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08:27:31

M23 더비

파일:brighton-crystal-palace_.jpg
브라이튼의 공격수 미토마 카오루
크리스탈 팰리스의 공격수 마이클 올리스
파일: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로고.svg
파일:크리스탈 팰리스 FC 로고.svg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Brighton and Hove Albion F. C.
[[크리스탈 팰리스 FC|크리스탈 팰리스 FC
Crystal Palace F. C.
]]
M23 더비 (M23 Derby)
종합전적[1]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Brighton and Hove Albion FC
무승부 크리스탈
팰리스 FC
Crystal Palace FC
51 40 51
최근 5경기 전적[2]
일시 장소 결과 대회
2022년 1월 15일 아멕스 스타디움 브라이튼 1 - 1 크리스탈 팰리스 프리미어 리그
2023년 2월 12일 셀허스트 파크 크리스탈 팰리스 1 - 1 브라이튼 프리미어 리그
2023년 3월 16일 아멕스 스타디움 브라이튼 1 - 0 크리스탈 팰리스 프리미어 리그
2023년 12월 21일 셀허스트 파크 크리스탈 팰리스 1 - 1 브라이튼 프리미어 리그
2024년 2월 3일 아멕스 스타디움 브라이튼 4 - 1 크리스탈 팰리스 프리미어 리그

1. 개요2. 역사3. 여담
3.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크리스탈 팰리스 FC의 라이벌 매치.

현재 두 팀 모두 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되어 있어서, 매 시즌마다 M23 더비를 볼 수 있다.

2. 역사


▲ M23 더비 히스토리


▲ M23 더비에 대한 팬들 증언


▲ M23 더비 현장 분위기

영국에는 맨유와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그리고 뉴캐슬과 선더랜드의 타인위어 더비 (Tyne–Wear Derby) 등 역사적으로 치열한 축구팀 더비들이 무수히 존재하는데, 크리스탈 팰리스 FC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역시 서로에게 봐줄 수 없는 그러한 라이벌리 중 하나이다.

연고지 간의 거리는 50km를 넘어가나 고속도로로 연결되어있다. 이들의 매치는 오랜 라이벌 의식과 지역적인 감정까지 더해져 M23 더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가 속한 서식스 주에서 남쪽런던까지 통하는 모토웨이(Mortor Way)의 이름이 M23이기 때문이다.

브라이튼과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은 극성 팬들이 넘쳐나는 영국에서 별다른 말썽을 안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양 팀간 경기에서는 이상하게도 제정신이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광기에 사로잡힌다.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난동을 부렸는지, 경기장 출입 금지를 당한 사람도 많고 신분증 검사까지 한다. 실제로 M23 더비 날 원정석으로 출입하려면 티켓에 써 있는 이름과 맞는 사진으로 신원 검사까지 마쳐야 한다. 이 과정 없이는 스타디움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물론 항상 이렇진 않았다. 브라이튼과 팰리스의 역사상 첫 경기는 1906년 12월 22일 토요일 펼쳐졌는데, 브라이튼이 옛 홈구장 골드스톤 그라운드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65년 동안 두 팀은 자주 만나곤 했고, 팰리스와 브라이튼은 기찻길로 곧장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중들이 항상 많았다. 허나 그 때가 지금 증오의 발판이 되진 않았다.

그 후 오랫동안 두 팀은 자주 경기를 치렀고, 브라이튼과 팰리스를 이어주는 직통열차와 M23 고속도로가 있었기 때문에 양 도시 간에 70km가 떨어져 있음에도 경기장은 관중이 많이 차있었다.

상황은 양 팀이 처음 만난 지 68년이 지난 1974년 8월에 바뀌었다. 1974년, 팰리스는 1부에서 3부까지 2연속 강등을 당했고, 3부리그에서 가장 몸집이 큰 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곧바로 승격을 노리는 상황이었다.
말콤 알리슨 감독은 74-75 시즌 개막전, 호기롭게 브라이튼 원정을 왔지만, 경기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브라이튼의 이안 멜러가 경기의 유일한 골을 성공시켰고 피터 테일러가 이끄는 브라이튼이 1-0 승리를 거뒀다. 관중 수는 최근 몇년 간 최고 수준인 26,235명이었고 85명의 경찰관이 상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20건의 체포가 있었다.

다음 시즌 팰리스는 다시 한번 골드스톤 그라운드에 방문했고, 브라이튼은 점점 강팀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때였다. 1976년 2월 24일, 골드스톤에 모인 33,300명의 관중 중 일부 팰리스 서포터들은 그들의 팀로고에 있는 독수리를 딴 구호인 '이글스! 이글스!'를 계속 외쳐댔고 그 때마다 홈 팬들은 팰리스 팀로고의 상징인 독수리를 비하하는 "갈매기"라는 뜻의 '씨걸스! 씨걸스!'를 외치고는 했다.

1940/1950년대에 시작된 라이벌 관계는 1970년대 디비전 3에서 승격을 위해 두 팀이 경쟁하는 와중 크리스탈 팰리스 독수리 응원가에 대항하여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은 갈매기 응원가를 부르면서 더 불붙기 시작했다.

씨걸스 구호는 경기 전 리 필립스를 비롯한 브라이튼 팬들이 펍에서 만들어낸 것인데, 새미 모건의 멀티골로 또다시 브라이튼이 팰리스에게 2-0 승리를 거두며 빠르게 팬들 사이에서 퍼졌다.

이 승리로 브라이튼은 팰리스에 한 단계 앞선 3위로 3부리그 시즌을 끝낼 수 있었다. 양 팀 모두 1976/77 시즌에는 승격을 노리는 상황이었고 두 팀 다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브라이튼의 테일러 감독은 두 시즌 연속 승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며 자진 사임했고, 팰리스의 알리슨 감독은 경기장 바깥의 구설수로 인해 경질되었다.

양 팀 모두 전 토트넘 선수들이 후임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제부터 정말 재밌는 부분이 시작된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테리 베너블스를, 브라이튼은 앨런 멀러리를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했는데, 이 두 감독은 선수시절 토트넘에서 3년간 한솥밥을 먹을 당시부터 라이벌로 불렸던 선수들이었다. 뮬러리와 베나블스 둘 다 토트넘 소속일 때, 당시 감독 빌 니콜슨이 베나블스의 주장직을 박탈하고 뮬러리에게 완장을 넘겨주며 두 선수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경쟁 의식이 끓고 있었던 양 팀인데, 거기에 더해 서로를 싫어하는 두 감독이 취임하면서 기름에 불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두 감독의 첫 시즌인 1976/1977 시즌 양팀은 나란히 2등과 3등을 기록하며 2부리그로 승격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팬들이 경기장에 담뱃불을 던지며 경기가 중단 되는 등 양 팀은 경기마다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고, 양 팀은 1976/1977 시즌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적이 됐다.

2부리그에서 또다시 만난 양 팀의 첫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는데, 브라이튼의 팬들이 경기 도중 연막탄을 터뜨리면서 경기가 3번이나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져 멀러리 감독이 팬들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두번째 경기는 셀허스트에서 3-1로 브라이튼이 이겨 1승 1무로 시즌을 마무리짓나 했으나 양 팀은 FA컵에서도 만났다.

FA컵 첫 경기는 골드스톤에서 2-2 무승부로 끝났고, 셀허스트에서 열린 재경기도 1-1 무승부로 마무리되며 중립 경기장 스탠포드 브릿지에서 3번째 경기가 펼쳐졌는데, 이 경기가 지금 대립 관계의 시발점이 되었다.
폴 홀더의 골로 팰리스가 먼저 앞서간 후 브라이튼의 피터 워드가 완벽한 동점골을 터뜨렸는데, 핸드볼로 무효가 되고 말았다. 후에 팰리스 수비수 짐 캐논은 그가 워드를 밀어서 핸드볼 상황이 되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이튼은 실점 12분 후 페널티킥 찬스를 잡으며 동점에 가까워졌다. 브라이언 호튼이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지만, 심판 론 찰리스는 팰리스 선수들이 그가 차기 전 박스 안쪽으로 먼저 진입했다고 그에게 다시 찰 것을 명령한다. 골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시 찰 필요가 없었음에도 내린 멍청한 결정이었다. 호튼의 두번째 페널티킥은 폴 해먼드에게 막혔고 브라이튼은 FA컵에서 탈락했다.

론 찰리스 주심의 계속된 편파 판정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던 멀러리 감독은 경기 종료 후 터널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팰리스 팬이 던진 커피에 맞았고, 말 그대로 분노했다. 발끈한 뮬러리는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며 바닥에 내던지며, "크리스탈 팰리스 니들은 이거밖에 안되는 XX들이야" 라고 외치며 보이는 팰리스 팬들에게 V 자를 날렸다.
뮬러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팰리스의 라커룸으로 쳐들어가 5파운드 지폐를 땅에 내치며 베나블스에게 그들의 팀이 5파운드짜리라고 소리쳤고, 그 이후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FA로부터 100파운드 벌금을 부과받았다.

파일:m23더비.jpg
1977/78 시즌, 브라이튼이 팰리스의 이글스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씨걸스", 즉 갈매기란 뜻의 구호를 아예 자신들의 공식적인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로고에 갈매기를 넣으면서 양 팀간의 적대감을 고조시켰다.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이 자신들의 응원가인 "The Eagles" (독수리)를 외치자 이에 질 수 없어 브라이튼 팬들은 자신들의 자랑거리인 해변과 독수리에 대항할 조류를 연관지어 "The Seagulls" (갈매기) 라는 응원가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광경을 본 클럽 디렉터인 Derek Chapman은 구단의 별명을 아예 돌고래에서 갈매기로 바꾸어 버린데 이어. 급기야 Dolphins로 불렸던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은 그들의 상징물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는 엠블럼을 돌고래에서 갈매기로 교체했고 M23 더비가 더 활활 타오르게 된다.

이어 다음 시즌인 1979/80시즌에는 팰리스가 1위 브라이튼이 2위를 달성하여 동시에 1부리그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었다.M23 더비 매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79-80시즌 베나블스 감독이 먼저 팰리스를 떠나고, 뒤이어 80-81시즌 멀러리 감독이 브라이튼을 떠났지만 양 팀간의 라이벌 의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5년,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양 팀간의 경기에서 팰리스의 헨리 휴턴이 게리 라이언의 다리를 분지르며 두 팀의 지독한 관계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라이언은 그 이후로 한번도 경기에 뛰지 못했다.

1980년대 있었던 양 팀간의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1989년 셀허스트 파크에서 치러진 양팀간의 경기에서 또 한명의 엄청난 심판이 론 찰리스 이후로 등장했다. 케빈 모튼 주심은 30분도 안 돼서 팰리스에게 4개의 페널티킥을 주며 끝끝내 한 경기 5 페널티킥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그 미친 경기 이후로 13년간 리그에서 양 팀이 만나지 않으면서 틈이 조금 생겼지만, 2002년 양 팀이 다시 만났을 때 양 팀의 증오감은 그대로였다. 팰리스는 그 경기에서 5-0으로 승리를 거뒀고, 그 이후 현재까지 17년동안 팰리스가 더비 경기에서 우위를 가져간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브라이튼의 신축 경기장 아멕스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가져간 원정팀이 되었고, 브라이튼이 리그 순위가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2012/13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거스 포엣의 브라이튼을 탈락시켰다. 이 승리로 팰리스는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지만, 브라이튼은 이 패배를 겪은 뒤, 4년 뒤에서야 비로소 승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허나 브라이튼도 그들이 만끽할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2005년에는 양 팀간 수준차가 컸음에도 1-0 승리를 거두었고, 지난 시즌의 2연승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쁜 순간이었다. 쉐인 더피의 퇴장으로 60분간 10명이 뛰었음에도 거둔 홈에서 3-1 승리, 후반기 단 2승 중 하나였던 셀허스트 파크 원정 승리는 항상 기억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시즌 팰리스가 브라이튼에게 6점을 선물하고, 시즌 말미 카디프 시티를 잡아주면서 브라이튼을 잔류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2020-21 시즌, 아멕스에서 치러지는 리그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크리스티안 벤테케의 결승골로 인해 극적으로 팰리스가 승리하자 크팰 팬들은 그야말로 짜릿함이, 브라이튼 팬들은 그야말로 분노가(...) 폭발하였다.

2022-23 시즌,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이었던 파트리크 비에라는 3월 M23 더비 패배 후[3] 며칠 뒤 감독직을 떠났었는데, 시기를 고려하면 더비전 패배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월 3일, 브라이튼이 리그 더비전에서 4:1로 승리함으로써, 양팀의 총 맞대결 승리 횟수가 서로 같아졌다(51회).

3. 여담

  • 최다 점수차 경기는 크리스탈 팰리스 6 - 0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1950.02.11, 풋볼 리그 서드 디비전 사우스_3부 리그)
  • 보통 스포츠클럽에서의 라이벌 관계는 같은 지역이거나 동/서 혹은 남/북 지역간에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특이하게 M23 더비는 연고지도 서로 다르고 거리도 더비 치고는 먼 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두 팀의 팬이 아닌 이상 왜 라이벌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근본 없는 더비라는 반응을 보인다.

3.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4]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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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의 축구 더비 매치는 더비 매치/클럽 문서의 잉글랜드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



[1] 출처[2] 남자 1군 기준[3] 약 4년만의 패배였다.[4] 출처[5] 현재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