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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 튀르키예 |
1. 개요
불가리아와 튀르키예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에 독립했다.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뒤엔 튀르키예를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문화에서 튀르키예의 영향을 받았다.2. 역사적 관계
2.1. 근세
서기 15세기 불가리아 제2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정복, 멸망당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불가리아인들은 밀레트 제도의 영향으로 정교회를 믿을 수 있었지만, 종교적인 차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루스 차르국으로 피난간 불가리아인들도 많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일부 불가리아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해 포마크인이 되었다.오늘날 불가리아의 주요 도시 중 내륙에 위치한 소피아(도시)와 플로브디프는 오스만 제국 시대 중건된 도시이다. 반면 불가리아 해안 도시인 바르나와 부르가스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러시아 제국/소련의 지원/간섭을 받으면서 개발된 도시로 이는 열강이 불가리아 근현대사에 오스만 제국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2. 19세기
19세기에 러시아-튀르크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발칸 반도 방향으로 꾸준히 팽창하면고, 민족주의, 범슬라브주의 사상이 유럽 각지에서 유행하면서 불가리아 내에서도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2.3. 20세기
불가리아는 1908년부로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했다. 이후 불가리아 왕국에서는 불가리아 농민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수피 이슬람적 관습을 제거하고 불가리아어에서 오스만어 영향을 최대한 제거, 정제하는 정책을 폈다.[1] 오스만 제국 시절에 건설된 모스크 대부분은 정교회 성당으로 개조당했다.[2]20세기 초에는 발칸 전쟁이 일어났으며, 당시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이웃의 여러 나라들과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제2차 발칸 전쟁에서 세르비아, 그리스에게 영토를 빼앗긴 불가리아는 세르비아, 그리스에게 복수를 원했고, 오스만 제국 역시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를 견제할 동맹이 필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14년 8월 19일 오스만-불가리아 동맹이 체결되었고, 1915년 9월 6일 오스만-불가리아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은 불가리아 측에 일부 영토를 할양하였다. 이후 양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 측에 참전하였지만 패전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후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냉전 당시에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터키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당시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한 반면, 터키는 나토에 속했다. 1980년대에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불가리아화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반발한 불가리아내 터키계 주민들은 터키로 이주했다.[3]
2.4. 21세기
21세기에 불가리아는 유럽연합,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쪽에선 양국은 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불가리아내에도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는 튀르키예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튀르키예에서도 이슬람교를 믿는 포마크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의 대부분은 튀르키예의 유럽쪽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튀르키예와 경제 교류가 일부 존재한다.3. 대사관
불가리아는 앙카라에, 튀르키예는 소피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4. 문화 교류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다. 불가리아내에서도 튀르키예 드라마는 인기가 높은 편이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당시, 오스만어가 불가리아어에도 영향을 많이 줬다.오늘날 튀르키예에서는 범튀르크주의 관련하여 오늘날 불가리아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불가르족의 역사(볼가 불가르, 볼가-불가리아 칸국)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5. 관련 문서
- 불가리아/외교
- 튀르키예/외교 / 튀르키예-유럽 관계(유럽연합-튀르키예 관계)
- 흑해경제협력기구
- 불가리아/역사
- 튀르키예/역사
- 불가리아/경제
- 튀르키예/경제
- 불가리아인 / 튀르키예인
- 불가리아어 / 튀르키예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1]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완전히 없애는 데 성공한 건 아니다. 레콩키스타에 성공한 후 무어인 문화의 영향을 완전히 없애려 한 스페인조차 현재까지도 무어인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인데,(스페인의 전통무용 플라멩코와 요리 빠에야가 대표적인 사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불가리아나 그리스, 루마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같은 남동유럽의 발칸반도 국가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2] 그 중에는 본래 정교회 성당이었는데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불가리아 독립 이후 정교회 성당으로 환원된 케이스도 있었다.[3] 대표적인 인물이 역도선수 나임 술레이마노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