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fae5a><colcolor=#ffffff> 이리나 비녜르 Ирина Винер | Irina Viner | |
본명 |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비녜르-우스마노바[1] Ири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Винер-Усманова Irina Alexandrovna Viner-Usmanova |
출생 | 1948년 7월 30일([age(1948-07-30)]세) |
소련 우즈베크 SSR 사마르칸트 | |
국적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배우자 알리셰르 우스마노프[2](1992년 결혼) 아들 안톤 비녜르[3](1973년생)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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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며 현직 국가대표 헤드코치다.2. 선수 경력
11살부터 리듬체조를 시작했으며, 우즈베키스탄선수권에서 3번 우승한 경력이 있다.3. 코치 경력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국가대표 코치를 맡으면서 코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키워낸 유명한 선수로 소비에트 연방 선수권에서 4회 우승한 베네라 자리포바가 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잠시 영국 국가대표 코치를 맡기도 했다.3.1.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
1992년부터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를 맡기 시작했다. 유연성이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 키우기 시작했고, 그 선수들이 시니어로 활동하게 되면서 리듬체조의 패러다임이 유연성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선견지명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때 발굴된 선수들이 리야잔 우차쉬바, 알리나 카바예바, 야나 바티시나다.2000년 리듬체조계에서 심판 판정 비리[4]가 터지면서 러시아가 급속도로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비녜르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2001년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센터에서 국가대표 총감독을 맡기 시작했다. 이후 알리나 카바예바-예브게니야 카나예바-마르가리타 마문으로 이어지는 4연속[5] 금메달리스트를 양성한 것이 코치로서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2008년에 러시아 리듬체조협회 회장이 되었다. 2008년 6월 30일, 국제체조연맹에서는 비녜르에게 2007 세계선수권에서 예술 항목 5개 부문 중 심판 항목 위반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비녜르는 담당자와 회장에게 대회에서의 판정 기준을 잘못 전달 받았으며, 그로 인한 판정 위반을 인정하며 관대한 처분을 청한다는 내용의 사과와 해명 서신을 보냈다. 이 선처 서신은 받아들여져 올림픽 심판 정지 외에 추가 징계는 없었으며, 심판 자리에서 물러나 러시아 리듬체조 헤드코치에만 전념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디나 아베리나와 아리나 아베리나를 출전시켰으며 쌍둥이 자매 모두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디나는 2위로 은메달, 아리나는 4위로 포디움 아웃이란 결과를 내며 러시아는 5연속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22년 3월부터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인해 러시아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었다. 결국 2024 파리 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라도 출전하고 싶었던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으면서[6] 러시아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2. 선수들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르친다. 볼쇼이 출신의 세계적 발레리나인 마야 플리세츠카야의 팬이다. 발레 팬이라서 그런지 본인이 아끼는 선수들에게 발레 음악을 자주 사용하게 한다.[7] 발레 중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보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단의 레퍼토리와 프로덕션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음악을 선택하는 것만 봐도 취향을 알 수 있다.[8] 티토바는 두 시즌 연속으로 백조의 호수의 음악을 썼고[9] 마문의 2014년 리본은 지젤, 후프는 스파르타쿠스의 음악을 사용했고 의상도 극중 아이기나[10]의 의상과 흡사한 레오타드를 줬다.카나예바가 처음 예술성 만점을 받았던 2010년 후프 루틴의 음악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인 'The Rite of Spring'이다. 이 루틴은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2012년에도 쓰게 된다. 카나예바가 자주 하는 우아한 루틴이 아니라 상당히 아방가르드하고 현대적인 안무이다. 원작 발레에서 따온 동작도 여러 개 된다. 이쯤 되면 비녜르가 아끼는 선수는 발레 루틴을 한 개 정도는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손연재가 러시아로 간 이후 발레 음악을 자주 쓰기 시작했는데[11] 비녜르 마음에 들긴 한 듯 하다. 또한 마문의 2016년 올림픽 시즌 음악도 블랙 스완으로 결정되면서 비녜르의 발레 음악 사랑은 계속된다.
사실 비녜르는 아주 어릴 때 발레를 취미로 했었고 발레스쿨에 합격까지 했었다. 그러나 학구열에 불타는 가족 때문에 발레 학교는 가지 못하고 의사를 목표로 학교에서 열공해야 했다. 원래 이렇게 본인이 코칭하는 선수들에게 발레에서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을 자주 쓰지는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발레 음악을 자주 쓰는 것을 보면 취향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실제로 선수들과 발레 관람도 자주 한다고 한다. 데리우기나에 비하면 덜하지만 비녜르도 사실 발레리나 같은 예쁜 발등에 엄청 환장한다.
단지 외적인 것을 뛰어넘는 정신력을 더욱 쳐준다. 발레 댄서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카바예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마문도 카바예바만큼이나 인내심이 좋기로 유명한데, 마문의 발등이 평범하다고 까면서도 훈련을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코치 말을 무지 잘 듣는 데다 유연성도 매우 좋으니 비녜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다지만 사실 마문도 비녜르에게 시달린 선수 중 한 명이다. 비녜르는 유독 경기 기복도 적고 수구 조작이 뛰어난 쿠드랍체바를 좋아했는데, 하필 마문은 감정 기복이 있었고 큰 무대에서 경기 도중 떠는 경향이 있어 쿠드랍체바와 비교 당하며 많이 혼났다. 비녜르야 워낙 성격이 지랄맞고 조금이라도 심사가 뒤틀리면 면전에다 쌍욕을 바로 박아버리는지라, 경기를 몇 분 앞둔 선수들도 멘탈을 고려하지 않고 사정없이 막말을 몰아붙인다. 예시로 마문의 아버지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시기에 암 투병 중이었는데 마문에게 "너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비극을 표현하라"는 패드립에 가까운 욕을 시전하기도 했다. 마문이 올림픽을 마치고 브라질에서 귀국한 지 2일 후에 아버지는 암으로 끝내 돌아가셨는데, 그 직후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한편 비녜르가 그렇게 좋아하던 쿠드랍체바가 부상으로 맛이 가버리자 비녜르는 가차없이 선수의 의사도 묻지 않고 쿠드랍체바를 그대로 은퇴했다고 발표해서 보내버린 후 아베리나 쌍둥이를 푸쉬했다. 하지만 한때 수구 실수가 잦고 실시가 불안한 아리나 아베리나는 적당히 눈 감아주고 푸쉬해줬다.
훈련을 어찌나 빡시게 시키는지[12] 재능 있는 많은 유망주들이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목표한 체중에 도달하지 못하면 쫓아내는 건 덤이다. 예시로 기지코바가 곤봉 경기 막판에 곤봉을 매트에 떨어뜨려서 얼렁뚱땅 엔딩 포즈를 취하고 끝낸 적이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화를 내는 모습이 경기 도중 생중계에 그대로 방송된 적이 있었다.[13] 사실 초고난도 기술(점프)들을 부상 없이 반복하려면 몸이 가벼운 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들은 대부분 비녜르가 굳이 쫓아내지 않아도 어려운 점프들을 연습하다가 자연스럽게 발 부상을 입고 도태되고, 그대로 훈련장에서 나가게 된다. 카바예바가 유일한 예외인데 뼈가 엄청나게 튼튼하다. 선수들에 의하면 비녜르는 몇백 그램 쪄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선수들이 죄다 170cm에 50kg 미만인 이유가 있다.
카바예바에 의하면, 본인보다 훨씬 아름답고 자기만큼 유연한 선수들이 매우 많았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서 도중에 훈련장에서 나갔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러시아 국가대표 팀에 끝까지 남는 선수들은 다들 멘탈이 좋다. 드미트리예바나 카나예바만 봐도 성격 좋고 인내심 강한 선수들에 자만심 같은 건 전혀 없다. 마문과 쿠드랍체바도 죽도록 훈련하면서도 코치랑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선수들이다. 다만 모든 선수들을 전부 비녜르가 혼자 키운 것은 아니고 각 선수들마다 개인 코치가 있다.
- 베라 샤탈리나[A]: 디나 아베리나, 아리나 아베리나, 알리나 카바예바, 올가 카프라노바의 코치
- 베라 슈텔바움: 마리아 티토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이리나 차시나의 코치
- 아미나 자리포바: 마르가리타 마문, 마리아 세르게예바의 코치
- 안나 슈밀로바: 다리아 스밧코브스카야, 다리아 콘다코바, 알렉산드라 솔다토바의 코치
- 예브게니야 게르치코바: 김채운의 코치
- 옐레나 니표도바[A]: 손연재, 신수지의 코치[16]
- 옐레나 카르푸셴코: 알리나 예르몰로바, 야나 쿠드랍체바의 코치
- 올가 부야노바: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옥사나 코스티나의 코치
이 외에도 많은 코치들이 있다.
4. 평가
그녀를 찬양하는 쪽에서는 리듬체조계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는 찬사를 내리지만, 비난하는 쪽에서는 현재 리듬체조라는 스포츠를 부정과 부패, 비리의 온상으로 만든 중심에 비녜르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제자들은 열심히 양성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제자들에게는 매우 냉혹하며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고자 하는 성격이다.하지만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을 시작으로, 비녜르의 영향력은 대폭 감소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러시아가 국제 스포츠 참가가 불가능해지면서 비녜르 라인의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들의 국제 커리어는 완전히 끊겼다. 러시아 안에서는 여전히 리듬체조 1인자를 지키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과거 위세가 대단했던 인물'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5. 논란
5.1. 비녜르스탄
리듬체조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큰 종목이다 보니 비녜르의 권력이 상당히 강하다. 국제체조연맹 산하의 리듬체조 부문 요직 인물들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인물들이 대부분이며, 이 요직에 있는 인물들은 다시 각국의 심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듬체조계에서 러시아에게 그나마 대항해볼 만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인데 여기는 나라 사정이 워낙 안 좋다.비녜르는 특정 외모를 선호하기로 유명하다.[17] 그래서 작은 사각형 얼굴, 연갈색 피부와 갈색 혹은 검은 머리와 눈동자를 선호하며 선발 기준에도 반영한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돋보이는 고른 치아도 중요하게 여겨서 몇몇 선수들은 교정을 받기도 한다. 비녜르가 아꼈던 카바예바, 바티시나, 우차쉬바, 메르쿨로바, 마문에 이어 한 때 아꼈던 시니치나까지 사진을 붙여놓고 보면 일관된 취향을 알 수 있다. 반면 흰 피부와 금발, 푸른 눈을 모두 가진 선수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은 말 그대로 죽도록 연습해서 비녜르의 눈에 들어야 했다. 예를 들면 베라 세시나나 야나 쿠드랍체바가 해당된다. 예외는 올가 카프라노바인데, 경기 스타일이나 성격이 비녜르의 취향에 부합하는 선수라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18] 그런데 비녜르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 중 체형만 충족시킨 마리아 티토바를 밀어줬던 걸 보면 비녜르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리듬체조에서 늘 논란이 되는 선정성[19]이나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 유망주들을 고를 때 히스패닉이나 흑인 계열을 한 번도 선발하지 않는 식의 인종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동양권 혈통을 가진 선수들을 컨택하고 있다.[20] 이러한 정책의 수혜자가 알리야 가라예바이다. 비녜르는 한때 러시아 선수였던 가라예바를 아제르바이잔으로 귀화시켜 2011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동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21] 그리고 리듬체조의 판도를 동아시아까지 넓힌다는 명목으로 동아시아권의 선수나 코치들과 접촉하여 전지훈련을 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런 점을 리듬체조 팬들이 비꼬면서 '비녜르스탄' 이라고 부른다. 크게 비녜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나라, 어떤 식으로든 우호관계를 맺는 나라, 적대 관계의 나라가 있다.
-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나라: 아제르바이잔[22], 우즈베키스탄[23], 카자흐스탄
- 우호 관계를 맺는 나라: 그리스[24], 대한민국, 일본[25], 폴란드[26]
- 적대 관계의 나라[27]: 벨라루스, 스페인,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탈리아
비녜르스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는 바로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에 참여하는지의 여부이다. 한때 이리나 데리우기나는 비녜르의 노보고르스크 재개장에 대해 "선수가 원하는 모든 편의시설을 갖춘 최고의 연습장을 만드는 것은 선수들을 위해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격찬한 적이 있었으며,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에도 안나 베소노바를 참가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참가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댄스 스텝을 도용했다는 오해를 받고, 연달아 판정 분쟁이 벌어지자 이후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베소노바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러시아 선수들을 직접 비난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비녜르의 러시아 몰아주기 행위에 대해 반 데리우기나 성향의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선수들이 옹호한 적도 있다. 데리우기나의 차별을 받은 이리나 코발쉬크, 갈리나 쉬르키나, 나탈리아 고둔코 등은 어떻게 보면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위상을 낮추었을 수도 있는 비녜르에 대해 중립적인 성향을 유지했다. 그러나 포털과 브콘탁테에서 비녜르에 대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팬들의 성토전이 벌어지자, 올가 카프라노바는 "러시아는 세계 최고의 리듬체조를 하고 있으며, 설령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팬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선수들은 그 팬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아 현재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뒤늦게 분란을 정리하러 온 나탈리아 고둔코는 "카프라노바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러시아 선수인 그녀는 그런 자리에서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답변한다. 베소노바와 달리 러시아 선수들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던 고둔코는 "데리우기나의 유일한 단점은 '사기 치는(Scam) 예술가'들에게 집착한다는 것이다"라고 특정 난도와 미적 성향에만 집중하는 데리우기나 스쿨 타입을 비판한 적도 있다.
5.2. 2012 런던 올림픽 사전 비공식 경기
2012 런던 올림픽 때 이례적으로 개인종합 경기와 똑같은 구성, 똑같은 심판을 두고 상위권 선수들을 모아 비공식 경기를 연 적이 있다. 이 대회에서 비녜르는 무지막지한 돈을 써가며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한 자리[28]를 두고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와 다리아 드미트리예바를 고르기 위해 초강수를 쓴 것이다. 실제 대회와 똑같은 조건[29]으로 선수들에게 큰 중압감을 주었고, 0순위 카나예바에 이어 1순위로 참가자 명단에 오른 메르쿨로바는 그만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탈락했다.[30] 반면 부담감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둔 드미트리예바는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이는 은메달리스트라는 결과로 이어졌다.여담으로 이 사전 경기는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손연재의 오버스코어 담합 논란과 경기비리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실 올림픽 당시 심판 판정의 최대 수혜자는 폴란드의 요안나 미트로즈였다. 폴란드의 심판이자 국제체조연맹의 기술 강화위원장이었던 마리아 시즈코프스카[31]가 자국 선수에게 후한 판정을 내려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 피해자가 멜리티나 스타니우타와 덩썬웨였다. 스타니우타는 실수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덩썬웨는 안정적으로 경기를 마쳤기 때문에 큰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 선수의 오버스코어 논란은 마땅히 결선에 진출해야 할 선수를 떨어뜨린 것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시즈코프스카와 그의 똘마니들이 1년 후 꼬리가 밟혀 구설에 오른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이처럼 국제체조연맹는 메달권 밖 결선 순위에서의 오버스코어 논쟁에서는 관심 없는 듯 하지만 의외로 3위까지의 메달권 선수를 고의로 떨어뜨리는 것, 그리고 유럽체조연맹(FEG)이 대회에서 수구 상위권 선수에게 개인종합 결선 진출권을 주거나 반대로 개인종합 상위권으로 수구 진출권을 주는 선발 기준 때문인지 국제체조연맹 관할 대회에서 소위 결선이나 종합전 상위 12명을 선정하는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또 코치들이나 코치 출신 심판들이 자기 선수를 편애하는 것에는 관대하지만, 반대로 내부 견제나 다른 선수에게 다운스코어를 줄 경우 징계를 더 많이 받는다. 이쪽에 리듬체조 시장을 말아먹기 직전까지 몰고 간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녜르가 이 내용과 상반되는 인터뷰를 해서 팬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사실 메르쿨로바를 선발 탈락 시킨 건 비녜르가 아니라 러시아 리듬체초 협회 혹은 러시아 체조협회 관계자 등 상부의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드미트리예바가 메달을 딸 확률이 높아보이니 메르쿨로바를 탈락 시키라고 한 것이다.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드미트리예바가 메달을 땄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했다. 거기에다가 메르쿨로바는 끝까지 자기가 본선에 나가는 건 줄 알고 있다가 인터넷을 보고 결정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니 선수에게 바로 알려주지도 않은 듯 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본인들만 알 것이지만 애제자가 올림픽에 타의로 가지 못했는데 그 결정이 옳았다는 인터뷰를 하는 거 보면 비녜르가 이런 부분에서 냉정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비녜르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이후 먹고 사는 건 걱정 없을 정도로 뒤를 잘 봐주긴 한다.[32]
6. 기타
- 현역 시절 사진이 존재한다.
- 유대인이다.
- 본인의 애제자라도 메달 손익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내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노보고르스크에서 훈련하는 외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알리야 가라예바를 확실히 푸쉬했지만 올림픽에서 포디움에 올릴 수는 없었는지, 결국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친 류보프 차카시나에게 동메달이 넘어갔다. 차카시나는 벨라루스 선수로 팀 러시아와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벨라루스도 러시아의 정치적 우방국이다 보니 나름 적절한 판단이었다. 어쨌든 한 번 비녜르 라인을 타면 뒤를 확실하게 봐주는 덕에 가라예바는 그리스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 흰색을 싫어해서 옷에는 넣지만[33] 집 인테리어에는 가급적 흰색을 피한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화가의 딸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캔버스 고유의 색인 흰색이 남아있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알록달록 원색 계열의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즐긴다.
- 학창시절 수재였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성적 우수자들이 받는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에도 대단한 재능을 보였기에[34] 우스마노프는 돈보다는 편지로 비녜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챕터들을 외울 정도이며, 연극과 무용으로 재해석한 오네긴을 즐겨 감상한다.
- 젊었을 때 사진은 별로 없으나 10대 후반에는 미모가 뛰어나 인기가 많았다.
- 독일 의료진을 더 신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용한 무당처럼 부상의 진단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선수로서의 수명도 밝히는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 선수들이 '저는 독일에 있어요!' 라고 말하면 팬들은 슬퍼한다. 이렇게 된 예시의 선수들로는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다리아 스밧코브스카야, 다리아 콘다코바 등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이름이 다리아다.
[1] 비녜르는 결혼하기 전의 성이고, 비녜르-우스마노바는 결혼 이후의 성이다.[2] 러시아의 유명한 사업가인 우즈벡계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최대의 철광석 공급업체인 메탈로인베스트먼트의 주요 주주이자, 러시아 최대 인터넷기업 메일 닷러, 러시아 2위의 통신업체 Mega Fon의 공동소유자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세계 부호 순위에서 150억 달러(약 16조 원)의 재산으로 81위를 차지할 정도의 갑부이다. 축구 팬들에게는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 FC의 주요 주주로도 유명하다. 비녜르는 남편의 자본과 본인의 권력으로 전세계 리듬체조 판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3] 前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직업은 부동산 투자자다.[4] 자세한 내용은 이리나 데리우기나 항목 참고.[5] 카나예바는 2008년과 2012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우승했다.[6] 이는 비녜르 본인의 결정이었는데 당연히 선수들은 어떻게든 대회에 출전하여 경험을 쌓고, 가능하다면 메달을 따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녜르와 러시아의 높으신 분들은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러시아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역시 무리수라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7] 마문의 백조의 호수는 사실 카나예바의 2012년 올림픽 시즌에 주려던 루틴인데, 카나예바가 2011년 리본 루틴이 워낙 잘 나온 탓에 재탕을 했다.[8] 백조의 호수야 어느 발레 회사에서나 모두 인기가 많지만 비녜르가 자주 쓰는 돈키호테, 스파르타쿠스, 해적 등은 마린스키보다 볼쇼이의 프로덕션이 더 유명하고, 특히 스파르타쿠스는 볼쇼이의 대표 발레이다. 반면에 마린스키의 바가노바 테크닉에 잘 어울리는 레이몬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발레와 음악이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에서 제작된 발레들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러시아 작곡가를 선호하는데 예외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차이코프스키의 곡이나 프로코피예프의 곡이나 모두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루틴에 쓴 일이 없다.[9] 2013년 후프에선 3막의 블랙스완 파드두와 코다, 2014년의 리본에선 역시 3막의 러시안 댄스를 썼다.[10] 발레 스파르타쿠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약혼녀로 로마에 노예로 끌려갔다가 스파르타쿠스의 도움으로 탈출한다.[11] 2012년 후프의 호두까기 인형 파드두, 2013년 리본의 백조의 호수 1막의 왈츠+3막의 코다(코다의 타이밍이랑 푸에떼의 타이밍까지 맞췄다), 2014년 후프의 돈키호테 1막의 키트리 엔트리 음악+3막 파드두+다시 1막의 키트리 바리에이션으로 넘어가는 편집을 했다.[12] 멘탈에 스크래치 생기는 폭언은 덤이다.[13] 유튜브에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A] 2013년에 불거졌던 심판 승급 비리 논란의 주축이 되었던 인물이다.[A] [16] 2013년 심판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2014년 여름에 다시 복귀했다. 2014년 초반 대한민국 국가대표 명예코치에 위촉되었다.[17] 원래는 특정 국가 출신을 선호한다고 쓰여 있었으나, 그 국가들에서 비녜르가 선호하는 이국적인 얼굴의 선수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본인이 커리어를 시작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선수들을 초기에 많이 발굴하긴 했다.[18] 특출난 유연성, 체조 선수로서 완벽에 가까운 체형,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얼굴과 인내심 등이 포함된다.[19] 짧은 치마를 입고는 다리를 쫙쫙 찢어대니 논란이 될 법도 하다. 사실 이 논란이 커진 이유가 알리나 카바예바 때문이다.[20] 사실 러시아에 흑인이 많이 살지 않는다.[21] 사실 이는 비녜르와 친분이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영부인이자 리듬체조 협회장이었던 메리반 알리예바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리예바는 최고 명문가 출신으로 리듬체조를 배웠지만 대회 출전 경험은 없었고, 모스크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리듬체조와의 인연을 접었다. 그 후 대통령의 아들 알리예프를 후원해 2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자기 자신까지 영부인에 등극한 인물이다. 1983년에 결혼했으며, 유니세프 친선대사이자 알리예프 재단을 세우고 난민을 지원하며 교육 사업에 헌신하여 칭송 받았다. 반면 남편의 연임을 이뤄낸 데다가 아들을 키워 3대 대통령 집안을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반발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알리예바와 비녜르 간의 친분 덕분에 아제르바이잔은 리듬체조계의 대표적인 친러시아 국가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가라예바가 은퇴한 현재는 아니다. 마리나 두룬다는 우크라이나 태생이다.[22] 알리야 가라예바가 러시아 선수였으나 아제르바이잔으로 귀화했다.[23] 옐리자베타 나자렌코바, 율리아나 트로피모바가 원래 러시아 선수였으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귀화했다.[24] 바바라 필리우의 코치가 알리야 가라예바이다.[25] 미나가와 카호가 2013년부터 전지훈련을 가기 시작했다.[26] 위에 서술한 마리아 시즈코프스카 및 요안나 미트로즈의 나라이다.[27] 해당 국적의 선수들은 미친 듯이 점수가 낮게 나온다.[28] 물론 다른 한 자리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였다.[29] 현지 주민까지 관중으로 불러서 앉혔다고 한다.[30] 이때 메르쿨로바가 부상이 있긴 했지만 아예 선수 생활을 포기해야 했던 다리아 콘다코바 만큼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명분인 셈이다.[31] 2013년 국제체조연맹 리듬체조 심판비리 사건으로 기술위원장 직에서 퇴출되으며 2011년에 방한한 적도 있다.[32] 소개팅이나 중매 등을 잘 매칭시켜줬다. 카바예바에 비해 비녜르가 딱히 편애하지 않았던 이리나 차시나도 비녜르가 연결해 준 사업가와 결혼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비녜르와 남편이 참석하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러 왔다가 차시나를 보고 반해 구애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경기에 참석하게 된 계기가 비녜르 남편 우스마노프와의 친분 때문이니 이거나 그거나. 차시나는 이 결혼으로 자신의 리듬체조 전용 체육관의 관장 권위가 커진 것은 물론, 비녜르가 그랬듯 운영 비용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차시나를 마지막으로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들은 러시아의 부유한 스포츠 스타들이 포진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클럽과 줄줄이 연결되기 시작했다.[33] 러시아 국기에는 흰색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경기 때 흰색을 피할 수는 없다.[34] 문학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사실 목표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화가이지만 사촌들 중에 의사가 많은지 의대로 가는 게 비녜르네 가문 전통인 것으로 보인다.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자 물리학으로 갈아탔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의대 지원을 했다는 것만 봐도 상당히 성적이 우수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도 수학과 과학 성적이 좋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