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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okal Affair, the Sokal's Hoax1955년생 뉴욕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앨런 소칼이 40대 초반이었던 1996년에 듀크 대학교에서 발행된 《Social Text》를 상대로 벌인 사건.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포스트모더니즘 전반에 대한 이해와 이를 둘러싼 갈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문서에서는 사건의 경과와 여파 등에 대한 개요만을 다룬다. 자세한 전말을 알고 싶다면 과학전쟁 문서나 다음의 글을 참고하면 좋다. 국내외 '과학 전쟁'(Science Wars)에 대한 해부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도 참고할 만하다. #
2. 진행 양상
2.1. 발단
사건 발생 당시 뉴욕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였던[1] 앨런 소칼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생물학자인 폴 그로스와 수학자 노먼 레빗이 1994년 공저한 《고등 미신: 강단 좌파와 과학과의 다툼[Higher Superstition: The Academic Left and Its Quarrels With Science]》을 인용하며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해체주의자들이 과학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영문학 등 인문학 분야에서 세력이 컸다.당시는 《고등 미신》으로 촉발된 논쟁, 이른바 과학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고등 미신》의 저자들은 과학 사회학자, 급진적 페미니스트, 급진적 환경주의자 등을 '학문적 좌파(Academic Left)'로 규정하면서 이들이 과학을 잘 알지 못하고 적대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좌파인 자신들이 보기에도 학문적 좌파의 행위는 도가 지나치며 좌파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폴 그로스 및 노먼 래빗과 같은 입장이었던 소칼은 학문적 좌파의 '학문성'을 공격하기 위해 가짜 논문을 하나 작성하여 투고했는데 학문적 의의가 전혀 없는 가짜 논문인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향하여'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 #를 포스트모던 계열 학술지인 《Social Text》에 제출하였다. 그는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논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의 글을 제출하여 '포스트모던 편집자들은 자기네 이상에 동조해 주기만 하면 내용이 엉터리인 논문도 출판해준다'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했다.[2]
2.2. 전개
《Social Text》지는 1996년 봄/여름 '과학전쟁'이라는 제목의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소칼의 가짜 논문을 실었다. 이 특집호에서 소칼의 논문은 크게 주목받았는데 자연과학자로서는 드물게도 극단적 인식론적 상대주의의 한 분파인 사회 구성주의를 옹호했기 때문이다.자신의 논문이 발행된 그날 소칼은 학술지 《Lingua Franca》에서 《Social Text》에 실린 자신의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문용어나 참고 문헌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장황한 인용을 거쳐 뻔한 헛소리들을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의 결과에 넣고 마구 뒤섞어서 가짜 논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양자역학의 어떤 불합리한 가설을 이미 증명되었다고 하거나 양자역학 그 자체를 잘못 해석하는 등 고의적으로 오류를 논문에 삽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주석에 복소수를 새로운 분야라고 언급했다. 소칼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이공계 학부생이나 대중 독자도 문제점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Social Text》지는 비웃음을 샀고 결국 1996년 이그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2.3. 《지적 사기》의 출판
사건 이후 소칼은 사건에 대한 여러 비판을 재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1997년 《지적 사기[Fashionable Nonsense: Postmodern Intellectuals' Abuse of Science]》[3]를 출판하였다. 그는 프랑스어판에선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들을 모두 '포스트 모더니스트'라 부르다가 이후 영문판에서 과학을 '극단적으로 오용한'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폴 비릴리오 등 소위 '프랑스 이론가'들[4]과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신봉하며 과학을 '미묘한 방식'으로 오용하는 브뤼노 라투르 등의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 과학철학자들 이렇게 비판의 대상을 두 부류로 나눴다.[5] 소칼은 특히 첫번째 부류의 프랑스 이론가들이 과학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자기 분야에 가져다 쓰는 것을 경계했으며 "자신의 학문분야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며 자신의 학문분야를 대상으로 한 논문의 전문성도 판단하지 못하는 학문은 학문의 자격이 없다."고 이들을 비판했다.[6]소칼은 과학을 오용하는 방법의 유형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① 막연하게 아는 과학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② 자연과학에서 나온 개념을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 도입하면서 개념이나 경험에 관계된 최소한의 근거도 밝히지 않는다.
③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에서 전문용어를 남발하면서 어설픈 학식을 과시한다. 그 의도는 뻔하다. 과학에 무지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무엇보다도 겁주려는 것이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그 덫에 빠져들고 있다.
④ 알고 보면 무의미한 구절과 문장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일부 저자는 의미를 대상으로 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면서 단어에만 외곬으로 빠져드는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⑤ 이런 저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에 관계된 능력에 비해 턱없이 강한 자신감을 갖고서 발언한다.
3. 반응
3.1. 영미 인문학계
이 사건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그들이 속한 분야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과학적 도구와 사고방식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언어학, 영미분석철학 등의 인문분야에서는 대개 과학의 객관성을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인문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박쥐논변'을 통해 물리주의를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토머스 네이글, 노엄 촘스키 등이 「지적 사기」를 중요한 책으로 평가하며 소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네이글의 「지적 사기」리뷰근대 과학은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이며 문화적 보고라 불린다. 그것은 사려 깊고 엄정한 활동을 평가하며 응분의 보상을 준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이 자명한 이치가 얼마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적 생활과 인간의 활동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경험적 탐구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고 건설적인 비판적 분석을 가한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알찬 역저다. ―노엄 촘스키의 『지적 사기』서평
- 한편 Gabriel Stolzenberg, Arkady Plotnitsky 등 소칼이 비판한 프랑스 이론에 친화적인 수학, 과학자 등은 소칼이 자신이 인용한 학자나 공격한 학자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실패했고 저작 전체의 맥락을 무시하고 자신이 조롱하고 싶은 구절만 인용한다 비판했다.[7]#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도 프랑스 철학에 대한 컨텍스트적인 고찰이 없다는 것이 『지적 사기』의 심각한 결점(great failing)이라고 말하며[8] 2008년에 nature 지에 기고한 Science wars revisited에서 소칼이 자신이 지적한 텍스트들이 다른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길 꺼리는 것을 지적했다.# 물론 소칼의 목표는 과학 개념의 오용과 남용에 대한 지적이지 그들의 철학이 아니지만 이들의 비판의 요지는 사상가들의 각기 다른 철학적 맥락에 따라 개념이 변형되는 것[9]을 소칼이 짚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저자들이 외견상으로 부적절한 용어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 인용이 나온 더 넓은 맥락이 전문적인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얼마나 느슨하게 만들었거나 변하게 했는가? 명백하게 말이 안 되는 구절에 있는 비 전문적인 용어들이 다른 곳에서 저자들에 의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다루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심각한 결점이다." -N. David Mermin, (「지적 사기」서평) Physics Today 52(April 1999)[10]
- 기타 의견으로 논문이 가짜라도 논문이 담은 문제의식은 중요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한편 과학만능주의에 경도된 일부 학자들이 인문학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사건 자체에 대한 호오를 떠나 사건의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는
- 인문학자나 사회학자 중에서 장황하고 모호한 서술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11] 이런 서술을 줄이고 인문학에서도 좀 더 명료한 서술을 하자는 반응이 있었다.
- 과학 전쟁이 진영에 휘말려서 가치를 잃어가던 와중 소칼 사건으로 인해 크게 한 방 터진 덕분에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는 평도 있다.
여기에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대립 이외의 진영문제도 개입했는데 사실 앨런 소칼은 정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좌파[12]에 속하는 사람이다. 좌파인 소칼이 좌파를 공격한 배경에는 관념[13] 속에서 구름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학문적 좌파'들이 사회정의의 구현에는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원인 계급 구조의 모순을 파악하고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해 이런 부조리를 타파해야 한다고 하지만 소련 붕괴를 보고 자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결국 그렇게 선동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뤄도 부조리한 사회구조 자체는 불변하고 구성원만 변할 뿐이라고 생각한다.[14] 그 때문에 이런 거창한 거사에는 관심 없고 일상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한다. 반면 소칼을 비롯한 구좌파, 즉 거대 서사-노동 문제에 집중하는 진영은 이런 포스트모더니스트를 좌파의 탈을 썼지만 사회적 의무를 아예 방기해 버린 배부른 서구 지식인들의 기만적인 지적 유흥이라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15]
"나는 왜 그 사건을 일으켰는가? 솔직히 인정하자면 우선 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고전 좌파로서 지식에 관계된 해체주의가 노동계급의 해방을 도대체 어떻게 돕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순진하다면 순진한 관점일지는 모르겠으나 난 완고한 과학쟁이로서 이 세계는 현실이고 그 현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 진리를 찾는 것이 내 업이기 때문이다." #
3.2. Social Text 학술지
《Social Text》지의 편집자는 사건이 발생한 후 《Lingua Franca》지에 자신들의 입장을 내놓았다. 그들은 소칼의 논문을 등재하기 전에 소칼에게 비공식적으로 그 글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소칼이 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그러나 소칼은 『지적 사기』에서 《Social Text》지가 편집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16] 또 《Social Text》지의 편집자들은 "(자신들은) 이 논문이 서툴게 쓰였다고 간주했으나 소칼이 그의 지적 확신을 추구하는 학자라고 여겨 게재하였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17] 적어도 이 반응에서는 《Social Text》지가 소칼에게 논문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즉, 《Social Text》지가 소칼에게 논문의 편집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 사실이 있다는 서술의 근거가 본 문서에서 제시되지 않고 있으므로 그를 뒷받침하려면 추가적 근거가 필요하다. 설혹 그렇게 주장한 사실이 있더라도 소칼은 그와 반대되는 주장—《Social Text》지가 자신에게 편집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신빙성을 얻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또한 《Social Text》지는 과학자의 글을 실어서 균형 있는 관점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으로 해당 글을 실었다고 한다. 아울러 당시 《Social Text》지는 보다 창의적인 연구를 돕기 위해 동료 평가(peer review)를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18] 아울러 《Social Text》지는 소칼이 논문의 정직성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배신했다고 덧붙였다. # ## Social Text는 사건 이후 동료 평가를 도입했다.
사실 이 문제는 포스트모던 혹은 어떤 한 학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술지 등재절차의 약점을 찌른 것일 수 있다. 학술지는 생각보다 많으며 논문을 등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때도 있다. 《Social Text》지의 저명성은 둘째 치더라도 확실히 그 검증 시스템은 허술한 편에 속했다. 학술지 등재절차의 문제는 인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처럼 유명하지 않을 뿐 등재기준의 약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가장 심각한 것으로는 인공지능이 만든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들어 소칼의 진의를 폄하하는 것도 위험하다. 소칼이 하려던 말은 한 마디로 "어떤 학문이든지 쓰려면 제대로 알고 좀 써라!!!"다. 잘잘못을 따지는 일 보다는 소칼의 문제의식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의도는 '내가 철학논문을 내서 옴짝달싹 못하게 통과시킴으로써 정복하겠다!'가 아니라 '과정과 검증의 허술함을 직접 겪어 내보임으로써 이전의 다른 사례들의 가능성을 비유하겠다'는 쪽이다.
이는 융합학문, 학제간 연구 등 여러 영역에 걸치는 연구를 할 때에도 유효하다. 소칼의 의도는 다른 영역의 주제를 자기 영역에서 논하려면 다른 영역을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고 이해해야 한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검증도 안 된데다가 자기도 이해 못 하는 소리를 내세우면서 대중들을 속여먹고 경험적 현실을 등한시하는 학자들과 그런 학문에게는 자격이 없다. 정도로 온건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소칼 사건은 전후 사정이나 소칼의 입장과 그가 비판한 철학자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역시 현대 인문학은 사기극이나 다름없군', '포스트모던 학자들과 달리 완전무결한 과학이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었군'과 같이 극히 피상적인 인식을 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드물게 이루어졌는데 후술하겠지만 진흙탕 싸움에 가까운 사례도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를 지나치게 왜곡된 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끽해야 대학원생이나 학부생인 과학도들이 이 논쟁에 대해 숙고할 생각은 않은 채 맹목적으로 과학이 인문학을 제압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경우도 간혹 찾아볼 수 있지만 이것이 바로 소칼이 지적하려고 했던 '자기도 모르는 주제를 하고 싶은 말에 끼워맞추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히 이를 스포츠 경기처럼 인문학 대 과학의 대결구도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포스트모던은 인문학을 대표하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하는 인문분야도 많으며 인문분야 사이의 갈등은 일반인의 생각을 초월한다. 소칼 그 자신도 이를 인문분야 전체에 대한 비난의 도구로 삼은 바 없으니 이 점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우리의 주장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소하지는 않지만 거창하지도 않다. 우리는 라캉, 크리스테바, 보드리야르, 들뢰즈와 같은 이름난 지식인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원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거나—우리는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개념을 이식하는 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논증 없이 이식하는 데에 반대할 뿐이다—과학에는 문외한인 독자들 앞에서 이 개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개념의 정확한 뜻조차 밝히지 않고 전문과학 용어를 쏟아붓는 식으로 과학적 개념과 어휘를 남용하기 일쑤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저자들의 책 전체가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 대한 판단을 우리는 유보하련다."
"우리의 목적은 바로 임금님은(그리고 여왕님도) 벌거 벗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 우리는 철학, 인간과학, 혹은 사회과학 일반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는 이런 분야가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특히 학생들)에게 사기임이 확실한 것에 대한 경고를 해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어떤 텍스트의 난해함을 심오함으로 간주하는 평판을 '탈구축'하고자 한다.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례에 바로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아주 적절한 이유가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우리의 목적은 바로 임금님은(그리고 여왕님도) 벌거 벗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 우리는 철학, 인간과학, 혹은 사회과학 일반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는 이런 분야가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특히 학생들)에게 사기임이 확실한 것에 대한 경고를 해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어떤 텍스트의 난해함을 심오함으로 간주하는 평판을 '탈구축'하고자 한다.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례에 바로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아주 적절한 이유가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지적사기>를 읽을 때도 똑같이 유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소칼의 비판자들이 보기에 소칼은 각 사상가들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문맥적 이해 없이 단순히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 보이는 단락들만 골라서 비판을 시도하고 나아가 사상가들이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과학을 남용해 권위를 획득하려 하는 '지적 사기꾼'으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가령 과학전쟁 당시 소칼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브뤼노 라투르를 읽는 데 많은 논란을 낳았다. 라투르는 자신의 논문 <Realistic Account>에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며 두 좌표계를 설정할 때 세 번째 좌표계를 더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떨어지는 돌의 운동에 대한 관찰이 축대에서 떨어지는 돌의 운동의 관찰과 어떻게 일치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하나의, 혹은 심지어 두 개의 좌표계만이 존재한다면 이에 대한 어떤 해법도 찾아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기차 안의 사람은 직선(낙하)을 볼 것이고 축대에 있는 사람은 포물선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돌이 동일한 물리법칙에 의해서 떨어진다고 우리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아인슈타인의 해법은 세 명의 행위자를 상정하는 것이다. 한 명은 기차 안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축대에, 그리고 세 번째 행위자는 저자 자신, 혹은 저자의 대리인으로서, 이 두 명의 관찰자가 보낸 정보를 종합하는 사람이다.[19]
이를 두고 소칼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라투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왜곡했다 비난했다. 소칼은 라투르가 물리학의 좌표계와 기호학의 행위자를 구별하지 못했으며(물리학의 좌표계에는 '사람'이 없어도 되기 때문에), 두 개의 좌표계에 적용되는 상대성 이론을 놓고 세 번째 좌표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넌센스를 범했으며, 하버드 대학교의 실험 물리학자 존 허스(John Huth) 역시 상대성 이론에서 인간 관찰자가 필요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라투르가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해 스트롱 프로그램의 타당성을 보이려했다"고 주장했다.[20]
그러나 홍성욱(2003)에 따르면 소칼은 라투르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허스는 라투르의 목적을 오해하고 있다.
라투르는 이러한 설정으로부터 흥미로운 역설(paradox)을 끄집어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은 절대 공간, 절대 시간과 같은 뉴턴주의 물리학의 절대 좌표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임으로써 특권을 가진 좌표계를 소멸시킨 이론이었다. 즉, 상대성 이론에서 우주 속의 모든 관찰자는 동등한 것이다. 반면에 (라투르의 해석에 의하면) 이들이 보내온 관찰 정보는 한 사람에 의해 취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는 이 사람은 궁극적으로 다른 관찰자들이 가질 수 없는 특권을 획득한다.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라투르가 '계산의 중심(centers of calculation)'이라고 부른 곳이며, 실험실과 같은 계산의 중심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근대 과학이 사회 속에서 권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형시키는 중요한 매커니즘인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스트롱 프로그램 상대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회 속에서 과학이 '계산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대성 원리(운동이 정지와 다르지 않다는 갈릴레이의 주장), 특수, 일반상대성 이론은 서술에 거꾸로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기구를 설정하고, 계기를 읽고, 좌표를 정하고, 정보를 주고받고, 메시지를 번역하고, 등가성을 확립하는 작업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라고 부른 것이고, 그가 상대주의에 반대한 것이다"라는 주장이나 "아인슈타인의 책은 그래서 [장거리 과학자: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새로운 교본]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다"라는 라투르의 언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물론 라투르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상대론에 대한 그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상대론에 대한 그의 해석에는 전적으로 동의해도 그로부터 유도되는 이런 일반적인 명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해석과 설득의 게임이며, 텍스트의 의미는 수학 명제와 같은 보편 진술로 환원될 수 없는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텍스트가 독자 마음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라투르의 논문을 충분히 소화한 사람이라면 그 논문의 목적이 상대론에 대한 새로운 물리적 해석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고,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이 글자 그대로 사회이론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것도 아니며, '아인슈타인을 한 수 가르치려고 한' 것도 아니라는 점 정도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의도한 것은 스트롱 프로그램식의 사회구성주의가 아닌 과학과 사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상대성 이론을 예로 들어 보인 것이다.[21]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 역시 라투르의 아인슈타인에 대한 논문을 옹호하며 과학자들의 직선적이고 분명한 글쓰기 스타일이, 대상과 목적이 모호한 주제를 다루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2]
한편 Arkady Plotnitsky는 아래 논문에서 철학적 층위에서 쓰이는 과학 용어들을 이해하고 그것이 적절한지 구분해내기 위해선 책의 전체적인 논의 파악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소칼이 사이비 과학어로 가득 차 있다 비판한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변호했다.[23]
Sokal and Bricmont fail to offer an adequate reading of Deleuze and Guattari (or other authors they discuss) primarily because they miss or bypass the architecture of their philosophical concepts, defined,as I explained, by complex mixtures or melanges, including when science is used. They also miss the difference between science and philosophy, or their respective ways of dealing with chaos, which is, ironically, at stake in Deleuze and Guattari's book, including in the elaborations that Sokal and Bricmont cite, but do not really read. The more nuanced complexity of the interrelationships or 'interferences' between philosophy and science, including the philosophical dimensions of scientific concepts, would require a kind of reading of the overall argument of the book that Sokal and Bricmont appear to be unwilling to undertake. Their 'readings' usually amount to citing long passages and declaring them, at best, melanges of sense and nonsense while such passages require extensive exegeses, even if one wants to be critical, and especially if one does. I am not saying that one cannot criticize Deleuze and Guattari. I am saying, however, that Sokal and Bricmont do not appear or fail to prove themselves to be in a position adequately to discriminate between what is and is not an appropriate use of science in the texts they consider. - Plotnitsky, A. (2006). Chaosmologies: Quantum Field Theory, Chaos and Thought in Deleuze and Guattari's What is Philosophy? Paragraph, 29(2), 42-43 #
이 사건을 다룬 책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가 있다. 민음사가 2000년에 출판한 적이 있었으나 이는 2014년 기준으로 절판되었고 2014년 1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판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악마의 사도》에서도 《지적 사기》를 다룬 서평으로써 이 사건을 설명한다.
3.3. 한국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서울대학교 철학 박사인 이정우가 '3류 물리학자의 국제 사기극', '위대한 인물들의 명성에 흠을 내려는 조잡한 시도'라면서 나쁘게 말한 적이 있지만 소칼이 재직 중인 뉴욕대학교의 쿠란트 응용수학 연구소는 미국에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최고 수준의 기관이다. 여기서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았다면 온 학계가 1류로 인정해 주는 것인데 학계 밖의 사람이 3류라고 하면 웃고 치울 일일 뿐이다.[24][25]한편 소칼 논쟁이 한국에 상륙해 쏟아지는 논쟁에 나름대로 원숙해지던 200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출신의 동기 동창 학자인 뉴욕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양신규[26]와 교수 홍성욱[27]의 논쟁도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읽고 싶은 사람은 당시 학술지를 찾아서 읽을 것. 교수 양신규의 주장과 교수 홍성욱의 반론 둘 모두 읽을 만하다. 자세한 내용은 교수 홍성욱의 논문 누가 과학을 두려워하는가 " - 최근 " 과학 전쟁 " ( Science Wars )의 배경과 그 논쟁점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벌어진 논쟁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후 논쟁이 과열되면서 본래 취지에서 어긋나게 되었다. 냉정히 말해서 두 사람의 논쟁은 MS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는 이미 본래의 논점과 크게 이탈하였고 학술에 관계된 논쟁과는 다른 형태로 변질되었다. 예컨대 홍성욱은 처음 글에서 지식에 관계된 사기가 포스트모더니즘에 가한 공격에는 동감하지만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을 대상으로 해서는 일정한 무지를 드러낸다고 평했지만 양신규는 재반론에서 홍성욱의 서평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상으로 한 옹호로 판단하고 과학사회학의 스트롱 프로그램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에게 인식론에 기초한 타당성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D. Bloor의 스트롱 프로그램의 기획을 생각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두 사람의 논쟁은 허수아비 때리기로 시작해서 지식에 관계된 사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존심 대결(경제사에 관한 장광설 등)로 끝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추상 vs 구체: 프랑스와 영국의 학풍 차이
한편, 소칼 사태에 대해 어느 한 쪽을 직접적으로 편드는 대신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본다면 추상 vs 구체라는 수학계의 학풍 차이로 인한 불만 또한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로 피폭당한 사람들이 프랑스 철학자들이고 저격수로 나선 사람은 영미권 수리물리학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우선, 르네 데카르트 이래 꾸준히 이어진 프랑스 철학 및 과학의 학풍을 먼저 이해하면 좋다. 프랑스는 철학의 나라답게 과학사, 공학사에서도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연구방법론을 추구하는 전통이 있었다. 애초에 데카르트가 침상에 드러누워 날파리를 잡다 떠올렸다는 좌표평면이라는 개념부터가 그런 짓거리(?)의 일환이었다. 수학에서도 마찬가지라, 수학이 엄밀한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게끔 패러다임 시프트를 일궈낸 오귀스탱루이 코시가 프랑스에서 태어난 바 있었고, 에바리스트 갈루아, 앙리 푸앵카레를 비롯한 수많은 프랑스 거물들이 수학사를 주름잡았다.
잠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프랑스의 젊은 수학자들이 많이 희생당하며 전통이 끊길 위기에 놓였으나,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놈들이 홀연 등장하여 최초의 목적이었던 해석학(Analysis) 교과서는 물론 현대수학의 모든 분야를 자기완비적으로 집대성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현대수학의 중심을 다시금 프랑스로 옮겨놓았다. 부르바키는 현대수학의 자기완비적 총정리에 있어 다비트 힐베르트의 형식주의 운동과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독특한 저술 방식과 엄격한 논리 전개를 고수하며 구조주의 수학철학의 시조로 남았다. 이들이 씨앗을 뿌려놓은 구조주의는 부르바키를 그만둔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라는 20세기 대수기하학의 혁명가에 의해 다시금 대대적인 세계관 개편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대학 전공수학 교과서가 분야별로 점차 정형화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수학관은 데카르트 시절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전통인 엄밀하고 합리적인 논리적 사고로 무장한 연역주의자들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반면 영국 학계에는 아이작 뉴턴, 프랜시스 베이컨,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조지 버클리 등에게서 이어지는 경험주의의 영향이 강했다. 대륙식으로 추상적이기만 한 사고보다는 실재하는 현상에 충실한 직관적, 귀납적, 결과지향적 방법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수학은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잘 설명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일 뿐이었던 것이다. 단적인 예로 아이작 뉴턴의 주요 업적으로 거론되는 미적분 역시 자신의 물리학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성격이었고[28]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나마기리 여신이 지식을 하사하셨다 할 정도로 논리적으로는 정제되지 않았으나 귀신같이 들어맞는 직관을 주무기삼아 산더미 같은 업적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마이클 아티야 등 영국 수학자들의 연구업적이 현대 이론물리학에 도입되다못해 기하학과 물리학의 경계를 허물어가기에 이르며 응용수학, 수리물리학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만 이런 갈등의 이분법적 구분은 오늘날엔 희미해진지 오래이며, 사실 비전공자들에게는 둘 다 외계어나 늘어놓는 이상한 놈들(...)로만 여겨지곤 한다. 특히 수리논리학 및 수학기초론에서는 독일어권 수학자들의 영향이 매우 지대하여 양측이 모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역 연구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들의 학풍에는 오늘날에도 추상 vs 구체, 논리 vs 직관, 선험 vs 경험의 대립구도가 미묘하게 남아있어 양 진영 간의 열띤 논쟁과 협력을 반복하며 수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도에서, 앨런 소칼은 완고한 후자였다. 영국인은 아니고 미국인이지만, 그 스스로도 아서 와이트먼(Arthur Wightman)[29]의 지도 하에 박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자로 성장했을 정도로 영미권의 경험주의에 물든 수리물리학의 연구 풍토에서 성장한 인물이었다. 반면, 프랑스의 추상수학자들은 니콜라 부르바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등의 업적을 발전시키며 현실의 구체적인 이슈에는 관심을 덜 두는 경향이 있었다. 하물며 철학사의 계보상으로 수학의 입장에선 머나먼 방계에 불과한 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철학사조에는 더욱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언어부터가 다른 후세대 철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부르바키의 원론이나 아인슈타인 이론과 양자역학을 얼마나 야리꾸리하게 인용하든)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실전수학자(working mathematician)들을 제외한 극히 일부 수학철학 전문가들만이 중립기어를 박고 관망할 뿐이었다. 오히려 20세기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수학자들이 현대 철학과 언어학과 과학의 관념과는 별 상관없는 방식으로 많은 용어를 정의하여 창조적인(?) 수학을 추구하던 것도 뉴턴 이래 이어진 직관주의적 시선에서는 기가 찰 노릇일지도 모르나[30][31], 프랑스 철학자들은 수학 및 과학의 이런 배경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채로 수학적, 과학적 용어를 어설픈 방식으로 무질서하게 들먹였고, 수학과 과학에 준하는 논리적 정합성이 갖춰지지 않은 논문과 책들이 소칼에게 맹공을 받으면서야 그 실상이 수학과 과학에 문외한인 인사들에게도 알려질 수 있었다. 다만 소칼의 저격은 이를 오남용하는 철학자들에게 집중될 뿐 자신들의 연구에만 전념하는 수학자들을 대상으로 하진 않았고[32], 덕분에 프랑스 수학의 고결한(?) 학풍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영역에 머물 수 있었다. 수학자들은 이 진흙탕 싸움에 직접 끌려들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도 하나, 일각에서는 수학 역시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매우 많은데도 '수리물리학자'에 의해 대립구도가 부각되는 바람에 객관주의와 상대주의, 이과와 문과의 이분법적 프레임 대결에서 마냥 전자의 편으로만 몰리는 것을 겸연쩍게 여기기도 한다.
5. 참고자료
저자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역자 이희재|한국경제신문사|2014[33]과학과 문화 - 문화에 있어서의 과학의 위상[34]
통섭과 지적 사기|저자 이인식|인물과사상사|2014[35]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저자 김민형|김영사|2022[36]
6. 관련 사건
- ‘Conceptual Penis’ hoax
- 페미니즘 학회 나의 투쟁 등재 사건: 학술지의 구조적 결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의 용어 등등만 바꾸어서 올렸는데 그것이 공식적으로 여성학회지에 통과된 사건이다.
7. 관련 동영상
작가 클리포드 골드스타인이 해설하는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navertv(135467)]
1:02:46 부터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소위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에 대한 간단한 배경 설명과 비판적 논평이 나오는 영상이다.
Q. 철학에서 자기 객관성이나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 과학의 성과를 가져다 사유를 하는 것인데 소칼이 극단적으로 비판한 건 아닌지.
A(홍성욱). 소칼 관련해서 지적을 해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칼이 지적한 부분 중에 약간 이렇게 스펙트럼으로 봤을 때 타당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기존의 철학자들이나 인문학이나 이런 거를 하시던 분들이 과학의 권위를 빌려서 그 과학을 굉장히 깊게 천착했다기보다는 그런 과학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사실 내용과 잘 맞지 않는 과학의 방정식이라든지 과학의 아주 복잡한 이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빌려서 이렇게 얘기하는 부분들도 있었고요. 그렇지 않고 실제로 과학이 상당히 의미 있게 철학에서 사용이 되고 원용이 되고 해석이 되어서 그것이 철학적인 언어로 다시 나타난 부분들도 있습니다. 근데 소칼이, 제 생각에는, 과학을 하시는 분이니까 너무 어떻게 보면 급하게, 혹은 너무 철학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 얘기를 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과학을 모르는데 왜 과학을 사용하냐 라고 비판한 부분과, 진짜 의미가 없고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그런 얘기에 대한 비판과 이런 것들이 같은 책에, 논문에 혼재되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그 당시 과학 전쟁에서 나왔던 많은 얘기 중에 칼 포퍼 같은 과학철학자가 상대주의의 원흉이다, 상대주의적인 지식론 이런 것들을 설파하는 사람이다라는 비판이라든지. 쿤도 굉장히 잘못된 과학관을 제시했다, 쿤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가 있지만요. 포퍼는 아마 자기 자신을 상대주의다 이런 얘기를 들었으면 기절을 할 노릇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것들이 좀 혼재되어서 있고요. 『지적 사기』같은 책을, 저는 그래서 조금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공계 다니는 학생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철학이 너무 난해하고, 요즘 프랑스 철학 이런 거는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모르겠고 무슨 페미니스트 이론이라든지 이런 것도 책을 읽으면 하나도 이해도 안 되고 그랬는데, 『지적 사기』를 읽고 나니까 다 엉터리더라. '와, 이거 봐라. 철학 하는 인문학자들 다 엉터리 얘기만 하고 그랬다' 이렇게 『지적 사기』를 받아들이고 '역시 과학을 해야 해' 이렇게 접근하는 학생들을 간혹 보는데 저는 이건 위험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칼을 우리가 상당히 분석적으로 읽고 거기서 취할 것들과 취하지 않을 것들을 가려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8. 관련 문서
[1] 소칼의 연구 분야인 확산(diffusion)은 수학의 확률론과 물리학의 통계열역학에서 공통으로 연구하는 주제라서 수학과 물리학의 중간 지대의 학문이므로 수학자라고도 볼 수 있고 물리학자로도 볼 수 있다. 박사학위는 수학으로 받았다.[2] 재밌게도 해당 논문 제목에 채택된 용어인 해석학 자체는 정작 포스트모던과 거리가 멀다. 그 일례로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와 폴 리쾨르 모두 포스트모던 철학자로 유명한 자크 데리다와 논쟁을 벌였다.[3] 부제에 붙은 '과학 남용'이 책의 공격성을 상징한다. 한편 책은 벨기에 과학철학자와의 공저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어로 먼저 출간되었는데, 여기에서 그 공격성이 어디를 향하는지 볼 수 있다.[4] 이외에도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도나 해러웨이 등의 인문학자들이 과학과 수학을 오용한 대목이 소개된다.[5] 이상욱. (2005). 과학연구의 역사성과 합리성. 한국과학기술학회 강연/강좌자료, (), 3~4.[6] 소칼이 이 사람들의 학문적 성과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소칼의 관심 밖이다.[7] 이 점을 가리켜 데리다는 소칼과 브리크몽은 자신들이 다루는 텍스트에 대해 진지하지 않다 평가했다.#[8] N. David Mermin, “Fashionable Nonsense,” Physics Today(April, 1999), p. 70. 홍성욱의 <서평> 상대주의 과학관을 변호함 - 『지적 사기』의 과학주의를 넘어 에서 재인용[9] 이는 과학적 서술과 다른 인문학적 서술의 특성이기도 하다. 인문학적 서술이 많은 경우 은유적 표현을 비롯한 수사법(rhetoric)을 채용하고(이러한 은유와 수사의 의미는 글 전체에서 그 뜻을 파악해 내야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맥락화(contexttualization)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반면, 과학자들은 은유나 수사에 관심없이 명제의 진위를 따져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홍성욱.「」2003.02, 소칼 논쟁, 그 이후, 범양사, 130~131쪽 참조)[10] 홍성욱.「」200302, 소칼 논쟁, 그 이후, 범양사, 143p에서 재인용[11] 라캉 등 몇몇 학자들은 고의로 이렇게 쓴다고 스스로 밝혔다. 다만 이 사람은 문자매체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던 사람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12] 앨런 소칼은 자신이 전통 마르크스주의 좌익 지식인이자 국제주의자라고 칭했고 1986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지도하던 니카라과로 날아가서 니카라과 국립 자치대학교에서 1988년까지 3년간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13] 엄밀하게 말해서 소칼의 주장과 이 사건의 배경이 형이상학에 속한다. 즉 이 사건은 형이상학적인 주제에서 벌어진 양측의 대립인 것이다.[14] 유의해야 할 점은 이들이 보기에 당시 흐르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조류가 이렇다는 거지 소칼이 비판한 사상가들 각자의 철학이 모두 이렇게 결론난다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15] 소칼이 지적한 학자들이 얼마나 포스트모더니즘에 연루되어 있는지, 이들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엮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다.#, #[16] (앨런 소칼, 『지적 사기』, 이희재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3, 288쪽)[17] Sokal Affai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 2021.06.07[18] 뉴스 기사조차 Peer review가 기본(심한 경우 Peer review를 제대로 안 하는 것으로 낙인찍힌 저널에 투고를 시도하는 것만으로 학계에서 매장되기도 한다.)인 자연과학을 포함한 과학적 방법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우나 인문학 분야의 저널에서 그 성격을 연구 성과 발표의 장이 아닌 화두의 제시와 토론의 장으로 규정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며 Social Text 측의 입장이 거짓이 아니라면 최소한 과학계의 문제가 되고 있는 non peer-reviewed journal과 달리 들어온 원고에 대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읽고 피드백을 보내기는 한다.[19] Realistic Account p.10-11, 홍성욱. (2003). 소칼 논쟁, 그 이후. 과학사상, (44), 127에서 재인용[20] 홍성욱. (2003). 소칼 논쟁, 그 이후. 과학사상, (44), 129. 소칼은 라투르가 논문 말미에 "우리가 아인슈타인에게 한 수 가르칠 수 없을까?"라는 대목을 가리켜 그가 과학의 권위에 편승해 자신의 이론을 치장하면서 으스댄다고 지적했다.[21] 홍성욱. (2003). 소칼 논쟁, 그 이후. 과학사상, (44), 127-128[22] "여러분들이 (라투르의 논문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물론 그 논문에는 기초적인 과학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모호한 얘기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핵심적인 주제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며, 최근의 비판 중 몇몇은 이러한 '오류'의 지적에서도 피상적이다." -홍성욱. (2003). 소칼 논쟁, 그 이후. 과학사상, (44), 133[23] 이외에도 Plotnitsky는 과학전쟁 당시 소칼이 지적한 '아인슈타인 상수'에 관한 데리다의 언급이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라캉이 자신의 논문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24] 학교나 학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대학교의 테뉴어 심사는 한국 대학교의 테뉴어 심사보다 깐깐하다. 양질의 연구환경을 보고 찾아온 전세계의 인재들이 조교수 부임 후 2~3년의 시간을 부여받는데 이 기간 동안 연구실적이 가장 우수한 자가 테뉴어를 받는다.[25] 소칼 사건에 대한 이정우의 자세한 입장은 그가 2000년에 쓴 에세이 "시간의 지도리에서"를 참조하자.[26] 2005년 사망[27] 현재 서울대학교 생물학부의 교수이고 그 논쟁 당시에는 토론토대학교의 교수였다. 대한민국에서 과학사-과학철학 전공 제1 세대로, STS학자다.[28] 흔히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키배로 인해 영국이 대륙 수학계로부터 왕따당한 것이 영국의 수학 발전을 늦췄다고 평가하곤 하지만, 왕따라기보다는 뉴턴 이후 세대의 수학 발전이 직관을 맹신하지 않고 엄밀한 논리적 완비성을 중시하는 흐름에 영국 학자들이 바로바로 따라가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이 시절 영국 수학자 중에도 교과서에 남을 업적을 남긴 이들은 많다. 영국은 이 흐름에 즉각 발맞추지는 못했으나, 19세기 후반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철학자들이 다비트 힐베르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고틀로프 프레게 등의 독일어권 수학자들과 교류하며 수리논리학을 주도하고 더 나아가 컴퓨터과학을 창시하기에 이른다.[29] 미국의 수학자로, 와이트먼 공리계를 제시함으로써 양자장론의 공리화에 크게 기여한 수리물리학자이다.[30] 아닌게 아니라, "이딴 현실과 유리된 설정놀음도 수학으로 쳐줘야 하냐"며 수학계 내부에서 격렬한 키배가 벌어진 바 있다. 소칼 사건으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아 블라디미르 아르놀트(소련 해체 이후 소련에서 프랑스로 옮겨온 동역학계, 심플렉틱기하학 전문가)가 현실로부터 유리된 프랑스 수학계를 맹비난하자 니콜라 부르바키의 핵심이자 현대 대수기하학의 원로 중 하나였던 장피에르 세르가 발끈하여 장대한 키배에 나선 것이다. 아르놀트-세르 논쟁은 nerdy하고 geeky하여 이러나저러나 대중성 따윈 전혀 없는(...) 수학이라는 분야의 원초적 한계 때문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소칼 사태가 건전해보일 정도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패드립 수준의 키배가 벌어진 논쟁이었다. 이 정도로 완고한 학풍을 형성했던 소련 수학계에 비하면 영국 수학계의 성향은 훨씬 유연한 편이다.[31] 물론 소칼은 전문분야가 분야이니만큼 프랑스 수학의 철학스러운 학풍에 대해 매우 잘 이해했다. 소칼이 보기에 수학은 전례없는 새로운 것을 정의하면서도 가지런히 정돈된 공리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무모순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는, 말하자면 '책임감이 있는' 철학이니 논리적으로 흠잡힐 데가 없었다. 그러나 소칼이 보기에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수학말과 과학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 말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논문, 서적, 언론 인터뷰, 서간 등 어디에서도 설명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공리적(Axiomatic)으로 사고한다 보이지도 않는 인사들이었다. 일례로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집합 얘기를 하며 니콜라 부르바키의 원론 시리즈를 인용했다가 있어보이려고 별 짓 다 한다는 저격을 받았고 책에 Elements라고 이름붙었다고 진짜 elementary한줄 아셨냐는등... 미분위상수학과 다양체 같은 말을 주워담은 자크 라캉 등의 다른 학자들도 가차없이 씹혔다.[32] 애초에 소칼이 만약 프랑스 철학자들을 저격하며 프랑스 수학까지 저격하려 했다면 이는 자폭이나 다름없었다. 소칼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무슨 수학말을 하는지 엄밀히 설명할 줄조차 모르는 학자들을 비판하고자 했을 뿐, 자신이 무슨 수학말을 하는지 (비록 그것이 자연의 절대적 원리라기보다는 인간의 사고에서 나온 장광설에 가까울지라도) 엄밀하게 가지런히 설명할 수 있는 수학자들에 대해서까지 저격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대결이 문과vs이과 프레임 대결로 번지며 양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소칼이 추구하는 객관적 진리를 설명하는 언어로서의 면모만 부각되기 시작했다.[33] 2014년에 다시 출간된 신판이다. 2000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판본도 있으니 참고할 것. 저자가 의도하는 핵심을 왜곡할 정도의 오역은 없으나, 한국 수학계 및 물리학계에서 정립된 번역어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채로 번역하다보니 관련 전공자가 읽으면 난감하게만 느껴질법한 오역이 적지 않다. 소칼이 위상수학에 과몰입한 라캉의 아무말을 비판하며 컴팩트집합을 위상공간론의 언어로 제대로 정의하는 대목을 비롯한 여러 문장에서 '소칼에게 비판받아도 싼' 문장이 속출했다. 아무래도 수학과 물리학을 학~석사 수준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책을 번역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34] 네이버 열린 연단에 관련 정보가 올라가 있으니 살펴보자. 원고 6페이지 부분에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35] 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 등 모든 학문을 통합하려는 '통섭'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하는 책이다. 앨런 소칼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36] 수학자 김민형 박사가 저술한 에세이 성격의 얇은 책. 지적 사기는 고사하고 소칼이라는 학자에 대해서조차 직접적으로 언급이 없으나, 프랑스-영국-소련 등의 수학자 커뮤니티에서 독자적으로 나타나는 학풍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비전공자의 눈높이로도 소칼이 수학자로서 어떠한 학문적 배경에서 성장한 학자인지, 그리고 소칼의 공격을 받은 프랑스의 학풍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