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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선수 경력/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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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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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경찰 야구단 시절


1. 시즌 전2. 페넌트레이스3. 포스트 시즌4. 평가5. 관련 문서

1. 시즌 전

퓨처스리그에서의 훌륭한 성적을 바탕으로 당연히 '10시즌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었다. 당시 두산의 1군 포수진은 준수한 수비력에 반해 극악의 타격능력을 보유한 최승환용덕한이었던지라, 팬들은 타격에서 가능성이 보였던 양의지가 1군 백업 포수로 자리잡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전지훈련지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김경문 감독의 눈에 별달리 어필하지는 못 했다.

2. 페넌트레이스

그러나 전지훈련에서 돌아와 시범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때리는 등 타격능력을 인정받아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첫 선발 포수 출장경기인 3월 3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양의지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뜬금없이 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한경기 만에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 경기 하이라이트 사실 김경문 감독은 이 경기에서 양의지에게 선발 기회를 맛보게 한 후 2군에서 경험을 더 쌓게 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양의지 본인에게도 홍성흔, 채상병, 최승환, 용덕한의 뒤를 잇는 젊은 포수를 구한 구단에게도 드디어 공격 되는 포수를 보게 된 팬들에게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1]

양의지가 터져줌으로써 류현진, 강정호, 황재균, 차우찬, 이재원 등이 쏟아져 나왔던 황금의 2006 드래프트에서 두산 구단도 나름대로 어깨를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1차지명인 남윤희를 비롯하여 2차 1라운드에서 5라운드까지 민병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부도가 났던 아픔을 신고선수 김현수와 8라운드에서 지명했던 양의지가 터지면서 대반전을 이뤄낸 것.[2]

3. 포스트 시즌

롯데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7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86, 출루율 .444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8타수 6안타 2몸에 맞는 공 1도루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333, 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포스트시즌에서 25타수 8안타 2볼넷 2몸에 맞는 공 1도루 2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320, 출루율 .414를 기록했다.

4. 평가

결국 2010 시즌은 0.267의 타율과 20홈런 68타점을 기록하며 마쳤다. 큰 스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맞는 순간의 임팩트가 뛰어나며 부드러운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어 내는 타자다. 선구안과 체력적인 부분만 나아진다면 다음시즌 또한 기대될 만한 성적이자, 연봉이 2,400만원인 선수로서는 실로 놀라운 성적이다. 그 성적으로 2010년 신인왕 기자단 투표에서 92표 중 79표의 압도적 득표로 신인왕에 올랐다.[3]

그리고 사람들이 은근 안 알아주는데 양의지도 5경기 연속 홈런의 주인공이다.[4][5]

무엇보다 2010 시즌 양의지의 성적이 고무적인 것은 프로 첫 풀타임 1군에 주전 포수라는 중책을 맡아 시즌을 보내며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인 실력 업그레이드로 부진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집중력과 스타성 또한 훌륭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2군행을 앞두고 격려 차원에서 한 출장이었던 첫 선발 포수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때려 주전 자리를 쟁취해낸 것, 여름을 거치면서 체력저하로 스탯이 계속해서 하락하였으나 5경기 연속 홈런으로 반전을 이뤄낸 것,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연속홈런을 쳐내 기어코 20홈런을 채워낸 것 등이 그러하다. 이 20홈런으로 양의지 본인은 신인 포수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유일한 20홈런, 그리고 이에 자연히 따라온 신인 포수 최다 홈런[6] 타이틀을 획득했고, 두산은 2010년 시즌 5명의 타자가 20홈런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7]

다만 도루저지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팬들 사이에선 '타격 되는 채상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가끔 다른 팀 팬들도 이 부분을 지적하며 신인왕 자격이 안 되는 형편없는 선수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도루저지율은 2010 시즌을 기준으로 8개 구단 주전 포수 중에서 중하위권 정도. 물론 훌륭하다고 못하겠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까진 아니다. 의외라면 의외. 사실 도루저지보다 더 큰 문제는 포구, 블로킹, 송구 등 전반적인 수비스킬이다. 같은 팀 용덕한, 최승환은 물론이고 그 강민호의 초년병 시절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2010년 프로야구 신인왕. 채상병, 최승환, 용덕한 등 수비력은 준수하지만 공격력이 멘도사 라인을 넘나드는 백업급 포수들로 로테이션을 돌리던 두산은 2010년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양의지를 적극적으로 출전시켰는데 이 때 양의지는 경찰청에서 배운 안정감있는 투수 리드를 선보였고, 타석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며 2008년 김현수, 2009년 고창성, 이용찬에 이은 화수분 야구의 후속타를 보여주고 있다.

5. 관련 문서



[1] 다만 지난 시즌까지 1군 주전경쟁을 했던 최승환, 용덕한이나 상무와 경찰청의 주전포수로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재환, 최재훈에게는 재앙일 수도. 김재환을 군대로 보내며 전역을 손꼽았던 팬들은 이제 김재환을 1루로 전향시켜야 하지 않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단 2011 시즌 종료 직후 최승환이 한화로 팔려가며 그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2012 시즌 중에 용덕한도 결국 롯데로 가버렸다.[2] 여기에 두산팬들은 2차 6라운드에서 지명했던 최주환이 제대하기를 기다렸다. 원래 최주환은 타격은 몇 년 전부터 2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으나 두산의 막강한 내야 뎁스 사이에서 돌글러브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군에서 중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청에 입대해서 4할에 육박하는 타육과 7할에 근접하는 장타율을 찍고 있으니 제대하면 중용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거기에 경찰청에 가서는 유격수를 보면서 대륙간컵에서도 오지환을 밀어냈다! 흠좀무. 전역 이후에는 2루에는 오재원이라는 벽이 존재하고 3루나 유격수 자리는 수비가 영 좋지 않아서 백업 대타 요원으로 주로 나오다가, 2017 시즌 들어서 드디어 포텐이 터지려는 모습을 보여줬다.[3] 이는 바로 이전 해 세이브왕을 달성한 이용찬에 이은 2년 연속 두산 베어스 소속 선수의 신인왕 수상이었다. 두산은 이 해 양의지의 신인왕 수상 이후 11년 동안 신인왕 계보가 끊겼다가 2022년 정철원이 신인왕 수상을 달성하며 KBO 최다 신인왕 배출 구단이 되었다.[4] 하필이면 10시즌에는 9경기 연속홈런의 이대호가 있기 때문이다. 홍성흔도 이대호보다 먼저 5경기 연속홈런을 때리면서 신기록 달성을 하느냐 마느냐로 잠시 이슈였는데 양의지도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해설조차도 이대호나 다른 사람들땜에 묻혔다고 말해버렸다.[5] 게다가 10시즌엔 강민호도 3할 23홈런을 기록했지만 포수계의 신기록 3할1푼7리에 28홈런 107타점이라는 넘사벽 10' 조인성이 탄생해버리는 바람에... 지못미.[6] 종전 기록은 다름아닌 1999년 두산 홍성흔의 16개.[7] 김현수, 이성열(이상 24홈런), 최준석(22홈런), 김동주, 양의지(이상 2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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