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6:54:19

이정용(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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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
2.1. 고등학교 시절2.2. 대학교 시절
3. LG 트윈스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우완 투수 이정용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2.1. 고등학교 시절

고등학교 1학년 입학 당시만 해도 키가 157cm 매우 작은 신체조건 때문에[1] "투수전향은 키가 커지면 생각해보자"고 답했다고.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키가 175cm쯤 되자 이정용은 감독과 약속한대로 투수로 전향했다.

처음 투수를 시작했을 때 직구 구속이 120km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구속 때문에 이정용은 제구력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즉시 전력감이 아닌 육성형 투수였기 때문에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다질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는 향후 키가 자라고 벌크업이 되면서 포텐이 터지는데 든든한 기반이 됐다. 종목은 다르지만 배구의 김연경이나 농구의 앤서니 데이비스처럼 고교 시절 작은 신장으로 기본기를 착실히 익혔다가 몸이 커지면서 포텐이 폭발하는 사례는 가끔 있었다.

고교 3학년에 올라오면서 프로 진출 혹은 대학 진학을 위해 대회에 출전하려고 준비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다소 무리하는 바람에 팔꿈치 피로골절 판정을 받고 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게 됐다. 프로지명을 위해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시기에 이정용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 이전까지 16⅓이닝을 던지며 2자책점으로 호투한 것과 140km까지 속구스피드를 끌어올린 것 정도가 나름대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커리어였다. 하지만 성적표본이 너무 적고 181cm의 신장에 비해 68kg에 불과한 체중 때문에 대학 진학도 쉽지 않았다. 명문대는 물론이고 이름있는 수도권 대학에서의 러브콜조차 없어 야구를 그만두고 군대부터 다녀오겠다고 가족과 상의하고 박성균 감독에게 말했을 때 박감독은 이정용과 부모에게 "대학에서 제대로 코칭받으면 아주 뛰어난 투수가 될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얼마 후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이정용을 스카우트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극적으로 이정용은 동아대행이 결정나게 된다.

박성균 감독은 훗날 이정용이 LG 트윈스에 지명된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정용은 성남중 시절에도 소질은 훌륭했다. 그러나 너무 체구가 작아서 고등학교 때도 이 신장이면 야구를 포기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고3 때까지 계속 크더라. 그런데 하필이면 고3 무렵 팔꿈치 수술을 받아서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그러다 그해 후반기에 대학을 보내려고 억지로 16이닝을 던지게 했지만 이닝이 적고 기록이 없는 데다 부상전력까지 있어서 군대 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동아대 입학이 결정되었을 당시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리던 정용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라고 술회했다.

2.2. 대학교 시절

고교 시절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이정용은 대학 무대에서 절치부심하여 꼭 프로에 진출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동아대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부산은 친척 한 명도 살지 않는 곳이었지만 오로지 야구만 바라보고 외로움을 이겨냈다.

동아대학교 코칭스태프를 만난 것도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 이재헌 감독은 1980년생으로 현역에 송승준, 김사율 같은 동기생이 있을 만큼 상당히 젊은 감독이다. 그는 고3때 팔꿈치 피로골절 수술을 한 이정용을 무리시키지 않았고 1학년때는 단 9⅔이닝만 던지며 4자책점으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학년 때 이정용은 비로소 활약을 시작한다. 소화이닝도 59이닝으로 팀 내에서 가장 많았으며 탈삼진도 52개, 평균자책점은 4.27에 피안타율은 0.229를 마크했다. WHIP도 1.22 어느 대학 팀에 가도 준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3학년 때는 명실상부한 동아대학교의 에이스로 올라섰다. 팀 뿐 아니라 대학야구 전체를 놓고 봐도 손꼽힐만한 많은 이닝인 81⅓이닝을 소화했으며 4.11의 평균자책점과 82개의 탈삼진을 솎아냈다. WHIP는 1.28에 피안타율은 0.266으로 2학년보다 다소 올랐다. 이 때 이정용은 대만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야구 대표팀에 승선했다. 생애 첫 국가대표 선발이었다.

선발 불펜을 가리지 않았고 명문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완봉승, 대학강호 경성대와 완투승을 거두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따금 공이 몰리며 대량실점 했던 탓에 WHIP와 피안타율은 2학년 때보다 높았다. 그리고 체중이 가벼워 볼이 날린다고 판단, "지금 이 시기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였고 3학년 시즌을 마치고 동계훈련부터 웨이트 증량에 올인했다. 본인 스스로 입이 짧아 가리는 음식도 많고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서 4학년을 앞두고 매일 같이 닭백숙과 닭가슴살 그리고 감자, 고구마 등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보디빌더이면서 동아대학교 컨디셔닝 코칭을 담당하는 이대승 코치는 이정용의 벌크업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3학년 시즌이 종료된 2017년 9월부터 4학년 시즌이 시작된 2018년 4월까지 약 8개월여의 기간 동안 8kg을 증량. 85kg의 체중으로 4학년 시즌을 맞았다. 키도 신입생 때와 비교 5cm가량이 자라 186cm 정도까지 성장하며 체격으로도 손색없는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리고 4학년 때 반전드라마의 클라이막스를 찍는다. 이정용은 2018년 대학야구계의 오승환 같은 퍼포먼스를 연일 펼쳤다. 주로 중간계투요원으로 한경기 3~4이닝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으며 5월까지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0점대의 WHIP, 그리고 1할도 안되는 피안타율로 서울 3개구단 스카우트들의 집중 관심을 받게 된다. 사실 4월까지만 해도 이정용은 드래프트 1차지명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엔트리를 짜는 선동열호가 아마추어 예비엔트리를 뽑을 때 거론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이정용은 슈퍼유망주로 분류되지는 못했다.[2]

하지만 5월이 지나면서도 계속해서 호투가 이어지자 LG 트윈스를 비롯한 서울구단에서 지속적으로 스카우트들이 찾기 시작했고 스피드건에 151km가 찍혔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일부 아마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즉시전력감'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운도 좋았다. 1순위 두산 베어스가 점찍어 놓은 휘문고의 투수 겸 외야수 김대한과 달리 2순위 LG 트윈스는 당초 1차지명이 유력했던 덕수고의 투수 홍원빈이 뛰어난 피지컬에 비해 아직은 투수로서 가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고, 고려했었던 서울고의 투수 최현일은 3학년 초반 부진했던 모습으로 인해 1차지명을 받기에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주변에서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이정용이 대학리그의 특급투수로 치고나오기 시작했고 고교 선수들에 쏠렸던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이정용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2018년 대학야구 주말리그 전후반기 마무리가 된 지금까지 47이닝을 던지며 피안타율 0.135 WHIP 0.70이라는 만화같은 성적을 마크했다. 전년도 대학리그 에이스로 군림한 최채흥의 4학년 시절, 평균자책점은 이정용보다 뛰어났지만 나머지 성적은 이정용이 압도한다. 불과 1년만에 성적이 거의 두 배 정도로 좋아진 반전스토리였다.

이러한 활약을 토대로 2018년 6월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에서 LG 트윈스의 부름을 받게 된다. 서준원, 김기훈, 원태인 같은 특급 고졸 출신 사이에서 유일한 대졸선수로 지명받았다.

이후 제99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야구소프트볼 남자일반부 부산 대표로 출전하여 호투했다. 16강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두번째 투수로 4이닝 0실점 0자책 2피안타 1피사사구 7탈삼진, 8강 건국대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6이닝 0실점 0자책 3피안타 1피사사구 6탈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팀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였다. 다만 본인은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16일에 콜롬비아로 출국하면서 4강과 결승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는데, 감독이 금메달을 따서 꼭 정용이에게 걸어주고 싶다고 하였다.

콜롬비아 몬테리아와 바양키야에서 열린 U-23 세계야구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이정용은 팀의 주축 불펜으로 활약했다. 2017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대표로 참가했지만 3학년이라 많은 등판을 하지 못했던 이정용은 그보다도 수준 높은 대회(아시안게임보다도 참가팀의 수준이 훨씬 높다)에서 1년만에 일취월장한 본인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5경기에 등판해 6⅔이닝 동안 1볼넷 5피안타 2실점을 했고 2세이브를 기록. 이는 대한민국에서는 최다 세이브이기도 했다. 왜 그가 드래프트에서 즉전감으로 스카우트들이 평가했는지 증명해준 대회였다. 향후 성인국가대표팀의 주축 불펜으로 성장할지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 속구는 당장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제구력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변화구 결정구가 있어야 데이터 야구로 대변되는 현대야구 분석의 늪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3. LG 트윈스

2018년 10월 3일 홈경기에 시구자로 초대되어 홈팬들에게 첫인사를 했으며 10월 12일에 계약금 2억원에 입단계약을 맺었다.

3.1. 2019 시즌

2라운드에 지명된 정우영과 함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다. 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류중일 감독이 신인들을 기대한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고졸인 정우영보다는 즉시전력감에 좀 더 가까워 빠른 시일 내에 1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도중 팔꿈치에 불편함을 호소했던 이정용은 결국 개막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9년 4월 19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게 된다. 데뷔도 하기 전에 시즌아웃이 되어 2020 시즌을 기약해야 했다.

3.2. 2020 시즌

개막전에 맞춰 몸을 만들고 있는 김지용, 정찬헌과는 달리 조금 늦춰진다고 한다. 1차지명자인만큼 불펜투수로 팬들의 기대가 상당했다.

6월 들어 실전 피칭에 나서기 시작했다. 6월 6일 퓨처스리그 KT전에 나와 ⅔이닝 무실점, 6월 12일 SK전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7월 22일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엔트리에 등록되었다.

7월 24일 7-0으로 앞서던 7회말에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면서 데뷔 첫 등판을 가졌다. 등판하여 선두타자 최주환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후속 타자 허경민에게 병살타를 이끌어냈고, 오재원을 삼진으로 잡으면서 1이닝을 막아내었다. 8회말에도 올라와 김인태를 플라이 아웃을 잡아내었고, 장승현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안권수호세 미겔 페르난데스를 각각 1구로 아웃시키면서 2이닝 동안 20구를 던지면서 2피안타 1탈삼진으로 데뷔 첫 등판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7월 26일 두산전에 4-2로 앞선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타자인 허경민을 플라이로 잡아내었지만 뒷 타자인 김재호에게 볼넷을 내준 후 고우석으로 교체되었다. 고우석이 8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내어 이정용은 무실점을 기록하게 되었고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였다.

7월 28일 SK와의 경기에서 큰 점수 차에서 등판하여 1이닝 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8월 1일 한화전에서는 5회 갑작스럽게 흔들린 김윤식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했다. 1⅔이닝을 잘 막았고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필승조까지 입지가 상승하였다. 그만큼 구위도 좋고 제구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정우영밖에 믿고 의지할 선수가 없던 LG 불펜에게 기대감을 주었다.

8월 4일 KIA전에서는 7회말 8-3 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아웃 하나 잡지 못하고 2피안타 1피홈런으로 2실점 하고 강판되었다.

8월 8월 키움전에서는 ⅔이닝동안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8월 12일 KIA전에서는 1이닝동안 1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데뷔한 지 3주 조금 넘은 시점에서 팀에서는 셋업맨 역할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LG가 이정용이 수술 후 재활할 때까지 기다려준 이유를 증명했다.

8월 16일 NC전에서는 6-5로 앞선 7회말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홀드를 추가하였다.

8월 28일 kt전에서 연장 11회에 등판하여 2볼넷 1탈삼진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9월 7일 롯데전에서 이민호가 2회 1사에서 연속 홈런을 맞고 10실점까지 기록한 뒤 등판해 2.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24일 NC전에서 2피홈런 4실점으로 완벽하게 털려버렸다. 이날까지 기록한 시즌 11자책점을 투런, 투런, 투런, 솔로, 쓰리런, 솔로포로 홈런으로만 기록했다. 사실 6회는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마무리했으나 멀티이닝에 좌우놀이에 환장한 감독과 투수코치의 운영 미스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시즌 최종 성적은 34경기 출장 34이닝 소화 ERA 3.71에 3승 4홀드를 기록했다. 데뷔 시즌+수술로 인해 1년을 통으로 날린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준수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3.3.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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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준플레이오프 1차전 7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양석환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이후 환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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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2 시즌

파일:이정용2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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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23 시즌

파일:이정용23.jpg
파일:이정용20230802.jpg
8월 2일 데뷔 후 첫 QS 달성
신의 한 수가 된 보직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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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입대를 미루고 고우석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임시 마무리로 출발했지만 4월 한달 동안 5블론이라는 리그 최악의 방화범 투수로 전락해 2군으로 쫓겨나며 금지어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선발투수로 보직을 변경하여 적응기를 거치며 피칭이 안정화되자 선발 등판 경기 팀 9승 1패라는 기적을 써내려가며 최원태의 예상치 못한 난조, 켈리의 늦게 올라온 폼, 플럿코의 이탈, 임찬규의 기복으로 선발진이 붕괴 위기에 처했던 후반기 이지강과 함께 LG의 난세 영웅으로 거듭났다.

3.6. 상무 피닉스 야구단

4. 연도별 주요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이정용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세이브 홀드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9 LG 1군 기록 없음
2020 34 3 0 0 4 34 3.71 32 6 14 2 33 1.35 124.9 0.72
2021 66 3 3 0 15 69⅔ 2.97 55 4 23 1 74 1.12 145.2 1.88
2022 65 4 4 1 22 59⅓ 3.19 52 3 18 2 40 1.18 124.8 1.16
2023 37 7 2 3 1 86⅔ 4.15 100 5 19 2 50 1.37 98.3 0.81
2024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KBO 통산
(4시즌)
202 17 9 4 42 249⅔ 3.57 240 18 74 7 197 1.26 120.5 4.57


[1] 스톡킹에서 밝히기를 성장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 운동량을 남들보다 약하게 했다고 한다.[2] 선동열호는 대학선수 내야수 2명, 투수 2명을 예비엔트리에 올렸지만 단 한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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