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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런던 연고의 토트넘, 아스날 vs 서런던 연고의 첼시의 더비 매치. 북동런던 더비와 마찬가지로 명칭이 길어 흔히 런던 더비로 부른다.1.1. 토트넘 홋스퍼 FC vs 첼시 FC
북서런던 더비 (North West London Derby) | |
토트넘 홋스퍼 FC Tottenham Hotspur F.C. | 첼시 FC Chelsea F.C. |
토트넘 홋스퍼 FC의 주장 손흥민과 첼시 FC의 주장 리스 제임스 |
종합 전적 (2024년 5월 3일 기준) | ||
토트넘 홋스퍼 FC Tottenham Hotspur FC | 무승부 | 첼시 FC Chelsea FC |
55 | 43 | 79 |
최근 5경기 전적 | |||
일시 | 장소 | 결과 | 대회 |
2022년 1월 23일 | 스탬퍼드 브리지 | 첼시 2 - 0 토트넘 | 프리미어 리그 |
2022년 8월 15일 | 스탬퍼드 브리지 | 첼시 2 - 2 토트넘 | 프리미어 리그 |
2023년 2월 26일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 토트넘 2 - 0 첼시 | 프리미어 리그 |
2023년 11월 7일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 토트넘 1 - 4 첼시 | 프리미어 리그 |
2024년 5월 3일 | 스탬퍼드 브리지 | 첼시 2 - 0 토트넘 | 프리미어 리그 |
두 팀은 런던을 연고지로 하여, 런던 팀들이 으레 그렇듯 사이가 매우 나쁘며 종종 충돌도 발생하였다.
2012년 한 설문#에 따르면 첼시 팬들은 아스날이나 맨유보다 토트넘을 더 주요 라이벌로 여긴다는 결과가 있다. 이 설문에서 토트넘 팬들은 아스날을 첫번째 라이벌로, 첼시를 두번째 라이벌로 여긴다고 하였다.[1]
2020년, 언론사 디 애슬레틱 설문조사에서는, 첼시팬들이 라이벌 구단으로 1위를 토트넘 (58.6%) 2위로 아스날 (26.7%)을 지목했다고 한다.
이들 사이의 악연은 첼시의 훌리건과 관계된 점도 있다. 첼시의 훌리건은 신나치 극단주의와 관련이 많았다. 이들 중 극성인 사람들은 히틀러를 찬양하며 인종청소를 선동하고 런던 내 유대인들에게 악감정을 가졌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유럽 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영국 금융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이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첼시의 훌리건은 유대인이 밀집한 지역을 연고로 하는 토트넘 역시 곱게 볼 리 없었으며, 이는 경기장 내까지 이어져 유대인을 비방하는 노래를 부르는 등 여러 악연을 쌓아갔다.
뿐만 아니라, 첼시는 지역 라이벌의 부재를 느끼고있는 상황이었는데. 토트넘은 아스날(북런던 더비), 리버풀은 에버튼(머지사이드 더비)과 맨유(노스웨스트 더비)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첼시는 인근 서런던 지역에 풀럼 FC와 QPR가 있었지만, 이들과 경쟁 다운 경쟁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 이에 첼시팬들이 같은 서런던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 구단이 북런던팀 토트넘이 되게되었다.
첼시는 진정으로 직접적인 지역 라이벌리가 없었어요. 풀럼이 바로 옆에 있긴 했는데, 예전에는 이번주에 풀럼경기보고. 다음주에는 첼시경기보고 그랬거든요. QPR은 첼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경쟁적인 라이벌은 아니죠. 첼시팬들은 불가피하게 다른 곳을 볼 수 밖에 없었어요.
1972~1996년까지 트로피 가뭄이 있어서 첼시가 오랫동안 우승경쟁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맨 처음 일정이 발표되면 모두가 첫 번째로 찾아봤던 경기가 무엇이었냐고요?
바로 토트넘과의 경기였어요.
첼시 서포터 데이빗 치드기 - 관련기사
1972~1996년까지 트로피 가뭄이 있어서 첼시가 오랫동안 우승경쟁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맨 처음 일정이 발표되면 모두가 첫 번째로 찾아봤던 경기가 무엇이었냐고요?
바로 토트넘과의 경기였어요.
첼시 서포터 데이빗 치드기 - 관련기사
1.1.1. 역사
팬들 사이에서는 첼시와 토트넘 사이에 한동안 증오가 존재해 왔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인수 이전, 첼시가 오일머니의 투자를 받고 신흥 강호로 떠오르기 전까지 1950~1990년대는 토트넘의 리그성적이 첼시보다 월등히 더 좋았었는데. 잉글랜드 축구계에 퍼진 인종차별 이슈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첼시 서포터즈 사이에 반유대주의 세력이 많이 침투했었고, 1980년대에는 유대인이었던 토트넘 공격수를 조롱하는 응원가가 유행했었다. 예를들어, 첼시 팬들은 토트넘 공격수 스티브 아치벌드에게 굴뚝의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챈트를 불렀었다.두 팀의 첫 만남은 1909년 12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첫 만남을 가졌으며, 경기는 첼시의 2:1 승리였다. 해당 시즌 두 팀은 강등 위기에 빠져 있었는데, 1910년 4월 30일 리그 최종전에서 만나면서 강등 결정전이 성사되었다.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치러진 두 팀의 두 번째 만남은 토트넘이 전 첼시 선수였던 퍼시 험프리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하면서, 토트넘은 잔류하고, 첼시는 강등되었다. 이후 1961년에는 첼시 유스 출신이었던 바비 스미스가 토트넘으로 이적해 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두 팀의 갈등 관계의 시작은 1966-67 FA컵 결승이라고 볼 수 있다. 결승 대진이 토트넘 vs 첼시였는데, 이는 FA컵 역사상 최초로 런던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맞붙는 대회가 되었다.[2] 100,000명 이상이 관전한 이 경기의 결과는 토트넘의 2:1 승리였다. 심지어 당시 토트넘에는 전 첼시 선수인 지미 그리브스와 테리 베너블스가 뛰면서 첼시의 침몰에 기여를 했다.
가장 끔찍한 경기 중 하나는 1975년 4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경기에서 토트넘이 첼시를 2부 리그로 강등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을 때였다. 경기 전 토트넘은 강등권이었고, 첼시는 승점 1점이 앞선 상태였다. 당시 경기가 얼마나 긴장감이 넘쳤냐면,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양팀 팬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싸움을 벌일 정도였다. 이로 인해 경기 시작 시간도 늦어졌다. 이후 경기를 진행했으며, 결과는 토트넘의 2:0 승리. 이후 첼시는 마지막 2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면서, 토트넘은 승점 1점 차이로 잔류하고, 첼시는 강등되었다.[3]
첼시가 1980년대 중반 다시 1부 리그에 올라섰을 무렵, 훌리건주의가 만연했고 첼시팬들은 반유대적 차별로 토트넘 팬들을 겨냥했다.
이렇게 1990년대 이전에는 토트넘이 우위였지만, 1990년대부터는 첼시가 토트넘과의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1997-98 시즌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첼시가 토트넘을 6:1으로 꺾으면서 점점 우위는 첼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첼시는 토트넘을 상대로 무패 행진을 질주했으며, 이는 2006년 11월 5일 토트넘이 첼시를 2:1로 꺾으면서 16년만에 마감되었다.
2007년 3월 11일, FA컵 8강에서 첼시와 토트넘이 만났으며, 토트넘이 1:3으로 이기고 있다가 3:3으로 비기며 극적으로 재경기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경기 다음 날, 첼시와 토트넘의 훌리건들은 런던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였으며, 그 결과 10명의 팬들이 칼에 찔리는 사고도 발생했다. 8강 재경기는 첼시의 2:1 승리로 끝났다. 이는 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 칼링컵 결승전에서 토트넘이 첼시를 2:1로 꺾으며 복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2011-12 시즌에는 각각 토트넘 홈에서 1:1, 첼시 홈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리그 순위는 토트넘이 4위, 첼시가 6위를 기록했는데 이 시즌에 첼시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첼시가 챔스 진출권을 따내고 토트넘은 4위를 하고도 챔스에 나가지 못하고 UEFA 유로파 리그로 가게 된다. 이로 인해 토트넘 팬들의 첼시에 대한 반감이 더 심해졌다.
2014-15 시즌 캐피탈원컵 결승에서 두 팀이 만나며, 경기는 첼시의 2:0 승리로 끝났다. 첼시 팬들은 경기 후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적인 헤드라인을 걸고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며 토트넘 팬들을 모욕하였다. 여담으로 이 우승을 기점으로 첼시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토트넘의 메이저 트로피 수를 역전하게 되었다.
2015-16 시즌 일어난 스탬포드 브릿지의 전투도 빼먹을 수 없다. 레스터 시티와 토트넘이 리그 우승 경쟁을 하던 시즌 막판 토트넘은 첼시 원정을 떠나 스탬포드 브릿지로 가게 되었다. 에덴 아자르는 "우리 팀에 토트넘의 우승을 바라는 선수는 단 한명도 없다. 토트넘은 힘든 경기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혈투를 사전에 예고했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토트넘의 리그 우승을 바라지 않는다"고 아예 대놓고 말했다. "명백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스퍼스(토트넘 애칭) 대신 레스터 시티가 우승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10위권 밖에서 맴돌고 있던 첼시가 토트넘 우승 저지를 위해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리며 2:2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리그 우승은 레스터 시티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 경기가 '전투'로 불리는 이유는 첼시와 토트넘, 양팀을 합해서 12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았고, 그 중 토트넘은 9장의 카드를 수집할 정도로 경기가 난장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4]
(2015-16시즌) 첼시 상황이 너무 안좋았다. 경기력이 처참한 수준이라 첼시팬들은 심지어 "빌어먹을 토트넘을 이겨야할텐데"라는 응원가를 부를 정도였다.[5]
첼시 서포터 글래빈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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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시즌 20R 토트넘은 첼시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게 된다. 첼시는 이 경기 전까지 13연승을 달리며, 2001-02 시즌 아스날이 세웠던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연승과 타이였던 상황이었으나, 토트넘이 이를 저지하게 된 것이다.#
2017-18 시즌에는 토트넘의 임시 홈 구장이었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했으며, 첼시가 2:1로 승리하며 토트넘의 19경기 리그 홈경기 무패 행진을 저지하였다.
2018-19 시즌 11월 PL 13 Round 토트넘 임시 홈구장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경기. 프리킥에서 에릭센이 크로스를 올리며 델레알리가 골문으로 돌려놓은 헤더 슛팅 전반 7분 골망을 갈랐다. 리드를 잡은 토트넘 해리케인이 전반 15분 박스밖 중거리 슛팅이 골로 연결되었고, 이 날 좋은 몸상태를 보여줬던 손흥민 후반전 53분 하프라인 사이드에서 패스를 받아 홀로 박스안까지 드리블한후에 완벽한 마무리로 첼시를 압도했다. 후반 84분 첼시 지루가 헤더를 골로 연결했지만 토트넘이 홈에서 3:1 으로 승리를 했다. 이 날 터진 손흥민 시즌 1호골은 18년 11월 PL 이달의 골로 선정되었다.
2019-20 시즌,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의 첫 서북런던 더비가 열렸으며, 경기는 윌리안의 멀티골에 힘입어 첼시의 2:0 승리로 끝났다. 경기 후 안토니오 뤼디거가 토트넘 팬들에게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말을 하며 당국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으나,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으며, 오히려 첼시 팬들이 손흥민에게 인종 차별을 한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2021-22 시즌 5R에서 만났다. 전반전에는 서로 팽팽하였지만 후반전 캉테가 투입 되고나서 내리 3골을 내주며 토트넘이 홈에서 0:3 대패를 당했다. 이로서 토트넘은 첼시 상대로 공식전 3경기 연속 무득점이다.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첼시에게 0승 1무 3패 1득점 7실점으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첼시는 여전히 토트넘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1-22 시즌 EFL컵 4강에서 만나며 다시 맞붙게 되었다. 1차전 첼시 홈에서 첼시가 토트넘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2:0 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차전 토트넘 홈에서는 뤼디거의 결승골로 첼시가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합산 스코어 3:0으로 결승에 진출하였다. 리그 23라운드에서는 토트넘이 또다시 첼시에게 0:2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이로서 토트넘은 첼시 경기 공식전 최근 11경기동안 2무 9패로 승리가 없으며, 21-22시즌에만 무득점 4연패를 당했다.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는 첼시가 4승 1무 8득점 1실점으로 단 한번도 패배를 내준적이 없다.
22-23 시즌 프리미어 리그 2라운드에서 만난 두 팀은 치열한 승부 끝에 2:2 무승부를 거두었는데, 경기 내내 투헬과 콘테, 카이 하베르츠와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신경전을 벌이며 몸싸움까지 벌이는 등 두 팀이 왜 앙숙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두 감독은 경기 종료 이후까지 신경전을 벌이다가 퇴장 당했다.[6]
2023-24 시즌 포스테코글루 감독 아래에서 창단 이래 최고의 승점 페이스를 보여주던 토트넘과 연이은 감독 교체, 선수 영입 실패로 최악의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는 첼시의 맞대결이라 이번에야말로 토트넘이 첼시를 잡을거라 예상한 전문가들과 축구팬들이었지만, 그 예상을 비웃듯이 첼시가 무려 토트넘의 홈에서 1:4의 스코어로 아예 박살을 내버렸다.[7] 토트넘에서 주축인 로메로와 우도기가 무리한 반칙으로 인해 각각 전반, 후반에 퇴장당하였고, 판더펜과 매디슨이 부상으로 교체당하는 악재까지 겹친 끝에 첼시가 선제골을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4골을 연달아 꽂아버리며 승리를 거뒀다[8]. 후반기에도 첼시가 전반적으로 토트넘을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더블을 달성했다.
이렇듯, PL 출범 이후 리그 경기 전적에서 첼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토트넘이 첼시를 상대로 우세 승(1승 1무 이상)을 거둔 시즌은 2시즌(2008-09, 2022-23)뿐이며[9], 토트넘이 첼시를 상대로 더블을 기록한 시즌은 없다. 프리미어리그가 30시즌을 돌파 했음을 감안하면 매우 처참한 성적이다. 첼시가 토트넘을 상대로 우세승을 거둔 시즌은 19시즌 이며, 이중 더블을 기록한 시즌은 10시즌(1996-97, 1997-98,1999-00, 2000-01, 2001-02, 2003-04, 2005-06, 2019-20, 2021-22, 2023-24)이다.
1.1.2. 선수 이적
첼시 보드진과 토트넘 보드진은 둘다 극도로 강경한 협상가들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첼시 인수 이후 양 구단 사이에 라이벌리 의식이 더 고조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첼시와 토트넘의 보드진들 간의 경쟁이 경기장에서처럼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당시의 시작은 토트넘이 첼시가 스포츠 디렉터 프랭크 아르네센에게 불법적인 접근을 했다고 주장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첼시를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던 사건.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첼시 인수 이후, 당시 토트넘의 고위 임원들은 새로운 첼시의 운영과는 공통점이 없다고 느꼈다. 아스날이 경기장 위에서의 치열한 라이벌인 반면, 경기장 밖에서는 두 구단이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누렸다는 느낌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첼시는 달랐다. 아브라모비치는 첼시 인수 2개월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CEO였던 피터 케년를 고용함으로써 엄청난 의도를 표명했으며, 이적시장에서는 재정적인 힘으로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토트넘 자체는 1년 전에 구단 운영 방식을 재구성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은 프랭크 아르네센을 스포츠 디렉터로 고용하여 토트넘 구단의 이적 전략을 감독하고 감독이 바뀌더라도 일관된 방향성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할에서의 전도유망한 첫 해 이후, 첼시는 스카우트와 유소년 개발 책임자로 프랭크 아르네센을 영입하기 위해 접근했다. 겉보기에는 토트넘에서의 역할보다 더 작아보이지만 임금은 훨씬 더 많았다.
2005년 6월, 이 소식이 전해지고 아르네센이 프랑스 남부에서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만나는 사진이 나오자 첼시와 토트넘 두 구단 간 사이에 끓어오르는 긴장감이 급물살을 탔다. 토트넘 회장 다니엘 레비는 화가 났고 토트넘은 첼시가 구단을 거치지 않고 아르네센에 직접 접근한 혐의로 프리미어리그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 첼시는 혐의를 부인하고 "첼시 FC는 2주 전 프랭크 아르네센과 대화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 위해 토트넘 홋스퍼에 공식 접근했습니다. 첼시는 지난 2주 동안 토트넘과 이 주제에 대해 직접 논의해 왔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구단과 무리뉴 감독이 아스날 레프트백 애슐리 콜에게 불법적으로 접근한 혐의로 50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은 지 불과 며칠 만에 발생했기 때문에 고발은 당시 적절했다. 또한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보드진보다는 선수들만 관련되었지만) 승점 3점 감점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두 구단 간의 격렬한 협상이 뒤따랐으며, 다니엘 레비는 적절한 보상에 대해 논의하면서 결국 물러났다. 결국 첼시는 토트넘에게 약 800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고, 아르네센은 이적 시장이 끝날 때까지 정원 가꾸기 일을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첼시와 토트넘 사이 긴장감은 계속해서 끓어올랐다. 2005년 9월 아르네센을 대신하기 위해 데려온 데미안 코몰리는 이에 대해 "제가 토트넘 있을 때 구단 간 선수를 이적시킬 수 없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특히 우리가 판매자인 상황에서 말이죠."라고 언급. 이런 긴장 상태는 두 팀이 마지막으로 이적료가 오고간 선수 거래를 했을 때인 2003년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이다.
- 2003년 첼시에 입단한 또 다른 백업 골키퍼 닐 설리번은 양 구단의 이적료가 오고 간 마지막 거래였다.
- 2006년, 첼시 스트라이커 칼튼 콜은 토트넘에 입단할 뻔했지만, 결국 로만 구단주에 의해 웨스트햄으로 입단하게된다.
칼튼 콜은 첼시가 막판에 계약을 파기하기 전에 구단의 훈련장에서 토트넘 유니폼을 입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토트넘에 입단할 뻔 했죠. 가서 메디컬도 받고 이적이 거의 완료됐죠."라고 콜이 말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그 사실을 알고는 '돌아와야 할 것 같아. 거기 합류할 수 없어.' 라고 말했어요. 로만은 '토트넘에 갈 수 없어. 나는 그쪽과 거래하지 않아.'라고 말했죠." 콜은 결국 웨스트햄에 입단했고, 같은 여름 첼시는 데미안 더프를 토트넘 대신 뉴캐슬에 매각했다.
- 2009년, 백업 골키퍼 카를로 쿠디치니가 토트넘으로 이적하고자했으나 첼시가 풀어주지않아 결국 FA로 토트넘에 합류해야했다.[10]
- 2011년, 첼시는 토트넘의 루카 모드리치 영입에 실패했다.
데미안 코몰리는 "이미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니엘 레비가 첼시에게 선수를 팔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루카 모드리치에서 시작됐어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게 모든 걸 시작하게 했을 거예요."
첼시는 2008년 토트넘에 입단하기 전부터 모드리치에 관심을 가져왔다. 모드리치를 쫓은 사람은 아르네센이었지만 디나모 자그레브는 팔고 싶지 않았다. 토트넘이 2010-11 시즌 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가운데 첼시는 자신들의 순간이라고 감지하고 모드리치 영입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모드리치는 에이전트인 블라도 레믹과 다보르 커코비치에 의해 첼시가 모드리치의 영입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는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카를로 안첼로티를 막 대체했고, 모드리치는 그 후 첼시로의 이적에 "열려 있었다"고 인정했다.
모드리치의 2020년 자서전에 따르면 아브라모비치는 모드리치를 영입하고 싶다는 뜻을 바로 밝혔다. 모드리치는 대화가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썼다. "로만이 '토트넘이 이적에 저항할 것 같아? 싸움을 걸까?'라고 물었다. '협상이 어려울 것 같아요.' 나는 구단 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모드리치는 떠나고 싶은 욕망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레비는 모드리치를 놓아줄 생각이 없으며 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 신문인 스포츠케 노보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레비와 "신사 합의"를 했었다고 밝혔다. "더 큰 구단이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고려하고 모든 관련자들을 위한 최선의 해결책에 동의하는 제안이었어요. 이제 레비는 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제가 토트넘을 떠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죠." 한편 토트넘은 신사 합의의 존재를 부인하며 모드리치가 클럽과 6년 계약을 맺었을 때 왜 합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모드리치는 프리시즌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레비를 만나러 갔는데, 레비는 모드리치를 질책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매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토트넘 감독이었던 해리 레드냅은 모드리치를 달래려고 시도했고 남아프리카 프리시즌 투어에 주장으로 임명했다. 모드리치는 결국 공식적인 이적 요청을 제출했지만 그때까지도 토트넘 보드진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첼시가 이적 시장이 끝나기 전에 더 나은 제안을 가지고 돌아왔어도 레비는 모드리치를 첼시에 매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11/12 시즌을 앞두고 첼시는 22m, 27m을 비드했고 이를 다니엘 레비가 거절, 이적 시장 막판에 40m을 제안했으나 또 레비에게 거절당했다. 그 후 모드리치가 또 이적요청을 하자 12/13 시즌, 다니엘 레비는 모드리치를 33m에 레알로 팔아넘겨 버린다.
이렇듯 토트넘은 첼시에 선수를 파느니 더 싼 값에 다른 클럽에 팔겠다는 것으로 루카 모드리치 사건은 긴장감을 고조시킨 두 구단 사이의 일에있어 중요한 순간이었고, 토트넘이 다른 프리미어리그 구단에 대한 매각에 저항하려는 진정한 라이벌 의도로 부상한 징조였다.
- 2년 후 첼시가 토트넘행 메디컬까지 마친 윌리안을 코 앞에서 하이재킹했을 때 토트넘은 강렬하게 분노했다.
토트넘이 계약을 마무리 짓기 직전 윌리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당시 리버풀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기에 충분히 리버풀의 제안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윌리안이었지만, 에이전트 입에서 나온 구단은 리버풀이 아니었다.
윌리안 에이전트는 "첼시가 방금 나한테 전화를 했다. 너를 원한다"라며 윌리안의 마음을 흔들었다. 윌리안에게 첼시는 꿈의 구단이었다. 윌리안은 당시 토트넘 훈련장에 도착해 계약을 마무리하고 메디컬 테스트까지 예약해 둔 상태였지만, 이미 마음은 에이전트의 한 마디 이후 첼시로 날아가 버렸다.
"좋아, 첼시로 가고 싶어"라는 윌리안의 한 마디에 토트넘은 모든 것이 백지화가 될 위기를 맞이했다. 그렇기에 윌리안을 일단 붙잡았다. 무려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토트넘 훈련장에 붙잡힌 윌리안은 온갖 협박과 회유에 직면했다. 결정을 다시 생각해달라는 토트넘 측 만류를 맞닥뜨렸다.
당시 토트넘 감독이었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는 "널 국제축구연맹(FIFA)에 신고할 거야! 영국 팬들이 모두 야유할 거야"라며 윌리안을 압박했지만, 윌리안은 첼시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8시간의 회유를 이겨내고 훈련장 탈출에 성공한 윌리안은 곧장 첼시로 달려가 자신의 계약서에 서명하며 파란 유니폼을 손에 넣었다.
토트넘 보드진은 윌리안의 영입이 성사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높은 평가를 받은 윌리안은 토트넘 행 메디컬을 마쳤고 약 3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합류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첼시 보드진은 마지막 순간에 하이재킹을 시도함으로써 스탬포드 브릿지로 데려오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윌리안 영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당시 윌리안의 소속팀의 구단주였던 러시아인 술리만 케리모프에게 개인적인 전화를 걸었다.
토트넘 사무실에서 윌리안, 다니엘 레비 그리고 내가 같이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윌리안은 문밖으로 나가고 그날 밤 첼시와 계약했다.
당시 토트넘 감독이었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 #
다니엘 레비와 토트넘은 극대노했고, 감정이 고조되면서 토트넘의 일부 사람들은 첼시가 토트넘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윌리안 이적 건을 움직였다고 느꼈다. 그리고 급해진 토트넘 보드진이 대안으로 이적시장에 떨이급으로 싸게 나온 선수를 데려온게 크리스티안 에릭센이다. 당시 토트넘 감독이었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 #
▲ 첼시팬들의 윌리안 응원가 |
The sxxt from SPURS, They bought his flight. But WILL-I-AN, he saw the light! He got the call from Abramovich..And off he went to Stamford bridge! He hates Tottenham, He hates Tottenham. x2. - -
첼시 팬들은 "토트넘의 병신은 그의 비행기를 샀지만 윌리안은 빛을 봤네. 윌리안은 아브라모비치에게서 전화를 받고 스탬포드 브리지로 갔지. 토트넘을 싫어하고 토트넘을 싫어하며 토트넘을 싫어해."라고 노래했다.루카 모드리치와 윌리안 사건의 여파로, 감정의 깊이는 첼시와 토트넘 양 구단 사이에 비공식적인 이적 금지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깊어졌다. 한소식통은 "선수가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첼시에서 기회가 없다고 해도 첼시는 '음, 토트넘에 팔 수는 없지.'라고 말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 2017년, 이번엔 토트넘이 첼시 타켓이었던 페르난도 요렌테를 하이재킹했다.
두 구단은 2020년 9월 토트넘이 첼시 센터백 안토니오 뤼디거의 영입을 노렸을 때 더 직접적으로 충돌했다. 그 때 첼시 보드진은 뤼디거의 토트넘 이적을 막았고, 뤼디거가 파리 생제르맹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막았다. 토트넘의 영입팀 전 임원 중 한 명은 당시 "첼시가 토트넘에 대해 느끼는 방식은... 서로 팀을 도울 선수를 임대해주고 싶어할 리가 없죠."라고 말했다.
전 정말 거의 이적할 뻔 했습니다. 이번 시즌이 마무리되면 유로를 나가야했기 때문에, 국가대표팀 선발을 위해선 경기감각을 끌여올릴 다른 팀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토트넘과 조세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연락도 직접 받았었죠. 뭐, 결국 이런 딜들은 모두 쫑나고 말았죠. 다른 옵션들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딜을 마무리하는데 시간이 부족했어요.
- 안토니오 뤼디거
- 안토니오 뤼디거
24-25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 시장에서는 두 팀 모두 울버햄튼의 페드로 네투에게 관심을 보였고 두 팀 모두 울버햄튼과 네투 측에 오퍼를 넣었지만 네투는 첼시로 이적했다.
1.1.2.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 지미 그리브스[11]: 첼시 유스팀 (1955~1957) - 첼시 FC (1957~1961) - 토트넘 홋스퍼 FC (1961~1970)
- 콜린 리: 토트넘 홋스퍼 FC (1977~1980) - 첼시 FC (1980~1987)
- 테리 베너블스: 첼시 FC (1960~1966) - 토트넘 홋스퍼 FC (1966~1969)
- 그레이엄 로버츠: 토트넘 홋스퍼 FC (1980~1986) - 첼시 FC (1988~1990)
- 글렌 호들: 토트넘 홋스퍼 FC (1975~1987) - 첼시 FC (1993~1995)
- 바비 스미스: 첼시 FC (1950~1955) - 토트넘 홋스퍼 FC (1955~1964)
- 미키 해저드: 토트넘 홋스퍼 FC (1978~1985) - 첼시 FC (1985~1990)
- 거스 포옛: 첼시 FC (1997~2001) - 토트넘 홋스퍼 FC (2001~2004)
- 스콧 파커: 첼시 FC (2004~2005) - 토트넘 홋스퍼 FC (2011~2013)
- 아이두르 구드욘센: 첼시 FC (2000~2006) - 토트넘 홋스퍼 FC (2010)
- 카를로 쿠디치니: 첼시 FC (2000~2009) - 토트넘 홋스퍼 FC (2009~2012)
- 윌리엄 갈라스[12]: 첼시 FC (2001~2006) - 토트넘 홋스퍼 FC (2010~2013)
- 티모 베르너: 첼시 FC (2020~2022) - 토트넘 홋스퍼 FC (2024~)
- 도미닉 솔란케: 첼시 FC (2014~2017)- 토트넘 홋스퍼 FC (2024~)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두팀에서 모두 뛴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도 다이렉트 이적도 얼마 없고 구드욘센과 베르너는 임대로 뛰었다. 아스날과 첼시에서 모두 뛴 선수들은 꽤 많은 것과는 대조적.[13]
양 팀 간 다이렉트 이적은 2009년 카를로 쿠디치니를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다.
1.1.3. 여담
- 토트넘팬이 토트넘팬을 첼시팬인줄 알고 두들겨팼던 사건: 2016-17 FA컵 4강, 토트넘 vs 첼시 경기 이후 토트넘 팬이었던 마이클 볼러가 첼시 팬인줄 오해당해 토트넘 팬에게 공격당했다.
- 커트 주마가 첼시에서 토트넘으로 갈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토트넘과 첼시에서 모두 선수생활을 한적이 있는 그래햄 로버츠는 "절대 이루어 지지 않을것이다. 레비랑 로만은 서로 안좋아하기 때문.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일은 없을것" 라고 말했다.
- 토트넘은 주요 경기에서 첼시한테 물 먹은 적이 많다. (14/15 리그컵 결승 패배, 15/16 후반기 첼시전 무승부로 레스터 리그우승 확정, 16/17 fa컵 4강 패배 + 리그 준우승, 18/19 리그컵 4강 승부차기 패, 21/22 리그컵 4강 패배)
- 토트넘의 마지막 트로피인 2008년 리그컵은 첼시를 이기고 얻은 것이었다.[14]
- 2020-21 시즌 토트넘 홋스퍼 FC vs 아스톤 빌라 FC전: 당시 아스톤 빌라 코치로 활동하고있던 존 테리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를 방문하자, 토트넘팬들은 존 테리를 향해 토트넘 센터백 레들리 킹이 존 테리보다 낫다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를 들은 존 테리는 토트넘팬들 관중석을 향해 트로피를 드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 존 테리는 "나는 그냥 토트넘이 싫다. 그들 또한 나를 싫어할것이다."라며 "내 마지막 라커룸에서의 연설의 50%가 토트넘에 관한것이었고 내 인생에서 절대 그들이 아무것도 우승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해줬다"고 밝힌바 있다.Naturally, I’m always going to hate Tottenham. I’d like to think they will always hate me. In the dressing room of my last game for #Chelsea, I’d say 50% of that speech to the players was about them & never letting them in my life win anything. - 존 테리 -
- 디디에 드록바는 세르주 오리에가 토트넘에 이적했을 때, 잘못된 클럽에 갔다고 얘기했었다. # 월드컵에서 같이 뛰었던 동료이자 오리에의 선배인 디디에 조코라가 토트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조 콜"(첼시와 토트넘) 팬들도 서로를 싫어하지. 그 더비의 역사는 2016년부터라 볼수있어": 최근들어 팀들간 라이벌 의식이 불붙은 것으로, 2015-2016시즌 이후부터 심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첼시가 토트넘의 우승 도전을 저지하고 레스터의 우승이 확정된 경기는 '스탬포드 브릿지의 전투'로 불리기도 했다.
- 델레 알리 "토트넘 선수들, 아스날보다 첼시를 더 싫어해": "아마 팬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대답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최근 리그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경기들을 고려해보면, 토트넘 선수들은 아스날보다 첼시와의 라이벌리가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첼시가 토트넘에게 해온 일들이 있으니까요. 토트넘 팬들에게는 다를 겁니다. 북런던 더비는 엄청나니까요. 하지만 토트넘선수들 입장에서 저는 첼시가 더 큰 라이벌이라고 봅니다."
- 2020년, 2월경 첼시 vs 토트넘전에서 55분 쯤 에릭 라멜라에게 웜업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터치라인으로 뛰어갔고 에릭 라멜라가 도착해서 한 첫번째 일이 첼시 벤치에서 15 야드 정도 떨어진 쪽의 동쪽 하부 스탠드에 앉은 첼시 팬들에게 침을 뱉는 일이었다.
- 첼시와 토트넘 양 구단 사이에 선수 이적 거래에가 일어나지않는 냉량한 보드진 관계와는 별개로 글렌 호들(2001~2003), 안드레 빌라스보아스(2012-2013), 무리뉴(2019~2021), 안토니오 콘테(2021~2023), 마우리시오 포체티노[15](2023~2024) 등 양팀을 모두 지휘했던 감독들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첼시에서 감독 종료 후 토트넘을 지휘한 감독들은 모두 부진 후 경질당했다.[16] 그리고 포체티노 또한 첼시에서는 시즌을 6위로 마감하긴 했으나,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 구단 내부 관계자와의 트러블로 인해 단 한 시즌만 마치고 경질 형식으로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났다.
- 안토니오 콘테가 첼시감독시절 경질이 사실상 확정된 경기가 2017-2018시즌 3:1로 패배했던 32R 토트넘 전이었다. 첼시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28년만에 토트넘한테 패한데다가, 챔스 진출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경질이 확정되었다.[17]
1.2. 아스날 FC vs 첼시 FC
북서런던 더비 (North West London Derby) | |
아스날 FC Arsenal F.C. | 첼시 FC Chelsea F.C. |
첼시 FC의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와 아스날 FC의 레전드 티에리 앙리 |
종합 전적 (2024년 4월 23일 기준) | ||
아스날 FC Arsenal FC | 무승부 | 첼시 FC Chelsea FC |
83 | 60 | 66 |
비교적 최근 생긴 라이벌리로, 첫 경기는 1907년에 있었지만 00년대 초반 로만의 첼시 인수 이후 오일머니 석유 자본을 기반으로 첼시가 신흥 강호로 떠오르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두 팀 모두 아르센 벵거와 조세 무리뉴라는 명장을 내세워 2000년대 프리미어 리그의 부흥기를 이끌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아스날은 2000년대 전반기에, 첼시는 후반기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며 경쟁력있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왔다.
무리뉴의 첼시 2기가 끝난 2015년 이후에 축구를 보기 시작한 국내외[18] 팬들에게는 노스웨스트 더비나 맨체스터 더비, 북런던 더비 등 프리미어 리그의 간판 라이벌리에 비해 비교적 온건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벵거-무리뉴 시절을 거쳐온 양 팀의 팬들은 두 팀이 서로 얽힌 역사로 인해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랄게 없는 더비이기도 하다.[19]
다만 첼시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엄청난 자본력으로 우승권이 된 시기와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 후 긴축으로 약화된 시기가 겹쳐 직접적인 우승경쟁을 한 적은 00년대 중반을 제외하곤 거의 없고, 지역 라이벌 팀 치고는 상호간의 선수 교류도 적지 않았으며 두 팀 모두 토트넘에 대한 악감정이 더 크다는 점 등으로 인해 20년대에 들어서는 big 6 강팀 간의 빅매치로 받아들여지는 성향이 비교적 강해졌다.
그럼에도 두 팀의 대결은 쌓아져온 스토리로 인해 매번 뜨거운 경기를 보이며, 유로파 리그 결승, FA컵 결승과 같이 중요한 길목에서 마주치는 등 여전히 으르렁대는 사이임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두 팀의 선수 거래는 은근 자주 이뤄지는 것과는 별개로 좋다고 하기에도, 마냥 나쁘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애매한 관계이다. 대체로 두 팀의 직접적인 거래에서는 첼시가 웃고 아스날이 손해를 보는 구도가 자주 나오는 편이지만, 제3자가 끼어있는 상황에서는 반대의 경우도 종종 나온다.
- 아스날과 애슐리 콜의 재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첼시가 난입해 큰 돈을 지르며 데려가 아스날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20] 대신 첼시에서 실력 있지만 풀백에서는 뛰기 싫어하던 윌리엄 갈라스를 교환받았다. 이 거래로 인해 콜은 첼시의 레전드로 남았으나 갈라스는 준수한 활약과는 별개로 라커룸 불화설의 중심이 되며 팀 내 불화를 일으키는 선수로 찍혔고, 결국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게 됐다.
- 티보 쿠르투아에 밀려 갈 곳을 잃은 페트르 체흐를 골키퍼 문제가 있던 아스날이 영입해 잘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쿠르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첼시 팬들에게 “이럴거면 체흐를 남겼지”소리가 나오게 만들었고, 체흐는 아스날에서 줄곧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정작 중요한 벵거의 1000번째 경기, 유로파 결승에서[21] 패배에 일조하며 아스날 팬들에게 안좋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22]
- 아스날의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영입으로 인해 오바메양-라카제트에 밀려 3순위가 될 올리비에 지루를 당시 백업 원톱이 필요하던 첼시가 데려갔다. 영입 당시 연계에는 특화됐지만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며 의심을 받던 지루는 fa컵, 유로파, 챔스 우승의 주역이 되며 훌륭한 영입으로 평가되게 만들었다.
- 아스날은 코시엘니의 통수 이적으로 부족해진 센터백 자원을 영입하기 위해 첼시로부터 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했다. 비록 경기 내에서는 호러쇼를 펼치기도 했으나 루이스가 아스날에 속해있던 기간이 아스날 최악의 암흑기임을 고려하면 그가 어린 선수들에게 보여준 멘탈리티와 리더십만으로도 훌륭한 영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 첼시에서 재계약이 지지부진했던 윌리안을 아스날이 데려가기도 했는데, 팬들로부터 해당 시즌 아스날 최악의 선수로 꼽히며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며 끝났다.
- 첼시의 엔소 페르난데스 영입으로 벤치로 밀려난 조르지뉴를 파티의 백업으로 아스날이 영입했는데, 또 속는 것 아니냐는 아스날 팬들의 큰 불안감과는 달리 무난한 백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첼시의 선수단 대규모 개편 과정에서 아스날이 하베르츠를 영입하기도 했다. 레버쿠젠 시절 번뜩이던 모습이 사라진 하베르츠를 아스날이 천억이나 주고 사왔어서 아스날 팬들 사이에서의 불안감이 상당히 컸었다. 이적 초기에는 볼 터치 횟수도 적은데 그 터치들마저 영양가 없는 백패스나 흐름을 끊는 것으로 이어져 아스날 팬들로 하여금 “또 속았다”라는 반응이 나오게 만들었지만 2023-24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는 하베르츠가 적응을 마치고 팀에 굉장히 잘 녹아들고 기여도 많이하여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23]
- 직접적인 교류는 아니지만 아스날->바르샤->첼시 루트를 탄 프티와 파브레가스, 오바메양의 사례도 있다. 프티와 파브레가스는 첼시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가 되어 아스날 팬들의 아쉬움을 샀지만 오바메양은 크게 떨어진 폼을 보여주며 첼시 팬들의 복장을 터트렸다.
- 두 팀 간의 선수 교류는 아니지만 무드릭과 카이세도 역시 두 팀이 이적시장에서 나름 얽힌 사례 중 하나이다. 무드릭 사가의 경우 본래 아스날행이 매우 유력했던 무드릭을 첼시가 하이재킹하고, 아스날은 대신 트로사르를 영입한 사가다. 무드릭이 천억이 넘는 몸값임에도 달리기 원툴이라는 비판을 받는 동안 트로사르는 서브로 두기에 아까울 정도로 활약하며 아스날 팬들로부터 “하이재킹 당해서 다행이다”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이후 무드릭은 적어도 워크에식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데다가 본인 스스로 미친듯이 노력을 하면서 그럭저럭 팀에 정착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부분. 카이세도 사가의 경우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날 행이 매우 유력했고, 해당 이적시장에서 이적에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아스날행에 가능성을 보였지만 아스날은 데클란 라이스 링크가 본격적으로 진해지자 미련없이 카이세도 사가에서 발을 뺐다.[24] 그리고 카이세도를 이 당시의 여름 이적시장에서 첼시가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대 이적료로 데려가고, 아스날은 그 시점에 카이세도보다 몇 주 빠르게 웨스트햄과의 길고 긴 줄다리기 끝에 데클란 라이스 영입전을 마무리한 사가다. 둘 다 천억이 훌쩍 넘는 몸값이지만 라이스가 적응기도 없이 아스날의 핵심이 되는 동안 카이세도는 약간은 헤메었지만 점차 팀에 적응을 하자 경기력이 많이 올라오며 첼시에 정착하는 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2.1. 선수 이적
1.2.1.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 올리비에 지루
- 페트르 체흐
- 세스크 파브레가스
-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 애슐리 콜
- 요시 베나윤
- 니콜라 아넬카
- 라사나 디아라
- 엠마누엘 프티
- 다비드 루이스
- 윌리안
- 윌리엄 갈라스: 2001년 7월 첼시가 영입, 2006년 8월 아스날로 이적, 이후 토트넘에 이적. 서북런던 3팀에서 모두 뛴 유일한 선수이다.
- 조르지뉴
- 카이 하베르츠
- 라힘 스털링
1.2.2. 여담
- 프랭크 램파드는 첼시 감독 시기인 2020-21 시즌 12월 27일아스날전을 3:1로 패해 경질설에 휘말렸고, 이후 1월 25일에 결국 경질된다. 그렇게 토마스 투헬이 첼시 감독에 부임하게 되고...
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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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즈음 모드리치의 첼시 이적을 레비가 진상을 부려가며 직접 막은 일 때문에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토트넘에 대한 감정이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처박히게 되었기 때문이다.[2] 흔히 Cockney Cup Final이라고 불렸다. 해석하면 런던컵 결승.[3] 1974-75 퍼스트 디비전 순위[4] 아자르가 동점골을 넣은 뒤 경기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는데 토트넘 선수들이 첼시 선수들에게 비신사적인 태클을 수차례 가하면서 13분동안 옐로카드만 4장을 받았다.[5] 전반에 토트넘이 2골을 넣었지만, 후반에 첼시가 2골을 만회하며 무승부를 거뒀다.[6] 참고로 이 때 주심이 앤서니 테일러였으며 토트넘의 거친 파울들을 불지 않거나 로메로가 쿠쿠렐라의 머리를 잡아당겨도 그대로 진행하는 등 수많은 오심 논란들이 많았다. 선수들 내에서도 하베르츠가 이마를 맞대거나 하는 등 신경전이 치열했다.[7] 참고로 이때까지의 토트넘은 첼시를 만나기 전까지 개막 10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며 1위를 유지중이었다. 당시 첼시의 순위는 10위였다.[8] 특히 잭슨은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9] 이마저도 2022-23 시즌은 토트넘에게 매우 유리한 오심들이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10] 쿠디치니는 토트넘으로 자유이적 했지만 첼시에서 오래 있었고 팀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해 팬들과 팀에게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11] 첼시와 토트넘 두 팀에서 모두 레전드로 인정받는 유일한 사람이다.[12] 아스날에서도 활약했다.[13] 다이렉트 이적만 봐도 페트르 체흐, 윌리안, 다비드 루이스, 올리비에 지루, 조르지뉴, 카이 하베르츠 등 굉장히 많다.[14] 아우디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우디컵은 공식 대회가 아니다.[15] 앞에 나열된 감독들은 모두 첼시-토트넘 순으로 양 팀의 감독직을 맡았지만 포체티노는 반대로 토트넘-첼시 순으로 감독을 맡았다.[16] 게다가 무리뉴는 토트넘을 나온 지금 시점까지도, 토트넘과 구단주인 레비 회장을 엄청나게 깐다. 콘테 감독은 첼시에서 뛰어난 성적을 냈지만 현재 팬들에게 민심은 매우 좋지 않으며, 보아스와 호들은 아예 망해버렸다.[17] 그리고 그 콘테는 돌고 돌아 토트넘으로 오게 됐고 토트넘을 살려내나 싶더니 환장할 경기결과로 콘테의 6년 복수가 성공하였다.[18] 특히 런던의 지역 라이벌리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기는 어려운 국내[19] 본격적인 악감정이 시작된 애슐리 콜 이적사가, 벵거와 무리뉴의 악연, 디에고 코스타의 거친 플레이로 인한 감정싸움 등[20] 이 일로 인해 애슐리 콜은 아스날 팬들에게 Cashley Cole 소리를 들으며 금지어 중 하나가 됐으며, 아스날 sns에 애슐리 콜 관련 포스트가 올라올때마다 배신자를 뜻하는 뱀 이모지로 댓글창이 도배가 된다.[21]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첼시전이었다.[22] 이후 체흐는 다시 첼시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전향해서 골텐더로 활동하고 있다.[23] 원래 첼시 시절에도 하베르츠는 유독 후반기에 잘하는 선수였다. 동시에 첼시는 하베르츠를 팔고 콜 파머를 사와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쳐 첼시와 아스날 양쪽 모두 윈윈 거래가 성사되었다. 당시 이 거래는 첼시와 아스날의 니즈가 모두 맞아서 성사된 거래에 가까운데, 첼시는 계약이 2년 남은 하베르츠의 고주급을 털어내고 싶어했고 아스날은 이 고주급을 끌어안아서라도 그라니트 자카의 대체자 수급을 원했기 때문. 정작 하베르츠는 아스날에서도 돌고 돌아 다시 폴스 나인으로 자리잡아서 활약하고 있다.[24] 당시 카이세도 이적 사가에서 나온 루머에 의하면 업계 관계자들 다수는 카이세도가 이미 첼시와 무언가의 관계를 맺었다고 판단해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카이세도 사가에 끼어들려는 움직임을 다수의 구단이 포기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이 당시부터 사전에 개인합의를 맺었던 것이 확인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조차도 사실상 첼시행을 기정 사실로 본 것. 이후 리버풀 FC가 못 먹는 감이나 찔러보자는 생각으로 카이세도의 하이재킹을 시도했으나, 카이세도가 직접 첼시행을 원한다며 리버풀 FC의 구단 관계자들에게 정중하게 개인합의 거절 의사를 밝히고 그대로 첼시행을 확정지었다.[25] 문맥상 윌리안이 아스날에서 삽질 끝에 쫓겨난 것을 조롱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윌리안과 달리 체흐와 루이스는 아스날에서 나름 활약했다.[26] 지금은 꽤 사이가 좋지만 드록바가 뛰던 시기는 벵거가 무패우승 이후 하락하고 무리뉴가 벵거에 극강의 모습을 보이며 차츰 맨유의 새 대항마로 떠올라 라이벌리가 훨씬 치열했기 때문에 이런 도발적인 멘트를 날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