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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5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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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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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비비 킹 척 베리 에디 밴 헤일런 듀언 올맨 피트 타운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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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지 해리슨 스티비 레이 본 앨버트 킹 데이비드 길모어 프레디 킹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데릭 트럭스 닐 영 레스 폴 제임스 버턴 카를로스 산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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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앳킨스 프랭크 자파 버디 가이 앵거스 영 토니 아이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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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메이 보 디들리 조니 라몬 스코티 모어 엘모어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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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쿠더 빌리 기븐스 프린스 커티스 메이필드 존 리 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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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로즈 믹 테일러 디 에지 스티브 크로퍼 톰 모렐로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믹 론슨 마이크 블룸필드 휴버트 서믈린 마크 노플러 링크 레이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제리 가르시아 스티븐 스틸스 조니 그린우드 머디 워터스 리치 블랙모어
51위부터는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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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회사 깁슨에서 2010년 발표한 "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의 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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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 척 베리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제프 벡 에디 밴 헤일런 쳇 앳킨스 로버트 존슨 피트 타운젠드
1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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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제프 벡
Jeff Beck
파일:Jeff-Beck-with-his-Strat-2009.jpg
본명 제프리 아널드 벡
Geoffrey Arnold Beck
출생 1944년 6월 24일
영국 잉글랜드 서리주 웰링턴
사망 2023년 1월 10일 (향년 78세)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주 워드허스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부모 아널드 벡
에델 벡
남매 누이 아네타 벡
학력 서튼 매너 학교
서튼 이스트 카운티 신 중등 학교
윔블던 예술대학[1]
직업 기타리스트, 송라이터
장르 사이키델릭 록, 퓨전 재즈, 인스트루멘탈 록[2]
데뷔 1965년 야드버즈 2집 'For Your Love'
소속 야드버즈 (1965–1966)
제프 벡 그룹 (1967–1969, 1970–1972)
벡, 보거트 & 어피스 (1972–1974)
무소속 (1974–2023)
서명 파일:Jeff-Beck-Autograph.jpg
레이블 EMI, Epic
활동 1964년 – 2023년
배우자 패트리샤 브라운 (1963 - 1967)
산드라 캐쉬 (2005 - 2023)[3]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데뷔 전2.2. 야드버즈 시절2.3. 초기: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거트 & 어피스2.4. 전성기: 솔로 시절과 얀 해머와의 조인트2.5. 이후의 활동2.6. 사망
3. 상세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4.1.1. 시그니처 모델
4.2. 앰프4.3. 이펙터
5. 디스코그래피6. 그에 대한 말7. 그 외

[clearfix]

1. 개요

제프 벡(Jeff Beck)영국기타리스트이다.

한국에선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소위 '록 3대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불리며[4], 저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야드버즈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사람이다. 저 두 사람과 달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지만,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2. 생애

2.1. 데뷔 전

그는 1944년 6월 24일 잉글랜드 월링턴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족구성원은 부모와 누이, 제프 벡으로 네명이었다. 월링턴의 사립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어머니에 의해 피아노를, 삼촌에 의해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지만 큰 흥미는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갔다. 대신 이 무렵 차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5] 이후 시간이 지나 중학교에 입학한 뒤 초기 로큰롤로커빌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본격적으로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버디 홀리진 빈센트등의 영향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싶었던 제프 벡은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지만, 경제적 문제 때문에 고가의 브랜드 악기는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제프 벡은 친구와 함께 자작 기타를 만들어 사용했다.[6]

이후엔 윔블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첫 밴드인 나이트 쉬프트를 결성해 현지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되기도 하고, 당시 지미 페이지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던 누이에게 지미 페이지를 소개받아 친구 사이가 된다.

이후 미술학교를 나오고 난 뒤 나이트 쉬프트를 해산하고 새로운 밴드인 트라이덴츠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7]

2.2. 야드버즈 시절

지미 페이지에게 소개되어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야드버즈에 가입해 싱글 'Heartful Of Soul'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 곡의 인상적인 인트로 리프는 원래 시타르로 연주 될 예정이었지만, 스튜디오에 불렀던 시타르 연주자가 4분의 4박자로 연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녹음할 수 없었다. 거기서 제프 벡이 당시로선 새로웠던 퍼즈 이펙터를 연결해 비브라토를 더하며 시타르의 소리를 재현해 연주했는데, 그게 채용된 것이다. 제프 벡의 대응력을 알 수 있는 부분.

1966년 베이스를 담당하던 폴 사무엘 스미스가 탈퇴한 뒤 후임으로 들어온 지미 페이지가 곧 베이스 자리를 크리스 드레야에게 맡긴 뒤 제프 벡과 함께 리드 기타를 담당하게 되고, 야드버즈는 싱글 'Happenings Ten Years Time Ago / Psycho Daises' 를 발표하게 된다. 이 시기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욕망에 지미 페이지를 포함한 야드버즈 멤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제프 벡은 기타로 앰프를 몇방 때리다 피트 타운젠드마냥 기타를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실제론 제프 벡은 무대에서 이런 과격한 퍼포먼스는 하지 않았다.[8] 관련 영상

이후 제프 벡은 멤버 간의 갈등과 본인의 건강상의 문제로 같은 년도 12월 중순에 야드버즈를 탈퇴하게 된다. 제프 벡은 이때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때라고 회고했다.[9]

2.3. 초기: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거트 & 어피스

제프 벡은 밴드를 아직 결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니키 홉킨스, 키스 문 같은 쟁쟁한 멤버들의 도움으로 A사이드 'Beck's Bolero', B사이드 'Hi Ho Silver Lining'로 싱글을 낸 뒤 곧 그의 밴드 1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10] 그는 보컬로드 스튜어트, 베이스에 로니 우드, 드럼에 믹 웰러[11], 2집부턴 키보드에 니키 홉킨스라는 거의 크림에도 밀리지않는 사기적인 멤버들로, Truth(1968)와 Beck-Ola(1969) 두 앨범을 발표한다. 그런데 초기 프로듀서 미키 모스트가 밴드의 리더는 직접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제프 벡이 Tally Man, Hi Ho Silver Lining 등의 노래를 직접 불렀다.[12] 이 두 앨범은 록 역사상 위대한 앨범들로 인정받고 있으며, Truth가 초기 블루스 록의 모습에 가깝다면, Beck-Ola는 좀 더 전형적인 하드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 Truth에는 야드버즈의 곡 Shapes of Things과 윌리 딕슨의 고전 You Shook Me가 실려있고[13] 제프 벡 솔로명의로 발매된 싱글에 수록된 Beck's Bolero[14], 로드 스튜어트의 보컬과 니키 홉킨스의 피아노가 빛나는 블루스 Blues Deluxe 또한 명곡이다.
  • Beck-Ola에는 앨비스 프레슬리의 고전 All Shook Up, Jailhouse Rock과 추후에 로니 우드와 로드 스튜어트가 독립해 결성한 밴드 페이시스도 본인들의 앨범에 실은 Plynth (Water Down the Drain), 그리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의 The Hangman's Knee와 Rice Pudding[15]이 실려있다. 이건 제프 벡이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서 밝힌 내용으로, 당시 초창기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선도한 밴드인 바닐라 퍼지의 영향을 받아 무겁고 반복적인 베이스 비트를 본인의 음악에 도입해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Beck-Ola 이후 니키 홉킨스가 탈퇴하고, 로니 우드가 페이시스에 가입하기 위해 탈퇴하고, 로드 스튜어트도 최종적으로 로니 우드를 따라 페이시스에 가입하게 되며 1기 제프 벡 그룹은 해산되었다.

이후 제프 벡은 상술한 바닐라 퍼지의 팀 보거트, 카마인 어피스에게 접근해 새로운 밴드를 결성할 예정이었지만, 1969년 11월 2일에 포드 모델 T를 운전하던 도중 교통사고가 나 3개월 동안 입원을 하게 되며 새로운 밴드의 결성은 무산되고 만다.

부상이 완치 된 제프 벡은 보컬리스트 바비 텐치, 키보디스트 막스 미들턴, 드러머 코지 파웰을 받아들여 제 2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한다. 이들은 1971년에 Rough and Ready, 그 다음해 Jeff Beck Group 두 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제프 벡은 이 밴드도 해산시키고 상술한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함께 새로운 밴드 벡 보거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를 결성하고 한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일본 한정 라이브 앨범을 낸다.

*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는 제프 벡 그룹 때의 멤버들에게 꿇리지 않는 굉장한 연주자들이었고, 이들은 이 앨범에서 당시 딥 퍼플레드 제플린에 전혀 밀리지 않는, 오히려 더 능가하는 엄청난 연주를 들려줬다. 이들의 음악은 여기서 이미 어느정도 재즈로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재즈 퓨전의 대표주자였던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의 밴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후 이 밴드 멤버들과 음악적 교류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보컬은 드러머인 카마인 어피스가 맡았고, 스티비 원더의 원곡 Superstition과 아름다운 발라드 Sweet Sweet Surrender 등이 명곡이다. 저 Superstition은 원래 스티비 원더가 제프 벡에 주려고 했던 하드록 넘버였으나, 스티비 원더의 소속사가 이 곡을 펑크 버전으로 편곡하여 스티비 원더 명의의 싱글로 먼저 내버렸는데, 그게 빌보드 1위를 달성하며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본 명곡이 되어버린 것이다. [16]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협연한 Superstition 라이브

2.4. 전성기: 솔로 시절과 얀 해머와의 조인트

제프 벡은 벡 보거트 앤 어피스도 또 해산하고 솔로로 활동하며 Blow by Blow라는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을 흔히 제프 벡 최고의 앨범이라고 얘기한다. 재즈적인 지향성이 이미 확고해진 상태에서 일렉트릭 기타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실험해본 걸작중의 걸작이라고 얘기한다. 비틀즈의 She's a Woman, 스티비 원더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 Thelonius[17], Freeway Jam 등등 명곡이 넘쳐난다.

이후에도 Wired같은 명반을 내고, 상술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출신의 키보디스트 얀 해머와 협연한 라이브 앨범인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를 냈는데, 이 앨범 역시 명반이다. 얀 해머가 작곡한 곡이자 앨범 수록곡인 Blue Wind 라이브

2.5. 이후의 활동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프 벡은 어떤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80년대Blow by BlowWired에 이은 재즈 퓨전 앨범인 There And Back을 발매하기도 했으며,# 제프 벡 그룹에서 함께 활동한 로드 스튜어트와 다시 만나 Flash 앨범에서 커티스 메이필드가스펠 블루스 People Get Ready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90년대엔 Big Town Playboys란 밴드와 함께 진 빈센트의 곡 위주의 로커빌리 커버 앨범 Crazy Legs을 냈고,#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위주의 앨범인 Who Else!를 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백악관믹 재거와 함께 초청받고# 조니 뎁과 함께 앨범을 내는 등# 상당히 화려한 행보를 보여줬다.

2.6. 사망

2023년 1월 10일에 갑자기 발병한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인해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틀 뒤 1월 12일 벡의 공식 사이트엔 "그가 급성 세균성 수막염을 앓다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글이 올라왔다.국내 기사

사망 근래까지 오지 오스본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표하였다. 동시에 그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3. 상세

1986년 일본 나가노 현 라이브[18] 1999년 일본 도쿄 라이브
2007년 영국 런던 라이브 2022년 미국 뉴욕 라이브[19]
그는 마찬가지로 야드버즈를 거쳐갔던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달리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업적인 성공, 그리고 이미 완성한 연주 스타일에만 머무르며 안주하던 그들과는 달리, 기존의 연주 기법을 연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법과 스타일을 도입해가며 끊임없이 변형/발전시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뮤지션/기타리스트로서 가장 충실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초기에 결성된 멤버로 밴드를 계속 이어갔다면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에 의지하여 충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안락하게 지금까지 밴드 활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음악적 스타일을 변화시켜 가며 그 때마다 필요한 멤버들을 모으고 또 해산시켜가며 가장 그 음악적 컨셉에 맞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래서 그의 음악들을 단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정의한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는 초기에는 누구나 그랬듯 블루스에 기초한 록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후 최초의 하드 록/헤비 메탈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이후 재즈적인 연주나 컨트리 뮤직/서던 록에 기반한 연주쪽으로 기울기도 했고, 잠시 초창기 로커빌리 연주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노년기에 들어서도 그 실험적인 정신은 쇠퇴하지 않아 1990년대 이후엔 테크노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속주에 특화된 그런 기타리스트는 아니었지만, 제프 벡의 연주에서 가장 주목되고 고평가 받았던 부분은 바로 극한으로 갈고 닦은 뉘앙스표현력이다. 기타라는 악기를 악기가 아닌, 마치 몸의 일부분처럼 다룰 정도로 그 뉘앙스 표현이 훌륭했는데, 한 음 한 음을 격정적이고 또렷하게 감정을 실어 연주하였으며, 그의 대표곡인 Cause We've Ended as Lovers같은 곡을 들어보면 말 그대로 기타가 울부짖는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 레벨에서 끝나지 아니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도들 끝에 제프 벡은 80년대 중반인 There And Back 앨범 이후부터 피크 사용을 그만두었는데, 왼손은 단순히 운지와 밴딩만 하면서 맨손으로 엄지와 검지등으로 현을 치는 동시에 나머지 손가락으론 트레몰로 암을 흔들거나 트레몰로 브릿지 자체를 손바닥으로 치는 식의 독특한 톤을 내는 연주 스타일을 완성했다. 동시에 볼륨과 톤 노브를 자주 조절하기도 했다. 왜 피크 사용을 그만두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공연에서 비틀즈A Day in the Life를 연주하는 이 영상을 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레몰로 암의 존재 이유를 누구보다 잘 나타내주는 기타리스트고 독보적인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야드버즈 출신의 다른 기타리스트들(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이 지금에 와서는 극복했다고는 해도 커리어 내내 약물 중독이나 사생활 문제로 큰 곤혹을 치뤘던 반면, 마약, 음주, 흡연 중 어떠한 것도 즐기지 않았던,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4. 사용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제프 벡은 초창기에는 펜더 에스콰이어를, 그 이후로는 레스폴을 사용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스트라토캐스터를 본인의 메인기타로 삼았다.
파일:Jeff_Beck_with_1954_Esquire.jpg}}} ||
1954년에 생산된 펜더 에스콰이어로, 초창기 제프 벡의 메인 기타였다. 본래 제프 벡이 야드버즈에 있을 적인 1965년에 함께 투어를 진행했던 워커 브라더스(Walker Brothers)라는 밴드의 존 워커(John Walker)가 소유하고 있던 에스콰이어로, 투어 도중 그가 제프 벡에게 이 기타를 75파운드에 살 것을 제안했고, 제프 벡이 이를 수락하면서 얻게 되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제프 벡의 메인 기타로 활약했으나 대략 9년 뒤인 1974년에 그가 벡, 보거트 & 어피스의 두번째 앨범[20]을 작업하던 도중, 시모어 던컨사의 창립자인 시모어 W. 던컨이 개조한 텔레캐스터[21]와 이 에스콰이어를 교환하였고, 그렇게 제프 벡의 손을 떠나게 된다. 제프 벡은 이후 여러 번 인터뷰에서 이 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추후 펜더 커스텀 샵의 트리뷰트 시리즈를 통해 원본 모델을 완벽하게 복각한 레플리카 모델이 생산되었다.
파일:Jeff_Beck_with_1954_Oxblood_Les_Paul.jpg}}} ||
1954년에 생산된 깁슨 레스폴이다. 본래 1954년에 생산된 깁슨 레스폴들은 골드 탑(Gold Top)이라 불리는 금색 피니쉬로 마감되었으나, 그는 이 금색 피니쉬를 모두 벗겨내고 검붉은색으로 다시 도색했으며, 픽업 또한 기존의 P-90에서 오픈형 험버커 픽업으로 교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브릿지 또한 54년도 모델답게 튠오매틱 브릿지가 아닌 레스폴 스페셜이나 주니어에 장착되는 랩어라운드 브릿지를 장착하였다. 옥스블러드(Oxblood)라는 명칭은 앞서 언급된 검붉은 피니쉬 색에서 따온 것으로, 해당 레스폴의 애칭 겸 피니쉬 이름[22]이기도 하다.

제프 벡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 Blow by Blow 앨범을 녹음할 때 사용했던 악기로도 유명하며, 해당 앨범의 표지에 그려진 악기 또한 이 레스폴이다. 추후 깁슨 커스텀 샵에서 해당 악기를 완벽하게 복각한 모델을 소량 생산하기도 했다.
파일:Jeff_Beck_with_Tele-gib.jpg}}} ||
픽업 브랜드 시모어 던컨의 창립자인 시모어 W. 던컨[23]이 제프 벡에게 선물한 텔레캐스터. 당시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던 던컨이 우연히 제프 벡과 인연을 트게 되면서 그를 위해 제작한 악기이다. 원본이 되는 악기는 1959년에 생산된 버터스카치 색상 텔레캐스터인데, 던컨은 이 텔레캐스터에 원래 장착되어 있던 로즈우드 넥을 제거하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메이플 넥을 장착하였고, 픽업을 제거한 뒤 한 때 로니 맥이 소유하고 있던 파손된 1959년식 깁슨 플라잉 V에 장착되어 있던 PAF 험버커 픽업의 보빈을 토대로 직접 픽업을 와운딩, 장착하여 해당 악기를 완성했다.[24] 텔레-깁이라는 명칭은 텔레캐스터를 기반으로 깁슨의 악기들과 비슷한 개조를 했다는 데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해당 악기를 만든 던컨 본인이 작명한 것이다. 완성된 텔레-깁은 벡, 보거트 & 어피스의 두번째 앨범을 녹음 중이던 제프 벡에게 전달되었고, 벡은 이 텔레-깁을 Blow by Blow의 수록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 Freeway Jam의 연주에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이후 벡은 던컨에게 악기를 제작해준 감사의 의미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악기 중 하나를 가져가도록 해주었고, 이 때 던컨이 선택하여 가져간 악기가 상술한 1954년펜더 에스콰이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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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기타에서 제작한 솔로이스트 모델로, 티나 터너가 매니큐어로 사인한 것이 특징이다. 분홍색 피니쉬에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 정통 스트랫을 연상시키는 싱글 코일 픽업 세 개가 장착된 구성으로, 1985년에 Flash 앨범에서 잠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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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빌리 거장 진 빈센트의 밴드 Blue Caps의 기타리스트인 클리프 갤럽의 팬이었던 제프 벡은 그가 사용한 것과 최대한 비슷한 기타를 원했는데, 이 기타가 제프 벡의 마음에 들었다. 1993년에 Crazy Legs 앨범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로도 간간히 라이브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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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 커스텀 샵의 마스터 빌더 J.W. 블랙이 각각 1993년에 제작한 로즈우드 지판 넥과 2년 뒤인 1995년에 제작한 올림픽 화이트 바디를 결합한 기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엘더애쉬가 아닌 베이스우드 바디이며, 너트는 아래에 나올 첫 시그니처 모델처럼 너트가 윌킨슨 롤러 너트이지만, 픽업은 일반적인 스트랫용 픽업[25]이 장착되어 있는 등 여러모로 아래에 나올 펜더의 두 시그니처 모델들을 융합해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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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Loud Hailer 투어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악기로, 지미 헨드릭스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처럼 리버스 헤드 사양이다.[26] 지판의 22프렛 이후로 살짝 튀어나온 끝부분을 잘 보면 특이하게도 텔레캐스터처럼 모서리가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깎여있는데, 일반 펜더 스트랫들은 여길 둥글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매우 특이한 부분. 그 외 사양은 2001년도 이전 시그니처 모델, 93/95 커스텀 샵 스트랫과 유사하다.

위 기타들 외에도 깁슨 L-5, 펜더 1954 오리지널 텔레캐스터/스트라토캐스터, 보헤미안 오일 캔 기타 등을 사용했다.

4.1.1. 시그니처 모델

  • Fender Jeff Beck Signature Stratocaster (199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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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펜더에서 제작해준 첫 번째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 당시 생산되던 스트랫 플러스 모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그렇기에 많은 부분에서 사양이 겹친다. 사진에 나온 보라색 피니쉬 모델을 포함하여 서프 그린, 올림픽 화이트 색상까지 총 세 가지 피니쉬가 제공되었다. 1991년 처음 발매 당시에는 같은 시기 펜더 멕시코 스탠다드에서 사용되던 도안과 유사한 데칼이 부착되었으나, 대략 1995년부터 50년대 스타일 스파게티 로고로 바뀌었고, 1993년부터 너트가 LSR 롤러너트로 변경되기도 했다.[27] 지판에도 초창기에는 일부 개체에 한해 포 페로가 사용되었으나, 곧 로즈우드로 단일화되었다.

일반형 스트랫 플러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브릿지 픽업으로 듀얼 골드 레이스 센서 픽업을 채용했다는 부분인데, 별도의 푸쉬풀 회로가 내장되어 톤 노브를 뽑으면 코일 스플릿 기능이 동작되어 싱글 코일 픽업에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01년까지 생산되다가 아래의 두 번째 시그니처 겸 개선판이 나오면서 단종되었는데, 제프 벡은 추후 이 모델과 비슷한 사양이면서 동시에 픽업은 일반적인 스트랫 픽업이 장착된 펜더 커스텀 샵 제작 모델을 무대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 Fender Jeff Beck Signature Stratocast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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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펜더에서 제작해준 두 번째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이다. 위 모델을 기반으로 여러 군데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데, 넥 힐에는 쉬운 하이프렛 접근성을 위해 가벼운 힐 컷이 되어있으며, 결정적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레이스 센서 픽업 세트가 펜더의 핫 노이즈리스 싱글 코일 픽업 세트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픽업 구성적으로만 보면 더욱 정통 스트랫 사양에 가깝게 개선되었다.

그 외에는 구형 시그니처 모델에서 제공되던 퍼플 피니쉬가 사라졌고, 오직 올림픽 화이트와 서프 그린 색상만이 제공된다.

4.2. 앰프

  • Marshall JTM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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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샬의 가장 명성 높은 앰프 중 하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사랑한 앰프인 만큼 제프 벡 또한 이 앰프를 즐겨 사용했다.
  • Marshall 1959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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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트 타운젠드마샬에게 더 큰 와트 수의 앰프를 요청해 만들어진 앰프. 제프 벡의 대규모 라이브 영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Marshall JCM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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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제프 벡의 앰프이다. 1990년대부터 사용하였고, 제프 벡은 이 앰프를 클론 센타우르와 조합해 즐겨 사용했다.
  • Marshall DSL100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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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공개된 마샬의 보급형 100와트 진공관 앰프 헤드.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이며,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기에 여러 고가의 악기들을 사용하던 제프 벡 같은 사람이 썼다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횟수는 적더라도 실제로 사용했다.
  • Fender Twin Re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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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nder의 가장 명성 높은 앰프 중 하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면 무대 뒷편에 여러 대가 세워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Magnatone Super Fifty-Nine MKII "BECK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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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톤 앰프에서 제작한 앰프로, 제프 벡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어 전면부 브랜드 로고 자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MAGNATONE 대신 BECKTONE이라 적힌 것이 특징이다. 커리어 말기인 2010년대에 사용되었다.

4.3.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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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의 2022년도 페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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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의 2018년도 페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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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의 2013년도 페달보드[28]
  • Klon Centaur
  • ProCo Rat[29]
  • J. Rockett Audio Design Archer[30]
  • MXR Super Badass Variac Fuzz
  • MXR Power Flanger
  • MXR Carbon Copy Analog Delay
  • MXR MC404 CAE Wah
  • MXR Talk Box
  • EBS Octa Bass
  • Empress Tremolo 2
  • Strymon Bluesky
  • Digitech GSP-21 Legend
  • Snarling Dogs Whine-O-Wah
  • Dunlop Crybaby
  • Dunlop Way Huge Aqua-Puss
  • Dunlop Echoplex Delay
  • BOSS CE-5
  • BOSS DD-7
  • BOSS OC-3
  • BOSS BF-2
  • Radial JDI Passive Direct Box
  • Radial Shotgun 4 Channel Amp Driver
  • Mu-Tron Octave Divider
  • Kustom Bag Talkbox
  • Maestro Ring Modulator
  • Colorsound Overdriver
  • Neo Instruments Ventilator II
  • Hughes & Kettner Tube Rotosphere MkII

5. 디스코그래피

  • Truth (1968)
  • Beck-Ola (1969) – by the Jeff Beck Group
  • Rough and Ready (1971) – by the Jeff Beck Group
  • Jeff Beck Group (1972) – by the Jeff Beck Group
  • Beck, Bogart & Appice (1973) – by Beck, Bogart & Appice
  • Blow by Blow (1975)
  • Wired (1976)
  • There & Back (1980)
  • Flash (1985)
  • Jeff Beck's Guitar Shop (1989)
  • Who Else! (1999)
  • You Had It Coming (2000)
  • Jeff (2003)
  • Emotion & Commotion (2010)
  • Loud Hailer (2016)

콜라보 앨범
  • Frankie's House (1992) – with Jed Leiber
  • Crazy Legs (1993) – with the Big Town Playboys
  • 18 (2022) – with Johnny Depp

6. 그에 대한 말

외계에서 온 듯한 연주자
로드 스튜어트
기타 연주의 정점과도 같은 인물
브라이언 메이
항상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시대를 초월하였다
로버트 플랜트
제프의 연주는 하늘로 치솟아 마법을 그려내었다. 그가 연주한 음들은 완벽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리치 블랙모어

7. 그 외

  • 실력이 워낙 출중했던지라 딥 퍼플핑크 플로이드에서 그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 한국 남성 락 리스너들 사이에선 세션 베이시스트로 있었던 탈 윌켄펠드가 유명한데, 1986년생인 어린 여성 뮤지션인데다 억압받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는 의미에서 노브라로 공연을 하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 제프 벡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덕업일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세션 멤버로 함께했다.
  • 믹 테일러가 탈퇴한 후 열렸던 세기의 롤링 스톤즈 리드 기타 오디션에 참가했었다. 1000: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됐던건 제프 벡의 옛 동료 로니 우드였다. 굉장히 독창적인 스타일의 연주자였으니 믹 재거키스 리처즈에겐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에 협연도 여러번 하였으며, 멤버들이 벡의 추모글을 써주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 내한 공연을 3번이나 했다. 모두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했으며 매번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다. 2번째 공연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터라 옷에 노란 리본을 달고 연주했다. 추모의 의미로 당시 셋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던 People Get Ready를 연주했다. 첫번째 공연때는 베이스, 드럼외에 키보디스트를 대동해 재즈 스타일의 곡들을 들려줬었고, 두번째 공연때는 키보디스트대신 리듬기타를 대동하여 조금 더 하드한 음악을 들려줬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공연을 보러 찾아왔다. 첫 공연때는 공연 전 앞쪽에 앉아있는 배철수에게 싸인 받으러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다.
  • 케이온!아키야마 미오가 말한 ジ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으로[32] 언급되었으며, 기타리스트의 역사는 제프 벡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물론 이건 일본 쪽 이야기고, 쿡TV의 국내 방영판 자막에서는 '지'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라 하여 어쩔 수 없이 프 벡으로 표기했다.


[1] 당시 이름은 윔블던 미술학교[2] 이 외에도 헤비메탈,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하였지만, 주로 시도한 장르만 기술하였다.[3] 사별[4]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1970년대에 어느 한 일본 음악기자가 그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주장한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마치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정착된 건데, 오직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행하던 표현이고, 저 두 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5] 에릭 클랩튼만큼은 아니지만 제프 벡도 자동차 애호가였다. 직접 자동차를 개조하는 것도 즐겼던 모양. #[6] 당시 기타를 만들 때 프렛을 알맞은 위치에 붙일 필요가 있는 것을 모르고 대강 설치하였는데, 그 때문에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없는 기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7] 트라이덴츠에서의 곡은 컴필레이션 앨범인 Beckology에 세 곡이 수록되어 있다.[8] 원래 이런 퍼포먼스를 즐겨 하던 더 후가 예정되어 있었다 야드버즈가 대타로 들어와서 벌어진 일이다.[9] 이때 잠깐 핑크 플로이드에서 탈퇴한 시드 바렛을 대신해 기타리스트로 들어오란 부름을 받았지만 무산되었다.[10] 이 'Hi Ho Silver Lining'은 히트해 NME 잡지 차트에서 1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1] 믹 웰러 전에 앤슬리 던바(Aynsley Dunbar)가 드러머로 있었지만 금방 나갔다.[12] 하지만 제프 벡의 가창력은 좋지 않다. 제프 벡 본인도 이걸 알았기에 이 곡을 부끄러워했다.#[13]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의 스튜디오의 방문했을 때 이 아이디어를 훔쳐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에 싣기도 하였다.[14] 볼레로 리듬에 맞추어 연주되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키스 문의 활화산같은 드럼이 압권이다.[15] 이 곡은 지미 헨드릭스가 커버 하기도 했다.#[16] 그 후 상심한 제프 벡에게 스티비 원더가 다시 곡을 써줬는데, 그게 바로 제프 벡의 최대 히트 곡인 Cause We've Ended as Lovers.[17] 재즈 음악가 델로니어스 몽크를 의미한다.[18] 카를로스 산타나, 스티브 루카서가 함께한 라이브이다.[19] 조니 뎁과 함께한 라이브로 사망하기 3개월 전에 진행했던 라이브이다.[20] 해당 앨범은 미발표로 그쳤다.[21] 아래에 나오는 텔레-깁 텔레캐스터이다.[22] 추후 깁슨에서도 이 레스폴의 색상과 동일한 피니쉬를 팩토리 모델들에서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의 명칭도 옥스블러드이다.[23] 당시는 아직 시모어 던컨을 창업하지 않았었다.[24] 이때 던컨이 와인딩하여 텔레-깁에 장착한 픽업이 시모어 던컨 불후의 역작인 Jazz Model(넥 픽업), JB Model(브릿지 픽업)의 시초가 된다.[25] 펜더에서 제작한 픽업은 아니고 에서 커스텀으로 제작해준 제품이다.[26] 다만 지미 헨드릭스 시그니처 스트랫들은 브릿지 픽업의 각도까지 반전되어 있지만 이 모델은 그렇지가 않다.[27] 하지만 제프 벡 본인은 이후에도 윌킨슨 롤러 너트만을 고집했기에 팬들에겐 아쉬운 부분이다. 윌킨슨 롤러 너트는 단종된 지 오래라 고가의 마스터빌트 모델에만 간혹 장착되어 판매된다.[28] 브라이언 윌슨과의 투어 당시에 사용한 보드이다.[29] 랫의 가장 대표적인 사용자인 제프 벡이지만, 정작 제프 벡 본인은 랫이 저음역대를 깎아먹는다며 Who Else! 앨범에선 사용을 그만두기도 했다.#[30] 제프 벡은 이를 따로 모디파이 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참조하여 만든 Jeff Archer 라는 제품이 출시 및 판매되고 있다.[31] 위키피디아에 링크된 그의 과거 블로그 글에서도 동물병원을 신설하려는 동물보호단체를 돕자는 운동을 독려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32] 일본어 표기가 ェフ•ベック. 나머지 인물들은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