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21:00:26

비판적 인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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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자유주의 비판3. 논란
3.1. 반박
4. 주요 아이디어5. 여담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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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판적 인종이론(批判的人種理論, Critical race theory; CRT)은 킴벌리 크렌쇼가 자신의 저서 Critical Race Theory: The Key Writings That Formed the Movement를 통해 처음 제기했다.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교육적 현상을 이해하는 접근법으로 인종, 사회, 법의 교차점을 찾고 자유주의적 인종 담론에 도전한다.

1970년대에 법학연구(legal studies)에서 출발한 학문적 입장으로 인종차별이 체제와 제도에 배어서 인종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보며, 법, 사회 구조, 그리고 공공정책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예를 들어, 짐 크로우 법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에 의해 철폐 되었지만, 미국 흑인들의 높은 사망률, 경찰 폭력 피해, 학교-감옥 파이프라인, 부동산 담보 및 대출 거부는 모두 제도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본다. 주요한 학자로 데릭 벨(Derrick Bell), 리처드 델가도(Richard Delgado), 그리고 CRT라는 이름을 고안한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있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인종이라는 개념은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는 자연적 개념이 아니며, 사회의 기득권이 현상 유지 및 이득을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고 비판한다.[1]

2. 자유주의 비판

미국의 '주류' 정치는 주로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와 (현대)자유주의(自由主義, Liberalism)로 양분되어 있는데,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워낙 자유주의, 리버럴을 학술적 의미가 아닌 반대세력(좌파세력) 전반에 사용하기 때문에 CRT가 리버럴적인 접근으로 오해를 받지만, 비판적 인종이론은 보수주의 뿐 아니라 자유주의에 비판적인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일반적인 사회주의적 접근은 아니고,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에 가깝다. 물론 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비판적 인종이론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다.

CRT는 미국현대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인종적 보수주의 비판에 기반한 컬러블라인드[2] 같은 인종에 대한 기계적인 '공정성'에 기반한 평등과 중립의 태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미국의 인종적 불균형에 기반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3] [4] [5]

또한 비판적 인종이론은 합리주의, 진보의 개념도 비판하는데 이러한 개념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을 야만적, 보수적 가치로 인식하게 하여 그들을 배제하고 백인 문화로 '계몽'시키게 하는 문화적 학살(cultural genocide)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3. 논란

미국에서 CRT 교육을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좌우파, 주로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로 나뉘어 논란을 빚고 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CRT를 백인 역차별이며 분열적인 주제라며 교실 내에서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려고 하는 등 논쟁적인 주제이다. 기사, 기사 2. 미국의 블루 스테이트버지니아 주에서 2021년 주지사 선거와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신승하였는데, 비판적 인종이론 교육 이슈가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사태에 대해 큰 비판을 가했는데 애초에 비판적 인종이론은 최소 대학교, 대부분은 대학원인 법대에서 가르치는 항목이다. 즉 공화당측에서 공립교육에선 보이지도 않을 이론을[6] 가지고 공포를 조장했으며 몇몇 학자들은 인종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이론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마인드를 나타낸다는 비판을 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을 비롯한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CRT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했으나 비판적 인종이론의 목표가 인종을 사회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 개념을 제도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엇나간 주장이자 허수아비 때리기인 셈.

3.1. 반박

비판적 인종이론이 로스쿨에서 시작된만큼 로스쿨에서 주로 가르치는 학문분과라고 할 수는 있으나, 이미 여러 분과학문으로 퍼진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기는 어렵다. 교육학, 사회학, 정치학, 여성학, 젠더학, 민족학 등에서도 다루고 가르치는 학문적 입장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과학으로 따지면 고등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셈이라는 비유가 알맞지 않은 것이, 저 비유가 의도하는 바는 적어도 대학/대학원 수준의 난이도 있는 학문을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인데, 비판적 인종이론의 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하고 그걸 어떤 형태로든 K–12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쉽다.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망상이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관련 증거는 차고 넘친다. 당신의 아이(child)가 CRT에 대해 물어보나요? 여기 가이드라인이 있답니다. 공화당이 법을 제정해서 비판적 인종이론을 K–12 교육과정에서 차단하고자 한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가 아니라, 공화당 입장에서 타겟팅은 정확하나 실효성이 의문인 대응이라 볼 수 있다. 이미 2015년에 교육에 있어서는 비판적 인종이론이 유아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형태의 프로젝트로 진화했다는 CRT 연구자의 평가를 찾을 수 있다.[7]

4. 주요 아이디어

비판적 인종이론의 주된 아이디어(tenet)는 다음과 같다.
*인종 개념은 자연적/생물학적인(natural) 개념이 아니며, 지배적인 다수 그룹(이하 백인)의 현상 유지 및 이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 - socially constructed
*인종 개념은 유색인종(people of color)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것. - oppressed and exploited
*인종차별은 개인의 편견뿐 아니라, 사회의 법/제도에 더 깊숙이 뿌리박혀 있고 후자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 - systemic and institutional racism
*사회의 큰 변화/진보는 백인의 이익과 소외된 소수 그룹의 이익이 일치했을 때, 백인이 용인하면서 일어났다는 것. - interest convergence
*인종차별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 - ordinary, not aberrational
*개인은 인종/성별/성 정체성/장애/계급 등의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정체성이 불평등/특권, 유리한 점/불리한 점을 낳는다는 것. - intersectionality
*소외된 소수 그룹에 따라붙는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이 백인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 - oppressor
*억압받고 차별받은 그룹은 차별의 경험을 통해 특별한 관점을 가진다는 것. - unique
*차별을 영속시키는 권력 체제에 도전하고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 activism
*인종평등과 능력주의는 유색인종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난에 백인이 무책임하게 만들고, 백인의 권력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 - colorblindness and meritocracy
*소외된 개인들의 이야기가 현존하는 불평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헤게모니를 가진 주류 담론에 대항하는 내러티브가 된다는 것. - storytelling and counter-storytelling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이론의 여러 학파에서 개념을 차용하기도 했고, 불평등/차별 등의 문제를 의식하고 개혁하자는 부분은 새겨들을만한 대목이며, 뭔가 새로운 개념이 제시되기도 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꽤 그럴싸해 보인다.

저 아이디어들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도 참인지 타당한지의 문제, 인종차별이나 그룹간의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문제의 진단과 처방이 적확한지의 문제 등은 차치하고, 저걸 받아들이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억압과 차별의 종류/수에 따라 위계 같은 것이 생기고 더 많이 억압받는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권위가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그들이 하는 주장을 비판할때 극우인종차별몰리기 쉽고 뭐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건전한 비판이 틀어막히고, 도그마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나아가 그들이 거꾸로 소위 특권이 있다고 여겨지는 그룹, 또는 그 그룹에 속한 개인을 억압하거나 역차별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8]

예를 들면, 해당 그룹의 정체성으로 개인을 공격할 때 제일 쉬운 타겟이 백인 남성이 되고, 백인 남성 개인의 개성/능력, 그의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 등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극단으로 빠지면 한 그룹/집단에 대한 테러도 정당화하는데, 이스라엘 하마스 사태가 터지고 나서 오직 이스라엘만을 비난하고 유대인 학살을 암시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억압자이고 팔레스타인이 억압당하는 피해자로 구조가 짜여져 있으니 하마스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고 정당화되는 것이다.

물론 비판적 인종이론의 아이디어와 저런 행위가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도 가능하고,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인과관계/상관관계가 연구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개연성은 충분해보인다. BLM 시카고 지부는 하마스 테러에 대해 포스팅을 하나 했는데, 극좌 혹은 극단주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9] 패러글라이더 트윗을 올리고 미친듯이 까여서 내리긴 했으나, 새로 올린 트윗의 내용 역시 하마스 지지였다.# TMZ의 관련 보도 2023년 12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하버드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총장들이 한 대답이 특히나 그 이중잣대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 그중 하버드 총장 클로딘 게이이력서를 살펴보면 비판적 인종이론에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보인다.[10] [11]

법과 제도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주장하는 인종차별을 제거하기 위해서 개인의 개성/능력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차별받는다는 그룹/집단정체성을 중시하고, 주로 인종을 렌즈로 삼아 세상을 억압자-억압당하는 자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진단하고 잘 해결했는지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참고할 수 있다.[12]

비판적 인종이론이 집단주의정체성 정치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인지 명확하게 딱 정의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기에, 비판하는 쪽의 논의도 중구난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각각의 tenet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식이다. 학계에서는 앨런 소칼지적 사기 사건과 거의 똑같은 일이 있었다.# #

5. 여담

억압/차별의 요인이 많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일테지만 그걸 애써 찾는 activist가 되라는 것이 적절한 교육인지, 그리고 activist가 되어 억압자를 지목해서 끌어내리거나 억압적 요소를 가진 제도를 철폐하는 것 말고, 사회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수단/방법을 연구/교육하는 비판적 인종이론가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저 위에 있는 비판적 인종이론의 tenet도 어떤 방법론으로 검증을 한건지 불분명하며, interest convergence란 tenet이 있지만 백인과의 협동/협업보다는, 백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분쟁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종이라는 개념과 인종차별, 나아가서 다양한 차별들을 근절하자는 건 그냥 다 핑계고 oppressed vs oppressor의 파워게임에서 이겨서 지배적 그룹이 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 보인다.

추진력을 얻어서 완전히 막장으로 가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그걸 책에 쓰고 강연한다.
*The only remedy to racist discrimination is antiracist discrimination. The only remedy to past discrimination is present discrimination. The only remedy to present discrimination is future discrimination. - Ibram X. Kendi
*인종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반인종차별이다. 과거의 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현재의 차별이다. 현재의 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미래의 차별이다. - 이브람 X.켄디 [13] [14]

더군다나 CRT의 tenet들은 미국의 기본 개념, 주류 국민정서와 궁합이 심히 좋지 않다. 저 tenet에 따르면, 미국 독립선언서는 헛소리고 미국 헌법 역시 언젠가는 처리해야할 억압/차별의 뿌리이다. 개인주의, 능력주의와도 배치되고, 역사 인식에 더불어 인종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가족 애니메이션의 slaves built this country 같은 메시지와 The 1619 Project에서 시도된 역사 왜곡 혹은 수정주의 역사관은 CRT의 tenet을 쭉 살펴보면 대충 왜 저러는지 이해가 된다. 공화당이 이유 없이 발작하는 게 아니다.

6. 같이 보기



[1] 다만, 인종 개념에 대한 비판은, 인류학, 생물학, 사회학 등의 분과학문에서도 있었고, 마찬가지로 인종이 과학적으로 엄밀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입장을 취한다.[2] color-blindness. 원래 색맹이라는 의미이지만 이 맥락에서는 '인종을 나누지 않는 것'(Racial color blindness)을 뜻한다.[3] 물론 비판적 인종이론 지지자가 적극적 우대조치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인종을 채웠으니 더 이상 인종차별은 없다는 듯이 쉬쉬하는 백인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태도가 굉장히 안일하고 오만하다는 식의 비판이다.[4] 컬러블라인드를 폐기하고 Color-Consciousness를 수용하자는 입장은 마틴 루터 킹의 이상/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5] 할당제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부족한 점이 있고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 예를 들면, 대학입시에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입학사정관제와 같이 작동하는데,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처음부터 유대계 인종차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굳이 따지자면 음서와 비슷한 제도였다. # 현재에 와서는 차별의 대상이 유대계에서 아시아계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 교육부 대학 진학률 통계를 봐도, 아시아계가 유독 높지 백인과 흑인 간의 차이는 5% 정도이다. #[6] 과학으로 따지면 고등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7] This article examines the development of Critical Race Theory (CRT) in education, paying attention to how researchers use CRT (and its branches) in the study of K-12 and higher education. - 논문 초록 첫문장.
The use of CRT in education is no longer in its infancy. To the contrary, CRT has evolved into a type of revolutionary project. - 논문 결론 서두. #
[8] Black people can’t be racist. Prejudiced, yes, but not racist. Racism describes a system of disadvantage based on race. Black people can’t be racists since we don’t stand to benefit from such a system. - 2014년 영화 <Dear White People>의 대사.
인종차별의 의미를 재정의함으로써 정당화 논리를 만들고 책임회피를 시도한다. 법/제도에 인종차별이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배어 있다는 CRT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지 그게 개인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저기 흑인을 다른 인종(아시안, 히스패닉 등)이나 그룹(유대인, 여성, 성소수자 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헛소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영상 관련글
[9] 파일:blm chicago hamas.jpg[10] 클로딘 게이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 제노사이드를 외치는 것은 상황/맥락에 따라 괴롭힘이 될 수 있고, 마이크로어그레션, 미스젠더링은 괴롭힘인 오묘한 세계관이다.[11] 클로딘 게이는 저 사건에 더해서 논문 표절 의혹으로 많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두명 중 하나가 CRT와 거의 원수지간인 크리스토퍼 루포이다.[12] BLM의 설립자 3명도 비판적 인종이론 activist였다.[13] 미국흑인학으로 학/석/박사를 했고, 뉴욕 주립 올버니 대학교, 플로리다 대학교, 아메리칸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교수로 지냈다. 여러모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인물이다. Center for Antiracist Research at Boston University을 설립해서 운영했고 연구소 자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다.[14] 뭔가 독특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거 같아보여서 긍정적 평가와 무지성 찬사가 있었다. antiracist discrimination/anti-racism은 번역본에서는 반인종차별(주의)로 쓰이지만, 이어지는 두 문장에서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그냥 역차별(逆差別)/역인종차별이다. 알라딘 책소개 비판1 비판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